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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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참, 바텐더한테 들었는데 조익현이 따로 양주를 꽤 많이 들여왔대. 파티 한 번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유난 떠는 건 처음 보네. 우리 호텔에 웬만한 술은 다 있잖아.”안혜슬이 의아한 듯 말을 이었다.강하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혜슬아, 지금 바로 펍에 전화해 봐. 객실팀에서 숙취 해소제를 준비해야 하니까 술 도수랑 종류를 확인해야 한다고 하고, 사진 좀 찍어서 보내달라고 해.”역시 그녀의 절친답게 안혜슬은 곧바로 의도를 눈치채고 대답했다.“알았어.”통화를 마친 강하율은 사무실로 돌아왔고, 일부러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허지연을 향해 쏘아붙였다.“지연 씨, 카라디움에서 고객이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가보니까 아무도 없던데?”허지연의 얼굴에는 비열한 미소가 번졌고, 눈빛엔 승리감마저 서려 있었다.“어머, 죄송해요. 고객님이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오신다는데 제가 깜빡하고 전달을 못 했네요.”“하...!”강하율은 씩씩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그 모습을 본 허지연은 얼마나 뿌듯한지 몰랐다.조금 전 배윤제와 마주쳤을 때, 그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어 은근히 놀랐다.첫마디가 강하율을 찾는 말이었다는 게 조금 거슬리긴 해도 배윤제의 관심을 가로채는 건 시간문제라고 확신했다.하지만 그녀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강하율은 배윤제가 호텔에 오면 정해진 시간에 호숫가 산책로를 달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예전에 업무차 왔을 때도 두 사람은 그곳에서 여러 번 의도적인 ‘우연’을 가장해 만났었다.이번에도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 허지연을 보내 ‘우연히’ 마주치게 했다.아니나 다를까, 허지연의 부계정에는 이상형과의 만남을 자랑하는 게시물이 새로 올라왔다.댓글 창을 도배한 축복 글은 그녀에게 큰 격려가 되었고,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실룩거렸다.하지만 강하율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허지연의 뒤에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정다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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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슬쩍 훑어보니, 조익현 옆에 놓인 쓰레기통 위 재떨이에는 방금 끈 지 얼마 안 된 담배꽁초 두 개가 꽂혀 있었다.아무래도 진작부터 여기서 죽치고 기다렸던 모양이다.강하율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안녕하세요, 부총괄님께서 조익현 씨랑 기소정 씨한테 더 필요한 건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셔서요.”조익현이 싱긋 웃었다.“하율 씨가 직접 오셨는데, 제가 더 바랄 게 있겠어요? 같이 가서 소정한테 물어보죠.”그 말에 강하율은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그래요.”하지만 걸음을 옮기던 찰나, 발바닥에 무언가 밟힌 듯 몸이 휘청였다.조익현이 냉큼 그녀를 붙들어 세웠다.“조심해야지. 안 그랬으면 나한테 안기려고 일부러 넘어진 줄 오해할 뻔했잖아요.”강하율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참, 농담도 지나치시네요.”그러고는 서둘러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안에는 기소정이 소파에 앉아 다른 여자 두 명과 한창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신부 들러리였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안혜슬이 말했던 조익현과 몰래 만났다던 그 여자였다.기소정은 한껏 으스대는 말투로 자랑을 늘어놓았다.“익현 씨는 나한테 돈 쓰는 걸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니까. 웨딩드레스가 몇억이나 하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바로 사주더라고. 내가 지나가다 보석을 가리키기만 해도 그날 밤이면 베개 옆에 놓여 있지. 오늘 저녁에 너희한테도 보여줄게. 정말 이 남자를 어쩌면 좋니.”두 들러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부럽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그중 한 명은 조익현을 슬쩍 쳐다보며 묘한 눈길을 보냈다.강하율은 기가 찼다.결국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넸다.“실례합니다. 파티 시작 전에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기소정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대답했다.“그렇게 도와주고 싶으면 침실에 가서 내 드레스나 좀 다려줘요. 객실팀 직원이 어찌나 서툴고 덤벙대는지 원.”“네, 알겠습니다.”정면으로 부딪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문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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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아마 이번 결혼식을 위해 특별히 가져왔을 것이다.뒤로 갈수록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소정이 부모님을 따라 연회에 참석한 사진들이 꽤 많이 보였다.그중 몇몇 사진에는 강하율의 부모님 모습도 종종 섞여 있었다.그리운 얼굴들을 마주하는 순간, 비록 구석의 작은 형체일 뿐이었지만 홀린 듯 손을 뻗어 조심스레 그 위를 어루만졌다.다시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의 시선이 가장 특별해 보이는 사진 한 장에 머물렀다.구도가 서툴고 앵글이 낮은 것으로 보아 어린 시절의 기소정이 직접 찍은 듯했다.사진 속에는 다섯 여인이 소파에 둘러앉아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겼다.가장자리에는 기소정의 어머니, 그리고 정중앙에는 경선희와 조윤서가 앉아 있었다.얼핏 평범해 보이는 사진이었지만 핵심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봉투였다.당시 기소정도 아이였기에 사진에 다 담아내지는 못했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야 겨우 몇 글자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강하율이 막 알아보려던 찰나, 안혜슬이 헛기침했다.그녀는 서둘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앨범을 제자리에 놓고 다시 옷을 걸기 시작했다.잠시 후, 기소정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며 기소정의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번졌다.“둘 다 남 시중드는 일에 꽤 소질이 있네요. 특히 강하율 씨 잠재력에 놀랐어요. 강씨 가문에서 귀하게 자란 자식이라면 아무리 망했어도 뭐라도 크게 한자리할 줄 알았더니.”지난 2년 동안 이런 독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기소정이 뱉어내는 가시 돋친 말 따위는 이제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았다.“제 업무니까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죠.”“본인 처지를 잘 안다니 다행이네요. 괜히 분수에 넘치는 꿈은 꾸지 마요. 한때 단맛 좀 봤던 사람일수록 미련 못 버리는 건 알겠는데, 패배자는 결국 패배자일 뿐이거든요. 그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죠.”기소정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드레스 입는 것 좀 도와줘요.”안혜슬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강하율은 얼른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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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강하율은 대답하면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신부 들러리를 유심히 살폈다.여자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웠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고 나서 안혜슬을 이끌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두 사람은 객실팀 직원용 휴게실로 들어갔다.내부는 온갖 비품과 세탁물 더미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둘이 서 있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강하율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수건을 꺼내 안혜슬의 얼굴에 대주었다.“아직도 많이 아파?”“아니, 참을 만해. 곱게 자란 아가씨라 그런지 우리 부모님 매질의 10분의 1도 안 되던걸. 그나저나 조익현 제안은 왜 덥석 받아들인 거야? 뻔한 속셈으로 접근하는 거 알면서.”안혜슬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이 사진 때문에.”강하율은 휴대폰을 켜서 조금 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안혜슬은 그녀의 가족사진을 본 적이 있었기에 단번에 사진 속 경선희를 알아보았다.“이 사람 기소정 엄마 아니야? 어머님이랑 배윤제 어머니까지... 다 아는 사이였어?”“맞아. 그래서 조익현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기씨 가문 아주 수상해. 예전에 우리 호텔 단골이었는데 모르는 척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리고 기소정 옆구리 바늘 자국 말이야, 평범한 흉터 같지 않았어. 오늘 밤 분명 무슨 일이 터질 거야. 그러니까 넌...”강하율이 안혜슬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게 속삭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두 사람은 휴게실을 빠져나갔다....저녁, 펍.주인공인 기소정과 조익현이 무대 위에 서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감동적인 대목에 이르자 안하무인이던 기소정조차 목이 메는지 목소리를 떨었다.겉으로 보기엔 영락없이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었다.그때, 정다인이 배윤제의 팔짱을 끼고 펍으로 들어섰다.두 사람의 등장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며 순식간에 인파가 몰려들었다.정다인은 비록 호텔 직원의 신분이었으나 명색이 배윤제의 여자친구답게, 기소정의 것보다 훨씬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맞춤 보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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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물론 대단한 귀중품은 아니었다.아직 정식 결혼식 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처사였으나, 그가 직접 선물을 챙겼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기씨 가문에 힘을 실어주기엔 충분했다.땅에 떨어졌던 기소정의 체면이 단숨에 치솟았으니,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감출 길 없는 게 당연했다.곁에 있던 조익현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비위를 맞췄다.“선물 감사합니다. 조만간 저희가 식사라도 한번 대접할게요.”“그러죠.”배윤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소정과 조익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방금까지 주목받던 배윤제와 정다인은 순식간에 찬밥 신세가 되었다.어쨌거나 배씨 가문의 실세는 배윤호였으니까.배윤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죠.”정다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리던 기소정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좋아요. 밤은 이제 시작이니까요.”정다인은 순식간에 가장 무안한 처지로 전락했다.구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하율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배윤제가 배윤호와 기 싸움을 벌이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너무 몰입해서 구경했던 탓일까, 수많은 인파를 뚫고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배윤호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흔들리는 조명 아래에 비친 눈빛에는 위험한 광채가 서려 있었다.그는 손에 든 술잔을 가볍게 흔들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상대를 압도할 듯 강렬하고 위압적이었다.강하율이 무슨 반응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찰나, 누군가 그녀의 몸을 툭 치고 지나갔다.“강 팀장, 누굴 그렇게 보고 있어요? 설마 배윤제 씨? 웬만하면 시선 좀 거두시죠. 괜히 이상한 오해 사서 좋은 거 없잖아요.”말을 건넨 사람은 허지연이었다.묘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뉘앙스는 배윤제의 정식 여자친구라도 되는 듯했다.두 번의 우연한 만남이 그녀에게 과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모양이었다.강하율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대꾸했다.“내가 누굴 쳐다보든 허지연 씨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은데? 설령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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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강하율은 술잔을 들고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맞은편의 사람들을 바라봤다.‘꿈 깨라지.’역시나 강하율이 먼저 움직이자 다른 속셈을 품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간 어색해졌다.“하율 씨...”정다인이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차분하고 냉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일리 있네. 오늘 담당자 중 한 명인 정다인도 술을 마셨으니 정다인도 결과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상사인 배윤제가 부하직원이 술을 마시도록 허락했다는 건 술을 마셔도 현장 진행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보증한 셈이고. 기소정 씨도 분명 친구로 생각해서 술을 권했을 테니 당연히 탓하지 않을 테죠.”배윤호는 이름을 하나씩 나열하며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그중 허지연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허지연은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기소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배윤호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상관없어요. 다른 분들도 저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조익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강하율을 힐끗 바라봤다.“맞아요. 친구끼리 술 한잔한 것뿐이죠.”그 말 이후로 다른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윤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또 다른 문제라도 있어? 고객님께서 이렇게 너그러운데 상사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물쭈물하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어?”“형 말이 맞아.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까 나랑 다인이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배윤제가 말했다.“맞아요, 대표님.”정다인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원하는 답을 얻은 강하율은 미소 띤 얼굴로 기소정과 조익현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두 분 오늘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술을 마셨다.강하율이 잔을 내려놓았을 때 정다인의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그러면 저는 먼저 일 보러 가볼게요.”강하율이 자리를 뜨자 정다인은 허지연에게 눈짓을 했고, 허지연은 곧바로 강하율을 따라갔다.강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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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안혜슬이 설명했다.“당신이 자리를 뜨자마자 기소정이 조익현이랑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데 우리가 모를 줄 알았어요? 조익현이 하율이를 함정에 빠뜨리려면 장소가 필요할 테고, 들통나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테죠. 게다가 이 일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되니까 자기 사람을 써야 하죠. 그러니까 당연히 당신 방으로 가겠죠.”강하율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당신도 공범일 줄은 몰랐어요. 지금쯤 조익현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겠죠? 그런데... 아쉽게 됐네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으니 말이에요.”2103호는 여자의 방이었다.허지연이 조금이라도 고객에게 신경을 썼다면 그 방이 누구의 방인지를 알았을 것이다.“음음...”여자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강하율이 경고했다.“풀어줄 수는 있지만 감히 소리를 지른다면... 우리도 거칠게 할 수밖에 없어요.”재벌가 딸인 여자는 겁이 많았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강하율은 여자의 입에 쑤셔 넣었던 수건을 빼냈다.“저도 당신을 해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저도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조익현이 제 나체 사진을 찍어 놨거든요. 사실 저도 당신이랑 똑같아요. 저도 똑같은 방식으로 조익현에게 당했었어요.”“왜 신고하지 않은 거예요?”강하율이 물었다.“어떻게 신고를 해요? 신고하면 가족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어요? 그리고 조익현을 향한 기소정의 마음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기소정은 다른 사람 말은 전혀 믿지 않아요. 게다가 우리 집안은 기소정네 집안이랑 사업적으로 많이 얽혀 있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여자가 말했다.안혜슬이 분통을 터뜨렸다.“남자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요. 조익현이 뭐가 그렇게 잘나서 다들 환장하는 거예요? 게다가 기씨 가문 정도 되는 집안이 왜 조익현 눈치를 보는 거죠?”여자가 말했다.“저도 이유는 몰라요. 어쨌든 두 사람이 헤어질 때마다 항상 먼저 매달리는 건 기소정이었어요. 기소정이 조익현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줄 모르겠어요? 기소정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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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강하율은 다시 바 안으로 몰래 들어가 자기가 쭉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만들 생각이었다.그런데 안혜슬과 헤어지자마자 뒤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와 곧바로 몸을 돌렸더니 하마터면 배윤호와 부딪칠 뻔했다.“대표님, 왜 여기 계세요? 아까는...”“실수로 부딪쳤어.”배윤호가 팔을 문질렀다.그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걸 떠올린 강하율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괜찮으세요? 어디 가시려고요? 제가 그곳까지 부축해 드릴까요?”“그래.”배윤호가 팔을 들어 올리자 강하율은 순간 멈칫했다. 배윤호는 도도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강하율은 배윤호를 부축하며 앞으로 걸어갔는데 무게가 점점 자신 쪽으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배윤호가 그녀에게 완전히 몸을 기댄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먼저 도와주겠다고 한 건 그녀였으니 이를 악문 채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배윤호는 시선을 내려 강하율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강하율은 배윤호의 뒤에서 양승아가 사람 한 명을 어깨에 둘러메고 떠나는 걸 보지 못했다.바는 지하 1층에 있었기 때문에 강하율과 배윤호는 입구 옆의 쉴 수 있는 곳에 앉았다.배윤호는 사람을 시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한 뒤 말했다.“여기 자리 좋네. 한눈에 다 보이니까 말이야.”강하율이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글쎄. 나를 두 번이나 이용해 놓고 지금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배윤호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저... 저는 그냥 저 자신을 지키려고 한 것뿐이에요.”강하율이 솔직하게 말했다.“잘했어.”배윤호가 덤덤히 내뱉은 그 말에 강하율은 살짝 놀랐다.“대표님, 제가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전반적인 상황? 그 사람들이 전반적인 상황이라고 불릴 수준인가?”“아...”강하율은 순간 반박하지 못했다.“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지.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어.”배윤호가 덤덤히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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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강하율은 안혜슬에게 바텐더에게 부탁해 술 사진을 찍어 오라고 했었고 확인 결과 도수가 아주 높은 술이었다.처음부터 조익현이 술을 제공한 것이 미심쩍게 생각되었었는데 강하율과 안혜슬은 예상했던 대로 그중에서 가장 수상한 술 한 병을 찾아냈다.바텐더는 조익현이 그 술은 오직 자신만 쓸 거라고 따로 당부했었다고 했다.그래서 강하율은 안혜슬을 시켜 그 술을 바꿔치기해 두었다.약을 탄 술을 숨겨뒀으니 이제는 아무런 증거가 남지 않은 셈이었다.그러다 갑자기 바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기소정이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욕설을 내뱉으면서 사람 몇 명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온 탓이었다.“그 빌어먹을 년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어! 내가 죽여버릴 거야! 내가... 꺅!”기소정은 몇 걸음 가지 않아 강하율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소리쳤다.“강하율 씨? 여기 있었어요?”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기소정 씨,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저는 바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길래 혹시라도 고객님들 전화를 받지 못할까 봐 여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기소정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계속 여기 있었던 거예요?”“네. 아까 배윤호 대표님을 우연히 만나서 같이 차 한잔 마셨어요. 무슨 일 있나요?”강하율은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기소정은 입을 꾹 다문 채 뒤에 서 있던 여자를 바라봤다.그 여자는 바로 강하율과 거래했던 기소정의 친구였다.여자는 계획대로 조익현과 강하율이 동시에 사라진 걸 기소정에게 알리고는 자기 방 카드키가 사라졌다고 했다.기소정은 조익현에게 굉장히 집착했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밖으로 뛰쳐나왔다.여자는 몸을 움찔 떨었다.“나는 그냥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어. 그리고 내 방 카드키가 사라진 건 사실이야. 조익현 씨가 떠났을 때쯤에 사라졌어.”기소정은 눈알을 굴리더니 배윤호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배윤호 대표님,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그래요.”배윤호는 무덤덤한 얼굴로 대꾸했다.“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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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강하율은 느긋하게 말했다.“허지연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지연 씨를 해쳤다고요? 저는 아까부터 계속 배윤호 대표님이랑 같이 있었어요. 기소정 씨도 그 모습을 봤고요. 설마 대표님이랑 기소정 씨가 거짓말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허지연은 잠시 멍해졌다. 아까 호되게 맞아서 정신이 없는 듯했다.“그럴 리가 없는데... 강하율 씨가 마신 그 술은...”“술이요? 그 술은 기소정 씨가 제게 건네준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강하율이 되물었다.기소정이 자기 약혼자를 위해 다른 여자에게 약을 먹였을 리는 없었다.강하율은 정다인과 조익현이 기소정을 이용할 생각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다.기소정이 자신이 건넨 술을 의심할 리는 없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후 강하율이 변명을 한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허지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허지연은 이제 끝장이라는 걸 깨달았다.그러나 강하율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지연 씨, 무서워하지 말아요. 방금 지연 씨 말대로라면... 조익현 씨가 지연 씨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셈이잖아요. 조익현 씨에게 책임을 묻고 싶나요?”그 말에 허지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즉시 조익현을 가리켰다.“네. 저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거예요. 제대로 해명해 주세요!”조익현은 확실히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기소정도, 허지연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운을 여미면서 여유롭게 말했다.“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나야말로 피해자니까. 게다가 내가 부적절한 짓을 했다는 증거라도 있나요? 난 그냥 방 카드키를 주워서 돌려주러 온 것뿐인데, 당신이 갑자기 나한테 달려들었잖아요. 게다가 난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어요. 따지고 보면 서로 원해서 한 거죠.”그리고 그는 태연하게 물었다.“맞지, 소정아?”그는 뻔뻔하게도 기소정에게 물었다.기소정은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분명 당신이 신분 상승하려고 내 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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