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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チャプター

제281화

윤유나는 얼른 얌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알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하지만 돌아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득의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일이 마침내 현실이 되려 하고 있었다.게다가 이번에는 이해리와 정지안의 불륜 증거까지 확실하게 손에 넣었다.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던 윤유나는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그동안 이해리에게 당한 수모를 떠올리자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어졌다.며칠 전 자선 경매 행사에서 겪었던 굴욕감도 아직 생생했다.그때 이해리는 대놓고 그녀를 깎아내렸다. 윤유나는 아무 재능도 없는 사람이며, 얼마 전 회사에서 잘렸다가 다시 진행자로 복귀한 것도 결국 정도원이 젊고 예쁜 외모를 보고 데려온 것뿐이라고 했다.그 말은 아직도 윤유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대체 왜? 왜 이해리는 원하는 것을 뭐든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걸까!’그녀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해 왔다. 물론 뛰어난 능력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도원의 일을 적지 않게 처리해 주며 회사에 이바지해 왔다.‘그런데 왜 이해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 정지안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수많은 주주 앞에서 나를 회사에서 내쫓을 수 있었단 말이지?’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자 윤유나의 가슴속은 걷잡을 수 없는 불만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망설임 없이 한 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그날 밤, 이해리는 오랜만에 잘 들어가지 않던 SNS를 켰다.화면에는 서로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 추천 목록이 떠 있었다.별 관심 없이 넘기려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한 계정에 멈췄다. 어딘가 낯익은 느낌의 부계정이었다.호기심이 생긴 이해리는 곧바로 해당 계정을 눌러 들어갔다.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이 계정의 주인이 윤유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계정 전체가 은근하게 연애를 자랑하는 게시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윤유나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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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정지안의 말을 들은 이해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곧바로 그 의도를 알아챘다.“역시 잔뼈 굵은 사람은 다르네요.”그러자 정지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지금 나 늙었다는 뜻이야?”이해리는 웃으며 재빨리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그날 밤, 한 고급 바.정도원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환한 얼굴로 외쳤다.“자, 다들 오랜만이다! 오늘은 내가 쏜다!”“어이쿠, 오늘은 통이 큰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즘 회사 주가도 오르고 있다던데?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면서?”“무슨 소리야. 진짜 친구 맞냐? 우리 정도원 곧 이혼하는 것도 몰라?”주변에서 곧바로 웃음 섞인 야유와 아첨이 터져 나왔다.정도원은 그 소리를 들을수록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이번 사건에 대해 변호사도 승소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명히 말했다.게다가 손에 이해리와 정지안의 불륜 증거를 갖고 있었다. 잘만 되면 이해리를 빈손으로 내쫓을 수도 있었다.처음 이해리에게 윤유나와의 관계를 들켰을 때만 해도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해리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재판은 자신이 이길 것이 확실했다.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비위를 맞춰주자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나 진짜 곧 이혼해. 그리고 그 여자를 빈손으로 내쫓을 수 있을 거야.”이미 술기운이 꽤 오른 상태였다.기분이 좋아 바에 오자마자 연거푸 몇 잔을 비웠으니 당연했다.게다가 오늘은 자신이 계산하겠다며 큰소리를 쳤으니 더욱 들떠 있었다. 결국 정도원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려 버렸다.주변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그중 한 사람이 뭔가 떠오른 듯 슬쩍 정도원에게 다가와 물었다.“정말 이해리가 빈손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거야?”“당연하지. 이번엔 그 여자가 나한테 잘못한 게 있으니까. 변호사도 이번 재판은 내가 이길 거라고 했어.”여기까지 말한 이상 정도원도 더 숨길 생각은 없었다.물론 어떻게 이해리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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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이해리는 원래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갈 생각이었는데 서민재가 눈치도 없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그녀는 서민재를 한 번 훑어보다가 곧 깨달았다. 이 남자는 정도원이 아닌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서민재는 그녀의 눈에 비친 짜증을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이 쇼핑몰 제가 잘 알아요. 며칠 전에 여기 한 바퀴 다 돌았거든요. 괜찮으면 같이 다니실래요?”그는 자연스러운 척하며 동행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해리는 억지웃음만 지었다.“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미 같이 온 사람이 있어요.”마침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정지안은 멀리서부터 이해리의 앞에 있는 그 남자를 발견했다.이해리 앞에 웬 남자가 서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공작새가 깃털을 펼치듯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정지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서민재 역시 정지안을 발견했다. 물론 그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지안이 이해리의 시숙인 만큼 단순히 일을 도와주러 나온 줄로만 생각했다.“어? 정지안 씨도 계셨네요? 어젯밤에 동생분이랑 술 한잔했는데 마침 정지안 씨 이야기도 나왔어요.”사실 그 자리에서 정도원은 술김에 온갖 말을 다 쏟아냈다. 정지안은 원래 친아들이 아니라 입양된 아들이고, 지금까지 정씨 가문에서 너무 많은 걸 받았다고 했다.나중에는 취기가 오른 채로 정지안을 욕하기도 했다. 욕심이 끝이 없어서 뭐든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얼버무리기만 했을 뿐이었다.서민재도 그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 정지안을 보니 별생각 없이 말을 이었다.“오늘은 이해리 씨랑 같이 일 보러 오신 건가요?”꽤 예의 바른 말투였다.정지안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시선조차 주지 않고 이해리에게 말했다.“가자. 다 준비해 놨어.”이해리도 고개를 끄덕이고 서민재와 함께 떠나려 했다. 하지만 서민재는 두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어디 가시는데요? 제가 아까 같이 다니자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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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그가 또다시 달라붙으려 하자 이해리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사실 오늘 정지안과 함께 나온 이유는 정말 일이 있어서였다.얼마 전 사무실 위치를 정한 뒤, 이번에는 필요한 집기와 업무용 물품을 직접 고르러 나온 것이었다.초기 단계인 만큼 하나하나 직접 챙겨야 했다.이해리는 그런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다. 문제는 정지안이 워낙 바쁜 사람이란 점이었다.겨우 시간을 맞춰 함께 나온 날인데, 중간에 이런 방해꾼이 끼어들 줄은 몰랐다.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이해리는 결국 서민재를 바라보며 대놓고 말했다.“저희 협력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결정된 일이에요. 현재로서는 새로운 파트너를 받을 계획도 없어요.”사실상 거절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그런데도 서민재는 눈치가 없이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또 웃으며 다가왔다.“에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친구 하나 더 생긴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요? 나중에 진짜 함께 일하게 될 수도 있고요.”정지안도 결국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만하죠? 우리는 일하러 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끼어들 이유는 없어요.”그런데 서민재는 정지안을 힐끗 바라보더니 마치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그는 슬쩍 다가와 정지안에게 속삭였다.“정지안 씨, 정도원의 형이시잖아요. 저는 정도원의 친구고요. 그러면 우리도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형, 제가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러니까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그러더니 능글맞게 눈을 찡긋했다.그의 시선은 다시 이해리 쪽으로 향했다. 노골적인 욕심이 가득 담겨 있는 시선이었다.이해리는 더 보기 싫다는 듯 먼저 걸음을 옮겼다. 정지안도 따라가려 했지만 서민재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았다.“형! 제가 형이라고 부르잖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형은 이해리랑 사이가 좋고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제가 이해리 씨를 좀 좋아해서요. 어떻게 하면 잘될지 조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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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이해리는 자연스럽게 정지안의 손등을 툭 쳤다.“지안 씨도 좀 참아요. 괜히 자극에 넘어가지 말고요. 만약 일부러 지안 씨를 화나게 하려고 접근한 거라면 어떻게 해요? 나중에 또 두 사람 관계가 수상하다느니, 정지안이 이해리 앞에서 영역 표시를 했다느니 같은 소리 나오면 어쩌려고요?”그렇게 되면 정도원 쪽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자료만 늘어날 뿐이었다.물론 현재 그들은 따로 계획이 있었고,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리는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정지안은 인상을 찌푸렸다.“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냥 놔두라고?”오늘 서민재가 이해리를 바라보던 눈빛을 떠올리자 또다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라도 손을 좀 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이해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그건 더 안 돼요. 일단은 그냥 둬요. 지켜보면서 저 사람이 진짜 뭘 노리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예요. 최소한 저랑 정도원 사이가 완전히 정리되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아요.”서민재가 정도원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리에게 접근한 데는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지금은 상대방이 뭘 하려는 지 알 수도 없고 섣불리 대응할 필요도 없었다.말을 마친 이해리는 손을 뻗어 정지안의 볼을 꾹 눌렀다.“그리고 좀 웃어요. 맨날 그렇게 화내고 다닐 필요 없어요. 뭐도 아닌 사람 때문에 신경 쓰면 우리 효율만 늦어질 뿐이에요. 우린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많잖아요.”이해리의 말을 듣고서야 정지안은 간신히 마음을 누르고 일단은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날 아침, 서민재는 더 가관이었다.이른 아침부터 이해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이해리 씨! 지금 어디예요? 저 지금 이해리 씨 아파트 앞에 와 있어요. 그리고 꽃도 엄청 많이 준비했어요!”이해리는 순간 멍해졌다.‘저 사람이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지?’그때 휴대폰 화면에 뉴스 알림이 하나 떴다. 정체불명의 남성이 도심 꽃집 물량 싹쓸이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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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이해리는 고개를 돌리다가 이 남자가 이미 이 일의 원인을 짐작했다는 걸 눈치챘다.“지안 씨는 왜 그렇게 정보가 빠른 거예요?”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현재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흑역사든 똑같았다.정지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알기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멍청한 놈 하나가 그런 유치한 수법으로 네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착각한 거지.”정지안의 말을 들은 이해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싫어요? 혹시 저를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거 아니에요?”이해리의 예상치 못한 직구에 정지안은 순간 얼어붙었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해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방금 이해리가 한 질문을 아예 듣지 못한 사람처럼 말이다.이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아닌가요?”계속되는 추궁에 정지안은 결국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생각해 보면 늘 반대였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먼저 장난을 걸고, 부끄러운 질문을 던지고, 감정을 확인하려 들었던 건 언제나 정지안이었다.좋아하냐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마음을 말해 보라고...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이해리가 공격하는 쪽이었다.정지안은 멍하니 있다가 어색하게 코끝을 만졌다. 그러고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어쩔 줄 몰라 했다.그 광경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해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설마 부끄러운 거예요? 평소에는 저한테 그런 질문 엄청 하더니. 오늘은 제가 똑같이 물어보니까 왜 이러는데요?”이해리가 웃으며 놀릴수록 정지안은 더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공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해리는 문득 이래서 정지안이 그렇게 즐거워했다는 걸 깨달았다.상대를 몰아붙이며 감정을 확인하는 게 이런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해리는 웃는 얼굴로 정지안을 바라보며 또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정지안이 말했다.“저 사람이 널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데 너는 좋아?”그 질문을 들은 이해리는 고개를 저었다.더는 정지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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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이해리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 방에서 나오는 정지안을 발견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해리가 경악하며 물었다.“이거 설마 지안 씨가 준비한 거예요?”정지안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네가 꽃이 아깝다고 했잖아. 갖고 싶었던 줄 알았어.”순간 이해리는 기분이 좋아지며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정지안은 정말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이해리는 곧장 다가가 정지안의 팔을 붙잡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이런 선물은 정말 기쁘지만 다음부터는 하지 말아요. 너무 사치스럽잖아요.”정지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사무실 계약할 때 아낀 비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는 이해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네가 그날 내 아내 역할을 안 해줬으면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계약도 못 했을 거야.”그 말에 이해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날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러웠다.특히 상대가 외국인이었던 만큼 괜히 사람을 속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하지만 정지안은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어차피 우린 언젠가 함께할 사이잖아. 그 사람은 그냥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알게 된 것뿐이고.”정지안의 말에 이해리는 곧바로 흘겨보았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렇게 당당하게 해요?”“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각자 서재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두 사람이 서재로 들어간 뒤 가정부의 딸이 문을 열고 식탁 위를 가득 채운 꽃들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엄마, 저 꽃들 다 정 대표님이 사 오신 거예요?”가정부의 딸 은소월이 다가와 물었다.가정부는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정지안과 이해리가 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생활을 돕기 위해 고용한 사람이었다.그리고 그 도우미에게는 대학생 딸이 하나 있었는데 가끔 집에 들러 어머니를 만나고 가곤 했다.“그래. 어제 주문해서 오늘 새벽에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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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손으로 슥 닦아낸 순간, 붉은 피가 손가락에 묻어 나왔다.이해리는 멍한 얼굴로 손끝을 내려다봤다. 코피였다. 그녀는 한동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반면 정지안은 깜짝 놀랐다.그는 곧장 휴지를 뽑아 코피를 막아 주고 바로 그녀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응급 처치를 마친 뒤, 의사는 이해리에게 최근 상태를 자세히 물었다. 이해리는 자신이 한약을 직접 지어 먹었다는 사실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이해리가 혼자 한약을 이것저것 지어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지 모르겠어요. 한약은 절대 함부로 먹으면 안 돼요. 그런데 직접 처방을 맞춰 먹다니요! 인터넷에서 검색한 처방이 다 믿을 만한 줄 아세요? 다음부터는 꼭 병원에 와서 의사 지시를 따르세요. 아시겠어요?”의사의 꾸중을 들은 이해리는 억울한 표정을 지은 채 슬쩍 정지안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정지안은 의사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최근 계속 어지럽고 잠도 잘 못 잔다고 했던 건요? 본인은 기혈이 허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왜 그런 거죠?”마침 그때, 이해리의 검사 결과도 나왔다.의사는 결과지를 받아 훑어보더니 순간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건 중독 증상이에요. 최근에 뭐 특별히 접촉한 물건이라도 있어요?”자신이 중독됐다는 말을 들은 이해리도 그대로 얼어붙었다.이해리가 기혈이 허한 줄 알았던 증상은 알고 보니 단순한 허약이 아니라 중독 때문이었다.이해리는 곰곰이 최근 일을 떠올려 봤지만 특별히 의심되는 것은 없었다.정지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진료실을 나온 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약 30분 후,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때 정지안은 이해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비서의 보고에 따르면 유일한 독성 원인은 거실에 놓여 있던 꽃들이었다.게다가 원래 정지안이 주문했던 꽃과는 달랐다. 일부 꽃은 이미 색이 바래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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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엄마가 버는 돈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어요. 저도 대학 다니면서 돈 쓸 일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직접 벌어 보려고 했단 말이에요...”그제야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은소월은 일부 꽃을 몰래 팔아 돈을 챙겼다.남은 꽃들은 집에서 직접 키워 더 좋은 상태로 만들어 비싸게 팔 생각이었다.하지만 대부분 시들어 죽어 버렸다.그 사실을 들은 가정부는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했다.“내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어도 너 하나 먹여 살리기엔 충분했는데 왜 이런 짓을 했어?”배상은 당연히 해야 했다.하지만 꽃의 가격이 워낙 비싸 가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은소월 역시 울면서 억울함을 토해냈다.“엄마가 맨날 돈 벌기 힘들다고 했잖아요. 세상 모든 게 쉽지 않다고 말해서 저도 돈 달라는 말을 못 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 애들 생활 수준이 어떤지 알잖아요. 친구들이랑 나가도 돈 쓰는 게 무서웠단 말이에요...”모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한참 후 가정부는 눈물을 닦고 정지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정 대표님, 꼭 갚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해서 전부 갚을게요. 제발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학교에도 알려지지 않게 해주세요.”정지안은 냉랭하게 말했다.“아줌마 딸이 바꾼 꽃 때문에 이해리가 중독 증상을 보인 건 알고 있어요?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몰라요.”그 말을 들은 가정부는 몸을 떨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이해리는 그런 모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과 가족에 관한 추억이 떠올랐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정지안의 팔을 잡아당겼다.“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요?”“그냥 넘어가자고? 너를 중독시킨 일은 어떻게 할 건데?”이해리는 고개를 저었다.“굳이 끝까지 따지고 싶진 않아요. 저 사람들도 사정이 있잖아요.”무엇보다 그 모녀의 모습이 자신의 과거와 겹쳐 보였다.정지안도 이해리의 마음을 눈치챈 듯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배상 문제는 묻지 않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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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두 사람이 장을 봐 온 재료들을 정리하던 가정부는 문득 인상을 찌푸렸다.주방을 정리할 때 가정부가 혼자 중얼거렸다.“왜 이렇게 전부 보양 식자재뿐이지? 설마 정 대표님이...”혼자 중얼거리던 가정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아깝네. 한창 젊은 나이에 벌써 보양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니.’그날 저녁, 새로 온 가정부가 직접 저녁상을 차렸다.정지안은 식탁 위에 처음 보는 국이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이건 무슨 국이죠?”“정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약선당이에요.”가정부는 공손하게 대답했다.그녀는 속으로는 은근한 안타까움을 감추고 있었다.‘젊은 부부가 몸보신을 제대로 해야지. 부부 생활이 원만하지 않으면 괜히 내 일까지 곤란해질 수 있지 않겠어?’정지안은 별다른 말 없이 이해리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이해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간중간 에드워드에게 답장까지 보내느라 정지안이 뭘 먹고 있는지도 신경 쓰지 못했다.국을 한 숟갈 떠먹은 정지안이 말했다.“이거 술 향이 나는데?”정지안은 한 입 맛보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이해리가 바로 반응했다.“그럼 전 안 마실래요. 술 냄새나는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가정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 사실 이건 남자분이 드시는 게 더 좋아요. 사모님은 제가 끓인 삼계탕을 드세요. 여성분들한테는 그게 더 잘 맞아요.”물론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 국에는 고향에서 가져온 보양주가 들어 있었는데 남성에게는 상당한 강장 효과가 있었지다.대신 여성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재료였다.이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히려 정지안의 그릇에 한 국자 더 떠주었다.“그럼 지안 씨가 많이 먹어요. 요즘 일도 엄청 바쁘잖아요.”다정한 두 사람을 보며 아줌마는 입술을 깨문 채 몰래 웃었다.그날 밤, 정지안은 한밤중에 갑작스러운 열감에 잠에서 깼다.몸이 이상할 정도로 뜨거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침대 위에서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결국 새벽녘에 일어나 서재로 가서 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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