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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1화

구기빈이 강이주에게 말했다. “괜찮아. 혼자 좀 진정하게 두자.”말을 마친 뒤 구기빈은 강이주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손을 잡았다. “언제든 결국은 받아들여야 하니까.”쉰 목소리에는 옅은 울음이 섞여 있었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슬프지 않을 리 없었다.하지만 여기까지 일이 닥친 이상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빨리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유만정의 장례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오늘 구호민이 유만정의 응급 처치를 빌미로 자신을 협박한 걸 생각하면, 구기빈은 구호민이 사람답게 행동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장례식에 와서 유만정을 한 번 바라보기만 해도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하지만... 구기빈은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오히려 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자신을 공포에 떨게 만든 구호민의 얼굴을 마지막 길에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다.괜히 구호민 때문에 마지막 가는 길마저 더럽혀질까 싶었다.구기빈이 그렇게 말하니 강이주도 더 권하지 못했다.그저 조용히 곁을 지켰다.그러면서도 시선은 자꾸 영안실 쪽으로 향했다.안에서는 구희라의 울음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했다.그 소리가 한 번씩 강이주의 귓가에 닿았다.강이주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그렇다고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결국 구기빈이 직접 들어가 구희라를 거의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그제야 구희라는 뒤늦게 뭔가를 알아차린 듯 부은 눈으로 구기빈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오빠, 다리가...”‘안 다친 거였어?’척추 손상이 심해서 평생 다시는 설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지금 구기빈은 아무렇지 않게 두 발로 서 있었다.구희라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조차 몰랐다.절반은 슬픔이었고, 절반은 충격이었다.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울어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구기빈이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 다리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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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구기빈이 자신을 바라보자 강이주는 고개를 저었다.구희라에게 변명하지 말라는 뜻을 눈빛으로 전했다.구희라는 지금 너무 힘든 상태였다. 감정을 조금 쏟아 내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게다가 이 일만큼은 강이주도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구희라가 구기빈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함께 숨겼다.그 점은 분명 강이주의 잘못이었다.구희라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강이주의 눈빛만으로도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구기빈은 결국 하려던 말을 억지로 삼켰다.두 사람의 눈빛 교환을 지켜보던 구희라는 구기빈이 강이주의 눈짓 하나에 바로 입을 다무는 모습까지 보자 시선을 거뒀다.더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나려 했다.“어디 가?” 구기빈이 낮게 물었다.묵직한 목소리에 구희라의 발이 멈췄다.구희라는 몸 옆에서 두 주먹을 꽉 쥔 채 등을 돌린 상태로 답했다. “나 피곤해. 집에 가서 쉬고 싶어.”거짓말은 아니었다.유만정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감정이 크게 요동쳤고 긴장도 극에 달해 있었다.거기에 유만정의 죽음이 마지막 버팀목마저 무너뜨렸다.긴 이동과 극심한 감정 소모까지 겹쳐 구희라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없었다.그 말을 듣고서야 구기빈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구희라의 몸이 휘청했다. 눈을 감은 채 그대로 힘이 풀리며 쓰러졌다.구기빈이 재빨리 앞으로 나가 구희라를 받아 안았다. 그대로 안아 들고 응급진료실 쪽으로 뛰었다.구희라가 쓰러진 탓에 구기빈은 당장 강이주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됐다.복도에는 강이주와 간승제만 남아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간승제는 강이주의 난처한 눈과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간승제가 강이주에게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휠체어를 밀어 이곳을 벗어나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었다.강이주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 주실 수 있나요? 부탁드릴게요.”영안실에서 응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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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구희라는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 듯했다. 영안실에서 사고로 처참하게 변해서 누워있는 유만정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유만정의 모습을 직접 본 뒤에야 구희라의 감정은 완전히 무너졌다.구희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강이주가 깨어난 걸 확인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깼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구희라가 의식을 잃은 뒤 강이주는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눈을 뜬 모습을 보자 그제야 조금 안도했다.구희라는 오래 울어 눈이 붓고 따가워 몹시 불편했다.강이주의 걱정 어린 말을 들은 구희라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 눈빛을 알아챈 강이주는 구희라가 더 걱정되어 물었다. “희라야, 어디 아픈 거야?”혹시 몸에 다른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 얼굴의 걱정이 짙어졌다.구희라는 무심하게 시선을 거뒀다. “아니.”대답은 차갑고 성의가 없었다.강이주도 그걸 느꼈다.강이주는 설명하려 했다. “기빈 씨 일이 있었는데 바로 말해 주지 않아서 네가 계속 걱정하게 만든 건 내 잘못이야. 미안해.”“처음에는 나도 바로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 뒤에 일이 너무 많이 겹쳤고, 설명할 틈도 없이 네가 J시를 떠났어.”당시에는 정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닥쳐 강이주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사실 지금도 강이주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구기빈이 보인 여러 행동을 바탕으로 대강 짐작할 뿐이었다.몇 번 떠보기도 했지만 구기빈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결국 강이주도 더 캐묻지 않았다.구희라는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 비꼬는 눈으로 강이주를 바라봤다.“말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잖아. 몇 번이나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넌 하지 않았어.”구희라가 가장 서운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자신과 강이주의 관계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설명해 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친구라고 생각했던 강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구희라에게 숨겼다.구희라는 그동안 안에 쌓아 둔 감정을 전부 쏟아 내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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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구희라의 말에 강이주는 시선을 집중했다.구희라는 강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어 하나하나를 눌러 물었다. “너 정말 지분을 우리 작은오빠한테 팔기로 한 거야?”돌아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처음에는 강이주가 정말 구희도에게 지분을 넘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강이주는 놀란 얼굴로 설명하려 했다. “그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 내가 설명할...”“그럼 진짜라는 거네.” 구희라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강이주를 보는 눈에는 예전 같은 친근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표정도 서서히 싸늘해졌다.강이주는 그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대답했다. “응.”구희라는 침대에서 벌떡 내려와 강이주를 내려다보며 노려봤다.“네가 작은오빠한테 지분을 팔겠다고 해서 엄마가 미친 듯이 막으러 간 거잖아.”“그래서 사고가 난 거고. 강이주, 우리 엄마가 죽은 건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라고!”감정이 급격히 격해졌다.구희라의 비난을 들은 강이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오랜 친구인 구희라가 유만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릴 줄은 몰랐다.어머니를 잃은 고통은 이해했다.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강이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어. 희라야, 네 어머니 사고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였어. 그 책임을 나한테 돌리면 안 돼.”최대한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했다.하지만 어머니를 잃은 슬픔 속에 빠진 구희라에게 그런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구희라에게는 쌓여 넘치는 고통을 터뜨릴 대상이 필요했다.마침 병상 곁에 있던 강이주가 가장 먼저 그 분노를 받아 냈다.구희라는 강이주의 말을 변명으로만 받아들였다. “내가 지분 달라고 했을 때는 안 된다고 했지. 강이주, 난 너 믿었어.”“그런데 널 믿은 대가로 나는 엄마를 잃었어. 네가 우리 엄마 죽게 했잖아. 정말 좋은 친구다.”‘친구’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구희라의 눈가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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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구희라가 듣든 말든 강이주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구희라가 비웃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 자기 입으로 죽였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그 한마디에 강이주는 더 말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아무리 입이 닳도록 설명해도 구희라는 믿지 않을 것이다.강이주는 답답한 마음으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지금 너는 충분히 진정된 상태가 아니야. 다른 이야기는 네가 좀 가라앉고 나서 하자.”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태에서는 대화를 여기서 끝내는 편이 나았다.더 충돌했다가는 오랫동안 이어 온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을지도 모른다.강이주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구희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구희라는 차갑게 비웃었다. “나 아주 멀쩡해. 내 감정을 핑계 대지 마. 강이주, 오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너를 도와주는 게 아니었어.”“강중그룹 하나쯤 희생해도 된다면서 우리 오빠를 도와 달라고 했지. 그런데 결과가 뭐야?”구기빈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구희라의 말이 잠깐 끊겼고 눈에는 불만이 스쳤다.구희라는 차갑게 웃었다. “오빠는 멀쩡했는데 너희 둘은 태연하게 연기하면서 나만 속였잖아. 내가 걱정하고 안달하는 꼴 보면서 속으로 얼마나 우습고 재밌었을까?”자신이 광대처럼 둘 앞에서 동분서주했다는 생각이 들자 구희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후회와 분노가 눈에 가득했다.강이주와 구기빈의 말을 믿어버린 자신이 너무 어리석고 순진했다.구희라는 자신이 한심해 자조적으로 웃었다.그 말들은 강이주에게도 아프게 꽂혔다.어쩌다 자신과 구희라가 이렇게까지 멀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구희라가 자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사실도 예상하지 못했다.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강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세게 조르는 듯 숨이 막혔다.설명하려던 말은 구희라의 원망 어린 눈빛 앞에서 힘을 잃었다.그 침묵마저 구희라에게는 인정으로 보였다.구희라는 더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 “강이주, 이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 옛정은 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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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구기빈과 간승제가 돌아왔을 때 강이주는 여전히 병실 문밖을 지키고 있었다.구기빈은 빠르게 다가와 강이주 앞에 몸을 낮췄다. “왜 밖에 나와 있어?”강이주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걱정스러운 눈과 마주쳤지만 강이주는 고개만 저었다.병실 안의 구희라도 밖의 기척을 들었다.문을 거칠게 열고 구기빈을 차갑게 바라봤다. “내가 쫓아냈어.”조금도 돌려 말하지 않았다.구기빈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가 구희라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멈췄다.나무라려던 말이 목구멍에서 그대로 막혔다.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감정이 거친 거라고 생각했다.구희라가 유만정의 죽음까지 강이주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구기빈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구희라는 구기빈의 질책 어린 눈빛을 보고 더 차갑게 말했다. “오빠가 데리고 돌아가 줘. 나랑 강이주는 이제 남이야. 앞으로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살 거야.”구기빈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동생을 바라봤다.“구희라, 너 갑자기 왜 이래?”그제야 구희라가 강이주를 원망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어째서 저렇게 친구를 미워하며 오랜 우정까지 끝내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구희라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멀쩡해.” 오래 울고 또 흥분한 탓에 목소리가 거칠게 잠겨 있었다.구희라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강이주를 노려보며 말했다.“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다 들었어. 강이주가 지분을 작은오빠한테 팔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안 죽었어.”분노를 억누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저절로 높아졌다.지금 이 정도 이성을 남겨 강이주를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구희라는 지금 강이주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강이주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 사람의 결정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게다가 자신이 강이주를 돕기 시작한 날부터 그 일에 손을 보탠 공범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꼈다.구희라는 자신도 미웠고 강이주는 더 미웠다.구기빈이 얼굴을 굳히며 동생을 꾸짖었다. “지분은 내가 이주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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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다만 그 사실을 아직 강이주에게 말할 겨를이 없었을 뿐이었다.“그만해.” 구기빈은 몰아붙이는 구희라를 날카롭게 바라봤다.경고가 담긴 불쾌한 눈빛이었다.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하겠으면 차라리 하지 마. 희라야, 다시 말하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건 이주와 아무 상관 없어.”“네가 엄마를 잃은지 얼마 안 돼서 힘든 건 이해해. 그래도 이 일까지 이주 탓으로 돌리면 안 돼. 앞으로 이주에 대해서 험담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내 앞에서 하지 마. 또 그러면...”그 뒤를 구기빈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싸늘하게 식은 눈만으로도 구희라는 충분히 경고를 느꼈다.그 차가움에 구희라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구기빈은 동생의 반응을 봤지만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구기빈이 얼굴을 굳힌 채 말을 하지 않으면 주변 공기까지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다.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느끼는 사람은 강이주였다.입술을 다문 채 침묵하는 구기빈은 때때로 지나치게 엄격해 보였다.조금 무서울 정도였다.강이주는 손을 뻗어 구기빈의 큰 손을 감쌌다.손끝으로 그의 손바닥을 살살 간질였다.구기빈이 자신을 보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구기빈은 강이주의 뜻을 알아차렸다. 작은 손짓으로 달래 주자 그제야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구희라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잠시 두 사람을 보던 구희라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오빠가 강이주 편을 들든 말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그건 오빠 마음이니까.”“나도 누가 엄마를 죽게 했다고 생각할지는 내 자유야. 오빠가 막을 권리는 없어.”뜻은 분명했다.구기빈이 강이주를 감싸는 태도만으로도 구희라는 충분히 답을 얻었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도 구기빈은 망설임 없이 강이주 편을 택했다.그 사실이 우스웠다.구희라는 실제로 비웃음을 흘렸다.웃음에는 짙은 조롱이 묻어났다. “오빠가 강이주를 선택하겠다면 우리 사이에는 더 할 말 없어.”“스스로 자리까지 내놓고도 강이주를 그렇게 믿는다니. 하...”구희라가 차갑게 웃었다. “오빠,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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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구기빈은 강이주의 기분이 가라앉았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조금 전 구희라와 강이주 사이의 날 선 분위기를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구기빈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희라가 무슨 말을 했든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지금은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래.”두 사람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좋은 내용이 아니었다는 건 분명했다.방금 구희라의 말과 표정을 보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문제인 듯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말을 듣고 입술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응.”유만정이 세상을 떠난 뒤 구기빈에게는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강이주는 자신의 문제까지 얹어 구기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구희라와 생긴 갈등은 하루이틀 안에 정리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그렇다면 당장은 구기빈이 유만정의 장례에 집중하도록 두는 편이 나았다.강이주의 예상대로 구기빈은 이후 며칠 동안 유만정의 장례 준비에 매달렸다.강이주와 구희라 사이의 연락도 완전히 끊겼다.강이주가 들은 건 구희라가 그날 이후 퇴원 절차를 밟고 구기빈 곁에서 어머니의 장례 일을 돕고 있다는 정도였다.중간에는 남매가 크게 다투기까지 했다고 했다.구희라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심한 말을 하자, 늘 동생을 아끼던 구기빈이 구희라의 뺨을 한 대 때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싸움의 시작도 자신과 관련된 일이었다고 했다.강이주는 핸드폰을 들고 구기빈에게 연락할지 한참 망설였다.벌써 이틀하고도 반나절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병실에는 양은별이 강이주와 함께 있었다.핸드폰만 보며 고민하는 강이주를 본 양은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구 대표님께 메시지 보내거나 전화하시려고요?”며칠째 병문안을 오면서 양은별도 강이주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답답해한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강이주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옅게 웃었다. “아니에요.”양은별은 옆에 앉았다. “그러면 요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한테 이야기해 보실래요? 계속 기운 없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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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구희라 변호사님도 한동안은 많이 슬프실 테니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물론 그냥 제 생각일 뿐이에요. 두 분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제가 정확히 모르니까요.”말을 마친 양은별은 괜히 나섰나 싶어 조금 민망한 얼굴로 강이주를 바라봤다.강이주와 구희라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양은별도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래도 강이주는 그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서로의 관계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내뱉은 상처 되는 말 하나하나가 더 아플 수도 있었다.양은별의 말처럼 서로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는 일이 오히려 이 우정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강이주는 고마운 눈으로 양은별을 바라봤다. “고마워요.”양은별은 오히려 쑥스러워했다.결국 강이주는 구희라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저녁 무렵 재활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강이주는 뜻밖에도 구기빈이 와 있는 걸 발견했다.구기빈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거의 동시에 구기빈도 강이주의 기척을 알아챘다.몸을 돌려 강이주를 바라봤다.구기빈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그 모습을 본 강이주는 가슴이 아팠다.휠체어를 움직여 구기빈 앞까지 다가갔다.구기빈은 강이주 앞에 천천히 몸을 낮춰 머리를 그녀의 무릎 위에 기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동안 유만정 사후의 온갖 절차를 처리한 데다, 때때로 구희라의 감정적인 행동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구기빈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강이주는 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이제 다 끝난 거야? 어떻게 올 시간이 났어?”구기빈이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메시지 답장조차 잊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나중에 생각나 답장을 보내면 이미 한밤중이나 새벽이었다.강이주는 아침에 눈을 뜨고 그 답장 시간을 볼 때마다 지금 다시 답해도 되는지 고민했다.구기빈은 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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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강이주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유언?”‘이미 오래전에 유언을 준비해 둔 건가?’구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전에 작성해 둔 거래.”유만정 명의의 사업체나 큰 재산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구호민 명의로 넘어간 상태였다.그래도 본인 명의의 펀드와 신탁 자산이 적지 않았다.집과 차량, 정기적으로 배당이 나오는 투자 자산도 있었다.모두 합치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였다.강이주는 그 말을 듣고도 더 묻지 않았다.유언의 내용이 무엇이든 강이주가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지금 걱정되는 건 오직 구기빈의 상태였다.강이주는 구기빈을 살짝 밀어 떼어 놓은 뒤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충혈된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며칠째 제대로 못 잤지? 눈이 너무 빨개졌어.”말하면서도 다시 마음이 아파졌다.구기빈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매일 조금씩은 눈 붙였어.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았어.”그것도 대부분 신경을 갉아 먹는 일들이었다.유만정이 세상을 떠난 직후 유씨 집안에도 바로 연락했다.하지만 누구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유만정은 오래전 구호민의 정신적 학대에 시달리다 친정과 크게 갈등을 빚었고 결국 관계까지 끊었다.이번에도 유씨 집안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유만정의 죽음은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입장까지 공개적으로 밝혔다.구기빈이 사람을 시켜 몇 번이나 연락해도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사람이 떠난 뒤에도 친정에서 아무도 오지 않으니 유만정의 마지막 길은 쓸쓸할 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구기빈이 유씨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억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더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또 다른 문제는 구희라였다.유만정이 세상을 떠난 뒤로 감정이 계속 불안정했다.구기빈과 마주칠 때마다 흥분해 손가락질하며 유만정을 죽게 만든 사람을 감싼다고 화를 냈다.구호민은 아예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마치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행동했다.수십 년을 함께 산 아내의 죽음인데도 그랬다.그 냉정함에 구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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