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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Autor: 낙화
그 말에 정석주와 임혜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석주가 굳어진 얼굴로 구태윤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 그게 무슨 뜻인가?”

구태윤의 시선은 줄곧 정루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희고 고운 볼 위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의 눈동자 깊숙이 어두운 파도가 일었다. 그는 더 단단해진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

“할머니 쉬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태윤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니 돌아가 주세요.”

노골적으로 두 사람을 쫓아내는 말이었다.

박정란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 제쳐두고 부랴부랴 달려왔건만, 이런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정석주는 심각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차갑게 손을 휘젓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임혜숙은 가슴 아프게 정루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아야, 얼굴에 얼음 올려놓고 붓기 가라앉혀. 네 아빠 홧김에 그러신 거야. 나중에 화가 가라앉으면 분명 후회하실 거야.”

정루아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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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6화

    정석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건 왜 물어?”“당장 취소하세요.”정루아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말했다.“그리고 투자한 돈 빼내세요.”정석주는 곧바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무슨 미친 소리야? 언니한테 회사 하나 차려주는 게 뭐 어때서? 네가 피해받는 것도 아니잖아.”“난 허락 못 해요.”정루아는 팔짱을 꼈다.“친딸도 아닌 사람한테 왜 우리 집 돈을 써야 하죠?”그리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전에 회사 하마터면 파산할 뻔했던 일, 잊으셨어요?”싸늘한 말투에는 협박이 서려 있었다.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에 정석주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당시 소란 때문에 그는 며칠 밤을 설쳐야 했고, 이사회에서도 능력을 의심받기 시작했다.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하지만...정석주는 얼굴을 굳힌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구태윤이 다리 놔줬고, 투자도 같이한 거야. 루아야,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넌 늘 시연이한테 상처만 줬잖아. 우린 그냥 작게나마 보상해주고 싶은 거니까 우기지 좀 마.”정루아는 속으로 비웃었다.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구태윤은 형수 걱정뿐이라니.다른 건 보상해 줄 수 없으니까 아예 회사 하나 차려주고, 일감까지 몰아주며 떠받들겠다는 건가?이혼하지 않으려고 벌인 온갖 짓을 생각해 보면 기가 찰 뿐이었다.정루아는 금세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구태윤한테도 투자 철회하라고 할 거예요. 아무튼 두 사람이 회사 차려주는 거 난 반대예요. 정시연이 무슨 자격으로 그걸 받아요?”“정루아!”임혜숙이 듣다못해 나섰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정루아의 앞으로 걸어갔다.“너는 왜 맨날 언니한테 그렇게 앙심을 품고 못살게 구니? 이제 눈앞에 얼씬도 안 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마음을 좀 넓게 가지면 어디가 덧나냐고.”정루아는 비웃음을 흘렸다.“나 원래 속 좁고 뒤끝 장난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 말대로 안 하면 아주 끝장나는 수도 있어요.”“너...!”말문이 막힌 임혜숙은 얼굴이 일그러졌다.“진짜 갈수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5화

    임혜숙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스럽다는 듯 타박했다.“루아 너 엄마한테 태도가 그게 뭐니? 내 어머니가 병원에 누워 계시는데 당연히 돌보러 와야 하지 않겠어?”정루아는 기가 막힌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 뻔뻔함의 극치였다.송문애에게 상처로 남을 모진 소리를 쏟아내고서 어떻게 낯짝 두껍게 다시 눈앞에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정루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냥 돌아가세요. 굳이 엄마까지 있을 필요 없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알아서 잘 모실게요.”하지만 임혜숙은 고개를 저었다.“싫어, 안 가. 우리 어머니는 내가 간호할 거야.”그러더니 송문애를 돌아보며 물었다.“어머니, 저 여기 같이 있어도 되죠?”“그러렴.”송문애는 의외로 거절하지 않았다.정루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외할머니의 결정을 존중하기에 더 말리지 않았다.바로 그때, 정석주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한마디 거들었다.“루아야, 할머니가 이렇게 크게 아프셨으면 우리한테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어른이 돼서 왜 이렇게 생각이 없니.”정루아가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그럼 두 사람은 어떻게 아셨는데요?”정석주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시연이가 알려줬지. 전 회사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감독이 병문안 다녀간 걸 보고 시연이한테 연락한 거야. 그리고 곧장 전해 준 덕분에 우리도 알게 되었지. 시연이 아니었으면 할머니가 입원한 줄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잖아.”정루아는 속에서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임혜숙이 송문애를 돌아보며 말했다.“어머니, 아직 시연 얼굴은 못 보셨죠? 저희가 입양한 딸인데, 성격이 얼마나 착하고 속이 깊은지 몰라요. 얼굴도 예쁘고 반듯한 데다가 어머니 걱정을 아주 많이 해요. 혹시나 어머니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오늘은 같이 안 온 거랍니다.”송문애는 임혜숙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물었다.“이미 내 손녀 루아가 있는데, 왜 굳이 다른 아이를 입양한 거냐?”임혜숙의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4화

    구태윤의 미간이 서서히 펴지며 목소리도 한결 누그러졌다.“하준아, 왜?”“작은아빠, 집에 안 와요?”녀석은 앳된 목소리로 뜸을 들이며 말했다.“작은아빠 보고 싶어요.”하지만 구태윤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오늘 밤은 안 돼. 시간이 늦었는데 너도 일찍 자야지. 할머니랑 엄마 말씀 잘 듣고.”“하지만 작은아빠가 보고 싶은걸요...”구하준이 고집을 부렸다.“작은아빠가 와서 같이 있어 주면 안 돼요?”“안 돼.”구태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거긴 증조할머니랑 할머니, 엄마도 다 계시잖아. 난 지금 작은어머니랑 같이 있어야 해서 안 돼.”구하준이 묵묵부답했다.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장옥경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하준이가 널 엄청 찾는데 어쩌겠어. 집을 며칠째 비웠으니 얼굴 보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지.”구태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엄마, 진짜 하준이가 날 찾아서 그러는 거예요? 손주 보기 귀찮아서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 아니고?”“이 자식이 아주 입만 열면!”장옥경이 욱하며 성을 냈다.“내 친손주인데, 뭐가 귀찮아!”“그럼 왜 애한테 엄마 휴대폰까지 쥐여주면서 전화하게 한 거죠?”구태윤이 코웃음을 쳤다.“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그냥 솔직하게 찾아간다고 하시지 그래요.”“이 망할 자식이!”장옥경이 욕설을 퍼부었다.“제 마누라 하나 단속 못 해서 도망치게 생긴 판국에, 어디서 엄마한테 감 놔라 배 놔라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뚝 끊겼다.구태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내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고개를 든 순간, 실망으로 물든 정루아의 눈동자와 마주쳤다.잠시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난 절대 어디 안 가.”...정루아는 간이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그 곁을 지키던 구태윤은 의자에 앉아 의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훑어내렸다.단지 너무 지친 탓에 정루아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3화

    “응. 아주 성공적으로.”정루아가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도준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덕분에 큰일을 해결했어.”허도준이 피식 웃었다.“할머니 별일 없으시다니 다행이네. 대단한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우리 친구잖아? 친구끼리 이 정도는 당연히 돕고 사는 거지.”정루아가 진심으로 벅차올라 말했다.“너 같은 친구라면 진짜 열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어.”허도준이 어이없다는 듯 맞받아쳤다.“장난해? 땡처리도 아니고.”정루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정말 고마워, 도준아. 이 은혜는 꼭 갚을게.”그녀의 목소리에는 남다른 비장함마저 묻어났다.하지만 허도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정말 별일 아니라니까. 그 빚 갚고 싶으면 내 변호사 수임료나 두 배로 쳐주든가?”“그래.”정루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가장 큰 짐을 덜어낸 데다, 더 이상 구태윤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정루아의 마음은 구름 위를 걷듯 가벼워졌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침대 곁에 앉았다. 입꼬리는 당최 내려올 기미가 안 보였다.한편, 병실 밖.구태윤은 복도 벽에 기댄 채 안에서 새어 나오는 통화 소리를 듣고 있었다.허도준이라니?‘그 자식이 도와줬다고?’허도준한테 그런 능력이? 왜 그는 전혀 몰랐지?구태윤의 눈동자가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분명 자신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전화를 받은 그는 긴 다리로 복도 구석으로 걸어갔다.수화기 너머에서 한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윌리엄 박사의 휴대폰이랑 노트북을 해킹해 봤는데 오늘 아침에 수신한 해외 메일이 하나 포착됐어요. 다만 이미 삭제한 상태였습니다. 발신자 주소까지 흔적도 없이 지워졌고요.”구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러니까 결국 아무것도 못 건졌다는 소리야?”한민혁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네.”“그래?”구태윤의 시커먼 눈동자에 위험한 살기가 어렸다.“사람 붙여서 윌리엄 감시해. 그리고.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2화

    구태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분명 윌리엄 박사와 머리를 맞대고 짜 둔 수술 일정이었다. 그런데 자기 멋대로 계획을 뒤엎었다.그가 낮은 목소리로 추궁했다.“누가 당신을 매수한 거지?”윌리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예리한 직감이었다.그렇다고 발설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결국 딱 잘라 말했다.“지금 당장 수술실 들어가 봐야 합니다. 다른 문의는 수술 끝나고 하시죠.”전화가 뚝 끊겼다.구태윤은 칠흑 같은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바로 한민혁을 호출했다.“대표님, 부르셨습니까?”한민혁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물었다.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요 며칠 누가 윌리엄에게 접근했는지 알아봐.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한민혁이 대답했다.“네!”속으로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즉시 실행에 옮겼다.구태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수술실 앞 복도.정루아는 벤치에서 초조한 눈으로 수술실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구태윤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루아야,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정루아는 척추를 꼿꼿이 세우며 그를 힐긋 쳐다보았다.“무슨 소리야?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내가 윌리엄한테 준 돈이 얼만데. 그 양반이 내 뒤통수를 칠 리가 없거든.”구태윤의 짙은 눈동자에 의심이 서렸다.“말해봐, 누가 너를 도와줬지?”혼란스러운 건 정루아도 매한가지였다.순간, 허도준이 했던 말이 뇌리에 번뜩 스쳐 지나갔다.‘설마 진짜 도준이가? 하지만 어떻게...?’구태윤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수술을 앞당기게 하다니.정루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쌀쌀맞게 내뱉었다.“나도 몰라.”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당연했다.더 이상 구태윤의 협박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었고, 외할머니도 무사히 수술을 마쳤으니 타협할 리 만무했다.게다가, 소송을 취하할 생각 따위 애초에 없었다.구태윤은 입을 다물고 그녀의 곁에 앉아 틈틈이 휴대폰으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1화

    정루아는 창밖의 시커먼 밤하늘을 멍하니 응시했다. 마치 자신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아무리 발버둥 쳐도 기어 올라오지 못하는 기분이었다.“나도 모르겠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질척거릴까? 내가 자길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녕 눈에 안 보이나?”허도준이 코웃음을 쳤다.“그냥 집착일 뿐이야. 한때는 사랑하다가 왜 마음이 떠났는지, 그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있잖아. 늘 네가 떼쓰고 억지 부린다고 혼자 착각하는 꼴이라니,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정루아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봐야 아무 소용 없어. 너까지 이혼 소송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결국 도루묵이 돼버렸네. 정말 미안하다, 도준아.”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내 허도준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직 소송 취하하지 마. 딱 이틀만 기다려줘.”정루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내가 어떻게든 방법 찾아볼게.”잔잔하던 심장박동이 다시금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정루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너... 지금 진심이야?”배성 그룹 1인자, 배진욱조차 쉽사리 구하지 못했던 의사를 허도준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하지만 자세한 설명 따위는 생략했다.“일단은 알아보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금방 연락할게.”“그래.”정루아가 대답했다.이미 벼랑 끝까지 몰릴 대로 몰린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 있겠는가.다른 길 따윈 없었다. 그러니 매달려 보는 수밖에.허도준이 급히 전화를 끊었다.정루아는 한참 동안 창가에 서 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며칠 밤낮을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했다.이제 외할머니가 곧 수술받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렸다.간이침대에 웅크려 누운 그녀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다가와 곁에 앉더니 그녀의 어깨 위에 외투를 덮어주었다.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체향에 역겨움이 밀려왔다.번뜩 눈을 뜨자, 구태윤이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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