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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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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김무언과의 대화가 끝나자 성대한 만찬이 정식으로 막을 올렸다.엄경미와 주병찬이 나란히 다가와 강지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김씨 가문 사람들을 메인 테이블로 안내했다.강지현은 오늘 엄경미를 두 번째로 만나는 날인데 이 여자의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말끝마다 ‘우리 지현이’, ‘한 가족’이라 칭하며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의 신분을 인정하고 친정 식구처럼 대해주는 듯했다.하지만 이럴수록 강지현은 더더욱 등골이 오싹했다.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은 시커먼 이 자리가 싸한 느낌만 안겨주었다.주최 측이 자리에 앉자 초대된 다른 손님들도 각자의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모두들 주최 측에서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듯했다.주씨 가문에서 유독 많은 외부 인사들을 초대한 것을 보면 오늘 분명 중요한 발표가 있을 것 같았다.이미 소문이 돌다시피 김씨 가문과 주씨 가문의 성대한 혼사가 조만간 있을 예정이며 오늘은 그 축하 자리를 겸하는 자리였다.아니나 다를까 엄경미가 마이크를 잡고 간단히 덕담을 나눈 뒤, 김태하와 강지현의 약혼 소식을 언급했다.“다들 귀한 걸음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서로 얼굴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그녀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김태하와 강지현 쪽을 바라보았다.“저희 딸 지현이랑 미래 그룹 김태하 대표는 최근 정식으로 약혼을 마쳤습니다.”엄경미의 말이 끝나자 홀 안은 축하의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김태하와 강지현에게 쏟아졌다. 그 시선 속에는 부러움, 질투, 그리고 계산적인 뉘앙스까지 섞여 있었다.메인 테이블 바로 옆, 서지아가 고개를 돌려 김태하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많은 사람에 가려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말이다.오늘 그녀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으나 집안 어른들이 억지로 끌고 왔다. 서씨 가문이 김씨, 주씨 가문과 모두 엮여있으니 체면을 차려야 한다고 했다.엄경미의 발표를 들은 서지아는 곧장 술을 몇 잔 더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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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하지만 강지현은 어쨌거나 사생아이니 과거가 좀 복잡한들 이상할 것도 없었다.문제는... 만약 그녀가 결혼 사실을 숨기고 김태하와 결혼하려 했다면 이는 명백히 품행이 방정치 못한 행동이므로 혼약을 더는 지속할 수가 없다.한편 강지현은 방금 그 말을 던진 남자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의 발언에 순간 신경이 곤두섰고 안색도 확 일그러졌다.입술을 달싹였으나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남자의 말이 전부 사실은 아닐 터, 엄경미가 일부러 꾸며낸 계략임이 분명했다.하지만 이에 대해 반박을 하려면 자신과 이도운의 과거사를 낱낱이 설명해야 한다.그녀야 대중의 비난을 정면으로 감수할 수 있다지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손님들은 전부 명망 높은 상류층 인사들이었다.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사가 공개되면 김씨 가문까지 망신을 당할 것이 뻔했다.그녀는 자신에게 잘해주신 지순옥 할머니와 가족들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방금 하신 말씀, 전부 사실인가요? 혹시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엄경미가 일부러 놀란 척하며 그 손님에게 물었지만, 이 한마디는 오히려 상대에게 더 좋은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그 남자는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미리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강지현과 이도운이 함께 있는 짧은 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다만 영상 속 모습은 그가 묘사한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둘이 함께 비즈니스 파티에 참석했다는 정도의 장면이었다.“저 사람 잘못 본 적 없고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못 믿겠으면 다들 보세요. 이 사람 강지현 아니면 누굽니까?”하지만 영상을 모두에게 전달하기도 전에 누군가 그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힘이 어찌나 센지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으악!”남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김태하가 떡하니 있었고 좀 전까지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은 바닥에 처참하게 내팽개쳐졌다.김태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휴대폰 액정을 꾹 짓밟았다.영상은 소리 없이 꺼졌고 액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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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태하야.”강지현은 남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순간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김태하와 김씨 가문 어른들의 마음뿐이었다.그녀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다가갔지만, 김태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강지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차가운 장벽을 쌓은 것만 같았다.‘혹시 저 남자의 말 때문에 날 혐오하고 싫어하게 된 걸까? 방금 그 행동마저 날 위한 게 아니라 김씨 가문의 체면을 지키려고 그랬을까?’“미안해, 태하야. 나도 과거는 있지만 결혼한 적은 없어.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완전히 끝난 일이야. 전에 얘기하지 못한 건...”강지현이 낮은 목소리로 해명하려 했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태하가 싹둑 잘랐다.하지만 이어진 남자의 행동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심지어 강지현까지도...그가 몸을 홱 돌리더니 온 힘을 다해 강지현을 품에 끌어안았다.“당연히 다 알지, 바보야. 괜찮으니까 전혀 신경 쓸 거 없어.”중저음의 목소리에 허탈한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태하야...”강지현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소음이 아득해졌다. 귓가에는 오직 그의 차분하고도 힘찬 심장 박동만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별안간 그녀는 마음이 안정되었다.‘화낸 거 아니구나.’강지현은 고개를 들어 그의 날카로운 턱선을 올려다보았다.김태하의 목울대가 살짝 움직이더니 이내 강지현을 품에서 놓아주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뭇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실례했습니다. 아까는 제가 잠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네요.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다시 입을 뗀 김태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침착했지만, 그 담담한 어조 뒤편으로 걷잡을 수 없는 서늘한 살기와 압도적인 위압감이 일렁였다.그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매의 눈으로 장내를 훑었다. 눈가에 담긴 경멸은 숨길 수 없었으나 손은 여전히 강지현의 허리를 굳건하게 감쌌다.“제 아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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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서지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테이블 모서리를 짚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술잔이 엎질러졌고 쏟아진 술이 옷을 적셨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김태하가 그저 하는 말이 아니었다니... 정말 강지현과 혼인신고를 마쳤단 말인가?서씨 가문 어른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헛기침을 하자 서지아의 어머니가 황급히 딸의 팔을 잡아당겨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하지만 이 모든 광경을 맞은편에 있던 주단우가 놓칠 리 없었다.그 역시 김태하의 폭탄선언에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오늘 강지현이 김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잃고 쫓겨날 거라 확신했는데 김태하가 수모를 삭여가며 기어이 그녀의 체면을 살려줄 줄은 몰랐다.하지만 서지아를 보니 머릿속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졌다.김태하와 서지아의 과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남자의 곁에 오랫동안 여자가 없었던 이유가 소꿉친구 서지아 때문이라고 했다.김씨 가문이 워낙 철통 보안이라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지만, 여자의 감정이란 숨기기 힘든 법이다.서지아의 저 반응을 보니 단순한 짝사랑으로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았다.혹시 김태하가 강지현에게 이렇게까지 빠르게 빠져든 이유가 서지아에게 보란 듯이 과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엄경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김태하가 판을 이렇게 흔들어놓으니 마치 자신이 순수한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으로 되어버린 꼴이었다.그녀는 짐짓 웃음을 되찾고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김씨 가문 쪽을 향해 물었다.“어머,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어? 그럼 아까 그 사람이 한 말은 완전 헛소리였네. 그건 그렇고 김 대표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이런 중대사를 우리 주씨 가문은 전혀 몰랐어. 지현이도 아무 얘기 없었거든... 설마 김씨 가문 어른들도 모르시는 건 아니지?”엄경미는 단 몇 마디로 다시 화살을 강지현에게 돌렸다.혼인신고 사실을 양가에 알리지 않은 것은 확실히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아무리 김태하가 그녀를 감싼다고 해도 과거사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고 김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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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그 덕분에 김태하와 강지현의 결혼은 이제 물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지순옥이 손주며느리로 인정한 이상, 강지현에게는 김씨 가문 전체가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셈이었다.설령 그녀에게 과거가 있다 한들 누가 감히 입을 열 수 있겠는가?“그러셨군요.”엄경미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태연한 척했지만 거칠게 들썩이는 가슴을 차마 진정시키지 못해 숨이 가빠 보였다.지순옥이 말을 마치자마자 김윤석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쾌재를 불렀다. 그의 흡족한 표정은 강지현에 대한 김씨 가문의 무한한 포용력과 애정을 온몸으로 대변하는 듯했다.은주희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돈댁에 미리 귀띔이라도 해드렸어야 했는데 저희가 경황이 없어 괜한 결례만 끼쳤습니다. 엄 대표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겠죠?”“그럼요, 당연한 말씀을요.”엄경미가 부드러운 어투로 대답했으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강지현은 지순옥과 김윤석, 그리고 은주희까지 자신을 위해 나서주는 모습에 순간 울컥해졌다.누군가 내 뒤를 든든히 받쳐줄 거란 기대, 그녀에겐 생전 처음 겪는 낯설고도 따뜻한 감정이었다.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땐 무엇이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 순간, 사람 마음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마는 법이다.지순옥을 바라보는 강지현의 눈동자에 벅찬 고마움이 일렁였다.어떻게 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이는데 지순옥이 조용히 김태하에게 시선을 돌렸다.할머니의 뜻을 읽어낸 김태하가 강지현의 손을 맞잡은 채 그대로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애초에 몸매가 훤칠한지라 무릎을 꿇어도 소나무처럼 굳건하고 위엄이 차 넘쳤다.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조명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그 압도적인 풍경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큼 눈부셨다.“지현아,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들 앞에서 맹세할게. 내 곁엔 오직 너 하나뿐이야. 나랑 결혼해 줘. 평생 널 사랑하고 지켜주고 마지막 순간까지 너랑 함께하고 싶어. 내 아내가 되어줄래?”김태하는 약속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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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야, 하원영! 죽고 싶냐?”하지유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자 그녀의 어머니가 다급하게 헛기침하며 그녀를 제지했다.연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진작 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렸을 기세였다.한편 하지유는 가까스로 화를 삼켰다.‘괜찮아, 강지현은 어쩌지 못해도 하원영쯤이야 어떻게든 손볼 수 있지!’최후의 만찬을 계획했다가 되레 강지현에게 꽃길만 깔아준 격이 된 엄경미는 생전 처음 겪는 모욕감에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채 몸이 편찮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그녀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 가문에서도 강지현과 함께 자리를 떴고 연회는 사실상 그렇게 막을 내렸다.주단우는 주최 측 대표로서 남은 손님들을 배웅했다.주병찬이 주시언을 데리고 나가던 중, 우연히 하씨 가문 사람들과 마주쳤다. 하원영은 예복으로 갈아입고는 여전히 무리 뒤편에서 조용히 걷고 있었다.주시언은 잠깐 망설이다가 몇 걸음 앞서 나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원영아.”익숙한 목소리에 하원영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주시언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물었다.“왜요?”“네 팔찌.”주시언은 주머니에서 영롱한 빛깔의 ‘인어의 눈물’ 비즈 팔찌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아까 하지유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우연히 보고 주워둔 것이었다.하원영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팔찌에 달린 짙은 푸른빛의 눈물 모양 보석은 상당한 고가의 해리 보석이었다.그것은 바로 그녀의 열여덟 살 생일날, 주시언이 특별히 공들여 준비했던 선물이었다.당시 용돈이 넉넉지 않았던 그가 오랜 시간 푼돈을 모아 겨우 샀고 하원영은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팔찌로 만들어 지금까지 차고 다녔다.“이미 끊어졌으니 제 주인에게 돌려줘야죠.”하원영은 팔찌를 내려다볼 뿐 받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주시언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주시언은 안경을 쓴 채 덤덤하고 평온한 눈빛에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서로 연락이 끊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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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주병찬의 뼈 있는 충고가 끝나자 주시언은 더는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하객들을 대부분 배웅하고 나서야 주단우는 구석에 홀로 남겨진 서지아를 발견했다.그녀는 혼자 있고 싶었는지 부모님과 함께 가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사람들이 거의 다 떠난 뒤, 그녀도 넋이 나간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서지아 씨, 잠시만요.”주단우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고개를 돌린 서지아는 두 눈이 빨갛게 부은 채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힐끗 쳐다봤다.“무슨 일이시죠?”“다름이 아니라 지아 씨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요. 혹시 오늘 연회에서 저희가 소홀히 했던 점이라도 있나요?”서지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지아 씨도 오늘 술을 좀 하신 것 같은데 제가 마침 시간 괜찮으니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주단우가 친절하게 제안했다.그녀는 이미 차를 불렀지만 주단우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실은 김태하와 강지현이 혼인신고까지 마쳤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멘붕각이었다.주단우의 차에 탈 때도 조수석 대신 뒷좌석에 털썩 앉았다.남자가 뭐라 말을 걸면 넋이 나가서 대꾸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마지못한 주단우는 운전에만 집중했다.차가 반쯤 달렸을 무렵, 신호등 앞에서 서지아가 갑자기 차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소리쳤다.“토할 것 같아요!”주단우는 깜짝 놀라 황급히 길모퉁이에 차를 세웠다.그녀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를 붙잡은 채 마구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미지고 뭐고 내팽개친 지 오래였다.주단우는 곁눈질로 그녀를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내 묵묵히 내밀었다.“지아 씨도 참 고생이 많으시네요.”상냥한 말투와 달리 주단우의 마음속은 온통 혐오감으로 들끓었다.한때 서지아는 재벌가 아가씨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완벽한 여신이었다. 미모와 재능은 물론, 탄탄한 집안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주변에는 늘 그녀를 받들고 애지중지하는 이들이 줄을 섰었다.그런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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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그때, 좁은 도로 건너편으로 낯익은 실루엣이 주단우의 시야에 들어왔다.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커다란 여행용 배낭을 멘 한 여자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주단우가 그녀를 발견함과 동시에 그녀 역시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서둘러 몸을 피해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주단우는 그녀의 뒷모습까지 빤히 쳐다봤다. 인근의 작은 개인 병원으로 사라질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현다영은 병원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본 건 착각이 아니었다. 도로 건너편에 있던 사람은 분명 주단우였고 그 옆에 있던 여자의 옆모습도 왠지 낯이 익었다.상대와 접점조차 없었지만 현다영은 이상하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마치 뭔가 엄청난 비밀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말이다.현다영은 입원 병동의 공용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구석의 좁은 병상에 어머니와 남동생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누나, 왔어?”현시우가 입을 떼기 바쁘게 그녀는 쉿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어머니가 주무시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그녀는 챙겨온 생필품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은 뒤, 현시우를 데리고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이어서 동생에게 생활비로 꽤 큰돈을 쥐여줬다.현다영의 집안은 몹시 가난했다. 어머니는 그녀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암 판정을 받아 경제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이제 12살인 동생 현시우는 기숙사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결국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원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다행히 하늘이 도와서 사회 초년생 시절 강지현을 만나 이경 그룹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주상 그룹으로 이직하며 경제적 여유까지 생겼다.하지만 어머니의 병원비는 여전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현다영은 늘 그 무게에 짓눌려 살았다.내일 다시 학교로 돌아갈 동생을 살뜰히 챙긴 후, 그녀는 병실에 들러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고서야 병원을 나섰다.밖은 이미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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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돈이 있다 한들 절대로 현동건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그 돈은 엄마의 목숨값이자 그녀가 피땀 흘려 번 전 재산이니까!“이게 끝까지 거짓말하네?”현동건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칼끝을 들이대며 위협했다.이에 현다영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기다리던 통증 대신 귓가에 아버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눈을 떠보니 반듯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아버지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훤칠한 몸매의 그 남자는 능숙한 훅과 어퍼컷으로 현동건을 순식간에 제압했다.“주... 단우 씨?”현다영은 제 눈을 의심했다. 자신을 구한 사람이 다름 아닌 주단우였으니까.한편 주단우는 그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지 손목이 나갈 뻔했지만, 상대가 워낙 몸이 허약한 탓에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그는 현동건의 등을 거칠게 밟아 누른 뒤,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현다영에게 던져주었다.현다영은 본능적으로 재킷을 받아들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진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찔러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주단우는 바로 넥타이를 풀어서 현동건의 양손을 꽁꽁 묶었다.“X발, 넌 뭐야? 내 딸 내가 훈육하는데 왜 끼어들고 난리냐고, 젠장!”현동건이 악에 받쳐 욕설을 퍼부었지만 주단우는 들은 척도 안 하며 현다영에게 물었다.“이 늙은이가 네 아빠야?”“네...”현다영은 수치심에 고개를 떨구었다.정신을 차린 그녀는 옆으로 달려가 박살 난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화면은 깨졌지만, 다행히 작동은 됐다.그녀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딸아이가 경찰에 신고하자 현동건은 또다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도저히 듣다 못한 주단우가 그를 힘껏 걷어차고는 주머니에서 티슈 한 팩을 꺼내 몽땅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지명수배 중이던 현동건은 곧장 체포되었다.아버지가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현다영의 표정은 마치 남을 구경하듯 차분했다. 차가운 눈빛 속에는 원망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주단우는 코웃음을 쳤다.“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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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강지현은 무언가를 숨기려던 게 아니었다. 다만 정략결혼일 뿐이니 자신의 씁쓸한 과거사를 굳이 김씨 가문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순옥을 비롯한 김씨 가문 사람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무엇보다 그 속엔 김태하가 있었다.이 남자를 아끼는 만큼 그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행여라도 자신 때문에 작은 앙금이라도 남을까 봐 매사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사실 김태하는 그녀가 과거사를 털어놓는 걸 원치 않았다. 김무언이 고루하고 엄격한 사람이라 다른 가족들처럼 강지현을 너그럽게 품어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그 과거가 강지현에게 깊은 상처라는 걸 김태하는 너무 잘 안다.이미 최동윤을 통해 강지현이 사랑에 속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대략 알고 있었음에도 정작 남의 입을 빌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게 가라앉았다.그것은 그녀의 과거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저린 안타까움이었다.하지만 김태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지현은 기어이 자신의 곪은 상처를 스스로 파헤쳐 보였다. 그녀는 숨김없이, 그 아팠던 지난날을 낱낱이 털어놓았다.김태하는 그녀의 곁을 든든히 지키며 떨리는 목소리를 경청했다. 끝까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꽉 쥐고 있었다.강지현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일을 서술하듯 차분하게 풀어놓았다.다만 지순옥과 은주희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이런 지옥 같은 시간을 겪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성품 좋은 김윤석마저 참지 못하고 혀를 찼다.“정말 짐승 같은 놈이로군!”“지현아,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이제 태하가 옆에 있으니 아무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다. 하늘이 네 고생을 알아주는 모양이구나.”은주희는 차마 눈뜨고 듣기 힘든 그 비참한 사연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애처로운 눈빛만 보냈다.귀하게 자랐어야 할 부잣집 아가씨가 의지할 곳 없이 고군분투하며 나쁜 남자를 만나 인생을 망칠 뻔했으니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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