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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1화

강이주는 몸을 옆으로 조금 옮겨 자리를 만든 뒤 빈 침상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며 구기빈에게 올라오라고 했다.구기빈은 강이주가 비워 둔 옆자리에 몸을 눕혔다.구기빈이 눕자마자 강이주도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한 팔을 구기빈의 머리 아래로 넣고 다른 팔은 허리에 둘렀다.거의 구기빈을 품에 반쯤 안은 자세였다.강이주는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내가 옆에 있을게. 계속 여기 있을 거야.”구기빈은 눈만 들어 강이주를 바라봤다.그 시선을 느낀 강이주가 고개를 숙여 구기빈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아주 짧게 닿았다가 바로 떨어졌다.강이주는 구기빈에게 다정하게 웃어 보이며 계속 부드럽게 등을 토닥였다.구기빈은 며칠째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계속 움직였다. 그런 상태에서 강이주가 품에 안아 구기빈을 재웠다.처음에는 이 시간만큼은 강이주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하지만 작은 손이 일정하게 등을 두드리자 피로가 몰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스르르 감겼다.머릿속이 흐릿하게 가라앉았다. 귓가에는 강이주의 조용한 목소리만 남았다.구기빈은 너무 지쳐 있어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강이주는 품 안에서 잠든 남자를 계속 바라봤다.눈을 감자마자 깊이 잠든 구기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한참 보고도 여전히 아쉬웠다.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이 생겼으니 단 몇 분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강이주는 구기빈을 바라보다 결국 손끝으로 얼굴선을 따라 그렸다.이마에서 콧대로, 다시 얇은 입술까지 천천히 내려왔다.강이주는 입술에 시선을 두었다. 얇은 입술을 가진 남자는 정이 없다는 말도 있었다.하지만 강이주가 아는 구기빈은 누구보다 깊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언제나 자신에게 잘해 줬고, 변함같이 사랑했다.강이주는 문득 자신이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사람의 사랑을 받는지 생각했다.계속 바라보다 마음속 애틋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구기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 입 맞추고, 또 한 번. 이마를 그의 이마에 맞댄 채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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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2화

[내일 아침 8시에 진호가 데리러 갈 거야.]구기빈은 강이주도 유만정의 장례에 참석하도록 할 생각이었다.강이주는 쪽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걱정이 밀려왔다.내일 자신이 가면 구희라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그때 임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본 건 멍하니 생각에 빠진 강이주였다.며칠째 구기빈이 병원에 오지 못해 임설과 강이주의 부모가 번갈아 곁을 지키며 돌보고 있었다.강서규는 어제 바람을 오래 맞은 뒤 감기에 걸려 열까지 나 오늘은 집에서 쉬고 있었고, 장숙연이 혼자 곁에서 강이주를 돌봤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이주가 정신을 차렸다.앞까지 다가온 임설을 보고 말했다.“집에 가서 검은 원피스 하나 가져다줘. 내일 입게.”장례에 참석하는 만큼 검은 옷이 가장 무난했다.임설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강이주의 뜻을 알아챘다.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보여 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배 비서님이 가져다줬어요. 구 대표님이 준비하셨대요. 내일 이걸로 입으라고 하셨어요.”쇼핑백 안에는 마침 검은 원피스가 들어 있었다.구기빈이 강이주를 위해 따로 준비한 옷이었다.발의 실밥은 이미 뽑았지만 아직 바닥을 제대로 디딜 수는 없었다.바지를 입고 벗는 건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원피스가 훨씬 간편했다.강이주는 놀란 얼굴로 쇼핑백을 받아 안을 들여다봤다. 사이즈도 정확히 맞았다.구기빈이 이런 부분까지 전부 챙겨 놓았을 줄은 몰랐다.원피스를 바라보던 강이주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임설이 옆에서 물었다. “내일 장례식에 가시려고요? 구씨 집안 쪽 분위기 괜찮겠어요?”유만정이 세상을 떠난 뒤 구씨 집안 내부도 꽤 혼란스러웠다.구기빈이 RG그룹에서 물러났고 다리도 실제로는 멀쩡하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전체에 퍼졌다.구기빈이 장례 준비로 정신없는 틈을 타 여기저기서 잔꾀를 부리며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임설처럼 외부인인 사람이 보기에도 지나치다 싶은 일이 많았다.배진호는 구기빈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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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3화

구호민은 이미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아들인 구기빈을 정말 끝까지 몰아붙일까 싶었다.물론 둘째 아들 구희도가 있기는 했다.그래도 구희도가 장남인 구기빈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였다.구호민에게 다른 계산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임설은 강이주에게 자신이 아는 걸 숨기지 않았다. “구희라 변호사님이 매일 구기빈 대표님이랑 부딪히고 있고요. 구계배 어르신 쪽도 그 무상 증여 계약서 때문에 크게 화가 나셨어요.”“구계배 어르신은 차라리 가진 재산을 전부 재단에 출연하겠다고 하셨대요. 그 큰돈을 구호민 회장 손에 넘기는 일은 절대 없다고 못 박으셔서 집안 분위기가 아주 험해졌고요.”임설은 우연히 배진호와 구기빈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이 사실을 알게 됐다.중요한 내용이라는 걸 알아 계속 마음속에만 담아 두다가 이제야 강이주에게 말하고 나니 속이 조금 후련했다.구계배와 구호민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거기에 구희라까지 끼어들었다.구희라는 구계배가 혼자 모든 걸 결정하는 방식에 강하게 반발했다.구씨 집안의 후손이 구기빈만 있는 게 아니고 자신도 엄연히 손녀라고 주장했다.구계배가 재산을 나눌 생각이라면 손녀인 자신의 몫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그 말을 들은 구계배가 얼마나 화를 냈는지 지팡이를 들어 구희라를 때릴 뻔했다는 말까지 나왔다.구희라의 이름이 나오자 강이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구희라는 이제 대놓고 구씨 집안 재산 분배에 끼어들 생각인 듯했다.구계배가 보유한 지분도 결국 집안의 재산 중 큰 부분이었다.임설은 강이주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장례 끝나고 유만정 여사님 유언도 공개한다면서요. 그때는 장례식보다 더 복잡해질 것 같아요.”그런 상황이니 임설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강이주가 임설을 힐끗 봤다. “배 비서 대단한데? 이런 내부 이야기까지 너한테 다 말해 줬어?”임설이 굳이 밝히지 않아도 이런 생생한 내부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는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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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4화

다음 날 아침.강이주는 구기빈이 골라 둔 검은 원피스로 갈아입었다.사이즈는 몸에 잘 맞았다.디자인도 단정하고 장례식에 어울렸다.배진호가 강이주를 데리러 왔을 때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는 걸 금세 알아챘다.배진호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 불편하신 데 있으십니까?”강이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그렇게 답하자 배진호도 더 캐묻지 않았다.장례는 구씨 집안 본가에서 마련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지고 있었다.강이주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문객이 적지 않게 모여 있었다.빈소 안에는 유만정의 영정과 제단이 차분하게 마련돼 있었다.배진호는 강이주의 휠체어를 밀어 구기빈 앞까지 데려갔다.구기빈이 배진호에게서 휠체어 손잡이를 넘겨받았다.구희라의 날 선 시선 속에서 강이주는 영정 앞에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워 조문했다. 구기빈은 이후 강이주를 가족 대기실로 데려갔다.깨끗하게 정돈된 작은 방이었다.구기빈은 허리를 숙여 말했다. “조금 있으면 정신없어서 당신을 제대로 못 챙길 것 같아. 서호랑 예준이 밖에 있을 거야. 일 끝나면 바로 올게.”목소리는 어제보다도 더 쉬어 있었다.강이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응. 나 걱정하지 마. 여기서 기다릴게.”오늘 같은 날 구기빈이 자신을 계속 챙길 여유가 없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이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하길 바랐다.구기빈은 허리를 숙여 강이주를 한번 꽉 안아 준 뒤에 방을 떠났다.강이주는 창밖을 바라봤다.장례 절차는 차분하게 진행됐고 오래 지연되지는 않았다.강이주는 조금 전 빈소에 들어올 때 본 모습을 떠올렸다.상주 자리에는 구기빈과 구희라만 있었다.구호민과 구희도는 빈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구희도는 교통사고 때 큰 중상을 입은 건 아니라고 알려졌지만 아직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그래도 오늘은 유만정의 발인 날이었다. 아들이라면 얼굴을 비치는 게 보통이었다.구호민은 더했다.남편이면서도 그는 장례식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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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강이주는 마당 한쪽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있는 걸 발견했다.구희라가 분노에 차 소리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내가 엄마 물건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누가 계속 태워! 손대지 마... 다 비켜! 저리 가라고!”“아무도 오지 마! 다 꺼져! 제발 꺼지라고!”강이주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구희라는 집안 직원들에게 붙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앞의 커다란 철제 통 안에서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구희라는 몇 사람에게 붙잡힌 상태에서도 손을 뻗어 불 속의 물건을 꺼내려 했다.외치는 내용을 들어 보면 직원들이 유만정이 생전에 쓰던 물건들을 정리해 태우고 있는 모양이었다.하나씩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삼켜지는 걸 보며 구희라는 미친 듯이 소리치고 욕설까지 퍼부었다.강이주는 본능적으로 뒤에 있는 구기빈을 바라봤다.구기빈은 아무 표정 없이 눈앞의 모습을 차갑게 보고 있었다.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등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솟아 있었다.강이주의 시선을 느낀 구기빈은 그녀를 한번 본 뒤 말없이 휠체어를 밀어 안으로 들어갔다.등 뒤에서는 구희라의 처절한 고함이 계속 울렸다.강이주의 기분도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거실에 들어서자 강이주는 마침내 구호민과 구희도를 볼 수 있었다.구희도는 창백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이따금 미간을 찌푸렸다.헐렁한 실내복 차림이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가벼운 부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구호민의 얼굴에는 슬픔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구기빈과 강이주가 들어올 때 두 사람을 흘끗 봤을 뿐이었다.거실에는 구호민과 구희도 외에도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몇 명 앉아 있었다.그중 중년 남성 한 명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강이주는 그가 RG그룹에서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라는 걸 알아봤다.구호민은 주변을 한번 훑고 구희도에게 말했다.“희라 불러와.”구희도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아주 천천히 걸었다.거의 50분쯤 지나서야 눈이 퉁퉁 붓고 계속 흐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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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6화

구호민이 서류에 모두 서명하자 변호사는 먼저 자리를 떴다.거실에는 어느새 가족들만 남았다.구희라는 소파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는 모습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맞은편에 앉은 강이주는 슬픔과 절망에 잠긴 구희라를 보며 가슴이 저렸다.그런데도 지금은 다가가 위로 한마디 건넬 수조차 없었다.마치 서로 적이 되어 마주 앉은 듯한 상황이었다.강이주는 이 현실이 못내 가슴 아팠다.시선을 느꼈는지 구희라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강이주와 눈이 마주치자 눈매가 싸늘하게 굳었다.원수라도 보는 듯 원망과 증오가 가득한 눈이었다.구기빈이 몸을 조금 앞으로 옮겨 구희라의 시선을 가로막았다.강이주를 감싸는 구기빈을 보며 구희라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구희라는 여전히 어머니 유만정의 죽음이 강이주 탓이라고 생각했다.구희라는 강이주가 큰오빠의 지분을 팔려 하지 않았다면, 그걸 막으려던 유만정이 사고를 당할 일도 없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그때 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유만정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한번 그렇게 단정하고 나니 좀처럼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구희라의 마음에는 여전히 강이주를 향한 미움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구기빈은 구희라를 싸늘하게 일별한 뒤 구호민에게 시선을 돌렸다.“아버지, 정말 어머니가 남기신 유언장 맞습니까?”구기빈은 그제야 망설이던 의문을 입 밖에 냈다.사실 누가 봐도 진짜라고 믿기 어려운 유언장이었다.유만정과 구호민이 실제로 어떤 부부였는지는 자식들이 곁에서 지켜봐 누구보다 잘 알았다.유만정이 정말 유언장을 남겼다 해도 모든 재산을 구호민에게 넘겼을 리는 없었다.유만정 명의로 된 현금과 부동산만 해도 적지 않았다. 유언장에 적힌 상속 재산의 규모도 상당했다.사이가 좋지도 않은 남편에게 그걸 전부 남기면서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분명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변호사가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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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결국 구기빈은 빈털터리가 되어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구호민은 유만정을 빌미로 구기빈에게서 마지막 한 푼까지 모조리 긁어내려 했다.빠져나갈 구멍 하나 남기지 않는 그 집요함이 역겨울 지경이었다.적어도 강이주가 보기에는 그랬다.구기빈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원하시면 가져가십시오. 다만 납치됐을 때 몸값으로 워낙 큰돈을 요구해서 재산을 많이 처분했습니다. 남은 건 별로 없습니다.”수중에 남은 건 공사가 중단된 부동산 사업 부지 몇 군데 정도였다. 구호민이 죽고 오십 년이 지나도 개발될 기미조차 없을 만한 곳들이었다.물론 구기빈도 입지가 제법 괜찮은 부동산은 일부 남겨 두었다.속이려면 빈틈이 없어야 했다. 상대는 누구보다 영악한 구호민이었다.구기빈은 진작부터 대비해 두었다.값나가는 집과 차, 투자 사업 상당수는 ‘납치범에게 줄 몸값을 마련해야 한다’라는 명분으로 서둘러 처분한 뒤였다.현재 구기빈이 직접 손에 든 현금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았다.남들 눈에는 몇 대가 먹고 살고도 남을 돈일지 몰라도, 구호민에게는 성에 차지도 않을 액수였다.구호민도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직접 키워 낸 아들이면서도 구기빈에게는 자신만큼 배짱이 없다고 여겼다.지금 보니 아들을 얕잡아 본 쪽은 자신이었다.구호민은 늘 구기빈이 아무리 가르쳐도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처럼 바깥세상에 한결같이 냉정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구기빈에게는 감정도, 제 생각도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반박하고, 거역하려고 들기까지 했다.하지만 이제 구호민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구기빈도 자신과 똑같았다. 필요하다면 스스로에게도 가차 없었다.구호민조차 그 독한 결단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구호민이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는 걸 구기빈도 알았다. 그렇다고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구기빈이 무심하게 덧붙였다. “못 믿으시겠으면 사람을 시켜 자세히 알아보셔도 됩니다.”“죄송하지만, 며칠 동안 장례 치르느라 이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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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8화

구기빈과 강이주가 집을 나오자, 저택 밖에서 기다리던 유예준과 민서호가 보였다.두 사람은 구기빈과 강이주를 발견하고 다급히 다가왔다.유예준이 먼저 물었다.“어떻게 됐어? 잘 마무리됐어?”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민서호는 말없이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구기빈이 낮게 대답했다. “응.”그러고는 유언장에 관한 일을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유예준의 눈이 커졌다. “잠깐,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어머니가 재산을 전부 네 아버지한테 남기셨다고? 농담이라기엔 좀 지나친데.”구기빈의 가까운 친구인 유예준조차 유만정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았다.유만정과 구호민이 오랫동안 겉으로만 부부 행세를 해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유예준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하지만 구기빈의 말을 들어 보니, 알고 있어도 손쓸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구호민 같은 주도면밀한 능구렁이가 허술하게 준비했을 리 없었다.민서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분과 재산 다 뺏긴 거잖아. 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게, 널 꺾어 놓고 다시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오랫동안 구기빈과 친구로 지냈고, 이번에는 경호원 역할까지 맡으면서 여러 일을 직접 보고 들었다.그런데도 민서호는 가끔 구호민이라는 권력자의 사고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권력에 집착하고 남을 주무르기를 즐기면서, 무엇 하나 자기의 통제를 벗어나는 꼴을 견디지 못했다.구호민처럼 지배욕이 강한 사람의 속내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웠다.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짓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부류였다.구기빈이 두 사람을 한 번씩 보고 말했다. “아버지가 뭘 원하시든, 지금 난 빈털터리로 쫓겨난 몰락한 ‘구 대표’일 뿐이야.”결국 제 처지를 두고 농담까지 했다.“몰락은 무슨 얼어 죽을.” 유예준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정말 집에서 쫓겨났다 한들, 구기빈이라는 사람에게 몰락이라는 말이 어울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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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9화

그 집들을 누가 사서 누구 명의로 돌려놓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어쨌든 강이주와 구기빈의 명의도 아니었고, 두 사람과 친한 지인들의 명의도 아니었다.구호민이나 구씨 집안 사람의 손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누구든 상관없었다.강서규와 장숙연도 구기빈이 구씨 집안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사실 그 소식은 이미 J시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두 사람은 일찍부터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구기빈이 유만정의 장례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못 쓰게 됐다던 다리가 멀쩡해진 일을 두고도 여러 추측이 돌았다.대부분은 속으로는 무슨 일이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강이주가 부모에게 인사했다. “아빠, 엄마. 저희 왔어요.”구기빈도 뒤따라 인사했다. “장인어른, 장모님.”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구기빈의 호칭에 강서규와 장숙연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강이주가 부모 몰래 구기빈과 혼인신고를 하고 그토록 오래 숨겨 왔다는 생각에, 강서규는 얼굴이 금세 굳었다.아무 말도 없이 딸을 데려가 놓고 그 사실까지 입 다물고 있던 구기빈에게 좋은 표정을 지어 줄 수가 없었다.어린놈이 감언이설로 자신의 보물을 훔쳐 간 기분이었다.속이 쓰렸다.몹시도 쓰렸다.“그래.”강서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채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못마땅하게 한마디로 인사받았다.장숙연이 옆에 선 남편에게 핀잔이라도 주듯 흘겨보았다.아이들이 돌아오면 최대한 따뜻하게 맞아 주기로 미리 이야기해 놓고, 혼자만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잊었으면 그만이지, 굳이 저렇게 얼굴에 불만을 드러낼 건 또 뭔가.장숙연이 구기빈에게 말했다. “이주한테 얘기 들었어. 다른 생각 말고 여기서 편하게 지내. 자네 집이라고 생각하고.”그 밖의 다른 말은 쉽게 꺼내기 어려웠다.무슨 말을 하든 자칫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웠다. 최근에 어머니를 잃은 데다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으니, 구기빈이 느낄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강서규도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이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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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화

이 집은 전에 강서규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한 차례 손을 본 상태였다.부부는 지금도 1층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강이주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 강서규는 계단 쪽도 개조해서 딸이 머무르기 편하게 집을 손질했다.3층 위에 다락층이 있는 저택에 아예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강이주가 편히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해 놓았다.강서규는 강이주가 예전에 쓰던 방도 사람을 시켜 다시 정돈해 두었다.구기빈이 강이주의 휠체어를 밀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 두 사람은 화사하게 꾸며진 실내를 보고 나란히 굳었다.침대 시트와 이불도 짙은 분홍색 새 침구로 바뀌어 있었다.강이주는 황당해서 이마를 짚고 싶었다.‘이게...’‘이렇게까지 신혼방 티를 내야 해?’마치 오늘 구기빈과 결혼식을 올리고 막 신혼 첫날밤을 보내러 들어온 기분이었다.구기빈도 눈앞의 광경에 적잖이 놀랐다.이렇게 대놓고 신혼 분위기를 낸 방은 처음이었다. 굳이 이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약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강이주가 목을 가다듬었다. “관리해 주시는 분 불러서 침구부터 바꿔 달라고 할게.”침대 머리맡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반짝이는 장식까지 걸려 있었다. 강이주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구기빈이 강이주를 만류했다. “됐어. 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마음인데.”혼인신고도 하고 함께 살게 됐으니, 결혼식을 아직 올리지 않았더라도 신혼 분위기는 내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구기빈은 강서규와 장숙연이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는지 알 것 같았다.실제로 두 사람의 생각도 그랬다.강이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구기빈을 보았다. “당신은... 정말 괜찮아?”어디를 봐도 분홍색뿐이라 머릿속까지 물들 것 같았다.강이주는 원래 분홍색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짙은 색이 온 방을 채우고 있으니, 강이주는 눈앞이 아른거리고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구기빈이 강이주를 안아 침대에 앉혔다. “예준이 오늘은 재활하러 병원 오지 말고 집에서 푹 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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