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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유한석은 막 떠오르는 신흥 귀족이었으며, 어좌 곁을 모시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여 각로의 문하생이라 그와 친분을 쌓으려는 이들 또한 차고 넘쳤다.석해는 마침 조정에서 막 내려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유 대인께서는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소인의 누추한 집이 멀지 않으니 부디 한 잔의 차라도 받아 주시지요.”유한석은 웅장하게 서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하관은 차를 사양하겠습니다.”품계로 치자면 유한석은 불과 종육품이었으나 석해는 정오품이었다. 따라서 스스로를 하관이라 칭하는 것이 분명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위와 위세 탓에 이 ‘하관’ 이라는 한마디를 석해는 차마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유한석은 곁에 모인 상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일찍이 듣기로 경성의 행회에 대단한 석 어르신이 있다고 하던데… 알고 보니 석 대인의 자제였군요.”그 말에 석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 그저 본가 친척의 자식일 뿐입니다. 본관은 자식이 없지요.”석해는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모두 요절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기에,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도 그는 슬하에 자식 하나 없었다. 어차피 친자식이라 해도 자라지 못한다면 차라리 다 큰 아이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석정이 도성에 올라온 지도 벌써 다섯 해가 넘었다. 석해는 양자를 들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혹여 또다시 집안의 대가 끊겨 제사를 이을 자손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었다.유한석은 석해를 힐끗 쳐다보더니 소매 속에서 황색의 조서를 꺼내 들었다.“석 대인, 하관과 함께 가셔야겠습니다.”석해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바로 그때, 석정도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자마자 그는 석해를 보더니 몸부림치며 그의 다리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아버지! 저를 위해 반드시 주리를 틀어 주셔야 합니다! 저 계집이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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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결국 그 장면은 주종현의 날카로운 시야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는 온몸을 빗줄기 속에 드리운 채 마차의 발판 위에 서 있었는데, 눈 속에는 차마 감출 수 없는 분노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대인, 마차가 다 수리되었사옵니다.”유한석은 고개를 살짝 돌려 주종현을 보며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고는 이내 몸을 돌려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천천히 떠나가자, 강시아도 시선을 거두며 주종현의 마차에 올랐다.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콩알만 한 빗방울들이 마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만마군이 달려드는 듯 요란스러웠다. 좁은 마차 안에는 고요히 섞여 흐르는 두 줄기 호흡 소리만 감돌았다.주종현은 이미 흠뻑 젖은 비옷을 벗어 발치에 던져버렸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또 우연이란 말이냐? 이번에는 또 어떤 구실을 내세워 나를 속이려는 것이냐? 오라버니에게서 서찰이 왔다고 할 작정이냐, 아니면 또다시 오라버니 편을 들어 억울함을 대신 풀어주려는 것이냐?”지난번 송하윤에게 발각되었을 때 그녀는 억지로 해명해야 했던 반면, 이번에는 그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었다.강시아의 입술이 단단히 닫혔다. 그녀는 단지 곡창 일을 위해 이곳에 왔을 뿐, 유한석을 만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유 대인은 오라버니의 동문이지만 저와는 거의 인연이 없습니다. 제가 국공부에 들어온 이래, 이 몇 해 동안 경성에서 유 대인을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방금 전 일도 순전히 우연이었지요. 그저 인사만 주고받은 것뿐,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허.”주종현은 냉소 어린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백마사, 만둣집… 또 내가 모르는 곳은 어디더냐?”강시아는 고개를 들어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서방님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전생에 그녀는 간통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이 생에서도 똑같은 굴레를 뒤집어쓰라는 말인가?주종현의 얼굴은 먹구름처럼 어두워 당장이라도 빗물이 뚝뚝 떨어질 듯했다.“네가 지금 무얼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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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강시아는 주종현의 눈동자에 서린 잔혹한 기운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가슴속은 이미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어져 가기 시작했다.강시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그렇습니까? 만약 제가 한 줌의 시체가 된다면 서방님께서는 그래도 원하시겠습니까?”주종현은 그녀의 돌변한 낯빛을 바라보며 눈빛이 살기로 물들었다. 그는 갑자기 힘을 주어 그녀의 두 손목을 머리 위로 틀어 올리고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너는 평생 나를 떠날 수 없다.”광풍은 빗물을 휘몰아 그녀의 얼굴에 촘촘히 흩뿌렸다. 얼굴 위에는 싸늘한 물방울이, 목덜미에는 뜨거운 숨결이 교차했다. 강시아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이 품 안에서 맥없이 풀리자 주종현은 팔에 힘을 주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채 바닥에 눕혔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차가 급히 멈춰 섰고, 차 밖에서 위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자! 북성 금명호에서 적국의 시신을 건져 올렸사옵니다!”주종현의 동작이 순간 멈추더니 그의 눈빛이 단번에 맑아졌다.“알았다.”그는 눈 속에 복잡한 빛이 스친 채, 흩어진 발계와 부은 입술을 지닌 강시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우비를 들어 그녀의 얼굴 위를 가려주었다. 그리고 마차를 박차고 나와 위심이 끌어온 말 위에 올랐다. 차가운 빗속에서 그는 마차를 한번 쓸어보며 명령을 내렸다.“강 마님을 데려다 주거라. 훗날 본 세자의 허락 없이는 결코 마차를 쓰게 하지 말거라.”“예.”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강시아는 주종현의 비옷에 몸을 감싼 채, 혼이 빠져나간 듯 무겁게 작은 뜰로 발걸음을 옮겼다.흐트러진 발계, 공허한 시선.길가의 하인들은 멀찍이 비켜섰고 그녀가 지나간 뒤에야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했다.“마님!”설강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와 그녀를 덥썩 끌어안았다. 마차라는 협소한 곳에서 그 명예와 절개를 짓밟다니! 세자는 마님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단 말인가!옆에서 하 유모는 그저 길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그녀는 스스로 합리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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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던 주종현이 얼굴 가득 미소를 걸고 작은 뜰로 발걸음을 옮겨왔다. 마치 며칠 전의 그 모든 일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강시아는 그의 얼굴에 드리운 진지한 기색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지난 생을 떠올렸다.그가 저토록 인내심 있는 사람이었는가?그가 저토록 세심히 배려하는 사람이었는가?그녀와 딸은 늘 국공부에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었는데 말이다.주종현이 송하윤과 혼인하던 날, 온 국공부의 사람들이 모두 전정으로 몰려가 작은 뜰에는 그녀와 연아만이 남겨졌다.그날 저녁의 가연에도 아무도 그들을 부르지 않았기에, 모녀는 하루 종일 굶주렸는데, 다행히 해가 저물 무렵 하 유모가 겨우 두 덩이의 만두를 들고 돌아와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듯 이어지는 날들을 그녀는 이미 지긋지긋하게 겪었다.그래서 연아만큼은 눈치 보지 말고 행복하게 커야만 했다. 정실의 그늘 아래서 늘 가슴을 졸이며 생존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공명등을 보고 싶지 않느냐?”주종현은 강시아가 대꾸하지 않자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풍수하에는 불꽃놀이와 쇳불놀이도 있지. 다만 상사절보다도 사람이 훨씬 더 많을까 두렵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내 기억에 풍수가에는 누각이 딸린 집이 하나 있다. 거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정말 절경이지. 소 세자의 명의로 된 집이니, 내가 그에게서 빌려오마.”강시아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낮게 말했다.“서방님께서 정성 쓰신 건 감사하오나 그날은 분명히 일도 많으실 터. 괜히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연아도 아직 어려 혹시라도 무슨 변고가 있을까 두려우니 괜히 인파 속에 섞이는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주종현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앙금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입술이 몇 번이고 움직였으나, 입안에서만 맴돌다 결국 삼켜버렸다. 그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한숨을 내쉬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태후는 수년간 번왕들을 억누르며 세습의 권리를 빼앗고 봉지를 회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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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주온청이 소매를 잡아당기는 주은혜의 손을 툭 쳐 떼어내며 말했다.“무슨 차이가 있느냐? 이제 한 달 조금 더 남았을 뿐이잖아. 하윤 언니가 전에 그러더라. 언니 생일이 태후 생신이랑 워낙 가까워서 올해는 생일을 제대로 못 지낼까 봐 걱정된다고. 한데 큰 오라비께서 몰래 이렇게 많은 불꽃을 준비하다니! 하윤 언니도 그날 분명 기뻐할 거야!”강시아는 줄지어 쌓인 폭죽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단단히 깨물었다.연아는 엄마의 다리에 기대어 물었다.“어머니, 이건 뭐예요?”강시아는 고개를 숙여 딸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다.“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꽃이란다.”연아는 상사절 때 풍수에서 본 불꽃을 기억하고 있었다.“어머니, 저건 하늘에 피는 꽃입니까? 아버지가 연아를 위해 사 준 겁니까?”강시아가 딸의 말끝을 받아주려는 순간 주온청이 다가왔다.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연아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했다.“연아야, 이게 다 네 아버지가 장래의 정실부인을 위해 준비한 거란다.”하지만 주온청의 다소 강압적인 말투에 연아는 겁을 먹고 어머니의 뒤로 물러나 숨었다.곧이어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나왔다.“연아에게는… 이미 엄마가 있습니다. 적모는 필요 없어요.”그러자 주온청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연아, 네가 어찌 그리 무례할 수 있는 것이냐!”그 말에 강시아가 몸을 돌려 딸을 안아 올렸다.“셋째 아가씨, 연아는 아직 어립니다. 어찌 그리 성급히 말씀하시는 겁니까?”“제가 성급했단 말입니까?”주온청이 몸을 일으키며 반문했다.“아이들이 어찌 그런 말을 알겠습니까? 마님께서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다면 연아가 어찌 그딴 소리를 하겠느냐 말입니다!”강시아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셋째 아가씨, 그런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됩니다!”송하윤의 혼인 날짜가 다가오는데 이런 말이 새나가면 큰 마님은 바로 연아를 떼어가 버릴지도 모른다.주온청는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마님 속셈이 뭔지 제가 모를 줄 압니까? 상사절 때 일부러 길을 잃어 큰 오라버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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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송이당은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너는 이제 한 달 남짓 후면 국공부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중대한 시점에 꼭 소란을 피워야 하겠느냐?”그러나 송하윤은 이제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그가 고작 있어도 그만인 여자를 위해 자신의 친 누이를 때렸습니다! 그년은 두 번째 노 마님이 될 것이고 저는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요. 그럼 제 아이도 결국...!”송이당은 완강한 눈빛을 한 동생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랬다.“두려워 말거라. 너는 결코 어머니처럼 되지 않을 것이니. 오라버니가 평생 네 버팀목이다. 주종현 또한 올곧은 사람이니 결코 아버지처럼 굴지 않을 것이다. 하윤아, 그는 좋은 배필이야. 제발 그를 몰아내지 말거라.”송하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아니에요, 오라버니…! 제가 억지로 그런 게 아니에요! 그가 직접 저와 약속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저 있어도 그만인 첩일 뿐이라고요!”송이당은 이성 잃은 동생의 모습을 보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런 동생에게 남자의 말 따위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지금 저토록 변했을 리 없었다.“하윤아, 오라버니가 약속하마. 너는 결코 어머니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주종현 역시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그는 동생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주종현은 누이의 바람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송하윤은 눈에 희망을 담아 오라버니를 올려다보았다.“오라버니, 전 그 여자가 싫습니다! 미워 죽겠어요! 그녀가 더는 주 가에 머물지 못하게 해 주세요. 저를 도와주실 거죠?”송이당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하윤아...”송이당은 홱 오라버니를 밀쳐내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오라버니도 저를 속이는 거죠, 그렇죠! 아까 분명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어머니처럼 되지 않게 하겠다고!”문밖에 서 있던 소영은 몸을 덜덜 떨며 그 소리를 들었다. 뜰에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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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오 유모는 인상이 푸근하고 온화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마음이 누그러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강시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유모는 무슨 일로 왔느냐?”오 유모가 차분히 대답했다.“며칠 뒤면 태후 마마의 회갑연이 열릴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저택의 주인들은 모두 궁에 들어가 축수를 드려야 하니 후원 주방도 반나절은 일을 멈출 것입니다. 나머지 반일은 노비가 당번이라 부 안에 남는 마님과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님과 아가씨께서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 지 미리 여쭈어서 노비가 준비해 두면 뜰 안의 시녀들이 와서 가져갈 것입입니다.”하 유모는 오 유모와 몇 차례 접촉한 적이 있기에 그녀가 꽤나 사려 깊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마님, 오 유모의 손맛은 국공 어르신께서도 칭찬하실 정도랍니다.”지난 생에는 남은 찬밥이나 건사하던 자신이었는데 이번 생에는 아예 큰 마님의 전담 유모가 직접 음식을 마련해 주다니.이렇게 보면 주종현이 마음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그 마음을 그녀와 연아에게는 한 번도 기울인 적이 없을 뿐이었다. 만약 이번 생에도 지난 생처럼 규율에 얽매여 그저 체념하고 살았더라면, 어디 불꽃놀이나 주방 유모의 배려 따위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나와 연아는 아무거나 잘 먹으니, 유모가 알아서 준비해 주면 된다.”그러자 오 유모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마님께 옥영갱, 노계탕, 그리고 유채심 볶음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강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신세를 좀 지겠다.”오 유모는 웃으며 답했다.“노비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하 유모가 그녀를 문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며 감탄했다.“후원 주방엔 죄다 세속에 찌든 자들 뿐인데, 오 유모만큼은 가장 잔잔하고 평화로운 사람이옵니다.”그 말에 강시아는 그저 웃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후원 주방이 그토록 세속적이고 계산적인데 어찌 단 한 사람만 예외로 평화로울 수 있으랴.지난 생에 그런 평화로움은 결코 없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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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어머니, 불꽃놀이는 어디 있습니까?”연아는 잠에서 막 깨어난듯 눈을 비비며 내실에서 걸어 나왔다.주종현은 다가와 딸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더니 품에서 따뜻한 기름종이 봉투를 꺼내 보였다. 연아는 냄새만으로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밤떡이다!”아이는 기쁨에 가득 찬 채로 봉투를 열었는데, 안에는 자그마한 두 조각만이 들어있었다.연아가 예전에 열이 오른 뒤로 주종현은 그녀에게 다시는 밤떡을 사다 주지 않았다.“다 먹으면 내일 아버지가 또 사주마.”“좋습니다!”연아는 탁자에 엎드려 조심조심 떡을 집어 들었다. 마치 다시는 먹지 못할까 두려운 듯 작은 입으로 살며시 한 입 베어 물었다. 강시아는 그 모습이 귀여워 가볍게 아이의 작은 엉덩이를 토닥였다.“먼저 씻고 나서 먹거라.”주종현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난 이만 가야겠다.”연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손만 흔들며 말했다.“아버지, 잘 가세요.”강시아는 이마를 살짝 짚으며 나무랐다.“연아, 무례하게 굴면 안 된다.”연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떡을 내려놓고, 작은 두 손을 배 앞에 모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아버지, 정중히 배웅합니다.”주종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딸의 코끝을 톡 건드렸다.“작은 몸이 참으로 영악하구나.”영국공부의 장대한 행렬이 나가고 나자 국공부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 연아는 대담하게도 콩뼈를 풀어 마당을 여러 바퀴 달리게 하였다. 그녀는 한바탕 뛰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어머니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어머니! 콩뼈가 정말 대단합니다! 방금 제가 길을 잘못 텄는데 콩뼈가 스스로 돌아올 줄 알더라고요!”강시아는 수건을 꺼내 그런 아이의 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멀리 가지 말거라. 다른 뜰에는 작은 아가씨들이 계신다.”국공 어르신의 정 마님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특히 그녀의 아들인 공자는 더더욱 골칫거리였다. 그에게 콩뼈가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정오 무렵, 하 유모가 후원에서 점심상을 가져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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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아마도 2년 전쯤에 왔을 것이옵니다. 큰 마님께서 뱃놀이 나가셨을 때, 오 유모가 길가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큰 마님께서 드셔 보시고 마음에 들어 하셔서 곧장 데리고 오셨다 하더군요. 그녀는 줄곧 큰 마님의 식사만을 맡아왔으니 마님께서 후원 주방에 드나들지 않으셨다면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지요.”강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우리가 언제 이런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있었겠느냐? 분명 서방님께서 주방에 따로 지시를 내린 것이지.”하 유모는 세자의 혼례가 머지않았음을 떠올리며 속삭였다.“세자의 마음이 마님께 묶여 있는 한 훗날 정실부인이 들어온다 해도 두려울 게 없지요.”옆에 있던 연아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하 유모는 아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오늘은 저택 안에 사람이 적다 보니 아이가 마음껏 뛰어 놀았사옵니다. 그러니 지금 많이 지쳤을 것이옵니다.”강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잠깐 자두는 것도 좋다. 해질 무렵엔 불꽃놀이도 보아야 하니까.”하 유모가 연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 뒤 강시아는 설강과 함께 다시 천을 펼쳐 옷감을 재단했다. 아침에 주종현이 그 속옷을 자신을 위한 것이라 오해했으니 따로 그의 속옷을 만들어야 했다.무슨 사연인지 알지 못한 설강은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 웃음을 참으며 곁눈질했다. 그 모습에 강시아는 괜스레 장난을 걸었다.“설강아, 네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또 누군가에게서 편지가 온 모양이지?”설강은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져 탁하고 발을 구르더니 부끄러움에 몸을 홱 돌려 달아났다.“이 옷은 마님께서 직접 재단하시지요!”강시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설강이 이렇게 쉽게 놀라 달아날 줄은 몰랐다. 햇볕이 아직 뜨겁지 않았기에, 몸 위로 내리쬐는 따사로움이 기분 좋게 감싸왔다. 그녀는 탁자에 엎드려 옷의 대략적인 형태를 재단하고 주종현이 부탁했던 대로 깃은 높이고 어깨는 두텁게 했다.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그녀는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섰다.뜰 안은 정말 고요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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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강시아는 순간 멍해졌다.“없군.”하 유모도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마님께서 너무 깊이 생각하신 것이옵니다.”그러나 강시아의 미간은 여전히 굳게 찌푸려져 있었다. 만약 자신만 잠들지 않았다면 그건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이번 끼니는 먹지 말자. 방에 아직 과자가 있으니, 가서 먹으면 될 것 같다.”그녀는 이미 연아를 품에 안은 채로 일어서며 말했다.“이 음식들은 전부 버리거라. 잠시 뒤 오 유모가 그릇을 거두러 오면 너희는 연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거라. 나는 혼자 여기에 남겠다.”하 유모와 설강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비록 마님이 지나치게 의심하는 것 같다고 여기긴 했지만,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예.”하 유모는 그윽한 향내가 감도는 풍성한 음식을 들고 괜히 아까운 마음에 속으로 탄식했다. 이 저택에 산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호사스러운 음식은 명절에도 보기 드물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강시아가 딸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더니 몰래 음식들을 자신의 방으로 가져갔다.저녁 무렵, 그릇을 거두러 온 이는 오 유모가 아닌 낯선 작은 계집아이였다.“오 유모는 어디 있느냐?”“오 유모요? 마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게 옹 유모 아닙니까?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작은 계집아이의 뒷모습이 멀어져 가자 강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오? 옹?자신이 잘못 들은 것일까?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려앉자 하 유모와 설강은 연아를 데리고 돌아왔다.“마님, 위심이 돌아왔사옵니다. 그리고 곧 불꽃놀이를 터뜨린다 해서 지금 모두 후원에 모여있사옵니다.”“모두?”강시아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혹시 자신이 괜한 의심을 한 것일까?어찌 송하윤 따위가 감히 국공부의 후원 주방까지 손을 뻗을 수 있겠는가?지난 생에도 그녀는 주방의 채소 구매를 관장하는 자리를 자기 사람으로 교체해야만 마음을 놓았었다.하 유모는 웃으며 말했다.“마님, 너무 걱정이 지나치시옵니다. 여기는 국공부이지, 밖이 아니옵니다.”연아는 어른들의 대화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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