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극 로맨스 / 주문춘귀 / Chapter 411 - Chapter 420

All Chapters of 주문춘귀: Chapter 411 - Chapter 420

553 Chapters

제411화

영경공주의 이 말은, 계연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그녀는 영경공주가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감히 이런 인연을 바란 적조차 없었다.계연수는 저도 모르게 곁에 서 있는 심서준을 바라보았다.심서준 역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고 있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계연수는 오늘 그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뜻을 깨달았다. 곧 영경공주를 향해 깊이 감사를 올리며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영경공주는 손을 내밀어 계연수를 일으켜 세웠다. 주름진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낮게 말했다.“너는 참으로 총명하구나. 마음에 든다. 내가 이제 나이가 많아 잔치에도 잘 나가지 못하니 앞으로는 네가 서준이와 함께 자주 와서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거라.”계연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영경공주는 그녀의 눈빛 속 진심을 읽고 미소 지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충분히 흡족했다.오늘 그녀는 계연수의 학식, 성정, 능력을 모두 시험했다.그리고 어느 방면이나 모두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그녀가 지금껏 본 경성의 규수들 가운데, 이만큼 마음에 든 이는 손에 꼽혔다.이전에는 손보경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또한 모든 면에서 뛰어났었다.영경공주는 다시 한 번 계연수의 손을 두드린 뒤, 사람을 시켜 작은 상자를 하나 더 가져오게 했다. 그 상자를 계연수의 손에 쥐여 주며 돌아가서 열어보라 했다.그리고 계연수 옆에 서 있는 심서준을 향해 낮게 말했다.“네가 청한 일은 들어주마. 허나 이 일 하나뿐이다. 다른 것은 내 알 바 아니다. 네 어미나 네 누이가 묻거든, 네 뜻이라 말하거라.”심서준은 표정을 가다듬고 깊이 예를 올렸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영경공주를 향해 허리를 깊이 굽혔다.계연수와 심서준이 함께 떠날 때, 진철이 곁에서 배웅했다.마차에 오르기 직전, 진철이 웃으며 말했다.“날짜가 정해지면 잊지 말고 알려주시오. 자네 혼례주도 기다린 지 오래됐으니.”심서준
Read more

제412화

그의 입술은 그저 스치듯, 아주 가볍게 그녀의 머리칼 위를 스쳐 지나갔다.그는 끝까지 이성을 붙들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사람이 될 것이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니 심서준의 눈빛은 더욱 깊고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소유욕이 담긴 시선을 거두고 그녀의 여린 손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돌아오는 길, 계연수는 마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러나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손이 다시 붙잡혔다.계연수는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어둑한 빛 속에서 심서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곁을 떠나려는 순간, 마음 한켠에서 묘한 아쉬움이 피어올랐다. 아직 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 가까이 끌어안고 싶었다. 심서준은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겨 그 부드러운 손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따라 천천히 스쳐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가 자신의 목을 감싸 안고, 가까이 다가와 입맞춤을 건네기를...이 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렇게 가까이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조금만 더 당기면 그녀는 곧장 그의 품 안으로 떨어질 것이다.지금 이 순간, 단 한순간도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그때, 계연수의 맑고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심 대인, 무슨 일이신가요?”그 한마디. 어딘가 거리를 두는 ‘심 대인’이라는 호칭이, 그의 시선을 더욱 깊게 가라앉혔다.그는 낮게, 조금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 내 처소에 와서 함께 식사하면 좋겠다.”그 뒤에 이어질 말은 삼켰다. 단둘이, 한 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계연수는 그의 뜻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 듯,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물었다.“심 대인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심서준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다시 낮게 말했다.“그만두자. 이틀 정도는 밤
Read more

제413화

고준안은 점점 멀어지는 심서준의 마차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목이 잠긴 듯 힘겹게 물었다.“연수야… 심 대인과 함께 어디를 다녀온 것이냐?”계연수는 선뜻 설명하기 어려워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오라버니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고준안은 그녀가 피하려는 기색을 알아차렸다.그녀를 깊게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걸음을 옮기는 동안 고준안이 입을 열었다.“좋은 화선지를 좀 구하게 되어서, 일부러 연수 너에게 가져다주려고 왔다.”그러면서 그의 시선이 다시 계연수에게 향했다. 희고 단정한 그녀의 콧날 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그리고 하나 더, 전해줄 좋은 소식이 있다.”계연수는 걸음을 멈추듯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좋은 소식입니까?”고준안은 미소를 지었다.“연줄을 좀 써봤는데, 마침 휘안현 현령 자리가 비었더라.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될 것 같아. 이렇게까지 순조로울 줄은 나도 몰랐어. 생각보다 더 빨랐고, 또 더 좋은 자리야. 원래는 그곳에서 보좌관 정도만 맡을 수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현령 자리를 맡게 될 줄이야... 이부에서 사람이 와서 말해주길, 빠르면 다음 달 말, 아니면 그다음 달 초쯤이면 바로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연수야, 조금만 기다리거라. 그때 우리 함께 길을 떠나자.”그의 표정에는 숨기지 못한 들뜸이 어려 있었다.“연수야, 내가 그곳의 현령이 되면 이제는 너를 더 제대로 지켜줄 수 있다.”계연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기쁨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이미 휘안현으로 가지 않을 예정이었다.고준안이 정말로 연줄을 뚫어 그 자리에까지 오를 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계연수는 입술을 달싹였다.고준안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손끝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손을 뻗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그는 한
Read more

제414화

“헌데 오라버니께서 정말 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경성을 떠나기 싫으시다면… 제가 심 대인께 부탁드려 오라버니를 남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고준안은 멍하니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이어진 말들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저 한 가지. 그녀가 앞으로 경성에 남겠다는 말만이 맴돌았다. 이 순간, 그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휘안현으로 가려 했던 다짐이 산산이 무너졌다.망치가 심장을 내려치는 것처럼 가슴이 내려앉았다.고준안은 온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그는 넋이 나간 채 계연수를 올려다보았다.여전히 고운 얼굴이었다. 옥처럼 부드럽고 꽃처럼 아름다운, 어릴 적부터 줄곧 좋아해 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그녀는 다른 이에게 시집 갈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손끝이 떨렸다. 그는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입술이 떨리며 낮게 중얼거렸다.“그 사람이 널 부인으로 삼겠다고 하니 곧장 받아들인 것이냐.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데 넌 줄곧 나를 밀어내기만 했다. 너에게 나는, 그 사람보다 그렇게 못한 사람이더냐.”계연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제게 오라버니는 가족이에요. 어릴 때부터 믿어온 가족이란 말입니다. 심 대인께서는 제게 베푼 은혜가 있으세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사씨 집안에서 고통받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약속했어요. 언젠가 그분께서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반드시 도와드리겠다고요.”고준안의 두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그는 몇 걸음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정신을 놓은 듯한 눈동자, 붉게 물든 눈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얼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계연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걱정이 되어 따라나섰지만 이미 마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지고 있었다.방금 전, 그의 눈에 맺혀 있던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어릴 적부터, 고준안이 자신에게 베풀어온 마음은 분
Read more

제415화

심서준의 말대로였다.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심부와 승안후부의 혼인 약정 소식은 온 경성에 퍼져 있었다. 계연수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다.계연수는 용춘과 함께 너울모자를 쓰고 꽃가게에 들러 꽃을 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가게 안에서 이미 사람들이 심부와 승안후부의 혼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몇 마디만 들어도 그녀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심서준이 자신을 승안후부로 데려갔는지, 왜 영경공주가 자신을 의녀로 삼았는지.하지만 아직 심가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두 집안이 이렇게 혼사를 정해버린다고? 심가는 정혼 상대가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계연수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 심서준이 어떤 계획을 세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를 믿고 있을 뿐이었다.*한편, 심부.심서준은 어머니의 방 안에 앉아 있었다.그 순간, 정면에서 청첩장이 날아와 그의 몸에 부딪혔다.탁자 위의 도자기들이 와르르 쏟아져 바닥에 깨졌다.심씨 노부인은 손가락까지 떨며 그를 가리켰지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밖에 서 있던 하녀들은 이처럼 노부인이 분노한 모습을 처음 보는 듯,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조용히 물러났다.마침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려던 백씨는 문 밖에서 소란을 듣고 상황을 짐작했다.심서준이 안에 있다는 말에 이 일이 승안후부와의 혼사 때문임을 대충 알아차렸다.너무 갑작스럽고 이상한 일이었기에 들어가 말려보려 했지만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노부인의 호통이 날아왔다.“나가! 다 나가라!”백씨는 이런 노부인을 본 적이 없어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둘러 물러났다.*방 안.심서준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어머니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그는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 모습을 본 심씨 노부인은 더욱 떨리는 손으로 그를 가리켰다.“이제 정말 대단하구나. 혼인 같은 큰일을, 이 어미는 남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다니. 청첩장조차 남이 가져다준 걸 보고서야 알았다
Read more

제416화

심서준은 분노에 떨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도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입술을 한 번 다물고, 차갑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연수입니다.”어머니의 눈이 크게 뜨이는 것을 보며 그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지금은 영경공주의 의녀이기도 합니다.”심씨 노부인은 숨이 막힌 듯, 그대로 기운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노부인은 손에 잡히는 향유자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심서준을 향해 내던졌다.결국 참지 못한 그녀는 평생 지켜온 품위마저 전부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 어미를 화병으로 죽일 작정이냐?”그 향유자는 그대로 그의 어깨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심서준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시선은 바닥에 고요히 내려둔 상태로 말했다.“어머니, 저는 평생 그 사람만을 부인으로 맞을 것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심가에 후사가 끊겨도 아들을 탓하지 마십시오.”심씨 노부인은 그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그 순간, 분노도, 기운도 모두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깊고도 무거운 무력감뿐이었다.그녀의 단 하나뿐인 아들, 평생의 자랑이었던 아이가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집안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누이 또한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황제의 사혼까지 막힐 것을 알면서, 그는 먼저 일을 저질러버린 뒤 어미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그녀는 넋이 나간 채 심서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네 아비는 아직도 밖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네가 이런 패륜 같은 짓을 했다는 걸 알면 너를 때려죽이려 들지 않겠느냐? 그게 아니라면 너 때문에 화병으로 쓰러질지도 모른다.”심서준은 잠시 침묵했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언젠가는 어머니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제 마음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노부인의 날 선 목소리가 방 안을 가르며 울렸다.“나는 이해 못 한다! 내가 분명히 물었지 않느냐? 계씨 집 딸이 좋으냐고! 그때는 아니라고 했던
Read more

제417화

심씨 노부인은 심서준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숨이 턱 막혀 올라오지 않을 듯했다.그 말의 속뜻은 분명했다. 그는 분가하겠다는 것이었다.노부인은 완전히 멍해졌다. 계연수 한 사람을 위해 심서준이 이 지경까지 말을 밀어붙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때, 심서준의 시선이 다시 그녀를 향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이었다.“어머니께서도 아시겠지요. 제가 이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연수를 부인으로 맞기 위해서지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저는 반드시 그녀를 맞이할 것입니다.”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결심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노부인이 어찌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는가.그는 이미 모든 수를 짜놓았다. 계연수에게 신분을 만들어 주어 심가로 시집와도 남들에게 얕보이지 않게 하고 겉으로 보기에 문벌이 맞는 혼사처럼 꾸며놓은 뒤 먼저 일을 벌여버리고 온 경성에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가문의 체면 때문에라도 자신이 물러설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처음부터 어머니의 허락을 받을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그는 그저 자신이 반드시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끝까지 밀어붙일 뿐이었다.노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 애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다는 것이냐?”심서준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의 밝은 햇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건 저만 압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온 사람입니다. 잊을 수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그는 다시 어머니를 바라봤다.“언젠가는 어머니도 알게 되실 겁니다.”노부인은 비웃듯 웃었다.“부군에게 화리당한 여자다. 그런 여자를 나는 인정할 수 없다.”심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매를 정리했다.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였다.“사씨 집안이 한 짓을 보세요. 그녀가 화리하지 않았어도 제가 직접 손을 써 연수를 그 집에서 나오게 했을 거예요. 그 일은 그녀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씨 집안이 먼저 화리를 청하게 만든 것도 결국 저였거든요.”노부인의
Read more

제418화

용춘은 놀라 숨을 들이켰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과연 대장공주답네요. 손이 참 크십니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공주가 후한 사람인 건 맞았지만 그 안에는 아마도 심서준의 뜻도 어느 정도 섞여 있을 터였다.하지만 승안후부 사람들은 모두 온화해 보였다. 앞으로는 그곳에 자주 드나들게 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녀는 졸음이 쏟아져 하품을 하던 참이었다. 그때, 낯선 기척과 함께 홍련이 들어와 말했다.“심 대인께서 오셨습니다.”홍련은 심서준이 붙여준 하녀로 지금은 계연수의 방 밖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었다.낯선 얼굴이었지만 심서준이 보낸 사람이기에 계연수는 자연스럽게 믿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계연수는 솔직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몸에는 속옷 차림뿐이고 머리도 아직 덜 마른 채로 늘어뜨린 상태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심서준이 이 시간에 찾아온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느릿하게 용춘을 불렀다.“빨리 옷 좀 입혀주거라.”사실 그녀 역시 심서준에게 물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그런데 그때, 홍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심 대인께서는 아가씨께서 이미 쉬셨을 것 같다고 하시며 발 밖에서 몇 마디만 나누시겠다고 하십니다.”계연수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지금 밖에 계시다고?”“예. 바로 제 옆에 계십니다.”계연수는 순간 멍해졌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듯했다.그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저쪽에 드리워진 발로 향했다.그 너머에 심서준이 서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쿵 내려앉고 머리끝이 서늘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홍련은 심서준이 보낸 하녀였다. 그를 막을 리가 없었다.계연수는 서둘러 용춘에게 옷을 입혀 달라 하고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를 느슨하게 뒤로 묶었다.그러고는 결국 밖으로 나섰다. 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으니까.*발을 젖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심서준의 길고 단정한 몸선이었다.그는 밤기운을 머금은 채,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Read more

제419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말을 듣고도 한동안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고작 스무 날 남짓,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심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이렇게 급한 건가요?”심서준의 검은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늦어지면 폐하의 하사혼이 먼저 내려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일이 번거로워진다.”계연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심서준은 늘 한발 앞서 모든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어차피 이미 결심한 일이었으니 빠르든 늦든,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심 대인, 걱정 마세요. 저는 준비되어 있어요.”심서준은 유난히도 진지한 그녀의 표정을 보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그 순간의 계연수는 어딘가 순진한 진지함을 띠고 있었다. 맑은 시냇물처럼 속이 훤히 비치는 사람.그는 시선을 낮추어 가지런히 정돈된 그녀의 분홍빛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나비 문양이 수놓인 치마 끝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거라. 내가 있으니까.”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 그 한마디는 순간 계연수의 마음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녀도 사실은 조금 불안했다.하지만 ‘내가 있다’는 그 말 하나로 그 불안은 사라졌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네...”심서준의 시선이 촛불 아래서 은은히 흔들리는 그녀의 얼굴로 다시 내려앉았다.깨끗하고 희고 조용히 빛나는 얼굴. 그는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무의식적으로 아주 조금 그녀 쪽으로 몸이 기울었던 것이다.언제나 곧고 단정하던 자세가 이 순간만큼은 느슨해졌다.그는 부드럽게 몸을 숙인 채, 천천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지난번에 준 열쇠는 아직도 가지고 있느냐?”계연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네, 갖고 있습니다.”심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
Read more

제420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는 듯했다. 모든 걸 이미 계산해 둔 듯한, 흔들림 없는 눈빛을 바라보다가 잠시 망설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다 문득, 마음에 걸리던 일을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전에 제 사촌 오라버니께서 휘안현으로 가려고 했었잖아요. 헌데 만약 지금 마음이 바뀌어서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안 가도 되는 겁니까?”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고준안에게 보낸 편지에도 아직 답이 없었으니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이 일의 시작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다면 모두가 상처 없이 끝나기를 바랐다.심서준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사실, 뒤에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고준안이 휘안현 현령 자리를 얻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단지 흐름을 타서, 그가 원하는 길로 밀어주었을 뿐이었다.그리고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생각은 없었다.심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건 이부의 일이라 내가 쉽게 개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그의 시선이 계연수의 얼굴을 스쳤다. 아주 미세하게 아쉬움이 스쳐간 표정을 보고는 그는 낮게 덧붙였다.“그래도 네가 정말 원한다면 방법을 찾아보겠다.”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했다.“아직 사촌 오라버니께서 어떤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게요.”그녀의 말에 심서준은 짧게 응했다.그는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사실은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하지만 더 머문다면 그녀가 불편해할지도 모를 터. 그는 결국 마음을 눌러 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쉬거라. 난 가겠다.”계연수도 함께 일어나 배웅하려 했지만 심서준은 발 앞에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얇고 가는 몸선에 부서질 듯 가녀린 모습.초봄의 밤공기는 아직 차가웠기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배웅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잠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계
Read more
PREV
1
...
4041424344
...
5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