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의 모든 챕터: 챕터 81 - 챕터 90

100 챕터

제81화

서은주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그 속에는 낡은 공책 하나와 아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목걸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네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부러 남겨둔 거야. 네가 보면 마음 아플까 봐, 그동안 보여 주지 못했어.”이순옥은 이렇게 순순히 물건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서은주 뒤에는 육강민이 있었으니, 괜히 잔꾀를 부릴 배짱은 없었다.서은주는 누렇게 바랜 노트를 조심스레 펼쳤다.임신 기간을 기록한 일지였다.첫 장을 넘기자, 단정히 적어 내려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사랑하는 우리 아기에게, 네가 우리 삶에 와줘서 고마워.][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렴.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지켜줄 거야.]……아주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몇 줄만으로도 서은주의 눈가가 금세 촉촉이 젖었다.자신도 사랑을 듬뿍 자란 아이였다는 느낌에 서은주는 마음이 따뜻해졌다.“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여읜 너를 우리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구나.”이순옥은 그녀의 흔들리는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우리 말고는 네게 다른 혈육도 없고, 명분도 없이 육강민 곁에 평생 있을 수도 없을 거고.”“이제 돌아오렴. 우리는 항상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하지만 서은주는 상자 속의 목걸이를 문지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육강민은 육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육민찬이 이미 잠들었다는 걸 확인했다.그는 지금 호텔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고, 곧 육강민과 서은주를 모시러 갈 참이었다.통화를 마친 뒤, 육강민은 다시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눴다. 서은주를 위해 나서 준 일은 강성에 이미 다 퍼져 있었다. 모두들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감히 입에 올리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이 경성에까지 전해졌고, 그의 절친들이 채팅방에서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언제 우리 제수씨 보여줄 거야?][강성에서 돌아오지 않으려 하더니, 연애 중이었어?][보고 있는 거 다 아는데, 모른 척하지 마라.][잠깐 고민할 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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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그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내쫓지도 않자, 서미진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역시나 이 세상에 바람기 없는 남자는 없다.“오늘 일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어떤 벌을 주셔도 기꺼이 받을게요.”“벌?”육강민의 감정이라곤 조금도 얽히지 않은 담담한 표정이었다.“그럼, 침대로 가서 천천히 이야기할까요?”서미진의 붉은 입술이 그의 뺨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나랑 자려는 거야?”육강민이 고개를 살짝 틀어 그녀를 바라봤다.“물론 여기서도 괜찮아요.”서미진은 얼굴을 또다시 붉혔다.이 몸매라면, 밖에 굴러다니는 비약한 놈들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고 침대 위에서도 분명 엄청날 것이다.서미진의 몸이 달아올랐다.그때였다.밖에서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놀란 서미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육강민 쪽으로 쓰러졌지만, 육강민이 피하는 바람에 서미진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문 앞에는 육지성이 경찰 두 명과 함께 서 있었다.“경찰관님, 바로 이 여자가 저희 대표님께 성희롱했습니다.”육지성이 서미진을 가리키자,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버렸다.“그... 그런 거 아니에요.”허겁지겁 몸을 일으킨 서미진은 경찰들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마주하자, 머리가 하얘지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서미진은 손을 흔들며 계속 부인했다.“정말 아니에요.”요란한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서은주 역시 소리를 듣고, 나무 상자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미진이? 무슨 일이야?”경찰을 본 이순옥은 눈을 크게 떴다.“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이쪽 여성분이 저 남성분에게 성희롱했다고 합니다.”경찰도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성희롱은 특정 성별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남성이 피해자로 신고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이순옥은 말문이 막혔고 뒤늦게 달려온 서진우 역시 입을 떡 벌린 채 굳어 있었다.함께 몰려온 호텔 매니저와 직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서미진의 차림새를 훑어보던 이순옥은 그제야 모든 걸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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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대표님,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서진우가 급히 나서며 해명했다.그러면서 계속 서미진에게 눈짓을 보냈다.“맞아요! 저는 그냥 간식만 갖다 드리러 온 거예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그 말은, 내가 허위 신고를 했다는 뜻인가?”육강민이 그녀를 내려다봤다.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뿜어져 나온 압박감에 서미진의 얼굴은 다시 한번 새하얗게 질렸다.“저는….”서미진은 다급해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누가 봐도 가련한 모습이었다.“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해 주시죠.”경찰이 육강민에게 물었다.“여성분이니 체면은 좀 살려주려고 했습니다.”육강민은 서미진을 힐끗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기회를 줬는데, 본인이 차버렸죠. 제 얼굴에 침 뱉은 걸로 알고 제대로 대응해야겠습니다.”서미진은 숨이 턱 막혔다.이어 육강민은 휴대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재생했고, 서미진이 노골적으로 유혹했던 말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침대로 가자’, ‘벌은 얼마든지 받겠다는 말들’, 그 자체로 명백한 성희롱이었다.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던 서진우가 달려들었다.“짝!”서미진의 고개가 꺾였다.“이게 무슨 집안 망신이야! 이런 짓이나 하고 감히 고개를 빳빳이 세워?!”서진우는 발길질까지 하려 했지만, 이순옥이 급히 그를 막아섰다.“그만하세요! 애를 죽일 셈이에요!”“진작에 때려죽여야 했어!”“그래도 당신 딸이잖아요!”“낳은 적 없다 쳐!”……한쪽은 때리려 들고, 한쪽은 말리며 난리가 났다.결국 이순옥이 시선을 돌려 육강민을 바라봤다.“대표님, 제발 한 말씀만 해주시죠.”육강민은 비웃듯 웃었다.“이건 당신들 집안일 아닙니까? 나랑 무슨 상관이죠? 서 대표님, 검을 빼 드셨으면 찔러야죠. 소리만 요란하네요.”적당한 연기로 이 일을 덮으려 했던 두 사람의 속셈이 그대로 깨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육강민에겐 전혀 먹히지 않았다.“대표님, 옷도 멀쩡하시고…피해는 없지 않습니까?”서진우는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몸은 멀쩡할지 몰라도, 제 정신은 꽤나 더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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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육강민이 경찰서를 나설 때는 이미 밤 열 시를 훌쩍 넘긴 뒤였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서은주는 육강민과 나란히 앉아 나무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여전히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그렇게 웃겨?”육강민의 물음에 서은주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육강민을 바라보았다.“서미진이 당신 유혹할 거란 건 예상했는데, 당신이 경찰...읍—”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강민이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운전석에 있던 육지성은 순간 동공이 흔들리더니, 재빨리 칸막이를 내렸다.’나도 타고 있는데 제발 좀 자제하시죠!”서은주는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채 숨을 빼앗겼다.육강민은 너무도 거침없었고, 그녀는 속수무책이었다.육강민은 몸에 힘이 풀린 그녀를 그대로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숨결이 뒤엉키고, 거친 손끝이 그녀의 허리를 따라 자유롭게 움직였다.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타오르는 열기가 온몸으로 번져, 끊임없이 그녀의 이성을 시험했다.육강민만 원한다면, 그녀의 이성 따위는 너무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차는 밤길을 가르며 빠르게 달렸고, 가로등 불빛이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가며 두 사람을 밝히고, 다시 어둠 속에 삼켰다.서은주는 그의 품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은주야, 나 그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육강민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간질였다.“날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왜 그런 말을 해.”“현실감이 너무 없어서요.”서은주는 서씨 집안에서 늘 투명 인간이었고 도우미들조차 함부로 대했으며 진백현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혐오하며 조금도 엮이려 하지도 않았다.“당신은 이미 많은 걸 줬어요.”육강민이 옅은 미소를 그렸다.그의 숨결이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난 그냥,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그의 뜨거운 입술이 다시 그녀를 삼킨다.“이 느낌은 진짜 같아?”“당신이 신고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하면 그 인간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잖아요.”그의 가슴에 기대,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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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위미든.지문 인식 잠금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서은주는 육강민에게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커튼 사이로 스며든 달빛만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육강민은 그녀를 자신의 몸과 현관문 사이에 가둔 채 멈춰 서 그대로 입술을 내렸다.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고 육강민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압박이자, 노골적인 유혹이었다.“그 친구가 뭘 가르쳐줬는지 봐야겠어.”중저음의 느릿한 목소리는 사람을 홀리고도 남는 음색이었다.서은주의 심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을 찾았다. 그가 늘 하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러다 점점 더 깊이 그를 느꼈다.달빛 덕분에 육강민은 눈을 감은 채, 속눈썹을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은주야.”“?”“눈 떠 봐.”서은주가 눈을 뜨자, 그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쥐며 키스가 깊어졌다.몇 번이나 입을 맞췄음에도, 서은주는 여전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그는 여유롭게 리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서은주는 숨이 가빠지고 다리 힘도 풀려, 서 있기도 힘들었다.두 사람은 바짝 밀착됐고, 자세는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뜨거웠다.그녀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을 때에야, 육강민은 그녀에게 다시 가볍게 입을 맞췄다.“많이 가르쳐줬는데도 아직 익히지 못한 거야? 그건 키스가 아니고 그냥 물어뜯는 거잖아.”서은주는 귀마저 새빨개졌다.“방으로 가요.”그녀는 육강민의 셔츠를 움켜쥐었다.“여기서 하면 안 돼?”“민찬이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서은주는 그만큼 뻔뻔한 인간은 아니다.“오늘 하루 종일 놀아서, 깊이 잠 들었을 거야.”“당신도 하루 종일 힘들었겠네요.”서은주는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었지만, 육민찬을 돌보며 지낸 이 시간 동안 부모들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었다.“좀 피곤하긴 하지.”육강민은 그녀에게 바짝 붙어, 낮게 속삭였다.“오늘 밤은 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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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씻어?”“온몸이 쑤셔서… 움직일 수 없어요.”평소엔 늘 조심스러운 서은주였지만 무심코 내뱉은 이 한마디는 꼭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이 순간만큼은 모든 경계와 가식을 내려놓은 모습이었다.육강민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완전 아기네.”그는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닦아줬고, 그 바람에 서은주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바지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탄탄하고 매끈하게 뻗은 잔근육들, 넓은 어깨와 기다란 다리 길이는 여자들의 환상 그 자체였다.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손길은 유난히 능숙하고 부드러웠다.육강민은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저 그냥 씻고 올게요.”서은주는 힘 풀린 다리를 이끌고 욕실로 들어갔다.육강민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침대 옆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형, 부모님, 그리고 집안 어른까지 전부 집에서 온 전화였다.그는 형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로 호통이 날아왔다. “육강민, 지금 새벽 세 시다. 뭐 하자는 거야!”“미안, 이제 막 끝났어.”그의 말뜻을 알아차린 큰형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자랑이라도 하는 거냐?’“너, 그 여자한테 진심이야?”“모두 알게 되었군요?”“육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께서 슈퍼맨처럼 나타나 공주님을 구하고, 수십억에 달하는 드레스로 환심을 샀다는 얘기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 없지.” 한밤중에 깨운 탓에 큰형의 목소리엔 피곤함이 묻어났다.“가희가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그 여자 평판 안 좋고, 계산적이라고 해서 할머니는 썩 내켜 하지 않으셔.”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진심이면, 제대로 해.”“그냥 즐길 생각이면, 선은 지켜라. 되레 네가 휘둘리지 말고.”육강민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형,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어쨌든 처음이잖아. 여색에 눈멀기 쉬운 법이지.”“……”“그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새벽까지 힘들게 굴지 마라.”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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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그날 육강민은 외출 대신 서재에 틀어박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서은주는 육민찬의 숙제를 봐주고 있었다.총명하고 습득력이 빨랐지만, 너무 산만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못해 결국 그녀도 얼굴을 굳히며 무섭게 굴 수밖에 없었다.육지성도 다녀갔다.전날 와인에 젖었던 드레스를 세탁 맡기러 온 김에, 업무에 관한 이야기도 잠깐 나눴다. “내일은 저녁에 정 대표와 식사 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보셨던 그 땅을 진백현 쪽에서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대로 버티면 사흘 뒤, 경매에서 가격이 많이 치솟을 것 같습니다.”“그래.”너무나도 담담한 육강민의 태도에 육지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진백현이 하필이면 육강민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참 운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다른 일은?” 육강민이 물었다.“다음 달에는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행사가 있습니다. 홍보팀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싶다며 대표님께서 직접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육강민은 공식 석상에 좀처럼 얼굴을 비추지 않는 인물이었다.하지만 50주년은 큰 행사였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서은주를 굳이 피해 따로 한 말이 아니었기에 그녀도 전부 듣고 있었다.그러니까, 늦어도 다음 달이면, 그는 경성으로 돌아간다.그와의 관계도 거기까지일 것이다.“그럼, 더 지시하실 건 없으십니까?”육지성이 공손히 물었다.“드레스 한 벌 더 준비해.”서은주와 육민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그 말에 서은주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육강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경매에 같이 가자.”“저요?”서은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서씨 가문 파티는 사적인 자리였지만, 경매는 그의 업무와 직결된 공적인 자리다.그런 곳에 자신과 동행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남은 시간만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었다.자신은 이미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서은주도 이제 부정할 수 없었다. “이모만 데려가는 거예요? 나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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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그놈 회사도 요즘 난리라며? 완전 업보야. 꼴 좋다.”“강민 씨가 그런 거 같더라고.” 서은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멈칫하던 손리정은 이내 박장대소했다.“와, 진짜 잘했다!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라니까!”그러더니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아, 너 줄 거 있어.”손리정은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서은주는 별 의심 없이 열었다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이걸 왜 나한테 줘!”“분위기 살리라고~ 야옹이 정말 귀엽지 않냐?”서은주는 그저 제발 입 좀 닫아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위미든으로 돌아온 서은주는 그 쇼핑백을 옷장 깊숙이 밀어 넣었다. 육지성은 드레스를 들고 왔고, 서은주는 한 벌씩 입어보기 시작했다.드레스마다 수놓인 보석들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너무 비싸 보이는데요?”서은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닙니다. 전혀요.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육지성은 태연하게 답했다.“보석도 가짜고요, 다 빌린 겁니다. 겉으로만 좀 있어 보일 뿐이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완벽한 거짓말이었다.지난번 수십억에 달하는 드레스가 더럽혀졌을 때도 육강민은 선한 거짓말로 그녀를 속였다.왜 굳이 숨기냐고 물었더니, 육강민은 워낙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괜한 부담 주기 싫어서라고 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단순한 관계라면, 상대 마음까지 헤아릴 이유는 없다.이번 경매 역시 남자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고 수십억, 수백억이 오가는 판에서도 육강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이쯤 되면, 정말로 깊이 빠진 게 분명했다.어제는 큰 어르신까지 육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서은주에 대해 물었다.서씨 집안 파디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만큼, 육씨 가문에서도 이미 그녀를 주목했을 것이다. 이제 어르신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경매 당일. 점심을 마치자, 육지성이 스타일리스트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서은주는 타고난 바탕이 좋아 화장이 과하면 오히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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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경매장으로 향하기 전, 육민찬은 잠시 돌봄 센터로 보내졌다.꼬마는 살짝 서운한 기색이었지만, 저녁 전에 꼭 데리러 온다고 케이크도 사줄 거라고 약속해서야 기분이 조금 풀렸다. 육강민이 서은주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순간, 현장에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이런 자리에도 서은주와 함께 나온 걸 보니, 여간 아끼는 게 아니네.”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수군거림이 퍼졌다.“서은주, 진짜 예쁘긴 해. 게다가 몸매도 좋고 순해 보여서 참 정이 가는 스타일이야.”“오늘 경매의 핵심은 동성 그 땅이야. 전에는 진백현이 거의 확정이라고 봤는데 육강민이 갑자기 끼어들었잖아. 이유가 궁금했는데, 지금 보니까 서은주 때문인 것 같네.”“진백현은 이미 너무 많이 투자해 놔서 쉽게 포기 못 하겠지만 성세는 재력이 어마어마하니까.”“오늘 제대로 한 판 붙겠네.”……그때, 진백현도 모습을 드러냈다.경매는 업무와 관련된 자리여서 그는 비서와 함께였고, 육가희는 동행하지 않았다.육강민을 발견했을 때 그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다만, 그와 함께하고 있는 서은주의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서은주는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단아했다.육강민의 팔짱을 끼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육강민을 조용히 바라보는 서은주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가끔 육강민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밝고 눈부셔 숨이 막힐 정도였다. “사장님.”비서가 그의 미묘한 동요를 눈치채고 낮게 불렀다.그제야 진백현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 쪽으로 걸어가 정중하게 인사했고 육강민은 담담하게 응할 뿐이었다.육강민은 여유로움 속에도 위엄 가득했다. “부디 조금만 살살 부탁드리겠습니다.”진백현은 동성을 포기할 수 없어 마지막까지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다.“각자 실력껏 하는 거지.”진백현의 웃음이 미세하게 굳었다.그의 시선이 서은주를 스칠 때, 미련이 그대로 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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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다시 8억을 올리셨습니다.”경매사의 말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육강민에게 쏠렸다.이 땅은 사실상 이 두 사람의 싸움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고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리고 예상대로, 육강민은 다시 번호판을 들었다.“150억.”진백현은 매번 번호판만 들었지만, 육강민은 20억 단위로 응하고 있었다. 그의 호탕하고 거침없는 당당함에 주변 사람들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가격은 순식간에 치솟았다.더 이상 단순한 경매가 아니었다.이는 남자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다.금액이 3,500억까지 오르자, 경매사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그때, 진백현의 비서가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사장님, 지금 가격은 이미 예산을 한참 넘었습니다. 이대로면 회사를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진백현은 이미 눈이 뒤집힌 상태였다.서은주와 육강민이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고 회사 예산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분위기는 이미 최고조에 달했고,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으니, 진백현은 절대 질 수 없었다.특히 서은주 앞에서는 더더욱 머리 숙일 수 없었다. 비서가 옆에서 진백현을 말렸지만, 그는 또다시 번호판을 들었다.“다시 8억 올리셨습니다.”경매사의 시선이 다시 육강민에게 향했다.그가 또다시 팔을 올리려는 순간, 서은주가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정말 갖고 싶은 거예요?”100억에서 시작해 3,508억까지. 이미 실제 가치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딱히.”육강민은 그저 순간의 기분으로 움직인 거였다.“그럼, 하지 말아요.”“진백현이 걱정돼?”육강민의 말엔 약간의 시샘이 섞여 있었=ㅖ“그럼, 네 말대로 할게.”“?”서은주는 순간 멈칫했다.정말로 육강민이 순순히 그녀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도, 심지어 진백현조차 육강민이 포기할 줄은 몰랐다. 육강민이 한 번만 더 부르면 진백현도 그때는 물러날 생각을 있던 참이었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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