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441 - Chapter 450

995 Chapters

제441화

그가 “몸으로 갚겠다”고 했을 때, 강희진의 마음 한켠은 분명히 들떠 있었다.하지만 고작 입맞춤 한 번으로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게다가 뒤이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연애도, 결혼도 당분간 생각 없다는 말에 강희진은 은근 실망했다.방주헌은 원래도 호탕하고 무심한 성격이라, 그녀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다만 떠나기 전, 문득 이렇게 물었다.“요즘 시간 괜찮아요?”“괜찮아요.”“전화할게요.”그 말을 떠올리며, 강희진은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괜히 알림창을 확인하고, 화면을 켰다 껐다 하며 묘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다만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었다.강희진은 그저 방주헌이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알고 지낸 부잣집 도련님들과는 달리 방탕한 듯하면서도 선은 반드시 지켰고, 재치가 넘치고 유쾌했다.한마디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그럼 좋아하는 걸까?강희진의 마음이 복잡해졌다.*“이모? 이모?”서은주의 목소리에 기억에서 돌아온 강희진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아까부터 말하는데,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잖아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아무것도 아니야.”“기다리는 전화라도 있는 거예요?”그녀가 오늘 유난히 휴대폰을 자주 확인하는걸, 서은주가 눈치챘다.“아니야.” 강희진이 어색하게 웃었다.“이따 다른 예복도 같이 보러 가요.”메인 웨딩드레스는 육강민이 맞췄지만, 예복이나 피로연 드레스는 사전에 입어보고 예약해야 했다.강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외출하자, 뒤에 경호원 두 명이 따라붙었다.“은주야, 저 사람들은 뭐야?”“오빠가 노설연 쪽에서 보복할까 봐 걱정된다며 외출할 땐 꼭 데리고 다니라네요.”“누가 따라다니는 거, 좀 이상하지 않아?”“나도 그랬더니, 공기처럼 생각하래요.”두 경호원은 무표정했다.공기라니? 대표님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서은주는 몇 벌을 입어봤지만 영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그 사이 낯이 익은 귀부인 몇 명이 다가와 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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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2화

“이 늙은이가 또 골치 아프게 하고 있었다.양이나는 병상에 누운 노태철을 향해 소리쳤다.“제발 좀 죽지 그래요! 엄마는 아빠를 찌르고 도망가고, 지금 내가 이 모든 걸 감당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노태철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입은 말을 잇지 못했지만, 눈동자는 또렷했고 순간 핏빛으로 물들었다.그러다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양이나는 겁에 질려 급히 의료진을 불렀다.한바탕 응급처치 끝에, 노태철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산소마스크를 낀 채 누워 있는 그의 모습 앞에서, 양이나의 표정은 오히려 더 일그러졌다.“할아버지… 저 정말 못 버티겠어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그날 밤, 노태철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했다.처음엔 기적이라도 일어난 줄 알고 기뻐했다.그러나 곧 현실이 밀려왔다.의사는 이미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었다.그렇다면 평생을 이렇게 돌봐야 한다는 뜻이었다.양이나는 그런 삶을 원치 않았다.얼굴을 고쳐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 서고 싶었다.더 이상 배설물 냄새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삶은 원하지 않았다.더구나 서은주와 육강민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은 그녀를 더욱 자극했다.서은주는 그저 대체품일 뿐인데, 왜 육강민은 저리도 귀하게 아끼는 걸까?그들은 저렇게 행복한데, 자신은 병원에 묶여, 성형할 시간조차 없었다.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외할아버지가 죽는다면 얼마나 편할까?양이나의 떨리는 손이 조심스레 산소마스크로 뻗었다.그때, 노태철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는 바람에 양이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할, 할아버지…”“너… 뭐 하려는 거냐.”쉰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말을 하고 있었다.양이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폐인처럼 누워 계시느니, 차라리 빨리 가시는 게 낫잖아요. 그래야 저도 좀 살죠! 할아버지는 저를 제일 아끼셨으니 저 용서하실 거죠? 그렇죠?”양이나는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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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3화

“그 사람 생각은 이제 그만해. 그럴 여유 있으면 나한테 관심 좀 주라.”박명숙은 아직 산에 머물러 있었고, 아이들을 데려간 육진국 부부도 돌아오지 않았다.눈치 빠른 육남혁도 요즘은 학교에서 지냈다.그렇게 집에는 육강민과 서은주, 두 사람뿐이었다.그야말로 매일이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육강민은 농담처럼 말했다.“이제야 옛날 황제들이 왜 미색에 빠져 조회도 안 나갔는지 알것 같아.”그 역시 출근하기 싫었다.하지만 서은주는 매정하게도 그를 재촉해 회사로 보냈고, 그 때문에 육강민은 괜히 심기가 불편했다.반면 육지성은 요즘 한껏 들떠 있었다.활력이 넘쳐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돌아오는 연휴에 손리정이 그를 부모님께 소개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확실히 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육강민 앞에서 얼쩡거리며 히죽거렸으니, 솔직히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노태철의 장례는 삼 일 뒤 치러졌지만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경성 사교계란 본래 그런 법이다.권세가 있을 땐 앞다퉈 아첨하지만, 무너지면 등을 돌린다.예전엔 드나들던 명문가들조차 조문하지 않았다.양이나는 노태철의 영정을 안고, 몇몇 친척의 도움으로 초라하게 장례를 치렀다.장례를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곧장 외조부의 유산 정리에 나섰다.뜻밖에도 숨겨둔 부동산과 자산이 몇 군데 있었다.노설연은 현재 도주 중이었고 법적으로는 그녀가 상속받을 몫이었지만, 현재로선 양이나가 실질적 상속인이었다.양이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진작 죽었어야 할 인간이었다.양이나는 로펌을 나서며, 새로운 삶을 상상하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입을 틀어막고 골목 안으로 끌고 갔다.순간 양이나는 넋을 잃을 뻔했다.외조부를 제 손으로 죽인 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눈만 감으면 그가 찾아올 것 같았다.그러나 눈앞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숨을 돌렸다.“엄마?”“쉿.”노설연이었다.“아직 경성에 있었어요?”이미 멀리 도망간 줄 알았다.“네 외할아버지, 왜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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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4화

육씨 가문은 경사에 온 집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노 씨 그룹을 인수한 뒤라 육강민은 처리할 일이 산더미였고 가끔은 출장까지 겹쳤다. 육남혁은 육씨 가문에서 육강민을 제외하면 유일한 젊은 일손이라 그대로 한주미에게 붙잡혀 ‘노동력’으로 차출돼 결혼식의 자잘한 일은 죄다 그의 몫이었다.게다가 육강민이 경성에 없으면 육민찬 등하원까지 책임져야 했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숙제까지 봐줘야 했다.조카의 운전기사이자 개인 과외 선생이 따로 없었다. 동생 결혼식인데 왜 형이 이렇게 고생이냐며 육남혁은 어머니에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한주미는 언젠간 장가갈 테니 미리 연습하는 셈 치라고 했다. 육남혁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결혼이 이렇게 힘들면, 차라리 평생 혼자 살겠습니다. 혼자 먹고 살면 끝이잖아요.”“혼자 산다고?” 한주미가 코웃음을 쳤다.“너 서른이야. 그 나이면 개도 늙어 죽겠다.”직격탄이었다.육남혁은 말문이 막혀 아무 반박도 못 했다.결국 투덜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동생의 결혼식이었는데도 가장 바쁜 사람은 어째 육남혁이었다.힘들다고 하소연했더니, 다음 날 육강민이 육지성을 통해 각종 보양식과 해삼, 동충하초까지 한가득 보내왔다.명목은 “기력 보충”이었다.이건 누가 봐도 노인 취급이었다.육남혁은 속이 뒤집혔다. 그날 육민찬의 공부를 봐주다 말고 중얼거렸다.“민찬아, 너는 나중에 절대 네 아빠 닮지 마라.”“왜요?”“네 아빠는 아주 나쁜 놈이거든.”“그럼, 누구 닮아요?”“나.”육민찬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아빠는 나쁜 놈이라 닮지 말고, 큰 아빠 닮으라 했으니까… 큰 아빠는 좋은 놈이네요!”육남혁은 잠깐 멈칫했다.이거, 묘하게 욕 같지 않은가!어른들은 분주했지만, 육민찬은 요즘 누구보다 신이 나 있었다.잔치는 곧 맛있는 것과 재미난 것의 향연이었다. 아이에게 어른 사정이 무슨 상관이랴. 즐거우면 그만이었다.게다가 결혼식 화동을 맡아 서은주가 특별히 꼬마 신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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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5화

어느덧 여름휴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경성으로 여행을 온 외지 관광객이 크게 늘어, 평소엔 그리 붐비지 않던 도로까지 정체가 시작됐다.육남혁은 육민찬을 데리러 간 뒤, 평소처럼 주산 학원에 데려다주었다.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복도에서 들판의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위험하니 뛰지 마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말 안 듣는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귀에 담지도 않았다.수업이 다시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육남혁은 문득 육민찬이 아직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설마 신나서 정신 줄 놓은 건 아니겠지?육남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엔 몇몇 아이들만 남아 있었고, 화장실 안에도 없었다.학원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교실로 돌아오자, 선생님이 물었다.“민찬이 보호자님, 민찬이는요? 수업 시작인데 보이지 않네요.”육남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아직 못 찾았습니다.”“못 찾았다고요?”학원 측은 발칵 뒤집혔다.다른 학생들을 교실에 머물게 한 뒤, 교사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와 수색에 나섰고 일부 학부모들도 동참했지만 정말로 아이는 사라졌다.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물었다.“민찬이 본 사람 있어?”아이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천진한 얼굴이었다.그때 한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한 할머니가 데려가는 거 본 것 같아요…”“할머니?”육남혁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아이를 찾지 못한 이상,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어린이집과는 달리 이곳은 CCTV가 사각지대까지 완전히 커버하지 못했다.경찰이 한참을 확인한 끝에, 마침내 한 화면에 육민찬의 모습이 포착됐다.한 여자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차에 태우는 장면이었다.이후 화면 사각지대로 사라졌다.“이 여자…” 한 경찰이 인상을 찌푸렸다.“어디서 본 얼굴 같은데.”영상을 멈춘 채 모두가 화면을 주시했다.한 경찰이 허벅지를 탁 쳤다.“노설연입니다!”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한때 잘나가는 사모님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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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6화

육민찬이 노설연에게 납치됐다는 소식은 곧장 육씨 가문에 전해졌다.서은주의 숨이 턱 막혔다.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쥔 듯, 숨을 쉴 수 없었다.주먹을 쥔 서은주는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노설연은 양홍철을 칼로 찌른 여자다.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만약 육민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서은주는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서은주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경찰도 못 찾고 있나요?”육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노설연이 복수하려 했다면, 서은주 혹은 육강민을 노렸어야 했다.그런데 하필 아이를 건드렸다. 그것도 사람 많은 학원에서. 겁도 없이 움직였다.양홍철을 찌른 뒤 줄곧 도망 다녔던 기에 CCTV를 피하는 법쯤은 이미 식은 죽 먹기 였을 것이다.더구나 모자도,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들켜버려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 아이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육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억지로라도 냉정을 붙들었다.육강민은 모든 인맥을 총동원했다.방주헌을 비롯한 친구들도 소식을 듣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육민찬이 사라진 지 30분. 경성 전역에 경계령이 내려졌다.구체적 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주요 도로마다 검문이 시작된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니라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한편, 산속.육민찬이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노설연의 품에 안긴 채 산을 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해가 기울어 붉은 노을이 반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황혼이 내려앉은 산은 벌레 울음과 새소리가 뒤섞여 음산했다.육민찬이 몸을 뒤척이자, 노설연이 내려다보았다.“깼구나?”앙상한 얼굴, 탁한 눈동자, 깊게 꺼진 눈두덩.사람이라기보다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양 씨 할머니?”“입 닥쳐!”‘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노설연이 날뛰듯 소리쳤고, 힘이 부친 듯 육민찬을 땅에 내려놓았다.육민찬의 두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줄의 다른 끝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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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7화

“그 여자가 널 그렇게 아낀다지? 네가 죽으면, 분명 괴로워하겠지… 네 아버지도 그 여자를 원망할 거야. 그래 놓고도 결혼을 하겠어?”노설연이 미친 듯 웃었다.“내가 축제를 눈물바다로 만들어 주지!”육민찬이 입술을 삐죽였다.방금 전까지 발버둥 치며 울던 아이가, 갑자기 잠잠해졌다.이를 악문 채, 억울하고 겁먹은 강아지처럼 가만이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이 녀석은 육강민의 아들이다.저토록 힘없는 모습에, 노설연의 가슴에 기이한 쾌감이 스쳤다.“왜? 이제 체념했어? 울지 않네?”육민찬이 훌쩍이며 말했다.“계모가 미우면, 그 사람을 찾아가야죠. 왜 저를 잡아요…”“그 여자한테 손댈 기회가 없으니까. 죽일 수 없으니, 네게 화풀이하는 거지.”“와아!”육민찬이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나 너무 억울해요! 태어나자마자 친엄마도 없고, 아빠는 또 계모를 들이고! 누가 그 여자가 저 아낀대요? 다 겉으로만 예뻐하는 척하고 몰래 저 괴롭혀요. 밥도 많이 안 주고, 공부만 시키고 아빠 없으면 때리기까지 해요! 이제 친딸도 있는데, 저를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제가 빨리 죽길 바랄걸요? 그래야 아빠가 완전히 자기 거가 되잖아요! 흐앙!”노설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육민찬, 헛소리 마! 너희 사이좋다는 거 다 알아. 너도 그 여자를 엄마라 부르잖아.”아이의 어깨가 들썩였다.“어쩔 수 없잖아요. 살아야 하니까. 안 그러면 아빠한테 고자질해요. 버릇없다고… 친엄마도 아닌데, 절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할머니는 양 씨 할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낳은 아이가 좋아요?”그 한마디가, 노설연의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그 여자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데 그년 자식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육민찬의 울음소리는 너무 처절했고, 거짓 같지 않았다.“진짜 괴롭혔어?”“네…”“집안 어른들이 그저 내버려둬?”“그 여자가 연기를 너무 잘해요. 제가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요. 제가 제일 불쌍해요… 차라리 죽이세요. 저도 이렇게는 살기 싫어요…”노설연이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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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8화

산속의 밤은 공기가 차고 이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바람이 숲을 흔들고, 벌레 울음과 짐승 소리가 뒤섞여 기묘하게 음산했다.육민찬은 아직 어린아이였다.배를 채우고 나서는 화장실에 가겠다며 칭얼댔고 다녀온 뒤에도 두 손은 다시 등 뒤로 묶였다.노설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을 찍었다.본래 계획은 서은주 곁의 소중한 사람을 죽여, 그녀를 평생 죄책감과 고통 속에 살게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아이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이 아이를 죽이는 건 어쩌면 원수를 위해 장애물을 치워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육민찬이 조심스레 말했다.“아빠는 저 엄청 사랑해요. 저로 돈을 뜯는 건 어때요? 아빠 엄청 부자고, 게다가 되게 후하시거든요!”곰곰히 생각하던 노설연은 생각을 바꿨다.이 아이를 인질로 삼아, 서은주를 혼자 불러낼 수 있지 않을까?육씨 가문에서 이 아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면, 서은주가 홀로 아이를 구하러 오게 만들면, 자신에게 기회가 생긴다. *그날 밤, 육씨 가문에는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육민찬이 차고 있던 작은 시계에는 위치 추적 장치가 있었다.학원 근처 풀숲에서 발견됐지만, 그 이후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오직 육수린만 평온했다.*다음 날 아침.성세 그룹 공식 계정으로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열어본 직원은 얼굴이 새파래져 곧장 육지성에게 연락했고, 영상은 즉시 육강민의 손에 넘어갔다.화면 속, 육민찬은 두 손이 묶여 있었다.“아빠… 아빠, 살려줘요…”육강민은 목이 조여드는 듯 호흡이 가빴다.이어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내일 정오까지 현금 이억 준비해. 단 서은주 혼자 영산으로 와야 해. 구체적인 장소는 다시 연락하겠다.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따라오면, 아이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아.”그때, 육민찬이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아빠, 살려줘요! 나 아빠랑 같이 해 뜨는 거 보러 가고 싶다고요! 동생 생겼다고 나 버리지 마요… 나 말 잘 들을게요…”영상은 거기서 끊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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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9화

“어디요?”서은주가 다급히 물었다.“민찬이가… 해 뜨는 거 보러 가고 싶다고 했어.”“….”육민찬은 먹는 걸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고, 모형 장난감과 치킨을 좋아하는 아이다.그런 아이가 하필 ‘일출’을 언급했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육강민이 경찰에게, 예전에 가족이 캠핑을 갔던 산 일대를 우선 수색해 달라 요청했을 때, 현장 경찰들은 반신반의했다.극도의 공포 속에 있는 어린아이가 한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육강민이 너무 초조해 판단이 흐려진 건 아닐까?하지만 뚜렷한 수색 방향이 없었고 육강민이 끝까지 주장하는 바람에 경찰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몸값 전달을 하루 앞둔 밤.서은주는 잠들지 못했다.새벽 두 시가 조금 넘자, 곁에 누워 있던 육강민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육강민은 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금연한 지 꽤 되었건만, 오늘은 버틸 수 없었다.담뱃불이 어둠에 구멍이라도 뚫을 듯 붉게 타올랐다.밤바람은 차고, 마음은 더 쓸쓸했다.“이 시간까지 안 잔 거야?”육남혁이 다가왔다.“형도 안 자잖아.”오늘 밤, 이 집에서 편히 잠든 사람은 없다.“몸 망가지면 안 된다. 네가 쓰러지면 끝이야.”육남혁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내일 모두 무사할 거야.”“그랬으면 좋겠네.”육강민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민찬이 그 녀석, 어릴 때부터 눈치 빠르고 영리했잖아.”육강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득, 아이의 친부가 떠올랐다.육강민은 반드시 그의 아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었다.그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과거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젖히자, 서은주가 말없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그녀 역시 한숨도 못 잤다는 걸 육강민은 알고 있었다.“은주야…”담배 연기에 잠긴 목소리가 낮고도 거칠게 울렸다.“네.”그녀가 작게 답했다.“민찬이도 소중하지만, 너도 소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너 자신부터 지켜.”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이 사람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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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0화

노설연의 옷차림은 실로 볼품이 없었다.얼굴빛은 누렇게 뜨고 푸석했으며, 머리는 기름져 엉켜 있었다.오랫동안 씻지 않은 듯, 가까이 다가오자, 쉰내가 코를 찔렀다.“민찬이는 어디 있죠?”“그 아이가 걱정돼?”노설연이 비웃었다.“속으론 죽길 바라고 있겠지.”“아닙니다.”“서은주, 연기 그만해. 민찬이가 다 말했어. 네가 뒤에서 몰래 학대한다면서 차라리 죽길 바라는 거잖아. 네 핏줄도 아닌데 무슨 정이 있겠어?”서은주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민찬이가 그렇게 말했다고?그러나 곧 그 의도를 깨닫고 입꼬리를 올렸다.“그래서 죽였나요?”“내가 죽였더라면 너를 돕는 꼴이 됐겠지.”노설연이 낮게 웃었다.섬뜩하게 비틀린,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절대 안 죽이지. 대신 전부 너 때문이라고 했어. 너 때문에 납치된 거라고. 그 애가 널 증오하게 만들 거야.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그 말을 듣는 순간, 서은주의 가슴에서 조여 오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역시 똑똑한 녀석이었다.“알아. 넌 그 애를 진짜로 구하고 싶은 건 아니지. 그래도 겉으론 티 내면 안 되니까, 일부러 온 거겠지. 후처가 얼마나 애를 사랑하는지 다들 보라는 연기일 뿐이잖아.”노설연은 스스로 우위를 점했다고 확신한 듯 웃음을 키웠다.“하지만 여기 온 이상,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설연이 달려들었다.서은주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품속에서 튀어나온 스프링 나이프가 목에 닿았다.차가운 칼날이 피부에 밀착되는 감각이 또렷했고 두려움이 심장을 움켜쥐듯 죄었다.노설연의 눈은 흐리고 초점이 없었지만, 광기에 젖어 있었다.정오의 햇빛이 동공에 부딪혀 불꽃처럼 튀었다.“드디어 네가 내 손에 들어왔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집이 이렇게 되진 않았어. 아버지도 죽지 않았고. 저기, 아버지 묘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해! 안 그러면 지금 당장 죽여 버릴 거야!”노설연의 거친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듣고 있던 경찰들의 긴장도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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