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Chapter 51 - Chapter 60

146 Chapters

제51화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어지자, 노아리가 때맞춰서 입을 열었다.“됐어, 도하야. 정말로 강 비서님을 오해한 걸 수도 있어. 그래서 저렇게까지 화가 난 거겠지.”“아무리 그래도 강 비서님도 네 비서로 일한 지가 몇 년인데, 너도 믿었으니까 굳이 경찰 감정까지 안 한 거잖아. 이제 와서 진실이 어떻든 그게 뭐가 중요해.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강서이는 노아리를 바라보았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음침해질 수 있는지, 강서이는 처음으로 똑똑히 보았다.참 영악한 수법이었다.겉으로는 강서이를 감싸주는 듯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다른 뜻을 흘리고 있었다.민도하는 노아리의 말에 한발 물러섰다.“이 일은 여기까지야. 누구도 다시 꺼내지 마.”끝까지 민도하는 강서이 편을 들어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게 바로 민도하의 태도였다.강서이는 가슴 한복판이 거칠게 찢겨 나가는 듯이 속이 통째로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다.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싶다는 마음마저 사라졌다.어차피 설명해 봐야 소용없었다. 민도하는 이미 마음속에서 강서이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놓은 뒤였다. 그런데 강서이가 무슨 말을 더 보탠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심지어 잠깐, 강서이는 차라리 정말 자신이 그런 짓을 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야 민도하가 확실한 구실을 잡고 자신을 내칠 테니까.그렇게 되면, 그것대로 해방일 수도 있지 않을까?노아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드레스를 쥔 채 말했다.“내일이 축하 연회인데, 드레스가 망가졌으니 어떡하지?”민도하는 눈을 들어 옷장을 한 바퀴 훑어보더니, 마침내 새하얀 새틴 드레스에 눈길이 멈췄다.“이거 입어봐.”민도하가 말한 그 드레스는 바로 강서이가 자신의 몸에 맞춰 제작해둔 드레스였다.민도하와 남몰래 커플로 입으려고 맞췄던 바로 그 옷이었다.노아리는 새 드레스를 보자 다시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이 드레스도 예쁘다. 나한테도 잘 어울릴 것 같아.”두 사람은 그렇게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새 드레스 이야기를 이어갔다.방금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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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강서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쉽게 풀릴 줄은 몰랐다.어쩌면 민도하는 애초에 강서이가 남든 떠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는지도 몰랐다.‘이렇게 된 게 차라리 낫지. 이게 가장 나아!’‘이제 서로에게 빚질 일도 없고, 각자 즐겁게 살면 되니까.’민도하의 말을 듣자 노아리는 바짝 조여 있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민도하는 턱선을 단단히 굳힌 채, 눈동자 깊은 곳에 거센 기류를 머금고 있었다.“모든 건 계약대로 처리해. 위약금 내면 오늘 당장 꺼져도 돼. 아무도 안 붙잡아!”그 말은 강서이의 가슴을 정면으로 후벼 팠다.강서이는 또 한 번 민도하를 과하게 평가한 것이다.민도하는 철저한 사업하는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무슨 선심을 쓰겠는가?아무도 보지 못한 구석에서 노아리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꼭 다물었다.‘도하가 정말 위약금 때문에 강서이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건가?’...오후 내내 강서이는 제대로 된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저 컴퓨터 앞에 엎드린 채, 정신이 나갔을 때 덜컥 사인했던 장기 계약서를 몇 번이고 뒤져봤다.프라임로드투자의 법무팀이 만만할 리 없었다.그 긴 계약서에는 파고들 틈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즉, 위약금을 물어주거나 민도하가 자비를 베풀어 사직을 승인해주는 것 말고는 강서이에게 다른 길이 없었다.그 사실을 확인한 강서이는 눈앞이 캄캄해졌다.예전에 머릿속에 가득했던 행복한 생각이 이제 전부 후회의 눈물이 되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사람은 역시 어릴 때의 충동에 대한 값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정면으로 부딪쳐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다 놔 버리고 드러누워야 했다. 민도하가 빈둥거리는 사람 하나 먹여 살리게 만들면 그만이었다.강서이는 시간에 딱 맞춰서 컴퓨터를 껐다. 이날도 어김없이 정시 퇴근이었다.엘리베이터에 막 올라탄 직후, 민도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시간을 재기라도 한 듯했다. 자리의 전화로 안 걸고, 굳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이제부터는 컴퓨터를 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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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이건 전부 저희 매장에 최근 들어온 신상들이에요.”매니저는 성의를 다해 하나하나 소개했다.강서이는 그중 연보라빛 드레스 한 벌을 골랐다. 막 갈아입어보려던 참이었다.그때 매니저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통화를 하던 매니저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지더니, 이내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이 드레스는 다른 고객님이 예약해두셨어요.”강서이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강서이는 바로 다른 디자인을 골랐다.강서이는 워낙 몸매가 좋아서 뭘 입어도 잘 어울렸다. 덕분에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드레스를 금방 정할 수 있었다.서한승은 시간을 한번 확인하더니, 마침 저녁 시간이니 같이 식사하자고 제안했다.사실 서한승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도 강서이 쪽에서 먼저 말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딱 잘 맞아떨어졌다.두 사람이 막 자리를 뜬 직후, 민도하가 노아리를 데리고 뷰티에 들어왔다.두 사람의 차사 엇갈리듯 스쳐 지나갔다.먼저 서한승의 차를 알아본 건 노아리였다.“저거 한승이 차 같은데.”노아리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근데 강 비서는 왜 또 한승이랑 같이 있어? 요즘 저 둘 꽤 자주 붙어 다니네. 강 비서가 야근도 안 하더니, 한승이 만나려고 급히 온 거야?”“어쩐지 그렇게까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더라. 다른 줄을 잡았구나.” 노아리는 강서이를 깔보는 기색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민도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강서이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그 반응을 보자, 노아리는 점심때 괜히 혼자 의미를 부여했나 싶었다.민도하가 강서이의 사직서를 승인하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정말 계약 때문일 수 있었다.한 번 선례를 만들면, 회사 안에서 계약서를 쓴 다른 사람들까지 다른 생각을 품게 될 테니까.노아리가 입어본 드레스는 바로 강서이가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했던 그 드레스였다.민도하가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따로 빼 두라고 했던 옷이기도 했다.그 사실만으로도 노아리는 민도하가 자신에게 꽤 마음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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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강윤희의 말은 강서이에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날아들었다. 강서이는 미처 대비할 틈도 없었고, 그 말 앞에서 숨을 곳도 없이 몰렸다.그리고 감히 민도하의 반응을 바로 보지 못했다.민도하가 괜한 오해를 할까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민도하가 이 거짓을 바로 깨뜨려버릴까 봐 겁이 났다.다행히 민도하는 연기를 꽤 잘했다. 잠시 침묵한 뒤, 민도하는 서두르지 않고 입을 열었다.“아직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강서이의 가슴 한가운데가 턱 막혔다.‘아직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한 거야?’‘아니면 애초에 나랑 결혼할 생각 자체가 한 번도 없었던 거야?’그 말이 떨어진 뒤, 강서이는 더이상 연기를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런데 민도하가 눈을 들어 강서이를 보며 물었다.“서이가 어떤 결혼식을 좋아하느냐에 달렸죠.”강윤희가 궁금한 눈으로 강서이 쪽을 보자, 강서이는 급히 민도하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얼버무리듯 답을 내놨다.“전통혼례예요. 전통혼례가 더 결혼식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강윤희는 금세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전통혼례가 좋더라. 예단이랑 예물도 제대로 오가고, 양가 어른들 모시고 격식 있게 해야 진짜 귀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민도하는 계속 강윤희와 가볍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하지만 강서이의 생각은 자꾸만 멀어졌다.다행히 민도하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민도하가 이제 가보겠다고 했을 때, 강서이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으로 숨을 돌렸다.강서이가 조심해서 가라는 말도 꺼내기 전에, 강윤희가 먼저 딸에게 민도하를 배웅하라고 재촉했다.연기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 했다. 강서이는 결국 억지로 민도하와 다정한 연인을 흉내 내며 병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병실 문을 나서자마자 강서이의 표정은 단번에 차가워졌다. 이제는 단 1초도 더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조심히 가.”민도하는 강서이의 반응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비꼬듯 말했다.“이용할 거 다 해놓고 바로 태도 바꾸는 건 대체 누구한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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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내일이 바로 축하 연회다. 강서이는 새벽부터 호텔에 가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했기에 병원에 남아 강윤희를 돌볼 수는 없었다.물론 더 큰 이유는 강윤희가 강서이에게 병실에 남으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윤희는 딸이 더 지칠까 봐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어차피 지금 강윤희는 수술 후 회복만 잘하면 되는 시기라 특별히 급한 일도 없었다.게다가 강서이가 간병인까지 따로 붙여둔 상태여서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다.강서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뜻밖에도 안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상대도 강서이를 보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강 비서님,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하장현의 손에는 보온통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병문안을 온 길인 듯했다.“저희 엄마가 여기 입원해 계세요.” 강서이는 그렇게 설명한 뒤 되물었다. “하 사장님도 가족분 문병 오신 거예요?”“저희 어머니요. 이틀 전에 넘어지셨어요.”“많이 다치셨어요?”“골절이긴 한데, 심한 건 아닙니다.”“다행이네요.”강서이와 하장현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바로 강서이는 꽤 좋게 평가했지만, 결국 노아리가 퇴짜를 놓았던 그 AI 프로젝트였다.이 얘기가 나오면 강서이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애초에 먼저 하장현을 찾아갔던 쪽이 강서이였기 때문이다.하장현도 그 일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마주친 김에 하장현은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꺼냈다.“강 비서님, 전에 프라임로드투자에서 제가 진행하고 있는 AI 프로젝트에 꽤 관심울 보이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협업을 안 한다고 한 겁니까?”하장현은 기술 파트쪽 사람이다. 그래서 비즈니스 세계 특유의 복잡한 속사정에는 어두웠고, 말도 늘 직선적이었다.“정말 죄송해요. 프라임로드투자 내부에서 IB본부 3부 본부장이 새로 바뀌었거든요. 프로젝트 관련 결정은 지금 그분이 다 하고 있고, 이제는 제가 관여할 수가 없어요.”하장현은 미간을 찌푸렸다.“어쩐지 이상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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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연회 당일, 강서이는 하루 종일 호텔 쪽에서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빠서 회사에는 가지도 못했다.오후가 되어서야 김설이 도와주러 왔다. 그런데 강서이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차림인 걸 보자마자, 얼른 드레스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했다.그런데 강서이는 드레스를 예약하는 걸 깜빡했다고 말했다.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김설도 믿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강서이가 그렇게 말하자, 김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강서이는 무슨 일이든 빈틈없이 처리하는 만능 비서였다. 그런 강서이가 드레스 예약을 잊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김설은 원래라면 몇 마디라도 덧붙이고 싶었다.하지만 강서이는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지시만 내렸다. 감정이 흔들린 기색조차 없었다.그래서 김설은 턱밑까지 차오른 위로의 말을 조용히 삼킬 수밖에 없었다.오후 5시 반이 되었는데도 민도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손님들은 이미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었다.강서이는 어쩔 수 없이 민도하를 대신해 직접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유지하느라 안면 근육이 다 뻣뻣해질 지경이었다.5시 50분, 강서이는 다시 한번 김설에게 민도하가 어디쯤 왔는지 물었다.김설도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모르겠어요. 대표님이랑 연락이 안 돼요.”강서이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김설에게 지시했다.“노 본부장님한테 전화해봐.”김설은 바로 시키는 대로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김설은 노아리에게서 답을 들었다. 전화를 끊은 뒤, 김설이 강서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쩐지 복잡했다.“노 본부장님이 뭐래?”강서이가 묻자, 김설은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대표님은 노 본부장님이랑 같이 계시대요. 노 본부장님 드레스 수선 보는 거... 보는 거 같이 봐주다가 조금 늦었다고요. 지금 오시는 길인데, 몇 분 정도는 늦을 수 있으니까 일단 팀장님이 먼저 버티고 있으래요.”말끝으로 갈수록 김설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짙어졌다.강서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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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김설은 강서이에게 따뜻한 물을 따라주며 걱정스레 물었다.“언니, 괜찮으세요?”“괜찮아. 아직은 버틸 만해.” 강서이는 따뜻한 물을 마신 뒤에야 속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물었다. “밖은 어때?”“다 괜찮아요.” 김설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는 지금 밖보다 언니 몸부터 챙겨야 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먼저 나가서 일 봐. 난 여기서 잠깐만 좀 쉬었다가 갈게.” 강서이는 밖에서 손이 모자랄까 봐 김설부터 내보냈다.“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부르세요.”김설이 나간 뒤, 강서이는 벽에 기대 잠깐 숨을 고르려 했다.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민도하에게서 온 전화였다.강서이가 전화를 받았을 때,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왜?”[어디야?]전화기 너머로도 민도하의 싸늘한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화장실이야.”[빨리 와.]강서이는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민도하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린 뒤였다.마치 강서이와 한마디 더 나누는 것조차 자기 시간 낭비라는 듯했다.강서이는 억지로 정신을 추슬러 밖으로 나갔다.민도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일도 잘 풀리고, 사랑도 손에 넣었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민도하는 강서이가 다가오자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아마 강서이가 드레스를 입지 않은 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손님들이 있는 자리였기에 민도하는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턱짓으로 술잔 쪽을 가리켰다.그 한 번의 신호만으로도 충분했다.민도하가 굳이 강서이에게 전화를 건 이유도 결국 자기 대신 술을 막아달라는 뜻이었다.예전처럼 필요할 때 불러 세우고 필요 없어지면 밀어내는 식이었다.강서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대표님, 전 지금 위가 좀 좋지 않습니다.”민도하는 눈썹을 더 깊게 찌푸렸다.강서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민도하의 목소리도 더 낮아졌다.“이분은 동화투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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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강서이는 서한승이 올 줄은 몰랐다.애초에 서한승이 따로 말한 적도 없었다.하지만 곧 서한승이 이 자리에 오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B시 바닥은 원래 좁았다. 민도하와 서한승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고, 집안끼리도 어느 정도 왕래가 있었다.게다가 지금은 서한승이 귀국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이런 자리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서한승을 발견한 노아리는 환하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한승아, 너 왜 이제 와? 한참 기다렸잖아.”서한승은 가볍게 답했다.“길이 좀 막혀서 늦었어.”“너 그 넥타이, 내가 선물한 그거지? 너한테 잘 어울린다.” 노아리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서한승의 넥타이를 한 번 정리해줬다.가까워 보이면서도 지나치지 않았다.선이 분명한데도 친밀감은 충분했다.모든 게 딱 적당했다.그 모습을 보자, 강서이는 예전에 EVERYDAY 룸 밖에서 우연히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민도하는 자신이 해본 일 가운데 가장 짜릿했던 게, 사랑 때문에 내연남이 된 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말 때문에 서태우는 민도하가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던 사람이 노아리라는 걸 확신했다.서태우는 또 노아리가 예전에 서한승을 따라 외국까지 나갔었다고도 했다.그러니까... 민도하와 서한승은 서로 얽힌 경쟁자였던 셈이다.강서이는 그 복잡한 관계를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었다.그런데 어느새 서한승이 강서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잠 제대로 못 잤어?”갑작스러운 걱정 섞인 말에, 강서이는 오히려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강서이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술 마셨어?” 서한승은 강서이에게서 살짝 술 냄새를 맡은 듯했다. 잘생긴 이목구비 사이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위가 안 좋다면서 술까지 마셨어?”“어쩔 수 없었어요. 안 받을 수가 없어서요.” 강서이도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서한승이 두 번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군가 강서이에게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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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이제는 서한승이 강서이 대신 술까지 받아주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 노아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서태우는 원래 입이 가벼운 편이었다. 속에 담아두질 못하는 성격이라, 곧장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한승 형이 왜 강서이 술까지 대신 마셔주지? 둘이 그렇게까지 친했나?”원래는 그 말을 민도하에게 물어보려던 참이었다.그런데 마침 누군가 민도하에게 다가와 말을 붙이는 바람에, 서태우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켜야 했다.대신 곁에 있던 노아리의 기분이 살짝 가라앉은 걸 눈치채고,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너무 신경 쓰지 마. 난 오히려 한승 형이 저러는 게 좀 의도적인 것 같아. 티 나게 일부러 그러는 느낌?”“남자는 남자를 아는 법이거든. 너희가 이미 끝난 사이라 해도, 전 애인한테 괜히 집착 비슷하게 남는 게 있어.”“그러니까 내 생각엔, 한승 형은 그냥 강서이를 이용해서 널 자극하려는 거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서태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비웃었다.“게다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봤는데, 굳이 수준 떨어지는 쪽에 눈이 가겠어? 한승 형이 여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진 않아. 별것도 아닌 사람한테 신경 쓸 필요 없어.” 서태우는 강서이를 얕잡아보는 태도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그 말을 듣고 나니, 노아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그래도 노아리는 무심코 민도하 쪽을 바라봤다.민도하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민도하 역시 조금 전, 서한승이 강서이 대신 술을 받아주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그런데도 지금 민도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정말 강서이 일은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그 모습을 확인하자, 노아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불편함도 완전히 가셨다.잔을 들고 민도하 곁으로 다가간 노아리는 자연스럽게 민도하의 팔짱을 꼈다. 그대로 대화에 끼어들면서, 더이상 강서이와 서한승 쪽은 신경 쓰지 않았다.연회가 절반쯤 지날 때까지 강서이는 술은 더이상 마시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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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프라임로드투자가 이 호텔에서 축하 연회를 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그래서 강서이는 이곳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어디가 조용한지, 어디로 가야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는지도 익숙했다.며칠 전부터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기온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매서운 바람이 몸을 스치자, 머릿속까지 얼어붙는 듯했다. 정신이 또렷해지는 차가운 냉기였다.오늘 드레스를 입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얇은 드레스 차림이었다면 거기 오래 서 있기도 힘들었을 것이다.강윤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딸,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강서이는 바로 답했다.[알겠어요.]곧이어 강윤희는 민도하에게도 대신 축하 인사를 전해 달라고 했다.강서이는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잠시 망설인 끝에, 결국 다시 알겠다고 답을 했다.술기운도 어느 정도 가시자, 강서이는 몸을 일으켜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안쪽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민도하였다.강서이는 민도하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그것도 혼자 나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강서이는 저도 모르게 민도하 뒤쪽을 한 번 더 봤다.늘 붙어 다니던 노아리도 같이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누구 기다려?”민도하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강서이를 내려다봤다.또렷한 이목구비는 더없이 날카로웠고, 눈빛에 온기는 조금도 없었다.“서한승?”간신히 풀렸던 강서이의 미간이 다시 일그러졌다.강서이는 지금 민도하가 내뱉는 말투가 몹시 불쾌했다.사람을 깔보는 말투였다.“비켜줘.”강서이는 최대한 감정을 누른 채 말했다.하지만 민도하는 움직이지 않았다.강서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 때보다 깊고 무거웠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 그대로 전해졌다.강서이의 인내가 끊어지기 직전, 민도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충고 같기도 했고, 경고 같기도 했다.“강서이, 서씨 가문은 원래 집안 배경을 엄청 따지는 집안이야. 너 같은 출신은 거기서 절대 반기지 않아. 괜한 꿈 꾸지 말고, 쓸데없는 마음 접어. 얌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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