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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Author: 서린화
금영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신첩은…… 조금도…… 우연 같지 않사옵니다.”

황제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우연이 아니라고?”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금영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황제의 눈동자에 짙게 내려앉은 어둠에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게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얼마 전 진국공부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우연이 아니라고 해 봐야 황제가 믿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금영 자신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다 문득 서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평소의 온화함이 조금도 없었다.

대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냉기가 배어 있었다.

그제야 금영은 새삼 깨달았다.

황제가 아무리 자신에게 다정하다 해도, 천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의 위엄은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금영은 그저 오늘 있었던 일을 먼저 솔직히 털어놓으려 했을 뿐이었다.

훗날 누군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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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8화

    태자의 목소리가 전각 안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금영은 맑은 두 눈에 엷은 물기를 머금은 채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황제의 가슴이 순간 조여 왔다.조금 전 자신이 금영을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황제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스쳤다.금영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금영을 괜히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단정하고 온화하며 행동 하나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자신은 대체 금영에게 무슨 화를 내고 있었단 말인가.황제는 천천히 금영을 놓아주며 나직이 말했다.“짐이 잘못했다. 금영아, 네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거라.”그런 황제를 보자 금영은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날 것 같았다.“정말 신첩 마음대로 해도 되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금영의 화만 풀린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이상하게도 늘 먼저 화를 내는 쪽은 황제였지만, 금영이 서럽고 속상한 얼굴을 하는 순간 아무리 큰 잘못이라도 전부 자신의 잘못이 되고 말았다.황제는 이미 금영을 놓아준 상태였다.그런데 이번에는 금영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먼저 두 팔을 뻗어 황제의 목을 감쌌다.살짝 힘을 주어 그 고고한 머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더니 그대로 황제의 어깨를 힘껏 깨물었다.전각 안은 숯불을 넉넉히 피워 따뜻했고 황제가 입은 옷도 그리 두껍지 않았다.갑작스레 제대로 한입 깨물린 황제가 통증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말소리라면 일부러 낮출 수 있었겠지만, 미처 참지 못한 그 신음은 희미하게나마 문밖까지 새어 나갔다.밖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손복안에게는 이제 웬만한 일쯤은 놀랍지도 않았다.그래도 그는 저도 모르게 태자를 한번 바라보았다.태자전하는 설마 원비마마께서 지금 현청전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태자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바닥에는 노란 납매 꽃잎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금영이 안에 있었다.태자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7화

    금영이 막 책상 앞까지 걸어갔을 때였다.밖에서 손복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태자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금영의 발걸음이 그대로 멎었다.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누…… 누가 왔다고?’‘태자 저 재앙 덩어리, 수강궁으로 간 것 아니었나? 그런데 어찌 벌써 현청전까지 온 거지?’금영은 고개를 돌려 황제를 한번 바라보았다.황제의 얼굴은 먹물이 뚝뚝 떨어질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현청전 안의 공기마저 숨이 막힐 만큼 무겁게 내려앉았다.황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금영은 조금 전 그가 했던 말대로 먼저 물러날 생각이었다.금영이 전각 문 앞까지 걸어가 손을 뻗었다.막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뒤에서 황제의 손이 뻗어 와 금영의 손을 그대로 문 위에 눌러 잡았다.금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문 쪽으로 밀렸다.황제는 곧바로 몸을 숙여 금영에게 바짝 다가왔다.그리고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억울하고 서운한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가지 마라.”금영은 기가 막혔다.억울한 사람은 자신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먼저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이제 와서는 마치 자신이 지아비와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금영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한마디도 채 꺼내기 전에 황제의 뜨거운 입술이 먼저 내려앉았다.손복안은 안으로 통보를 올린 뒤에도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태자를 슬쩍 바라보았다.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태자를 돌려보낼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그런데 마침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위명이 손복안을 한번 흘끗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폐하! 태자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저 간신배, 아까는 목소리를 어찌나 작게 냈는지 폐하께서 아예 못 들으신 모양이군!’위명은 외치고 난 뒤 제법 뿌듯한 얼굴로 손복안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잘 보고 배우십시오!’손복안은 어이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6화

    금영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신첩은…… 조금도…… 우연 같지 않사옵니다.”황제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우연이 아니라고?”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금영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황제의 눈동자에 짙게 내려앉은 어둠에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이게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얼마 전 진국공부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지 않았던가.우연이 아니라고 해 봐야 황제가 믿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금영 자신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다 문득 서늘하게 웃었다.그 웃음에는 평소의 온화함이 조금도 없었다.대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냉기가 배어 있었다.그제야 금영은 새삼 깨달았다.황제가 아무리 자신에게 다정하다 해도, 천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황제의 위엄은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금영은 그저 오늘 있었던 일을 먼저 솔직히 털어놓으려 했을 뿐이었다.훗날 누군가 이 일을 빌미 삼아 자신에게 덫을 놓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자신이 너무 먼 앞날까지 걱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판국에 무슨 훗날을 걱정한단 말인가.당장 눈앞의 고비부터 넘기기 어려워 보였다.황제가……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황제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짐에게 말해 보거라. 둘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느냐?”금영이 깜짝 놀라 황급히 답했다.“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사옵니다!”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위험한 기색이 번졌다.“그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금영이 서둘러 덧붙였다.“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사옵니다! 태자전하께서 그저 신첩에게 문안을 올리셨을 뿐이옵니다.”“예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느냐?”금영은 그 말을 듣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했다.예전이라니!자신과 태자의 과거는 이제 금영에게도 전생처럼 아득한 일이었다.대체 태자와 무슨 옛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단 말인가.금영이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5화

    그렇게 생각하자 태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씁쓸함이 조금 가셨다.대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달콤함과 애틋함이 피어올랐다.금영의 마음속에 이토록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 그녀를 제 곁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금영은 이 벽옥 팔찌의 진짜 내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사실 황제는 금영에게 수많은 진귀한 물건을 내렸고, 팔찌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그런데 금영은 이 벽옥 팔찌가 조부가 자신에게 남긴 선물이라 여겼다.그래서 더욱 뜻깊게 생각해 줄곧 손목에 차고 다녔던 것이다.조부는 해마다 금영의 생일이 되면 선물을 하나씩 마련해 주곤 했다.조부가 세상을 떠난 그해에도 저택에 금영의 선물을 남겨 두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금영이 저택으로 돌아온 뒤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당시 금영의 처지도 난처해진 터라 굳이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그런데 올해, 조부의 책상 위에 있던 목함이 뜻밖에 나타났고 그 안에는 이 벽옥 팔찌가 들어 있었다.그 때문에 이런 오해까지 생기고 만 것이다.금영은 태자가 여전히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싸늘하게 말했다.“태자전하께서 가지 않으시겠다면 본궁이 가겠습니다.”태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그저 이곳을 지나던 길에 원비마마를 뵙고 문안을 올리러 왔을 뿐이옵니다. 마마의 흥을 깨뜨릴 생각은 없었사오니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태자가 손을 놓자 눌려 있던 나뭇가지가 가볍게 흔들렸다.순간 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우수수 떨어져 금영의 머리 위를 하얗게 덮쳤다.금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태자는 정말 자신과 상극인 모양이었다.전생에는 태자와 혼약을 맺었다가 결국 그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그런데 이제는 혼약도 사라졌건만 마주치기만 하면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정 누구 하나 괴롭혀야겠다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는가.이를테면 배명월이라든가!해수가 서둘러 금영의 머리와 옷자락에 묻은 눈을 털어 주었다.금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에서 끓어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4화

    해수가 웃으며 말했다.“마마께서 뭐가 그리 무서우시겠사옵니까.”“저분들이 먼저 마마께 실례를 범했으니 마음이 불안해서 겁을 먹은 것이옵니다.”말을 마친 해수가 앞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반짝였다.“마마, 저기 보시옵소서. 앞에 납매 한 그루가 있사옵니다. 가서 한번 보시겠사옵니까?”금영은 방금 전의 일을 그다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그대로 천천히 납매나무 아래로 걸어갔다.노란 옥을 빚어 놓은 듯한 꽃들이 때맞춰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가지와 꽃잎 위에는 아직 희끗희끗 눈이 쌓여 있어 더욱 운치가 있었다.금영은 한동안 납매꽃을 바라보았다.볼수록 마음에 들었다.그녀는 뒤따르던 내관에게 분부했다.“가서 가위 하나 가져오너라.”오늘 금영을 따라나선 내관은 모두 넷이었다.한 명을 보내도 곁에는 아직 셋이나 남아 있었다.금영은 납매나무 아래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마침 이날 태자도 태후와 서 황후께 문안을 올리기 위해 궁에 들어와 있었다.태후의 처소로 가려면 어화원을 가로질러야 했다.길을 걷던 태자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멀지 않은 납매나무 아래 두 사람이 서 있었다.그중 한 사람은……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금영이었다.태자의 발걸음이 잠시 굳었다.본래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뜻밖에도 방향을 틀어 금영 쪽으로 걸어갔다.뒤따르던 신귀안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전하, 여기는 어화원이옵니다! 원비마마 곁에는 시종들도 있사옵니다. 혹시 폐하께서 아시기라도 하시면……”태자는 담담히 말했다.“원비마마도 이제는 내게 웃어른이시다. 마주쳤으니 문안을 올리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겠느냐.”신귀안은 태자의 뒤를 따르면서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하필이면 왜 저분께 문안을 올리겠다는 것인가!예전의 신귀안은 태자에게 금영까지 태자부로 들이라 여러 차례 부추긴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의 금영은 아무런 뒷배도 없는 서녀에 불과했다.세월이 흐르고 형세가 달라진 지금, 금영은 이제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3화

    금영이 입을 열었다.“여비는 아이를 잃은 일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오늘 여비가 보인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해수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그 일이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진상을 알아보지 않으신 것이옵니까?”금영이 말했다.“그녀가 알아보지 않았다고 네가 어찌 아느냐?”“본궁은 공 상궁이 남몰래 돕고 있는데도 알아낸 것이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여비야 오죽하겠느냐.”후궁의 비빈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세력이 있었고, 뒤를 받쳐 줄 가문도 있었다.하지만 궁에서 안하무인으로 구는 여비를 보면 정작 곁에 쓸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 듯했다.서 황후나 현비가 굳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황제와 조정의 대신들이 여비가 대량 조정 안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결국 여비는 겉으로만 화려할 뿐 실속은 없는 처지였다.그런 그녀가 혼자 힘으로 구 년 전의 진상을 밝혀내려 했으니 어찌 쉬웠겠는가.물론 금영이 여비에게 접근한 것도 동정해서는 아니었다.이 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넘쳐 나는 동정심이었다.금영에게는 여비를 칼로 삼아 서 황후를 찌를 생각도 있었다.“이제 여비가 본궁이 호의로 내민 연고를 받아들였으니, 오늘 본궁이 한 말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언젠가 본궁을 믿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금영이 옅게 웃었다.구 년 전의 일이 순조롭게 파헤쳐진다면 꽤나 볼 만한 판이 벌어질 터였다.게다가 구 년 전에는 금영이 아직 입궁하기도 전이었다.아무리 일이 커져도 그 불똥이 금영에게 튈 까닭은 없었다.이제는 그저 여비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협방전을 나온 금영은 곧장 돌아가지 않고 어화원으로 향했다.그동안 좀처럼 밖을 나서지 못해 답답함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사실 아이를 낳고 산후 몸조리를 시작한 뒤에만 외출을 삼간 것이 아니었다.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한 뒤부터 금영은 이미 바깥출입을 크게 줄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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