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 Chapter 411 - Chapter 420

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411 - Chapter 420

476 Chapters

제411화

“회장님, 오셨어요?”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주희는 조금 전부터 혹시 김무언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아주머니가 바로 문을 열어줄 리 없었기 때문이다.오늘 김무언이 귀국한다는 연락은 미리 받았었다.밤 비행기라고 했던 게 기억나, 혼자 빈집에서 적적할까 봐 강지현의 아파트에 모여 있다고 미리 메시지를 남겨두었다.김태하에게 사고가 난 이후 김무언은 그저 전화를 몇 번 걸어 상황을 물었을 뿐, 단 한 번도 직접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그 일로 김태하만 상처받은 것이 아니었다.은주희 역시 그의 무정함에 서운함을 느꼈고, 온 가족이 앙금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네가 여긴 왜 오느냐?”김무언을 본 지순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가족끼리 식사하면서 왜 나는 부르지 않았습니까?”김무언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는 아주머니에게 외투를 건네며 묵직한 발걸음으로 식탁을 향해 다가왔다.강지현이 예의를 차려 일어나려 했지만, 김태하가 그녀의 팔을 눌러 제지했다.한 손에는 밥공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지현을 누른 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마치 김무언의 시선이 자신을 훑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태하야...”“밥 먹어.”김태하는 낮게 읊조리며 앞에 놓인 반찬을 집어 강지현의 밥그릇 위에 얹어주었다.“무례하군.”김무언의 날 선 시선이 김태하를 지나쳐 강지현에게로 옮겨갔다.강지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움찔거렸다.곁으로 다가온 은주희가 김무언의 팔을 툭 쳤다.“여긴 왜 온 거예요? 오자마자 꼭 애들 기를 죽여야겠어요? 내가 말했잖아요, 오늘은 지현이가 우리 대접하는 날이니까 당신은 집에서 일찍 쉬라고.”“내 아들과 며느리를 보러 온 게 뭐가 문제지? 설마 나를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김무언은 울화가 치미는 듯 차가운 말투로 대꾸했고, 그 위압적인 분위기에 장내는 일순간 차갑게 얼어붙었다.강지현은 김태하의 눈치를 살피다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버님, 그럴 리가요. 어서 앉으세
Read more

제412화

하지만 은주희는 모처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김무언의 팔짱을 끼며 달랬다.“여정이 길어서 피곤한 탓에 예민해진 거죠? 자, 내가 같이 가서 쉬어줄 테니 어서 돌아가요.”그녀는 남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오늘처럼 화가 난 상태로 온 이상, 부자가 좋게 대화를 나누기는 불가능했다.이대로 식사를 이어가며 냉전을 치르느니,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하지만 김무언은 여전히 김태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온 가족이 한마디씩 거드는데도, 김태하는 불상처럼 미동도 없었다.고작 부상 좀 당한 것 가지고 정말 집안의 상전이라도 된 줄 아나?김무언도 원래는 남들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들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자 일부러 발걸음을 한 것이었다.그런데 상대가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을 머리 꼭대기에서 누르려 드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자 가슴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끝내 터져 나오고 말았다.그는 은주희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한 발짝 다가서더니, 김태하가 쥐고 있던 밥그릇과 젓가락을 단번에 쳐냈다.“왜, 몸 좀 상했더니 예의마저 잊어버린 게냐? 네 놈한테 가르친 교양은 죄다 개나줘버렸어?”서슬 퍼런 일갈이 마치 거대한 바위가 얼어붙은 호수 위로 추락하듯 쏟아졌다.그제야 줄곧 침묵을 지키던 김태하가 반응을 보였다.“아버님!”경악한 강지현이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김태하의 앞을 가로막았다.“태하는 아직 회복 중이잖아요... 아버님, 제발 노여움을 푸세요.”지순옥과 은주희도 아연실색하며 김무언을 말리려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의 귀에는 그 어떤 만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김윤석이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김무언! 적당히 좀 해라!”김태하가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분노로 이글거리는 아버지의 시선과 마주한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도, 노여움도 없었다.그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짙은 피로함만이 배어 있었다.“전 교양이 없습니다. 늘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이
Read more

제413화

김태하가 벌떡 일어서자 의자가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은주희가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무언 씨! 어서 가요, 우리!”김무언 역시 실수로 강지현을 때렸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매서웠던 일격은 그가 얼마나 이성을 잃었는지 보여주었다.이번만큼은 김무언도 은주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지순옥은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김무언을 쏘아보더니, 이내 서둘러 강지현을 부축했다.강지현은 충격이 컸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도우미와 지순옥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태하야.”강지현은 정신이 들자마자 김태하의 이름을 불렀다.김무언이 들어온 순간부터 그의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김태하의 시선이 잠시 그녀에게 머물렀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핏발이 선 눈동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싸늘했다.이루 형언할 수 없는 냉기에 강지현조차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거기 서요.”은주희를 따라 자리를 뜨려던 김무언의 뒤로 김태하의 목소리가 꽂혔다.“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그냥 가시겠다?”김태하가 한 발짝씩 거리를 좁혀왔다.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지만, 주위를 압도할 정도로 서늘했다.식탁 옆을 지나던 그는 망설임 없이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그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한 강지현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태하야, 제발... 나 정말 괜찮아.”강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성을 붙들려 애썼다.지순옥은 강지현의 곁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부자간의 다툼이야 워낙 자주 봐온 터였지만, 오늘은 손자며느리에게 집안의 치부를 들켜 유독 수치스러울 뿐이었다.이내 강지현을 데리고 방으로 피신시키려 했으나, 그녀는 완강히 버티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김무언은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아들의 태도에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다.방금 전 스치듯 지나갔던 미안함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Read more

제414화

“지현아!”“아가야!”은주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고, 지순옥 역시 너무 놀라 하마터면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김윤석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김태하를 호통 쳤다.하지만 김태하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을 잃고 흐릿했다.그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마치 깊은 혼돈 속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강지현의 손바닥은 순식간에 칼날에 베였고, 선혈이 가느다란 손목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려 바닥 위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그러나 김태하는 손을 놓을 기색이 없었다.힘을 풀지 않은 탓에 칼날은 여전히 느릿하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강지현은 온 힘을 다해 남자의 완력에 맞섰다.밀려드는 통증에 호흡마저 가빠졌다.“태하야, 대체 왜 그래?”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김태하는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김씨 가문 사람들이 뒤늦게 달려와 거들기 시작했다.강지현의 손이 크게 다쳤음에도 김태하는 고집스럽게 나이프를 놓지 않았다.섣불리 개입했다간 두 사람 모두 치명상을 입을까 봐 다들 김태하를 향해 매서운 질타를 쏟아냈다.하지만 지순옥도, 은주희도, 심지어 김윤석조차 소용없었다.그 누구의 외침도 김태하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전 괜찮아요.”아수라장이 된 주변의 소란에도 강지현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그 나직한 한마디는 곁에 선 이들을 향한 안심이자, 길을 잃고 헤매는 남자에게 건네는 위로였다.김태하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는 순간, 텅 비어 있던 눈동자가 격렬하게 요동쳤다.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이마 위로 불거진 핏줄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그는 여전히 짐승 같은 완력으로 칼날을 밀어 넣으며 위태로운 대치를 이어갔다.“태하야, 침착해. 나 여기 있잖아. 다 괜찮아... 정말이야.”강지현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그를 담아내는 눈동자엔 포용과 애틋함, 그리고 연민이 가득했다.하지
Read more

제415화

품 안에 안긴 남자가 차츰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강지현은 그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직감했다.지순옥은 아주머니에게 눈짓해 강지현의 상처를 남몰래 처치하게 하고는 바닥의 혈흔을 서둘러 지워냈다.은주희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고, 김윤석은 지순옥을 부축하며 두 사람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며 자리를 비워주었다.모두가 떠난 거실에는 두 사람의 엇갈리는 심장 박동과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강지현은 두 팔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남자의 정수리에 가만히 기댄 채, 멀쩡한 손으로 김태하의 팽팽하게 굳은 등줄기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경련하듯 떨리던 근육이 서서히 잦아들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됐어, 이제 다들 갔어. 다 큰 사람이 왜 애처럼 충동적으로 굴고 그래?”강지현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한 어조였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할수록, 그것이 오히려 참혹한 진실을 덮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라는 사실을.“강지현.”마침내 김태하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제야 강지현이 몸을 떼어내며 물었다.“좀 진정됐어?”김태하는 고개를 떨군 채 한쪽 다리는 쭉 뻗고, 다른 쪽은 반쯤 굽힌 채 앉아 있었다.늘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던 어깨는 오늘따라 유독 처져 보였다.그는 대답 대신 손을 느리게 뻗었다.잘게 떨리는 손끝으로 두툼한 붕대에 감싸인 그녀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스스로 부숴버린 보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동자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통증과 자기혐오가 일렁였다.“아파?”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간신히 흘러 나왔다.“피부에 난 상처야 금방 아물겠지. 하지만 마음이 아픈 거라면 달래기가 좀 힘들겠는데.”강지현은 사람을 위로하는 법을 잘 알았다.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밤바람처럼 그를 감싸 안았다.“방금, 난...”김태하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절망이 그를 짓눌렀다.다시는 마주하기 싫었
Read more

제416화

김태하는 강지현이 아무리 말려도 아예 들을 생각조차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그가 그녀의 감정을 이렇게까지 외면한 건 처음이었다. 강지현은 문득 김태하가 전에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만약 자신이 그녀를 속였다면 그녀는 어떻게 할 거냐고.“그래서?”강지현도 더는 버티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처럼 고요했다.“그래서...”김태하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다정함이 사라져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차갑고 낯설었다.“네가 지금 후회한다면 우리도 여기서 끝낼 수 있어.”그는 곁눈질로 그녀를 흘끗 보았다. 강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다친 손을 살짝 떨고 있었다.김태하는 차마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없었다. 만약 그때 자신이 깨어나지 못했다면 지금 강지현은 이렇게 멀쩡히 그의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었을까?그는 그동안 운 좋게도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때가 온 듯했다.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었다. 제 허황된 욕심 때문에 결국 그녀를 다치게 하고 말았으니까.서지아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껏 한계에 다다른 몸으로, 억지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지금 뭐라고 했어?”강지현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김태하는 곧바로 눈을 피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난 네가 억지로 참고 견디면서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라지 않아. 너한테 떠날 기회를 주는 거야.”“억지로 참고 견뎌?”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물론 충격적이었다. 오늘 김태하의 이런 모습을 보고도 단숨에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그래도 그녀는 어떻게든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그런데 설마, 그동안 두 사람이 쌓아 온 마음과 서로에게 내어 준 진심이 그의 말 한마디에 전부 부정당할 줄은 몰랐다.김태하가 그녀에게 보여 준 다정함과 애정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이었을까? 서지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
Read more

제417화

최동윤은 도무지 거짓말을 끝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김태하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한밤중에 자신을 불러 데리러 오라고 했을 때만 해도, 최동윤은 당연히 그가 김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가려는 줄 알았다.그런데 뜻밖에도 김태하가 향한 곳은 회사 근처였다.예전에 김태하가 쉬기 편하도록 회사 옆에 단독 아파트 두 채를 마련해 둔 적이 있었다. 그가 언제든 쉬거나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곳이었다.인테리어는 비교적 단출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회사 로비와 비슷했지만, 매일 도우미가 청소하고 정리해 두는 곳이라 아주 깨끗하고 쾌적했다.가는 내내 최동윤은 돌려서라도 사정을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입을 떼기도 전에 번번이 말을 삼켜야 했다.김태하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겠으니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집으로도 돌아가지 않고 강지현에게도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차 안에서 그는 내내 눈을 감고 쉬고 있었지만 그를 둘러싼 분위기는 숨이 막힐 만큼 무겁고 차가웠다.강지현에게서 메시지가 오고 나서야 최동윤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확신했다.두 사람이 싸운 건가?하긴,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달콤해서 보는 사람까지 어지러울 정도였던 김태하와 강지현 같은 신혼부부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김태하가 자리를 잡은 뒤, 그는 최동윤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떠나기 전에는 쓸데없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최동윤은 김태하의 뜻을 알아들었다. 특히 이 일은 강지현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게다가 부부싸움은 늘 집안 어른들까지 걱정하게 마련이니, 어르신 쪽에도 알려서는 안 됐다.그래서 최동윤은 강지현의 메시지를 받고도 그저 말을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그는 일부러 김태하의 몸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 강지현이 먼저 김태하를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지현이 그렇게 집요하게 캐묻는 것을 보니, 어쩐지 일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뭐, 됐다.
Read more

제418화

메시지 한 통도, 전화 한 통도 없었다.지금쯤 김태하는 제대로 쉬고 있을까? 그래도 다른 가족들이 곁에 있으니 잘 돌봐 주고 있겠지.분명 화가 나야 했다. 그런데 머릿속을 채운 감정은 분노보다 걱정과 불안에 가까웠다. 심지어 어젯밤 그와 괜히 고집을 부린 것 같아 조금 후회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녀라고 정말 괜찮을까? 후회한다면 여기서 끝내자는 말은 또 뭐고. 떠날 기회를 주겠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그가 차갑고 냉정한 말투로 그런 말을 꺼냈을 때, 강지현은 정말 심장이 산산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서로 믿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건 그였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생기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녀를 의심하고 밀어내는 것이었다.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설령 그녀가 떠나려 한다 해도 단호하게 붙잡아 줄 수는 없었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의 마음은 이미 몇 번이고 그에게 말하지 않았던가.그렇게 생각하자 강지현은 또 화가 났다. 그에게만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한편, 김태하 역시 일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정기 진찰을 하러 온 의사는 청진 중 그의 심박이 조금 불규칙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미간을 찌푸렸다.옆에 서 있던 최동윤은 몹시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선생님, 요즘 저희 대표님 상태가 괜찮으셨거든요. 큰 문제는 없는 거죠?”“약은 제때 들고 계십니까?”“네, 꼬박꼬박 드시고 있습니다. 매일 대표님과 사모님이 제게 전화로 확인하셨고요.”최동윤은 일부러 강지현을 언급했다.하지만 김태하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그럼 이상하군요. 어제 혈액 검사 결과도 전부 정상 범위였는데. 혹시 따로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의사는 김태하의 얼굴을 살피며, 혹시 제대로 쉬지 못한 건 아닌지 짐작했다.내상은 무엇보다 휴식이 중요했다.이미 가장 좋은 약을 쓰고 있었다. 회복을 위해서는 마음도 편안하게 다스려야 했다. “있습니다.”김태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은
Read more

제419화

지순옥의 말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만큼은 완전히 김태하의 편이었다.사실 상황은 그녀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어젯밤 집으로 돌아간 뒤, 은주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김무언과 크게 다투었고 심지어 이혼까지 입에 올렸다.그녀는 오랜 세월 김무언의 성격을 참고 살아왔다.하지만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김씨 가문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에 은주희는 늘 이해심 많은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고집불통인 김무언의 성격을 그나마 달랠 수 있는 사람도 그녀뿐이었다.하지만 이제는 자식들이 이렇게까지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특히 김태하까지...김무언은 아들이 어릴 때부터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굳이 그를 자극했다.그 탓에 강지현까지 다치고 말았다.어젯밤의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자, 은주희는 아직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은주희가 화가 나 친정으로 돌아가 버리자, 김무언도 그제야 당황했다. 지순옥과 김윤석이 김태하에게 사과하라고 자신을 몰아붙일까 봐, 그는 은주희를 따라 처갓집으로 향했다.집안은 오전 내내 한바탕 소란을 겪고 나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그제야 지순옥은 김태하와 강지현을 보러 가고 싶어졌다.하지만 오늘은 강지현이 휴가를 내고 김태하와 함께 있을 터였다. 너무 이른 시간에 연락했다가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할 것만 같았다.강지현도 많이 놀랐을 텐데, 어떻게 달래 주어야 할지 그녀로서는 막막하기만 했다.지금 전화를 건 것도 한편으로는 그들 부부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지현을 직접 보러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할머니, 저희는... 괜찮습니다.”김태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오늘은 저희 보러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현이 손은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그렇구나.”지순옥도 어젯밤 일로 가장 힘든 사람은 김태하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래, 알겠다. 그럼 며칠 뒤에 보러 가마. 지현
Read more

제420화

지순옥은 한참을 돌려 말하다가,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 넌지시 말을 꺼냈다.“저기, 태하야. 할머니 친구 중에 해외에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거든. 요즘 시간 괜찮으면 한번 만나 볼 수 있겠니?”“할머니는 네 마음속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는 걸 안다. 사실 요즘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나 마음의 문제를 안고 살잖니. 그런 건 이제 병이라고 할 것도 아니야. 잘 풀어내기만 하면 괜찮아진단다.”“...”지순옥은 애써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지만 오히려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김태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어른들을 이렇게 걱정시키고 있다니. 어찌 되었든, 그는 아직 김씨 가문을 떠받칠 만한 사람이 되기엔 부족했다.“알겠습니다.”김태하는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통화를 마친 뒤, 김태하는 참지 못하고 연락처에 저장된 번호를 눌러 보았다.‘아내’라는 두 글자가 서서히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때 강지현은 막 전화를 끊은 참이었다.김태하의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혹시 그도 지금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걸까?강지현은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그런 기대를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그가 정말 자신을 찾고 싶었다면 진작 전화했을 것이다.한편, 이도운은 오늘 백하린과 함께 절차를 밟고 왔다. 이혼 숙려 기간은 한 달. 두 사람은 당분간 여전히 부부 관계였다.백하린도 더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도운은 마음을 굳혔고 끝까지 매달리기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었다.게다가 그는 이제 그녀가 예전에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상태였다.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지금, 그녀가 끝까지 이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을 터였다.백하린은 스스로에게 마지막 여지를 남기기로 했다.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의 갈등부터 누그러뜨려야 했다.수속을 마친 뒤 두 사람은 근
Read more
PREV
1
...
4041424344
...
4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