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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Chapters

제201화

고준안의 발걸음이 문밖에서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종종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목이 타는 느낌이 들자, 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계연수는 그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사옥현은 지난번에 피를 토한 적 있고 방금 어멈에게 들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오라버니, 그냥 돌려보내는 게 좋겠어요. 만약에 안 가고 버틴다면 사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리고 불필요한 입씨름은 하지 마세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오라버니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고준안은 계연수가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알았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계연수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연수야,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하마.”다정한 그의 말투에 계연수는 잠깐 당황했지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평소의 침착하고 무덤덤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그녀보다 육개월 먼저 태어난 고준안은 소년 시기에 반항기 심하고 장난을 좋아했다. 비록 글공부는 우수했지만 늘 뒤에서 그녀를 놀래키기 좋아하던 소년이었다.그 후, 그의 아버지와 고씨 가문에 변고가 생기고 그녀는 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와 따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다.이제 와서 보니 고준안은 더 이상 그녀가 기억하는 철없는 소년이 아니었다.‘하긴, 사람은 다 변하기 마련이지.’지금의 고준안은 어느새 침착하고 믿음직스러운 가문의 기둥으로 성장해 있었다. 외할머니도 늘 그의 출중한 능력을 칭찬했다.계연수는 고준안의 말을 듣고 시름이 놓여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고준안이 웃으며 말했다.“밖에 추우니 연수 네가 들어가는 것만 보고 가겠다.”계연수는 세세한 그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뒤돌아섰다.고준안은 멀어지는 계연수의 뒷모습을 지그시 보고 있다가 막냇동생과 같이 나오는 첩실 임씨를 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밖으로 향했다.한편, 사옥현은 찬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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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사옥현은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계연수를 보지 못했으니 쉽게 물러갈 리가 없었다.그는 오늘 오전에 왜 그런 서신을 보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 그녀에게 따지러 온 것이었다.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그녀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자신을 다른 여인에게 등떠밀고 자신이 중상을 입었을 때 매몰차게 집을 떠난 일도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고준안은 창백한 얼굴에 영혼이 다 빠져나간 듯한 사옥현의 모습을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시정 나으리, 아무리 말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으니 이만 돌아가십시오.”사옥현은 싸늘한 고준안의 태도에 짜증이 치밀어 그의 어깨를 밀치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이건 나와 연수 사이의 일이고 그대가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연수가 날 만나주기만 한다면 분명히 마음을 돌릴 것입니다.”고준안의 눈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시정 나으리, 연수가 나으리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사옥현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고준안을 지나쳐 그의 뒤편에 있는 고씨 가문의 간판을 바라보았다.예전의 그는 이곳을 경멸했고 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발을 들이는 순간 고씨 가문 사람들의 아첨하는 얼굴과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감내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옥현이 가장 혐오하는 것들이었다.그러나 그때의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찾아와서 문전박대를 당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는 축 늘어뜨린 주먹을 꽉 쥐고서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고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나와 연수 사이에는 오해가 생겼을 뿐입니다. 연수도 진심으로 화리할 생각이 없어요. 부디 들어가서 노부인께 전해주십시오. 연수가 나를 한번 만나 주기만 한다면 고씨 가문에서 어떤 조건을 내세우더라도 모두 받아들일 것입니다.”말을 마친 사옥현은 손짓으로 뒤에 있는 시종을 불렀다. 시종이 가져온 물건들을 앞으로 내밀었다.“이것들은 제가 장모님과 노부인께 드리는 약소한 선물입니다. 백년 인삼을 두 개 넣었으니 들어가서 연수에게 꼭 한번 만나서 얘기하자고 얘기만 전달해 주십시오.”고준안은 사옥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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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고준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앞으로 다가가 사옥현의 앞을 막아섰다.“시정 나으리, 이곳은 고씨 저택입니다.”사옥현은 경멸에 찬 눈으로 자신의 앞을 막은 고준안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고준안은 경멸로 가득 찬 사옥현의 눈을 바라보며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차분한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나으리께서 억지로 저희 집에 침입하려 하신다면, 저도 병마사에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사옥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병마사 사람들을 불러와도 내가 내 부인을 만나겠다는데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고준안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사옥현을 힐끗 바라보고는 말했다.“시정 나으리, 연수가 나으리에게 시집간 지 벌써 3년입니다. 그동안 나으리께서는 한 번도 저희 고모를 뵈러 오신 적이 없으시지요. 지난번에 나으리께서는 사촌 여동생을 구한다고 연수를 홀로 설산에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연수가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얼마나 오래 풍한에 시달렸는지 아십니까?”고준안은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을 이었다.“나으리는 당연히 모르시겠지요. 그때 나으리는 사촌 여동생을 보살핀다고 온갖 보약을 갖다 바치며 곁을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부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으셨겠지요.”“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연수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연수도 나으리께서 연모하는 이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와서 우리 집에 찾아와 소란을 부려 서로에게 좋을 게 뭐가 있을까요?”“연수가 지난 3년간 그 집에서 당한 수모가 아직 부족하다 생각하여 굳이 그 애를 그 지옥으로 끌고 가야겠습니까?”“연수도 시집가기 전에는 사랑받고 큰 아이였습니다. 혼담은 사씨 가문에서 청해서 이뤄진 것이고 연수는 나으리의 부인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사씨 가문도 결국 명성 때문에 억지로 혼사에 응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좋은 일한답시고 이만 연수를 놓아주십시오.”말을 마친 고준안은 예의 바르게 사옥현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사옥현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졌다.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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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이날 밤, 목욕을 마친 계연수는 잠옷만 걸치고서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어깨에 늘어뜨린 채, 손난로를 들고 침상에 기대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지난번에 포산루에서 심서준과 마주친 이후로 밖에서 장 선생을 한번 마주친 적 있었다. 그녀는 장 선생에게 근래 그림을 몇 점 더 팔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물론 바로 팔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포산루로 보내오는 그림은 많고도 많았기에 장 선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사옥현과 화리하면 경성을 떠나게 될 텐데 떠나기 전에 은자를 조금 더 모아두고 싶었다. 아마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면 다시는 포산루에 그림을 보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장 선생은 많아도 괜찮으니 그림만 보내달라고 답했다.하지만 그림 한폭을 그리는데 적어도 열흘은 걸려야 하니, 밤에 시간을 내어 그릴 수밖에 없었다.용춘은 화로를 계연수에 가까이 내려놓았다. 그리고 집중하여 그림을 그리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주저하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아직 날씨도 쌀쌀한데 큰 부인은 목탄도 안 보내주셨더라고요. 비록 춘의원을 정리하고 시녀도 한 명 보내주었다지만, 어제 둘째 도련님께서 가져다주신 목탄도 거의 거덜이 나고 있는데 내일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비록 부인께서 이 집에서 신세를 지고 계시다지만, 부인이 드시는 약은 작은 마님이 대부분 비용을 감당하셨고 명절에는 귀한 선물도 잊지 않고 보내주셨는데 어찌 우리에게 이런 푸대접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계연수는 용춘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그림에 시선을 집중했다.남의 집에 신세를 지는 처지인데 세세한 것들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머물 곳을 제공해준 것만 해도 크나큰 은혜를 베푼 셈이었다.탁자 위에는 촛불이 타고 있었고 옆에는 물감을 담은 작은 접시가 놓여 있었다. 촛불의 아련한 빛이 그녀의 수려한 옆모습을 비추자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그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용춘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고작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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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용춘은 다급히 가서 겉옷을 가져왔다.계연수가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가자, 처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준안이 보였다.그는 뒷짐을 지고 어둠 속에 묵묵히 서 있었는데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계연수를 본 그는 은비녀 하나로 간단히 틀어올린 그녀의 머리에 시선이 멈췄다. 어둠 속에서도 맑은 연분홍빛 옷자락은 유난히 돋보였고 등불 아래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가까이 다가오니 은은한 체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고준안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연수야, 넌 나갈 필요 없어. 내가 나가서 해결하마.”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고준안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그 사람들이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아서요. 소란을 크게 만들어 외할머니와 외숙모들이 놀라면 어떡해요. 제가 마무리를 깔끔히 하지 못했으니 제가 나가서 잘 말씀드릴게요. 밤중에 소란을 크게 만들어 좋을 게 없잖아요.”고준안은 입술을 깨물고 초조한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난 소란스럽다고 생각한 적 없다.”그는 주먹을 꽉 쥐고 안타까운 눈으로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지금 당장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그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나가서 사옥현을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그는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다.그는 계연수가 비굴하게 용서를 구하는 사옥현을 보고 마음이 약해질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어쩌면 사옥현에게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잠시 침묵이 흐르던 찰나, 하인이 다급히 달려오며 말했다.“도련님, 큰 부인께서 찾으십니다!”“사씨네 사람들이 우리가 시정 부인을 집에 숨겨주었다면서 만약 연수 아가씨가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순천부 관아로 찾아가서 고발한답니다. 순방사 사람들이 도착하면 관아로 가서 시비를 따지겠답니다!”고준안은 사씨 집안 사람들의 비겁함에 치가 떨렸다.화리서를 받지 못했으니 계연수는 여전히 사씨 가문의 며느리이고 사씨 가문의 권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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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장씨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고요한 밤에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계연수는 잠깐 제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장씨는 다급히 대문으로 향하느라 다가오는 계연수를 보지 못하고 시종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어머니의 말을 들은 고준안은 다급히 계연수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홧김에 한 말일 거야. 너무 마음에 두지 말거라.”계연수는 긴장한 고준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제가 이 집에 와서 민폐를 끼친 건 사실이니까요. 외숙모를 원망하지 않아요.”고준안은 그 말을 듣고 더 마음이 쓰렸다.“제가 나갈게요. 그 사람들은 저를 찾아왔으니 제가 나가서 얘기하는 게 맞아요.”계연수는 조용히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는 큰 외숙모와 임씨가 마주보고 서 있었고 임씨의 등 뒤에는 수많은 시녀와 호위들이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한 임씨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마치 고귀한 귀족 부인처럼 인상을 찌푸린 채, 거만하게 고씨 가문의 큰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임씨가 경멸에 찬 어투로 입을 열었다.“우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밤중에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이 댁에서 우리 며느리를 감춰두고 집에 보내지 않으니, 관청 사람들을 불러 관아로 가서 시비를 가려보는 수밖에요.”“어느 집 며느리가 중상을 입은 부군을 내치고 외박한답니까?”임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계속해서 쏘아붙였다.“애초에 불쌍해서 받아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밤중에 내 아들을 대문 밖에 세워두고 문전박대를 하다니, 대체 어느 나라 예법인지 관청에가서 잘 따져봐야겠습니다!”기세등등한 임씨의 모습에 장씨는 저도 모르게 기가 한풀 꺾였다. 그녀는 임씨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연수 잘못이 맞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화리를 논의 중인데 잠시 친정에 머무는 것도 잘못은 아니지요. 뭔가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관청에 가기보다는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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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장씨는 임씨의 말을 듣고 표정이 퍼렇게 질렸다. 불쾌감이 사무쳤지만 사씨 가문과 정면으로 대적할 용기가 없었다.또다시 장씨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던 임씨는 마침 밖으로 나오는 계연수를 발견했다.사옥현은 다가오는 계연수를 보더니 다급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삼 일 못봤을 뿐인데 화장기 하나 없이 순수한 얼굴에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자니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녀가 없는 시간을 그가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록 이명유가 매일 옆에서 돌봐주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계연수 생각뿐이었다.이명유는 처소 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바꾸자고 했다. 그 역시 그녀의 흔적을 지우면 생각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녀와 관련된 물건들이 모조리 사라지자 갑갑함과 초조함은 더욱 심해졌다.그동안 그는 그녀가 머물렀던 서재의 작은 침상 위에서 잠을 잤다. 그녀의 익숙한 향기를 맡아야지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그제야 그는 계연수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깨달았다.그래서 아침 일찍 찾아와 그녀를 만나 오해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계연수가 다시 뒤돌아설까 두려웠던 그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등을 꽉 껴안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연수야, 이제야 알겠다. 난 줄곧 너를 연모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너뿐이었다.”“난 한 번도 명유를 좋아한 적 없다. 그러니 나와 돌아가자. 명유는 고향으로 보내도 되고 평생 그 아이를 건들지 않아도 상관없어. 네가 원치 않는다면 그 아이를 멀리 보낼 것이다.”“절대 다시 예전처럼 널 홀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너만….”사옥현은 흐느끼듯 주절주절 중얼거렸다.“연수야, 제발….”계연수는 역겨움이 치밀었지만 밀어낼 수도 없어서 바둥거렸다. 고개를 들고 그와 이야기를 하려는데 사옥현은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얼굴을 들이밀었다.놀란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피했다.옆에 있던 고준안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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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한편, 어둠 속에 마차 한대가 서 있었다. 심서준은 가림막을 열고 고씨 저택 대문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순방사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대문 앞을 에워싼 와중에도 계연수를 꽉 붙잡고 놔주지 않는 사옥현을 보자, 그의 눈빛도 차갑게 식었다.그는 가림막을 내리고 마차 벽을 툭툭 두드렸다. 밖에 있던 부하는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뒤에 있는 병마사 인원들에게 손짓했다.순방사 사람들은 누가 봐도 사씨 가문을 도우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공손하게 대하면서도 고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차갑기 그지없었다.순방사의 대장은 종구품 말단 관원이었으니, 당연히 사씨 가문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여야 했다. 그들은 순천부 관청 소속으로 사씨 가문의 차남이 순천부 통판으로 있었다.임씨는 기고만장한 얼굴로 겁에 질린 장씨를 바라보며 말했다.“고 부인, 우리 사씨 가문도 경성에서 꽤 알아주는 가문이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오늘 며느리가 집으로 순순히 돌아간다면 이 일은 조용히 덮을 생각입니다. 누구나 불필요한 소란은 피하고 싶은 법이니까요.”사옥현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계연수의 손목만 꽉 잡고 있었다.그는 굳이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계연수를 집으로 데려갈 수만 있다면 그가 원하던 바였다.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다시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준안은 권세를 등에 업고 억지를 부리는 그들의 모습에 이가 갈렸다.이때, 주변이 확 밝아지더니 병마사 포졸들이 다가왔다. 병마사 부지휘사가 횃불을 들고 앞으로 나서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누가 감히 야밤에 소란을 부리는 것이냐! 당장 멈추지 않으면 모조리 병마사로 끌고가서 엄벌에 처하겠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포졸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변을 에워쌌다. 실랑이를 벌이던 양가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양쪽으로 물러섰다.순방사는 병마사 부지휘사를 보자 놀라서 움찔 몸을 떨었다.순방사는 치안을 관리하는 부서가 아니라, 주요하게 운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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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일이 커지면 너는 좋을 줄 아니? 도찰원에 가더라도 우리 쪽이 유리하다. 상황파악이 됐으면 순순히 옥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남은 건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고.”사실 임씨는 계연수가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틀 사이에 타락한 아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임씨는 계연수가 시어머니에게 서신을 보낸 목적이 사씨 가문을 압박하기 위함이라고 여겼다.그래서 일단 아들의 명성을 위하여 계연수를 집으로 데려가서 다시 얘기하기로 한 것이다.하지만 계연수는 임씨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응대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어둠 속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다름아닌 심서준이었다.사옥현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계연수는 심서준을 본 순간,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일단 먼저 시름이 놓였다.심서준을 발견한 마인호가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평소 높으신 분을 만날 일이 없는 순방사 사람들도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심서준은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언의 위압감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임씨마저도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심서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계연수의 손을 잡고 있는 사옥현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는 무덤덤하게 걸어가서 사옥현의 앞에 멈춰서더니 냉소를 지었다.“사 시정, 집안이 시끄러운가 보군.”사옥현의 표정이 순간 굳더니 재빨리 계연수의 손을 놓고 심서준에게 예를 행했다.“민폐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심 대인. 오늘 안사람과 약간의 오해가 생겨서 입씨름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부디 너그러이 양해해 주십시오.”심서준은 공손히 자신에게 머리를 숙인 사옥현을 지나쳐 의미심장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얇은 옷에 눈시울을 붉히고 서 있었다.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그녀의 뺨을 반쯤 가렸다.그는 말없이 계연수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계연수도 그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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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심서준의 싸늘한 목소리에 주변이 고요해졌다.계연수는 잠시 고개를 들고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갑자기 나타나서 안도감을 선사했던 것처럼 그가 뒤돌아서 떠나니 마음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가 일었다.아마도 그가 늘 가장 필요로 할 때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점점 그에게 의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계연수는 더 이상 심서준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옥현과 화리한 후 바로 경성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옆에 있던 사옥현이 갑자기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계연수를 빤히 쳐다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도찰원에 가더라도 나는 화리를 원치 않는다. 내가 화리서를 써주지 않으면 아무리 어사 대인이라도 억지로 너와 나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네가 왕년의 서약서를 내놓으며 내가 먼저 신뢰를 저버렸다고 고발한다 하더라도 곤장 서른 대를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그는 냉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부인이 부군을 고발한다는 건, 도의에 어긋난 일이다. 하물며 고발장을 낸 이유가 단지 첩을 들였기 때문이라니, 이 일이 알려진다면 네 명성도 끝나는 거야.”“연수야, 나한테 토라졌다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거라. 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잘 대해준다고 약조하마.”말을 마친 그는 지친 듯, 몸을 웅크렸다.“연수야,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벌였으니 이제는 만족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계연수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요한 눈빛으로 사옥현을 바라보며 물었다.“관청에 고발하지 않으면 나으리께선 저와의 화리에 동의하실 건가요?”사옥현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계연수,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평생 나와 화리할 수 없다.”“하지만 명유를 내보내고 내 사유 재산의 지배권을 너에게 주겠다고 약조하지.”“돌아가면 넌 여전히 고귀한 시정 부인이고 앞으로 집안 살림은 너에게 맡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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