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Chapter 161 - Chapter 170

179 Chapters

161화

막사의 두꺼운 휘장이 닫히자마자, 엘런은 타티아나를 거칠게 침상 위로 팽개쳤다덜컹, 쇠로 된 간이침대가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흐윽……!”“기어코 날 이 꼴로 만들어? 군부 앞에서 내 체면을 바닥에 처박아?”엘런이 숨을 몰아쉬며 단숨에 제 허리춤의 가죽 벨트를 풀어 내렸다. 찰싹, 거친 가죽이 침상 기둥을 때리는 소리에 타티아나의 어깨가 경기하듯 튀어 올랐다.그녀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뒤로 물러서려 하자, 엘런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발목을 낚아채 앞으로 난폭하게 끌어당겼다.“어딜 피해, 천박한 년이.”“제, 제발…… 엘런……!”“입 닥쳐. 네년의 그 역겨운 주둥이에서 내 이름을 올리지 마.”찌익-!무자비한 악력에 타티아나의 얇은 드레스 앞섶이 단숨에 찢겨 나갔다. 서늘한 공기가 드러난 목덜미와 쇄골에 닿는 순간, 엘런의 묵직한 체중이 그녀의 위를 짓눌렀다.그는 손에 쥔 가죽 벨트로 타티아나의 겹쳐진 두 손목을 단숨에 옭아맨 뒤, 차가운 침상 헤드의 쇠창살에 칭칭 감아 거칠게 버클을 채웠다. 버둥거릴 틈조차 주지 않는 잔인하고 익숙한 구속이었다.“흐으…… 흑, 놓아주세요…….”“묻는 말에나 똑바로 대답해. 카시안 그 개새끼가…… 네년의 어디까지 만졌지?”“……아무 일도, 없었어요. 맹세해요……!”“거짓말하지 마!”엘런이 한 손으로 타티아나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숨이 턱 막힌 타티아나의 입술 사이로 파리한 비명이 터졌다.엘런의 얼굴이 광기와 변태적인 호기심으로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 놈이 널 손 하나 안 대고 곱게 돌려보냈다고? 네가 다리를 벌리지 않았는데 그놈이 왜 널 살려 보내!”“아, 악……! 아니에요, 제발…… 큭!”“말해. 그놈 밑에서도 이렇게 헐떡였나? 내 밑에서 빌어대던 것처럼, 그 황제 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네 그 음란한 몸뚱이를 비벼댔냐고!”엘런의 거친 손이 찢겨진 옷감 사이로 파고들어 그녀의 허벅지를 멍이 들도록 쥐어짰다. 고통과 모멸감에 타티아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엘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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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엘런의 막사를 뒤흔들던 잔혹한 파열음과 억눌린 비명이 멎고, 진영 위로 내려앉은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이었다.막사 주변을 지키던 병사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굳어 있었고, 타오르는 횃불 아래로 짙은 환멸이 번져 나갔다.“……이게 제국의 사절단을 맞이한 총사령관의 진영인지, 인간 도살장인지.”“사절 하나 제대로 감당 못 해 총질을 하려 들더니, 기껏 분풀이한다는 게 저런 짓거리라니.”“벨모어 전하도 저 꼴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말 한마디 얹지 않으시다니. 이러면 벨모어 전하께서 황위를 이어도 문제 아니야? 더 미쳐서 날 뛸 거 아니야.”수군거림이 바람을 타고 은밀하게 퍼져 나갈수록, 어둠 속에 서 있던 벨모어의 턱 끝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정치적 명분과 위엄을 중시하는 그에게, 엘런의 이 천박한 광기는 서연합의 결속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독이었다.“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하.”그림자 속에서 블랑이 소리 없이 걸어 나왔다. 달빛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가 벨모어의 일그러진 옆얼굴을 흥미롭게 훑었다.“저 비효율적인 동생분께서, 전하의 고결한 명분마저 진흙탕에 처박고 있다고.”“……입술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블랑 백작. 너와 드라켄의 협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전하께 먼저 가벼운 성의를 보여드릴까 합니다.”블랑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본격적인 체스를 두기 전에, 전하의 눈길을 거슬리게 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부터 제 손으로 치워드리지요.”“……무슨 수로?”“전하께서는 그저 방관만 하시면 됩니다.”벨모어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블랑을 꿰뚫을 듯 응시했다. 욕망과 의심 사이에서 치열하게 주판알을 튕기던 벨모어는, 이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아침, 진영을 가르는 날카로운 나팔 소리가 막사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벨모어가 주재하는 긴급 군사 회의 소집령이었다.엘런은 짜증을 내며 군복을 꿰입고는 막사를 거칠게 나섰다.엘런의 발소리가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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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잠시 후, 거친 발소리와 함께 막사의 휘장이 걷히고 엘런이 들어섰다. 회의 내내 벨모어에게 또다시 무시를 당하고 온 것인지, 그의 미간에는 신경질적인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타티아나는 본능적으로 돋아나는 소름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놓인 서늘한 와인 잔을 들어, 완벽하게 길들여진 순종적인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전하…….”완전히 굴복한 듯, 미세하게 떨리는 타티아나의 목소리에 엘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는 턱을 치켜들며 타티아나가 내민 잔을 받아 들었다.“그래. 이제야 누구 밑에서 기어야 하는지 주제 파악이 좀 되나 보지?”타티아나는 치밀어 오르는 살의를 눈웃음 아래로 완벽하게 감춘 채, 엘런의 가슴팍에 조심스레 뺨을 기대었다.“……당신의 기분을 좀 풀어드리고 싶어서, 낮에 블랑 백작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왔어요.”“뭐? 그 계집과 네년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엘런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타티아나는 짐짓 매혹적인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그녀가…… 어제 이곳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매우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그럴 만도 하죠. 이곳에 붙잡혀 와서는 내내 홀로 밤을 보내야 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은밀한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 함께 전하를 모시는 건 어떠냐고요. ”잔을 쥔 엘런의 커다란 손이 우뚝 멈췄다.“오늘 밤, 셋이 어때요?”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천박한 허영심과 욕정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그 여자가, 그걸 받아들였다고?”타티아나가 엘런의 목을 부드럽게 감아안으며 쐐기를 박았다.“그럼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걸요. 듣자 하니 당신에게 아주 오만방자하게 굴었다면서요. 이번 기회에 당신 밑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우는지, 당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세요.”타티아나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그 음란하고도 치명적인 제안에, 엘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낮고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하하하! 네년이 드디어 쓸만한 짓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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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하! 이 계집이 단단히 미쳤군. 감히 내가 네년 밑에 묶이라고?”“끝까지 들어봐요.”살기 등등한 엘런의 반응에도 블랑은 여유롭게 웃으며 그의 단단한 어깨를 쓸어내렸다.“어차피 나 같은 연약한 계집이 묶어봤자, 전하의 힘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내가 어설픈 주인 흉내를 내다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때는 당신이 이 가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겁 없이 주인 행세를 한 이 건방진 노예를 마음껏 벌주면 되잖아요.”엘런의 눈매가 움찔했다. 블랑의 붉은 입술이 조롱하듯, 그러나 몹시 매혹적인 호선을 그렸다.“주인 흉내를 제대로 못 내서, 분노한 진짜 주인에게 잔혹하게 짓밟히고 길들여지는 노예. ……전하의 취향에 딱 맞지 않나요?”그 순간, 엘런의 눈동자가 기괴한 욕정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단순히 반항하는 여자를 짓누르는 것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그래, 기꺼이 네년의 그 시시한 장단에 놀아나 주지.’“하, 건방진 계집. 좋아. 네년이 감당하지도 못할 짓을 벌인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지 똑똑히 가르쳐주마.”엘런은 실소를 터뜨리며 거칠게 제복의 벨트와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던지고는, 기꺼이 두 팔을 뒤로 뻗었다.그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던 타티아나의 눈동자에 짙은 경외와 서늘한 자각이 스쳤다. 평생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유린했던 저 끔찍한 인간을, 블랑은 혓바닥 하나로 너무도 유려하게 옭아매고 있었다.‘저게 카시안이 선택한 여자…….’만약 드라켄에 남아 저 여자와 총애 다툼을 벌였다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타티아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 속에서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다.‘오늘 밤 이 사냥이 끝나면, 기꺼이 저 여자의 발밑에 엎드리자. 무슨 짓을 해서든 저 여자의 사람이 되어야만 나와 내 아들이 살아남아.’그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어미이자, 막 살의에 눈을 뜬 그녀가 본능적으로 직감한 완벽한 복종 선언이었다.그때, 허공을 가르며 블랑의 나른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타티아나. 평소 전하께선 어떻게 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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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타티아나의 젖은 목소리가 엘런의 귓가에 나직하게 내려앉았다. 어젯밤, 그가 그녀의 몸을 짓누르며 내뱉었던 바로 그 끔찍한 비웃음이었다.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소름이 번졌다. 욕정에 마비되었던 엘런의 뇌리가 단숨에 차갑게 식었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었다. 이상이 생겼음을 직감한 그가 입을 쩍 벌려 호위병을 부르려던 찰나였다.“읍, 으읍-!”블랑이 억센 손아귀로 뭉쳐둔 두꺼운 천을 엘런의 입안에 우겨 넣고 턱을 거칠게 틀어막아 버렸다. 찢어질 듯한 비명은 입안에서 맴돌다 끔찍한 파열음으로 부서졌다.덜컹! 덜컹!쇠로 된 간이침대가 엘런의 처절한 발버둥에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막사 밖의 경비병들에게 그 소리는 그저 격렬하고 변태적인 정사의 흔적으로 들릴 뿐이었다.결박된 두 팔의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고, 눈가리개 아래로 공포에 질린 핏대가 솟구쳤다. 엘런의 명치를 짓누르고 올라탄 타티아나는 한계까지 치켜든 단검을 꽉 쥐고 있었다. 어젯밤 드레스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에는 엘런이 남긴 시퍼런 멍 자국이 선명했다.수천 번 되뇌었던 살의가 칼끝에 응집되었다. 타티아나의 눈동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시퍼런 광기가 번뜩였다.“죽어.”푹-!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타티아나의 단검이 엘런의 목구멍 깊숙이 파고들었다.“커윽, 으으읍……!”뜨거운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타티아나의 창백한 뺨과 드레스를 붉게 적셨다. 엘런의 거대한 몸뚱이가 고통으로 펄떡이며 침상을 부술 듯 요동쳤지만, 블랑이 틀어막은 입술 새로 새어 나가는 것은 기괴한 쇳소리뿐이었다.타티아나는 칼자루를 쥔 손에 체중을 싣고 더 깊게, 더 잔인하게 칼날을 비틀었다. 어젯밤 자신이 겪어야 했던 그 끔찍한 유린과 질식의 고통을 고스란히 돌려주듯, 그녀의 두 손에는 지독한 원념이 서려 있었다.점차 엘런의 펄떡이던 발버둥이 잦아들었다. 침상 기둥을 부여잡고 핏줄이 터지도록 당겨지던 두 팔이 마침내 무력하게 툭 떨어졌다. 막사를 가득 채웠던 끔찍한 진동이 멎고, 오직 기도가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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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광기 어린 함성이 밤하늘을 뒤흔들고 난 뒤, 엘런의 시신은 벨모어의 명을 받은 병사들에 의해 거적에 싸여 실려 나갔다.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막사 안에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무거운 정적만이 남았다. 블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가운을 주워 걸치며 차분하게 옷매무새를 정돈했다.그때였다.툭, 소리와 함께 피투성이가 된 타티아나가 블랑의 발치에 두 무릎을 꿇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살인의 흥분과 공포로 어깨는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고개를 들어 블랑을 올려다보는 눈빛만은 소름 끼치도록 또렷했다.“……나와 내 아들을 거두어 주십시오.”타티아나는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깊게 머리를 조아렸다. 블랑은 옷끈을 묶던 손을 멈추고, 제 발밑에 납작 엎드린 여자를 내려다보았다.“이상하네요. 이 일을 성공하면 카시안이 복권을 약속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내게 굳이 그런 부탁을 하죠?”블랑의 의아한 물음에 타티아나가 피 묻은 입술을 달싹이며 자조 섞인 숨을 토해냈다.“얀은…, 아니 카시안 폐하에게 저는 이제 그 무엇도 아니니까요. 황제의 비호도, 가문도 힘도 없는 귀족 자리는 그저 허울 뿐이라는 걸 저는 알거든요. 공을 인정 받아서 드라켄에서 귀족으로 산다고 해도 제 아들이 엘런의 핏줄이라는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그 꼬리표는 그 다음 대에도 따라다니겠죠.”타티아나가 고개를 들어 블랑의 맨발 끝에 입을 맞추듯 바짝 다가앉았다.“게다가 오늘 밤 똑똑히 보았습니다. 내 손에 직접 복수의 칼을 쥐여준 구원자가 누구인지. 저의 진짜 은인은 당신이죠.”블랑의 붉은 입술에 만족스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그녀는 가볍게 무릎을 굽혀 타티아나의 피 묻은 뺨을 손등으로 툭 건드렸다.“영리하네. 마음에 들어.”“옆에서 당신을 모시게 해주세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그렇다면 너는 이곳에 남아.”타티아나의 눈동자가 버림받았다는 불안감으로 크게 흔들렸다. 블랑은 당황한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낮고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네 아들은 아직 드라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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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블랑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일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안아 올렸다.불바다가 된 서연합의 진영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쏘아져 나간 그의 속도는 인간의 것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스치는 밤바람이 살갗을 벨 듯 사나웠으나, 그는 자신의 넓은 품으로 블랑을 빈틈없이 감싸 안아 찬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했다.얼마나 달렸을까. 쫓아오던 병사들의 함성이 아득히 멀어지고, 타르티스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인 ‘검은 안개 숲’의 거대한 나무들이 시야를 뒤덮었다. 삼국의 영토가 맞닿은 이 완충 지대는 흉포한 마수들이 득실거려 누구도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마경이었다.크아아아앙-!아니나 다를까, 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고목들이 부러지며 집채만 한 크기의 마수가 아가리를 벌린 채 덮쳐 왔다. 시커먼 독기를 뚝뚝 흘리는 고위급 마수였다.하지만 카일의 걸음은 단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수축하는 순간, 허공을 가른 검신에서 다시 한번 맹렬한 진홍빛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콰아아앙!단 일격에 마수의 거대한 머리가 재로 변하며 폭발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직후였다. 불길에 휩싸인 마수의 심장부에서 마정석이 뒤틀리며 터져 나오더니, 검붉은 연기가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확 퍼져 나갔다.“윽……!”카일이 반사적으로 망토를 펼쳐 블랑의 얼굴을 가렸으나, 죽어가는 마수가 마지막으로 토해낸 고농도의 ‘음기(陰氣)’ 일부가 얄궂게도 블랑의 호흡 속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아차 하는 순간, 그녀의 몸이 힘없이 휘청거렸다.“로제!”다급하게 터져 나온 외침은 블랑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그녀를 또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 앞에서, 그간 억지로 부르고 있던 가짜 이름 따위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로제를 고쳐 안고는, 숲 한가운데 자리한 바위 동굴 안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바닥에 마른 망토를 깔고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의 손끝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하아, 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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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동굴 안의 공기는 시리도록 차가웠으나, 얽혀 드는 입술과 뒤엉킨 숨결은 살갗을 데울 듯 뜨겁게 끓어올랐다.“읍, 츄릅…… 하아…….”로제의 입안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파고들던 입맞춤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에야 간신히 떨어져 나갔다. 붉게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로제가 가쁜 숨을 몰아쉬자, 그녀를 내려다보는 레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시커먼 열기로 일렁였다.챙그랑-! 레온은 숨이 막힌다는 듯 제 몸을 옥죄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흉갑과 검대를 거칠게 뜯어내 바닥으로 내던졌다. 바위에 쇳덩이가 부딪치는 둔탁한 파열음이 동굴 안을 울렸다. 스산한 밤바람 속에서 드러난 그의 거대한 상체가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로제.”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신음과 함께, 사내의 거친 손길이 그녀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얇은 가운을 단숨에 벗겨냈다.“하, 으흣……!”얇은 가운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리기 무섭게, 거친 호흡을 토해내던 레온이 로제의 하얗게 드러난 발목을 거칠게 낚아챘다.우악스럽고 단단한 손아귀가 가느다란 발목을 그러쥐고 단숨에 그녀의 두 다리를 제 허리 양옆으로 벌려 놓았다. 바닥에 깔린 망토 위로 로제의 등이 닿는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며 덮쳐왔다.“흐…… 레온, 잠깐……!”당황한 로제의 숨이 멎기도 전, 다시금 거칠게 맞물린 입술 사이로 타들어 갈 듯 뜨거운 혀가 사정없이 얽혀 들었다.단순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타액이 턱 끝을 타고 질척하게 흘러내릴 만큼, 마치 숨을 모조리 빨아들여 삼켜버릴 듯 폭력적인 포식이었다. 그가 숨을 들이켤 때마다 드래곤의 순수한 열기가 폐부 깊숙이 쏟아져 들어와, 혈관을 어지럽히던 탁한 음기를 매섭게 밀어냈다.“하아, 하…… 로제, 제발…….”입술이 겨우 떨어지자마자, 레온은 핏발 선 황금빛 눈동자로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나신을 훑어내렸다. 그의 손등 위로 굵은 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노예 검투장의 흙먼지와 피비린내를 견뎌내며 단단하게 벼려진 그의 육체는, 과거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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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구릉지 아래 도열한 드라켄의 최전선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팽팽한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그 침묵의 중심에는 선두에서 말 고삐를 쥐고 있는 카시안이 있었다. 칠흑 같은 갑주를 두른 그의 몸에서 시커먼 심연의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살벌한 기세인지, 잘 훈련된 군마들조차 거친 콧김을 뿜으며 뒷걸음질을 쳤고 주변의 기사들은 마른침을 삼키는 것조차 버거워했다.‘……너무 길어.’카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구릉지 너머 서연합의 진영을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블랑을 빼앗긴 지 고작 며칠. 철옹성처럼 틀어박힌 벨모어를 끌어내기 위해 타티아나를 밀정으로 보내고 신호를 기다리는 이 짧은 시간이, 카시안에게는 숨통을 조이는 지옥과도 같았다. 당장이라도 적진을 쓸어버리고 그 더러운 막사에서 블랑을 꺼내 와야만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바로 그때였다.부우우웅-! 와아아아아-!구릉지 너머에서 밤하늘을 찢는 듯한 진격의 나팔 소리와 함께, 서연합 병사들의 광기 어린 함성이 터져 나왔다.‘타티아나가 엘런의 숨통을 끊었군.’카시안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곧 벨모어가 전군을 몰고 이곳으로 쏟아져 내려올 터였다. 카시안이 마침내 검을 뽑아 들고 요격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였다.콰아아앙-!서연합의 진영 한복판에서 기괴할 만큼 거대한 진홍빛 불기둥이 밤하늘을 집어삼킬 듯 치솟았다. 단순한 횃불이나 마법 따위가 아닌, 어둠을 대낮처럼 밝히는 기이하고도 폭력적인 화염이었다.그리고 그 불기둥이 사그라든 순간을 기점으로,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적진의 나팔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멎어버렸다.“……어?”“뭐야, 나팔 소리가 왜 갑자기 멈추지?”창을 고쳐 쥐고 있던 드라켄의 병사들 사이에서 당황스러운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언덕을 넘어 쏟아져 내려올 것 같던 적진이 소름 끼칠 정도의 깊은 정적에 휩싸였기 때문이다.“폐하, 이상합니다! 적들이 내려오지 않습니다!”“잠깐, 저 소리는…… 퇴각하는 말발굽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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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콰아아앙-!타티아나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시안의 몸에서 폭발한 심연의 흑기가 중앙 막사를 형체도 없이 찢어발겼다.천막 기둥이 부러져 내리고 바닥의 흙먼지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타티아나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자진해서 그놈의 손을 잡았다고?”검붉게 일렁이는 카시안의 눈동자에 광기 어린 핏발이 곤두섰다.기억을 잃은 척 제 품에서 순종적으로 굴던 것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 손아귀 안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벌이는 가련하고도 귀여운 놀음이라 여겼다. 언제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승자의 여유로 기꺼이 속아주었던 것이다.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살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옛 남편이 제 발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판을 짠 치밀한 기만이었단 말인가.‘나를 이용해 서연합과 전쟁을 벌이고, 정작 자신은 레온과 손을 잡은 채 타르티스로 빠져나갔다고?’제 침소 위에서 달콤하게 흐느끼던 그 순간조차, 속으로는 옛 남편을 기다리며 자신을 비웃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머리 꼭대기까지 농락당했다는 모멸감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레온의 품에 안겨 있을지 모른다는 시커먼 질투가 카시안의 이성을 송두리째 불태웠다.“감히 날 이용해 먹고 그놈에게 돌아가……?!”피를 토하는 듯한 포효가 적막한 진영을 뒤흔들었다. 카시안은 발밑에 엎드린 타티아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대기하고 있던 군마의 등에 거칠게 뛰어올랐다.“전군, 지금 당장 검은 안개 숲으로 진격한다! 숲을 통째로 불태워서라도 두 사람을 내 앞으로 끌고 와!”이성을 잃은 폭군의 명령과 함께, 칠흑 같은 드라켄의 기마대가 타르티스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인 검은 안개 숲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같은 시각, 검은 안개 숲의 가장 깊은 곳.밤새 동굴 안을 달구었던 농밀한 열기가 가시고, 새벽의 서늘한 어스름이 내려앉은 숲속으로 로제와 레온이 모습을 드러냈다.레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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