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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チャプター

제211화

순성 어사 최정요는 병마사 지휘사의 직속 상관이었다. 심서준으로부터 지시를 들은 그는 부지휘사 마인호를 불러 지시를 전달했다.지시를 받은 마인호는 곧바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사씨 가문과 고씨 가문의 모든 이는 부름을 받고 도찰원 대청에 모이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임씨의 얼굴은 당황함으로 가득했다.계연수와 사옥현이 화리할까 봐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사씨 가문이 신의를 저버린 일이 전해지면 가문의 평판이 추락할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창을 들고 양측에 갈라선 포졸들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사옥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만약 순천부 관아로 갔더라면 둘째 삼촌이 돌봐줬을 텐데 도찰원에서 이 일을 따지고 들면 우리에게 불리하다. 좌도어사 대인은 냉철하고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분이라던데 이번 일이 까발려지면 너도 처벌을 면치 못할 게야. 옥현아, 차라리 그 애가 원하는 대로 화리서를 써주고 갈라서는 게 낫지 않겠니? 왜 굳이 그 애를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이야?”사옥현은 오늘 무조건 계연수를 데려갈 작정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면 불리한 쪽은 여자 측이었다. 그가 화리에 동의하지 않는 한, 계연수는 영원히 사씨 가문의 며느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연수는 지난날 그렇게 중시하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장형도 기꺼이 받겠다고 고집하니,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장씨 역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난생처음으로 온 도찰원 대청에서는 냉엄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계연수의 곁으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책임은 네가 지거라. 나중에 우리한테까지 피해가 미치게 하지 말고.”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안심하세요, 외숙모. 이따가 심문이 시작되면 제가 심 대인에게 간청 드려 외숙모와 준안 오라버니를 먼저 돌려보내라고 할게요. 저 혼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요.”장씨는 그제야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계연수의 귓가에 대고 간곡히 말했다.“난 대체 네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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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임씨는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 병마사 포졸들에게 이끌려 현장에 있던 하인들까지 이곳으로 끌려왔다. 사람을 시켜 집으로 소식을 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갑자기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손에 식은땀이 났다.사옥현이 홀로 안으로 불려가게 되면서 무슨 질문을 받게 될지, 아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미지의 공포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게다가 도어사 대인이 어찌하여 대청에서 심문하지 않고 사옥현만 따로 불러갔는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려는 걸까.떠나기 전 부군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심씨 가문은 줄곧 이명유가 계연수를 시해한 일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사옥현이 첩을 들인 일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하던 말을 떠올리니 더욱 겁이 났다.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심씨 가문에서 이토록 이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계연수와 심씨 가문이 그들이 아는 것과 다르게 예전에 돈독한 사이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좌도어사 대인도 심씨 가문 사람이니 계연수의 편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까….비록 그럴 가능성은 희미하지만 자꾸만 불안감이 더해갔다. 생각할수록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좌도어사 대인은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문무백관을 감독하는 도찰원, 현재 도어사 대인이 심판을 열지 않고 아들만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들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미일까….사옥현이 불려들어간지 반 시진이 넘어가자, 임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계연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계연수의 손목을 꽉 잡고 말했다.“내가 화리에 동의하겠다. 당장 가서 심 대인에게 잘 해명하고 고발을 철회한다 하거라.”바짝 긴장하고 있던 계연수는 임씨의 말을 듣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서준이 왜 사옥현만 불러들였는지, 왜 심문을 시작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가장 먼저 백기를 든 사람은 임씨였다.계연수도 심판까지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기 전에 미리 화리서를 준비한 이유도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을 시를 대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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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화리한 여인의 삶이 어디 그리 쉬운 줄 알았느냐? 앞으로 힘든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게다.”고준안은 어머니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마음속 걱정만 더해갔다. 지금 누구보다 화리의 결과를 바라는 것은 그였다.포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잔뜩 풀이 죽어 밖으로 나오는 사옥현이 보였다.그는 마주 오는 계연수를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장차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말을 마친 그는 계연수를 지나쳐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계연수는 사옥현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평온한 표정으로 포졸의 뒤를 따라갔다.안으로 들어가니 서재와 같은 공간이 나왔고 중앙에 병풍 하나가 칸막이처럼 놓여 있었다. 병풍 너머로 심서준의 고고한 그림자가 비쳤다.고요한 실내에서 계연수의 발걸음도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병풍을 지나니 창가에 등지고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는 여전히 꼿꼿하고 고결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자태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늘 이런 모습이었다. 계연수는 그가 누구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혼자였고 홀로 시간을 보내기를 즐기는 듯했다.그래서인지 그는 누군가의 동행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계연수는 그를 볼 때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와 한참 먼 곳에 걸음을 멈추고 그의 고요함을 방해할까, 숨소리를 죽였다.그러나 어쨌든 말은 꺼내야 했다. 그녀가 살며시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려는 순간, 심서준이 뒤를 돌아섰다.그는 푸른색 바탕에 물결 문양이 수놓인 관복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보석을 박은 은색 허리띠를 두르고 허리춤에는 색상이 고운 백옥패가 걸려 있었다.이미 한밤중이 훨씬 지난 시간, 만물이 고요한 가운데 도찰원 안은 근엄하고도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심서준은 그 한가운데에 꼿꼿하게 서 있었고 밝은 촛불 빛이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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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화리서를 본 순간 계연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그저 눈시울이 화끈거리고 마침내 자신을 짓눌러오던 족쇄를 벗어던진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혹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며 떨리는 손으로 화리서를 매만졌다. 서늘한 종이의 감촉이 전해져서야 그녀는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계연수는 고개를 들어 심서준을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심 대인, 정말 감사합니다.”심서준은 눈물을 가득 머금고서 감격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계연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소박한 옷차림 아래 그녀의 야윈 어깨가 눈에 보였다. 가까이에 있으니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 그는 풍성한 머리카락에 곱게 얹은 은비녀에서 천천히 시선을 내려 가녀린 목덜미를 바라보다가 파르르 떨고 있는 긴 속눈썹을 보며 낮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후회하지 않겠습니까.”계연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말이었다.심서준은 화리서를 힐끗 보고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다시 물었다.“진정 결심을 굳힌 겁니까? 이곳을 나서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계연수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사씨 저택 대문을 나선 그 순간부터 이미 결심을 굳혔습니다.”심서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은 시름이 놓였다.그는 무심한듯 담담히 입을 열었다.“사 시정은 여전히 그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더군요.”계연수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는 사옥현이 아직 자신에게 미련이 남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가 놓지 못하는 것은 단지 언제나 그에게 순종했던 과거의 그녀일 뿐이었다.심서준의 시선은 계속해서 계연수의 얼굴에 머물렀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 스치는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심서준 역시 그녀의 말간 얼굴에서 후회하는 기색을 보고 싶지 않았다.다행히도 그러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계연수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더 일찍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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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계연수는 한참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자신이 심서준을 앞에 두고 한참이나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자, 계연수는 황급히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시는 심서준의 표정을 살필 용기가 나지 않았다.‘원래 시선 받는 것을 안 좋아하는 분인데 혹시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겠지?’그녀는 소매자락을 꽉 움켜쥐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방금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인 채 잔뜩 긴장한 계연수의 표정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녀에게 한걸음 더 다가섰다.이제 더 이상 눈앞의 사람을 시정 부인이라고 칭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그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계연수는 자신의 앞으로 성큼 다가온 그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장화가 그녀의 치맛자락 가까이에 멈춰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그의 몸에서 풍기는 침향이 코끝에 전해지며 심장이 두근거렸다.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것은 담담히 그녀의 뒤쪽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뒤에서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으리, 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냈습니다.”계연수는 성급히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심서준이 부하를 물린 후에 작별 인사를 고했다.심서준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녀가 더 어여쁘게 보여서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었다.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계연수는 드디어 안도한 듯, 급히 고개를 숙여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문턱을 나가기 전, 뒤에서 심서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화리서는 늦지 않게 고씨 가문으로 보내겠습니다.”계연수는 세심한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감사의 말을 더 전하고 싶었지만 심서준은 이미 책상 앞에 앉아 서책을 펼치고 있었다.내리 깔은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고 고결하고 기품이 넘치는 얼굴은 위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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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부하로서 상전의 생각을 함부로 얘기하는 게 금기되지 않았다면 문하는 심서준의 정성을 계연수에게 모조리 말해주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심서준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심서준의 기분이 좋아질 테고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조금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물론 그런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기에 문하는 심서준을 따라 딱딱한 어투로 답했다.“나으리께서는 다 생각이 있으십니다. 부하로서 어찌 나으리의 깊은 생각까지 알 수 있겠습니까.”문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계 소저, 진실을 알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저희 나으리께 여쭤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계연수는 잠시 멈칫했다.심서준에게 진실을 물어본다라….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고 혹여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심서준에게 이런 질문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그녀는 굳이 그에게 진실을 캐묻고 싶지 않았기에 말없이 대문으로 향했다.고준안이 대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오는 계연수를 보자마자 다급히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잘 끝났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춘이 건네는 망토를 받아 몸에 걸쳤다.“오라버니, 오래 기다리셨나요?”고준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오래 기다린 건 아니다. 조금 전에 심 대인의 부하가 화리서를 들고 와서 우리에게 보여주고는 나가보라고 하더구나.”“사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아마 앞으로 그들이 네 삶을 방해할 일은 없을 듯하구나.”고준안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온 사옥현이 도찰원 대문 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긴 했으나, 이는 계연수가 알아야 할 것들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그 집안사람들과 연을 끊었으니 말이다.계연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고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느낌이었다.그녀는 드디어 그 집을 벗어났고 사옥현에게서 벗어났다.앞으로는 사람답게 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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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한편, 계연수가 고씨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중이 넘은 시각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저택 안은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고씨 노부인은 잠도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고 고준과 둘째 부인도 노부인의 처소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부인의 처소로 향하는 길, 장씨는 잔뜩 불쾌한 얼굴로 앞장서서 걸으며 작은 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이 시각에 돌아오면 잠은 언제 자라고? 안 그래도 네 할머니는 몸도 안 좋으신데 네 소식을 기다린다고 지금까지 버티고 계시니. 난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는지.”장씨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두고 보거라. 이제 사씨 가문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으니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구나.”한바탕 불만을 털어놓던 장씨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계연수의 옆에서 걷고 있는 고준안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따라가서 뭘 하려고? 내일 공무 보러 안 나갈 생각이니?”“넌 다른 사람들과 달라. 관직에 몸담은 사람이 이런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신경을 써서 쓰나. 네 할 일은 끝났으니 얼른 돌아가서 쉬거라.”고준안의 시선이 계연수에게 닿았다.달빛이 그녀의 왜소한 체구를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어머니가 듣기 싫은 비난을 그렇게 늘어놓았는데도 그녀는 반박 한마디 안 하고 있었다. 고요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는 가슴이 쓰렸다.계연수는 전방만 보고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준안에게 말했다.“외숙모 말씀이 맞아요. 오늘 오라버니도 저 때문에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제가 괜히 오라버니께 미안하네요. 일은 잘 마무리되었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세요. 내일 또 공무를 보셔야잖아요.”고준안은 가슴이 갑갑하고 안타까웠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계연수는 그의 손에서 등불을 받아들고는 뒤에 있는 하인들에게 지시했다.“어서 둘째 도련님을 모시고 돌아가거라.”눈앞에서 그녀의 치맛자락이 하늘거리며 지나갔다. 그는 갑갑한 가슴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장씨는 여전히 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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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말을 마친 장씨는 고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다만 제가 듣기 싫은 말 좀 하자면, 사씨 가문은 조정에서 그래도 입지가 있는 가문입니다. 제가 연수의 화리를 바라지 않았던 것도 그것 때문이지요. 화리를 하면서 완전히 두 집안이 척을 져버렸으니, 부군께서는 아직도 지방에 계시는데 만약 그쪽에서 무슨 수단을 부려 부군의 경성 입성을 방해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제가 봤을 때는 사람은 자존심만 세우며 살아가면 안 된다고 봅니다. 평생이 얼마나 긴데요. 어찌 눈앞의 서러움만 생각한단 말입니까? 옆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모르고.”고씨 노부인은 고개를 돌려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두 손을 무릎 위에 두고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노부인은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장씨에게 말했다.“이제 와서 왜 그런 말을 하느냐? 그 집안이 어디 사람 사는 곳이니?”“사옥현은 먼저 신뢰를 저버렸으니 장차 첩을 총애하고 정실을 계속 무시할 수도 있다. 연수가 왜 그 집에서 그런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하느냐?”“사씨 가문이 지금 잘나가는 건 알고 있다. 사옥현도 그만하면 출중한 인재라 할 수 있지. 허나 연수가 뭐가 모자라서.”“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누가 알겠느냐.”시어머니의 강경한 태도에 장씨도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노부인 신변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연수를 힐끗 바라보았다. 여전히 불쾌함은 사라지지 않았다.고씨 가문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계연수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병약한 시누이에 이어 화리한 조카딸까지, 그녀는 이 상황이 갑갑하기만 할 뿐이었다.장남은 올해도 경성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봄이 지나면 장남의 첩실이 출산을 하게 될 터, 그때도 은자가 필요했다.조금 있으면 딸아이도 혼처를 알아봐야 하니, 미리 혼수를 준비해야 했다. 장차 계연수처럼 시댁에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두둑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장씨는 지금 집안 살림을 유지하는 것만도 벅찼다.시어머니의 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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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장씨가 돌아간 후, 고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손을 잡고 자리로 이끌었다.노인은 그녀의 안색을 자세히 살피고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네 외숙모가 원래 까칠까칠한 성격이라, 너무 마음에 두지는 말거라.”“사씨 가문은 좋은 시댁이라고 할 수 없어. 내가 보기엔 화리하길 잘했다고 본다. 사옥현은 사촌 여동생을 그렇게 편애하는데 굳이 거기 남아서 자존심 굽히며 살 이유는 없지.”“이제 와서 그가 너만 소중하다며 돌아오라고 비는 것도 화리하여 평판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일부러 저러는 게다. 삼 년 동안 걸음하지 않던 사람이 아니더냐.”“우리 고씨 집안도 자존심이 있지. 그쪽에서 가식적인 말 몇 마디 한다고 옳다구나 하고 따라갈 거냐? 그렇게 한다면 돌아가서 더 무시당하며 살겠지.”계연수는 늘 화리는 자신의 일이고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외숙모가 했던 말이 가슴이 쓰리긴 했지만 외숙모를 원망하지는 않았다.그 집에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외숙모는 그녀의 입장이 되어본 적 없으니 이해를 못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외숙모가 각박하다고 원망할 일은 없었다.하지만 모두 이해한다는 듯 자신을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시며 너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시는 외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까지는 정말 이게 잘하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했었는데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이고 외할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고씨 노부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저는 괜찮습니다. 그런 말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요. 외할머니,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기쁩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들어 고씨 노부인과 시선을 맞추었다. 눈물이 반쯤 고여 있는 어여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고씨 노부인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노인은 손을 뻗어 계연수의 말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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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고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손을 가볍게 다독이며 말했다.“밤도 깊었으니 어서 돌아가서 푹 쉬거라.”계연수가 외할머니의 처소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해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저택을 밝게 비추던 등불이 꺼져 있었고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왔다.춘의원으로 돌아오니 외숙모께서 보내주신 시녀는 이미 자러 갔고 안방에 피워두었던 난로는 이미 목탄이 다 타고 꺼져서 한기가 돌았다.계연수는 용춘을 시켜 불을 지핀 후, 난로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손을 쬐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몸이 조금 따뜻해지자 그녀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상 위에는 반쯤 그리다 만 그림이 놓여 있었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팔아서 은자로 바꾸면 이곳을 떠날 것이다.다음날 아침, 용춘이 계연수에게 물었다.“아가씨, 부관에게 가서 목탄을 좀 더 가져오라 할까요?”계연수는 더 이상 이 집에 민폐를 끼치기 싫어 은자를 건네고 문지기를 시켜 밖에서 사오라고 분부했다.용춘도 더 이상 이 집에 신세를 지고 싶지 않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조용히 은자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아침 식사가 끝난 후, 계연수는 노부인의 처소를 찾아가 이제는 어머니에게 화리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이제 화리서까지 받았으니 더 이상 어머니에게 숨길 수 없었다.고씨 노부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일은 이미 정해졌으니 되돌아갈 길은 없어. 네 어미에게는 사정을 잘 설명하거라. 네 어미가 원망 좀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 내 생각에는 널 이해해 줄 것 같구나.”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장씨가 안으로 들었다.그녀는 노부인의 앞으로 다가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어제 심 후작께서 큰 도움을 주셨는데 그 댁으로 가서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어요?”장씨도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 지난번 심씨 가문 연회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그 집에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었다. 딸아이가 신분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지난번 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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