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주버님이 남편으로: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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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정도원은 자신과 이해리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날이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윤유나에게는 그저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뿐이었다.정도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애절한 얼굴로 후회 가득한 말을 꺼냈다.“해리야, 네가 아직도 나한테 화나 있는 거 알아.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나를 믿어 줘. 나랑 윤유나는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나는 걔를 사랑한 적 없어. 그냥 미안해서 보상해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게 다야. 내 마음 아직도 모르겠어? 우린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잖아. 내가 너를 아끼는 마음은 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 난 평생 너 하나만 사랑했어.”그는 그렇게 말하며 세 손가락을 들어 맹세하는 시늉까지 했다. 태도는 더없이 진지하고 간절했다.눈 뜨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그 모습이 이해리에게는 우습기만 했다.방금 전까지 윤유나에게 다녀와 놓고, 돌아서자마자 자기 앞에서는 진심을 말하고 있다니.그의 사랑은 정말 한 푼 값어치도 없었다.이해리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천천히 몸을 숙여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네 말, 진짜야?”자기 사과가 먹힌 줄 안 정도원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해리야, 내가 하는 말 다 진심이야. 네가 나를 다시 받아 주면,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할게. 다른 여자들이랑도 선 지킬 거고, 우리 둘이 다시 잘해 보자. 응?”이해리는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시선을 내린 채 그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정도원, 너 아직도 네 몸에 다른 여자 향수 냄새 배어 있는 거 몰라? 네 진심 정말 너무 값싸다.”정도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에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그는 금세 그걸 숨기고 급히 변명했다.“해리야,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내 몸에 밴 냄새는...”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그는 곧장 핑계를 만들어 냈다.“내가 새로 산 차량용 방향제 냄새야.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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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그 말에 정도원의 몸이 굳어졌다. 가슴속에서는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해리야, 그 말 무슨 뜻이야?”눈을 들어 이미 붉어진 그녀의 눈가를 마주한 순간, 그의 심장은 커다란 손에 붙잡힌 것처럼 조여 왔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결혼한 지난 2년 동안, 그는 그저 이해리의 성격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윤유나와 함께 있을 때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다고 여겼다.그런데 지금, 서운함이 가득 밴 그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정도원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차올랐다.“해리야,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네가 당장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 난 다 만회하고 싶어. 난 그냥 너랑 잘 지내고 싶어.”그의 눈에는 안타까운 기색이 어렸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 뺨 위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려 했다.하지만 손끝이 닿기도 전에, 이해리는 얼굴을 돌려 피해 버렸다.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침대에 누웠고, 이불자락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늦었어. 나 쉬어야 해.”손이 허공에 남은 정도원은 입을 열어 뭐라도 더 말하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이미 눈을 감아 버린 걸 보자, 끝내 입가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야 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해리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사랑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 하나뿐이야.”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침실을 나갔다.다음 날.이해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전화 화면을 보니 정지안이었다. 그녀는 급히 몸을 일으켜 앉았고, 잠기운도 단번에 사라졌다.‘지안 씨가 왜 갑자기 전화를 했지?’목을 한번 가다듬은 이해리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지안 씨, 무슨 일이에요?”정지안은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해리 씨, 지분 배당금 건은 재무부에서 이미 정리해 놨어요.”“오늘 언제 시간 괜찮아요? 사람들 데리고 가서 이 일 마무리해 줄게요.”이해리는 휴대폰 화면에 뜬 시간을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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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즈음, 이해리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먼저 침묵을 깼다.“다 확인했어요. 수치에는 문제없어요.”다음 순간, 정지안의 곁에 서 있던 비서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해리 씨, 문제없으시면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이건 뭐예요?”이해리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정지안은 그녀의 의심 어린 시선을 마주한 채, 손끝으로 테이블을 느긋하게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해리 씨 앞으로 계좌를 새로 하나 만들어 뒀어요. 이번 달부터는 해리 씨 배당금이 전부 그 계좌로 들어갈 겁니다. 도원이한테 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냥 처리해 뒀어요.”그 말을 듣고, 이해리는 한참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지안 씨, 고마워요.”정말 착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해리는 집 문제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 뒤부터 그가 계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곁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테이블 위 펜을 집어 들어 서류 아래에 빠르게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인사하고 나가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정지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시간 보니 점심때도 다 돼 가네요. 해리 씨만 괜찮다면 같이 식사라도 할까요?”그의 시선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져, 이해리는 괜히 어색해졌다.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찾지 못한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제가 얻어먹을게요.”30분 뒤, 차는 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반갑게 다가와 미소 지었다.“정 대표님, 룸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직원을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정지안은 메뉴판을 받아 그녀에게 내밀었다.“해리 씨, 여기 음식 괜찮아요. 먹고 싶은 걸로 편하게 골라요.”이해리는 대표 메뉴 몇 개를 대충 고른 뒤, 곁에 서 있는 직원에게 옅게 웃어 보였다.“일단은 이 정도로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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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연말 행사 얘기가 나오자, 이해리의 얼굴빛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묘하게 달라졌다. 눈빛도 분명 조금 가라앉았다.예전에는 정도원이 늘 자신을 파트너로 데리고 회사 연말 행사에 참석했다.하지만 윤유나가 회사에 들어온 뒤부터는, 그는 늘 온갖 핑계를 대며 그녀와 함께 행사에 나섰다.이해리에게 들이민 이유도 언제나 비슷했다. 윤유나가 회사에 기여한 게 많다느니, 협력사와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야 해서 데려간다느니 하는 말뿐이었다.아마 올해 연말 행사도 예전과 다르지 않겠지. 여전히 자신이 설 자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어낸 이해리는 억지로라도 그럭저럭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요. 다른 일정만 없으면, 서경 그룹 주주로서 빠지지는 않을 거예요.”아무리 감추려 해도, 정지안은 그녀 눈 속에 스친 슬픔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줬다.잠시 침묵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이런 행사는 앞으로도 회사에서 자주 열릴 가능성이 커요. 해리 씨도 자기 일이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회사 일에도 시간을 좀 더 써야 해요.”그는 말을 잠깐 멈추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옅은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해리 씨 배당금도 눈앞에서 문제가 생겼잖아요. 그런데 앞으로 다른 일까지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겠어요?”이해리는 그 말에 담긴 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조용히 답했다.“말해 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는 신경 쓸게요.”식당에서 나온 뒤, 정지안은 이해리를 별장 앞까지 데려다줬다.“지안 씨, 오늘 밥 잘 먹었어요. 다음에는 제가 살게요.”그에게 인사를 마친 이해리는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고, 이어 그녀 몸은 단단한 가슴팍으로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이해리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허리를 감싼 손의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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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그때 이해리는 귀국해 커리어를 이어 가려던 참이었다. 지도교수는 일부러 그녀를 붙잡으며, 해외에서 함께 자기 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권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그 무렵 이해리와 정도원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그를 위해, 이해리는 아까운 앞날까지 기꺼이 내려놓고 해외에서 서둘러 돌아와 정씨 가문 사업을 도왔다. 그리고 그 뒤로는 줄곧 집에 머물렀을 뿐, 다시는 밖에 나가 일하지 않았다.한참 동안 이쪽에서 답이 없자, 동기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이해리, 교수님이 이렇게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설마 환영회 참석할 시간도 못 내는 거야?”흩어졌던 생각을 거둔 이해리는 우아하게 소파에 앉으며 마음속 궁금증을 꺼냈다.“환영회에 누가 와?”“해성에 있는 동기들은 다 올 거야.”동기는 있는 그대로 답했다.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졸업하고 나서는 다들 제 갈 길로 흩어졌잖아. 오늘 밤 환영회에 오는 사람도 아마 많지는 않을 거야.”그 말을 듣고, 이해리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그 말은 곧, 윤유나도 오늘 환영회에 온다는 뜻이었다.비록 그 여자가 예전에 중간에 그 학교로 전학 오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지도교수의 제자이기는 했다.그렇다면 오늘 자리는 아무래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그 생각이 들자 이해리는 선뜻 승낙했다.“오늘 밤은 별일 없어. 호텔 위치 보내 줘. 우리 거기서 보자.”“잘됐다! 교수님도 널 보면 분명 엄청 좋아하실 거야!”동기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곧바로 위치를 보내왔다.전화를 끊은 이해리는 위층으로 올라가 일부러 공을 들여 단장했다.오늘 윤유나가 몸이 안 좋다며 휴가를 낸 이유가 대체 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밤 8시.이해리는 제시간에 맞춰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녀는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 입구에 서 있던 직원에게 건네며 차분히 말했다.“제 초대장이에요. 안내 부탁드릴게요.”직원은 초대장을 확인한 뒤 예의 바르게 웃었다.“이해리 씨,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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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윤유나가 사람들의 칭찬에 흠뻑 빠져 있을 때, 이해리가 문을 밀고 들어와 곧장 식탁 쪽으로 가 앉았다.“다들 미안해. 내가 좀 늦었지.”그녀는 이제야 윤유나를 본 것처럼 살짝 놀란 얼굴을 하고 말했다.“윤 팀장, 정말 우연이네요.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요. 회사 직원들한테 들었는데, 오늘 몸이 안 좋다면서요. 지금은 좀 괜찮아요?”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금세 두 사람에게 쏠렸다. 다들 의아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윤유나, 너랑 이해리 아는 사이야?”예전에 윤유나가 그들 학과로 옮겨 왔을 때는, 이해리는 이미 해외로 유학을 떠난 뒤였다.그러니 원래라면 두 사람은 아무 접점도 없어야 했다.그런데 이해리 말투를 들어 보니, 두 사람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이처럼 들렸다.이해리까지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은 몰랐던지, 윤유나의 표정은 순간 굳었다가 어색한 웃음으로 바뀌었다.“응, 이해리 씨랑은 아는 사이야.”그녀는 이해리 쪽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해리 씨. 이제 몸은 괜찮아요. 오늘은 교수님 환영회잖아요. 교수님이 어렵게 귀국하신 건데, 당시 교수님이 아끼던 제자 중 한 명으로서 제가 안 올 수는 없죠.”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교수님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를 은근히 드러내는 기색이 가득했다.순간 현장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풀려 했다.“맞아. 그때 교수님이 제일 아끼던 학생 두 명 꼽으라면 윤유나랑 이해리였지? 다만 윤유나는 나중에 온 편이라, 이해리가 학교에서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잘 모를 수도 있겠다.”“그러고 보니 이해리, 너 졸업하고 나서는 몇 년째 얼굴 보기가 힘들었잖아. 요즘은 뭐 하고 지내?”그가 꺼낸 화제는 금세 사람들의 관심을 이해리 쪽으로 돌려놨다. 다들 기대 섞인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당시 가장 앞날이 밝았던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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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아쉬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교수님이 도착하면서 환영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잔을 들었다.“교수님 귀국하신 거 환영합니다!”“이번에 돌아오시면 국내에 얼마나 계실 예정이세요?”“교수님은 그동안 해외에서 워낙 명성이 높으셨잖아요. 이제는 계속 해외에 남아서 활동하실 줄 알았어요.”교수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탁자 위 술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다들 시간 내서 이렇게 환영회까지 열어 줘서 정말 고맙다. 이번에 귀국한 뒤로는 다시 해외로 나갈 생각이 없어. 앞으로는 계속 국내에 남아서 활동할 예정이야.”그녀는 곁에 서 있는 이해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빛에는 칭찬과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해리, 요즘 내가 맡고 있는 쪽에서 새 프로젝트를 몇 개 진행하고 있어. 학교 다닐 때부터 난 늘 널 높이 봤어. 이번에도 나랑 같이해 볼 생각 있니?”교수님의 재차 제안에, 이해리는 순간 난처해졌다.이건 분명 좀처럼 오지 않는 귀한 기회였다. 잘만 잡으면 앞으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하지만 지금은 정도원과의 결혼 문제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 당장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이해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유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교수님, 말씀하신 그 프로젝트 저도 들어 봤어요.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도 교수님이랑 협업 의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윤유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 난처한 얼굴로 이해리를 바라봤다.“교수님이 너무 오래 해외에 계셔서, 국내 사정은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해리 씨는 오랫동안 밖에서 일한 적이 없잖아요. 그런 프로젝트를 맡기기에는 조금 안 맞지 않을까요?”겉으로는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말 안에는 이해리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뜻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었다.쉽게 말해, 지금의 이해리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그 말이 끝나자, 교수님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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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둘 이해리를 향해 장난스럽게 들이대기 시작했다.“이해리,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꼭 제대로 잡아야지!”“그러게. 우리도 교수님 옆에서 배우고 싶어서 얼마나 애를 쓰는데, 교수님은 우리를 안 받아 주시잖아.”“와, 역시 타고난 천재랑 비교하면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한가 보다.”교수님의 기대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이해리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완곡하게 말했다.“교수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바로 답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그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렇게 좋은 기회 앞에서 그녀가 망설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교수님 위치라면 국내외 수많은 회사가 모시고 싶어 해도, 선뜻 손댈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몇 사람은 이해리를 보고, 다시 교수님을 봤다. 이제 곧 교수님이 화를 내는 장면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무엇보다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은 이해리 말고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그런데 교수님은 이미 이런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화는커녕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이해리, 오랜만에 봤는데도 넌 여전히 자존심이 있구나. 평범한 조건으로는 네 마음을 못 움직인다는 거, 나도 알아. 그러니까 기억해 둬. 네가 나랑 하겠다고만 하면, 무슨 조건이든 다 맞춰 줄게. 내 자리에는 언제든 네 몫이 있어.”이해리는 고개를 들어 감사한 눈빛으로 교수님을 바라보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교수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예상했던 폭풍이 불어닥치지 않자, 사람들도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때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차피 밥도 거의 다 먹었으니까, 우리 이따가 바에 가서 한 잔 더 하면서 놀까?”곧바로 여기저기서 찬성이 쏟아졌다.“좋지. 진짜 오래간만에 바에서 놀자.”“자리 잡으면 나도 껴 줘.”“오늘 바 비용은 내가 다 낼게. 오늘은 끝까지 달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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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비서는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꼭대기 층의 한 룸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차갑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룸 안에서 들려왔고, 비서는 문을 열고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무슨 일이야?”갑자기 대화가 끊긴 정지안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고, 비서를 바라보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비서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곁에 앉아 있는 정도원을 한번 힐끗 보고, 몸을 숙여 정지안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정 대표님, 방금 해리 씨가 몇 사람이랑 이 바에 들어오는 걸 봤습니다. 내려가서 한번 보시겠습니까?”이해리 이야기가 나오자, 정지안의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아래층을 내려다봤다.한참 시선을 훑던 끝에, 그의 눈은 그 가냘픈 뒷모습 위에 멈춰 섰다. 그림자에 잠긴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알겠어. 내려가서 지켜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올라와서 보고해.”“네, 정 대표님.”비서는 룸 안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공손하게 물러났다.의문이 든 정도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형, 무슨 일 있어? 필요하면 내가 사람 보내서 처리하게 할까?”“괜찮아. 계속하자.”정지안은 금세 감정을 정리한 듯,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손에 든 서류를 내려다보며 다시 협력사 사람들과 프로젝트 관련 유의 사항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직원을 따라 자리에 앉자, 술자리 탁자 위에는 금세 온갖 종류의 술이 가득 차올랐다.사람들 시선을 끌기 위해 윤유나가 먼저 술병을 들어 올렸다.“여러분, 오늘 이렇게 어렵게 다 같이 모였잖아요. 이 병은 제가 먼저 비울게요! 다들 해성에 있으니까, 시간 나면 앞으로도 자주 만나요. 오늘 비용은 전부 제가 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젖혀 병 안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그녀가 그렇게 호쾌하게 나오자, 테이블 분위기도 금세 달아올랐다. 사람들도 잇달아 잔을 들어 올렸다.“윤유나가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가 무슨 이유로 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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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몇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마치 엄청 우스운 말을 들은 것처럼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남편? 그래요, 그럼 한번 말해 봐요. 아가씨 남편이 해성에서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데요? 우리 형님들이랑도 좀 인사시켜 줘 보죠.”“아가씨, 우리랑 놀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사람 하나 지어내 겁주는 거 아니에요?”“솔직히 말해 줄게요. 이 바 사장이 우리랑 아주 가까운 사이거든요. 아가씨 남편이 진짜 배경이 빵빵한 사람 아니면, 괜히 들먹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 바 뒤에 누가 있는지쯤은 아가씨도 잘 알겠죠.”말을 마친 두 남자는 천천히 윤유나 쪽으로 다가왔다. 협박을 들었다고 해서 조금도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그러니까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우리 따라가요.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남자 눈에는 욕망이 거의 넘쳐흐를 듯했다. 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뺨을 가볍게 쓸더니, 곧장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그 행동에 윤유나는 온몸이 굳어 버렸고, 급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정도원의 번호를 눌렀다.최상층 룸.윤유나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정도원은 막 협력사 사람들과 마지막 수익 배분 지점을 논의하고 있었다.발신자 표시를 본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협력사 쪽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 말을 건넸다.“죄송합니다. 잠깐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먼저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곁에서 이미 얼굴이 굳어 있는 정지안을 한번 흘끗 본 그는, 마지못해 밖으로 걸어 나갔다.전화를 받자마자, 정도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 지금 프로젝트 얘기 중이야. 무슨 일이든 이따가 말해. 이번 프로젝트는 나한테...”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윤유나의 다급한 구조 요청이 들려왔다.“도원 씨, 살려 주세요! 여기 어떤 남자들이 저를 자꾸 만지려고 해요. 너무 무서워요!”겁에 질린 탓인지, 그녀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정도원의 얼굴에 남아 있던 짜증은 완전히 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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