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ício / 사극 로맨스 / 부군의 형님 / Capítulo 271 - Capítulo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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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장공주는 침착하고도 인내심 있는 어조로 말했다.“군량 사건은 유래가 오래되었다. 수차례 조사를 반복해 왔지만 이번처럼 움직임이 컸던 적은 없었지. 폐하께서 이번에야말로 뿌리를 뽑으시려는 게야.”“이 팔음아사도 연루된 관원들이 적지 않다. 유씨를 통해 세자에게 내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겸사겸사 그 관원 부인들한테도 경고를 주려는 거지.”복양 군주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녀가 물었다. “팔음아사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고모님께서는 이번 기회에 고 세자를 포섭하시려는 건가요?”장공주는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남 얘기는 그만하고 네 얘기나 해 보자꾸나. 오늘은 웬일로 나를 찾아왔느냐?”복양 군주는 즉시 애교를 부렸다.“다음 달이 황 백부님의 생신이시잖아요. 그래서 장생선을 연주해 드리고 싶은데, 팔음아사에 좋은 거문고도 있고 훌륭한 스승님도 계시니 고모님을 찾아왔지요.”“장생선은 꽤 어려운 곡인데 네가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고모님, 절 너무 얕보시는데요!”장공주는 슬하에 자녀가 없어 복양 군주를 끔찍이 아꼈다.“그래, 알았다. 스승을 구해 주마.”…….한 시진 후.팔음아사의 모임이 끝나고 부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유소영이 상서 부인에게 물었다.“조 부인, 오늘 장공주께서 아사에 오셨습니까?”상서 부인이 물었다. “장공주를 뵙고 싶으신가요?”“아사에 처음 왔으니 장공주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그때, 류아연이 다가왔다.그녀가 교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부인, 장공주께서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시면 알아서 사람을 보내 청하실 겁니다. 함부로 방해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요.”유소영은 그녀에게 아랫사람으로서의 예를 갖추었다.“사모님의 조언 감사드립니다.”“아니, 아니, 난 그 사모님 소리가 정말 듣기 싫어요. 고 세자가 자신의 은사인 강 태부 일가에게 얼마나 모질게 대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걸요!”이 부인은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러고는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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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유소영은 뻣뻣하게 굳은 채 몸을 돌렸다.뒤쪽 회랑에서 고준형이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청백색 평상복 차림의 그는 온화해 보이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순간, 유소영은 마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놓인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차디찬 얼음 굴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발버둥 쳐봐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세자…….”유소영은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떴다. 급히 표정을 수습했으나 눈에 서린 놀라움은 감출 수 없었다.어찌 이곳 팔음아사에 계신단 말인가?언제부터 와 계셨지?방금 조 대인과 나눈 이야기를 얼마나 들으셨을까?조담은 고준형을 보자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형부에 몸담고 계신 고 대인께서 어찌 이리 한가하시오?”고준형은 침착한 기색으로 서두르지 않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아내를 데려가려던 참이오. 어사대는 일이 많지 않은가 보오.”그는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조담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난 복양을 데리러 왔소.”고준형의 시선이 다시 유소영에게 머물렀다.“방금 무슨 기록을 논하고 있었던 거요?”그의 수려한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감돌아, 얼핏 대하기 쉬운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하지만 유소영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그녀는 목이 타들어가 입을 벙긋거렸다.막 입을 떼려던 찰나, 맞은편의 조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 정도 거리였으니 고 대인이 잘못 들었을 수도 있겠소. 우린 기록에 대해 말한 게 아니라…….”고준형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기색이 스쳤다.“조 대인, 별일 없으면 내 아내와 먼저 일어나겠소.”조담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막을 명분이 없었던 그는 유소영이 고준형을 따라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유소영은 본래 자신의 마차를 타고 왔었다.하지만 고준형이 말했다. “내 마차에 타시오.”그가 눈짓을 보내자 석심이 즉시 발받침을 가져와 유소영이 오르기 편하게 했다.무거운 거문고를 안은 아민은 아씨가 걱정스러운 듯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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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고준형은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기록은 기밀이라 부인이 마음대로 열람하게 할 수는 없소.”유소영의 호흡이 무거워졌다.그녀는 격앙된 채 그의 팔을 붙잡았다. “세자, 방금 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저와 혼인한 일이 다른 일과 무슨 관계라도 있다는 건가요?”그녀는 방금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할 때, 고준형의 반응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담담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치…… 이미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처럼.고준형은 자신의 말을 이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 줄 수 있소. 그해, 강 태부가 대리 시험 부정 사건에 연루되었던 건 사실이오.”유소영은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고준형을 쳐다보았다.“그럼…… 정말 그분이 제 오라버니를 해친 것입니까?”고준형은 그녀가 팔을 붙잡도록 내버려둔 채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부인도 잘 알지 않소. 은사께서 누군가를 등용하고자 하셨다면 굳이 대리 시험 같은 수를 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그럼 어찌 된 일입니까!”유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당시 은사는 열 가지가 넘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계셨소. 대리 시험 부정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고, 심지어 사소해 보이기까지 했지.”유소영의 호흡이 가빠졌다. “사소하다고요? 제 오라버니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고준형은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 말실수였소.”“다른 죄목들에 비해 대리 시험 건은 큰 사건이 아니었다는 뜻이오. 당시 사건을 맡은 관원들도 굳이 그 건을 깊게 파고들려 하지 않았지.”“내가 막북에서 돌아온 후 은사의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 그분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모두 순순히 자백하셨소.”“오직 대리 시험 건만 빼고 말이오…….”고준형이 잠시 말을 멈췄다.유소영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대리 시험 사건이 어쨌다는 거죠?”고준형은 그녀를 응시하며 얇은 입술을 열었다.“대리 시험 부정은 은사께서 주도한 일이 아니었소. 그러나 그분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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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유소영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눈빛은 서늘했다.그녀는 멍한 눈길로 고준형을 쏘아보았다.“속죄라니요……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오라버니의 고통을 대가로 제 안위를 얻는 것도, 강회산이 구천에서 편히 쉬게 되는 것도 용납 못 합니다!”“진정한 속죄는 천하에 진상이 밝혀지는 것뿐입니다.”“그런데 지금 강회산의 판결을 뒤집어 그의 명예를 되찾아주려 하시다니…… 정말 우습군요!”곧이어 그녀가 밖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세워라!”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석심은 서둘러 속도를 줄였다.유소영은 마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다급히 뛰어내리려 했다.가슴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그 역겨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세자를 살려낸 덕분에 그 은혜를 입어 세자 부인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 믿었었다.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오라버니의 결백과 언니의 죽음을 맞바꾼 결과였다니!세자가 대의를 위해 혈육의 정도 끊어내고 유씨 가문의 과거조차 개의치 않으니 믿고 의지할 만한 분이라 여겼었다.그러나 그 모든 게 강회산을 위한 것이었다! 정의니 뭐니 하는 것은 그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법을 어긴 죄를 덮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 아닌가!진정 정의로운 분이라면 진상을 밝혀 하루빨리 오라버니의 누명을 벗겨주셨어야 했다!유소영이 마차에서 뛰어내리려 했다.순간, 강한 힘이 그녀를 낚아채 다시 안으로 끌어당겼다.그녀의 팔을 붙잡은 사내의 손등에는 푸른 힘줄이 돋아 있었다.그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어 그녀를 옭아맸다.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서 서늘한 한기가 일렁였다.“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나와 화리하겠다는 거요?”“그렇습니다!”“유씨, 그대가 세 살배기 어린애요? 이 일이 어디 그대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인 줄 아오?”유소영은 발버둥 쳐 보았으나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놓으십시오!”고준형의 어조는 지극히 평온했다.“내 행동이 그대의 바람에 어긋났단 말이오?”“고장훈에게 시집가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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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유소영은 격렬하게 반응하며 고준형의 손을 쳐냈다.“마차를 바꿔 타겠습니다!”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안색은 유달리 싸늘했다.고준형은 그녀가 지금 자신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잠시 침묵하다가 석심에게 마차를 세우라 명했다.석심은 세자와 부인이 다투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또한 마차를 세우자마자 부인이 휘장을 걷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그는 순간 멍하니 멈칫했다.“부인, 어찌…….”유소영은 석심에게조차 차가운 기색을 보이며 대꾸 한마디 없이 곧장 내려버렸다.부인이 자신의 마차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석심이 세자에게 물었다.“세자, 부인의 뒤를 따르겠습니까?”“그래.”세자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났다.……아민은 영문도 모른 채, 아씨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자 사태가 심각함을 직감했다.그녀는 감히 묻지도 못하고 거문고를 끌어안은 채 구석에 웅크렸다.가는 내내 고준형의 마차가 그 뒤를 따랐다.후작부에 도착하자 유소영은 평소처럼 남편의 뒤를 따르던 예를 버리고, 세자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곧장 저택으로 들어가 버렸다.향설원.심씨 어멈조차 세자 부인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그녀는 아민을 따로 한쪽으로 불러내 물었다.“부인께서 왜 저러시느냐?”아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자의 마차에서 내리신 후로 계속 저러십니다.”심씨 어멈은 즉각 부정했다.“분명 세자 탓은 아닐 게다. 세자의 성품이 얼마나 온화한지 다들 알지 않느냐. 팔음아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냐?”아민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닐 거예요! 제 생각엔 세자가 제일 의심스러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씨 어멈은 세자가 이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아민에게 입을 다물라는 눈짓을 보냈다.두 사람은 함께 예를 갖췄다.“세자.”고준형은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치 빠른 심씨 어멈이 물었다.“세자, 부인을 찾으십니까?”고준형은 망설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부인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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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고준형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비참한 기색을 보였다. “막북 전쟁이 한창일 때 은사께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소.““대전 중 가장 참혹했던 망산 전투는 군량이 제때 도착하지 않은 탓에 아군의 사상자가 속출했지.”“군대를 철수한 뒤 대리시에서는 이미 은사의 여러 죄목을 밝혀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군량 횡령이었소.”유소영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그렇다면 강회산의 탐욕이 망산 전투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뜻이었다. 그녀 역시 세자가 망산에서 죽을 뻔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고준형의 이야기가 이어졌다.“나는 돌아온 뒤 은사를 찾아가 사실인지 여쭈었소.”“은사는 모든 죄를 순순히 자백하더군.”“동시에 막북 원정에 나섰던 무장들을 중심으로 무장 집단 결성되어, 망산에서의 희생에 분노하며 횡령범을 즉각 처형하라는 연명 상소를 올렸소.”유소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병들의 생명줄을 탐욕스러운 문관들이 쥐고 흔들었으니 그 갈등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갔다. 게다가 조정의 문관과 무장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군량 횡령 사건은 단지 그 갈등에 불을 지핀 격이었다. 고준형이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은사는 문하생이 많았고, 그들은 스승을 지키려 애썼소. 양측의 기 싸움에 조정의 여러 공사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지. 무장들은 급기야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폐하께 엄벌을 요구했소.”유소영이 물었다. “대리시에서 이미 강회산의 죄를 밝혀냈는데, 폐하께서는 왜 즉시 처형하지 않으셨습니까?”“문관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오. 은사의 평소 성품이 워낙 청렴했던 터라 모두들 무고를 주장했지. 심지어 대리시의 공신력마저 의심하며 재조사를 요구했소.”“그래서 폐하께서 이 사건을 세자께 맡기신 겁니까?” 유소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시 사건이 이토록 복잡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생각해보면 문관과 무장 양측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적임자는 세자뿐이었을 것이다. 그는 강회산의 애제자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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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고준형이 인내심 있게 설명을 이어갔다. “군량 사건에 연루된 관원이 워낙 많아 그들을 모조리 처벌한다면 조정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오. 임 재상 무리는 뼛속까지 파고든 구더기와 같아서, 이를 제거하려 들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한 무리를 내치면 반드시 새로운 무리를 올려야 하니, 백관이 개편되면 자연스레 새로운 당파가 형성되는 법이라오.”“장공주께서 멀리 내다보시고, 이 사건이 끝난 뒤 내가 폐하의 중용을 받을 거라 여겨 미리 부인을 팔음아사에 넣으신 모양이군.”유소영은 이해되지 않는 듯 물었다. “폐하께서 세자를 중용하시는 건 기정사실 아닙니까?”고준형이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 “은사의 사건이 마무리되면 나는 관직을 사직할 것이오.”유소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찰나의 충격은 받았으나 아주 뜻밖인 것만은 아니었다. 세자는 이전에도 관리 사회를 혐오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사직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가 줄곧 병자 행세를 해온 것 역시 이 때문일 터였다.“만약 세자께서 사직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팔음아사에 들어가는 것이 세자께 방해가 될까요?““팔음아사가 부인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라는 건 알지만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 장공주를 신임하시는 건 그런 행위를 묵인하신다는 뜻이니, 우리도 이를 이용해 정보를 알아낼 수도…….”고준형이 평온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면 결국 남에게 휘둘리게 되는 법이오.”유소영은 즉시 깨달았다. 세자는 저들과 어울려 당파를 만들고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팔음아사의 존재 역시 본질상으로는 한데 뭉쳐 이득을 꾀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사의 일은 더 깊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강회산 사건을 밝혀 오라버니와 언니를 해친 진범을 찾는 것이 그녀에겐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으니까.……향설원. 아민은 유소영의 잠자리를 보살피다 침상 주변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녀를 보았다. 월하각에서 돌아온 뒤로 아씨는 줄곧 시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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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고 부인의 눈빛에 교활한 계산이 서렸다.고장훈이 진수에게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일에 굳이 관여하지 않았다.공적으로 보아도 안주인이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통방이 먼저 후사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전에 진수가 회임하기를 바랐던 건, 생모를 없애고 아이만 남겨 임유정의 호적에 올릴 심산이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영선화가 곧 장훈에게 시집올 예정이니, 영선화가 직접 아이를 낳으면 될 일이었다. 굳이 진수라는 사족을 달아 임유정에게 좋은 일을 시켜 줄 필요가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고 부인의 마음은 친정 조카에게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고장훈이 진수를 멀리하는 것을 묵인한 것이다.그녀는 임유정의 속내 또한 훤히 들여다보였다. 유소영이 장손을 먼저 낳아 기선을 제압할까 봐 겁이 나, 급한 마음에 진수라도 회임시키려는 것이리라. 시어머니인 자신더러 고장훈을 설득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임유정을 달래 안살림을 계속 맡기기 위해, 고 부인은 겉으로만 들어주는 척했다.“그건 장훈이가 잘못했네. 돌아오면 내가 잘 타 이르마.”임유정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그러나 밤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고 부인이 고장훈에게 한 말은 딴판이었다.“진수 그 아이는 출신이 천하여 네 장자를 낳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다.”“너와 선화가 곧 혼례를 올릴 테니 후계 문제는 서두를 것 없다.”“장자의 생모는 모름지기 신분이 고귀해야지. 다만, 유정의 비위도 적당히 맞춰 주고......”고장훈은 여전히 어머니가 유소영의 지참금을 빼돌렸던 일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반성했을 거라 믿었건만, 여전히 친정 식구들 챙길 생각뿐이라니!그는 퉁명스럽게 되물었다.“어머니께서는 그저 사촌 누이가 제 장자를 낳아 친정 핏줄을 잇게 하고, 이 후작부의 작위를 물려받게 하려는 속셈 아니십니까?”“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처음에 유정에게 약속하길, 사촌 누이가 낳은 첫 아들을 유정의 이름 밑에 올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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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국씨 어멈이 이토록 서둘러 일을 꾸미는 것을 보자 유소영이 즉각 입을 열었다.“국씨 어멈, 세자의 몸이 아직 온전치 않아 약을 드시는 중이네.”국씨 어멈이 고준형을 바라보았다.그는 즉시 병약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안색이 창백하여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아민도 재빨리 거들었다.“맞아요. 이건 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에요. 세자의 건강을 해칠 수는 없잖아요!”국씨 어멈은 의외로 순순히 말을 들었다.“하기야, 확실히 서두를 일은 아니지요.“그러나 적어도 세자와 부인께서 한 곳에서 주무셔야 정이 쌓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단번에 성공하여 고생을 덜 하실 테니까요.”유소영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녀는 고준형에게 눈짓을 보내 거들어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국씨 어멈을 얼른 돌려보내라는 뜻이었다.고준형이 가볍게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나와 부인은 이미 각자의 원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네. 그러니…….”국씨 어멈은 그들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일을 진행시켰다.“이 늙은이도 다 생각이 있답니다. 세자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밤에만 잠시 머무시면 됩니다. 낮에는 하시던 대로 하셔요. 밤일에 너무 빠져 몸을 상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고준형은 국씨 어멈의 이토록 세심한 배려에 감사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유소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뜨거워졌다.국씨 어멈이 말을 이었다. “이 늙은이가 이미 잠자리를 봐두었으니 세자께서는 오늘 밤부터 향설원에 머무시지요! 석심, 자네는 월하각으로 가서 세자의 침의를 가져오게.”석심은 할 말을 잃었다.정말 가야 하나?결국 고준형이 명을 내렸다. “다녀오거라.”내뱉은 거짓말은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지금 그는 오로지 사건 조사에만 전념하고 싶었지, 어머니 쪽의 의심을 잠재우느라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유소영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어차피 국씨 어멈이 하루 종일 감시할 수는 없을 테니 적당히 둘러대면 될 일이었다.그러나 유소영은 국씨 어멈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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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국씨 어멈의 안마는 힘이 너무 실려 있었다.한바탕 시달린 유소영이 문득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순간, 세자가 때맞춰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부축했다.물론 호의로 그런 것이었다.하지만 그가 짚은 곳은 공교롭게도 국씨 어멈이 모질게 문질러댄 부위였다. 마치 상처에 칼을 들이대는 듯한 통증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다.“아윽…….”유소영은 제어할 새도 없이 그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겼다. 오직 그 손에서 멀어지기 위함이었다.고준형은 뻣뻣하게 굳은 채 서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일렁였다.그는 유소영을 떼어놓으려 했다.하지만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세요! 건드리지 마세요…… 잠시 진정 좀 하게 해 주세요.”온몸의 살가죽이 욱신거려 더는 고통을 감내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고준형은 그녀의 말대로 들어 올렸던 손을 다시 내렸다. 두 팔을 몸 양옆으로 늘어뜨린 채 품 안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서 있을 수 있겠소?”“예.”유소영은 천천히 허리의 통증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 과정은 마치 부서진 목각 인형을 다시 조립하는 것과 같았다.몸을 바로 세운 그녀가 나직이 불평했다. “국씨 어멈의 손길은……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듭니다.”고준형은 그녀가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침구는 내가 찾겠소. 우선 다시 누우시오. 내가 부축해 주겠소.”유소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팔을 붙잡고 의지해 다시 자리에 누웠다.그녀는 고준형에게 궤짝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그러나 고준형이 궤짝을 열자, 침구라고는 하나도 없었다.유소영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어제만 해도 분명 보았는데요.”고준형은 난처한 기색을 비쳤다.“국씨 어멈이 죄다 가져가 버린 모양이오.”어머니 곁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국씨 어멈이 가장 눈치가 빠르고 일 처리가 능숙했다.이번에 어머니께서 국씨 어멈을 유경원으로 보내신 것을 보면, 장손을 보기를 얼마나 고대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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