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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련 : 사랑을 탐하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41 - チャプター 50

117 チャプター

1부 사랑을 탐하다 - 에필로그 : 송향(松香)

고요한 사찰의 구석진 방.작고 마른 동자승 하나가 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앳되고 고운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담회색 승복 사이로 드러난 가슴엔 붕대가 단단히 감겨있었고, 질끈 감긴 두 눈 아래로는 창백한 입술이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문틈 너머로 낮은 속삭임이 흘렀다.“저 아이… 맹인이라며?”“쉿, 들린다.”“그런데 어쩌다 저렇게 심하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사실 사찰 사람 중 몇몇은 이미 알고 있었다.그 아이가 누구인지.얼마나 귀한 피를 타고난 존재인지.얼마 전 보름달이 뜨던 밤.은어곡에서 신성한 달의 정기를 받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마주친 상국의 정찰대를 피하려다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나뭇가지 하나가 그 왼쪽 가슴팍에 박혔었다는 것까지.그러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청운사.이곳은 상국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그런 평범한 절이 아니었다.사찰 경내에 말발굽 소리가 울려왔다.긴 수염을 늘어뜨린 장수 한 명과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광명군부 대장군 랑욱과 그의 외아들 랑하였다.그들은 죽은 아내이자 어머니를 기리는 불공을 드리기 위해, 가끔 이곳을 찾곤 했다.짐을 풀고,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 향을 올린 뒤에… 랑하는 늘 그렇듯 조용히 절 안을 둘러보았다.그러던 중, 사찰 뒷마당의 별채 안에서 동자승 하나를 발견했다.돌보는 이 하나 없는 외진 방.문틈으로 보이는 하얗게 깎인 머리, 조그마한 손.담회색 승복 사이로 보이는 피 묻은 천과 질끈 감은 두 눈.계속 불공을 드리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이름조차 모르는 그 아이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왜 그랬을까.어머니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이, 텅 빈 현궁에서 홀로 자라던 자신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 보였기 때문일까….랑하는 저녁 불공을 마친 뒤, 재빨리 그 동자승이 누워 있는 방을 찾아 다시 한번 살폈다.아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다음 날 아침.랑하는 별채를 다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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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화 : 벽운(碧雲) (1)

은어곡(銀魚谷)의 밤은 언제나 조용했다.달빛이 물 위에 내려앉으면, 계곡은 마치 세상의 끝처럼 고요해졌다.청년 하나가 조용히 그 계곡물 앞에 서 있었다.하얗게 깎인 머리.마른 몸 위의 잿빛 승복.살짝 감긴 눈매는 여인보다도 더 고와 보였다.그는 말없이, 발끝을 은빛 수면 위로 내밀며 천천히 옷고름을 풀었다.승복 저고리와 바지, 속옷까지 훌훌 벗어 바위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그렇게 청년은, 온몸으로 달빛을 받으며 조용히 물 안으로 들어갔다.손끝이, 어깨가, 가슴이… 그렇게 차례대로 천천히 잠겼다.한밤의 계곡물은 마치 얼음장 같았으나, 그의 움직임엔 일말의 떨림도 없었다.수면 위에 드리운 보름달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투명한 물살이 어느새 목 위로 올라왔다.그 순간, 계곡 건너편.검은 삿갓 아래, 날 선 눈빛을 숨긴 남자.“뭐야… 설마, 죽으려는 건가!”그는 망설임 없이 즉시 삿갓을 던져버리고, 물속으로 그대로 몸을 던졌다.“위험해!”물살이 온몸을 얼릴 듯 그대로 치고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잠긴 누군가를 순식간에 낚아채듯 끌어안았다.순간, 벽운(碧雲)은 너무나도 놀랐다.등 뒤에서 강하게 끌어안고 당기는 힘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그러나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상대의 그 품 안에서, 낯익은 향기가 피어올랐다.…젖은 소나무 향.귀를 스치는 뜨거운 숨결에 섞인, 진한 숲의 내음.그리운 아버지의 품과 닮은 따뜻한 체온.‘…아버지….’순간 벽운은, 그 낯선 이의 품속으로 더욱 깊이 고개를 파묻었다.살결과 살결이 그대로 맞닿았다.랑헌(狼獻)은 순간, 그야말로 얼어붙었다.소년 시절부터 군부에서 살다시피 하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그에게 있어, 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벌거벗은 누군가를 끌어안은 순간이었다.품 안에 들어온 것은, 저보다 체구가 작은 앳된 얼굴의 승려.소년이라고 보기에는 분명 골격이 단단했으나, 또한 사내치고는 선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유려했다.부드럽게 감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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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화 : 벽운(碧雲) (2)

변방의 늦가을 공기는 차디차고 메말랐다.랑헌은 고삐를 살짝 당겨 말을 멈추게 한 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검고 탐스러운 머릿결이 바람에 일렁이며 어깨를 스쳤다.스무 살 초반.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얼굴 위로, 날카로운 눈매와 매끄러운 콧날이 빛과 그림자 사이를 가르며 서늘하게 떠올랐다.그 조용한 시선 속에는, 무언가를 꿰뚫고자 하는 집요한 빛이 번득였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저 거친 바람에 부대끼며 바스락거리는 산등성이.그 아래로, 이미 잊힌 지 오랜 성곽이 모래집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월성(月城).한때는 ‘백호부(白狐府)’라는 이름으로 번영했던 곳.그러나 지금은, 과거 영광의 흔적이 전혀 없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그의 머릿속에는 감찰부에서 받은 비밀 임무가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백호족 순혈을 찾겠다며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무리가, 주로 월성과 단성(丹城) 일대에 자주 출몰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극동으로 가지 않고 남은 잔당으로 추정된다. 감영사(監影使) 랑헌, 명을 받들라.”“명령하십시오!”“마침, 월성 도위 랑하가 황상의 명으로 북쪽 국경을 순시 중이다. 즉시 월성으로 가서, 그 주변 인물들과 백호족 잔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라.”“명, 받들겠습니다!”상국 군부 감찰부 감영사, 랑헌.감영사(監影使)는 백호족(白狐族, 흰 여우 부족) 관련 정보 수집 및 잠입 임무를 전담하는 비밀스러운 직책이었다.월성 도위, 랑하.같은 현랑족(玄狼族, 검은 늑대 부족)임에도 일개 평민인 자신과 달리, 귀족 중에서도 귀족인 자.그는 감찰부 문헌에서 본 랑하에 대한 기록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상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랑욱(狼旭) 대장군의 외아들.랑하 본인도 한때 광명군부(光明君部)의 대장군이었고, 상국에서 적수가 없는 검신(劍神)이었다.백호족과 얽힌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흰 여우에 홀려 미쳐 버렸다’라는 풍문을 남긴 채 이곳 변방까지 밀려난 자.그러나 항간에는 그가 좌천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단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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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화 : 벽운(碧雲) (3)

달이 산등성이 위로 몸을 올리기 시작할 무렵, 랑헌은 다시 청운사 경내에 가만히 발을 들였다.천년고찰이었지만, 별로 크지 않은 아담한 절이었다.대숲에 둘러싸인 그곳은, 밤이 되니 더욱 깊은 정적을 품고 있었다.후원의 대나무는 서로 부대끼며 풋풋한 향을 내뿜었다.연못가에 떨어진 댓잎 하나가 잔물결을 타고 달 그림자를 흔들었다.그때.연못 앞에 가만히 무릎을 모은 채 앉아 있는 한 사람.둥글게 깎인 머리와 고요하게 감긴 눈.랑헌은 그가 제 또래임은 이미 알고 있었다.저처럼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 터.그의 얼굴은 아직도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채, 곱고 여린 인상을 머금고 있었다.축축한 공기 속에서 풍겨오는 익숙한 냄새.젖은 듯 맑고 비릿한 향이, 맘속 어딘가를 자극했다.랑헌의 가슴이 이유 없이 서늘하게 조여왔다.그는 그 기묘한 감각을 억지로 억누르려는 듯, 숨을 천천히 가다듬었다.그 순간.그 젊은 맹인 승려는 무표정하게 손을 더듬어 지팡이를 들었다.그러고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일어나, 발소리만을 남긴 채 연못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졌다.눈을 감은 채였지만, 마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여유가 있어 보였다.랑헌은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얼어붙었다.그에게 어떻게 다시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진 탓이었다.“…시주께선, 벽운 스님께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등 뒤에서 들려온 노승의 목소리.청운사의 주지승이었다.랑헌은 천천히 돌아보며, 부러 평온한 표정을 가장했다.“아닙니다, 스님. 다만, 눈을 감고 계시기에….”“벽운 스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으셨다지요.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도(道)마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랍니다.”랑헌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가볍게 숙인 뒤, 다시 그가 사라진 안뜰 너머를 바라보았다.연못가는 비어 있었지만, 달빛과 함께 풍겨오던 그 존재의 잔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정말로 아무것도 못 보는 건가?’관찰자의 본능이 경계와 호기심 사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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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2화 : 명인(明仁) (1)

청운사의 후원.대숲 너머로 불어오는 밤바람에, 연못 표면이 출렁거렸다.맑고 얕은 물 위로 푸른 달빛이 스며들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은은한 빛과 그림자가 얽혀 흘렀다.그 고요한 연못가에, 여전히 벽운이 홀로 앉아 있었다.조용히 감긴 눈.숨결 하나, 미세한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는 정적.마치 바람결조차 그를 피해 가듯, 한낱 인간의 것이 아닌 무언가 신성한 기운이 그를 은은하게 둘러싸고 있었다.그의 자세는 사실, 단순히 ‘앉아 있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등을 곧게 세우고 무릎을 모은 채, 대지와 하늘의 중심에 자신을 맡긴 듯한 모습.그 자체로 하나의 경문이었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 기도문 같았다.둥글게 깎인 머리 아래 드러난 하얀 목덜미와 귓가의 곡선은 아직 소년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미처 영글지 못한 서투른 기운이, 그를 더욱 고귀하게 보이게 했다.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고요한 숨결 너머로 작은 진동이 있었다.자세히 봐야 보이는, 투명한 살갗 아래의 맥박.함부로 드러나지 않는, 부러 감춘 보석 같은 기운.랑헌은 마치 한 장의 그림을 감상하듯,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명인’이라는 이름의 일꾼으로 절의 자잘한 일을 도맡고 있었다. 그간 벽운의 주변을 맴돌기만 했으나, 오늘은 처음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하였다.“실례합니다.”그가 부드럽게 말을 건네자, 벽운이 고개를 들었다.감은 눈 너머로 느껴지는 낯익은 기척.그리고 익숙한 향.“…누구십니까?”“절에서 잔심부름하고 있는 명인이라 합니다. 늦은 시간에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스님.”“아, 명인 시주님…. 이 밤중에 후원까지 사람이 오는 일은 드문지라….”벽운의 말투는 여전히 침착했다.말끝마다 잔잔한 물결이 번지는 듯한 울림.랑헌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산중 깊은 절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그는 벽운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터앉았다.“…혹시, 며칠 전 은어곡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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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2화 : 명인(明仁) (2)

그 순간, 벽운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그건….”잠시 망설이던 그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신의 품이…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습니다.”“…익숙했다고요?”“네…. 퍽 따스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어머니의 품처럼… 나를 꾸짖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온도였습니다.”랑헌의 눈동자가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팍에 닿던 피부의 감촉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그때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 따스함을… 다시는 마주할 수 없을까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안겼습니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서….”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감긴 눈가 주위로 붉은 기운이 스쳤다.“그저 그렇게,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신분도, 마음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출가 인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번 송구합니다, 명인 시주님.”랑헌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벽운을 바라보았다.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모습이었지만, 눈뜬 사람보다도 더 깊은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랑헌은 결국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습니다.”자신도 모르게 꺼낸 갑작스러운 고백.벽운의 고개가 아주 살짝 그를 향해 기울었다.“그 후 사촌들 집에서 얹혀 지내면서… 내 자리는 언제나 다른 아이들보다 한 발짝 뒤였습니다.”벽운은 어느새 완전히 몸을 돌려 랑헌을 향하고 있었다.“그래서였나 봅니다. 그날, 물속에서 스님이 제게 안기셨을 때… 비록 스님께는 놓으라 했었지만, 처음으로 누군가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랑헌은 이런 말을 술술 내어놓는 자신이 오히려 낯설 지경이었다.벽운은 고요히 고개를 숙인 채 합장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그날, 시주께서 제게 손을 내밀어주셔서.”여전히 승려의 예를 갖춘 채였으나, 그 목소리에는 인간적인 떨림이 서려 있었다.둘 사이에 다시 조용한 바람이 스쳤다.멀리 대숲이 흔들리고, 연못가의 물결이 다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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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3화 : 동요(動搖) (1)

청운사 후원 산기슭의 온천.사람들이 다 잠든 한밤중, 어두운 목간(沐間)의 문이 미끄러지듯 조용히 열렸다.가늘고 차가운 밤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었다.그 순간,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뜨거운 김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차가운 대숲의 숨결이 들어와 김을 걷어내자, 뜨거운 물 속 깊숙이 배어 있던 향이 다시 밀려 올랐다.따뜻하고 습한 연기.…그러나 그 속에 어렴풋하게 섞여 있는 수상한 기운.벽운은 바로 알 수 있었다.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는 공간.그러나 그 속에 분명히 ‘누군가’가 있었다.자신을 애써 감추려는 그자가 무엇보다도 가릴 수 없는 것은… 진한 나무 향기.살갗으로부터 천천히 흘러나와 뜨거운 물과 엉켜 흐르는 강한 체취.그 향은, 낮게 가라앉은 숨결보다도 먼저 벽운의 감각을 두드렸다.‘…이런, 그자구나.’젖은 소나무와도 같은 사내의 강한 체취.그것은 뜨거운 증기와 만나, 이미 좁은 목간에 자욱했다.그러나 벽운은 물러나지 않았다.아니… 뒷걸음질 칠 수가 없었다.도리어 고개를 당당히 들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여기서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의심을 부를 일.평범한 맹인의 연기를 하고 있는 이상, 그는 그 무엇이든 보아서는 안 되고, 알아차려서도 안 됐다.벽운은 긴장으로 손끝이 조여왔지만, 애써 담담하게 승복의 옷고름을 풀었다.뜨거운 김이 어느새 어깨에 닿은 뒤, 진주알처럼 맺혔다.어두운 공간이었지만, 피부가 스스로 빛을 내뿜듯 얇은 윤곽이 그려졌다.말라 있으되 단단한 골격.습기에 젖은 목덜미로부터 등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랑헌은 물속에 몸을 담근 채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 수도 없었다.그러나 벽운의 몸이 드러날수록,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승려라는 단어가, 맹인이라는 말이… 그 어느 것도 그의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은어곡에서 그의 나신(裸身)을 급하게 안아 올렸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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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3화 : 동요(動搖) (2)

목간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벽운의 모습이 사라졌다.“하아….”그제야 랑헌은 겨우 붙잡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수증기에 어린 열기가 점차 식어가는데도, 그의 심장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이건 아니지.’그는 젖은 손으로 천천히 이마를 덮었다.그리고 물속 깊숙이 고개를 묻은 채,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하지만 이미… 벽운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후였다.그의 고요하고 섬세한 몸짓.젖은 살결을 따라 흘러내리던 물줄기.마치 숨결처럼 가벼운 떨림들….“…모른 거야. 당연히, 내가 있는 줄 몰랐던 거야….”하지만 그 말은 공허하게 흩어졌다.그건 분명 눈이 먼 자가 내보인 무심함이 아니었다. 분명 알면서도 침묵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침착함이었다.그는 정말로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을는지도 모른다.본시 맹인이란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해지는 법 아니던가.…그래서 더 견딜 수 없었다.결국 자신이 그의 앞에서, 불온한 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을.그제야 등줄기를 타고 한 줄기 냉기가 흘렀다.“…내가 지금 뭘 한 거지.”자괴감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그 짧은 찰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잠입했고, 어떤 임무를 지고 있는지조차 완전히 잊고 있었다.그저 그 살결의 색감과 움직임 하나하나, 숨결과 향기에… 본분도, 이성도, 그저 모두 흐려져 버렸다.벽운이 가버린 지금도, 그저 그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그런데 몸속 어딘가, 깊은 데서부터 부글부글 솟구치는 또 다른 감각이 있었다.그제서야 랑헌은, 제 아랫도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것은… 그가 태어나서 처음 품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었다.‘하아, 랑헌… 이 미친놈아.’순간 솟아나는 부끄러움이 죄책감이 되고, 죄책감은 곧 수치심이 되었다.랑헌은 혀끝이 씹힐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백옥처럼 흠 없는 스님의 몸에 눈길을 주었다는 자각,맹인의 몸을 훔쳐보았다는 죄의식.그러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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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4화 : 균열(裂縫) (1)

대숲을 덮은 옅은 안개가 천천히 걷혀갔다.청운사 후원으로 이어지는 돌계단.그 위를 오르는 랑헌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느리기만 했다.그는 사실 한숨도 자지 못했다.밤새도록 눈을 감은 채, 수면 위로 일렁이던 벽운의 하얀 피부를 떠올렸다.수증기를 타고 풍겨오던 맨살의 향기.등골 사이에 맺힌 물방울.처음엔 떨쳐내 보려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갈증처럼 번지던 열기는, 결국 그의 의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랑헌은 밤이 다 지나가도록 벽운을 머릿속에서 안고 또 안았다.그렇게 몇 번이나 홀로 욕망을 흥건하게 흘려낸 뒤에도, 몸 안에 남은 잔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는 지금도, 그 죄의식과 잔상이 가라앉지 않은 채였다.랑헌은 그렇게 고요한 대숲의 새벽 속에서, 홀로 발이 가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변함없는 대숲과 여전한 연못.그리고… 한결같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가만히 눈을 감고, 늘 그렇듯 반듯하게 정좌한 자세.그러나 그를 보는 순간, 숨을 다시 한번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아직도 여전히 온몸에 남아 있는 열기.터질 듯 뛰는 심장.머릿속으로는 이미, 그에게로 달려가 그 가녀린 몸을 끌어안고, 미칠듯한 입맞춤을 퍼붓고 있었다.랑헌은 역시 부인할 수가 없었다.이 모든 기이한 감각의 원인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청아하게 앉아 있는, 바로 저 사람이라는 것을.“…명인 시주시군요.”낮고 조용한 목소리.랑헌은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킬세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밤새도록 머릿속에서 더듬으며 따라갔던 곡선 하나하나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 다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밤새 그의 온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입술로 삼키고, 제 숨결로 물들였던 기억.전율하며 토해낸 욕망의 흔적, 그 죄의식이…지금, 이 아침에 그를 마주한 순간… 다시금 피어나고 있었다.그 순간 벽운은, 굳이 눈을 떠서 확인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명인의 시선이, 노골적이고 맹렬하게 자신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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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4화 : 균열(裂縫) (2)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듯한 불길이었다.산과 들 전체가 맹렬한 불에 휩싸여 있었다.군사들의 비명, 말의 울음, 칼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귀신같은 그림자가 산 능선을 넘어, 거대한 짐승처럼 밤하늘을 가로질렀다.그는 분명 인간이었다.그러나 사람들의 목이 날아가고, 핏빛 연무 사이에서 그 푸른 눈이 빛날 때마다… 랑헌의 눈에는 그저 그가 괴물처럼 보였다.“후퇴하라! 아이를 지켜…!”아버지의 찢어지는 외침.랑헌은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손에는 작은 칼 하나.조그만 몸에는 묵직한 갑옷도 덧입혀져 있었다.그러나 아버지를 향해 뛰어가던 그 순간… ‘쩍’하고 그의 검은 그림자가 반으로 갈라졌다.동시에 눈앞을 덮으며 지나치는 수백, 수천 가닥의 은백색 머리카락.그리고 터져 나오는 피.아버지가 서서히 무너졌다.흙바닥 위로 피가 쉼 없이 흘렀고, 그 핏속에서 은빛 머리카락 또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아, 안 돼요, 아버지…!”어린 랑헌이 다급히 아버지를 부르자, 그 백호족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동공이 텅 빈 푸른 눈.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얼굴.분노도, 죄책감도 없었다.…그저, 입가의 싸늘한 미소.그 순간,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며 이 모든 걸 태워버렸다.“…허어억!”외마디 비명이 방 전체에 울렸다.랑헌은 격한 숨을 토하며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다행히도 이곳은, 불길에 휩싸인 전장이 아니었다.그저 청운사 어느 구석, 절간의 일꾼들에게 할당된 허름한 숙소 안.들뜬 숨이 가라앉지 않고 거칠게 오갔다.땀으로 흠뻑 젖은 이불.그 아래, 채 식지 않는 열기.제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까지 울렸다.랑헌은 그대로 얼굴을 감싼 채… 한동안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앉아 있었다.꿈은 겨우 끝났지만, 그 안에 퍼지던 불길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그의 정신을 태우고 있었다.“또 이 빌어먹을 놈의 꿈이냐….”입술이 어느새 죄다 바싹 말라 있었다.“…대체 언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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