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Chapter 161 - Chapter 170

310 Chapters

제161화

서정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지만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담담하게 물었다.“원인이 뭔데?”바로 이때 심지경이 때마침 임지민 병문안 선물을 바리바리 사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심지경을 본 한수현이 말을 하려다가 멈추자 서정혁이 개의치 않은 듯 말했다.“심지경은 남이 아니니 그냥 말해.”“네...”한수현이 낮은 목소리로 안타까운 듯 말을 이었다.“유산한 이유는 한 달 전, 연구개발팀에서 발생한 전기 화재 시 가장 먼저 뛰어들어 칩을 구했기 때문입니다.”“뭐라고?”날카로운 눈빛을 내뿜던 서정혁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숨이 막힌 듯 가슴을 들썩였다.심지경 역시 많이 놀란 듯 멈칫했다.이 일에 대해 심지경도 들은 적은 있지만 서정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낸 뒤 선행만 하고 이름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강시원일 줄은 몰랐다.한수현은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사모님이 칩을 구한 후 짙은 연기에 질식하여 기절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팔에 찰과상이 많았고요. 아이는 그때 없어진 것입니다.”온몸을 덜덜 떤 서정혁은 손바닥에도 식은땀이 흥건히 배었다.그러다가 문득 서도훈이 천식으로 입원했을 때 강시원과 임지민이 복도에서 말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임지민이 강시원의 팔을 잡자 강시원은 갑자기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히스테리를 부리며 임지민을 밀쳐냈다.그때 다친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팔의 상처가 분명 매우 아팠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또 강시원이 전화를 걸어 몸이 불편하다며 돌아오라고 했던 날이 떠올랐다.그때 서정혁은 서도훈, 임지민과 함께 외국에서 뮤지컬을 감상하고 있었다.그러니까 서정혁이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아내 강시원은 혼자 병원에 누워 아이를 잃고 화재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서정혁은 저도 모르게 붉어진 눈을 감았다. 주먹을 꽉 쥔 손은 저도 모르게 떨리기까지 했다.“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때 서 대표님께서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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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분노하며 성수연을 원망하던 심지경은 어느새 은근히 걱정하기 시작했다.딱 하루가 지났지만 그사이 성수연은 강시원과 함께 있지도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으며 배터리도 꺼놓은 상태였다. 예전에 아무리 놀아도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평소 자신의 오만방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원래부터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심지경은 서정혁과 친구가 된 후 경시에서 더욱 활개 치며 다녔다.설마 그에게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복수하기 위해 성수연을 데려간 건 아닐까? 그래서 인신매매로 팔려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비서가 갑자기 외쳤다.“대표님! 성수연 씨가 돌아왔습니다.”심지경은 잔뜩 어두워진 안색으로 복도 반대편을 바라보았다.어젯밤 심지경이 사준 값비싼 빨간색 드레스가 아닌 평소 일할 때 입던 검은색 정장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성수연은 망설이며 그들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어젯밤, 어디 갔었어?”심지경은 성수연의 하얀 손목을 단번에 잡아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눈빛이 잔뜩 어둡고 위협적이었지만 서정혁이 곁에 있어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냉소를 지은 성수연은 심지경의 손을 힘껏 떨쳐냈다. 힘이 어찌나 센지 건장한 남자의 몸마저 비틀거렸다.그러더니 새빨개진 눈을 부릅뜨고 전력을 다해 서정혁의 뺨을 때렸다.찰싹하는 맑은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리는 듯했다.몸을 휘청한 서정혁은 이내 뺨이 부어오르더니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났다.한수현이 당황한 얼굴로 다가왔다.“서 대표님! 괜찮으세요?”“성수연! 미쳤어?!”심지경이 뒤에서 성수연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코끝이 눈처럼 하얀 목에 닿자 자극적인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어제 하룻밤 내내 돌아오지 않더니 이제 보니 술 마시러 나갔던 거였어? 젠장! 술 마시고 결근하고 내 친구까지 때려? 죽고 싶어 환장했어?”“그래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 능력 있으면 어디 한번 죽여 보던가요!”성수연은 눈에 핏발이 선 채 목청이 찢어질 듯 외쳤다.그 모습에 그대로 얼어붙은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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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코웃음을 치며 냉소를 터뜨린 서정혁은 성수연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심지경이 피식 비웃었다,“정혁이가 강시원을 모른다고? 아이가 다섯 살인데 뭘 모르겠어?”“서정혁, 너는 임지민이 네 목숨을 구해 준 것만 알잖아. 하지만 지금도 그건 모르겠지...”분노하며 포효하는 성수연은 증오가 예리한 칼날로 변해 당장이라도 새빨간 눈에서 곧 튀어나올 것 같았다,“시원이가 서도훈을 낳기 위해 분만실에서 죽을 뻔했다고!”순간 공기마저 순식간에 굳어버린 듯 분위기가 싸늘해졌다.한수현은 완전히 멍해졌고 평소에는 심드렁하던 심지경도 지금은 웃을 수 없었다.“무슨 말이야... 분만실에서 죽을 뻔했다는 게?”순간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으로 변한 서정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성수연을 응시했다.성수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 넌 그냥 X발 놈이야.”“말 똑똑히 해봐, 분만실에서 죽을 뻔했다는 게 무슨 말이야!”눈빛이 극도로 어두워진 서정혁은 큰 손으로 성수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손에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등의 핏줄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말해!”성수연의 두 발이 공중에 떠오를 것 같은 모습에 심지경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급히 앞으로 나서서 서정혁의 탄탄한 팔을 잡은 뒤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정혁아. 일단 진정 좀 해봐. 일단 이 손 놓고 말해. 그래야 성수연도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지!”하지만 서정혁은 성수연의 멱살을 놓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5년 전, 시원이 난산을 겪었어. 그때 출혈도 아주 심했고. 위급한 상황이라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지...”목이 멘 성수연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아이 낳는 게 여자들의 인생에서 제일 힘든 순간인데 시원이 곁에 아무도 없었어! 엄마도 일찍 돌아가고 아빠는 계모 치맛자락에 놀아나 계부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었지. 시원이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 눈에 임지민 사생아밖에 없었다고! 시원이도 자기 친자식인데 전혀 딸 취급도 하지 않았어! 시원이에게 말동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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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성수연은 아이처럼 울었다.“그때 시원이가 그런 상황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기어서라도 시원이 곁으로 갔을 거야!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니... 시원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한수현이 마음을 굳게 먹고 한마디 했다.“성수연 씨, 서 대표님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그때 대표님도 속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이 그런 상황인지 전혀 몰랐습니다...”“개소리하지 마! 서정혁만 아니었다면 우리 시원이 지금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잘살고 있었어. 서정혁이 우리 시원이를 망친 거라고!”성수연은 눈물에 젖은 손가락으로 서정혁의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을 거세게 찔렀다.“우리 시원이가 한 게 영혼결혼식이야? 왜 남편이 필요할 때 계속 곁에 없냐고! 이제 시원이 곁에 시원이를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생기니까 너는 오히려 또 나와서 말썽을 부려! 시원이가 잘 되는 거 보면 막 거부반응이 일어나고 그래?”저린 손가락을 꽉 움켜쥔 서정혁은 온몸의 피가 심장으로 몰려와 오장육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서정혁은 강시원에게 정말 무관심했다.하지만 유재윤이 세심하게 강시원을 돌보는 것을 보자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심지어 강시원의 곁에 아무도 없기를, 평생 연약한 모습으로 오직 자신에게만 의지하고 기대기를 바랐다.“내가 빚진 것과 강시원 혼인 내 불륜은 별개야!”쉰 목소리로 한마디 한 서정혁은 성큼성큼 임지민의 병실로 걸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마치 조금만 그곳에 더 머물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날 것만 같았다.“젠장! 서정혁! 저 개자식! 음...!”성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지경이 뒤에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왼팔로 성수연의 허리를 감싸 안은 뒤 오른손으로 그녀의 입을 꽉 틀어막고는 억지로 비상계단으로 끌고 들어갔다.어둠 속 성수연은 여전히 남자의 품 안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심지경은 성수연의 목을 꽉 움켜쥔 뒤 차가운 벽에 눌렀다. 그러고는 자기 입술로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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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유재윤은 골절이나 인대 손상이 없었기에 병원에서 3일 만에 퇴원하고 집에서 몸조리를 했다.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경시에 친척이 없어 강시원이 여동생처럼 3일 동안 점심과 저녁을 가져다주며 돌봐줬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번 직접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곤 했다.게다가 강시원은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유재윤이 서정혁에게 맞은 이유가 강시원 때문이었기에...새 옷이 서정혁 때문에 망가졌기에 시원은 유재윤이 혹시나 마음속으로 불편해할까 봐 더 비싼 옷 한 벌을 사서 배달원을 통해 재윤 법률 사무소로 보냈다.지금 가지고 있는 검은색 바람막이도 기회를 봐서 배기훈에게 줄 예정이었다.그날 밤 작업실에 앉아 설민환이 보낸 최신 ‘쏘울 케이지’ 빅데이터 모델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일단 학문에 빠지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온전히 몰입하는 타입이야 책상 위에 놓았던 휴대전화가 여러 번 울린 후에야 겨우 벨 소리를 들었다.아들 서도훈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것을 본 강시원은 은테 안경을 벗고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받았다.“도훈아, 너...”“어떻게 그럴 수 있어?”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와 고막을 찌르자 강시원은 눈썹을 찌푸렸다.아이는 ‘엄마’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질책하는 어조로 툭 던졌다.같이 살면서 가르쳐준 부드러움, 교양, 예의는 밥 말아 먹어 버린 듯했다. 심지어 전화기 너머의 아이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내가 뭘 어쨌는데?”차갑고 담담한 강시원의 목소리에 더 화가 난 서도훈은 소리를 질렀다.“내가 지민 이모에게 준 생일 선물, 그 수정 팔찌, 왜 버린 거야? 그거 내가 지민 이모에게 준 건데 무슨 자격으로 함부로 버리냐고!”임지민이 서정혁을 자기 손아귀에서 가지고 노는 건 그렇다 쳐도 어린아이까지 이렇게 길들였을 줄은 몰랐다.“아, 그 일 때문에 전화한 거였어?”다시 안경을 쓴 강시원은 웃을 듯 말 듯 하는 어조로 말했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경찰에나 잡아가라고 신고라도 할 거야?”화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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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그래야 서정혁이 더욱 자신을 동정하고 강시원에 대한 원망도 깊어질 것이라 여겼다.“엄마, 오늘은 오빠도 안 오실 것 같아요... 그냥 오늘 밤에 퇴원할게요.”침대 머리에 기댄 채 박영주가 끓여 준 탕을 마시던 임지민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자 박영주가 물었다.“지난 며칠 동안 서 대표가 너를 보러 오지 않았니?”임지민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전화가 딱 한 번 와서 내 상태 물어봤어요.”“지민아, 서 대표한테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너희 사이가 예전만큼 친하지 않은 것 같네?”박영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예전 같으면 네가 강시원 그년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 때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네 곁을 지켜주었을 텐데. 이번에는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혹시 싸웠니?”“제가 어떻게 감히 싸우겠어요. 엄마도 얘기했잖아요. 그때 아빠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상냥하게 대하고 인내심 있게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아빠 마음이 서서히 녹은 거라고 했잖아요.”임지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을 이었다.“엄마가 말한 대로 그대로 했어요.”박영주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야?”“사흘 전에 정혁 오빠가 강시원의 절친과 문밖에서 크게 싸우는 걸 얼핏 들었어요. 싸운 후 사람이 이상해진 것처럼 멍하니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그날 나 혼자 병원에 내버려 두고 가버렸어요.”“강시원 절친? 그건 또 어디서 굴러들어 온 돌이야!”박영주가 눈썹을 찌푸렸다.“왜 싸웠는데?”임지민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자세한 건 나도 잘 못 들었어요. 그냥 희미하게 들었는데 뭐였더라... 난산... 모자 안전... 강시원이 그때 아이 낳은 일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어요.”박영주의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임지민은 여전히 경멸하는 듯한 무시하는 태도로 말했다.“정말 이해가 안 돼요. 5년이 지난 지금 일을 다시 꺼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이런 말을 하면 정혁 오빠가 그년을 불쌍히 여길 거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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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아이고. 사모님, 아들이 엄마 보러 왔나 봐요! 이번 갤러리 전시회 성공을 축하하러 온 거네요!”서정혁이 나타나자 재벌가 사모님들이 하나같이 눈빛을 반짝이며 김설연에게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훌륭한 아들을 둬서 너무 부럽네요, 경시 젊은 세대 중 최고예요!”“그러게요. 아들이 저렇게 잘생기고 뛰어난데 그렇게나 일찍 결혼시키시다니... 정말 아깝네요! 저 같았으면 아까워서 절대 못 시켰을 것 같아요. 신중히 후대까지 생각하며 골랐을 것 같아요.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인기가 있잖아요. 성숙하고 듬직해 보이니까 여자들이 여전히 줄을 서서 따라다니죠!”재벌가 사모님들이 그 말에 하나둘 찬성했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서정혁이 온몸으로 차가운 아우라를 내뿜는 걸 느낌 김설연은 서정혁을 힐끗 본 뒤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정말 내 마음에 딱 맞는 말을 하네요. 사실 나는 아직도 우리 아들 너무 일찍 결혼시킨 걸 후회하고 있어요.”“아이고...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헤어지라고 하세요. 더 착한 며느리를 보면 되잖아요!”“맞아요. 남자가 이혼하는 게 뭐 대수라고요. 이혼은 여자에게만 치명타예요. 이혼하면 슈퍼 할인 과일이나 다름없죠. 아이를 가진 적이 있으면 할인해도 안 사는 썩은 과일이나 다름없어요. 어? 잠깐만. 서 대표님 아직 이혼 안 했나요? 우리는 진작 이혼한 줄 알았는데...”서정혁은 음산한 얼굴로 자기 엄마를 노려보며 재벌가 사모님들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오늘 전시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가세요.”멈칫한 재벌가 사모님들은 서로만 멀뚱멀뚱 쳐다봤다.‘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끝났다고?’김설연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도 순식간에 굳었다.“정혁아, 이게 무슨 짓이냐. 손님들이 다 보는 앞에서.”서정혁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마찬가지로 화가 난 김설연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무슨 말이든 전시회 끝나고 하자.”날카로운 눈빛을 내뿜는 서정혁은 눈빛에 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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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비취 염주 팔찌를 손으로 굴리는 김설연은 냉담하고 무정한 눈빛을 내뿜으며 말했다.“그때 어떻게 됐든 서도훈을 무사히 낳았고 고비도 넘겼으니 모든 과정을 네게 말해 줄 필요는 없잖아. 너는 억지로 강시원과 결혼한 거야,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 일인데 말하나 마나 무슨 차이인데? 너는 그때 당장 돌아올 수도 없었어. 설사 돌아올 수 있었다 해도 네가 뭘 할 수 있었는데? 괜히 일을 더 번거롭게 만들 뿐이잖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잖아.”“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요? 어머니 눈에 강시원 목숨이 그렇게나 쓸모없어요?”머릿속이 윙윙거리며 터질 듯 아픈 느낌에 서정혁은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시원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원이 목숨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지민의 목숨이 시원이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시원이와 결혼한 게 내 뜻이 아니었다 해도 시원이가 호적상 제 아내인 이상 서씨 가무도 어머니도 절대 소홀히 대해서는 안 돼요. 함부로 괴롭히면 안 된다고요.”넓은 방 안에는 서정혁의 메아리뿐이었다.“하... 하하...!”염주를 돌리던 김설연은 갑자기 손을 멈추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정혁아,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갑자기 시원이에 대한 사랑이라도 생긴 거야? 설마 정말로 시원이에게 마음이 흔들린 거야?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한 번이라도 시원이를 본 적이 있어? 지금 신경 써봤자 소용없다는 거 알잖아?”‘마음이 흔들렸냐고?’이 한마디를 떠올린 순간 서정혁은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강시원처럼 평범하고 재미도 없으며 성질이 더러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강시원과의 결혼 생활 속에서 늘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하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대 열세에 처할 일이 없다고 여겼으며 불리한 위치에 놓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김설연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한마디만 물으마. 강시원과 임지민이 같은 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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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눈빛이 차가워진 임지민은 입술이 핏기가 없을 정도로 꽉 깨물었다.서정혁 곁을 항상 지켰기에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것만 빼면 이 남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그날 아무리 붙잡아도 서정혁이 곁에 남아주지 않았을 때 자신을 대하는 남자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5년 전, 서정혁은 강시원의 출산 예정일이 그 주인 것을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임지민을 스위스로 데려갔다.강렬한 사랑이 지금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그러니 마음이 어찌 조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지민아, 남자가 여자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동정심을 얕보면 안 돼. 그걸 적절하게 이용하면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꽉 잡을 수 있어. 남자가 마음속으로 그 사랑을 깊이 새기면 평생 잊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단다.”박영주는 두 손으로 임지민의 어깨를 붙잡고 힘껏 흔들었다.“방법을 생각해야 해, 반드시 완전히 이혼하게 해야 한다고. 다시는 합칠 가능성이 없도록!”“하지만 감정이라는 걸 제가 어떻게 조종할 수 있겠어요?”눈빛이 어두워진 임지민은 눈빛에 살기가 스쳤다.“강시원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앞으로 편히 지낼 수 있잖아요!”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박영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솔직히 말해 강시원을 제거하는 것은 최악의 수단이다.서정혁은 임지민에게 분명히 호감이 있었고 강시원과 이혼할 예정이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강시원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손에 피를 묻힌 적이 있었기에 자기 딸이 똑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딸이 화려하면서도 아무런 후회 없이 재벌가에 시집가 탄탄한 인생을 살길 바랐다....서정혁과 김설연은 몇 걸음 떨어진 채 서 있었지만 마치 넘기 힘든 큰 구렁텅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듯했다.“제가 강시원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진실을 숨기는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 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요.”서정혁은 가늘고 긴 눈으로 짙은 분노를 가득 담은 채 위압적인 시선으로 김설연을 바라봤다.“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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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그러니 큰 사모님께 너무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때 일은 고의가 아니니...”“고의가 아니라고요?”한 글자 한 글자 이를 갈며 내뱉은 서정혁은 씩 웃음을 터뜨리더니 한수현 손에서 서류 뭉치를 빼앗아 지동훈 얼굴을 향해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고는 김설연을 향해 말했다.“시원이 출산 전에 제가 어머니에게 잘 돌봐달라고 당부했었던 걸로 아는데 어머니는 제 말 들어줬나요?”날카로운 종이에 긁힌 지동훈은 뺨에 피가 났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이미 사람 시켜 조사해 봤어요. 시원에게 최악의 병실을 잡아주고 경험이 부족한 산부인과 의사를 붙였으며 출산하는 내내 친구들이 면회도 못 하게 했다죠? 도대체 무슨 심보로 그런 거예요?”정장을 입고 있는 서정혁은 소매 안 팔뚝 근육마저 긴장한 상태였고 손등 핏줄도 불거져 나왔다.“설마 강시원을 분만실에서 몰래 죽이려 했던 것은 아니었나요?”경찰이 범인을 심문하는 듯한 엄숙한 태도에 김설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항의했다.“서정혁... 나는 네 엄마야. 살인범이 아니라! 강시원 때문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네, 바로 그 강시원 때문에요.”서정혁은 가늘고 긴 눈을 번쩍 떴다.“다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어요. 하물며 시원이는 제 아내예요. 제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며느리를 해쳐서는 안 돼요.”어안이 벙벙해진 김설연은 멍하니 굳은 채 앉아 있었다.“강시원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아 모자 모두 건강하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기셔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단순히 조기 퇴직하시게 하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몸을 돌려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남자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마음 놓으세요. 절대로 강시원과 이혼하지 않을 거니까.”서정혁과 한수현이 떠나자 화려한 방은 적막에 빠졌다.“제기랄!”지동훈만이 자리에 있었기에 김설연은 재벌가 사모님의 체면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차 테이블을 뒤엎었다. 값비싼 고급 찻잔이 바닥에 부서지며 바닥에 어지러이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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