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경쾌하고도 발랄한 그 두 글자가 역삼역 3번 출구 앞의 공기를 찢고 울려 퍼졌다. 퇴근길 바삐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음이 일순간 음소거된 것 같았다. 내 고막에는 오직 강태준 팀장의 수트 안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저 끔찍한 알림음만이 무한 루프처럼 맴돌았다. 1초, 2초, 3초. 영겁같이 느껴지는 정적 속에서 나와 강태준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강태준의 무테안경 너머,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었을 미세한 동공 지진이 일고 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했지만, 평생 완벽만을 추구해 온 그의 천재적인 두뇌도 이 미친 상황 앞에서는 버퍼링이 걸린 게 분명했다. 숨이 턱 막히고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눈앞의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야. 강태준이 햇살강쥐님일 리가 없어. 대한민국 당근 가입자가 몇 명인데! 그냥 우연히 타이밍이 겹친 걸 거야. 암, 그렇고말고!' 나는 억지로 안면 근육을 끌어올리며,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자본주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 팀, 팀장님? 퇴근하셨나 봐요. 하하, 방금 그 소리… 팀장님 폰에서 난 거 맞죠? 팀장님도 중고 거래 같은 걸 다 하시네요?" 내 떨리는 목소리에, 굳어있던 강태준의 안면 근육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는 특유의 서늘하고 오만한 표정을 장착하며, 언제 당황했냐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렇습니다. 마침 근처에서 직거래 약속이 있어서요." 그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직거래? 역삼역 3번 출구에서? 지금 이 시간에? "아… 네에. 그러시구나. 누구랑… 무슨 물건을 거래하시는데요?" 질문을 던지면서도 내 입술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명품 시계나 골프채라고 대답해! 하지만 강태준의 시선은 내 얼굴을 지나, 내가 등 뒤로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는 커다란 종이백으로 향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종이백 겉면에 인쇄된 베이커리 로고를 날카롭게 훑고 지나갔다
Last Updated : 2026-03-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