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사극 로맨스 / 부군의 형님 / Chapter 261 -الفصل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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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나으리……”민심자는 눈물로 얼굴을 적신 채 애처롭게 불렀다.고 부인의 안색이 조금 가라앉았다. 유소영이 안살림 권한을 맡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민씨와 비교하자면 훨씬 낫다고 여겼다.민씨는 유소영보다 훨씬 야심이 컸다.또한 민씨가 안살림을 쥔 뒤로는 어느 원 하나 편한 날이 없었다.좌중에 앉아 있던 임유정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사실 그녀 역시 안살림 권한을 탐낸 적은 있었지만, 최근 벌어진 일들을 겪으며 그 지저분한 장부의 실상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도저히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유소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자리에 앉은 고준형은 관심 없는 척했으나 시선은 줄곧 유소영을 향해 있었다.안살림 권한은 어머니와 민씨 부인에게는 탐스러운 고깃덩이였지만, 그가 쥐고 있는 사유 재산만 해도 유소영에겐 이미 충분히 벅찬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후작부의 장부는 엉망진창이었다. 민씨 부인이 냉정하게 분가를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진작 일상 살림조차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유소영에게 이 일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 뻔한 처지였다.유소영 역시 그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시아버지는 겉으로는 공정한 척했지만, 실은 고장훈의 대혼례라는 난장판을 통째로 그녀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었다.그녀는 담담하고도 단정하게 입을 열었다.“아버님께서 저를 믿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맏며느리로서 집안 살림을 돌보는 책임을 기꺼이 지고 싶습니다만…… 제가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충용 후작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뭐가 그리 바쁘단 말이냐? 내가 보기엔 일부러 피하는 것 같구나!”유소영은 고개를 숙이며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아버님, 저는 부군의 몸을 보살펴야 합니다. 하루빨리 후작부의 대를 이을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려 합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장내는 숨소리마저 사라졌다.고준형은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입가에 대고 헛기침을 했다.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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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충용 후작이 떠나자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임유정은 혼이 빠져나간 듯 산송장 같은 몰골로 시녀 진수의 부축을 받으며 난향원으로 돌아왔다. 내실에 들어서자마자 임유정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침상 위의 베개를 잡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았으며, 휘장을 갈갈이 찢어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죽어버려, 다 죽어버려! 좋은 일에는 나를 찾지도 않더니 이딴 난장판은 내게 떠넘기다니! 나를 대체 무엇으로 보는 거야!”진수는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며 뒷정리를 하고 위로를 건넸다. “부인,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비록 빚이 있다 해도 부인께서 집안의 살림 권한을 쥐고 계시니, 연말에 수익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마님 마음대로 하실 수 있지…….”“연말? 내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당장 골칫거리가 산더미인데 내가 어찌 처리한단 말이냐! 그리고 유소영은 왜 빠져나가는 거지? 아이를 낳겠다고? 제까짓 게 아이를 가질 수나 있을까 보냐! 꿈도 야무지군!”임유정의 얼굴에 음험한 기색이 서렸다. 절대 유소영이 후작부의 장손을 먼저 낳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고장훈의 처소는 작위를 물려받을 가망이 영영 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유경원. 유경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소영은 곧바로 고준형에게 해명했다. “세자, 방금 전 제가 안살림을 맡기 싫어 거짓을 고했습니다…….”고준형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답했다. “부인의 의도를 알고 있소.”유소영은 줄곧 팽팽하게 긴장했던 미간을 풀며 미소 지었다. “그럼 다행입니다.”곁에서 세자를 따르던 석심은 속으로 의아했다. 무슨 일이지?세자 부인께서는…... 세자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건가?한편.고 부인은 유소영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감회에 잠겼다.“유소영이 하루빨리 아들을 낳아준다면 나도 마음이 놓일텐데!”비록 며느리가 탐탁지 않았으나, 민씨의 아들이 앞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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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유소영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장훈은 질투가 증오로 변할 만큼 괴로웠다. 임유정은 입을 꾹 닫은 남편을 보며 그동안 쌓아온 불만을 터뜨렸다.“오늘 부군이 계셨더라면 저도 이 지경까지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이미 벌어진 일이니 이제 와 말해봐야 소용없겠으나, 앞으로 어찌할지 대책이라도 세워보십시오!”고장훈은 한 손을 탁자에 얹은 채 얼굴을 굳혔다. 그는 유소영이 형님과 아이를 갖는다는 소식에 자신의 기분이 왜 이토록 엉망이 되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 탓에 임유정에게 대답하는 말투에도 날 선 분노가 섞여 나왔다.“내가 어찌 알겠소! 내일 일찍 가봐야 할 전당포가 있으니 우선 쉬어야겠소!”어렵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전당포가 나타났으니 지체할 수 없었다. 임유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쉬겠다니?순간, 그녀는 유소영이 몹시도 부러워졌다. 되짚어보니 유소영에게 큰일이 생길 때마다 세자는 늘 그녀의 곁을 지키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거나 은근히 힘을 실어주곤 했다. 반면 자신이 늘 고장훈을 필요로 할 때 그는 늘 자리에 없었다! 아니, 있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임유정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제 손으로 고른 남자이니 아무리 못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부군!”임유정은 결연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댁에서도 아이를 갖겠다고 하니, 부군께서도 서두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말을 마치며 그녀는 진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진수가 움직이기도 전에 고장훈이 참을성 없이 나무라기 시작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지금 내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이오!”“진영 일로 하루 종일 바쁘고 영씨 가문에 보낼 혼수 마련도 막막한 판국에, 형님은 군량 사건을 조사하다 누군가의 원한을 샀는지 자객이 들이닥칠까 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데…….”“그래도 아이를 갖는 것 또한 중요한 일 아닙니까!”임유정은 그의 핑계를 더는 듣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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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유소영은 시선을 떨구어 세자의 손에 들린 서신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세자, 저희 유씨 가문은 결백합니다. 다만 상계에서 경쟁하다 보니 원한을 산 동업자들이 더러 있어, 터무니없는 헛소문은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왔지요. 그런데 서신에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그러십니까? 제게도 한번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그녀의 태도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고 무고해 보였다.고준형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유씨 가문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는 서신에 자세히 적혀 있지 않소. 그저 밖에서 만나자는 말뿐이더군. 아마도 발설하는 자에게 무슨 고충이 있는 모양이오.”유소영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그렇다면 세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막을 모른다는 뜻인가?그녀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내 그녀가 물었다. “세자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약속 장소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오.”고준형은 주저 없이 서신을 그녀에게 건넸다.유소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인 끝에 서신을 받아 들었다.그녀는 서신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며 짐짓 가벼운 어조로 떠보듯 물었다.“세자께서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혹 저희 유씨 가문에 정말로 세상을 놀라게 할 엄청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다면 어찌하시려고요?”고준형은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그의 눈빛에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공평하게 대하는 특유의 담담하고도 차가운 무심함이 서려 있었다.“설령 유씨 가문에 진짜 남모를 비밀이 있다 한들 알고 싶지 않소. 그러나 후작부를 생각해서라도 이 밀고자는 부인이 빨리 처리해 주었으면 하오.”유소영은 그가 이토록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어쩌면 이는 매사에 여유로운 그의 성정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다행히 위기는 넘긴 셈이었다.유소영은 가볍게 예를 갖추었다.“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녀가 사라지자 고준형이 고개를 들었다.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심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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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유씨 가문이 언제 민씨 가문을 해쳤단 말이지?유소영은 몸을 돌려 민심자를 무겁게 응시했다.민심자의 눈빛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마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듯한 해탈의 쓸쓸함을 담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화선 일까지 알아냈으면서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는 몰랐단 말이냐! 따지고 보면 다 너희 유씨 가문 탓이다!”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그 속에 담긴 분노와 원망은 감추지 못했다.유소영의 미간이 좁혀졌다.“대체 무슨 말이죠?”민심자는 말할수록 원한이 사무치는 듯했다.수년간 묻어두었던 은밀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우리 아버지는 자의로 관직을 그만둔 게 아니야. 너희 유씨 가문의 누명을 벗기려다 살해당하신 거라고! 우리 가족은 다 죽었어! 나랑 어머니만 남고…… 너희 유씨 가문은 하나같이 재앙 덩어리야!!! 너는 왜 죽지도 않고 살아 있는 거냐!”말을 하던 그녀가 분노에 휩싸여 갑자기 달려들더니 유소영의 목을 조르려 했다.아민이 재빨리 반응하여 그녀를 막아섰다.동시에 아민도 큰 충격을 받았다. 민씨 가문이 그런 참변을 당했다니?유소영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민 대인이 유씨 가문 때문에 돌아가셨다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그녀는 아주 어릴 적 강주를 떠나왔기에 민 대인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민심자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유소영을 비꼬듯 쳐다보았다.“아버지는 진작부터 네 오라버니와 언니 일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걸 아시고 남몰래 조사하고 계셨다. 그 잘난 정의감 때문에 우리 가족이 몰살당한 거야! 너는 언니 하나 죽었지? 내 동생들은 다 죽었는데! 섣달그믐날 밤에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고!”“나랑 어머니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추격해 올까 봐 나서지도 못하고 화선으로 흘러들었지. 어머니는 온몸이 짓물러 손님을 못 받게 되니까 산 채로 강물에 던져져 익사하셨다!”“겨우…… 겨우 살 길을 찾았나 싶었는데, 또 너희 유씨들을 만난 거야! 너 때문에 안살림 권한도 뺏기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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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유소영이 유경원으로 돌아왔을 때, 정면에서 세자와 마주쳤다.그는 외출하려는 듯했다.그녀를 본 세자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오?”“친정에 들러 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입니다.”고준형은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을 알아차렸다. “밀고한 자는 아직 찾지 못한거요?”유소영이 입술을 달싹였다.“예. 사람 사는 세상이 넓으니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하네요.”고준형이 온화한 눈빛으로 그녀를 위로했다.“너무 걱정하지 마시오.”유소영은 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그에게 되물었다.“세자께서는 외출하시는지요?”고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폐하께서 입궁하라 명하셨소. 아마 형부에 임직하는 일 때문일 것이오.”유소영은 순간 의아해했다.전에는 조 대인이 형부에 가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세자까지?고준형은 더 말하지 않고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아민은 걱정이 태산이었다.세자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아씨, 형부의 관직이 몇 개나 되나요? 세자께서 맡으시면 조 대인께도 자리가 있을까요?”유소영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멀어지는 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매가 깊게 가라앉았다.……황궁.황제는 마침내 결심을 굳혀 고준형을 삼품 관직인 형부 시랑에 임명하기로 했다.조담에 대해서는, 만약 그가 여전히 강회산 사건을 조사하고 싶어 한다면 어사대의 한직을 하나 내주어도 좋았다. 사품 어사 중승 자리를 주어 감찰을 보조하게 할 생각이었다.조담이 물었다. “폐하, 신이 형부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가능하다.”그제야 조담이 승낙했다.“어사 중승의 직을 맡겠습니다.”어사대는 위로는 재상을 탄핵하고 아래로는 백관을 조사하니 그 범위가 매우 넓어, 모든 백관이 기피하는 부서라 할 수 있었다.그들이 가장 많이 관여하는 것은 역시 형부와 대리시의 사건 처리였다.사법 처리가 불공정하거나 뇌물을 받고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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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재상부.서재에 둘러앉은 이들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임 재상, 형부에서 이미 손을 썼습니다.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세자가 복직하자마자 이토록 과감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양 대인이 형부에 끌려가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랴부랴 재상께 달려온 것 아닙니까! 형부 놈들, 이번엔 진짜입니다. 묵은 장부까지 죄다 들춰낼 기세라고요!”임 재상의 눈빛이 매섭게 번득였다.“다들 그 입 다물게!”시끄러워서 도통 생각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한편.형부의 감옥.어두컴컴하고 습한 공기가 사람의 의지를 갉아먹고 있었다.몇 시진에 걸친 심문에 멀쩡한 사람이라도 버텨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심문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지치기는 매한가지였다.고준형은 그 한가운데 있었다. 짙은 붉은색 관복이 죄인의 피 묻은 옷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었다.그는 마치 청풍명월을 대하듯, 평온하고 침착한 태도로 공술서를 넘기고 있었다.종이 끝을 누른 길고 마디진 손가락에서 서늘하고 냉담한 기운이 배어 나왔다.“다 자백했느냐.”부하 관원이 즉시 대답했다.“일곱 명을 잡아들였는데, 그중 다섯은 자백했고 나머지 둘은 아직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고준형이 고개를 들어 형틀에 묶인 죄인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더없이 차가웠다.“그 둘은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알겠습니다.”이날, 형부 위로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다.고문실의 핏자국은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았다.해 질 무렵.석심이 마차를 대기시켰다.멀리서 세자가 형부 관서를 나서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얼른 맞이하러 나갔다.“세자!”“돌아가자.”월하각으로 돌아온 고준형은 가장 먼저 피비린내가 밴 붉은 관복을 벗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했다.욕조 가장자리에 기댄 그의 숨소리는 평온하고 길었다.똑똑!석심이 문을 두드렸다.“세자, 저녁상을 준비할까요?”세자는 평소 하루에 두 끼만 먹곤 했다.그러나 이제 복직하여 한가로이 집에 머물던 때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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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유소영은 입을 떼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굳이 세자를 곤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아민, 세자께 밥을 좀 더 드려.”유소영은 황급히 화제를 돌리려 했다.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고준형은 정색하며 그녀에게 대답했다.“이전에는 확실히 부인을 믿지 못했소.”유소영은 말문이 막혔다.이 남자, 정말이지 고지식할 정도로 솔직하군.믿지 못하고 사유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리기 싫어서 여태껏 가난한 척했단 말인가!유소영은 더 이상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이번 달치 일만 은은 잠시 후 아민을 시켜 가져오게 하겠습니다.”고준형은 조금도 후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장부실 열쇠가 부인 손에 있으니 알아서 하시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섰다.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강지영은 현재 대리경 이삭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이삭은 실로 청렴한 장관이었다. 십수 년간 관직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식솔들과 함께 이진원 저택에서 부대끼며 지내고 있었다.그는 유소영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세자 부인, 지난 대혼례 날에는 결례를 범했습니다.”그날 유씨 가문의 군량 매매 사건을 조사하느라 혼례가 중단되었던 일을 유소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빙그레 웃었다.“이 대인께서도 명을 받들어 하신 일인데 어찌 탓하겠습니까.”이윽고 이삭이 직접 두 사람을 뒤채로 안내했다.“강 소저는 방 안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제 집사람의 먼 친척 누이동생이라 해두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고준형이 그에게 예를 표했다. “배려에 감사립니다, 이 대인.”이후 유소영은 강지영의 상태를 살피러 들어갔고, 고준형과 이 대인은 남녀 간의 예법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 기다렸다.두 사람은 군량 사건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방 안.강지영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유소영은 진찰을 마친 뒤 침을 놓아도 되겠다고 판단했다.한 시진이 지났다.유소영은 그제야 간신히 침을 거두었다.그녀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문이 열리자 고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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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마차 안.유소영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창밖의 밤은 옅은 안개에 휩싸여 그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고준형은 차가운 기색으로 앉아 손가락을 가볍게 비비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한 시진 후.유소영이 마차 안에서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곁에 앉은 세자의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비몽사몽간에 물었다.“어디까지 왔습니까?”말을 하며 그녀는 창 휘장을 걷어 밖을 내다보았다.고준형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거리 하나만 더 지나면 후작부요.”그의 시선이 있는 듯 없는 듯 유소영에게 머물렀다.유소영은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는지 목을 매만졌다.자다가 목을 삐끗한 모양이었다.“강 소저의 회복세가 좋으니 곧 깨어날 것입니다.”고준형은 건성으로 듣는 듯했다.“수고했소.”“별말씀을요. 돕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요즘 군량 사건 때문에 부인까지 연루될까 염려되니 바깥출입을 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시오.”유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하루빨리 사건을 해결하시길 바랍니다.”……이튿날.유소영에게 초대장이 한 통 도착했다.아민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아씨, 이건 팔음아사잖아요!”유소영도 익히 들어본 곳이었다.팔음아사는 아악을 즐기는 장공주가 설립한 모임으로, 관원들의 부인 중 음률과 악기에 능한 이들을 선별해 구성했다.그 이름은 주나라 때 악기를 재료에 따라 금, 석, 사, 죽, 포, 토, 혁, 목으로 분류한 데서 유래했다.이 여덟 가지는 다시 세분화되는데, 석에는 경이, 사에는 금과 슬이, 죽에는 소가 속하는 식이었다.그러나 팔음아사가 그저 한가롭게 악기나 연주하는 모임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겉으로는 음률을 연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장공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부인들의 조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팔음아사의 부인들은 저마다 최신 정보를 쥐고 서로 은밀하게 소통했다.개중에는 장공주에게 줄을 서기 위해 아내를 맞을 때 음률에 능통한 여인을 최우선으로 꼽는 관원들이 있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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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이분이 바로 고 세자의 부인이신가 보군요?”유소영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절을 올렸다.“제가 늦었습니다. 언니들께서는 괘념치 마세요.”그녀는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부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언니는 무슨. 내 나이면 세자 부인 어머니 뻘은 될 거요!”유소영은 오기 전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여인은 호부 상서의 부인 이씨였다.호부는 군량과 세금, 급여와 군자금을 관장하니…… 그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상서 부인은 얼핏 보기에 인상이 꽤 온화해 보였다.그때, 한 젊은 부인이 귀비선을 흔들며 자리에 앉은 채 빈정거렸다.“세자 부인께서 상인 출신이라 들었는데, 오늘 보니 그 기품이 대단하네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가에서 교육받은 소저인 줄 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연노랑 치마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생김새가 화려했고, 보기에도 가장 젊어 보였다.방금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으나 속은 경멸과 비꼬움이 담겨 있었다.유소영은 그녀가 이 좨주의 부인 류씨임을 알아보았다.좨주는 비록 사품이긴하나, 국자감 전체를 관장하는 자리였다.국자감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대부분 재능이 출중하여, 과거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바로 조정에 나아가 관직을 얻고 요직을 맡을 수 있었다.고준형 또한 국자감에 다닌 적이 있으니, 법도 대로라면 류씨를 스승의 부인이라 하여 사모님이라고 높여 불러야 했다.류씨는 첩실에서 정실로 승격된 인물로 남편과는 마흔 살 차이가 났다. 남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는데, 버들 허리에 연꽃 같은 자태, 봄바람이 교태를 부리네라는 시 한 구절이 그녀 덕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유소영은 미소를 머금은 채 침착하게 대꾸했다.“이 부인께서 과찬이십니다. 명문 세가 출신은 상서 부인이시지요. 어찌 저 같은 출신과 비할 수 있겠습니까?”류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유씨, 입담이 보통이 아니구나!상서 부인을 이용해 나를 반박하다니! 이간질하려는 속셈이 다분하다!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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