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가짜 결혼, 진짜 신분: Kapitel 31 – Kapitel 40

304 Kapitel

제31화

둘이 딱 한 번 만난 터라 감정이 쌓일 리 없었다. 이런 행동은 김태하가 그녀에게 충분한 예우와 체면을 세워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강지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감동했고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강지현이 조금 거리를 두는 듯한 표정을 포착한 김태하는 어젯밤이 문득 떠올랐다.그녀의 문자를 갑자기 받았을 때 그는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몰랐다.김태하는 여자와 거의 접촉하지 않았고 정략결혼 상대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최동윤에게 물었더니 여자들이 먼저 문자를 보냈다는 건 보통 보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그는 무슨 일을 하든 남자답게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강지현이 그를 보고 싶어 한다면 만나면 된다.하여 퇴근 후 김태하는 바로 해서국으로 왔다.김태하와 강지현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에 주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대놓고 쳐다보진 못했지만 모두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강지현이랑 김태하 대체 무슨 사이지?’‘사적인 친분이라도 있나?’하지만 최근 몇 년간 김태하가 여자와 가까이 지낸다는 소문이 전혀 없었다.“대표님, 강지현 씨랑 아는 사이세요?”마침내 맞은편에 앉은 하지유가 더는 참지 못하고 김태하에게 물었다.김태하가 내뿜는 기운이 하도 강렬해서 그 질문을 건넬 때 심장이 다 두근거렸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2년 전 하지유는 운 좋게 김태하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멀리서 그를 본 이후로 어떤 남자도 그녀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했다.하지유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김씨 가문과 연결고리를 만들려 애썼다. 심지어 지난번에 강지현과 집을 두고 다툰 것도 그 집 맞은편이 김태하의 오피스텔 에디스였기 때문이었다.강지현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유산을 물려받은 사생아이자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촌스러운 여자가 어떻게 김태하의 눈에 들 수 있단 말인가?“전 오늘 밤 여기 묵고 내일 아침에 떠날 생각이에요. 저녁에 무도회가 있는데 올래요?”강지현이 하지유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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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강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만찬이 끝난 뒤 주시언이 강지현을 호텔까지 바래다주었다.만찬 중에 벌어진 일들을 이미 전해 들었다. 김태하가 이곳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도 꽤 놀라운 일이었다.“오늘 활약이 정말 대단했어. 이젠 사람들이 뭐라 하지 못할 거야. 그나저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주시언의 목소리에 뿌듯함과 자책이 뒤섞여 있었다. 강지현이 재빨리 위로를 건넸다.“아니에요. 오늘 크게 실수하지 않은 것도 다 오빠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오빠 친구분도 오늘 날 도와주셨고요.”“친구?”주시언이 흠칫 놀라자 강지현이 대답했다.“하원영 씨요.”강지현은 눈을 깜빡이면서 살짝 떠봤다.여자 특유의 직감 때문인지 강지현은 하원영과 주시언 사이에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아, 하원영?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 그런데 친구라고 하기엔 좀 그래.”주시언이 헛기침했다. 하원영의 얘기를 일부러 피하는 게 틀림없었다.강지현도 상대가 사생활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알아채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주시언이 화제를 돌렸다.“오늘 김태하가 온 걸 봤어. 이런 자리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사람인데 십중팔구 너 때문에 왔을 거야. 아무래도 너한테 꽤 호감이 있는 것 같아. 두 사람의 정략결혼이 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어.”“노력은 할게요. 하지만 호감이라고 하기엔... 글쎄요.”정략결혼은 정략결혼일 뿐이라 마음을 주지 않는 게 나았다.게다가 남자의 호감이란 게 뭔지도 이미 뼈저리게 느껴봤다. 이도운도 처음에는 정말 잘해줬었다.강지현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무도회라는 점을 고려해 몸매가 돋보이는 레드 머메이드 드레스를 골랐다. 치맛자락이 부드럽고 생기 있게 흩날렸다.춤을 잘 추진 못했지만 이따가 김태하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아 휴대폰으로 영상을 찾아 한참 따라 했다.그녀의 몸놀림이 유연한 데다가 사교댄스가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몇 번만 따라 했을 뿐인데 제법 그럴듯하게 췄다.그렇게 무도회가 시작되기 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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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다행히 직원과 경호원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하지유도 곁에 있던 사람에게 부축받아 겨우 몸을 가누었다.이번에는 주시언도 함께였다. 강지현이 또 무슨 일을 당할까 봐 걱정되어 무도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일부러 참석한 것이었다.그는 오자마자 재킷을 벗어 강지현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하지유를 노려보았다.“하지유, 여기는 하이 그룹이 아니야. 제멋대로 굴고 싶어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이렇게까지 지현이를 겨냥하는 건 혹시 우리 주씨 가문과 척을 지고 싶다는 말이야?”“오빠, 이건 나랑 강지현의 일이에요. 오빠랑도, 주씨 가문과도 상관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비켜요.”하지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사람들이 강지현을 감싸고 도는 모습에 분노와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게다가 조금 두렵기도 했다. 결국 말하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옆에 있던 친구가 황급히 하지유를 달랬다.“지유야, 네가 참아. 이런 사소한 일로 주씨 가문을 건드려선 안 돼...”“맞아. 게다가 김태하 씨도 여기에 있을지 모르잖아...”김태하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하지유가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러고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강지현을 노려보았다.무도회장의 조명이 어두컴컴하여 약간의 소란이 일었지만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바로 그때 현장 전체가 떠들썩해지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 중앙에 있는 예쁜 커플에게로 쏠렸다.무대 조명이 화려하게 빛났다.남자와 여자의 춤사위가 안정적이고 우아했다. 서로 교차하는 조명 아래 두 사람은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강지현은 무대 위의 남자가 김태하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김태하 씨야.”하지유의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알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강지현에게로 향했다.김태하가 강지현을 감싸서 파트너도 당연히 강지현일 거라 생각했다.무대를 보던 하지유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아무래도 내가 지현 씨를 오해한 것 같네요. 태하 씨가 지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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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강지현은 문자를 확인하고는 대화창을 꺼버렸다. 이젠 이도운과 할 얘기가 없었다.또 다른 부재중 전화는 김태하에게서 온 것이었다. 실수로 누른 건지 벨 소리가 몇 번 울리지 않았고 문자도 없었다.강지현은 그 이름을 잠깐 응시했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 머물렀다가 이내 내려놓았다.굳이 다시 전화할 필요는 없었다.사업 협력 건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었다. 불필요한 연락은 오히려 가식적으로 비칠 것이다.가짜 결혼을 겪은 후 강지현은 감정과 이익을 분리하는 법을 완벽하게 터득했다.김태하가 유능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그의 사생활에 간섭할 생각도,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강지현은 휴대폰 화면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창밖 달빛이 얇은 커튼을 뚫고 스며들었다. 밤새 꿈도 꾸지 않고 아주 푹 잤다.날이 밝은 후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 그녀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국내로 돌아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강지현이 호텔을 나서기 직전 직원이 벨벳 천으로 정성껏 포장된 선물 상자를 건넸다.“강지현 씨, 이건 김태하 씨가 남기고 가신 겁니다. 일찍 떠나셔서 방해가 될까 봐 저더러 대신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그녀의 시선이 선물 상자에 향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향나무로 만난 네모난 상자였다. 가장자리에 복잡하고 고풍스러운 문양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상자를 열자 검은색 벨벳 받침대 위에 영롱한 비취반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반지가 비둘기 알 만했고 아주 투명했다. 다이아몬드가 한 줄만 간결하게 박혀있을 뿐인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반지를 본 주시언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지현아, 이 비취 색깔 좀 봐. 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워.”강지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보석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그녀도 이 정도로 완벽한 비취라면 그 가치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희소성까지 갖췄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선물은 아무리 정략결혼 상대라 할지라도 받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다.“너무 귀중한 거라 받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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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주상 그룹과 협력하기엔 아직 그들이 자격이 부족했다.하지만 만약 주상 그룹에 새로운 움직임이 생길 경우 특히 실권자가 바뀐다면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이도운은 걸음을 멈추고 자료를 검색했다. 주씨 가문의 딸에 대한 정보가 온라인에 하나도 없었다.소문에 의하면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신비한 인물이고 사진 자료조차 없다고 했다.얼마 전 동창 단톡방이 떠오른 이도운은 바로 단톡방에 들어가 봤다. 사진을 찾긴 했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불러올 수 없었다.강지현은 경호원들과 함께 VIP 통로를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시언과 다른 밴을 타고 떠났다.주시언이 밖에 있던 기자들을 미리 돌려보냈기에 강지현의 차가 나왔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그때 강지현이 탄 밴이 출구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차 한 대가 그들 앞에 끼어들어 길을 막아선 것이었다.운전기사가 클랙슨을 눌렀고 강지현의 옆에 있던 경호원도 경계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앞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 남자를 본 순간 강지현은 밀려오던 졸음이 싹 가셨다.이도운이었다.‘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똑똑.이도운이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허리를 숙여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강지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경호원이 발끈하면서 차에서 내렸다.“누구세요? 뭐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갑자기 차를 막으면 어떡해요?”경호원의 체격이 건장했고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었다.이도운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침착하게 말했다.“오래전부터 주상 그룹의 명성을 익히 들었어요. 협력하고 싶어서 계속 협력 제안도 보냈었거든요. 마침 아가씨가 여기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잠시나마 얘기를 나눌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우리 아가씨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당신이 뭔데 기회를 줘야 하죠?”경호원이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강지현은 차 안에 가만히 앉아 불투명한 창문 너머의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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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하지만 이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강지현과 비슷하긴 했으나 상대의 음색이 훨씬 맑았고 말투도 더 차가웠다. 강지현이 왜 답장이 없는지 자꾸만 생각하다 보니 이런 착각이 생긴 모양이었다.게다가 짧은 한마디라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이도운이 잠깐 넋을 잃은 사이 경호원은 이미 명함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상대도 더 이상 매달리지 않자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이도운은 떠나는 차를 멍하니 쳐다봤다. 한참이 지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차 안, 경호원이 명함을 강지현에게 건네며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이경 그룹 대표의 명함입니다.”주씨 가문이 협력 파트너를 찾는다고 하면 선두 기업들이 줄을 가득 섰다. 이경 그룹 같은 레벨의 회사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강지현은 명함을 받지 않고 옆에 있는 비서에게 차갑게 지시했다.“명함에 적힌 이 회사를 주상 그룹의 블랙리스트에 올려. 이 회사와는 영원히 협력하지 않을 거야.”“알겠습니다.”비서가 대답했다.저녁, 이도운이 또 강지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몇 통의 문자를 보내 언제 집에 들어오냐고 물었다.강지현은 계속 답장하지 않았다.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자 이도운도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강지현에게 쉽게 굴복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녀가 없이는 회사가 정말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이도운이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백하린은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바로 알아챘다.“왜 그래? 회사 상황이 아직도 안 좋아?”백하린이 이도운을 위로하려는데 이도운이 그녀의 손길을 피하더니 그대로 강지현의 방으로 향했다.그러고는 방 문을 거칠게 열었다. 방 안이 텅 비어 있었다.침대는 누가 잔 흔적조차 없이 말끔했고 옷장과 화장대 등 구석구석이 아주 깨끗했다. 애초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 방처럼 말이다.“말도 안 돼.”이도운은 완전히 얼어붙었다.강지현이 단순히 화가 나서 며칠 바람을 쐬러 나간 줄 알았는데 물건까지 전부 옮겼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백하린도 강지현의 방이 텅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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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백하린은 화가 치미는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도운을 사납게 노려보고는 아들을 꼭 끌어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이도운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자기야!”하지만 겨우 두어 걸음 내디디다 멈춰 섰다. 쫓아갈 마음조차 들지 않았던 그는 고개를 돌려 가정부에게 물었다.“지현이 언제 나갔어요? 왜 나한테 아무 얘기 안 한 거죠?”겁에 질린 도우미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강지현이 며칠 전에 이미 짐을 싸서 나갔다고 했다. 다만 이도운이 요즘 무척 바쁘니 굳이 알리지 말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고 했다.이도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며칠 전?’그렇다면 백하린이 이 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역시 이것 때문에 삐쳐서 나간 것이었다.백하린은 아들을 안고 방에서 한 시간 가까이 울었으나 이도운은 끝내 위로하러 오지 않았다.이윤후가 서러워하며 백하린을 안고 물었다.“아빠가 우릴 버렸어요? 나쁜 여자 때문에 날 때리기까지 하고...”“아니야, 윤후야. 아빠는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아...”백하린은 아들을 달래긴 했지만 그녀도 확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입으로는 강지현을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몇 번이나 강지현 때문에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었다.어쩌면 정말로 강지현에게 마음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런데 아빠 방금 진짜 무서웠어요.”이도운에게 맞았던 순간이 떠오른 이윤후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백하린은 재빨리 아들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아빠가 널 괴롭히게 두지 않아.”‘내가 있는 한 강지현은 우리 모자 자리를 빼앗아가지 못해.’이윤후를 겨우 재운 뒤 백하린은 눈물을 닦고 이도운의 서재로 향했다.이도운이 깊은 생각에 잠긴 채로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백하린이 들어온 걸 봐도 표정이 여전히 어두웠다.“미안해. 아까 윤후를 너무 세게 때린 것 같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어.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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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회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강지현은 항상 옆에서 이런 말을 해줬었다.그리고 매번 정말로 앞장서서 싸워줬고 모든 것을 대신 막아주었다.이도운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또 강지현을 생각하는 거야?’“자기야, 나도 금융학과를 전공했다는 거 잊었어? 지현이가 하던 일을 나도 할 수 있어.”그를 한참 달래준 뒤에야 백하린이 목적을 얘기했다.강지현을 이도운의 오른팔로 두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가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지금까지는 이도운이 가족들에게 들킬까 봐 가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그건 좀 힘들 것 같아.”이도운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가족 때문만이 아니라 강지현이 돌아왔을 때 백하린이 회사에 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그게 더 신경 쓰였다.“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백하린은 이도운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미 여기에 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였다.그녀가 원하는 건 강지현의 이사 자리가 아니라 강지현을 도와주는 조수 자리였다. 그러면 강지현이 돌아와도 계속 일할 명분이 있으니까.게다가 강지현이 직접 휴가를 낸 거라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여자는 여자를 제일 잘 알아. 지금 지현이가 삐친 건 네가 좀 더 신경 써주길 바라서야. 그런데 네 곁에 내가 있다는 걸 알면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고 먼저 꼬리를 내리고 다가올지도 모른다고.”백하린의 말이 이도운의 마음을 흔들었다.그는 지금까지 강지현을 무척이나 아꼈다. 그래서인지 성격이 점점 막무가내가 돼버렸다. 이렇게 멋대로 짐을 싸서 나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설령 강지현을 다시 데려온다 해도 앞으로는 강지현에게 잡혀서 살 것이다.그리고 그녀가 뒤에서 그렇게 많은 수를 썼음에도 이도운은 그녀가 그에게 마음이 남아있다고 확신했다.6년 동안 그가 쏟아부은 애정을 그냥 버릴 수 없을 터. 사소한 일로 영영 떠날 리 없었다.이런저런 생각과 백하린의 거듭된 부탁에 이도운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백하린은 이도운의 회사에 입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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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심지어 강지현더러 이도운을 위해 죽으라고 해도 아마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이런 감정들이 전부 가짜였단 말인가?...주상 그룹에서 하루 종일 시달린 강지현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대기업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미리 철저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주주총회에서 엄경미를 따르는 여우 같은 주주들에게 아주 호되게 당했을 것이다.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 도예림이었다.[나 귀국했어. 보고 싶어, 지현아. 이제 동창 모임이 있는데 너도 와. 같이 한잔하자.]대학교 때 강지현과 도예림이 룸메이트였고 아주 친하게 지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함께 아르바이트도 같이하고 밤새 공부도 같이하며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말을 자주 했었다.졸업 후 도예림은 해외 회사로 갔고 강지현은 이도운의 옆에 남아 현모양처로 살았다.강지현이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자 도예림은 오늘 밤만 국내에 있는다며 몇 번이고 만나자고 했다.과거 두 사람이 끈끈했던 날들이 떠오른 강지현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장소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조용한 음악 바였다.강지현이 도착했을 때 룸 안이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맨 끝에 앉아 있던 도예림이 강지현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와 껴안았다.“지현아, 진짜 오랜만이야. 너무 보고 싶었어!”도예림의 뜨거운 포옹에 강지현도 마음이 뭉클했다.“예림이 너 진짜 많이 변했구나. 2년 동안 잘살았나 보네?”예전의 도예림은 삐쩍 말랐고 수줍음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기가 넘치고 자신감도 넘쳤다. 기세가 확 달라졌다.“당연하지. 세상 구경 좀 했거든.”도예림은 환하게 웃으며 강지현을 자리에 앉히고는 위아래로 훑었다.“와, 넌 더 예뻐졌어.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그 말에 강지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강지현이 왔다는 소리에 동창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고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과거 강지현은 공부도 잘했고 퀸카 급 미모를 지녔기에 대부분 그녀의 이름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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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말하는 사람의 말투가 별로 좋지 않았다. 강지현이 고개를 돌린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백하린이 가르치던 여학생이었고 이도운과 같은 반이었다는 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박슬기, 샘이 나서 그러는 거지? 지금까지 연애도 못 해봤으면서. 소개팅이라도 해보지 그래?”도예림은 그녀의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강지현 대신 쏘아붙였다.“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끼어들어? 이도운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지현이를 선택한 거야.”그 말에 룸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비밀을 들킨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거두었다.조금 전까지 강지현에게 웃어 보이던 동창들도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분위기가 이상할 정도로 차가워졌다.강지현이 흠칫 놀랐다. 이도운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건 굳이 박슬기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재미있어하고 누군가는 궁금해하고 누군가는 의심하거나 반박할 텐데...아무튼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도운과 백하린의 일을 거의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직 그녀만 몰랐을 뿐.학교 다닐 때 받았던 축하와 부러움의 시선들, 그때는 정말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다.강지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을 비웃었다.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그때 도예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박슬기, 헛소리 좀 그만해. 지현이를 질투해도 정도껏 해야지.”“내가 한 얘기 다 사실이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지.”박슬기는 도예림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강지현을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던졌다.“그리고 지금 지현이 꼴 좀 봐. 내가 질투할 게 뭐가 있다고.”“지현이가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받아서 질투하고 있잖아. 네가 학교 때부터 지현이랑 경쟁하려 했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도예림의 말이 옳았다. 박슬기는 정말로 강지현을 질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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