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의 모든 챕터: 챕터 221 - 챕터 230

467 챕터

제221화

도 부인은 속으로 강유영에게 깊은 적개심을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그저 얼굴 하나 반반한 것 말고는 근본도 없는 처자가 아들의 혼을 쏙 빼놓은 것이 괘씸했다.그토록 고분고분하고 효성 깊던 아들이 어미인 자신의 뜻을 거역하고 몰래 강유영을 찾아다닌 것도 불만이었다.조사예에게 들으니, 아들과 진국공부의 혼사가 깨진 것도 전부 강유영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탓이라 했다.심지어 조사예를 집안에서 쫓아내고 서왕 전하의 눈에 들어 왕부의 첩으로 들어갈 처지라고 했다.도 부인은 그런 그녀와 엮였다가 자칫 아들의 앞길에 방해가 될까 봐 더욱 방심할 수 없었다.“도 부인.”강유영이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예를 올렸다.“예는 되었네.”도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저쪽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서 경진이더러 골라 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네.”말을 마친 그녀는 도경진을 잡아끌었다.“어머니, 저는...”도경진은 거부하며 팔을 빼내려 했다.그는 강유영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었다. 다음번에 다시 그녀를 보게 될 기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었다.“어서 가자.”도 부인은 그런 그를 억지로 잡아끌며 앞으로 걸어갔다.도경진은 아쉬운 듯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고, 강유영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이만 갑시다.”조원철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세자, 저기 유영이랑 월아한테 가서 인사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소은경은 제자리에 선 채로 강유영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그럴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하지만 전 가고 싶은 걸요.”소은경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를 이끌고 강유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조원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를 따라갔다.“유영아!”소은경이 큰 소리로 불렀다.강유영은 조월아가 흥미진진하게 연꽃등을 살펴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소은경이 조원철의 팔짱을 낀 채 길가에 서 있었다.눈부신 등불 아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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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참 아름다운 연꽃등이었지만, 평생 호사를 누린 소은경에게는 그리 희귀한 물건도 아니었다.그녀는 굳이 등불이 탐나서가 아닌, 그저 강유영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강유영이 불편해하면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소은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등불을 주고 싶지 않았다.순간 일행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강유영은 조원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아마도 그는 그녀가 소은경에게 연꽃등을 넘겨주길 기다리는 듯했다.예전의 그녀였다면 분란이 두려워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을 테지만, 지금은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이 연꽃등은 도경진이 그녀에게 선물로 준 것이니 온전히 그녀의 물건이었다.그녀가 원치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줄 필요가 없었다.소은경은 좋은 출신에 부모님의 총애를 받고 훌륭한 혼처까지 두었다. 모든 걸 가졌으면서 왜 굳이 자신의 것을 탐내는지, 강유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사실 소은경이 원하는 것은 등불이 아니라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뿐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세자, 유영이가 말이 없는 걸 보니 제게 등을 주기로 동의한 모양이네요.”소은경은 한 손으로 조원철의 팔짱을 낀 채, 다른 손으로 강유영의 연꽃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강유영이 주기 아쉬워할수록 그녀는 더욱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강유영은 나무 막대를 꽉 쥔 채 손을 놓지 않았다.가느다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그녀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소은경 같은 세가의 귀녀를 정면으로 거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문득 무력하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군주님, 이 등은 도 대인께서 방금 유영 언니에게 선물로 주신 거예요.”참다못한 조월아가 조원철의 안색을 살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녀 역시 소은경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원하면 뭐든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왜 굳이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는 명백한 괴롭힘이었다.“그게 어쨌다는 거지?”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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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가냘픈 뒷모습은 쓸쓸하고 처량해 보였다. 버티고 있던 힘마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정기마저 다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유영 언니...”조월아는 얼른 뒤쫓아가다가 슬쩍 뒤를 돌아 소은경과 조원철을 흘겨보았다.‘둘 다 진짜 너무하네!’세상 사람들은 조원철을 두고 경성에서 가장 공명정대하고 정직한 이라 칭송하는데, 이번 일은 왜 이렇게 편파적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맙습니다, 세자.”소은경은 조원철의 손에서 꽃등을 건네받았다.멀어지는 강유영의 뒷모습을 훑어보는 그녀의 얼굴에 찬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이제 강유영도 조원철의 마음속에서 누가 더 중요한지 똑똑히 알았을 것이다.‘분수도 모르고, 감히 누굴 넘봐.’조원철은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언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제 복숭아등을 드릴게요, 네?”조월아는 그렇게 좋아하던 복숭아등을 강유영의 앞으로 내밀었다.“아니야. 네가 가지고 있어.”강유영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었다. 조월아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동생의 흥을 깨고 싶지도 않았다.앞으로 마주치지 않으면 이렇게 마음 아플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소 군주님이 무리하게 구는 건 그렇다 쳐도, 큰오라버니까지 그렇게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아직 혼인도 전인데 이 정도면, 나중엔 우릴 얼마나 무시하겠어요?”조월아는 조원철과 소은경을 향한 불만을 투덜거렸다.생모인 연 부인이 소은경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였다.“해가 바뀌면 너도 열일곱인데, 어쩌면 연말에 시집을 갈지도 모르지. 가문에서 마주칠 날이 얼마나 되겠어?”강유영은 조월아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달랬다.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이 진국공부에 머무를 날도 며칠 남지 않았음을 떠올렸다.그 두 사람과 마주쳐 괴로울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언니도 참!”조월아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소매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자매는 다시 팔짱을 낀 채 거리를 거닐었다. 군것질거리를 좋아하는 조월아를 위해 강유영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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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청류는 마음이 찔리는 듯 해명하기 시작했다.상전이 방금 거리에서 벌인 일은 아무리 청류라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강유영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하지만 조원철 역시 도 대인의 연꽃등을 받은 강유영에게 꽤 화가 났을 것이다.게다가 그녀가 그렇게 아쉬워하며 손을 놓지 않으려 했으니, 그의 성격에 화를 내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멈추거라!”강유영은 울컥 화가 치밀어 싸늘한 목소리로 청류에게 명했다.소은경의 환심을 사려 그녀의 연꽃등을 빼앗아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자신을 축제 거리로 데려오다니.대체 무얼 하자는 걸까?그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가고 싶지 않았다.“아씨, 진정하세요. 소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제 입장도 이해해 주세요.”청류는 사정하면서도 말고삐를 당겨 속도를 높였다.강유영은 한층 더 화가 났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마차 아래를 살피다가 망설임 없이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다.마침 행인이 많은 곳에 접어들어 마차가 그리 빨리 달리지 않고 있었기에 뛰어내려도 크게 다치지는 않을 터였다.조원철은 그녀를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노리개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었다.괴롭히고 싶을 때 괴롭히고, 거리로 부르고 싶을 때 부르다니.그녀는 그 뜻대로 순순히 따라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아씨, 아씨!”놀란 청류가 그녀를 부르며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함부로 몸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세자, 어서 와 보십시오!”그는 마차를 멈춰 세우며 식은땀을 흘렸다.만약 그녀가 마차에서 뛰어내리다 어디 한 군데라도 다친다면, 그는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다행히 조원철이 그리 멀지 않은 전방에 있었다.“비켜라!”강유영은 마차 위에서 청류에게 가로막혔다.그녀가 몸을 비틀어 반대 방향으로 내리려 하자, 청류가 잽싸게 뛰어올라 다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강유영.”등 뒤에서 조원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유영은 몸이 굳은 채로 청류를 바라볼 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그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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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강유영은 아래를 슬쩍 훑어보았다.망토의 원단이 무척이나 신기했다.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천 조각을 짜깁기한 듯 기워 만든 옷이었지만 바느질 솜씨가 아주 정교해, 투박한 원단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섬세했다.조원철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면사포가 달린 모자를 꺼내 그녀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이렇게 남의 눈에 띄는 게 두려우시다면, 차라리 저를 돌려보내 주십시오.”강유영은 모자 너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얇은 면사포가 시야를 반쯤 가려 주니 그의 수려한 얼굴이 다소 흐릿하게 보여서, 그가 그리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그럼 벗길까?”조원철이 돌아서며 그녀를 보고 물었다.강유영은 즉시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다물었다.남의 눈에 띄는 것이 더 두려운 쪽은 그보다 그녀 자신이었다.조원철은 마지막으로 등불을 하나 더 꺼내더니, 등을 매단 가는 나무 막대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강유영은 면사포 틈새로 그 등불을 바라보았다.빨갛고 커다란 꽃게 모양의 등불이었다.등껍질은 살아 있는 듯 생생했고, 집게발은 이리저리 유연하게 움직였다.집게를 치켜들고 기세등등하게 횡포를 부리는 모양새가 제법 신기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떼지 못하고 흥미롭게 쳐다보았다.“마음에 드느냐?”조원철이 모자를 매만져 주며 나지막이 물었다.강유영은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꾹 다문 채 꽃게등을 그에게 돌려주었다.“안 받겠습니다.”이런다고 결코 기쁘지 않았다.소은경에게 주려고 그녀의 연꽃등을 빼앗아 가더니, 이제 와서 꽃게등을 내밀고 있었다.병 주고 약 주는 식이었다.그녀에게도 자존심은 있었다.등불이 아무리 신기하다 한들 전혀 탐나지 않았다.“도경진이 준 것은 그토록 아끼더니, 왜 내 것은 이리 거부하느냐?”조원철의 어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강유영은 감히 그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결국 꽃게등을 든 채로 그에게 이끌려 앞으로 걸어갔다.해시가 지났는데도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춤을 추는 각설이들, 죽마를 타는 이들, 잡기를 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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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원철아, 잠깐 이리 와 보거라.”한씨는 조원철을 한 쪽으로 데려가서 따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저 꽃게등, 전에 제가 갖고 싶다고 했던 건데 어찌...”조연화는 연신 강유영을 살피며 호기심 어린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오라비의 외실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진 탓이었다.대체 얼마나 대단한 미색이기에 평소 법도를 철저히 지키던 오라비가 타인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토록 애지중지 품고 다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강유영은 조원철의 손을 꽉 잡았다. 지금은 그가 손을 놓아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도저히 조연화와 단둘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연화의 성격상 조원철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분명 모자를 벗기고 정체를 확인하려 들 게 뻔했다.만약 모자 속 인물이 자신이라는 걸 들킨다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 소동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어머니, 하실 말씀이 있다면 여기서 말씀하시지요.”조원철은 식은땀으로 젖은 강유영의 손을 위로하듯 꾹 쥐어 주었다.강유영은 심장이 세차게 뛰고,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한씨가 맞은편에 서서 계속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비록 자주 부대끼지는 않았으나 한 집안에서 지낸 처지라 체구만으로도 들킬 위험이 컸다.한씨가 덜컥 제 이름을 부를까 봐 두려움이 엄습했다.“회남왕 부부가 지금 경성에 머물고 있고 소 군주와의 혼례가 코앞이거늘, 외실을 데리고 대낮처럼 밝은 거리를 활보하다니. 대체 생각이 있는 게냐?”한씨는 그를 따로 데려가지 못하자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랐다.그녀는 다시금 강유영을 쳐다보았다.본래 조원철은 누구보다 예법을 따지던 아이였다.늘 냉철하고 이성적이던 아들이 소문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이 여인을 데리고 대보름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대체 어떤 요사한 처자이기에 아들의 혼을 이 정도로 빼놓았는지 의문이 들었다.마침 동행하던 부인들과 헤어진 상태라 망정이지, 만약 그들에게 보이기라도 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어머니께서 염려하실 일은 없습니다. 알아서 처신하겠습니다.”조원철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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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조연화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운함을 드러냈다.지난 추석에 대게를 먹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은 또 꽃게등까지 안겨 주다니.저 외실은 어쩐지 자신이 마음에 든 것만 골라서 빼앗아 가는 것만 같았다.“네가 그 대게를 저 애가 먹은 줄 어찌 아느냐?”한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큰오라버니 처소에 갔다가 보았어요. 그때 오라버니가 그 외실을 옥청원까지 데려와 머물게 하더라고요.”조연화가 답했다.“그게 언제 적 일이냐? 왜 진작 내게 말하지 않았어?”한씨는 들을수록 화가 치밀었다.어찌 이리도 미련하단 말인가.여자가 좋아 보았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저 노리개에 불과한 것을 적당히 데리고 살면 그만이지 이토록 금지옥엽처럼 품고 다닐 일인가 싶었다.“그때 말하려다가 깜빡 잊었어요.”조연화가 콧방귀를 뀌었다.“어쨌든 큰오라버니를 저토록 홀려 놓은 걸 보면 분명 보통내기가 아니에요.”저 외실만 없었어도 오라비가 챙겨 준 좋은 물건들이 다 제 차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강유영만큼이나 가증스러웠다.“정말 화근이로구나!”한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내에게 첩이나 외실이 있는 것쯤은 예삿일로 넘길 수 있었다.하지만 아들의 외실은 그야말로 사람을 홀리는 요물 같아서, 아들이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이었다.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장차 진국공부를 뒤흔들지도 모를 일이었다.어떻게든 손을 써서 처리해야만 했다.“가서 꿀떡이라도 사 먹거라.”다리에서 내려온 한씨는 조연화에게 은자 몇 푼을 쥐여 주었다. 조연화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옮겼다.“어멈.”한씨가 손짓으로 풍씨 어멈을 불렀다. 풍씨 어멈은 얼른 다가와 조심스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부인, 부르셨습니까?”방금 전의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한씨의 분노를 짐작하고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사람을 보내 소 군주에게 전하거라. 세자가 외실을 데리고 축제 거리를 돌고 있다고.”한씨는 풍씨 어멈의 귀에 대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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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강유영은 한씨가 돌아올까 걱정되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나 곤란해질까 봐 두렵기도 했다.조원철은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하더니 살며시 귀밑머리를 정돈해 주었다.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그의 깊은 눈동자에 은은한 미소가 스쳤다.“세자.”앞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강유영은 본능적으로 면사포를 내려 얼굴을 가리려 했다.“두려워할 것 없다, 청운이다.”조원철이 그녀를 달랬다.뒤돌아보니 찬합을 든 청운이 서 있었다.청운은 다가와 두 사람에게 인사를 올린 후, 찬합에서 하얀 백자 그릇을 꺼내 조원철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뒤로 물러갔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그릇으로 시선이 갔다.모락모락 김이 나는 말랑하고 통통한 만두가 들어 있었다. 대보름에 만두를 먹는 것은 경성의 오랜 풍습이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저녁 무렵에 처소를 나선 이래 고작 과일 꼬치 몇 입을 먹었을 뿐이었다.조금 전까지는 두려움에 떠느라 몰랐는데, 만두를 보니 비로소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조원철은 숟가락으로 만두 하나를 떠서 가볍게 불더니, 제 입술에 슬쩍 대보았다.뜨겁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곧게 뻗은 그의 긴 속눈썹이 아래로 드리워지며, 오롯이 그녀만을 보고 있었다.그 다정한 눈빛은 마치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는 듯했다.강유영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심장이 멋대로 요동치고 얼굴이 붉어졌다.그녀는 입술을 꼭 다문 채 눈을 내리깔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다 식는다.”조원철은 숟가락을 조금 더 앞으로 밀어 넣었다.코끝으로 찹쌀가루의 향긋함이 밀려왔다.그녀는 양손으로 면사포를 붙잡은 채 입을 벌려 하얀 만두를 베어 물었다.입안 가득 계화향이 퍼졌다. 계화와 꿀을 섞어 만든 만두였다.다른 맛도 있었는데, 다른 하나는 붉은 팥소였다.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맛이었다.어느 집 솜씨인지 달면서도 물리지 않고, 쫀득하면서도 치아에 들러붙지 않아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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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저길 보려무나.”조원철이 턱끝을 들어 올리며 그녀에게 눈짓했다.강유영은 이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한 쌍의 남녀를 발견했다. 보기에는 부부 같았다.젊은 부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저택 문 앞에 걸린 등불 하나를 가져와 부인에게 건네고 있었다.“어서 먹어 보시오.”부인이 그 등을 한 입 베어 물자, 두 사람은 정답게 팔짱을 끼고 웃으며 걸어갔다.“등불을 먹을 수도 있나요?”강유영은 순간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마음이 간질거렸다.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 등불 하나를 집어 그녀에게 주었다.손에 닿는 감촉이 차갑고 다소 촉촉했다. 자세히 살펴본 그녀는 그제야 알아차렸다.“무를 조각해 만든 것이었군요.”“너도 하나 먹어 보거라.”조원철이 고개를 돌려 은은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한입 베어 문 강유영은 궁금한 듯 그에게 물었다.“이걸 먹는 것도 민간 풍습인가요?”조원철은 굳이 설명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얼버무렸다.강유영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이 계절의 무는 아삭하고 달콤한 데다 즙이 많아 입안이 청량해졌다.그녀는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걸으며, 길 위에서 자그마한 무 등을 한 입씩 베어 물어 전부 먹어 치웠다.두 사람은 다시 다리 근처로 걸어왔다.이쯤 되니 밤이 깊어 인파가 전보다 적어졌으나, 삼삼오오 떼를 지어 길가를 산책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광경이었다.강유영은 눈앞에 펼쳐진 번화한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눈에 좀 더 담아 두고 싶었다.며칠 뒤 경성을 떠나면 다시는 이런 광경을 보지 못할 터였다.그때 그리 멀지 않은 앞쪽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사내 하나가 급히 걸어왔다.한쪽 손을 품속에 넣은 것이,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보였다.한가로이 거니는 인파 속에서 그의 모습은 유독 이질적이었다.강유영은 면사포 너머로 저도 모르게 그 사내를 주시했다.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 사내가 돌연 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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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강유영은 그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그의 어깨 부근에 난 상처를 보는 순간, 그녀는 그가 자신을 대신해 칼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 오며,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어서요, 어서 약방으로 모셔 가서 상처를 싸매야 해요...”그녀는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져, 조원철을 붙잡은 채 청운 일행을 다급히 재촉했다.“가벼운 상처니 상관없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조원철은 그녀를 붙잡아 말린 뒤, 청운에게 마차를 대기시키도록 일렀다.“안 돼요, 지혈부터 해야죠.”강유영은 그의 상처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손을 바르르 떨었다.이대로 피를 계속 흘리다가는 과다출혈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누가 보낸 자들인지 배후를 철저히 추궁하거라.”조원철은 청운에게 짧게 명한 뒤, 그녀를 이끌고 마차에 올랐다.“약방으로 가면 안 될까요?”강유영은 마차 안에서 그의 등 뒤에 난 상처를 확인할 수 없어 마음이 더욱 타들어 갔다.그녀는 그를 떠나고 싶었고,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으며, 영영 보지 않기를 바랐다.하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비록 모든 인연을 끊어 낼지언정, 그가 경성에서 평안하고 순탄하게 지내기를 원했다.그녀가 없는 세상에서도 매일을 무탈하게 보내기를 간절히 바랐다.“네가 지혈 가루 좀 발라 주겠느냐.”조원철이 마차 안 서랍을 열어 청자병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그는 여전히 다치지 않은 사람처럼 태연하게 굴었다.강유영은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움직여 그에게 지혈 가루를 뿌려 주었다.내내 마음을 졸이다 보니 어느새 마차가 멈추어 섰다.요월원 입구였다.그녀는 조원철을 이끌고 서둘러 처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조원철은 제 손을 꼭 맞잡은 그녀의 손길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그녀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자신을 처소에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아가씨, 세자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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