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Kapitel 281 – Kapitel 290

775 Kapitel

제281화

‘양주화’는 강지연의 삶에 깊이 새겨진 선율이었다.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각인된 절대 지워지지 않는 음악,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자 그녀의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마치 잠들어 있던 모든 세포가 동시에 깨어나 음악을 따라 숨 쉬고 춤추기 시작하는 듯했다.강지연은 장시범이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었다.다행히도 공연의 흐름상 이미 연습복 차림이었고 무용화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그녀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무대 위에 올라섰다.발바닥이 무대에 닿는 순간 강지연은 마치 어떤 힘이 발끝에서 솟구쳐 올라 순식간에 온몸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장시범이 그녀를 들어 올리자 강지연은 나비가 되어 오 년 전 액정 화면 속에서 춤추던 자신의 모습과 나란히 날아오르며 함께 무대를 가로질렀다.그 순간 객석에서는 천둥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그 박수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따뜻한 배려와 응원이라는 것을 강지연은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무대가 오 년 전 전성기 시절과는 많이 달랐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춤은 무리라는 잔인한 말 대신 그녀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강지연과 장시범이 화려한 피날레 포즈를 완성하는 순간, 음악은 경쾌한 ‘생일 축하’ 노래로 바뀌었다.그러자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그때 윤해정이 어디선가 커다란 삼단 케이크를 밀고 나오더니 그녀에게 소원을 빌라고 했다.촛불과 사람들의 미소에 둘러싸인 채 강지연은 두 손을 모르고 눈을 감았다.그리고 조용히 세 가지 소원을 빌었다.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시길.모든 선생님과 무용단 동료들이 늘 평안하길.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진정으로 작은 제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강지연이 눈을 뜨는 순간 환호성은 다시 한번 극장을 가득 채웠다.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케이크 위로 칼을 내리눌렀다.투어에 함께한 동료들도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관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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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강지연이 선물 봉투를 열자 안에는 납작한 정사각형 박스가 들어 있었다.예전에는 시계를 한 번에 열 개씩 보내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시계가 아니었다.박스를 여는 순간 에메랄드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다이아몬드로 촘촘히 둘러싸인 큼직한 에메랄드, 그 중심에는 유난히 큰 펜던트가 달려있었고 한눈에 봐도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듯한 물건이었다.주변에 모여 있던 투어단 여자아이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리며 누가 보낸 선물인지 저마다 추측하기 시작했다.“와, 너무 예뻐요.”“지연 선배님, 안에 카드 없어요? 그분이 분명 카드가 들어 있다고 했는데... 보면 누군지 바로 알 거라고 하셨거든요.”보조 댄서는 혹시 자신이 카드를 떨어뜨린 건 아닐지 불안해하며 말을 덧붙였다.“제가 다시 내려가서 찾아볼게요.”“괜찮아.”강지연은 그녀를 말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처음부터 카드 같은 건 없었을 거야.”“그럼... 누군지는 아세요?”보조 댄서는 끝까지 책임감을 놓지 못한 표정이었다.“응, 알아. 고마워.”강지연은 선물을 조심스레 챙기며 추억을 떠올렸다.춤추는 걸 늘 못마땅해하던 그는 원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수능을 앞두고 지원서를 쓰던 시절, 그는 그녀에게 어디로 지원했냐는 물음을 던졌다.그때의 강지연은 막 싹트기 시작한 풋풋한 호감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포기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기에 당연히 최고의 무용 예술 학교를 선택했다.하지만 그는 아쉬운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만 끄덕이며 예술을 하는 애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을 했었다.그 시절 많은 사람이 예술은 공부를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길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춤을 사랑했다.열여덟 살의 강지연은 이미 십몇 년을 춤과 함께 살아왔고 인생의 대부분이 무용이었다.예술생으로서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업 서열에서 최하층에 자리 잡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그의 태도에 실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놀랍지도 않았다.어차피 각자의 길로 흩어질 나이였고 그때의 설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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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강지연은 순회공연단이 극장에서 자신의 생일을 위해 준비해 준 순간들을 홍순자에게 차근차근 들려주었다.홍순자는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어머나, 삼단이나 되는 대형 케이크라니! 우리 지연이는 참 복 많은 아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듬뿍 받다니.”“네, 할머니. 저 지금 정말 너무 행복해요.”그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고 눈빛에서 번져 나오는 미소가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홍순자는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 건강은 괜찮으세요? 식사는 꼭 잘 챙겨 드시고요.”“내 걱정은 하지도 말아. 거긴 이제 시간이 늦었을 테니 얼른 쉬어라.”화면 속 홍순자의 얼굴빛이 한결 밝아 보이자 강지연도 그제야 시름을 내려놓은 듯 말했다.“네,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또 연락드릴게요.”영상 통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뒤였다.그녀의 생일은 그렇게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 지나갔다.너무도 강렬한 밤이라 침대에 누운 뒤에도 강지연은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오늘 밤 그녀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췄고 진정한 무대에 다시 서게 되었다.단원 중 많은 이들이 오늘 밤의 생일 이벤트를 사진으로 담았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하나둘씩 그녀에게 사진을 보내왔다.강지연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입가에 걸린 미소를 좀처럼 거두지 못했다.그때 최아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느낌표로 가득 찬 문자는 보기만 해도 그녀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강지연! 너 다리 회복한 거야? 다시 춤출 수 있게 된 거야!]곧이어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장시범 없이 그녀 혼자 무대 위에서 춤추는 순간이 담긴 사진이었다.[이 사진은 어디서 구한 거야?]강지연이 곧바로 되물었다.최아현은 장난스러운 이모티콘과 함께 캡처 화면 한 장을 보내왔다.온하준의 인스타였다.그의 인스타에는 강지연이 춤추던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짧은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올린 지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고등학교 동창들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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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최아현은 곧장 온하준의 인스타 전체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보내왔다.피드에는 아무런 설정도 설명도 없이 정말로 깔끔하게 그 게시물 하나만 덩그러니 올라가 있었다.화면을 들여다보던 강지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유일한 게 아니라 예전에 올렸던 것들을 다 지워버린 거겠지.’하지만 그건 결코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라 생각하며 그녀는 슬쩍 화제를 피했다.최아현 역시 그녀가 더 이상 온하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생일 축하해! 난 너만 행복하다면 나머지는 다 없어도 돼.]그제야 강지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맙다는 이모티콘과 꼭 안아 주는 이모티콘을 보내주었다.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아침, 그들 일행은 배를 타고 수성을 떠나야 했다.부두에서는 모두가 짐을 옮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강지연은 무거운 짐을 들 수 없어 이동할 때마다 가벼운 소품을 옮기는 일을 도왔고 자신의 짐 때문에 단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그녀가 자신의 캐리어를 밀며 배에 오르려던 순간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낚아챘다.순간 도둑이라고 생각한 강지연이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고개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온하준이었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캐리어를 들어 배 위 짐 보관 구역까지 직접 옮겨 주었다.그때 누군가 강지연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전날 밤 선물 봉투를 전해 주었던 그 보조 댄서였다.보조 댄서는 온하준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신비로운 어조로 속삭였다.“저 사람이에요. 어제 저한테 선물 전해 달라고 한 사람!”강지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 고마워.”“에이, 별말씀을요! 저 먼저 탈게요.”보조 댄서는 환하게 웃으며 캐리어를 끌고 먼저 배에 올랐다.마침 몸을 돌리던 온하준과 마주친 그녀는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캐리어를 들어 배에 실어 주었다.수성의 여름날 아침은 바람 한 점 없었고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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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온하준의 한마디는 마치 한 줄기 산들바람처럼 무심히 강지연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가 이미 멀리 떠난 뒤였고 뒷모습만 희미하게 보이더니 이내 수성의 분주한 인파 속으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지연 선배.”이미 배에 탄 장시범이 그녀를 불렀다.“응, 가고 있어.”강지연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이번만큼은 온하준도 그녀의 선택을 이해했고 예전처럼 평생 책임지겠다는 말로 그녀를 붙잡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배에 올라 순회공연단과 함께 다음 도시로 향할 준비를 했다.온하준이 멀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지연은 배에 오른 뒤에야 알았다.그는 근처 호텔 삼 층 발코니에 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배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온하준의 등 뒤로 이하나가 다가와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하준아. 강지연이 떠났네.”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준아, 너에겐 아직 우리가 있잖아.”이하나는 그의 곁에 나란히 서며 말을 이었다.“하준아, 나 이제 다시는 네 곁을 떠나지 않을게. 정말이야. 우리는 영원히 네 옆에 있을 거야.”수성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배가 오가고 있었고 그 배는 어느새 그 사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수면 위에 떠다니는 똑같이 생긴 배들 사이에서 어느 것이 그녀가 탄 배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온하준은 고개를 숙인 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사실 기뻐해야 맞는 거지. 강지연은 자기 인생을 찾았잖아. 그게 내가 바라던 거 아니었나?”“맞아. 하준아, 설마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평생이라...”온하준의 시선은 아주 먼 곳으로 향했다.그 순간 이하나의 눈빛도 어둡게 가라앉았지만 이내 애써 웃으며 말했다.“하준아, 내가 보기엔 강지연은 너무 만족할 줄 몰라. 너 같은 남편이 돈 걱정 없이 평생을 책임져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어떤 여자라도 널 보물처럼 아끼며 살았을 거야.”그녀의 말에 온하준은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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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홍순자는 화면 속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을 보자 놀람과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나, 너희 둘이 만났구나!”“네, 할머니. 고모가 일부러 저 보러 와 주셨어요.”강지연은 홍순자와 강희라 앞에만 서면 마치 다시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희라야, 지연이 좀 잘 봐주렴. 살이 빠지진 않았니? 맨날 괜찮다고 하길래 이 녀석이 날 속이나 싶어서 그래.”홍순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다리가 좀 불편해 보이고 조금 마르긴 했지만 생기가 넘치는 그녀의 모습을 이미 확인한 강희라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지연이 잘 지내고 있어요. 마른 게 마음에 걸리시면 한 달만 더 기다려 보세요. 지연이 여기서 학교 다닐 때면 엄마도 모시고 올게요. 그럼 우리 모녀가 같이 얘 살 좀 찌워줘요.”그 말에 홍순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네가? 네가 먹인다고 살이 붙겠니? 내가 가면 말이야, 두 마리 새끼 돼지를 키우는 셈이겠지!”강희라도 웃으며 맞받아쳤다.“엄마, 나도 이제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돼지 타령이에요.”“왜? 네가 몇 살이든 다 내 새끼지.”“맞아요! 고모가 여든이 돼도 할머니 눈엔 여전히 보물이잖아요.”강지연이 끼어들자 홍순자는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이거 부담인데? 그럼 내가 백스무 살까지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네,할머니. 백스무 살까지 사셔야죠!”“엄마, 백스무 살까지 사셔야죠!”강지연과 강희라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자 홍순자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세 사람은 한참을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눴다.한 달만 지나면 강지연이 홍순자를 모시고 강희라가 있는 도시로 가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세 사람은 함께 살게 될 날을 기대하며 설렘에 젖어 있었다.그동안 나이 때문에 외국행을 내심 걱정하던 홍순자조차 이제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순회공연단은 이 도시에서 사흘간 공연을 해야 했기에 강지연은 나흘을 머물 수 있었다.그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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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강희라에게서는 어떤 브랜드의 향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은은하고 포근한 향기가 풍겼다.강지연은 그녀의 품에 안겨 있으니 오히려 울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그 품이 어린 시절 그녀가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려 왔던 엄마의 품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친엄마에게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온기를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강희라에게서 느끼고 있었다.강지연은 불과 며칠 함께했을 뿐인데도 벌써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하지만 다행히도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고작 한 달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헤어지는 날, 강시우는 순회공연단 전원에게 선물을 건넸다.말 그대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원이었다.그리고 자신이 강지연의 오빠라며 그동안 동생을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였다.윤해정이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강지연에게 속삭였다.“와, 선배님... 오빠분 스케일이 진짜 장난 아니네요. 저희한테 주신 선물이 다 비싼 거예요. 인원이 몇 명인데 이걸 전부 준비하다니요!”사실 강지연은 아직까지도 강시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전날은 너무 급하게 만난 터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예전에 강희라가 한 번 강시우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때는 강지연이 태어나기 전이었고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고 했다.그 이후로 강희라는 다시는 그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지연아, 나랑 네 고모는 먼저 갈게. 최종 목적지는 내가 직접 데리러 갈 테니까 또 연락하자.”강시우가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오르며 말했다.“네, 오빠 잘 가요. 고모도 조심히 가세요.”강지연은 손을 흔들어 그들을 배웅한 뒤, 자신의 짐을 챙겨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어느새 순회공연 일정도 절반을 훌쩍 넘겼다.순회공연단은 이후로도 세 나라를 더 옮겨 다녔다.그동안 강지연의 하루는 거의 비슷하게 흘러갔다.재활 치료를 하고 공연단의 후방 업무를 도우며 매일같이 홍순자와 영상 통화를 했다.그녀는 매일 홍순자의 얼굴을 직접 보고 잘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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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강지연은 강시우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홍순자가 머물던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장시범과 조민서도 같은 택시에 함께 올랐다.“지연 선배,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금방 도착해요.”조민서가 불안해 보이는 그녀를 다정하게 달랬다.장시범도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어제도 제 동생이 할머니 뵈러 갔었잖아요.”강지연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분명 어제 장시연이 홍순자를 찾아갔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도 영상 통화를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한 시간쯤 지나 드디어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강지연은 거의 뛰다시피 계단을 올라 홍순자가 머물던 집으로 향했고 문을 여는 순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홍순자가 집에 없었던 것이다.더 충격적인 건 집 안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그 광경을 마주한 순간 네 사람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잠시의 정적 뒤 그들은 본능적으로 흩어져 움직이기 시작했다.조민서는 관리사무소로 달려갔고 강시우는 강지연과 함께 아파트 단지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장시범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뒤 상황 공유를 위한 작은 단톡방을 만들었다.강지연이 국내 번호로 된 휴대전화를 켜자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순식간에 쏟아졌다.하지만 그녀는 확인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홍순자에게 영상 통화 요청을 보냈고 연결되지 않자 바로 번호를 눌렀다.그러나 홍순자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는 상태였다.약 삼십 분쯤 지났을 때, 조민서가 관리사무소에서 확보한 CCTV 영상을 들고 돌아왔다.그동안 강지연과 강시우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CCTV 영상 속 화면에는 홍순자가 세 사람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강지연의 부모, 그리고 강태하였다.“이 짐승 같은 인간들!”강지연은 휴대전화를 꽉 움켜쥔 채 이를 악물었다.“선배님, 우리 일단 경찰서로 가요. 이 영상 가지고 신고부터 해요.”조민서가 눈물에 흠뻑 젖은 강지연을 부축하며 말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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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도착하자마자 강지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구치소로 향했다.그녀는 자신이 강성호의 딸이라는 사실만 밝히고 면회가 가능한지 물었다.예상대로 구치소 경찰은 그녀에게 강성호는 이미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말했다.강지연은 초조함을 억누르며 이어 물었다.“죄송한데... 제가 방금 해외에서 돌아와서요. 아버지 보석은 누가 처리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변호사였다.집에서 강성호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고 보석금까지 모두 치렀다는 것이다.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빠르게 맞춰졌다.만약 집에 그만한 돈이 있었다면, 혹은 유서원이나 강태하가 기꺼이 나섰다면 강성호는 진작 풀려났을 것이다.그동안 보석 신청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돈이 없었거나 유서원의 허락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번에는 누군가가 대신 그 돈을 내줬다는 뜻이었다.“누굴 찾아가야 하는지 알 것 같아.”강지연은 구치소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힘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온하준?”장시범이 짐작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 기록에 찍힌 부재중 전화들 사이에서 번호를 찾아 바로 눌렀다.통화가 연결되자 전화기 너머로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지연? 돌아온 거야? 왜 항공편 안 알려줬어? 내가 마중 나갔을 텐데! 지금 어디야? 바로 갈게.”“할머니는?”강지연은 그의 질문을 모두 무시한 채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할머니?”온하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할머니를 숨겨놓고 나조차도 뵙지 못하게 했잖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할머니가 지금 어디 계시는지만 말해!”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강지연은 전화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온하준은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며 다급하게 물었다.“강지연, 무슨 일이야? 너 왜 그래? 할머니가 왜?”“할머니가 사라지셨어! 너 대체 할머니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 당장 말해!”강지연은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두려움과 걱정이 마음을 옥죄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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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장시범은 곁에서 두 남매를 바라보며 지금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강시우가 그녀를 업고 조용히 위로해 주는 모습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강지연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마음껏 울어본 적이 없었다.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당연히 부모 앞에서는 울 권리조차 없었고 홍순자 앞에서는 혹시나 걱정을 끼칠까 봐 더더욱 눈물을 삼켜야 했다.온하준과 5년간의 결혼생활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그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 또 감정적인 부담을 주게 될지 두려워 오직 그의 행복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강지연은 겉으로 보기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듯해 보였다.그녀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경찰에게 차근차근 설명했고 홍순자가 해성으로 돌아갔다는 것과 자신의 부모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고 말했다.다만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함께 이동한 상황이라 신고가 접수되지 않을지 걱정되어 현재 부모와 동생과는 연락도 닿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경찰은 그녀를 위해 항공편 기록을 확인했고 홍순자를 포함한 네 사람이 모두 이미 해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강지연은 네 사람의 연락처를 하나하나 적어 경찰에게 넘겼고 그 자리에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결국 경찰은 신고를 접수하고 홍순자의 행방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하며 집에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생긴 강지연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함께 끝까지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경찰서 밖으로 나온 그녀는 여전히 택시를 타려 했다.그때 길옆 주차 공간에 한 대의 차가 서 있었다.그들이 경찰서에서 나오자 한 중년 남성이 차에서 내리더니 말했다.“로시 강 씨, 얼른 타세요.”강지연은 로시 강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강시우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그는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설명했다.“말하면 좀 길어. 나중에 천천히 알려줄게. 강시우도 나지만 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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