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421 - Chapter 430

432 Chapters

제421화

권승준이 불쑥 손을 잡자 허아연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심장이 저도 모르게 점점 빨리 뛰었다.꼼짝 않고 권승준을 보던 허아연은 조금 긴장됐지만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권승준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다만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뿐이다.주현우와 한 번 결혼한 적은 있지만 부부로서 관계를 맺은 적도 없고 몇 번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것도 다 주현우가 먼저 다가온 것이었다.은근 긴장한 허아연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자신을 쳐다보는 허아연의 눈빛에 권승준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웃던 권승준은 허아연의 손을 잡은 채 몸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여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숨을 죽이고 권승준을 바라보던 허아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그리고…… 부드럽게 바라볼 뿐이었다.그 순간,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거부하지도 않고 밀어내지도 않는 허아연 덕분에 권승준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승진했을 때도 이 정도로 기쁘지는 않았다.허아연의 손을 잡은 채 점점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가가던 권승준의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간호사가 성큼성큼 들어와 말했다."안시연 씨, 체온 좀 재볼게요."병상에 있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동시에 멀찍이 떨어져서 거리를 유지하고 바르게 앉았다.병상 위, 허아연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너무도 민망했다.병실 문 앞, 약간 통통한 중년 간호사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이 병실에서 애틋한 순간을 보내며 데이트를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럴 줄 알았다면 무조건 노크를 하든지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분위기를 깬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병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안시연 씨, 체온 좀 재볼게요."허아연은 몸을 바로 세우고 간호사가 건넨 체온계를 받아 체온을 쟀다.이내 병실 안은 조용해졌고 잠시 동안 어색함이 감돌았다.제일 민망한 건 역시 간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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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자리에서 일어난 권승준은 먼저 다정하게 허아연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안 선생님, 내일 다시 올게요."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래요."옆에서 두 사람이 "안 선생님", "권 비서실장님" 이라고 호칭하는 걸 지켜보던 안서준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그래도 나름 색다르긴 했다.권승준을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온 안서준이 말했다."권승준 사람은 괜찮더라. 이번 안목은 지난번보다 낫네."안서준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답했다."사람은 겪어봐야 성장하는 거잖아요."남매는 한참 얘기를 나눴고 안서준은 병실에서 잠시 더 머물다 호텔로 돌아갔다.안서준이 병실을 나가자마자 베개 옆에 놓아둔 허아연의 휴대폰이 울렸다.강성시에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였다.발신 번호를 확인한 허아연은 곧바로 전화를 받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허아연의 목소리에 엄마 박혜숙이 걱정스레 물었다."시연아, 진 부장한테 네가 오늘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어. 지금 몸은 좀 어때?"2년 전 진짜 안시연이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로 박혜숙은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았다.그래서 안서준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사고를 집에 전혀 알리지 않고 계속 숨겨왔다.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주현우까지 그토록 심하게 다쳤으니 결국 안씨 가문도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소식을 들은 박혜숙이 바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혜숙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엄마, 저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금 영상 통화 할게요."박혜숙을 위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까 봐 걱정된 허아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영상 통화를 걸었다.화면 너머 허아연이 정말 다치지 않고 상태도 괜찮은 걸 확인하고서야 박혜숙은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잠시 더 얘기를 나누며 당부의 말까지 전한 뒤에야 아쉬운 듯 전화를 끊었다.영상 통화를 마친 허아연은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정리를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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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허아연이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박혜숙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엄마,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허아연의 말에 박혜숙이 한 손으로 허아연의 손을 마주 잡고 다른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어제저녁에 영상 통화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아빠한테 전용기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해서 왔어."박혜숙의 진심 어린 걱정에 허아연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음이 뭉클해졌다.두 팔을 벌려 박혜숙을 꼭 끌어안았다."고마워요, 엄마."고맙다는 인사에 박혜숙이 허아연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바보 같은 것,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가족이잖아. 보러 오는 게 당연하지."박혜숙이 다시 말을 이었다."서준이가 공항으로 마중 나와줬어. 아침에 여기서 삼십 분 넘게 있다가 방금 일 보러 갔어."허아연은 박혜숙을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고생하셨어요."허아연의 얌전한 모습에 박혜숙이 다시 화가 난 듯 말했다."네 교통사고, 나도 좀 알아봤어. 일부러 차를 들이받은 사람 잡히면 너희 아빠랑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박혜숙과 안씨 가문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자 허아연은 더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절대 가만두면 안 돼요."직접 비행기를 타고 와서 두 눈으로 허아연을 확인하고 품에 안아본 뒤에야 박혜숙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안도할 수 있었다.허아연은 항상 나쁜 소식은 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잠시 안고 얘기를 나눈 뒤 허아연은 욕실로 가서 씻고 박혜숙과 함께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박혜숙이 친엄마는 아니었지만 친엄마 못지않게 챙겨주었다.오히려 친딸을 둔 여느 어머니들보다 더 사랑을 듬뿍 주었다.허아연과 안씨 가문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필요로 하는 사이였다.박혜숙과 잠시 얘기를 나누던 허아연은 눈에 비친 피곤한 기색을 발견하고 침대에 누워 좀 쉬라고 했다.하지만 박혜숙은 요즘 통 못 봐서 보고 싶었다며 계속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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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의식이 없던 동안에도 주현우는 계속 허아연을 걱정하고 있었다.주현우의 말에 주민경이 말했다."걱정 마, 아연이는 뇌진탕 말고는 큰 문제 없어. 오빠나 몸조리 잘해."주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민경이 다시 말했다."경찰과 윗선에서도 어제 교통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이미 조사에 착수했대. 오원빈도 조사하고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몸부터 잘 챙기면 돼."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주민경이 전보다 훨씬 철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주현우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자 주민경이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걱정 마, 오빠가 깨어났는데 내가 거짓말하면 통하겠어? 나중에 거동이 편하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주민경의 말에 유서희도 거들었다."나도 오늘 아침에 가서 봤는데 아연이 정말 괜찮았어."아침에 유서희는 문 앞에 서서 허아연을 지켜보기만 했었다.현재 안시연인 허아연과는 친분이 두텁지 않아 들어가기가 좀 조심스러웠다.유서희와 주민경이 입을 모아 말하자 주현우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자신의 차에 타고 있다가 사고가 난 허아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앞으로 평생 볼 면목도 없을 뿐더러 더 큰 죄를 짓는 것이었다.병상 반대편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주현우를 바라보던 주석진은 미간만 잔뜩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몇 번이나 타일렀는데도 결국 자업자득이었다.주민경과 유서희가 계속 말을 걸어오는 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진 주현우는 다들 돌아가라며 내보냈다.지금은 그저 시끄럽지 않은 병실에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주현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유서희는 결국 의사와 간호사에게 잘 좀 살펴봐 달라 부탁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가족들이 떠나고 병실이 조용해지자 주현우의 머릿속도 한결 맑아졌다.사고가 났던 그날의 상황을 되짚어보던 주현우는 차 옆을 스쳐 지나가던 검은 옷을 입고 캡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요즘 허아연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다 직접 가서 보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침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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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주현우의 물음에 허아연이 차분하게 답했다."저는 별문제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이틀만 입원해서 지켜보자고 하셔서요.""별일 없다니 다행이네요."말을 마치자 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 모두 마땅한 화제가 없었다.먼저 정신을 차린 주현우가 허아연을 보며 말했다."안 선생님, 앉으세요.""이번 일로 안 선생님을 많이 놀라게 했네요,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할게요."주현우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굳이 할 얘기가 있다고 잡지 않았다면 허아연이 이런 사고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허아연은 앉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생각보다 단순한 사고가 아닐 수도 있어요. 혹시 주 대표님도 뭔가 떠오르는 단서가 있으면 경찰에 얘기하세요. 그리고 사고 당시, 대신 막아주셔서 감사했어요."주현우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앞차의 철판이 그대로 허아연의 심장을 찔렀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허아연의 인사에 주현우가 말했다."안 선생님도 별말씀을요.""제가 얘기하자고 안 선생님을 붙잡지 않았으면 이런 사고를 당할 일도 없으셨을 텐데요."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이 답했다."그럼 서로 빚진 건 없는 걸로 하죠. 얼른 쾌차하시길 바랄게요."주현우가 말했다."네, 안 선생님도요."말을 마치자 병실은 또다시 조용해졌다.지금 두 사람 사이엔 더 이상 나눌 얘기가 없었다.어색한 분위기가 한참 이어지자 허아연이 말했다."그럼 푹 쉬세요, 주 대표님. 저는 병실로 돌아갈게요."그 말에 주현우가 허둥지둥 일어나 배웅하려 하자 허아연이 말했다."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 주 대표님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주현우가 침대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병실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문도 닫아주었다.병상 위.멀어지는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는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허아연이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문을 얼마나 오래 쳐다봤을까……의사와 간호사가 회진을 와서야 주현우는 시선을 거두고 허아연이 남긴 여운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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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꼭 잡을 거라고 했다.병실 안,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허아연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권승준이 온 걸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오셨어요."권승준이 환하게 웃는 허아연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배고프죠."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좀 고프네요.""이젠 불편한 곳도 없는데 의사 선생님이 언제쯤 퇴원시켜 줄지 모르겠어요."권승준 앞에서는 허아연도 마음이 편했다.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그 말에 권승준이 책상 앞으로 다가와 도시락을 펼쳐놓으며 말했다."쉬어가는 셈 치고 서두르지 마요."허아연이 권승준을 거들며 답했다."네."음식을 다 차려놓자 두 사람은 함께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요즘 권승준은 늘 이렇게 병원에서 허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권승준이 허아연의 그릇에 반찬을 집어주며 대범하게 말했다."주현우 씨 깨어났어요, 시간 되면 한번 찾아가 봐요. 사고 때 대신 막아준 게 정말 결정적이었어요."자신과 허아연의 관계, 그리고 허아연의 이성적인 판단을 권승준은 믿고 있었다.권승준의 당부에 허아연은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말했다."방금 가서 보고 왔어요, 고맙다는 인사도 했고요."권승준 앞에서는 허아연도 숨기는 것 없이 솔직했다."네."권승준이 대답하며 다시 허아연의 그릇에 반찬을 집어주었다."많이 먹어요."허아연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고마워요, 비서실장님."권승준이 매일 허아연을 보러 온다는 걸 알기에 이 시간이면 박혜숙은 늘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워 두 사람에게 함께 할 시간을 주었다.안서준을 이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허아연이 좋아하는 사람이 권승준이라는 걸 알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친딸을 떠나보낸 뒤로 이런 일에 유독 신중해진 박혜숙은 허아연에게 절대 부담을 주지 않았고 자기 생각을 내비친 적도 없었다.그 뒤로도 며칠간 계속 검사를 받던 허아연은 병원 생활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두 지역 간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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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사실 오지은이 오늘 문병 온 데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주현우와 허아연의 교통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고의로 벌인 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보러 온 것이었다.허아연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려는 것도 있었다.하지만 한참 이야기를 나눠봐도 허아연의 입에서는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었고 반응이 어찌나 차가운지 별로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모든 것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결국 오지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안 선생님, 그럼 푹 쉬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허아연도 예의를 갖춰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했다.하지만 문 앞에 서서 멀어지는 오지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허아연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곧이어 병실로 돌아온 허아연은 휴대폰을 들어 안서준에게 전화를 걸어 조용히 말했다."안서준 씨, 오지은 씨 좀 알아봐요. 혹시 이번 일과 관련 있는지 확인 좀 해줘요."원래는 오지은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었다.어차피 안시연이라는 신분으로 돌아온 이상 오지은도 매사에 여러모로 조심할 수밖에 없을 거라 여겨서였다.하지만 오늘 오지은이 병문안 와서 떠보는 듯한 태도를 보니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져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전화기 너머의 안서준이 허아연의 말을 듣고 말했다."이미 알아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오지은은 너 스스로도 조심하고 경계하고 있어.""네."허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안서준과 업무 얘기를 좀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만약 오지은이 허아연을 겨냥한 거라면 십중팔구 주현우와 관련 있을 것이다.하지만 오지은이 정말 허아연을 노렸다면 혼자 운전할 때 사고를 일으키면 될 텐데 왜 하필 주현우까지 얽히게 했을까?설마 두 사람 다 목숨을 노린 걸까?휴대폰을 든 채 식탁 앞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권승준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권승준을 본 허아연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오셨어요.""응."권승준이 대답하며 말을 이어갔다."관계자들한테 얘기해 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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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다만 돌아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져 숨쉬기조차 힘들었다.허아연을 놓아주고 축복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이 도무지 허락하지 않았다.지금 주현우가 놓치고 있는 것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서 주현우가 허아연을 놓아주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이미 오래전부터 허씨 가문의 허아연이 아닌 강성시 안씨 가문의 둘째 딸 안시연이었으니까.잠시 후.병실로 돌아온 주현우는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여전히 조금 전 권승준과 함께 웃고 떠들던 허아연의 모습이 맴돌았다.그 생각을 하던 주현우는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터뜨렸다."현우 오빠, 우리 엄마 다시 돌아올까?""현우 오빠, 나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현우 오빠, 나 뛰어내릴 거니까 꼭 받아줘야 해.""주현우……"지금 이 순간, 주현우는 허아연이 사무치게 그리웠다.허아연의 일기장과 일기장에 빼곡히 적혀 있던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허아연과 함께할 기회가 있다면 정말 소중히 여기며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허아연은 주현우와 아는 사이라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생각에 잠겨 있던 주현우는 또다시 안시연이 허아연이라는 DNA 검사 결과지가 떠올랐다.……같은 시각, 허아연의 병실.허아연은 함께 점심을 다 먹은 뒤 처리할 일이 있어 떠나는 권승준을 배웅하러 나섰다.허아연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러 따라갔다.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권승준이 불쑥 몸을 돌리며 허아연에게 말했다."안 선생님, 퇴원하시면 저희 집에서 식사 대접하고 싶어요.""부모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하셔서 정식으로 만나 뵙고 싶어 하세요."권승준의 말은 의미가 분명했다.정식으로 관계를 확정짓고 여자친구 자격으로 식사하러 집에 왔으면 하는 것이었다.2년이라는 시간을 이미 놓친 만큼 이번 만남 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상대가 누구든 절대 허아연을 지켜내고 아껴주고 싶었다.권승준의 초대에 허아연은 눈을 바라보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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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저녁이 되어 권승준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박혜숙도 이날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그동안 두 사람에게 여러 번 시간과 기회를 줬으니 박혜숙도 권승준이 어떤 사람인지, 허아연에게 잘해주는지 직접 지켜보고 싶었다.하룻저녁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 박혜숙은 권승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인물이 훤한 것은 물론이고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허아연에게 진심이고 잘해준다는 것이었다.……같은 시각, 주현우의 병실.유서희와 주민경을 돌려보내고 나자 오지은이 음식을 잔뜩 사 들고 다시 찾아왔다.담담한 얼굴로 오지은을 보는 주현우는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권승준이 허아연 병문안을 오는 것처럼 오지은도 여러 번 문병을 왔다.하지만 주현우는 오지은의 성의를 알아주려거나 가까워지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전혀 희망도 주지 않았다.이미 분명히 말했는데 오지은이 고집부리는 거였다.오지은은 가져온 국을 내려놓고 웃는 얼굴로 주현우를 보며 물었다."현우야, 오늘은 좀 어때?"주현우가 답을 하기도 전에 오지은이 다시 말했다."방금 올라오다가 어머님이랑 나가시는 거 봤어."주현우는 열정적인 오지은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오지은, 이럴 거 없어. 매일 찾아오지 않아도 돼."주현우가 선을 긋자 잠시 얼굴이 굳어졌던 오지은은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을 가다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현우야, 너무 선 긋지 마. 나도 다른 생각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이걸로 너 감동받으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야.""어차피 너 챙겨줄 사람 부족하지 않은 거 나도 알아."주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오지은이 다시 말했다."그동안 너 오성 그룹이랑 우리 오씨 집안 많이 챙겨줬잖아. 네가 다쳐서 입원했으니 와서 보는 게 당연한 거야, 예은이도 분명 내가 이러길 바랄 거고."오지은이 또 오예은을 들먹였지만 주현우는 예전 같은 감격 따위 없이 담담하기만 한 표정이었다.주현우가 오지은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오지은, 오성 그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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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주현우의 말이 끝나자 오지은은 순간 충격을 받은 듯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주현우,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이 일을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 할 수 있어?"허아연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늘 자기가 손을 썼을 거라 의심부터 하며 트집을 잡으려 할 줄 예상했었다.주현우가 이렇게까지 안 믿다니.오지은의 놀란 반응에 주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랑 상관없는 게 좋을 거야."허아연이 그 얼굴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주현우도 오지은을 의심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허아연의 얼굴과 자신을 향한 오지은의 욕심과 집착을 생각하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직접 마주보며 물은 건 오지은의 순간적인 반응을 살피며 표정에서 뭔가를 잡아내려는 것이었다.의심하는 주현우를 한참 바라보던 오지은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렇게 한참 주현우를 바라보던 오지은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현우야, 그런 의심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상처야. 그리고 나도 모르겠어, 내가 대체 뭘 했길래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건지.""그렇게 오래 알고 지내며 함께했는데 네 눈에 나는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백 번 양보한다 한들 나도 바보처럼 안시연을 해칠 리 없어. 굳이 오씨 집안과 오성 그룹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을 이유가 없잖아."오지은의 변명에도 주현우는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었다.때로는 가장 위험한 방법이 오히려 가장 안전한 법이기도 했다.주현우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자 오지은은 더욱 억울한 듯 말했다."현우야, 정신 좀 차려. 안시연은 아연이가 아니야. 설령 아연이라 해도 너랑은 더 가능성이 없어.""그리고 그거 알아? 안시연은 벌써 권승준과 잘 만나고 있어. 어제 권승준 어머니가 밥까지 챙겨다주는 거 봤어.""현우야, 넌 왜 그렇게 과거에만 집착해? 왜 지금 눈앞의 현실은 절대 못 봐? 예은이한테도 그랬고 허아연한테도 그랬잖아. 설마 나도 두 사람 뒤를 따라가야만 내 진심을 알아줄 거야?""왜 나한테는 기회도 한 번 안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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