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1 - Chapitr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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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심원후는 분명 백초아를 놓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백초아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변명만 반복했다. 모든 건 강이주의 착각이고, 혼자서 만들어낸 망상일 뿐이라는 식이었다.말다툼이 이어질수록 심원후의 말에는 점점 날이 섰고, 끝에 가서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언성을 높이곤 했다.강이주가 그렇게 말한 이상 도하늘도 더는 끼어들 수 없었다.“대표님, 저는 대표님 편입니다.”도하늘은 그렇게 말한 뒤 사무실을 나가 직원들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전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회사는 이내 고요해졌다.강이주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앞의 컴퓨터 화면에는 게임 ‘심쿵 다이어리’의 한 장면이 떠 있었다.화면 속에는 커플룩을 입은 소년과 소녀가 만개한 복숭아나무 아래 나란히 서 있었다.그 앞에는 복숭아꽃이 앉은 작은 그네가 놓여 있었다.그네를 클릭하면 상호작용 장면이 재생된다.흩날리는 복숭아 꽃잎 사이에서 소년이 그네를 밀고, 소녀는 환하게 웃는다.강이주는 마우스를 한 번, 또 한 번 눌렀다.셀 수 없이 반복된 장면이었다. 지루함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한 동작이었다.예전에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강이주의 입가가 저절로 올라갔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백 번도 넘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남아 있는 건 달콤함이 아니라 속 깊이 스며든 씁쓸함뿐이었다.어린 시절 집 마당에도 오래된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수령이 100년은 훌쩍 넘은 나무였고, 그 가지 아래에는 작은 그네가 달려 있었다.그 그네는 어린 시절의 심원후가 강이주를 위해 직접 매단 것이었다.어릴 적 강이주는 그네에 앉아 심원후를 부르며 더 높이 밀어 달라고 졸랐다.심원후는 말없이 그네를 밀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자라났다.언제부턴가 강이주는 그네에 앉을 수 없게 되었고, 심원후 역시 더 이상 그네를 밀지 않았다.이제 강이주 혼자만 간직하는 기억이 되었다.강이주는 작게 웃었다. 자조하는 웃음이었다.‘나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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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심원후의 말에 강이주는 고개를 들어 심원후를 바라봤다.“너부터 말해.”강이주는 알아차렸다. 이전처럼 자신을 볼 때마다 묻어나던 심원후의 짜증과 거부감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이 사람은 감정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워.’‘그래서... 나한테 뭘 말하고 싶은 거지?’강이주는 궁금했다.하지만 오히려 심원후가 입을 다물었다.그는 한동안 강이주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아직 밥 먹기 전이지? ‘일품채’에 자리 예약해놨어. 먹으면서 얘기하자.”의견을 묻는 말이었지만, 심원후는 예전과 다르지 않게 이미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강이주는 그대로 앉아 심원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늘 그래왔던 행동이었다.그리고 잠시 후, 강이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주야.”문 앞까지 간 심원후는 강이주가 따라오지 않는 걸 알아차리고 걸음을 멈췄다.뒤돌아서서 강이주를 바라봤다.마침 그때 강이주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심원후는 그제야 마음속으로 숨을 고르는 듯했다.심원후는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강이주는 자신에게 화났을 뿐이라고.조금만 먼저 다가가면, 예전처럼 다시 자신 쪽으로 올 거라고.그 생각 때문인지 심원후의 표정에는 묘한 여유가 스며 있었다.하지만 강이주의 마음은 예전과 달랐다.강이주는 단지 궁금했다.심원후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두 사람은 함께 ‘일품채’로 향했다.그리고 입구에서 백초아와 마주쳤다.백초아는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심원후의 옆에 섰다.“왜 이렇게 늦게 와?”백초아는 익숙한 동작으로 심원후에게 팔짱을 꼈다.그 모습을 본 심원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심원후는 반사적으로 강이주를 바라봤다.“아니, 여기서 초아를 만날 줄 몰랐네.”그렇게 말한 뒤 심원후는 백초아에게 물었다.“여긴 웬일이야?”심원후의 말에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었다.오늘 이 자리에 백초아가 올 거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심원후는 오늘, 강이주와 단둘이 식사하면서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정리해 볼 생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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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백초아에게는 조금 전의 위축된 기색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강이주는 그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심원후는 눈뜬장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처음부터 백초아가 강이주를 향해 먼저 날을 세웠다.백초아가 어떻게 심원후가 이곳에 룸을 예약했다는 걸 알았는지, 답은 뻔했다.예약 정보가 그대로 백초아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백초아는 두 사람보다 먼저 ‘일품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한 편의 연극 같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이 어설픈 도발과 연출은 백초아가 다시 나타난 이후로 주기적으로 반복됐다.연기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았지만, 강이주는 이미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졌다.강이주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감정을 정리한 뒤에야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갔다.룸 안에서는 백초아가 얌전히 심원후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그 옆에서 심원후는 그릇과 젓가락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데우고 있었다.강이주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강이주는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았다.젓가락을 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경험상 이 자리는 식사가 제대로 끝난 적이 거의 없었다.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붉은 빛의 요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강이주의 속이 서서히 불편해졌다.강이주는 심한 만성 위염 증상으로 고생 중이었다.매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했다.그런데 심원후가 주문한 음식은 전부 매운 요리였다.게다가 하나같이 백초아가 좋아하는 메뉴였다.음식이 나오기 시작한 뒤로 심원후는 계속해서 백초아의 그릇을 채워주고 있었다.지금은 백초아를 위해 새우껍질을 하나하나 까고 있었다.강이주는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흰쌀밥만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때, 껍질이 다 벗겨진 새우 한 마리가 강이주의 그릇에 올라왔다.강이주가 고개를 들자, 심원후는 다시 새우 하나를 까서 건넸다.“밥만 먹고 반찬은 왜 안 먹어?”말투에는 드물게 강이주를 향한 관심이 섞여 있었다.백초아는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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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강이주는 심원후의 말을 끊고 바로 입을 열었다.“할 말 있으면 지금 해.”강이주는 이 자리에서 심원후와 무슨 평화로운 식사라도 하는 척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심원후는 원래 강이주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지만, 강이주의 짜증 섞인 태도를 보자 그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심원후는 지금의 강이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미 한 번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도 강이주는 전혀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도대체 여기서 더 뭘 바라는 거야?’속으로 불만을 눌러 담은 채, 심원후는 결국 말을 꺼냈다.“미스틱레벨 기획팀 팀장 자리... 계속 비어 있었잖아. 이번에 초아를 거기로 보내려고.”강이주는 눈앞의 심원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백초아 씨를 보내겠다고?”“심원후, 전에 분명히 말했잖아. ‘심쿵 다이어리’ 내부 테스트 끝나고 내부 인력 중에서 뽑기로 했다고.”“지금 와서 그 약속을 뒤집겠다는 거야?”이 이야기는 심원후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일이었다.강이주가 지금 꺼내지 않았다면, 심원후는 끝까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심원후의 관심은 늘 심명그룹에 있었다. 미스틱레벨에 투자한 것도 애초에 강이주 때문이었다.미스틱레벨이 돈을 벌든 말든, 심원후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손해가 나더라도 그저 개인 자금 일부를 날린 정도로 여겼다.심원후는 어색하게 콧등을 문지르며 헛기침했다.“초아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어. 이력에 쓸 만한 프로젝트 하나는 필요하잖아.”“미스틱레벨에 내 투자 지분도 상당한데, 사람 하나 넣는 게 그렇게 문제야?”말끝으로 갈수록 심원후의 태도는 당당했다. 자신도 미스틱레벨의 주주라는 점이 그 근거였다.그 모습을 보며 강이주는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그래서 웃음처럼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그래서 말인데... ‘심쿵 다이어리’ 내부 테스트까지 며칠 안 남은 시점에, 심명그룹이 투자 철회한 것도... 백초아 씨를 미스틱레벨에 들이기 위한 수순이었나?”솔직히 강이주는 실망하면서도 아주 작은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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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심원후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백초아를 위해 강이주를 정면으로 압박했다.‘정말 대단하네, 심원후.’강이주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강이주가 이 요구를 거절하면, ‘심쿵 다이어리’는 출시되지 못하고 미스틱레벨 직원들이 밤낮없이 쏟아부은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하지만 백초아의 낙하산을 받아들이는 순간, 강이주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진 채 짓밟히게 된다.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서도 ‘심쿵 다이어리’에는 백초아의 이름이 올라간다.그건 강이주에게 향한 공개적인 모욕이었다.‘백초아를 위해서라면, 이 사람은 여기까지 오는구나.’강이주는 두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었다.속에서는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 감정을 터뜨릴 수는 없었다.숨이 막힌 듯 가슴 한가운데가 답답했다.메스꺼움이 올라왔다.지금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정면으로 거절하거나 아니면 미스틱레벨 전 직원의 노력을 통째로 버리거나.어느 쪽도 강이주에게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심원후의 시선은 줄곧 강이주에게 머물러 있었다.강이주가 참고 있다는 걸, 심원후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잠시, 아주 잠깐이었지만, 심원후 역시 이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그때 백초아가 조용히 심원후의 손을 잡았다.백초아의 눈에는 고마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 눈빛 하나로 심원후는 마음속에서 올라오던 망설임을 눌러버렸다.심원후는 생각했다.‘이주는 분명히 상처받았겠지. 나중에 다른 걸로 보상하면 돼.’‘이주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비서에게 말해서 강중그룹과의 협력도 다시 유지하면 되고.’‘그 정도면 충분한 보상이지. 이제 선택은 이주의 몫이야.’심원후와 강이주의 시선이 맞닿았다.심원후는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태도였다.강이주는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강이주는 결정을 내렸다.강이주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을 들어 심원후를 향해 살짝 들어 올렸다.“알겠어. 네 조건, 받아들일게.”‘사랑받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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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밖으로 나온 강이주는 곧바로 자기 명의의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밤 10시가 가까워질 무렵, 심원후에게서 전화가 연달아 걸려왔다.강이주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 채 소파 옆에 던져두고, 울리다 끊어지는 걸 그대로 두었다.‘심원후 성격에는 몇 번 이러다 말겠지.’역시나 세 번째 전화가 끊긴 뒤, 더 이상 걸려 오지 않았다.잠시 후,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장 여사였다.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강이주는 결국 전화받았다.“네, 엄마.”전화기 너머로 장숙연 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야? 원후가 전화했다던데, 왜 안 받아?]이어서 장 여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이주야, 원후가 먼저 한발 물러섰잖아. 너도 좀 어른스럽게 굴어라. 기회 한 번은 주면 안 되겠니?]말끝마다 피로가 묻어 있었다.장 여사는 강이주와 심원후 사이의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점점 알 수 없었다.딸의 성격을 모를 리 없었다.상대가 강하게 나올수록 강이주도 더 완강해진다는 것도.강이주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엄마,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이 말에 장 여사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이미 그 분노를 감당할 각오도 되어 있었다.하지만 예상했던 고함은 들리지 않았다.장 여사는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더는 뭐라 안 하마. 그래도 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정말로 원후랑 끝낼 생각이면, 원후한테는 제대로 말해야지. 원후 부모님 쪽도 그렇고, 결국은 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할 일이야.]이건 단순히 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몇 년간 얽힌 이해관계도 있었고, 강이주가 끝내겠다고 해서 바로 끝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장 여사는 강이주 역시 그걸 안다고 생각했다.어머니의 한발 물러선 태도에, 강이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엄마가... 물러선 건가?’잠시 생각한 뒤, 강이주는 답했다.“알겠어요. 심원후랑은 제가 직접 이야기할게요.”그 말에 장 여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몇 마디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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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바로 얼마 전, 백초아가 강이주에게 노골적으로 강이주를 도발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심원후는 강이주와 함께 살던 집의 바로 위층에 백초아를 위해 구조가 완전히 같은 아파트를 하나 더 마련했다.그뿐만 아니라 기존에 살고 있던 이웃을 내보내기 위해 시세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을 제시해 집을 사들였다.강이주는 아무 표정 없이 핸드폰 화면을 닫았다.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이 정도까지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도 강이주가 계속해서 거리를 두자, 심원후 역시 더는 참기 힘든 듯했다.심원후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기색이 묻어났다.[내가 갈게.]“필요 없어.”강이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 말했다.거절을 들었음에도 심원후는 물러서지 않았다.[기다려.]말을 마치자마자 심원후는 더 이상 강이주에게 거절할 틈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강이주는 끊어진 통화 화면을 바라보다가 방금 심원후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강이주는 이제 심원후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여기까지 온 마당에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았겠나?게다가 강이주 명의의 집은 한두 채가 아니었다.심원후가 단번에 이곳을 찾아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강이주는 심원후를 너무 얕봤다.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심원후는 강이주의 집 앞에 도착했다.서둘러 달려온 기색이 역력한 남자는 손에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의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강이주의 마음은 의외로 고요했다.강이주는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심원후는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렀고, 끝내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고급 주거 단지라 해도 이 시간대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었다.결국 강이주는 문을 열었다.문밖에 서 있는 심원후를 바라보는 강이주의 표정은 차분했다.“무슨 일인데?”심원후는 대답 대신 꽃다발을 강이주 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아직 화났어? 내가 사과할게.”“혼인신고 얘기, 내가 잘못했어. 네가 좋아하는 장미도 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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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심원후는 지금 이 순간 강이주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며칠 전과 달리 강이주가 이전처럼 냉담하게 굴지 않자 심원후는 강이주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나랑 다시 우리 집으로 갈까?”솔직히 심원후는 강이주가 혼자 이곳에 머무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강이주가 자기 손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심원후의 말을 들은 강이주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오늘은 너무 늦었어. 내일 이야기해.”그 말은 곧 심원후를 따라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괜히 갔다가 또 백초아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하지.’심원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무언가 더 말하려 했다.그때, 심원후의 핸드폰이 울렸다.백초아를 위해 설정한 전용 벨 소리가 묘하게 공간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심원후는 강이주 앞에서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심원후의 행동은 강이주에게도 예상 밖이었다.심원후가 백초아의 전화를 거절하다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강이주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백초아는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잠깐 사이에 백초아의 전화는 계속해서 걸려왔다.한 번, 두 번, 몇 번이나 울렸지만 심원후는 모두 거절했다.강이주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끊임없이 반복되는 전화에 심원후의 속은 점점 불편해졌다.힘들게 강이주를 달래 놓았는데, 백초아 전화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무너질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마침내 전화가 멈췄다.심원후는 속으로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심원후의 핸드폰 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떴다.피로 가득한 사진이었다.백초아가 보낸, 자기 손목을 그은 사진이었다.상처는 깊어 보였고, 손목은 피로 붉게 젖어 있었다.심원후는 눈에 띄게 굳어졌다. 강이주에게 한마디 말할 틈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급하게 사라지는 심원후의 뒷모습을 보며 강이주는 붙잡지 않았다.‘봐, 결국 이렇게 되잖아.’‘저렇게 될 걸 알면서도 어떻게 나한테 백초아랑 완전히 정리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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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강이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구기빈이 다시 물었다.[웨딩드레스 디자인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나요?]그 말을 듣고 강이주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구기빈 씨는 제가 갑자기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세요?”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구기빈의 무거운 숨소리가 들려왔다.둘이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강이주는 구기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강이주는 입가에 걸린 웃음을 거두었다. 조금 전에 한 말이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우리 아직 이런 농담을 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저는...”강이주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말을 꺼냈다.하지만 강이주가 말을 잇기도 전에, 구기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이주 씨는 그러실 건가요? 남은 시간이 며칠 있는데, 그 안에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있나요?]구기빈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강이주는 그 안에 눌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강이주는 가볍게 헛기침했다.“보내주신 웨딩드레스들... 전부 구기빈 씨가 직접 고르신 거예요?”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구기빈은 부정하지 않았다.[네. 이주 씨는 이런 제 마음을 받아줄 수 있어요?]그 말에 강이주의 가슴 한쪽이 묘하게 흔들렸다.강이주의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구기빈은 재촉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잠시 후, 강이주는 솔직하게 말했다.“마음에 들어요. 다만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조금 헷갈려요.”그 말은 사실이었다. 보다 보니 오히려 고르기 어려웠다.구기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제가 안나에게 직접 연락해서 이주 씨만을 위한 디자인을 하나 맡겨 볼까요.]안나는 유명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였다.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했고, 작업을 의뢰받는 기준도 일정하지 않았다.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작업을 맡아 주는 것도 아니었고, 기분이 좋으면 오히려 아무 대가 없이 작업해 주기도 했다.구기빈이 안나 이야기를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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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다음 날 아침, 강이주는 웨딩 업체로부터 전화받았다.며칠 전 주문해 두었던 맞춤 웨딩드레스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이었다.처음 주문할 당시 강이주가 남겨 둔 배송지는 심원후와 함께 살던 아파트 주소였다.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웨딩 업체 직원이 그쪽으로 직접 배송했다는 설명이었다.그제야 강이주는 물건이 웨딩드레스라는 사실을 떠올렸다.강이주는 곧바로 차를 몰아 아파트로 향했다.현관문을 여는 순간, 강이주는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하룻밤 사이였을 뿐인데, 분명 비워둔 집 안에 눈에 띄게 물건들이 늘어나 있었다.하나같이 심원후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었다.심원후가 아니라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백초아였다.그 생각이 들자 강이주의 속에서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이 집은 빨리 정리해야겠네.’강이주는 부동산 공인중개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매각을 서두르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분명히 전했다.그 사이, 강이주는 계단을 내려오는 심원후의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심원후는 피곤해 보였다. 눈빛도 어딘가 어색했다.“웬일이야?”심원후의 말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심원후는 무의식중에 시선을 위층으로 한 번 흘리고는, 강이주 쪽으로 다가왔다.강이주는 앞에 선 심원후를 올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웨딩 업체에서 전화 왔어. 드레스 배송됐다고 해서, 확인하러 왔어.”강이주가 웨딩드레스를 언급하자, 심원후의 표정이 굳었다.심원후는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아, 그거. 네가 없어서 다시 가져가라고 했어.”“마침 내가 지금 너 데리러 가서 같이 업체로 가려고 했거든. 근데 네가 먼저 와 버렸네.”말을 하며 심원후는 자연스럽게 강이주의 손을 잡으려 했다.“지금 같이 가자.”말끝에는 숨길 수 없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강이주는 아무렇지 않게 한 걸음 물러섰다.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그래?”강이주의 눈에는 심원후의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만약 정말로 다시 업체로 돌려보냈다면, 아까 직원이 전화했을 때 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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