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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그의 간섭 따위는 필요 없었다.

“네가 그리 말해 주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며칠 후 집안에서 신년 연회를 열 생각이니, 너도 잊지 말고 곱게 단장해서 참석하거라. 서왕 전하께서 진국공부가 너를 박대했다고 오해하시지 않게 말이다.”

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쉬거라.”

“살펴 가십시오, 어머니. 서유야, 어머니를 잘 배웅해 드리렴.”

강유영은 몸을 일으키며 한씨를 배웅했다.

그녀는 한씨가 방을 나서고 저만치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팽팽하게 긴장했던 몸이 스르륵 풀리며 막 이불을 걷어 내려던 찰나였다.

조원철이 이불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양손으로 그녀의 몸 양옆을 짚어 품 안에 가두고는, 거리를 좁히며 지그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불 속에 오랫동안 숨어 숨을 죽이고 있었던 탓인지, 희고 깨끗한 얼굴에는 보기 드문 붉은 기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날카롭게 빛나던 칠흑 같은 눈동자도 어쩐지 촉촉하고 부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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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84화

    "필요 없다."조연화는 사내들의 퀴퀴한 냄새가 역겨워 손을 내저으며 그들을 물렸다.그러고는 채하의 손을 의지해 마차에 올랐다.강왕이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그녀는 시선을 내리깐 채 그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은 곳마다 파리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을 억누르며 손을 빼지 않았다.그렇게 어느새 마차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코끝에 냄새가 훅 끼쳤다. 강왕의 몸에서 나는 기름지고 탁한 냄새였다. 최상급 침수향으로도 다 가리지 못한 역겨운 체취였다.그녀는 끝내 눈을 들지 않고 치맛자락의 주름만 뚫어지게 응시했다.상석에 앉은 강왕이 물었다."아침은 먹었느냐?""예, 먹었습니다."조연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그를 보지 않았다.행여 그를 마주 보았다가, 참지 못하고 마차를 세우라 명한 뒤 뛰어내릴까 두려웠다.강왕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마차 안에는 청석판을 구르는 바퀴 소리만 맴돌았다.덜컹, 덜컹.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가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혔다.강왕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아 있음은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끈적하고 기름진 시선이 얼굴에서 시작해 목덜미를 타고 어깨로, 마침내 무릎 위에 얹어둔 두 손으로 훑어 내리고 있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조금 본다고 어찌 되겠는가. 죽는 것도 아니다.경화 공주에게 복수하고 강유영을 발밑에 짓밟을 수만 있다면 이깟 일쯤 못 참을 이유가 없었다.강왕이 아무리 구역질 나도, 남의 발밑에 짓밟히며 사는 수모보다는 나았다.돌연 강왕이 몸을 움직였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바스락거렸다.조연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그녀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지만, 여전히 시선을 내리깐 채 피하지 않았다."연화야."강왕이 불쑥 그녀를 불렀다."전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조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구역질 나는 얼굴을 차마 직시하지 못한 채 시선은 허공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83화

    참으로 막무가내였다.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모르는 줄 알았다면 애초에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강유영은 화가 났지만 이성은 잃지 않았다. 끝내 도경진이 집과 땅을 마련했고 그녀를 도우려 했다는 사실은 꺼내지 않았다.그 일까지 털어놓는다면 조원철은 더 불같이 화를 낼 터였다. 그녀를 탓하지 않더라도 도경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남에게 화를 입히는 짓은 할 수 없었다."이제 제법 말대꾸를 하는구나."조원철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짙은 눈동자에 옅은 웃음기가 스쳤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잔뜩 독이 올라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 같았다.강유영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버렸다.그와는 더 이상 섞을 말이 없었다."알았다, 알았어."조원철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미안하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그는 최근 들어 부쩍 쉽게 잘못을 인정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낯선 모습이었다."손씨 쪽은 어찌 되었느냐."조원철이 물었다."청란의 말로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답니다. 아침에 나가 만두나 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일거리를 기다리다 일이 없으면 돌아온다고 합니다. 해 질 녘에 싸구려 술을 조금 사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는 불을 끄고 잠든답니다."강유영은 보고받은 내용을 정리해 전했다."진 낭자가 건넨 물건은?"조원철이 다시 물었다."모릅니다." 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 "청란이 그가 집을 비운 틈에 방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물건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물건을 건네는 모습도 보지 못했답니다."조원철은 잠시 입을 닫았다."제가 사람을 너무 늦게 보낸 건 아닐까요." 강유영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청란을 보내기 전에 이미 다른 이에게 넘겼을지도 모릅니다.""그럴 수도 있지."조원철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청란 일행에게 계속 교대로 감시하라 이를까요."강유영이 물었다."네가 알아서 하거라." 조원철은 겉옷을 가져와 걸쳤다. "조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82화

    "간밤에 돌아왔다."조원철은 쥐고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놓았다."단비는 어찌 저를 깨우지 않았을까요."강유영은 눈을 비비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도경진이 서책을 준 일을 그가 알고 있을까?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막막했다."깨워도 일어나지 않더구나."조원철의 어조는 담담했다.강유영은 당혹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자신이 그토록 세상모르고 잤단 말인가."그 탕약에,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재라도 들어간 모양입니다…."그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거리를 찾았다.원래 잠이 이토록 많은 편은 아니었다."음, 그럴지도."조원철은 짐짓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강유영은 그럴수록 그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말해 보거라."조원철이 곁눈질로 그녀를 응시했다."무엇을 말씀이십니까."강유영은 고개를 들고 까만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단비에게 깨워달라 일렀다지.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조원철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강유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선뜻 말을 맺지 못했다.두려움이 앞섰다.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고, 화가 난 기색도 없었다.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행여 말을 꺼냈다가 도리어 화를 돋우는 게 아닐까.조원철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볼 뿐, 재촉하지 않았다."저것입니다."강유영이 손을 뻗어 서탁 쪽을 가리켰다."무엇 말이냐."조원철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을 따라갔다."저 서책들 말입니다…."강유영은 입 밖에 낼 말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행여 말실수로 그의 심기를 건드려 일을 그르칠까 전전긍긍했다."그래서?"조원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게…." 강유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시집을 사러 서포에 갔다가 도 대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가 글을 모르는 줄 아시고, 아이들 글공부할 때 쓰는 책이라며 가져가서 익히라고 주셨습니다."그녀는 단숨에 말을 쏟아내고는 행여 실수한 것은 없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81화

    짙은 어둠이 창살을 덮고, 별빛조차 드문 밤이었다.침소 안에는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렸다.강유영은 서책을 든 채 창 아래 작은 탁자 곁에 앉아, 반쯤 감긴 눈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아씨?"단비가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응?"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미간에는 졸음이 가득했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처방받은 탕약에 심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이 있어서인지, 요 근래 부쩍 잠이 늘었다."밤이 깊었습니다. 아씨, 그만 보시고 이만 잠자리에 드시지요."단비가 조용히 권했다.단비가 보기에 아씨는 마음에 둔 일이 있어 세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연말이 다가오며 궁 안에 일이 많아 조원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조차 없었다."그래."강유영은 책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했다.단비는 재빨리 다가가 이부자리를 폈다."아씨, 손난로라도 하나 넣어드릴까요."단비가 몸을 돌려 물었다."음."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을 벗은 뒤 침상에 올랐다.단비는 날랜 솜씨로 탕파에 뜨거운 물을 채워 발치에 넣어주고, 이불깃을 꼼꼼히 여며주었다."아씨, 안녕히 주무십시오. 저는 바깥에 있겠습니다."단비는 그렇게 말하며 휘장을 내렸다."단비야."강유영은 눈을 감은 채 휘장 밖을 향해 말했다."그분이 오시면 잊지 말고 나를 깨워주렴."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해야 화를 풀지 알 수 없었다. 이 일만큼은 확실히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예."단비가 대답했다.그녀는 아씨가 세자에게 할 말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굳이 캐묻지 않았다.속이 깊은 아씨는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캔다고 순순히 입을 열 사람이 아니었다.축시가 다 되어서야 조원철이 요월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세자."문가를 지키던 단비가 그를 보고 다가가 예를 갖췄다.조원철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 방문을 열려 했다."세자…."단비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80화

    조사예는 옷자락을 꽉 쥔 채 붉어진 눈으로 우물거리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말할 테냐, 말 테냐? 끝까지 입을 다물겠다면 사람을 시켜 따귀라도 쳐야 제대로 말을 하겠느냐!"참을성이 없는 조연화는 곧바로 으름장을 놓았다."도경진, 도 대인입니다."조사예는 겁에 질린 척하며 바로 사내의 이름을 내뱉었다."그자는 지방으로 쫓겨나지 않았느냐?"조연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연말을 맞아 관직 보고차 돌아왔습니다. 듣자 하니 폐하께서 경성에 남겨 기용하셨다 합니다."조사예는 대답하며 슬쩍 조연화의 눈치를 살폈다."신경 쓸 것 없다."조연화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거울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강유영은 서왕 전하의 측비 자리조차 거들떠보지 않은 오만한 계집이다. 도경진 따위는 일개 종육품 말단 관원에 불과한데, 그것이 미쳤다고 시집을 가겠느냐?"그녀는 강유영은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조연화는 그녀가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나대다가 비참하게 몰락하는 꼴을 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저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습니다."조사예는 일단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친 뒤,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허나 오늘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도 대인이 강유영에게 물건까지 건네주더군요. 두 사람은 눈이 맞았는지 헤어질 때도 무척이나 아쉬워했습니다."조사예는 오늘 본 광경에 살을 붙여 고자질했다. 조연화가 꼼짝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몇 마디를 더 보탰다."언니, 도 대인을 얕보시면 안 됩니다. 강유영이 얼마나 영악한 계집입니까. 허투루 사람을 고를 리가 없습니다. 도 대인이 지금 관직은 낮아도, 탐화랑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지방으로 발령 난 지 반년 남짓 만에 경성으로 불려왔으니, 폐하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지요. 그런 사람에게 몇 년만 시간을 주면, 큰오라버니처럼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입니다."이 말은 조사예의 진심이었다. 그녀는 도경진의 앞날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79화

    요망한 강유영, 지금까지도 도경진을 꼬드기고 있다니.도경진은 강유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애틋하게 굴고 있었다. 저러다간 두 사람 사이에 조만간 혼사라도 오갈지도 모른다.강유영이 도경진에게 시집가는 광경을 떠올리자,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듯한 고통과 한이 밀려왔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조사예는 기어이 손에 쥔 손수건을 갈가리 찢었다."아씨, 이제 그만 저택으로 돌아가시지요."시녀 소심은 그녀의 등 뒤에 서서 무슨 말을 꺼내려다 애써 삼켰다.소심은 아씨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도경진은 탐화랑 출신이었다. 지금 조정에서 벼슬은 그리 높지 않을지언정 차근차근 승진하며 전도가 유망한 인재였다.게다가 도경진은 외모마저 출중했다. 경성에는 그를 눈여겨보는 가문이 적지 않으니, 어느 날 갑자기 명문가 규수를 부인으로 맞이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그러니 아씨는 굳이 강유영과 감정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강유영은 양녀였고, 조사예는 서녀였다. 소심의 눈에는 두 사람 모두 도경진의 정실로 시집갈 가능성이 몹시 희박해 보였다.그 무렵, 우두커니 서 있던 도경진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조사예는 도경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가 번잡한 인파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발길을 돌렸다.그녀는 손에 쥔 찢어진 손수건을 다시 갈기갈기 뜯어 놓았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는 반드시 도경진에게 시집가야만 했다. 비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억지로라도 매달려 볼 참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홧병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돌아오는 내내 머리를 쥐어짜며 깊이 고심한 끝에, 마침내 그럴듯한 묘안을 하나 떠올렸다. 진국공부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곧장 조연화의 처소로 향했다.조연화와 강왕의 혼례는 해를 넘겨 치르기로 정해져 있었다. 조사예는 평소 조연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왔다. 이제 어엿한 강왕비가 될 조연화를 이용하면 분명 득이 될 터였다."셋째 언니, 지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화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화

    한씨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봤다.곁눈질로 보니, 조원철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강유영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떡을 다시 집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쓰고 껄끄러웠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뭘 알고 일부러 저러시는 걸까?’이유야 어찌 됐건 한씨가 이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한씨는 손을 뻗어 아들의 목에 난 자국을 어루만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곱게 자란 처자라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화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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