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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작가: 경옥
계연수는 심서준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는 듯했다.

모든 걸 이미 계산해 둔 듯한, 흔들림 없는 눈빛을 바라보다가 잠시 망설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마음에 걸리던 일을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전에 제 사촌 오라버니께서 휘안현으로 가려고 했었잖아요. 헌데 만약 지금 마음이 바뀌어서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안 가도 되는 겁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고준안에게 보낸 편지에도 아직 답이 없었으니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일의 시작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다면 모두가 상처 없이 끝나기를 바랐다.

심서준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실, 뒤에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고준안이 휘안현 현령 자리를 얻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단지 흐름을 타서, 그가 원하는 길로 밀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생각은 없었다.

심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계연수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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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701화

    조 어멈은 멍하니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둘째 부인의 모습이었다. 원래는 새로 권한을 쥔 계연수에게 기세를 올리지 못하게 기선제압이나 해 두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되레 자신이 말려들고 말았다.다시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방금 들은 이야기를 곱씹었다. 지난번 주방에서는 사람들의 절반이 하루아침에 쫓겨났고, 십수 년을 일한 하인들조차 가차 없이 내쳐졌다고 한다. 주인의 심기를 거스른 이상, 정이니 의리니, 오래된 사람이니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제야 계연수가 자신을 겨냥해 한 말이라는 걸 깨달은 조 어멈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자신이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방금 전엔 늙은 종이 주제를 모르고 나섰습니다. 저는 주방에서만 십오 년을 일해 왔으니 각 주인마님의 입맛과 취향은 모두 꿰고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실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계연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어멈이 그렇게 말해 주니 안심이 되는군.”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다만 기억해 두거라. 나는 정에 끌려 판단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부터 따질 뿐이다.”조 어멈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흠칫했다.도무지 젊은 새색시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아궁이를 맡는 불지기 어멈이었다.계연수가 주방의 어려운 점을 묻자, 어멈은 긴장한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부엌 통풍이 좋지 않은 데다 곧 여름이 다가오는데, 한여름이 되면 열기가 너무 심해 예전에도 어린 하녀 몇이 더위를 먹고 쓰러진 적이 있다고 했다.계연수는 붓을 들어 그 내용을 종이에 적어 두었다.그 후로도 남은 사람들을 차례로 만났다.주방장을 비롯해 설거지를 맡는 어린 하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따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었다.마지막 사람까지 면담을 마쳤을 무렵, 계연수 앞에 놓인 종이에는 이미 빼곡한 기록이 남아 있

  • 주문춘귀   제700화

    계연수는 아래에 선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공손한 얼굴도 있었고, 구경하듯 지켜보는 얼굴도 있었다.조 어멈은 맨 앞줄에 서 있었다.그 표정은 마치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계연수는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곁에 놓인 명부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그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너희는 모두 오랫동안 주방을 지켜왔고, 그동안 심가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이다. 오늘 이렇게 불러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너희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주방 일에 대한 너희의 생각을 들어 보기 위함이다.”말이 끝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둘째 부인이 생각보다 공손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성격이 무르고 다루기 쉬울 거라 여기는 눈치였다.계연수는 옅게 웃으며 곁의 방 어멈을 한 번 바라보았다.목소리가 큰 방 어멈이 단호하게 한마디 하자, 금세 주변이 조용해졌다.계연수는 다시 몸을 일으켜 화청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용춘에게 명부 순서대로 한 사람씩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가장 먼저 불린 사람은 조 어멈이었다.자신의 이름이 첫 번째로 불리자 조 어멈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그녀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귀비탑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계연수의 모습이었다.앞의 작은 탁자에는 다과와 과일이 놓여 있었고, 향로에서는 가느다란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곁에는 시중드는 시녀 둘이 서 있었다.계연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로웠다. 은실로 수놓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의 비녀는 창으로 스며든 햇빛 아래에서 은은한 광채를 뿜어냈다.희고 깨끗한 얼굴은 달빛처럼 맑았다.그녀는 찻잔을 든 채 조 어멈을 내려다보았다.그저 담담하게 한 번 시선을 주었을 뿐인데, 조 어멈은 순간 깨달았다.자신은 종이고, 저 위에 앉은 사람은 주인이라는 것을.조 어멈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계연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그러고는 장 어멈을 가까이 부른 뒤 나직하게 말했다.“

  • 주문춘귀   제699화

    다음 날이 되자 심서준은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떠나기 전, 그는 먼저 문하를 주방으로 보내 기강을 바로잡게 했다.뒤이어 들일 사람들 역시 심서준이 직접 고른 이들이었다. 계연수가 주방 일을 맡게 된 것을 알고 일부러 그녀를 위해 준비해 둔 사람들이었다.주방은 워낙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이었다. 계연수가 아직 젊은 탓에 사람들을 다루기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 심서준은 뒤에서 미리 손을 써 두었다.또 방 어멈에게는 계연수 곁에 붙어 있으면서 많이 가르쳐 주라고 당부했다.심서준의 거처에 딸린 주방은 줄곧 방 어멈이 관리해 왔으니 경험만큼은 충분했다.다만 심서준은 그것이 자신의 지시라는 사실만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방 어멈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후작께서는 염려 마십시오. 소인이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제야 심서준은 집을 나섰다.잠시 뒤, 시녀들이 때를 맞춰 안으로 들어왔다.계연수는 용춘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물러나게 했다.침상은 말할 것도 없이 어질러져 있었고, 그녀의 몸 상태 역시 다를 바 없었다.용춘은 계연수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여며 주고 흐트러진 곳을 모두 정리한 뒤에야 다른 시녀들을 불러들였다.아침에 시어머니께 문안을 드리러 가기 전, 계연수는 일부러 서재에 들러 보았다.심서준이 자신이 완성한 그림 두루마리를 가져가 입궁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그런데 탁자 위에는 그림 두루마리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다가가 펼쳐 보니 태자에게 보여 주기로 했던 그림이었다.어젯밤 계연수는 태자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심서준에게 해 두었고, 심서준도 그때는 알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유독 그 그림만 남겨 두고 간 것이다.계연수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우선 그림을 한쪽에 두고 문안을 드리러 갔다.아마 백씨가 이미 심씨 노부인에게 자신이 주방 일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한 모양이었다.심씨 노부인은 아침부터 유난히 많은 당부를 했다.“처음 맡는 일이니 모르는

  • 주문춘귀   제698화

    결국 계연수 쪽이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성의가 없어졌다. 나중에는 아예 슬쩍 넘어가려 들기까지 했다.그런데 심서준은 겉으로는 무심한 눈빛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부른 횟수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마차에서 내릴 때에는 아직도 마흔 번이 남아 있었다.그제야 계연수는 어쩐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심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왜 저만 불러야 하는데요? 후작께서도 저를 부인이라고 백 번 불러 보시죠.”심서준은 입가에 옅은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래서 내가 안 부르면?”계연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정말 심서준을 어쩌지 못했다.그는 마치 철옹성 같아 빈틈도, 흔들림도 없었으니까.심서준은 너무나 쉽게 자신을 휘어잡았지만,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를 휘어잡아 본 적이 없었다.생각할수록 불공평했다.하지만 처음부터 두 사람의 관계 자체가 공평했던 적은 없었다.심서준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늘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천지의 총아였고, 언제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모든 사람이 그녀가 이 혼사를 통해 신분 상승을 했다고 여겼다.하지만 처음 그녀에게 혼인을 청한 사람은 심서준이었다.계연수는 다시 심서준을 바라보았다.언제나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 태도가 괜히 얄미웠다.“그럼 저도 안 부를 거예요. 앞으로는 절대로 안 불러요.”심서준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거두어졌다. 그와 함께 표정도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계연수는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움찔했다. 심서준은 자신을 함부로 놀릴 수 있으면서 왜 자신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인가.게다가 방금 한 말도 진심이 아니라 농담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정색하는 걸까.하지만 그 순간의 심서준은 정말 무서웠다. 마치 수라처럼 서늘하고 위압적이었다.계연수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곧장 꼬리를 내렸다.“

  • 주문춘귀   제697화

    계연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요.”그녀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이제 막 주방 일을 맡았잖아요. 저희가 자리를 비우면 아무래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심서준은 계연수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곧장 결론을 내렸다.“성동에 새로 문을 연 주루가 하나 있다. 거기엔 네가 아직 먹어 보지 못한 음식도 있을 것이다. 오늘 저녁은 내가 함께 가 주마.”계연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다음에 가면 안 될까요?”심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음에는 내가 시간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계연수를 안아 들고 일어섰다.심서준은 창밖을 한 번 바라본 뒤 덧붙였다.“지금 나가면 딱 좋겠군.”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오늘 함께 사 주마. 준비하고 나오거라. 나는 밖에서 기다리겠다.”계연수는 멍하니 심서준이 그대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용춘이 안으로 들어왔다.계연수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피어올랐다.심서준은 늘 그랬다.그녀의 생각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가 결정을 내리면 다른 사람은 그저 따를 뿐이었다.그러면서도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한 일로 예민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하지 말자고.설령 심서준이 자신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해도, 조금만 참으면 지나갈 일이었다. 무슨 큰일도 아니지 않은가.게다가 심서준은 어려서부터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자기 뜻을 굽히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그러니 이런 일 하나 때문에 그와 다툴 수도 없었다.일이 커지면 심씨 노부인 쪽도 상대하기 어려워질 테니까.계연수는 간단히 몸단장을 마친 뒤 밖으로 나갔다.심서준은 복도 아래에 두 손을 뒤로 한 채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말없이 서 있는 뒷모습은 크고 곧았지만, 어딘가 서늘한 기운도 함께 풍겼다.

  • 주문춘귀   제696화

    계연수는 요즘 심서준이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유독 자신에게 변덕을 부려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계연수는 늘 그의 감정을 읽어 내지 못했다. 분명 화가 났을 것이라 생각하면 정작 그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을 거라 여긴 순간에는 눈가와 미간에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어려 있는 듯했다.심서준은 원래도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기뻐하는 모습조차 좀처럼 보기 어려웠고, 계연수는 지금까지 그가 크게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계연수의 눈에 심서준의 표정은 늘 두 가지뿐이었다.하나는 왠지 기분이 나빠 보이는 얼굴. 다른 하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지금도 마찬가지였다.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왜 그런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심지어 자신이 잘못 본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계연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일은 다 끝나셨나요?”심서준은 낮게 응답했다.그러고는 그녀 곁에 앉아 계연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서재로 들어오지 않았느냐?”계연수는 솔직하게 답했다.“후작께서 너무 바빠 보이셔서요. 괜히 방해가 될까 봐…”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마침 옆채에 비어 있는 방이 하나 있잖아요. 그곳을 제 서재로 꾸미고 싶어요. 그러면 후작께서 공무를 보실 때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요.”심서준은 복잡한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계연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눈빛도 밝았다. 진심으로 그곳을 자신의 서재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생각해 보면 저렇게 말한 것 자체가 이미 그녀의 뜻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심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계연수는 언제나 적당한 선을 잘 지켰다. 마치 자신과 부부라는 관계에서조차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 같았다.그는 손을 뻗어 계연수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선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내 거처에 남는 방이 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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