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Chapter 61 - Chapter 70

146 Chapters

제61화

심진호는 손을 뻗어 강서이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오랜만이긴 하네요. 강 비서님, 더 예뻐지신 것 같은데요?”“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서이는 예의상 웃으며 받아넘겼다. 그러면서도 티 나지 않게 심진호와의 거리를 벌렸다.심진호는 이 바닥에서 제법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었다.돈에 지나치게 집착했고, 여자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그런데 묘하게 보는 눈은 정확했다.손대는 투자마다 수익이 났고, 그 덕에 몇 년 사이 자산도 꽤 불어났다. 그래서 업계 사람들도 적당한 선에서 심진호를 예우해 줄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두 회사가 접촉하던 시기에도, 심진호는 기회만 되면 강서이에게 은근한 말을 흘리곤 했다.자기 곁으로 오기만 하면, 굳이 이 바닥에서 고생하며 일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매일 쇼핑하고 여행 다니면서 자기 기분만 맞춰주면 된다고도 했다.한도가 없는 블랙카드도 손에 쥐어 줄 테니 마음대로 긁으라고도 했다.집도 차도 사주고, 전용기까지 사 줄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강서이는 흔들리지 않았다.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깔끔하게 거절했다.심진호도 아쉬워하긴 했지만, 강서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적은 없었다.다만 본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마주칠 때마다 한 번씩은 꼭 군침을 흘리면서 선을 넘으려 들었다.“역시 민 대표님 안목이 좋긴 좋아요. 옆에 둔 비서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일도 잘하잖아요. 저도 강 비서님 같은 조력자만 있다면, 사업을 더 크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과하게 봐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냥 비서일 뿐이에요. 민 대표님이 지금 자리까지 온 건, 전부 민 대표님이 직접 해낸 일이죠.”“강 비서님은 너무 겸손하다니까요! 프라임로드투자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돈 되는 프로젝트의 절반은 강 비서님 손을 거쳤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사람이 비서만 하는 건 솔직히 너무 아깝지.”심진호는 말을 하면서 또 슬쩍 강서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강서이는 술잔을 드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한 발 비켰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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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민도하의 말투도 표정도 다급했다.민도하가 아끼는 사람이니 저럴 수밖에 없겠지 싶으면서도 강서이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작 잠깐 노아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저 정도로 불안해할 일인가 싶었다.“말해.” 민도하의 목소리에는 이미 짜증이 배어 있었다. “아리 어디 있냐고.”강서이는 민도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노 본부장님이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볼 의무는 없잖아.”옆에 있던 서태우도 날 선 목소리로 거들었다.“서 대리가 강 비서는 알 거라고 했다던데, 강 비서한테 안 물어보면 누구한테 물어봐요?”강서이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의 말투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안전이 걸린 문제였다. 강서이는 그 감정까지 따질 겨를이 없어서 곧바로 사실대로 말했다.“조금 전에 노 본부장님이 일성투자 심진호 대표님이랑 같이 계셨어요. 심진호 대표님은 노 본부장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도 있어요.”강서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도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차가운 기운이 얼굴 전체에 내려앉자, 강서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강서이.” 민도하의 목소리는 단단하게 식어 있었다. “심진호 대표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아리를 그 사람이랑 단둘이 있게 뒀어?”그 말 속에는 분명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강서이는 그 자리에서 잠시 할말을 잃었다.제대로 상황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민도하는 이미 모든 책임을 강서이 쪽으로 밀어두고 있었다.서태우 역시 심진호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더욱 노아리 편에 서서 쏘아붙였다.“아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서이, 내가 진짜 가만 안 둬!”서태우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다급히 자리를 떴다.노아리에게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사람을 찾듯 급하게 뛰어갔다.민도하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강서이를 뚫어지게 바라봤다.“네가 아리를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더러운 방식으로까지 사람을 해치려고 할 필요는 없잖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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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비즈니스 현장에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더러운 관행이 적지 않았다.강서이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그럼에도 강서이는 끝까지 심진호 대표의 기분을 거스르며 끼어들었다.그게 심진호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심진호는 그대로 술잔을 들어, 안에 든 술을 강서이 얼굴에 전부 들이부었다.“강 비서님이 뭐라고 이래요? 내가 왜 강 비서님 체면까지 봐줘야 합니까? 비서면 비서답게 굴지, 무슨 자격으로 내 일을 가로막아요?”강서이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술을 뒤집어썼다.차가운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목을 지나 옷안으로 스며들었다.서늘한 감촉 덕분에, 오히려 강서이는 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심 대표님, 술도 끼얹으셨고 화도 푸셨으니까, 이제 본부장님은 제가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대표님은 편히 쉬세요. 저희는 먼저 나가볼게요.”강서이는 그렇게 말한 뒤, 힘이 풀린 노아리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뒤에서 심진호가 얼마나 화를 내든 무슨 말을 쏟아내든, 강서이는 더 돌아보지 않았다.복도 끝에서는 민도하와 서태우가 급히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노아리를 보자, 서태우가 다급하게 불렀다.“아리야!”방금 전까지만 해도 술기운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강서이에게 기대고 있던 노아리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강서이를 밀쳐냈다.그리고 그대로 민도하 쪽으로 달려갔다.민도하는 달려든 노아리를 그대로 받아 안았다.그 바람에 강서이는 옆의 벽에 세게 부딪혔다.정말 말 그대로 처참했다.강서이가 겨우 몸을 바로 세웠을 때는 이미 민도하가 노아리를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고개를 숙이고 품 안의 노아리를 살피는 민도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괜찮아?”노아리는 눈가를 붉힌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나는... 심진호 대표님이 그런 식으로 몸에 손댈 줄은 몰랐어...”민도하의 미간이 단번에 찌푸렸다.민도하는 눈을 들어 강서이를 봤다. 조금 전 노아리를 달래던 기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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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술에 흠뻑 젖은 옷이 얼음장처럼 강서이의 몸을 감쌌다.심진호가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만, 강서이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멀어져가는 민도하의 뒷모습도, 강서이의 시야 안에서는 점점 한 덩어리로 뭉개졌다.모든 것이 잿빛이었다.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번 일을 가능한 한 조용히 덮기 위해서.노아리의 체면을 지키고, 프라임로드투자와 일성투자의 협력 관계를 흔들지 않기 위해서.강서이는 심지어 심진호 대표의 체면까지 계산하고 있었다.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은 놓쳤다.이 지경으로 망가진 자기 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는, 끝내 생각하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화를 억누르지 못하던 심진호는... 이제는 오히려 강서이를 보는 눈에 연민 비슷한 기색까지 담고 있었다.“강 비서님, 정말 그만두실 생각입니까?” 심진호는 겉으로는 걱정하는 말투로 몇 마디를 건넸다.강서이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휴지로 얼굴에 흐르는 술기를 묵묵히 닦아낼 뿐이었다.“진짜 사직하시면, 일성투자로 오셔도 됩니다. 제가 받아드릴 수도 있어요.”강서이는 무표정하게 말했다.“제가 일성투자로 가면, 심 대표님은 프라임로드투자랑 협업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잖아요.”그 말에 심진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그게 현실이었다.사업가는 누구 한 사람 때문에 돈과 등을 지지 않는다.민도하도 마찬가지였다.강서이가 너무도 처량해 보였던 걸까?심진호는 떠나기 전, 묘한 뜻이 담긴 말 한마디를 남겼다.“강 비서님, 노 본부장님이 생각보다 만만한 분이 아니네요.”심진호는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하지 않았다.그래도 강서이라면 그 말뜻을 알아챌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김설이 허둥지둥 달려왔다.강서이의 몰골을 본 김설은 눈가가 바로 붉어졌다.김설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강서이가 먼저 괜찮다고 말했다.“저한테 여벌 옷이 있어요. 언니가 입으면 좀 크긴 하겠지만, 젖은 옷 입고 있는 것보단 나아요. 날도 추운데 감기 걸려요.”김설은 그대로 강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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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강서이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서한승에게 조용히 고맙다고 말했다.서한승은 무대 위의 눈부시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서이에게 말했다.“그만 봐.”강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연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 열 시였다.강서이는 이번 연회의 총괄 담당이라서, 당연히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마지막 손님들까지 모두 배웅하고 나서야 강서이는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김설을 찾으러 돌아가던 길이었다.그때 뜻하지 않게 서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태우가 민도하에게 물었다.“강서이 진짜로 그만두겠다는 거 같아? 아니면 그냥 말로만 그러는 거야?”서태우는 곧바로 코웃음을 쳤다.“걔가 회사를 진짜 떠날 수 있겠어? 난 솔직히 안 믿겨. 네가 그때 그냥 바로 오케이 했어야지.”“어디 한번 어떻게 나오나 보게. 걔 성격상, 네가 진짜 받아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사에 남았을 걸. 설령 나간다 해도, 결국 다시 돌아올 방법을 찾았겠지.”강서이는 그쪽을 빙 둘러 지나갔다.그 둘과 마주치지 않고 김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노아리와 서태우가 밖으로 나왔을 때, 입구 앞에는 서한승이 서 있었다.노아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먼저 환하게 웃으며 서한승에게 말을 걸었다.“아직 안 갔어?”서태우가 대신 말했다.“너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난 빠질게. 둘 사이에 끼면 내가 눈치 없잖아.”노아리의 미소는 끊길 줄 몰랐다.“그럼 두 사람 먼저 가. 나는 도하 기다릴게. 도하도 곧 나오거든.”서태우는 차에 타기 직전, 문득 생각난 듯 서한승에게 한마디를 던졌다.“아, 맞다. ZH은행 리셉션 때 누구 데려갈지 정했어? 거기 이사진들 절대 만만한 사람들 아니잖아.”“여자 파트너 없이 가면,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어떻게든 옆에 사람 붙여놓을 거야.”“근데 이제 막 돌아왔으니까 마땅히 같이 갈 사람도 없을 거 아냐? 차라리 아리 데려가. 믿을 만하잖아. 체면도 살고.”노아리는 서한승을 바라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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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강서이는 거의 40분 가까이 기다린 뒤에야 겨우 차를 잡아탈 수 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이 훌쩍 지난 뒤였다.지독하게 고된 하루였다.강서이는 간신히 버티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머리를 말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강서이는 거의 그대로 깊은 피로 속으로 가라앉았다.다행히 다음 이틀은 주말이었다.덕분에 강서이는 오랜만에 알람 없이 눈이 떠질 때까지 잘 수 있었다.일어난 뒤에는 닭백숙을 끓였다.강윤희를 보러 병원에 가져갈 생각이었다.집을 나서려는데, 마침 건물 청소 아주머니가 복도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아이고, 누가 이렇게 양심도 없이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거야?”강윤희는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전보다 표정도 밝았고, 기운도 조금 돌아온 듯했다.강윤희는 닭백숙 국물을 다 마신 뒤, 강서이에게 퇴원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꺼냈다.병원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하지만 강서이는 알고 있었다.그 말의 본심은 돈이 아깝다는 데 있다는 걸.“저한테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야죠. 퇴원해도 된다고 하실 때 나가요.”강윤희는 그 말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이미 의사에게 한 번 말해봤다가 뜻대로 안 된 뒤인 게 뻔했다.그래서 이번에는 강서이를 설득해보려 했던 모양이었다.“답답하시면 제가 잠깐 나가서 바람 쐬게 해 드릴게요. 날이 좀 안 좋긴 하지만.”어젯밤 비가 그쳤다 쏟아지기를 반복하면서, 기온은 더 떨어져 있었다.강서이는 강윤희와 함께 병원 옆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그러다 웨딩 촬영을 하는 젊은 커플과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본 강윤희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강윤희의 눈에는 부러운 빛이 가득했다.언젠가 자기 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듯했다.강서이는 그 시선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서이야, 너랑 도하는 언제 웨딩 사진 찍니?”강윤희는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강서이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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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그날이 바로 강서이와 민도하가 처음 마주한 날이었다.그 시절의 민도하는 어둠뿐이던 강서이의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그래서 그 뒤로 7년 동안 강서이는 줄곧 그 빛을 따라갔다.망설임도 없이, 돌아볼 생각도 없이.하지만 한때 강서이를 비춰주던 그 빛은... 결국 나중에는 강서이를 더 깊은 밑바닥으로 밀어 넣었다....그 뒤 며칠 동안도 강서이는 전과 다름없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퇴근했다.퇴근하기 전에는 사직서를 한 장 출력했다.그리고 반듯하게 정리해서 민도하의 책상 위에 올려뒀다.‘혹시 또 모르잖아.’‘어느 날은 기분이 괜찮아서 그냥 승인해줄지.’물론 강서이도 안다. 그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건지.그래도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었다.며칠 동안 민도하는 회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덕분에 강서이는 오히려 숨 돌릴 틈이 생겼다.물론 노아리도 보이지 않았다.김설은 몰래 강서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했다.노아리가 요 며칠 회사에 얼굴도 안 비추고, 출근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마음대로 오고 가는 모양이, 벌써 자기를 프라임로드투자의 안주인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도 했다.강서이는 한마디를 더 물었다.“그거, 민 대표도 알아?”“당연히 알죠. 근데 아무 말도 안 하시잖아요.” 김설은 입을 삐죽였다. 불만이 한가득이었다.강서이는 딱히 놀랍지 않았다.모든 사람이 민도하의 규칙 안에 있어야 했다.그런데 유독 노아리만은 그 바깥에 있었다.노아리는 예외였다.그건 민도하가 직접 허락한 예외였다.다만 강서이가 더 신경 쓴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강서이는 바로 다시 물었다.“네 말은... 민 대표가 요 며칠 회사에는 왔다는 뜻이야?”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긴 오셨어요. 근데 거의 언니 퇴근하고 나서 오셨죠.”조금 이상하긴 했다.그래도 강서이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민도하는 프라임로드투자의 대표였다.애초에 다른 직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일정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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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강서이는 민도하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그것도 서한승 앞에서.가슴 한가운데가 단번에 답답해졌다.민도하는 또다시 프라임로드투자 규정을 들먹였다.언제나 프라임로드투자 규정이었다. 늘, 언제나, 끝까지.결국 그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서이 하나뿐이었다.팽팽한 기류가 그대로 굳어버리려던 때였다.마침 퇴근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강서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사직서를 민도하에게 내밀었다.“이제 퇴근 시간이네요. 그럼 더는 프라임로드투자 규정 안 지켜도 되는 거죠? 대표님.”그 말을 끝내자마자, 강서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향했다.민도하의 표정이 어떻든 더는 돌아보지 않았다.민도하의 낯빛이 좋을 리 없었다. 온몸에 싸늘한 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서한승의 시선은 민도하 손에 들린 사직서로 향했다.“도하야, 내가 알기로는 강서이가 진작에 사직 얘기 꺼냈잖아. 그런데 아직도 승인 안 한 거야?”“그건 프라임로드투자 내부 일이야.” 민도하는 사직서를 거둬들였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을 누르는 압박감은 더 짙어졌다. “너랑은 상관없어.”“나도 네 회사 일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 서한승은 옅게 웃었다.민도하는 건조하게 잘라 말했다.“그럼 딱 거기까지만 해.”서한승은 여전히 흐릿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하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친구니까 한마디만 할게. 강서이가 정말로 마음을 정한 거면, 넌 못 잡아.”...ZH은행 리셉션 당일, 강서이는 가는 길에 차가 막히는 바람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서한승은 오늘 행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이곳저곳 인사하고 사람을 맞이하느라 바빴기에 직접 입구까지 나와서 강서이를 데리러 올 수는 없었다.강서이는 괜찮다고 했다.도착하면 혼자 들어가면 된다고 미리 말해둔 상태였다.그런데도 강서이는 연회장 입구에서 뜻밖의 사람들과 마주쳤다.서태우와 노아리였다.서태우는 일부러 노아리를 마중 나오던 길이었다.그런데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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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마침 그때 서한승에게서 전화가 왔다.강서이가 도착했는지 묻는 전화였다. 강서이는 전화를 받은 뒤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노아리는 서태우에게 물었다.“강 비서는 왜 온 거야? ZH은행에서 초대한 거야?”서태우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그럴 리가 있겠어? 어디서 초대장 하나 구해온 거겠지. 강서이 원래 잔머리 엄청 잘 굴리잖아. 뻔하지, 인맥이랑 자원 노리고 온 거지.”노아리도 원래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서태우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오히려 더 확신이 섰다.“저런 식으로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은 기회가 있다면 절대 하나도 안 놓치지. 한 번 놓치면 다시 안 올 수도 있으니까.”방금 강서이에게 한마디 들은 뒤라 서태우의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서태우는 더이상 강서이 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강서이 얘긴 좀 그만하자. 진짜 귀신도 아니고, 어딜 가나 붙어 있네. 내가 도하였으면 진작에 잘랐어.”“도하는 공사 구분이 확실하잖아. 강 비서가 딱히 잘못한 게 없으면, 먼저 자르진 않을 거야.”서태우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그게 문제라니까. 도하가 너무 원칙적이야. 그래서 강서이 같은 계산 빠른 여자한테 휘둘리는 거지.”“됐고, 그 얘긴 그만.” 노아리는 더 궁금한 게 따로 있었다. “한승이는 오늘 파트너 데리고 왔대?”서태우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무슨 파트너를 데려와. 설령 데려온다 해도 너 말고 누가 있겠어?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아.”노아리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들어가자. 나 한승이한테 취임 선물도 준비했어.”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을 때, 서한승은 막 강서이를 맞이한 뒤였다.서한승은 강서이와 몇 마디를 나누고 있었다.노아리는 자연스럽게 서한승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한승아, 축하해. 선물도 준비했어. ZH은행에서도 더 크게 잘되길 바랄게.”“고마워.”서한승은 선물을 받긴 했다.하지만 바로 뜯어보지는 않았다.서한승은 자연스럽게 곁에 있던 비서에게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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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민도하가 서한승과 인사를 나눌 때, 강서이는 서한승의 곁에 조용히 서 있었다.강서이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졌다.괜히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서한승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민도하와 눈이 마주칠까 봐 선뜻 고개도 들지 못했다.그런데 곧 강서이는 그러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괜한 걱정이었다.민도하는 강서이가 누구의 파트너로 왔는지 따위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다.그는 강서이를 더이상 보지도 않았다.서한승과 인사만 마친 뒤, 곧장 노아리 쪽으로 향했다.강서이는 그런 자신이 못내 답답했다.아직도 민도하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렸다.그래도 강서이는 스스로를 다독였다.‘끊어내는 게 한 번에 될 리 없잖아. 조금씩 하면 돼.’‘지금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어.’...민도하가 나타나자, 노아리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듯했다.그래서인지 노아리는 내내 민도하의 팔을 놓지 않았다.게다가 민도하는 자본시장 안에서 입지가 확실한 사람이었다.B시 안에서도 손꼽히는 신흥 금융인이었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쪽이었다.그 덕에 노아리 역시 자연스럽게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강서이가 화장실에 다녀와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노아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민도하 옆에 붙어 있는 노아리 씨, 대체 어떤 집안이야? 민도하가 엄청 감싸던데. 둘 사이가 예사롭지 않아 보여.”“아직도 몰라? 아마 민씨 가문 쪽이랑 엮일 사람일걸. 노장훈 딸이잖아.”상대는 노장훈을 아는 사람인지, 사정을 조금 더 알고 있는 눈치였다.“노장훈 장관이 요즘 힘을 받는 건 맞는데, 그래도 민씨 가문이랑 비교하면 차이가 크지 않나?”노장훈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1년 남짓 전에야 B시로 돌아왔다.그것도 딱히 더 높은 자리로 올라온 건 아니었다.보통 사람들 눈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래도 명문가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은 문턱에 겨우 발을 걸친 수준이었다.“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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