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의 참회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100 챕터

제11화

유하늘은 한 걸음 한 걸음 송우주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동안 내 아이로 사느라 많이 힘들었지?”송우주는 유하늘이 부드럽게 말하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으나 억지로 표정을 굳혔다.“난 좋은 엄마가 아니야. 너한테 숙제하라고 하고, 전자기기 오래 쓰지 못하게 하고, 아이스크림이랑 몸에 안 좋은 음식들 많이 먹지 못하게 하고, 네 자유를 너무 많이 억압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앞으로는 절대 네 일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아람 이모가 그렇게 좋으면 아람 이모한테 엄마가 되어달라고 해. 나는 상관없으니까.”유하늘은 정중하게 말했다. 마치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이 말이다.그녀는 곧 죽을 것이다.남편은 그녀를 속였고 아이는 그녀를 원망했다.실패한 삶이었다.송우주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엄마, 화가 나서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거죠?”유하늘은 냉담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아니. 진심이야. 네가 지금 당장 아람 이모를 엄마라고 부른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는 앞으로 너를 낳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 거니까.”유하늘은 말을 마친 뒤 시선을 내려뜨리고 빠르게 떠났다.유하늘이 떠난 뒤에도 송우주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다.송우주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 유하늘에게 버림받는 것이 마치 온 세상에 외면당한 것처럼 느껴졌다.곧이어 송우주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권아람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걸 확인하자 송우주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는 조금 전에 느꼈던 두려움을 금세 잊어버렸다.송우주는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아람 이모!”유하늘은 차에 오르기 전 송우주의 신난 목소리를 듣고 잠깐 멈칫했지만 끝내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차에 탔다.바에 도착한 뒤 어두운 복도를 지나 홍이수가 있는 룸 밖에 도착하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안에서 송여준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위기는 떠들썩했고 누군가 옆에서 그를 놀렸다.“여준이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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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송여준의 두 눈을 바라보니 유하늘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마치 그녀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상처라도 받았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그녀를 수도 없이 실망을 안겨주었다.혼인신고를 한 척하고, 권아람이 귀국하자마자 바로 그녀를 자신의 비서로 고용하고, 유하늘의 몸이 좋지 않을 때 먼저 권아람부터 챙기고...그 모든 것들이 유하늘의 마음이 문드러지게 했다.유하늘은 시선을 거두며 덤덤히 말했다.“거기 가기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어. 그래서 바 앞에서 쓰러진 거야. 아무것도 못 들었어.”송여준이 안도하기도 전에 유하늘이 갑자기 물었다.“그런데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라도 했어? 왜 그렇게 불안해해?”유하늘의 눈빛은 맑고 솔직했다.그 순간 송여준은 흠칫했다.그는 친구들이 내뱉던 선 넘는 황당한 농담들과,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성질을 부렸다가 결국에는 친구들과 안 좋게 헤어졌던 걸 떠올리고는 애써 웃어 보였다.“아니. 내가 술을 많이 마셨었는데 네가 그 모습을 보고 날 걱정하거나 나한테 화가 났을까 봐.”유하늘은 송여준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그럴 리가.”송여준은 더 자연스럽게 미소 지어 보이며 은근히 화제를 돌렸다.“나 걱정 안 되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화가 나지 않은 거야?”예전에도 송여준은 이런 식으로 장난을 많이 쳤었다.그러면 유하늘은 애교를 부리면서 해명하거나, 송여준이 또 자신을 놀린다며 화가 난 척했었다.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았다.송여준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니 애교를 부릴 필요가 없었고 그가 밖에서 술을 많이 마신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그건 권아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이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검사결과지를 들고 들어왔고 송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거두고 말했다.“선생님, 검사 결과 어떤가요?”유하늘은 순간 흠칫했다.‘검사?’의사가 그녀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얘기할지도 몰랐다.유하늘은 미간을 찌푸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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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하늘은 이불을 꽉 쥐면서 홍이수가 그녀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다주었을 때를 떠올렸다.당시 유하늘은 기쁜 마음에 사진을 매우 많이 찍었었고 밤에 잘 때도 그걸 끌어안고 잤었다.그런데 그녀가 7년 동안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가족관계증명서는 사실 가짜였다.유하늘은 이를 악물었고 감정이 격해져 두 눈이 벌게졌다.그녀는 두 사람이 반응하기 전에 얼른 서류를 주워서 확인하려고 했다.“잠깐!”그런데 송여준이 갑자기 소리치며 유하늘을 말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당황함이 여실히 느껴졌고, 그의 동공 또한 심하게 흔들렸다.유하늘은 서류를 꽉 쥐었다.7년간 그녀를 속여놓고 인정하기는 두려운 걸까?유하늘은 냉담하게 물었다.“왜 그래?”송여준은 서류를 가져간 뒤 권아람에게 전해주면서 또박또박 말했다.“물건 잘 챙겨. 흘리지 말고.”권아람은 표정이 굳으면서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나 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송여준은 권아람의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눈썹을 치켜올렸다.“나와. 얘기 좀 하게.”그는 몸을 돌려 유하늘을 대신해 이불을 덮어준 뒤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창백한 뺨을 어루만졌다.“푹 쉬어.”유하늘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송여준의 손길을 피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침대에 누웠다.병실 밖.권아람은 시선을 들어 웃어 보이면서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송여준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준 씨, 나한테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다음 주 월요일 시간 있어? 우리 이혼해야지.”송여준은 냉담하면서도 압박감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권아람은 흠칫했다. 그녀는 살짝 당황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뭐가 그렇게 급해? 시간 조금 지나서 하늘 씨한테 털어놓겠다면?”송여준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뭐든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잖아. 하늘이는 지금 기분이 불안정하고 몸도 안 좋아. 난 하늘이가 충격을 받지 않기를 바라.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이혼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할 거야.”조금 전 일로 송여준은 빨리 이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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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생각해 보니 노은결과 연락하지 않은 지 3년이 되었다.그런데 권아람이 왜 갑자기 노은결이 된 걸까?유하늘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권아람 씨가 그 대단한 화가 노은결이었네. 노은결 씨 워낙 유명하잖아.”송여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가고 싶어? 관심 있으면 같이 가자.”유하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유하늘은 사칭범의 전시회에 가보고 싶지 않았다.해외로 나가면 시간을 내서 노은결을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 할 듯싶었다.만약 권아람이 정말로 노은결을 사칭하고 있는 것이라면 노은결에게 그 사실을 얘기해 줄 필요가 있었다.송여준은 유하늘의 손을 잡았다.“거절하지 말아 줘. 나 내일 마침 시간이 있어. 우리 데이트 안 한 지 오래됐잖아. 나랑 같이 가줘.”유하늘은 그의 다정한 눈빛을 바라보았다.가짜 아내를 데리고 진짜 아내의 전시회에 참석하자고 하다니.송여준은 정말 못하는 짓이 없었다.유하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송여준과 다툴 기운조차 없었기에 송여준의 계속되는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이내 권아람은 송여준에게서 문자를 받게 되었다.유하늘이 전시회에 온다는 소식을 알게 된 권아람은 차갑게 웃으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곧 전화 너머 송우주의 기쁨에 찬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람 이모!”“우주야, 오늘도 엄마랑 화해 안 한 거야?”권아람은 매정하고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그와 상반되는 아주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송우주는 입을 비죽이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네.”“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내일 저녁에 우주 엄마가 우주 데리고 이모 전시회에 놀러 온다고 했거든. 전시회 오면 이모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권아람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송우주는 어리둥절했다.“엄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권아람은 헛숨을 들이키면서 일부러 놀란 듯 말했다.“우주 엄마가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셔서 우주랑 같이 오지 않으려고 하나 봐. 나는 우주 엄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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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 사람은 손이 아주 작았지만 힘이 셌다.유하늘은 그의 손에 떠밀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마침 직원과 부딪쳤다.“꺅, 어떡해!”직원은 비명을 지르더니 유하늘과 부딪쳐 팔이 흔들렸고, 그 탓에 술잔에 들어 있던 술이 옆에 있던 그림 위로 쏟아졌다. 직원은 그 광경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권아람이 송여준과 함께 부랴부랴 달려와서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내 그림이 망가졌잖아! 어떻게 된 일이에요?”직원은 덜덜 떨면서 곧바로 유하늘을 가리켰다.“저, 저 사람이 저랑 부딪치는 바람에 술이 쏟아졌어요.”권아람은 슬픈 얼굴로 가슴께를 움켜쥐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유하늘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너무 조심성이 없는 거 아니에요?”송여준은 미간을 찌푸린 뒤 망가진 그림을 힐끗 보았다. 유하늘의 편만 들기엔 적절치 않은 상황이었다.“하늘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유하늘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돌려 사람들 중에 서 있는,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체구의 아이를 바라보았다.조금 전 그녀를 떠민 사람은 바로 송우주였다.송우주는 나쁜 짓을 했음에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쳐들며 당당하게 따졌다.“엄마, 엄마는 예의나 소양 같은 건 없어요? 아람 이모 그림을 망쳤으면서 왜 사과하지 않는 거예요?”유하늘은 어두운 눈빛으로 송우주를 바라보았다.“말해봐요, 엄마. 아까 엄마 근처에 사람도 없었잖아요. 일부러 아람 이모 그림을 망치려고 한 거 아니에요? 제가 요즘 아람 이모랑 친하게 지내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송우주는 우쭐한 표정으로 유하늘을 바라보았다.어젯밤 권아람은 송우주에게 유하늘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몰아붙이면 엄마가 슬퍼하면서 더는 그에게 차갑게 굴지 못할 거라고 했었다.송여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려는데 권아람이 선수를 쳤다.“우주야, 그게 사실이야? 너희 엄마가 내 그림을 일부러 망친 거야?”송우주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제가 직접 봤어요.”송우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유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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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이 그림은 국내로 돌아온 뒤 그린 첫 작품이에요. 저한테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죠.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저와 함께 이 작품에 적어 넣을 글을 정했으면 좋겠어요.”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기대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권아람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즐기며 송여준을 향해 제스처를 취했다.“여준 씨, 날 위해 이 작품의 이름을 정해줘.”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송여준에게로 향했다.송여준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굉장히 보기 좋았다. 남자는 귀티가 흘러넘치고 여자는 우아했다.사람들은 곧바로 칭찬하기 시작했다.“노은결 씨,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는데 남자 보는 눈도 높네요. 남편분이 참 멋지세요!”유하늘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사람들은 곧바로 호들갑을 떨었다.“노은결 씨가 솔로가 아니라는 소문을 들어보긴 했는데 남편이 있었어요?”“그날 저녁 같이 불꽃놀이를 본 사람이 이분이었나요?”“정말 잘 어울리네요!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세요!”사람들이 소란을 피웠다.권아람은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조용히 하라는 듯 사람들을 향해 발을 쿵쿵 굴렀다. 그러나 해명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말에 쑥스러워서 그러는 것 같았다.유하늘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았다.송여준은 권아람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다들 오해하셨는데 저랑 아람이는...”“그냥 친구 사이니까 다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강명주의 얼굴이 더 빨개졌고, 사람들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송여준은 뭐라고 하기가 그래서 단상 위로 올라가 어떤 말을 적어넣을지 얘기했다.그런데 사람들 중 누군가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노은결 씨는 글에 그림을 적어넣는 습관도 없고 수묵화를 그린 적도 없어요. 노은결 씨는 지금까지 유화만 하셨죠. 진짜 해외에서 유명한 그 노은결 씨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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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유하늘은 돌아가는 길에 송여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권아람을 감싸던 모습을 떠올렸다.온 세상이 권아람을 의심한다고 해도 송여준은 그 여자를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이때 송여준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오늘은 일찍 쉬어. 내일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참, 난 오늘 저녁 볼일이 있어서 못 돌아갈 것 같아.]유하늘은 시선을 내려뜨렸다.‘볼일이 있다고? 권아람과 잠자리를 가져야 해서 바쁜가 보지.’상관없었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니 쓸데없이 감정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8일 뒤면 그녀는 떠날 것이다.유하늘은 샤워한 뒤 억지로 침대에 누워 자려고 했다.눈을 감자 해외에서 근심,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던 때가 떠올랐다.유하늘의 오빠는 혼자 회사를 운영하며 유하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고, 그 덕분에 유하늘은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하늘은 굉장히 유명했고 또 앞날이 창창했다.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는데 하필 송여준을 만나게 되었다.유하늘의 오빠는 유하늘이 국내에서 남편과 아이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유하늘은 수명이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죽도록 원통했다. 앞으로 두 달 뒤면 유하늘의 오빠 곁에는 가족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유하늘은 자신의 몸을 힘껏 끌어안으며 촉촉해진 눈가를 닦았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날이 밝은 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유하늘은 비몽사몽인 상태로 문을 열러 갔다.송여준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방금 깼어?”송여준이 다가와 유하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잘 됐다. 의사 선생님이 금방 잠에서 깬 공복 상태에 진맥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하셨어. 일단 앉아.”유하늘은 완전히 잠에서 깬 건 아닜기에 반응이 조금 느렸다.“뭐라고? 진맥?”“응.”송여준이 억지로 그녀를 테이블 옆에 앉혔다.“너 요즘 몸이 계속 안 좋았잖아. 도저히 마음이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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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정신우는 손을 거두어들인 뒤 소매를 내렸다.“하늘 씨는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유하늘의 눈빛이 흔들렸다.정말로 진맥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걸까?유하늘은 고개를 들어 송여준을 바라보았고, 송여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급히 말했다.“대체 뭐가 문제야?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얘기해!”송여준의 초조한 표정은 연기 같지 않았다.유하늘은 평소 송여준이 오늘처럼 추태를 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정신우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진정해. 내 말은 하늘 씨 몸이 매우 허약해서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거야. 몸조리를 잘해야 해.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야.”그 말에 송여준은 그제야 안도하며 언짢은 표정으로 정신우를 바라보았다.“다음부터는 말 좀 똑바로 해. 아까 네 반응을 보고 하늘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줄 알았단 말이야.”정신우는 종이에 뭔가를 적은 뒤 그것을 송여준에게 건넸다.“이건 내 처방이야. 기가 허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효과적이니까 여기 적힌 대로 세 시간 동안 약을 달인 뒤에 하루 한 그릇씩 마시면 돼. 효과가 좋을 거야.”송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한 뒤 그를 돌려보냈다.유하늘은 그 자리에 앉아서 코끝을 만졌다.요즘 들어 코피를 흘리는 빈도가 잦아졌다.예전에는 일주일에 두 번쯤이었는데 요즘에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흘렸다.이 정도로 자주 피를 흘린다면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별로 소용없을 것이다.송여준은 정신우를 1층까지 데려다준 뒤 다시 돌아왔고, 병실 안으로 돌아와서는 유하늘을 도와 짐을 정리하려고 했다.“내가 데려다줄게. 여기서는 약 달이기가 불편하잖아.”송여준은 유하늘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리 위에 놓인 그녀의 손을 잡았다.“하늘아, 집이든 차든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다 해줄게. 만약 우주를 보고 싶지 않다면 당분간 우주가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게 할게. 대신 하늘이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약 챙겨 먹자.”유하늘은 시선을 들며 그를 바라보았다.“여준 씨 우주 기숙사에서 지내는 거 반대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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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송여준은 유하늘이 그렇게 되묻자 할 얘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임세빈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송여준이 떠난 뒤 유하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송여준은 그녀와 의사의 일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녀가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다.유하늘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정신을 가다듬고 확인해 보니 송우주의 유치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유하늘은 지난번과 같은 일이 생길까 봐 전화를 받았다.이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우주 어머님. 다른 학부모님들 다 오셨는데 우주 어머님께서는 왜 학부모 동반 체험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신 거예요?”유하늘은 흠칫했다. 그녀는 한 달 전 송우주에게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체험 활동에 참여할 거라고 약속했었다.송우주는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라 실내 암벽등반 시합에 참여하겠다고 했다.‘하지만...’유하늘의 주치의 임세빈은 격한 운동을 하면 두개 내압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그래서 그녀는 곧바로 임세빈에게 전화해서 물었고 임세빈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그녀를 설득했다.“안 돼요! 하늘 씨 몸 상태로는 암벽 등반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 하늘 씨는 몸이 매우 허약해서 절대 문제가 생기면 안 돼요.”유하늘은 곧바로 유치원에 전화했다.“죄송합니다. 선생님. 저 지금 급한 볼일이 있어서 체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할 것...”“온다고 약속했잖아요. 왜 약속 안 지켜요?”유하늘이 말하고 있는데 송우주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유하늘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차갑게 말했다.“내가 얘기했잖아. 난 네 엄마가 아니라고. 체험 활동에 참여하고 싶으면 네 아빠한테 연락하든가, 아람 이모한테 연락하든가 해. 난 갈 수 없으니까.”유하늘은 송우주에게 대꾸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때 벨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유하늘은 송우주인 줄 알고 전화를 받았는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하늘 씨, 며칠 전에 팔겠다고 하신 집 사려는 사람이 생겼어요. 지금 직접 만나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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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차 안, 유하늘은 송우주가 자신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임세빈을 바라보았다.“임 선생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임세빈은 아주 젊은 나이에 과장이 된 훌륭한 인재였다.유하늘은 그를 매우 신뢰했다.그런데 그녀가 체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일로 임세빈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임세빈은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는 유하늘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트렁크 안에서 구급상자와 혈압계 등 각종 기기를 꺼냈다.“움직이지 말아요. 검사할 거예요.”유하늘은 임세빈이 자신을 걱정해서 화를 낸다는 걸 알았기에 얌전히 협조했다.임세빈은 검사를 마친 뒤에야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괜찮네요. 혈압이 조금 높긴 하지만요.”“그건 선생님 때문에 놀라서 그런 거예요. 저 잡겠다고 유치원까지 찾아오셨잖아요.”유하늘은 일부러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그러나 임세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구급상자를 넣어두었다.“장난으로 넘길 일이 아니에요. 다시 한번 말할게요. 유하늘 씨는 당분간은 꼭 안정을 취해야 해요.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해요. 절대 자극을 받으면 안 돼요. 일주일 뒤에 순조롭게 떠나고 싶으시잖아요.”“그러고 싶죠.”유하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임세빈은 또박또박 말했다.“그러면 오늘 같은 일은 절대 없어야 해요. 자꾸 사람 걱정시키지 마세요.”유하늘은 잠깐 흠칫했다.임세빈의 눈빛에서 그녀는 진실한 관심과 걱정을 보았고, 그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하마터면 울 뻔했다.그녀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유하늘은 오빠가 걱정할까 봐 오빠에게도 차마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사실 유하늘은 무서웠다.죽는 게 무서웠고,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병세가 악화해서 무서웠다.그리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에는 가족의 곁을 오래 지킬 수 없을까 봐 걱정되었다.그러나 유하늘의 곁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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