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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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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평소 자존심 강하던 하슬기가 처절하게 매달리는 꼴을 보며 서정우는 다소 마음이 약해졌다.그는 하정훈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형님, 그러지 말고 슬기에게 한 달만 금족령을 내리는 건 어떨까요? 그 한 달 동안 슬기가 자기 잘못을 깨닫게 하겠다고 제가 약속하겠습니다.”하정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바닥에 무너진 하슬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짧고 묵직하게 통보했다.“석 달이야.”협상의 여지가 없는 목소리였다.서정우는 두 달 뒤가 하슬기의 생일인 것을 생각하면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하물며 하슬기마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알았어. 석 달! 집 안에만 처박혀 있을게!”하정훈은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지훈에게 눈짓을 보냈다. 오지훈이 곧장 뒤따르며 두 사람은 응접실을 빠져나갔다.으리으리하고 넓은 거실에서 양나정은 여전히 차를 우리고 있었지만, 눈앞의 찻물은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하정훈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으나 오지훈은 거실에서 잠시 멈춰 섰다.그는 멍하니 앉아 있는 양나정을 굽어보며 입을 열었다.“양 팀장, 미리 알려두지. 오늘부로 나정 씨는 FunAI 홍보팀장이 아니야.”양나정은 당황했다. “오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오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설명이 더 필요해? 나정 씨는 해고됐다고.”그녀를 받아준 건 순전히 하슬기의 체면치레였지만, 상황이 이 정도로 악화된 마당에 더는 봐줄 명분이 없었다.애초에 하슬기의 체면을 세워준 것도 결국 하정훈의 얼굴을 봐서였을 뿐이다.이제 하정훈조차 하슬기나 양나정에게 그 어떤 예우도 갖추고 싶어 하지 않으니 오지훈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었다.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넓은 집 안에는 서늘한 기류가 흘렀다.하슬기는 발길질로 응접실 문을 열어젖히고는 양나정과 붙들고 통곡했다. 서러움에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였다.양나정 역시 눈물로 범벅이 된 채 흐느끼며 말했다.“우리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만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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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서정우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기가 찬 듯 말했다.“너는 입만 열면 송남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게 어디 직접 손을 대고 안 대고의 문제야? 네 그 잘난 친구 양나정이 너를 데리고 송남지의 병실에 가서 무슨 말을 쏟아냈을지 안 봐도 비디오야.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데 부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면, 분노 때문에 상처가 다시 터져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정우의 시선이 양나정에게로 향했다. 전에는 청순하고 가냘픈 외모 덕에 늘 피해자일 거라 착각했지만 오늘 다시 보니, 이 여자가 겉으로 얼마나 무구해 보이든 그 속내는 독사처럼 사악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너도 정말 보통이 아니야. 송남지가 칼에 찔려 그토록 중상을 입었는데, 슬기를 부추겨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 슬기가 하루라도 편하게 사는 꼴을 못 보겠어서 그래? 그러고도 감히 ‘누명을 씌운 사람만이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지 안다’는 소리를 지껄여? 너희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정말 억울한지?”서정우는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가정부를 바라보며 차갑게 덧붙였다.“양나정 씨를 내보내세요. 우리 집은 저 사람 환영하지 않습니다.”양나정은 이 와중에도 어떻게든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바닥에 엎드린 채 하슬기의 팔을 붙잡았다.방금 하슬기가 하정훈의 팔을 붙잡았던 모습 그대로였다.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애원했다.“슬기야, 너도 알잖아. 나 정말 나쁜 마음먹은 적 없어. 내가 어떻게 너를 부추겨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겠니?”하지만 지금의 하슬기는 남성으로 쫓겨날까 봐 겁에 질려 자진해서 금족령을 받아들인 처지였기에 당당하게 나설 기력조차 없었다.그래서 결국 가정부의 손에 끌려나가는 양나정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양나정이 쫓겨나자 가정부들도 눈치껏 각자의 일로 흩어졌다.서정우는 소파에 파묻혀 흐느끼는 하슬기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양나정이 무슨 의도로 당신을 휘두르는지 깨닫는 날, 비로소 당신도 진짜 어른이 되겠지.”하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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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하정훈의 고집스러운 성정은 타고난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한 사람에게 인생 전체를 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어쩌면 지금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남자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풀리지 않는 오해라면 세월의 흐름에 무뎌지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지금 송남지의 상태도 좋지 않으니 그녀의 상처가 다 나은 뒤에 천천히 다가가도 늦지 않을 터였다.무엇보다 지금 그들이 처리해야 할 일 역시 그만큼 중요했다.차는 도로를 질주해 손윤영이 갇힌 곳에 도착했다.미리 손을 써둔 덕분에 하정훈과 오지훈은 아무런 제약 없이 손윤영과 면회할 수 있었다.비좁은 면회실 안, 수갑을 찬 손윤영은 초췌한 몰골이었지만 기세만큼은 여전히 안하무인이었다.그녀는 하정훈을 빤히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네가 서경 하 씨 가문의 도련님이라지? 너도 참 보는 눈 더럽게 없구나. 송남지 같은 급 떨어지는 년한테 목을 매다니. 우리 윤 씨 가문에서도 버린 쓰레기를 말이야!” “저 입을 그냥 확!”오지훈이 참지 못하고 일어섰지만 하정훈이 손을 뻗어 그를 눌러 앉혔다.“지훈아, 진정해. 네가 흥분할수록 저 미친 노인네가 더 기세등등해지잖아. 지금 저렇게 득의양양하게 둬야, 잠시 후에 더 비참하게 절망하는 꼴을 볼 수 있지 않겠어?”손윤영은 이성을 잃은 듯 미친 듯이 웃어댔다.“내가? 내가 절망할 게 뭐가 있어? 다 늙은 나를 네가 인맥 써서 처넣어 봤자지, 사형이라도 구형할 수 있겠어? 송남지 그년이 살아있는 거 알아.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니? 일부러 자궁만 골라서 확실히 쑤셔놨거든. 다시는 일어서지도 못하게, 평생 아이는커녕 여자로서의 행복 따위 꿈도 못 꾸게 말이야! 윤씨 집안 대를 못 이었다면, 하씨 집안에 가서도 씨를 말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하정훈은 어금니가 으스러질 듯 힘을 주었다.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바위처럼 요지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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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손윤영은 잠시 멍해지더니 갑자기 메마르고 거친 웃음을 터뜨렸다.웃을 때마다 눈가에는 주름이 가득 잡혔다.이 나이대 여자들은 하루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세 초췌해지기 마련이었다.그런데 그 초췌한 얼굴에 억지로 짜낸 웃음이 더해지니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겼다.“고작 이런 걸로 나를 겁주겠다고? 나 손윤영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고. 이런 걸로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네놈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일 뿐이야!”손윤영의 기세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비록 윤씨 가문은 이미 짓밟혀 재기가 불가능했지만 그녀는 혼자 힘으로 가장 증오하던 송남지를 기어이 지옥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손윤영에게 있어 이것은 이미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하정훈은 그런 손윤영을 동요 없이 가만히 응시했다.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며 협상 기술을 익힌 그는 결코 자신이 쥔 패를 서둘러 보여주는 법이 없었다.단 한 번의 공격으로 치명타를 입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밀한 타격이 필요했다.하정훈의 얇은 입술 끝이 비스듬히 올라가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서늘한 기색에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손윤영조차 가슴 한구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결국 손윤영이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여기서 수작 부리지 마라. 난 너보다 훨씬 모진 세월을 견뎌온 사람이야. 고작 이런 공갈로 내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리면 내가 해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이라도 할 줄 알았니? 참으로 순진하구나!”하정훈은 여전히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오지훈에게로 옮겼다.“지훈아, 판결문 내용을 읽어드려라. 연세가 드셔서 눈이 침침해 잘 안 보이실 수도 있으니까.”오지훈이 판결문을 집어 들기 무섭게 손윤영이 격앙되어 소리쳤다.“읽을 필요 없어! 아주 잘 보이니까! 고작 해진의 사형 판결문 아니냐? 이게 위조된 거라는 사실조차 몰라볼 만큼 내가 헛살아온 줄 알아!”하정훈은 그녀의 악다구니를 철저히 무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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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현재 손윤영은 하정훈이 내뱉는 그 어떤 말도 믿지 않았다.그가 가져온 종심 판결문이 가짜라고 확신했기에, 그 이후의 말들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사과시킬 생각이 없다니 차라리 잘됐네. 그런 꿈을 꿨다면 그야말로 헛수고였을 테니까!”하정훈은 오늘 날짜를 확인하더니 손윤영에게 차갑게 일침을 가했다.“닷새 뒤면 젊은 애들이 환장하는 할로윈이네. 윤해진은 이번에 귀신 분장할 필요 없겠어. 진짜로 죽어서 귀신이 될 테니까.”손윤영은 여전히 불신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허세준에게 협박당해 돈을 뜯기다 못해 그를 집으로 불러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 사형까지 이어질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아니, 손윤영의 마음속에서 허세준은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먼저 협박을 시작한 건 그놈이었으니까.그놈이 돈을 요구하며 괴롭히지만 않았다면 윤해진이 손에 피를 묻혔을 리 있겠는가.“지훈아, 우리 서경의 법률은 참으로 인정을 중시하잖아. 손윤영이 비록 구금 중이라 해도, 아들이 처형되는 날 면회 정도는 시켜줘야 도리 아니겠어?”오지훈이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쳤다.“당연하지. 안 그래도 이미 월말에 맞춰 특별 접견 신청을 마쳤어. 윤해진이 선고받기 전에 얼굴도 보고 아들이 사형에 처해지는 그 비참한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직관할 수 있을 거야.”그제야 손윤영의 가슴속에 희미한 파동이 일었다.5일 후면 그리 먼 시간이 아니었다.만약 하정훈이 겁을 주려고 꾸며낸 말이라면 이렇게 허술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5일만 지나면 금방 들통날 테니까.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손윤영은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털어내며 여전히 표독스럽게 하정훈을 노려봤다.“내 아들이 사형당하지 않는다면, 네 체면이 아주 말이 아닐 텐데.”하정훈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만약 당신 아들이 정말 사형당한다면?”손윤영이 입꼬리를 비틀며 거만한 태도를 고수했다.“그럴 리 없어.”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정훈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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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손윤영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탈 때까지도 오지훈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오늘 겨우 이거 하러 온 거야?”하정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더 뭘 어쩌려고?”오지훈은 영 찜찜한 기분이었다.“이 멀리까지 달려와서 저 할망구 기세등등한 꼴만 본 거야? 난 아주 콧대를 팍 꺾어놓을 줄 알았지.”하정훈이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난 저 여자가 저럴수록 좋아. 오늘 기분 좋게 웃어둬야 5일 뒤에 흘릴 눈물이 더 짜릿할 테니까.”그제야 오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정훈은 지금 상대를 가장 높은 곳까지 끌어올린 뒤에 떨어뜨릴 작정이었다.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손윤영 같은 인간은 아들의 주검을 눈앞에 들이밀기 전까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을 테니까. 그녀를 무너뜨리는 데 그 이상의 수단은 필요 없었다.오지훈에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정훈아, 정말 이렇게만 할 거야? 그냥 자식 앞세우는 꼴만 보여주고 끝내겠다고? 남지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너무 곱게 봐주는 거 아냐?”하정훈은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응시했다. 초점이 흐릿한 그의 눈엔 지독한 피로가 서려 있었다.사실 하정훈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심한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숨쉬기조차 곤혹스러웠고 쉴 틈 없는 강행군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그는 가늘게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켜며 낮게 읊조렸다.“손윤영 같은 인간에게 죽음은 안식이고 도피야. 죽어서 남지가 받은 상처를 씻어낼 수만 있다면 벌써 만 번은 죽였겠지. 나는 그 여자가 죽기를 바라지 않아. 살아서 영원히 고통받기를 바랄 뿐이지.”오지훈은 손윤영이 아들의 처형을 지켜보며 느낄 절망을 떠올려 보았다. 제삼자인 자신조차 소름이 돋는 고통을 그 여자가 온몸으로 받아낼 생각을 하니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래, 마땅히 받아야 할 천벌이지. 그나저나 남지 씨는 그 집에서 그 긴 세월을 대체 어떻게 견뎠을까.”송남지가 윤 씨 가문에서 겪었을 수모를 떠올리자, 하정훈이 다시 눈을 떴다.그의 눈가는 어느새 시뻘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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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오지훈은 기가 찼다.“남지가 괴로우니까 너도 괴로워야겠다, 이거지?”하정훈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설득을 포기한 오지훈이 투덜거리며 중얼거렸다.“진짜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 미련한 건지 지독한 건지 원!”...송남지와 최미경은 하정훈이 지분을 가진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가 배치한 전담 의료진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다.나흘 정도 요양 끝에 송남지는 가까스로 기력을 되찾았고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그동안 최미경과 최보라가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는데, 송남지는 어머니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전날 서둘러 최미경을 집으로 돌려보냈다.사실 최보라도 같이 보내려 했지만, 그녀는 병원이 회사랑 가까워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막무가내로 버텼다.송남지는 못 이기는 척 수긍하며 그녀가 남는 것을 허락했다.금요일인 오늘, 최보라는 휴무였지만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이른 아침부터 단톡방 알림이 요란하게 울려댄 탓이었다.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쉬지 않고 울리는 소리에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송남지까지 잠에서 깨고 말았다.송남지는 비몽사몽 한 눈으로 최보라를 바라봤다.“언니, 그냥 집에 가. 여기 돌봐줄 사람도 많고, 나도 환자인데 좀 쉬어야지.”최보라는 잠투정을 부리며 투덜거리듯 휴대폰을 낚아챘다.“아니, 오늘 쉬는 날인데 누가 아침부터 단톡방에서 난리야? 평소에 보는 거로도 부족해서 쉬는 날까지 동료들 근황을 알아야 돼? 진짜 특이한 인간들이네!”최보라는 욕을 내뱉으며 휴대폰 잠금을 해제했다. 하지만 대화방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입이 딱 멈췄다.잠이 덜 깬 송남지는 최보라의 투덜거림이 뚝 끊기자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감고 있을 수 없었다.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그토록 거세던 최보라의 화를 단숨에 잠재울 정도면 대체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송남지는 실눈을 뜨며 의아한 듯 물었다.“왜 그래? 사장님이라도 도망갔어? 왜 아무 말이 없어?”최보라는 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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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윤해진 사건이 벌써 판결이 났어?”사실 딱히 빠른 건 아니었다. 모든 절차는 순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지만, 송남지가 그동안 윤해진과 관련된 소식에 아예 관심을 끊고 지냈기에 갑작스럽게 느껴진 것뿐이었다.최보라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2심도 원심 유지, 사형이야. 게다가 바로 오늘 집행한대.”송남지는 멍한 눈으로 눈동자를 잘게 떨며 머리맡의 휴대폰을 더듬어 쥐었다. 예상대로 푸시 알림이 쏟아지고 있었다.윤해진의 사형 집행 소식은 이미 서경 시내를 뜨겁게 달구는 최대의 화제였기에 모든 언론사가 앞다투어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화면 잠금을 해제하는 송남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당혹스럽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한 묘한 기분이었지만 거기엔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눈곱만큼도 섞여 있지 않았다.옆에서 최보라가 통쾌하다는 듯 감탄했다.“윤해진 그놈, 정말 꼴좋다! 제대로 판결 났네! 속이 다 시원해! 이제 그 미친 손윤영만 사형받으면 딱인데!”그 노인네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독이 될 인간이었다. 잃을 게 없는 처지니 혹여라도 송남지랑 같이 죽자고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다.예로부터 소인배는 열 포졸이 지켜도 못 막는다고 하지 않았던가.최보라는 걱정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그 빌어먹을 노친네는 정말이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 그냥 사형 판결이라도 나서 깔끔하게 끝났으면 좋겠는데!”송남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최보라가 이 화제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 송남지가 갑자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손윤영은 사형 판결을 받지 않을 거야.”최보라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하정훈 그 사람 서경에서 무서울 게 없는 권력자 아니었어? 자기 부인이 그렇게 다쳤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마음만 먹으면 손윤영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텐데.”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최보라에게 되물었다.“언니는 손윤영 같은 사람에게 어떤 처벌이 가장 가혹할 것 같아?”최보라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당연히 사형이지!”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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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다만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응, 진작에 다 조처해뒀어.”전화를 끊고 최보라가 송남지를 돌아보자, 송남지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하정훈이 이럴 줄 미리 알고 있었어?”최보라의 물음에 송남지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그럴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했지 확신은 없었어. 언니 통화 내용을 듣고서야 알게 된 거고.”최보라가 콧방귀를 꼈다. “흥, 하정훈을 아주 손바닥 보듯 하네!”송남지가 멍한 눈으로 되물었다.“내가 그 사람을 잘 안다고?”그것은 최보라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닌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문이었다.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만약 하정훈을 정말 잘 알고 있었다면, 최보라의 전화를 받고서야 확신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막연한 직감으로 그라면 그렇게 행동할 것 같다고 느꼈을 뿐이다.적어도 지금의 송남지는 하정훈의 행동을 단정 지을 자신이 없었다. 최보라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뗐다.“하정훈 말이야, 너 되게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입원해 있는 며칠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 보면 참 신기해. 부자들의 세계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니까.”송남지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언니, 언니 고객들도 다 잘 나가는 부자들뿐이잖아. 그 사람들 마음을 읽지 못하면 곧 커리어 위기가 닥칠걸?”최보라가 입술을 삐죽였다.“내 고객들이 부유하긴 해도 하정훈처럼 급이 다른 대부호는 흔치 않단 말이야.”그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송남지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전 9시였다. 민지현이 올 시간이었다.“들어오세요.”민지현은 겨울 화전 기획안을 들고 나타났다.겨울 전시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재스민 화랑은 메인 신인 작가와의 계약조차 성사시키지 못해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병실에 누워 애만 태우던 송남지는 결국 참다못해 민지현을 병원으로 호출했다.기획안을 훑어 내려가는 송남지의 안색에 수심이 가득 찼다.“이 박재용이라는 사람,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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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떠오르는 샛별, 그것도 무섭게 치솟는 신성과 같은 박재용을 탐내는 곳이 비단 재스민뿐만이 아닐 터였다.송남지는 이 화가가 얼마나 영입하기 까다로운 인물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기획안을 내려놓고 잠시 고민하다 제안했다.“차라리 다른 예산을 전부 박재용 쪽으로 전용해 보면 어떨까요?”민지현은 송남지의 말을 즉각 부정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관장님,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제가 박재용이랑 대화해 보면서 느낀 건데, 그 사람 정말 돈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스타일이에요. 한마디로 돈이 넘쳐나는 사람 같았다고요.”송남지는 초조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겨울 화전은 코앞인데 분기 주력 작가조차 섭외하지 못했으니 진도가 너무 늦었다.같이 발을 동동 구르는 민지현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자신이 다치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지체되진 않았을 텐데, 민지현이 업무 시간 중에 병원까지 오게 만든 것도 마음에 걸렸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송남지는 결심한 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박재용 작가 건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민 실장이랑 팀원들은 다른 파트를 맡아주세요.”이상하게도 민지현은 지난번 화랑 개관식 이후로 송남지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박재용을 섭외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처럼 보였지만, 송남지가 확신을 주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병실을 나서며 민지현은 눈을 찡긋해 보였다.“관장님, 갤러리 식구들 모두 관장님 퇴원만 기다리며 환영 파티 준비하고 있어요. 얼른 기운 차리셔야 해요!”송남지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그럴게요.”민지현이 떠난 뒤, 씻고 나온 최보라는 휴대폰으로 박재용에 관한 뉴스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신비주의’와 ‘흥행 보증 수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게다가 그가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다는 소문도 파다했다.심지어 누군가 박재용의 부계정까지 찾아냈는데 닉네임이 ‘서경의 정우성’이었다. 가끔 올라오는 게시물에는 작업 중인 그림 조각들이 단편적으로 담겨 있었다.최보라는 ‘서경의 정우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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