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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서이정은 걱정이 되어 따라가 보려 했다. 그런데 그때 백하린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다.화면에 낯선 이름이 떴지만 서이정은 별생각 없이 전화받았다.“지금 어디입니까?”“안녕하세요. 저는 하린이 친구인데요. 지금 하린이가 전화받기 좀 어려운 상태라서요. 실례지만 누구세요?”수화기 너머의 서운혁은 잠시 멈칫했다.“저는 하린 씨 상사입니다.”“아.”그제야 서이정은 백하린이 전에 슬쩍 말했던 사람이 떠올랐다. 자신을 알아봐 준 해성 그룹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 모양이었다.“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하린이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요. 아마 조금 늦게 다시 연락드릴 것 같아요.”이 늦은 시간에 업무 전화라니. 아무리 일이 있어도 직원 사정은 좀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었지만 서운혁의 목소리에는 오히려 걱정이 묻어났다.“술을 마셨다고요?”“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그게...”서이정은 자신이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상대의 말투를 들어 보니, 백하린을 꽤 신경 쓰는 것 같았다.어차피 이제 이도운에게서도 벗어났는데, 괜찮은 남자가 곁에 있다면 백하린도 굳이 밀어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괜찮으시다면 지금 계신 주소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서운혁이 정중하게 다시 물었다.사실 그는 오늘 아침 백하린에게서 전화받았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처리할 일이 생겨 혼자 서경시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하지만 그녀의 사적인 일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었다.마침 그도 갑작스럽게 서경시에서 만날 사람이 생기는 바람에 예정했던 비행시간이 틀어졌다. 결국 하루 더 머물기로 한 참이었다.방금 막 술자리를 마친 그는 백하린 쪽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일이 해결됐다면 내일은 함께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한 시간 뒤, 백하린은 몽롱한 정신으로 룸 안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서이정이 곧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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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하지만 백하린은 잔뜩 취한 와중에도 힘만은 이상할 만큼 셌다. 그녀는 서운혁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은 채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서이정은 깜짝 놀라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하린아, 정신 좀 차려 봐!”“괜찮습니다.”서운혁은 잠시 당황한 듯 굳어 있다가,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침착하게 백하린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그의 커다란 손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하린은 조금씩 얌전해졌다.서운혁은 잠시 더 기다렸다. 백하린이 완전히 조용해지고 잠든 사람처럼 축 늘어진 뒤에야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올렸다.“제가 먼저 데려가겠습니다.”“네.”서이정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문을 열어 주었다.서운혁이 백하린을 차 안에 눕힌 뒤에야, 서이정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부회장님.”“말씀하세요.”서운혁은 무척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서이정이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도 끝까지 존댓말을 썼다.서이정은 그런 서운혁에게 꽤 호감이 갔다.백하린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자매나 다름없는 친구였다. 서이정은 백하린이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특히 이도운과 강지현.그 두 사람은 정말 해도 너무했다.눈앞의 서운혁은 해성 그룹의 부회장이었다. 배경도, 능력도 이도운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방금 백하린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듯했다.그가 백하린을 지켜 준다면, 백하린도 이도운과 강지현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이다....강지현은 꼬박 스물네 시간을 참았다. 밤 열 시가 되도록 김태하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김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한참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강지현은 평소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휙 던져 버렸다.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는 다시 최동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통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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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네가 태하를 찾아왔다고?”지순옥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걔,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니?”“여기에 안 왔어요?”강지현도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너희 둘, 무슨 일 있는 거냐?”지순옥이 당황한 얼굴로 긴장하려 하자, 강지현은 곧바로 웃어 보였다.“아, 제가 착각했나 봐요. 오늘 그 사람이 회사에 잠깐 갔거든요. 이렇게 늦도록 안 들어오길래, 혹시 이쪽으로 온 줄 알았어요.”말을 하던 강지현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는 척했다.“아, 역시 집에 갔네요. 할머니, 죄송해요.”“정말 집에 간 거니?”지순옥은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강지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돌아섰고 더 캐물을 틈도 주지 않았다.강지현이 떠난 뒤, 지순옥은 곧바로 김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김씨 가문 저택을 나온 강지현은 곧장 김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서운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가 걱정될 뿐이었다.김태하가 받지 않자, 그녀는 다시 최동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금세 연결됐다.“김 대표 어디 있어요?”강지현이 다짜고짜 묻자, 최동윤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했다.그 반응만으로도 강지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최 비서님, 태하 지금 전화 안 받아요.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질 수 있어요?”강지현이 워낙 거세게 몰아붙이자, 최동윤도 결국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삼십 분 뒤, 강지현은 김태하가 머물고 있다는 곳에 급히 도착했다. 오는 내내 심장이 쉴 새 없이 뛰었다.불안했고 그만큼 화도 났다.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태하야.”강지현은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말들이 모두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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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강지현의 말은 뺨을 맞는 것보다 더한 모욕으로 서지아에게 꽂혔다.“나를 동정해요? 당신이 뭔데 나를 동정해요?”“당신도 태하랑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태하도 이미 당신을 놓으려 하고 있고요. 그런데도 이렇게 찾아온 건 뭐죠? 당신이야말로 매달리는 거 아니에요?”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강지현은 더 상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강지현 씨!”서지아가 다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말해 줄게요. 태하가 지금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거예요!”강지현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당신이 왜 여기 있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에요. 정말 궁금하면 내 남편한테 직접 물어볼 테니까.”서지아는 다시 입을 열려 했지만 강지현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복도의 조명이 희미하게 가라앉았다.홀로 남은 서지아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아, 한 발짝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김태하는 방 안에 앉아 있었다.불은 켜지 않은 채였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휴대폰 화면뿐이었다.그는 강지현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도 한참 동안 화면을 누르지 못했다.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조금 전 서지아가 남기고 간 말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한 시간 전, 서지아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어디서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씨 가문에서 김태하와 강지현이 다투었고 김태하가 밤새 집을 나갔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항공편을 끊고 찾아온 듯했다.서지아를 보는 순간, 김태하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주변 사람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는 사실을.어젯밤 김씨 가문은 평온하지 않았다. 그가 증상을 보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집안의 몇몇 아주머니들뿐이었다.그리고 그가 이곳으로 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를 데려다준 기사와 개인 주치의, 그리고 최동윤뿐이었다.김태하는 그들을 하나하나 캐물을 생각이 없었다. 최동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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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다친 손으로 그렇게 문을 두드리면 어쩌자는 거야. 아픈 줄도 몰라?”김태하의 목소리에는 초조함과 불안이 가득했다. 그는 붕대가 감긴 그녀의 손바닥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꼼꼼히 살폈다. 피가 배어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지현은 그런 김태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는 헐렁한 반팔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은 사람인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수척해 보였다.평소라면 집 안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도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면도조차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아픈 줄은 아네. 그럼 진작 문 열어 주면 됐잖아.”강지현이 낮게 말했다.손에 별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김태하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네가 온 줄 몰랐어.”“내가 온 줄 몰랐으면 누구인 줄 알았는데? 서지아?”그 이름이 나오자 김태하의 표정이 굳었다.“서지아를 봤어?”“응. 방금 여기서 나가던데.”“오해하지 마. 내가 여기 온 건 그 여자랑 아무 상관 없어. 그쪽이 마음대로 찾아온 거야. 누가 알려 줬는지는 나도 아직...”김태하의 말이 다급해졌다.서지아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그는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강지현에게 오해받는 것만은 견디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다.“서지아 얘기는 나중에 하고.”강지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먼저 우리 얘기부터 해.”그녀는 차갑게 그의 곁을 스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한 번 둘러본 강지현은 창가 쪽 바 테이블 앞에 앉았다.“여기 좋네.”“...”김태하는 말없이 문을 닫고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강지현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주방으로 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와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밖에 추웠지. 옷도 얇게 입었고.”그는 강지현이 외투 안에 얇은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말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난방 온도를 조금 올렸다.강지현은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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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김태하는 고개를 돌린 채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결정했다면 내일 최 비서한테 합의서 준비하라고 할게. 조건이 뭐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줄 거야.”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기복이 없었다.강지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그녀도 차갑게 웃었다.“좋아.”“...”김태하는 잠시 멈칫했다. 강지현이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이혼은 해 줄 수 있어. 대신 재산을 나눠 줘. 나도 양심 없이 굴 생각은 없으니까, 네 개인 명의 재산 중에서 내 몫은 최소 3분의 1은 되어야겠어.”김태하의 얇은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그래.”그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정작 강지현 쪽이 말문이 막혀 버렸다.“그리고 별장도 하나 줘. 전에 나한테 주겠다고 했던 신혼집, 나 아직 살아 보지도 못했잖아.”“그래. 네가 원하는 곳으로 골라.”“...”그래도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말해.”“결혼식 다시 올려.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성대하게.”강지현의 말에 김태하가 의아한 듯 눈을 들었다.그 순간 강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눈동자에는 옅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네가 나한테 약속한 것들, 아직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이혼하더라도 결혼식은 끝내고 해.”“지현아...”김태하는 순간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그런데 강지현이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힘을 주어 끌어당기자, 김태하의 얼굴이 단숨에 그녀의 뺨 가까이 내려왔다.그는 그녀보다 키가 훨씬 컸다. 강지현이 옷깃을 잡아당기자, 김태하의 상체가 자연스럽게 숙여졌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져, 그의 입술이 그녀의 콧등에 닿을 듯 말 듯했다.김태하의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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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맞아.”김태하의 대답은 단호했다.그는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강지현만 바라보고 있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은 그녀의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강지현만큼은 자신을 믿어 주어야 했다.“그럼 말해 봐. 나랑 함께 있고 싶은 게 안정감 때문이 아니라면 뭔데?”“그건...”목 끝까지 올라온 말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김태하는 그제야 자신이 강지현에게 말려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강지현의 눈빛에는 어느새 감추지 못한 기대가 어려 있었다. 꼭 그에게서 다정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김태하가 자신에게 얼마나 진심인지.조금 전의 말들은 당연히 그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꺼낸 것들이었다.김태하가 대답을 망설이자, 강지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점점 힘이 풀리는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가만히 얹었다.금방이라도 부딪칠 듯 날이 서 있던 공기가 그 순간 눈 녹듯 풀렸다.강지현은 그의 팔을 천천히 내려놓은 뒤, 다른 손으로 조심스레 그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김태하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빠르게 뛰고 있었다.“네가 나랑 함께 있고 싶은 건 행복해지고 싶어서야. 난 알아. 넌 늘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싶어 했잖아. 그리고 마침 지금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고.”“지현아, 나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 순 없어.”김태하의 이성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그는 판단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강지현의 말을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쉽게 그의 결심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문을 열고 강지현을 본 순간부터, 김태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발버둥이 아무 의미 없어졌다는 걸.“김태하, 너한테 나, 소중해?”강지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이번엔 김태하도 더는 피하지 못하고 낮게 답했다.“소중하지. 아주 많이.”“너도 나한테 그래.”강지현은 천천히 김태하의 목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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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그건...”고개를 숙인 순간, 강지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그 작은 눈물 하나에, 간신히 눌러 두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네가 나를 무서워하게 될까 봐.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그랬어!”끝내 그의 진심이 터져 나왔다.이기적이라는 말도,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말도 사실은 전부 핑계였다. 그가 가장 두려웠던 건 결국 강지현이 자신을 어떻게 보게 될지였다.언젠가 그녀에게 미움받을 바에는 차라리 가장 좋았던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만이라도 온전히 지키고 싶었다.“내가 왜 널 싫어해? 네가 상처받은 사람이라서? 아니면 예전에 서지아가 그 일로 널 실망시켰으니까?”“하지만 서지아는 서지아고, 강지현은 강지현이야. 나도 무섭긴 해. 사랑하는 사람이 이성을 잃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다치게 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안 무서울 수 있어?”“하지만 내가 정말 그래서 널 무서워하고 경계할 사람이었다면, 칼이 날아왔을 때 절대 손을 놓지 않았을 거야!”그 말에 김태하의 마음속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졌다.김태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지현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했다.차마 깊이 떠올리지 못했던 장면이 다시 눈앞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칼날을 놓으면서도 끝까지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그 모든 것이 이 순간 더없이 또렷해졌다.‘나쁜 자식.’그녀는 애초에 자신을 무서워한 적이 없었다.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던 건, 바로 김태하 본인이었다.그는 자신이 또다시 통제력을 잃을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강지현이 자신을 무서워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지현아.”김태하는 결국 더는 버티지 못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애틋함과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와 숨이 막힐 것 같았다.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너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아.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어.”“그러니까 네가 말해 줘.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맞는 거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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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그 입맞춤에는 더 이상 유혹 같은 것은 담겨 있지 않았다.끝없는 위로와 애틋함, 그리고 차마 말로 다 풀어낼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랑만이 담겨 있었다.강지현이 한동안 조심스럽게 입술을 겹쳐 오자, 김태하의 팔에도 순식간에 힘이 들어갔다.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에게 이끌리기만 하던 입맞춤의 주도권을 되찾듯, 더 깊이 파고들었다.이기적이어도 좋았다.어리석어도 좋았다.그는 이제 더는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아래층에서는 서지아가 차 옆에 선 채, 강지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일분일초 흘러도 강지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오히려 위층의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서지아는 손톱이 부러질 듯 손끝을 움켜쥐었다. 미간이 깊게 일그러졌다.‘말도 안 돼...’“서지아 씨, 이제 정말 포기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그때 등 뒤에서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돌아보니, 그곳에는 최동윤이 서 있었다.최동윤은 의료용품과 생필품, 간식과 음료가 담긴 봉투를 들고 있었다. 딱 봐도 위층의 두 사람에게 가져다주려는 물건들이었다.“짐이 꽤 많네요? 간식에 디저트까지 이렇게나 많이요.”서지아가 싸늘하게 웃으며 최동윤의 손에 들린 봉투를 흘끗 보았다.“당신 대표님은 야식도 안 먹고, 단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몰라요?”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저 물건들이 김태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일부러 비꼬듯 물은 것이다.최동윤도 잠시 봉투를 내려다보았다.“대표님은 안 드시지만 사모님은 드십니다. 사모님께서 손을 다치셔서 대표님이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갈아드릴 약이 없을까 봐, 일찌감치 제게 메시지도 보내셨고요.”그는 일부러 또박또박, 하나하나 짚어 말했다.“그리고 이 디저트들은 사모님이 좋아하십니다. 그러니 지금은 대표님께도 중요한 것들이죠.”서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거짓말하지 마요. 두 사람 분명 싸웠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당신한테 이런 걸 보내라고 해요?”“싸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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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그냥 지나쳤다가 내일 서지아가 또 무슨 일을 벌이기라도 하면, 이제 막 화해한 대표님 부부에게도 달가울 리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최동윤이 입을 열었다.“서지아 씨,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아직 안 가십니까?”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는 서지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서지아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안색이 몹시 창백했고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서지아 씨...”“위가 아파요.”서지아가 낮게 말했다.“나 좀 데려다줄 수 있어요?”...40분 뒤, 최동윤은 서지아를 공항에서 멀지 않은 5성급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었다.처음에는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서지아가 끝까지 싫다고 버텼다. 오래된 지병일 뿐이라고 했다.최동윤이 그럼 서씨 가문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당했다.서지아는 이번에 몰래 귀국한 것이었다. 가족도, 팬들도 아무도 몰랐다.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이유를 물을 테고 그녀는 설명할 말도 없었다. 지금은 그럴 기운도 없었고.호텔 앞에 도착하자, 서지아는 작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아주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한참을 움직인 끝에야, 겨우 차 문을 짚고 몸을 세웠다.최동윤은 못 본 척하려 했지만 결국 빠르게 차에서 내려 서지아의 팔을 붙잡았다.“올라가시는 것까지 모시겠습니다.”“아니요, 괜찮...”“무리하지 마십시오, 서지아 씨. 그러시면 구급차 부르겠습니다.”최동윤은 거의 강제로 서지아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다.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서지아는 약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했지만 최동윤은 문가에 버티고 서서 그녀가 약을 먹는 것까지 확인했다.서지아는 기운도 없고 기분까지 우울했다. 지금은 그저 어떻게든 최동윤을 빨리 돌려보내고 싶었다.그런데 최동윤은 생각보다 훨씬 고집이 셌다. 그는 서지아에게 이제 괜찮아졌다고 직접 말하라고 하더니, 심지어 휴대폰까지 꺼내 영상을 찍으려 했다.“당신...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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