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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941 - Chapter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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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1화

최동윤이 그렇게 말하자 서지아는 다시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고개를 숙이는 순간, 시선이 또다시 저도 모르게 최동윤이 셔츠 아래에 드러난 피부에 멎었다.귓가에 문득 신아정의 말이 떠올랐다.‘너도 최동윤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최동윤은 술에 많이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서지아는 원래 그를 침실에 두고 혼자 몸을 닦은 뒤 옷을 갈아입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들어가 보니 최동윤이 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저 흠뻑 젖은 셔츠만 옆에 벗어 두었다.서지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침대 옆에 기대 앉힌 뒤 마른 수건을 가져와 몸의 물기를 꼼꼼히 닦아 줬다.최동윤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이 들었는지 서지아가 몸을 닦아 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녀의 시선이 탄탄한 남자의 상반신에 머물렀다.선명하게 잡힌 가슴과 복근이 숨결을 따라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모습에 서지아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서지아의 손이 문득 멈췄다.그제야 최동윤의 바지도 완전히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하지만 바지까지 대신 갈아입혀 줄 수는 없었다.그때 최동윤이 눈을 떴다.서지아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바지도 젖었네요. 옆에 가운 있으니까 혼자 갈아입을 수 있겠어요?”그 말을 들은 최동윤의 얼굴도 조금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힘겹고 느리긴 했지만 몸을 받쳐 일어나는 걸 보니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서지아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서지아는 거실에서 따뜻한 물을 따르고, 문 앞에 배달된 숙취약도 가져와 설명서대로 두 알을 꺼냈다.다시 방으로 들어왔을 때 최동윤은 이미 옷을 갈아입은 뒤였다.“약 먹어야죠. 그래야 좀 나아질 거예요.”서지아가 물과 약을 건넸다.최동윤은 그것을 받아 들고도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제멋대로이고 귀하게만 자란 줄 알았던 아가씨에게도 이렇게 다정하고 세심한 면이 있었구나.’“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왜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고마워요.”최동윤은 잠긴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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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2화

최동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가 놀란 표정으로 서지아를 바라봤다.“서지아 씨.”그가 갑자기 이름을 불렀다.“아까 그 키스는 무슨 뜻이죠?”막 나가려던 서지아는 걸음을 멈췄다.그녀가 돌아서자 최동윤이 갑자기 다가왔다. 그는 몸을 살짝 기울여 서지아를 문가에 가두었다.최동윤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벽에 댔다.그의 손바닥은 뜨거웠고, 힘은 세지 않았으나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고, 그의 술 냄새가 다시 밀려왔다.서지아가 입을 열었지만 소리를 내기도 전에 뜨거운 입술이 덮쳤다.발코니에서 스치듯 닿았던 키스와는 달랐다.이번엔 깊고 긴 키스였다.서지아는 머릿속이 윙 하고 울리며 새하얘졌다.그녀는 밀어내지 않았고 잔뜩 찌푸려졌던 미간도 이내 풀렸다.처음엔 조금 서툴고 조급했던 최동윤의 키스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깊어졌다.옷은 둘 사이에 불필요한 방해물처럼 느껴졌다.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가운이 바닥에 떨어졌다.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침대까지 가고 나서야 최동윤은 문득 정신이 든 사람처럼 멈췄다.“지아 씨.”하지만 서지아 역시 술기운에 이성이 흐려진 듯했다.그녀는 다시 그의 입을 막으며 행동으로 화답했다.최동윤의 손은 크고 손가락은 길었지만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얇게 박여 있었다.몸은 뜨거웠지만 손길은 정말 다정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지칠 대로 지쳐 눈도 뜨기 힘들었던 서지아는 무시하려 했다.곧이어 휴대폰까지 진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방 안쪽에서 장미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아야?”서지아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옆에는 최동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서지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불을 펼쳐 그를 가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급히 옆 장롱 안으로 밀어 넣었다.그리고 재빨리 가운을 걸쳤다.문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장미란이 문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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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3화

“대학 동창이라고? 누구지?”누가 딸에게 남자를 소개해 줬다는 말을 듣자 장미란은 오히려 더 관심을 보이며 서지아를 옆에 앉혀 놓고 자세히 캐묻기 시작했다.서지아는 어쩔 수 없이 민성현의 이름을 말했다.장미란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듯했다.“아, 그 애? 네가 예전에 꽤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집안은 어때? 지금 하는 일은...”“엄마, 민성현은 여자를 엄청 밝히는 사람이에요. 난 싫어요.”일이 더 커지는 걸 막으려고 서지아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그 말을 듣자 장미란의 태도도 곧바로 바뀌었다.“그런 남자는 절대 안 되지. 친구가 왜 그런 사람을 소개해 줘? 네가 화날 만하네.”장미란은 딸의 손을 토닥이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살짝 웃었다.“게다가 너 요즘 지 대표님하고도 잘 지내잖아. 나는 그분이 여러모로 너랑 정말 잘 맞는 것 같은데, 너도...”“아휴, 엄마. 저 지현우 씨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그냥 아는 친구라고요.”지현우 이야기가 나오자 서지아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잠시 잊고 바로 짜증을 냈다.장미란이 말을 더 길게 할 틈을 주지 않고 서둘러 내쫓았다.“이제 그만 해요. 잠도 다 깼네요, 엄마, 얼른 가세요.”장미란은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그런데 욕실 앞을 지나다 갑자기 멈췄다.“알았어. 화장실만 갔다 갈게.”그제야 서지아는 최동윤의 옷이 아직 욕실 안에 있는 것 같다는 걸 떠올렸다. 안도 엉망진창일 텐데.그녀는 순식간에 장미란 앞을 막아섰다.“나 방금 씻어서 안 치웠어요. 바닥도 미끄러우니까 옆에 있는 엄마 방에 가서 쓰세요.”“얘도 참. 화장실 한 번 쓰는 것도 안 돼?”장미란이 미간을 찌푸리고 서지아를 밀어내며 들어가려 했다.“엄마.”서지아의 심장이 목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화난 척했다.“좀 그만하면 안 돼요? 아까 욕실에서 토했어요. 엄청 더러우니까 엄마한테 보여주기 싫단 말이에요.”과한 반응에 장미란도 놀라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지아야, 술 마셨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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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4화

대신 침대 옆 협탁에는 새 남성복 한 벌이 깔끔하게 개어져 있었다.최동윤은 머리가 멍하고 눈도 욱신거려 한참을 머무적거린 뒤에야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서지아는 이미 없었다.지난밤 장면이 끊어진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특히 자신이 서지아를 붙잡아 가지 못하게 하고 먼저 키스했던 일,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이...최동윤은 등골에 식은땀이 맺혔다.‘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그는 욕실로 뛰어갔다.하지만 어젯밤 바닥을 뒤덮었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모든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말끔했다.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최동윤은 황급히 화면을 켰다.서지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어젯밤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걸로 하고 잊어 주세요. 청소는 도우미 불러서 해 놨고 옷도 준비했어요. 룸은 오후 2시에 자동 체크아웃돼요. 서지아.]최동윤은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봤다.격하게 요동치던 마음이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삽시간에 식어버렸다.애초에 자신이 아무런 기대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가슴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오늘은 사람들이 차례로 서경시를 떠났고 저녁에 전용기를 타는 김태하와 강지현만 남았다. 강지현이 아직 처리할 일이 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정오 무렵, 서경시 병원.서운혁은 교통사고로 몸이 크게 상한 데다 어제 납치까지 당했다. 그는 비록 의식을 되찾았지만 몹시 쇠약해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했다.그는 지금 강지현과 김태하의 결혼식 생중계 영상을 다시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서로에게 서약하는 장면을 보자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지만 눈빛은 더 쓸쓸해졌다.옆에 있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부회장님, 이제 그만 보세요. 의사 선생님도 많이 쉬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우시죠.”서운혁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휴대폰만 바라봤다.그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서운혁이 고개를 들자 비서가 옆의 간병인에게 문을 열어 보라고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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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5화

백하린에게 조금이라도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백정우와 정혜원은 서운혁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서운혁은 예전에 백하린과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변호사와 함께 백하린을 면회했고, 백하린에게서 서운혁과 강지현이 혈연관계라는 사실도 들었다.서운혁이 강지현까지 설득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치게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은 몇 년만 살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백하린의 계산이었다.백하린은 이번에만 나오게 되면 반드시 부모님 잘 모시고 이윤후도 잘 돌보며 다시는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딸이 울며 매달리는 모습을 본 두 노인은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모욕을 당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생각이었다.정혜원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이윤후를 끌어안았다.“서 부회장님, 하린이도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요. 윤후도 아직 어린데 저희 부부에겐 다른 자식도 없어요. 부탁드립니다. 강지현 씨에게도 사정해 주세요. 죗값은 저희가 대신 치를 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외할머니 품에 안긴 이윤후도 울며 서운혁에게 빌었다.“아저씨, 제발요. 엄마 용서해 주세요. 엄마 보고 싶어요.”비서는 더는 듣지 못하겠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나가라고 했다.서운혁도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하지만 백하린의 부모는 이윤후까지 끌고 함께 무릎을 꿇은 채 계속 애원했다.병실에 있던 두 경호원은 서운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고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곧장 다가가 사람들을 강제로 내보내려 했다.그 틈을 타 이윤후가 서운혁의 침대 옆으로 뛰어왔다.“아저씨. 엄마한테 제 새 아빠가 돼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아저씨, 제발요.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어요.”이윤후는 서럽게 울며 눈물을 닦고 계속해서 서운혁에게 매달렸다.비서가 얼른 다가와 이윤후를 떼어 냈다.서운혁의 눈빛은 어두웠지만 아이의 애원에 마음이 아주 조금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그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전처와 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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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6화

백하린의 부모는 예전엔 강지현을 몰랐지만 최근 며칠간 쏟아진 뉴스를 통해 얼굴을 알고 있었다.처음에는 그녀에게도 선처를 부탁하려 했지만, 강지현이 풍기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보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그들은 강지현에게 화를 낼 용기도 없어 그저 경호원만 나무랐다.강지현이 차갑게 말했다.“그 말은 좀 이상하네요. 이윤후가 먼저 저한테 달려들었으니까 막은 거잖아요.”“아이가 잘못해서 제지당한 건데, 두 분 입에선 아이를 괴롭힌 일이 되네요.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백하린을 감싸고 키우신 모양이죠? 지금까지의 일이 다 두 분 잘못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이제 그 결과가 돌아왔는데 왜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시는 건가요?”그 말에 백정우와 정혜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아까까지 보이던 비굴하고 가엾은 표정도 사라졌다.서운혁은 강지현을 보자 흥분해 몸을 일으켰다.“강지현 씨.”두 노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한 듯 고개를 떨구며 이윤후의 등을 두어 번 툭툭 쳤다.“네, 강지현 씨 말씀이 맞아요. 저희가 무지했고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요. 죄송합니다. 전부 저희 잘못입니다.”“윤후야, 얼른 강지현 씨한테 사과해.”이윤후는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는 미움이 가득했다.하지만 어른들이 다그치자 결국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흐윽.”이윤후는 울면서 사과했지만 강지현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들 옆을 냉정하게 지나 서운혁의 침대 곁으로 갔다.강지현은 경호원에게 눈짓해 가져온 보양품을 옆에 내려놓게 했다.“강지현 씨, 나는... 강지현 씨가 다시는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앞으로 다시 볼지 말지는 지금 서 대표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요.”강지현은 서운혁의 기대 어린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서운혁도 무슨 뜻인지 알았다.강지현은 아마 방금 도착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윤후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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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7화

결국 강지현은 매정하게 돌아설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김태하의 말이 맞았다. 마음을 놓지 못하겠다면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오빠인 서운혁이 백하린과 손을 잡고 자신을 해치려 했던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그렇다고 가족이 죽어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병원에 오기 전까지 강지현은 계속 망설였다.아무 말 없이 떠나 버리면 자신과 서운혁이 서로 얼굴 붉히며 어색해질 일도 없을 테니까.하지만 김태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봤다.강지현이 원하는 건 단절이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를 풀지 못해 마주 볼 용기가 없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었다.김태하가 말했다.“사람은 누구나 잘못도 하고, 저마다 사정도 있어. 누구를 용서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 자신을 몰아붙이지도 마.”강지현의 어머니가 아이를 버린 건 용서받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도 평생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았고 그것으로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서운혁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기적일 수도, 충동적일 수도 있었고 사람과 감정에 눈이 멀 수도 있었다.강지현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용서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 때문에 스스로를 가둬두어선 안 된다.김태하는 그녀가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길 바랐다.강지현의 말을 들은 서운혁은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그럼에도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거나 용서해 달라고도 하지 않을게요. 다만 이것만 알아줬으면 해요. 앞으로 내가 필요할 때 나는 항상 곁에 있을 거고, 보고 싶지 않다면 절대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결정을 내리든 무조건 따를 거예요.”강지현은 창백한 서운혁의 얼굴을 바라보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나랑 김태하는 내일 노르국으로 가요. 그 사람 병을 제대로 치료해야 해서요. 그러니까 당신도 잘 쉬고, 빨리 나으세요.”서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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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8화

김태하의 말이 맞았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저마다의 한계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기 마련이다.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강지현과 서운혁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문밖에서 경호원이 노크해 시간을 알려 주고 나서야 강지현은 이제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강지현.”서운혁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강지현이 돌아보자 그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말했다.“몸 잘 챙겨요. 임신했으니 뭐든 조심하고요.”“네.”강지현은 답하며 무심한 듯 그의 이불 끝을 정리해 줬다.“부회장님도요.”서운혁은 여전히 아쉬워 보였다.“괜찮다면 그쪽에 도착해서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만 한번 해줄래요?”“네.”강지현의 대답에 서운혁의 얼굴에 기쁨이 스쳤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럼 얼른 가 보세요. 김태하 씨가 기다리게 하지 말고요.”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번 서운혁을 바라봤다.입 안에서 맴도는 호칭이 있었지만, 아직은 낯간지럽고 어색해 차마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 때와는 달리, 방 안의 분위기는 한결 따뜻하고 편안했다.저녁, 공항.최동윤은 차를 세우고 전용기 터미널로 빠르게 걸어갔다.전용 대기실 안에서 김태하와 강지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늦게 나타난 최동윤을 보자 강지현이 곧바로 그를 바라봤다.“최 비서, 몸은 좀 괜찮아졌어?”대부분 하객은 오늘 오전 중으로 떠났고, 최동윤은 원래 아침 일찍 빌라로 와서 짐 정리를 도와야 했다. 하지만 온종일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점심이 되어서야 김태하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좋지 않으니 반나절 휴가를 달라고 했다.최동윤은 거의 휴가를 낸 적이 없었다. 몸이 아파도 쓰러지지만 않으면 쉽게 자리를 비우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래서 김태하는 한동안 크게 걱정했다. 점심에 그는 강지현과 함께 서운혁을 보러 병원에 가지 않고 호텔로 최동윤을 보러 갔을 정도였다.하지만 최동윤은 호텔에 없었다.동행한 직원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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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9화

“너...”김태하는 원래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최동윤의 일만큼은 조금 화가 났다.강지현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요. 별일 아니겠죠. 최동윤 씨, 나 오렌지주스 한 잔만 가져다줄래요?”“네, 사모님.”강지현이 자신을 빼내 주는 걸 알아챈 최동윤은 바로 자리를 떴다.최동윤이 사라지자 김태하는 강지현이 꽉 붙잡고 있던 손을 빼내며 툴툴거렸다.“내가 최 비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것 같아? 분명 누군가한테 당했어.”“서지아 씨한테?”강지현이 조용히 물었다.김태하는 차갑게 말했다.“서지아 말고 또 누가 있겠어.”오늘 최동윤 일 때문에 김태하는 서지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서지아는 아침 일찍 해원시로 돌아갔는데 최동윤이 병가를 냈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걱정하며 상태를 물었다.그때 김태하는 최동윤이 어젯밤 거의 알코올 중독 직전까지 마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하지만 서지아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었다. 꼭 뭔가 찔리는 사람처럼 보였다.“최 비서는 낙천적이고 강단 있는 사람이야. 누가 좀 괴롭혔다고 이렇게까지 풀이 죽을 애가 아니라고. 서지아가 더 심한 짓을 한 게 분명해.”김태하의 말을 듣던 강지현은 눈을 살짝 굴리더니 피식 웃었다.김태하가 답답하다는 듯 그녀를 봤다.“왜 웃어?”강지현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김태하, 서지아가 무슨 더 심한 짓을 했을 것 같아?”“그걸 나한테 왜 물어.”김태하는 이번엔 재빨리 눈치를 챘다.“내가 서지아를 얼마나 안다고.”강지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생존 본능 너무 강한 거 아니야? 진지하게 묻는 거야. 김 대표, 방금 당신이 최동윤은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여자가 남자한테 어떤 식으로 상처를 줘야 저렇게까지 힘들어질까?”“어떤 식으로...”김태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지현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 눈빛이 반짝거렸다.“설마 최 비서가 서지아를... 그럴 리가 있나?”김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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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0화

강지현은 김태하의 품에 안겨 단잠에 빠졌고, 김태하 역시 두 눈을 감은 채 강지현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마치 그렇게 안고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는 듯했다.최동윤은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밤은 깊었지만 그는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다음 날 정오.주상 그룹 본사 최상층 주주회의실에서 회의 하나가 끝났다.회의실 문이 열리고 주주와 임원들이 차례로 나왔다.곧이어 전 직원 메일로 인사 발령 공지가 전송됐다.강지현 대표이사의 무기한 휴가로 인해 주단우 부대표가 직무를 대행하게 되었고, 주시언은 사업 및 개발 부문을 총괄하는 임시 팀장을 맡았다. 현다영은 대표 비서실장으로 승진하여 주단우의 업무를 보좌하게 되었다.공지가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대표실에도 사람들이 모였다.현다영과 강지현이 이끌던 기존 팀원들이 모두 있었다. 막 복직 절차를 끝낸 주단우도 다리를 절뚝이며 들어왔다.다만 주시언은 없었다.그는 오늘 하원영과 함께 주병찬의 수술을 지켜봐야 해서 강지현에게 전화로만 작별 인사를 하며 직접 배웅하러 올 수는 없었다.사실 주시언은 진작에 독립할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주상 그룹도, 주병찬의 회사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강지현의 거듭된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주상 그룹에 이름만 올려두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강지현이 주단우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을 주단우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강지현이 자신에게 이 정도로 권한을 위임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우를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큰 신뢰까지 바라지는 않았다.대표실은 원래 여자 직원들끼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는 훈훈한 분위기였지만 주단우가 들어오자 순식간에 깨졌다.주단우도 조금 어색한지 강지현의 마지막 서명이 필요한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고 헛기침을 했다.강지현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예전처럼 거만하고 사나운 기세가 사라진 주단우를 보고 웃음이 났다.“주 대표님, 칼에 찔린 건 허리라면서 왜 다리까지 불편해졌어요?”“칼 맞은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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