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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상사의 부캐는 매너온도 99도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1 - チャプター 20

71 チャプター

제11화 비상구의 남자

토요일. 강남 중심가에 위치한 웨딩홀 앞.주말의 눈부신 햇살이 대리석 기둥에 부서져 내리는 화사한 풍경이었다. 3월 중순으로 막 접어드는 오늘은 낮 기온이 제법 올라, 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루다는 어제 세탁소에서 찾아온 검은색 슬림 랩 원피스를 차려입고 식장 로비를 당당하게 걸었다. 넥 라인 너머 왼쪽 쇄골 아래에는 정성스럽게 가위로 오려 붙인 흑호의 앞발 하나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 번뜩이고 있었다. 까만 스틸레토 힐의 뾰족한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릴 때마다, 누가 봐도 사연 있어 보이는 맹수의 기운이 풍겼다.루다의 손에 꽉 쥐어진 클러치 백 안에는 얄팍한 축의금 봉투 대신 묵직한 '복수 상자'가 들어 있었다. 전남친 박민재가 자취방에 뻔뻔하게 남기고 간 잡동사니들. 쓰다 만 면도기, 구멍 난 회색 양말, 바닥을 드러낸 왁스 통, 녹이 슬어버린 은반지. 화려한 핑크색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해 둔 이 상자를 그 개자식의 얼굴 앞에 집어 던지고 오는 것. 오늘 목표는 단 하나였다.루다는 신부 대기실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박차고 들어가려던 찰나였다."읍!"등 뒤에서 나타난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루다의 입을 틀어막았다. 반항할 틈도 없이, 대기실 옆 어두컴컴한 비상구 계단실로 홱 끌려 들어갔다."읍읍?!"사력을 다해 발을 버둥거렸다. 백주대낮에 웨딩홀에서 납치라도 당하는 줄 알았다. 그 순간, 귓가에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쉿. 조용히 하십시오. 제발."평소의 그 얼음장같이 건조하던 톤이 아니었다. 절박함이 가득 묻어나는,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그 여린 손에 기어코 피를 묻히지 마십시오.""팀, 팀장님?!"희미한 비상구 유도등 아래 강태준의 얼굴이 보였다. 완벽하게 넘겼던 포마드 헤어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채였다. 땀에 젖은 이마 아래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루다를 애처롭게 내려다보는 핏발 선 눈동자가 있었다.'저 인간 지금 뭐라고 한 거야. 피를 묻히지 말라고?'"팀장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아니,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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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 남자 친구입니다

어두운 비상구 철문을 열고 루다가 로비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돌아온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억울한 눈물이 쏙 들어간 자리에 몽글몽글하고 이상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더더욱 몰랐다.'일단 가자. 저 문 열고 상자 내밀고 나오면 끝이야.'루다는 클러치 백을 고쳐 쥐고 연회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로비 한가운데를, 까만 스틸레토 힐의 뾰족한 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가로질렀다.그리고 정확히 다섯 걸음 만에 멈춰 섰다.번지르르하게 턱시도를 빼입은 채,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히죽거리는 박민재의 얼굴이 시야에 꽂혔다. 게다가 그 뻔뻔한 인간의 왼쪽 손목에는, 지난달 루다의 신용카드로 눈물을 머금고 '12개월 무이자 할부' 결제를 해준 그 비싼 최신형 스마트 워치가 버젓이 번쩍이고 있었다.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루다는 위풍당당하게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어……? 루, 루다?"루다와 눈이 마주친 민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굳었다. 그러나 이내 주변 하객들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재수 없는 거만한 미소를 얼굴에 장착했다."와, 진짜 왔네? 창피해서 못 오는 줄 알았는데. 하긴, 그래도 우리가 만난 정이 3년인데 뷔페 밥은 한 끼 먹고 가야지. 혹시, 축의금은 두둑하게 냈고?"그 가증스러운 멘트에, 루다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루다가 핏기가 가신 입술을 꽉 깨물며, 클러치 백에서 핑크색 복수 상자를 꺼내 치켜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루다야."등 뒤에서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로비의 소음을 뚫고 울려 퍼졌다.동시에 크고 단단한 남자의 손이 루다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 내렸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루다의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으로 밀착시켰다. 코끝에 훅 끼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우디 향.강태준이었다.태준은 루다를 자신의 옆구리에 단단히 붙인 채, 박민재를 향해 오만하게 고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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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 위기관리 대처 매뉴얼

태준이 이끈 곳은 웨딩홀에서 두 블록 떨어진 조용한 로스터리 카페였다.루다는 그가 걸음을 멈출 때까지 어디로 가는 건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물을 여유가 없었다기보다는, 굳이 묻고 싶지 않았다는 쪽이 더 정확했다. 단단하게 허리를 감아오던 그 손의 묵직한 온도가 아직 옆구리에 화인처럼 남아 있었고, 그 온도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통유리창으로 봄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자리에 마주 앉자, 직원이 메뉴판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루다는 메뉴판을 펼치는 척하며 슬쩍 태준을 훔쳐봤다. 그는 이미 안경을 한 번 치켜올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였다.방금 전 로비에서 수십 명의 하객을 압도하며 남자 친구를 자처하던 사람이,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귓바퀴가 아직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것만 빼면, 완벽한 '강 로봇' 모드였다.'저 인간은 저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아니면 연기하는 거야. 대체 어느 쪽이야.'저 인간의 속내를 끝내 알 수 없었던 루다는 결국 끙, 소리를 내며 메뉴판을 덮어버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꾸덕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까지 주문하고 나서야 요동치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3년 치 억울함을 들고 전남친 결혼식장까지 쳐들어간 여자한테, 케이크 한 조각 정도는 허락되어야 마땅했다.음료가 나오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태준 쪽이었다."드십시오. 거칠고 피곤한 세계와 단절하려면 당분과 에너지가 필수적입니다."'거칠고 피곤한 세계?'루다는 속으로 어이없음을 한 번 꼴깍 삼키고 포크를 들었다. 아무래도 저 인간의 뇌 속엔 아직도 자신이 사채업자나 불법 조직과 얽혀있다는 끔찍한 오해가 진행 중인 게 분명했다."팀장님.""네.""아까 로비에서 하신 행동, 위기관리 대처 매뉴얼이라고 하셨는데요."태준의 꼿꼿한 손가락이 커피잔 위에서 멈칫했다가 다시 움직였다."그렇습니다.""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하 직원의 남친인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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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 테이블 아래의 비밀

루다는 맞은편에서 창밖을 응시하는 태준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테이블 아래로 폰을 내렸다. 이제부터 보낼 채팅 내용엔 태준의 이야기가 지분 90%를 차지할 예정이었다. 본인 면전에서 뒷담화를 쓰는 건 아무래도 화면을 가려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 같았다.[루다공주]: 강쥐님! 저 오늘 진짜 큰일 날 뻔했는데 살았어요. 전남친 결혼식장에서 역대급 흑역사를 생성할 뻔했거든요? 근데 상상도 못한 구원자가 나타났지 뭐예요!메시지를 전송하고 고개를 들자, 태준이 아주 자연스럽게 수트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테이블 아래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루다는 별 의심 없이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물며 답장을 기다렸다.정확히 7초 뒤, 루다의 손바닥에서 조용한 진동이 울렸다.[햇살강쥐]: 헉! 진짜요? 공주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고요? 구원자라니, 혹시 엄청 멋있는 분이었나요?루다는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빠르게 타자를 쳤다.[루다공주]: 다치진 않았어요. 멋있냐고요? 음, 외모랑 피지컬은 인정! 근데 그 사람 사실 제가 회사에서 제일 극혐하던 ‘악마 상사’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남친인 척 등판하더니 정색하고 위기관리 매뉴얼이 어쩌구... 저 지금 카페에서 그 사람 맞은편에 앉아 있는데, 솔직히 기분이 좀 이상해요. 심장이 쪼끔 쿵 하긴 했거든요.전송 버튼을 누르고 루다가 혼자 피식 웃는 찰나, 맞은편에서 아메리카노 잔을 들려던 태준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콜록, 켁! 커흑!”입술에 닿기도 전에 내려놓은 잔이 덜커덩 소리를 냈고, 태준은 냅킨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격렬한 기침을 쏟아냈다. 평소의 냉철한 모습은 간데없이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루다는 깜짝 놀라 냅킨을 뭉텅이로 뽑아 내밀었다.“어머, 팀장님! 괜찮으세요?”태준은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냅킨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의 뒷목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괜찮습니다. 사레가 들려서.”간신히 내뱉은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루다가 직원을 불러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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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 당분이 두뇌 회전에 필수적입니다.

월요일 아침 8시 55분.루다가 마케팅 1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다 멈췄다.자기 책상 위에 뭔가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하얀 리본이 묶인 작고 예쁜 상자였다. 상자 옆에는 노란색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당분이 두뇌 회전에 필수적이니 업무 시작 전 섭취하기 바랍니다. - 강태준]루다는 상자를 열었다. 오색빛깔 마카롱이 두 줄로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성수동에 새로 생긴 팝업스토어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주말에도 줄이 두 시간씩 선다는 그 한정판 마카롱이었다. 루다는 상자를 들고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이게 왜 여기 있지.'왼쪽 파티션 너머에서 지원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야, 이루다. 너 오늘 출근하기 전에 강 팀장 만났어?""아니? 왜?""저거 강 팀장이 올려놓은 거야. 오늘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저거 책상에 딱 올려놓고 자기 자리 갔거든. 팀원들이 다 봤어."루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팀장석을 바라봤다. 태준은 이쪽을 보지 않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중이었다. 완벽하게 무심한 척이었지만 귀끝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붉었다.'저 인간이 직접 줄을 섰을 리는 없고. 설마 개장 시간에 맞춰 간 거야? 아니면 누군가한테 시킨 거야. 그것도 이상하고.'루다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마카롱 상자를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당분이 두뇌 회전에 필수적이라는데, 주말에 그 생각을 왜 팀장이 하고 있냐."지원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낮게 웅얼거렸다. 루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전 10시, 주간 회의.루다는 이번 팝업 마케팅 기획안을 발표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주에 급하게 마무리한 탓에 스스로도 영 미덥지 않은 완성도였다. 데이터 보완이 필요하다는 걸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발표를 하는 내내 태준의 빨간펜이 언제 날아올지 어깨가 잔뜩 굳어 있었다.발표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이루다 대리."태준의 목소리에 루다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타겟층 분석 방향, 아주 날카롭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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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 현장 실습의 정의

토요일 오후 1시, 성수동 팝업스토어 앞.루다는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해서 줄 서 있는 인파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일에도 이 정도인데 주말 오후는 거의 재난 수준이었다. 맞은편 카페 앞까지 늘어선 줄이 골목을 반 바퀴나 감고 있었다.'업무 지시라고 했으니까 온 거야. 현장 실습이라고 했으니까 노트북도 챙겨온 거고.'루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크로스백 끈을 고쳐 맸다. 주말 오전 내내 뭘 입을지 고민한 건 그냥 오랜만에 성수동에 나오니까 그런 거였다. 봄 날씨에 맞게 연한 민트색 니트를 골라 입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업무 지시에 응하는 것과 예쁘게 입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적어도 루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왔습니까."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루다가 돌아보자 태준이 서 있었다. 평소의 수트 대신 짙은 네이비 셔츠에 슬랙스 차림이었는데, 그게 또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회사에서는 그 딱딱한 수트 뒤에 가려져 있던 어깨 라인이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로.'아니 캐주얼도 잘 어울리네...'루다는 그 생각을 즉시 떨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팀장님. 줄이 엄청 길던데요.""예약해 뒀습니다. 줄 안 서도 됩니다.""예약이 되는 팝업이에요?""VIP 사전 예약 루트가 있습니다. 현장 실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사전 준비죠."루다는 잠깐 눈을 깜빡였다가 그냥 따라 들어가기로 했다.팝업스토어 안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화려했다. 브랜드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공간들이 구역별로 나뉘어 있었고, 어디서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도록 조명과 소품이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루다는 입구에서부터 노트북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소비자 동선, 체류 시간이 긴 구역,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포인트들을 빠르게 정리해나갔다.태준은 루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간이 루다의 화면을 힐끔 보더니 낮게 입을 열었다."저 구역 체류 시간이 제일 깁니다. 포토존이 세 개 겹쳐 있어서 이동 동선이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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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 성수동 느와르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루다는 타오르는 볼을 식히기 위해 거의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 태준의 엄지손가락이 입술 끝에 닿았던 감촉이 지워지지 않았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루다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봄 날씨에 맞춰 골라 입은 연한 민트색 니트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화사한 건지, 덕분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루다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터질 것 같은 심장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털어놓을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었다.[루다공주]: 강쥐님! 저 지금 진짜 멘붕이에요. 오늘 그 악마 상사랑 주말 ‘현장 실습’ 나왔거든요?[루다공주]: 근데 이 인간이 오늘따라 왜 이러죠? 아까 사람 많은 데서 저를 확 감싸 안질 않나, 입가에 묻은 마카롱을 직접 닦아주질 않나… 저 진짜 심장이 쪼끔 쿵 했어요.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햇살강쥐’님은 언제나 루다의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답장을 기다리며 거울을 보는 사이, 묘한 기시감이 루다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까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태준의 주머니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던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설마 아직도 연동된 거 아니겠지? 아니야, 조카 계정이라고 본인 입으로 그랬잖아.’루다는 고개를 흔들며 화장실을 나섰다. 자리로 돌아오자 태준은 짙은 네이비 셔츠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채 다시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루다가 자리에 앉자, 태준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이 대리, 아까 마카롱 크림을 닦아낸 건 개인 위생 관리 차원에서의 조치였습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시각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마케터의 기본 소양이니까요. 오해 없길 바랍니다.”“아… 네, 위생 관리. 역시 그렇겠죠.”“그리고 방금 전 보여준 과도한 안면 홍조는 생물학적으로 에너지 낭비가 심한 반응입니다. 효율적인 감정 조절이 필요해 보이군요.”태준의 로봇 같은 말투에 루다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노트북을 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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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 5분 흑기사

태준은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루다는 태준의 뒤를 쫓으며 그의 넓은 어깨를 관찰했다. 평소의 완벽한 수트 차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네이비 셔츠 위로 드러나는 태준의 실루엣은 붉은 노을과 묘하게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루다는 이 상황이 업무의 연장선인지, 아니면 아주 이상한 데이트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루다는 아까 태준이 자신을 보호할 때 났던 그 시원한 우디 향이 자꾸 코끝에 맴도는 것 같아 괜히 니트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태준 역시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모든 신경은 반 보 뒤에서 따라오는 루다의 발소리에 쏠려 있었다. 태준의 심장은 아까 불량배들과 대치할 때보다 지금 더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혈류 속도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 정의하며 애써 무시했다.그때였다. 루다는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털어놓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루다는 햇살강쥐와의 채팅창을 열어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루다공주]: 강쥐님! 저 지금 진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요. 아까 골목에서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었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를 구해주셨거든요?[루다공주]: 근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아주 잠깐이지만 진짜 흑기사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지금 제정신이 아니겠죠?루다가 '전송' 버튼을 누르는 찰나였다.“당근!”정적을 깨는 경쾌한 알림음이 골목에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지는 루다의 바로 앞을 걷던 태준의 바지 주머니였다. 루다는 걸음을 멈추고 태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태준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빳빳하게 굳어버렸다.“팀장님, 방금 알림 소리… 혹시 당근 아니에요?”태준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아까 불량배들을 위협할 때보다 훨씬 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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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 이게 비품이라구요?!

월요일 아침, 마케팅 1팀 사무실.루다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랍 구석에 쟁여둔 믹스커피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성수동에서 돌아온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내내 루다의 머릿속은 도무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불량배 앞에서 자신을 등 뒤로 숨겨주던 태준의 넓은 어깨, 그리고 지하철 플랫폼에서 꾹 다문 입술로 전광판만 노려보던 그 서늘한 옆모습이 자꾸만 망막 위에 잔상처럼 남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루다를 잠 못 들게 한 건, 성수동 골목에 울려 퍼지던 그 경쾌한 당근 알림음이었다.루다는 믹스커피 봉지를 뜯다 말고 멈췄다. 귓가에 환청처럼 들리는 그 소리에 뒷목이 뻣뻣해졌다.‘아니야. 흔해 빠진 알림음이잖아. 그 인간이 내 햇살강쥐님일 리가 없지. 그 다정한 사람이 저런 고철 로봇이라고? 세상이 두 쪽 나도 그건 불가능해.’루다는 스스로를 설득하며 탕비실로 향했다. 알고리즘 분석이니 뭐니 하던 태준의 변명은 지나치게 그답고 지독하게 사무적이라 오히려 더 짜증이 났다. 변명조차 일로 하는 인간인데, 채팅창에서 그렇게 다정하게 굴었을 리 없다는 확신이 들자 서글픈 안도감이 밀려왔다.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믹스를 녹이는 동안에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수증기 위로 자꾸만 네이비 셔츠를 입고 사레들렸던 태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루다가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를 켠 바로 그때였다.“이루다 대리, 잠깐 회의실로 오십시오.”태준의 목소리가 루다의 파티션을 넘어 날카롭게 날아왔다. 루다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오늘 태준의 목소리 톤은 평소의 냉각 모드인지, 아니면 주말의 그 묘하게 당황한 모드인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루다는 식어가는 커피를 뒤로하고 회의실로 향했다.회의실 문을 열자 태준이 테이블 앞에 각 잡힌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은빛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루다는 그것이 무엇인지 즉시 알아봤다. 마케터라면, 아니 기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입 베어 문 사과 로고가 선명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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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 비효율적인 알고리즘의 습격

토요일 오후 1시, 성수동은 지난주보다 더 활기찬 열기로 가득했다. 낡은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힙한 카페와 팝업스토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를 누비는 젊은 인파의 에너지는 한낮의 햇살만큼이나 뜨거웠다. 루다는 어깨에 멘 가방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방 안에는 태준이 ‘비품’이라며 무심하게 건넸던 그 영롱한 은빛 맥북이 들어있었다.일주일 내내 맥북 셋업을 마치고 바탕화면에 깔린 깔끔한 업무 폴더들을 보며 루다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고마운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이 피어오르는 설렘이 뒤섞여 루다의 머릿속은 이미 데이터 과부하 상태였다.‘이걸 진짜 비품이라고 믿어야 하는 거야, 아니면 거절할 수 없는 거대한 뇌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야.’루다는 연한 블루 셔츠에 화이트 팬츠를 매치해 깔끔하면서도 화사한 룩을 연출했다. 지난번 옷이 너무 ‘나 데이트 나와요’ 하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조금 더 전문적인 마케터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물론,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세 번이나 바꿔 끼고 입술에 바를 틴트 색상을 고민하느라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는 사실은 루다만 아는 비밀이었다.“일찍 왔군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루다가 움찔하며 돌아섰다. 그곳에는 지난번 네이비 셔츠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베이지색 리넨 자켓을 걸친 태준이 서 있었다. 지난번과는 또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남친룩’**의 정석 같은 모습이었다. 리넨 소재 특유의 여유로움이 태준의 딱딱한 인상을 중화시켜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루다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강로봇의 피지컬은 확실히 업무 효율과는 무관하게, 비효율적일 만큼 완벽했다.“팀장님도 일찍 오셨네요. 저… 맥북은 잘 챙겨왔습니다. 셋업도 다 끝냈고요.”“성능은 어떻습니까. 이전의 그… 배터리 수명이 다한 잡동사니와 비교했을 때 연산 속도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습니까?”태준은 ‘잡동사니’라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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