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의 모든 챕터: 챕터 211 - 챕터 220

467 챕터

제211화

"군주님, 걸었더니 살짝 더운 것 같은데, 저기 정자에서 잠시 쉬시는 게 어떨까요?”조사예가 강유영을 힐끗 보더니, 앞쪽 정자를 가리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계속 걷는다면 그나마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자리에 멈춰 서서 찬바람을 맞게 된다면 추위는 배가 될 터였다.게다가 강유영에겐 지금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좋아.”소은경이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보며 생긋 웃었다.“너희 둘은 밖에서 기다리거라.”그녀는 조사예의 속내를 대번에 간파하고는 기꺼이 장단을 맞췄다.그렇게 강유영도 모자라, 늘 그녀의 편을 들던 조월아까지 정자 밖에 발을 묶어 버렸다.자매간의 정이 그리 깊으니 어디 함께 고생해 보라는 심산이었다.“미안하구나. 월아 너까지 나 때문에 고생을 하네.”강유영은 미안한 얼굴로 조월아에게 소곤거렸다.“유영 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전 하나도 안 추워요.”조월아가 제 품에 있던 손난로를 유영의 손에 쥐여 주었다.“어서 손 좀 녹이세요.”정자는 햇볕이 드는 쪽을 제외하곤 사방이 휘장으로 둘러져 있고, 안쪽에는 따스한 화로와 만개한 서향화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틈새로 짙은 꽃향기가 풍겨왔지만, 서향화 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강유영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그녀는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 연회가 시작되기만을, 그래서 이 피곤한 인간들에게서 어서 벗어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그렇게 고통스러운 대치가 이어지던 중, 마침내 한씨가 보낸 시녀가 돌아와 자리에 들 시간임을 알렸다.이미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강유영은 멀찍이 떨어져 일행의 뒤를 따랐다.대청 앞에 다다르자 소은경이 뒤를 돌아보며 무어라 조롱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그러자 조사예가 손난로를 받아 들고 강유영에게 다가와 쓱 내밀었다. 눈빛에는 노골적인 조소가 가득했다.“군주님께서 돌려주라고 하셨어.”강유영은 군말 없이 손난로를 받아 들었다.이미 불씨가 거의 꺼져 차갑게 식어 버린 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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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강유영은 말없이 의자를 옆으로 조금 끌어당겨 앉았다.그의 곁에 앉아 대청의 시끌벅적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지난 연말 밤의 기억이 고개를 들었다.그때 조원철은 탁자 밑으로 그녀의 손을 가만히 맞잡아 주었더랬다.하지만 오늘은 그가 손을 잡아 줄 사람이 당연히 소은경일 것이다.이제 더는 미련하게 마음 졸일 필요도 없었다.한씨가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바로 그때였다.“어머나!”소은경이 머리를 만지다 말고 불쑥 비명을 질렀다.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듯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오직 조사예만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강유영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무슨 일입니까?”곁에 있던 조원철이 담담하게 물었다.“내 홍옥 매화 비녀가 없어졌어요.”소은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허둥지둥 더듬으며 다급히 말했다.“성년례 때 아버지께서 친히 만들어 주신 거예요. 평소엔 아까워서 잘 하지도 않았던 건데!”그 비녀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보물로, 그녀가 가장 아끼는 애장품이었다.오늘 조원철을 만나는 자리인 데다 마침 매화가 어울리는 계절이라 마음먹고 꽂고 나온 것이었다.그런데 그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홀린 듯 손에 쥔 손난로 주머니를 더듬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머니 밑바닥에서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영락없는 비녀의 감촉이었다. 하지만 비녀가 이렇게 짧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태연한 척 표정을 관리하며 손난로 주머니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확실한 비녀의 촉감에 심장이 조여들었다.물건을 주머니 입구로 끌어올려 슬그머니 확인한 강유영은 하마터면 손난로를 내던질 뻔했다.소은경의 홍옥 매화 비녀였다.정확히는 비녀의 뒷부분은 부러져 있고, 홍옥으로 장식된 매화 머리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심지어 매화 장식 위에는 붉은 핏자국까지 묻어 있었다.비녀를 다급하게 부러뜨리다 손을 벤 것이 분명했다.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음모였다.강유영은 혼란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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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안방 여인들의 은밀한 암투는 늘 먹던 연회 요리보다 백 배는 더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경화 공주는 팔짱을 낀 채 이 흥미진진한 광경을 관망했다.그녀의 시선은 주로 조원철에게 가 있었다.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 수려하기 그지없는 외모에 남다른 기품까지. 그저 저런 사내를 손에 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네가 직접 목격했느냐?”한씨는 조사예를 엄하게 채근했다.마음 깊은 곳에서는 넌더리가 났다. 서출은 이래서 태생적 한계를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강유영이 아무리 눈엣가시라 한들, 대외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치부를 들추어낼 일은 아니었다.집안 망신은 문을 닫아걸고 다스리면 그만인 것을.이다지도 대국을 살피지 못하니, 연회가 끝나는 대로 가문을 모독한 죄를 물어 호되게 매질을 하리라 마음먹었다.“똑똑히 본 건 아니지만...”조사예는 뜸을 들이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강유영이 손난로 주머니 속에 급히 무언가를 감추는 것만큼은 분명히 보았습니다.”그녀 역시 한씨의 싸늘한 눈초리를 읽었으나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강유영을 향한 증오가 이성을 마비시킨 지 오래였다.“유영아,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한씨가 강유영에게 시선을 던졌다.“저는 오늘 소 군주님의 지척에 다가간 적이 없습니다.”강유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고했다.“어머니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 군주님께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좌중의 이목이 일제히 소은경에게 집중되었다.소은경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글쎄요, 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강유영이 줄곧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소은경에게는 굳이 저 양녀의 결백을 증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그 손난로를 이리 가져와 보거라.”한씨가 명하자, 강유영은 묵묵히 손난로를 내밀었다.그러나 물건은 이미 조원철의 손에 넘어간 뒤였으니, 한씨가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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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내 비녀!”소은경이 바닥에 떨어진 비녀를 보고 외쳤다.시녀가 황급히 그것을 주워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조사예, 더 할 말이 있느냐?”한씨가 굳어진 얼굴로 위엄 있게 추궁했다.수많은 손님 앞에서 이런 추태가 벌어졌으니, 가솔을 엄히 다스리지 못했다는 구설에 오를 게 뻔했다.조사예의 통통한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머릿속이 통째로 비어 버린 그녀는 본능적으로 잡아뗐다.“어머니, 이건 강유영이...”증거가 이토록 확실하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나름 잔꾀를 부린다고 부렸으나, 그 비녀가 왜 제 몸에서 떨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강유영의 손난로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어떻게 돌아온 걸까?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닥치거라!”한씨가 호통을 쳤다. 눈가에는 한심함과 분노가 가득했다.평소 서출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조사예는 제법 영리하다 생각했거늘, 이토록 어리석을 줄은 몰랐다.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감히 부인하려 들다니.저희끼리 물고 뜯든 상관없지만,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조사예는 이미 한씨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었다.“국공 부인, 제 물건이 이리 망가졌으니 제게도 합당한 해명을 해주셔야겠습니다.”소은경이 조사예를 경멸하듯 훑어보고는 분노를 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고 회남왕의 딸이라는 품위를 지켜야 하는 자리만 아니었다면, 벌써 뺨이라도 몇 대 갈겼을 터였다.조사예가 제풀에 자만해 자신을 칼받이 삼아 강유영을 치려 했다는 사실을 소은경 역시 대번에 알아차렸다.감히 자신을 이용하고 아끼는 보물까지 망가뜨리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게 틀림없었다.“원철아, 이 비녀를 고칠 수 있느냐?”한씨가 조원철을 돌아보며 물었다.조원철이 부러진 비녀를 힐끗 보고는 답했다.“추후 입궁할 때 궁의 장인들에게 청해 보겠습니다.”“저것을 데리고 나가 사당에 가두거라!”한씨가 조사예를 가리키며 풍씨 어멈에게 명했다.“오늘 일은 유영이를 겨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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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강유영은 한씨가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도 그럴 것이 첩실 이씨는 평소 처세술에 능하여 진국공이 한 달에 꼭 며칠은 그녀의 처소에 묵곤 했다.한씨로서는 가뜩이나 눈엣가시 같던 이씨를 자연스럽게 내쫓을 절호의 기회였다.“유영 네 말이 맞다. 그대로 거행하겠다.”한씨가 손을 휘저으며 차갑게 선언했다.“사예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우선 사당으로 데려가 채찍 서른 대를 치고 이씨와 함께 동쪽 외곽의 장원으로 보내도록 해라.”조사예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입을 열려 했다.강유영을 향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본래대로라면 혼자 장원에 가서 고생하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았다.어차피 국공부에 남은 친모가 진국공에게 베개머리 송사 몇 번 하면 머지않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가증스러운 강유영이 친모까지 함께 장원으로 보내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국공부에 자신들을 위해 말 한마디 보태 줄 세력이 사라졌으니, 모녀가 경성으로 돌아올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특히 지금은 한창 혼사를 알아볼 나이기도 했다.도경진의 어머니와 여전히 교류가 있었고 그녀 역시 자신을 무척 예뻐해 주었기에, 어쩌면 파혼을 되돌릴 수도 있으리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그게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한두 해는 여인의 평생을 결정지을 중요한 시기였다.장원에서 나이만 헛되이 먹다가는 제대로 된 가문에 시집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강유영의 말 한마디가 제 앞길을 완전히 망쳐 놓은 셈이었다.풍씨 어멈이 눈치 빠르게 조사예의 입을 틀어막자, 시녀 몇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아이가 철이 없어 소란을 피웠군. 징계를 내려 반성하도록 하였으니, 이 소란은 너그러이 잊어 주시고 다 함께 잔을 들지.”한씨가 술잔을 들며 미소로 좌중을 다독였다.손님들이 자연스레 화답하면서, 대청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다시 시끌벅적해졌다.강유영은 눈앞의 요리들을 내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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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서준에게서 은자를 돌려받는다면, 오씨 어멈과 함께 경성을 영영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강유영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탁자 밑으로 누군가 다리를 툭 건드렸다.강유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연회가 끝난 모양이었다.그녀를 건드린 사람은 바로 조원철이었다.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소은경을 살포시 부축하며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방금 그녀의 다리를 건드린 게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원철은 뒤를 돌아보고는 문밖을 향해 턱짓을 했다.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회랑 아래에서 경화 공주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조원철과 소은경은 걸음을 멈추고 나란히 서서 경화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강유영은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한 사람은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듯 고고했고, 다른 한 사람은 화사하고 생기가 넘쳤다.냉철한 사람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의 조화가 더없이 잘 어울렸다.세 사람은 잠시 담소를 나누더니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조원철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 강유영을 보았다.그녀는 그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이제 곧 이간계를 행동에 옮길 테니, 어서 소은경에게 귀띔할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하지만 문득 모든 게 덧없고 부질없게 느껴졌다.문을 나선 강유영은 회랑을 따라 곧장 걸어갔다.조원철이 혼례를 올리기 전에 오씨 어멈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작정이었다.소은경과 경화 공주가 어찌 되든, 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이미 차갑게 식어 버린 손난로를 품에 안고 강유영은 요월원으로 발길을 옮겼다.“아씨, 어찌 이리 일찍 돌아오셨습니까?”단비가 놀라며 대문 밖으로 마중을 나왔다.대개 신년 연회는 식사가 끝나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남아 온갖 놀이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다가, 저녁상까지 물린 후에야 자리를 뜨는 법이었다.강유영은 단비를 흘긋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머나, 입술이 왜 이렇게 파랗게 질리셨어요? 손도 얼음장 같아요.”단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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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단비가 그녀를 부축해서 안방으로 인도했다.“아씨께서 통 기운이 없어 보이시기에 화로에 닭고기죽을 좀 끓였습니다. 주방에서 반찬도 몇 가지 챙겨 왔고요.”단비는 죽을 그릇에 담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그 반찬은 가져가서 어멈, 서유와 함께 먹으려무나. 난 죽만 조금 먹으면 돼.”강유영은 탁자 위의 찬합을 옆으로 슬며시 밀어냈다.“반찬도 조금은 드셔야지요.”단비가 죽그릇을 대령하며 조심스레 권했다.“되었다. 식기 전에 어서 가져가거라.”강유영은 정작 입맛이 없어 숟가락으로 죽을 휘적거리기만 했다.“그럼 장아찌라도 좀 내올까요?”“그래.”강유영은 나직하게 대답했다.그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죽을 조금씩 넘겼다.사실 그냥 먹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머지않아 오씨 어멈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억지로라도 음식을 욱여넣었다.앞으로 홀로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하니, 체력을 길러야 했다.조원철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반쯤 비운 죽을 숟가락으로 무심히 휘젓고 있었다.그는 문가에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옷을 대충 걸친 강유영의 몸짓 사이로 흰색 속옷이 살짝 드러났다.조막만 한 얼굴은 상등품 옥을 깎아 만든 듯 투명하게 빛났다.긴 속눈썹 아래로는 잠기운이 가득했다.살짝 헝클어진 머리에 흐트러진 차림새로 숟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 생기를 잃고 시든 꽃송이 같았다.강유영은 진국공부를 떠날 궁리를 하던 중, 문가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수저가 댕그랑 소리를 내며 식탁으로 떨어졌다.안 그래도 조원철의 등장에 가슴이 철렁했던 그녀는 그 소리를 듣고 다시금 깜짝 놀랐다.“저녁을 고작 이런 걸로 때우는 것이냐?”조원철이 찬합을 들고 다가왔다.평소 늘 엄숙한 얼굴을 하던 그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았다.촛불이 비친 그의 날카로운 눈매에는 묘하게 청명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강유영은 옷을 여미며 몸을 돌려 노골적으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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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강유영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긴 속눈썹을 내리깐 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갑자기 몸이 좀 안 좋아서요.”당시 실제로 몸이 좋지 않기도 했거니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어차피 떠날 처지에 굳이 발을 담글 이유가 없었다.조원철은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듯, 무심히 덧붙였다.“일은 내가 다 처리하였다.”강유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딱히 놀랍지도 않았다.백전백승의 대장군이자 황제의 총애를 받는 어전 지휘사, 조정의 대들보인 사내가 그 정도 일을 깔끔히 처리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이 세상에 그가 하고자 마음먹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었으니,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을 것이다.조원철이 양갈비를 집어 입가에 대어 주자, 강유영은 가만히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불그스레한 입술에 묻은 옅은 기름기가 어스름한 촛불 아래 부드럽게 반짝였다.그의 시선은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목젖이 묵직하게 일렁이더니,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나왔다.“사예를 처분한 방식은 아주 훌륭했다. 그런데 그 부러진 비녀를 바로 꺼내어 조사예를 범인으로 지목할 생각이었느냐?”“예.”강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저는 소 군주님께 접근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정자 안에 서향화가 있었으니, 그 안에 있던 세 사람의 신발 밑창에는 분명 서향화 꽃잎이 묻었을 것입니다. 저와 월아는 그렇지 않고요.”“네가 말한 것은 소은경이 중립을 지켰을 때의 결과다.”조원철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실상은 그녀 역시 조사예의 편이었지. 부러진 비녀가 네 손에서 나온 이상, 소은경은 얼마든지 네게 죄를 덮어씌울 수 있었을 것이다.”강유영은 눈을 내리깐 채 침묵했다.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명색이 군주인 소은경이 조사예와 조연화의 편에 서서 고작 양녀에 불과한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었다.설령 좌중이 결백을 눈치챈다 한들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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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이끌고 침상으로 하려고 했지만, 강유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세차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책상에 몸을 기댄 채 서너 걸음 물러선 그녀의 눈빛에는 거부감이 가득했다.‘낮에는 정인의 곁을 지키고 밤에는 아무렇지 않게 내 방에 발을 들이다니! 정말 나를 한낱 외실로 여기는 걸까.’“내일부터 며칠간 경성을 비울 것이다. 그동안 얌전히 있거라.”조원철은 다가와 강유영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서려 있었다.강유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저항을 멈추었다.어쩌면 그가 경성을 비운 사이 이곳을 영영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될 것이다.침상에 나란히 누운 뒤에도 강유영이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원철은 그저 손을 뻗어 그녀를 조용히 품에 안았다.따뜻한 온기에 취해 그녀는 어느새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그렇게 조원철이 떠나고 사흘이 지난 후에야 강유영은 그가 회남왕을 마중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더는 그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오직 경성을 떠날 준비에만 몰두했다.그녀는 일단 먼저 서준을 만나러 약방도 가보고 집에도 찾아가 봤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빌려준 은자를 돌려받지 못하면 당장 움직이기에는 어려웠다.그래도 강유영은 이 기회에 오씨 어멈을 진국공부 밖으로 빼내어, 경성 동교에 있는 단기 방 한 칸을 얻어드렸다.거동이 불편한 어멈을 위해 시녀인 서유가 매일 세끼 식사를 나르기로 했다.조원철의 귀에 조금이라도 흘러 들어갔다간 당장 내쫓을 줄 알라는 강유영의 경고에, 서유는 잔뜩 겁을 먹고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가지고 있던 소지품까지 모조리 처분해 백 냥이 안 되는 은자를 마련했다.이제 서준을 찾는 일만 남았다. 설령 그가 나타나지 않거나 은자를 갚지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단비와 함께 일거리를 구하면 되니, 오씨 어멈을 돌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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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혼자 오셨습니까?”강유영이 호기심 어린 미소를 띤 채 도경진의 주위를 살폈는데, 그의 곁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도경진은 참 선을 잘 지키는 사내였다.예전에는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더니, 오늘은 격식을 차려 소저라 칭했다.워낙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이라 그런 호칭조차 서먹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예의와 배려가 전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예, 어머니께서는 저편으로 가셨습니다.”도경진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그나저나 소저는 어찌 등불을 하나도 사지 않으셨습니까?”안 그래도 화사하고 고운 그녀의 얼굴이 사방을 수놓은 화려한 등불에 물들어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그림처럼 아름다운 눈매가 예쁘게 휘어지자, 칠흑 같은 눈동자 속으로 별빛이 반짝이는 듯했다.가히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만큼 고혹적인 자태였다.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도경진은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지금은 엄연히 남남인 처지라, 자칫 그녀의 정절과 명성에 흠집이라도 낼까 저어되었다.“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서요.”강유영은 까만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흘끗 둘러보며 생긋 웃었다.사실은 아까운 은자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 조월아의 등불만 하나 샀을 뿐이었다.이제 곧 경성을 떠나면 발길 닿는 곳마다 은자를 써야 하는데, 앞날이 어찌 될지 그녀조차도 알 수 없었다.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한 푼이라도 아껴 두어야 했다.“그렇다면 제 것을 드리지요.”도경진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숨기며 손에 든 연꽃등을 조심스레 내밀었다.“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강유영은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이제 두 사람은 예전 같은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의 호의를 덥석 받아들이기는 난처했다.도경진이 참으로 올곧고 다정한 사내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그에게 헛된 희망을 주어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았다.“이건 제가 손수 만든 것이라 시중에서 파는 등불과는 조금 다릅니다.”말을 마친 도경진은 뭔가 생각난 듯, 커다란 연꽃등 안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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