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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개새끼의 모든 챕터: 챕터 61 - 챕터 70

78 챕터

제61화

“차도경.”턱을 괴고 테이블에 시선을 두고 있던 도경이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이미 취한 듯 풀린 눈으로 이재를 올려다보더니 놀라지도 않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이재 누나……? 누나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어떻게 된 거야, 너?”“보면 몰라? 술 마시고 싶어서 도망쳤지. 그런데 또 잡혔네.”도경이 헤헤 웃었다.그 얼굴이 어찌나 천진한지 지금 호명 가에 어떤 난리가 일어났는지 이재마저 잠시 잊어버릴 지경이었다.“나갈 거면 말이라도 하고 가지. 지금 너 없어졌다고 얼마나 난리 난 줄 알아?”“난리는 무슨. 이렇게 금방 찾아냈으면서.”“일어나. 가자.”이재가 재촉했지만 도경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일어나라니까. 얼른.”이재가 손을 내밀었다.기다리고 있는 안서희 여사를 생각하면 이럴 시간이 없었다.도경이 이재가 내민 손에 시선을 주더니 슬그머니 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어……? 야!”도경은 이재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대신 그녀를 당겨 제 옆에 앉게 했다.버둥거리며 일어서려는 이재의 어깨를 둘러 안아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뭐 하는 거야? 장난할 시간 없어.”“장난 아닌데?”“뭐?”“이왕 도망 나왔는데 좀 봐주라.”도경이 잡고 있던 이재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취기가 오른 그의 붉은 눈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온 통에 이재는 멈칫하고 말았다.“안 돼. 사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는 줄 알아?”“걱정은, 새삼스럽게.”자조적인 그 말투가 낯설어 이재는 그를 돌아보았다.도경은 저를 보는 이재와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긋 웃었다.“알았어. 엄마한테 전화할게. 그럼 되지?”도경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동시에 이재와 안서희가 보냈을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도착 음이 연달아 울렸다.도경은 안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곧장 핸드폰 너머로 안서희의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그 소리가 이재에게까지 들려왔다.정확하지 않아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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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그렇게 보는 건 도경 나름의 애교였다.하지만 이재는 그 눈에 넘어가줄 생각이 없었다.“너무한 건 너야. 어떻게 그새를 못 참고 도망을 가니?”“또 내가 잘못한 거야?”“그럼 잘한 거야?”“……미안.”도경이 순순히 꺼낸 말에 이재는 조금 놀랐다.사과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도경의 그 말을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난 왜 이렇게 잘못만 하는 거지?”“어?”“내가 무슨 짓만 하면 다들 내가 잘못했대.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뿐인데 내가 하는 건 다 잘못된 거래.”“도경아, 그게 아니라…….”“오늘도 그냥 답답해서 나온 거야. 같이 놀 친구도 없어서 혼자 있었던 건데 그걸 또 찾아내네.”도경은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만은 어쩐지 울고 있는 아이 같았다.이재는 또 그런 도경이 가여워지고 말았다.“그럼 말을 하지. 그랬으면 이 난리는 안 났을 거 아냐.”“말하면?”도경이 이재에게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들여다보듯 바라보았다.“어?”“말하면, 누나는 내 말 들어줄 거야?”“그, 그럼. 들어주지.”마주친 도경의 불그스름한 눈자위가 어쩐지 젖어 드는 것 같아 이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행여나 눈물이라도 터트리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해졌다.“거짓말.”이재의 걱정과 다르게 도경은 울음 대신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수십 번, 수백 번 말해도 안 들었으면서.”“내가 언제?”억울하다는 듯 보는 이재를 도경이 가만히 바라보았다.펄쩍 뛰며 반론할 거라 생각했던 이재는 그의 눈빛에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철부지 망나니같이 장난만 치던 녀석의 눈빛과 다른 것도 이상했다.‘차도경, 술 취했으면서. 아닌 척하기는.’이재가 갑자기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났다.도경의 옆자리에서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도경은 그런 이재를 보며 픽 웃을 뿐이었다.“오늘 수업 못 한 거 주말에 보충할 거야. 그런 줄 알아.”이재는 어색함을 감추려고 일상적인 말을 꺼냈다.도경과 나눌 얘기는 그런 것이 전부라는 듯이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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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누나 왜?”핸드폰을 보며 얼어 있는 이재를 보며 도경이 물었다.“어? 아니야.”이재는 핸드폰 액정이 안 보이게 엎어 놓으며 고개를 저었다.도언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갑자기 사라진 도경을 찾느라 다른 모든 일이 그녀의 머리를 지워낸 탓이었다.‘어떻게 그걸 잊고 있었지.’종일 도언과 만날 생각에 긴장했으면서.어젯밤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전화를 받았던 이른 아침부터 내내 그랬다.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걸 후회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시간에 당황했다.도경이 사라졌던 그 일만 아니었다면 약속 시간에 맞춰 그를 만날 수 있었다.그래서 안서희의 모욕스러운 말도 참아낼 수 있었다.그녀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으므로.그런데, 도경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지고 말았다.“누나, 왜 안 먹어? 떡볶이 싫으면 다른 거 시킬까?”“아니야, 먹어. 먹을 거야.”이재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뜨겁기만 할 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설마 아직도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 없다고 이재는 생각했다.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차도언이 자신을 그렇게 오래 기다릴 리 없었다.전화도 딱 한 통만 왔을 뿐이었다.‘그 전화를 걸고 바로 일어섰겠지. 그렇겠지, 설마…….’어차피 일방적인 약속이었다.이재는 처음부터 거절했다.그녀의 거절을 무시한 건 도언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누나 맛있지?”“어, 어. 맛있다.”입술에 양념이 묻은 줄도 모르고 헤헤 웃는 도경이 기가 막혔다.이재는 냅킨을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입 좀 닦고 먹어.”“닦아줘.”도경이 냅킨을 받는 대신 장난스레 입술을 쭉 내밀었다.이재가 기겁하며 얼굴을 와락 구기자 이번에는 상체를 숙여 이재에게 더 가까이했다.“나 닦을 손이 없어서 그래. 누나가 닦아줘.”도경이 양손에 든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어 보였다.그리고 다시 입술을 내밀었다.“정말 너……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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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도경이 브레이크 반동에 놀라서 이재를 돌아보았다.“미안.”이재는 보지도 않고 말했다.이재의 얼굴에 불안감이 맴돌았다.하필 여기서…….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도경이 함께 있었다.만약 화가 났더라도 도경이 있는 데서 말을 꺼내진 않을 것이다.특히 어제 얘기는.이재는 천천히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도경의 말처럼 앞에 도언의 차가 있었다.시동은 꺼져 있었다.그렇다면 도언이 이미 안으로 들어갔을지도 몰랐다.그러나 이재의 기대는 곧바로 무너졌다.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은 김 비서가 아니고 도언이었다.그리고 그는 그대로 서서 주차하는 도경의 차를 바라보았다.“누나, 형한테는 오늘 일 비밀이야.”시동을 끄기 전 도경이 하는 말에 이재는 어떻게 대답할지 정하지 못한 채 그를 보았다.난감한 건 도경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도언만 보면 좋아서 따라다니던 얼마 전과는 부쩍 달라 보였다.“형이 알면 엄마까지 좀……. 암튼 알았지?”“어, 그래.”이재의 대답에 안심한 듯 도경이 차 문을 열었다.“형!”사뭇 반가운 목소리로 도경이 부르자 도언이 천천히 도경에게 다가왔다.도경이 내린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을 주시하면서.“형, 이제 오는 거야?”“그래. 너는? 어디 다녀오는 거야?”“어어. 이재 누나랑…….”달칵-.운전석 문을 열고 이재가 내렸다.그 모습을 보는 도언의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마주친 눈에 이재가 얼른 눈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부회장님.”“허.”도언의 실소가 이재의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오늘 이재 누나랑 데이트했어.”“데이트?”이재를 보던 도언의 눈이 도경에게 옮겨졌다.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나 공부 열심히 했다고 이재 누나가 저녁 사줬어. 그치, 누나?”“어? 어어…….”도경의 거짓말은 꽤 어설펐으나 도언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 기색이었다.“뭘 먹었는데?”그렇게 묻는 목소리는 마치 동생의 저녁 메뉴가 궁금한 듯 사뭇 다정했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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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왠지 기운이 빠졌다.도언과의 약속에 나가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던 게 허탈해지고 말았다.그 사람에겐 상관도 없는 일인데 괜히 마음 졸인 건지도 몰랐다.분명 다행인 건데 기분이 이상했다.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은근히 화가 났다.오늘 바람맞은 건 도언이 아니라 이재 자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잘된 거지 뭐.”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핸드폰을 확인하고, 씻고 나와서도 확인했지만, 그에게선 연락이 없었다.그날 밤 잠자리에 든 이재는 까무룩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 *호명 가 안채에서 아침부터 고용인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별채에서 도언이 아침 식사를 하러 들르겠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도언이 온다는 건 식탁에 수저 한 벌만 더 놓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도언이 안채에 들르는 건 고용인들이 안서희의 히스테리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도언은 어젯밤에 미리 방문을 예고했는데 덕분에 안서희의 신경질은 아침이 되었을 때 극에 달했다.“도경이 깨웠어요? 아직도 안 일어났어?”아직 일어나지 않은 도경을 깨우러 2층으로 올라갔다.메이크업을 고치러 몇 번이나 거울 앞에 섰다가 옷을 갈아입었다.그러면서도 주방에 가서는 상을 거하게 차리지 말라고 잔소리했다.“괜히 도언이 온다고 특별하게 하지 말아요. 고작 아침 한술 뜨는데 유난 떨 거 없어. 그럼 뭐 매일 그렇게 먹는 줄 알 거 아냐.”안서희는 도언이 어릴 때 좋아했던 계란찜을 하는 조 여사에게 계란 비린내가 싫다며 코를 쥐며 얼굴을 구겼다.조 여사는 주방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아침부터 정말 피곤해 죽겠네.”그러나 안서희의 신경질도 도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거실 창에서 도언이 정원을 가로질러 오는 것을 본 그녀는 표정을 바꾸었다.호명 가의 안주인이자 어쨌든 그의 어머니로서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도언이 왔니.”“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니.”도언이 말끝에 붙인 어머니 소리에 안서희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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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도언은 풀썩 웃음을 내뱉었지만, 표정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도경이 말을 이었다.“이재 누나 일에 예민한 거 같아서.”도언이 잠시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빤히 도경을 보았다.“예민하다라……. 그럼 좋아하는 건가?”“뭐, 대충 그런 거 아닌가?”도경이 숟가락을 들며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아님 다행이고.”다행이다, 라는 말이 도언의 귀에 거슬렸다.그런 말을 내뱉고 도경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밥을 먹으며 도언의 시선을 무시했다.“도경아! 말 되는 소리를 해.”듣고 있던 안서희가 도경을 나무라듯 말을 건네며 자못 긴장감이 돌던 분위기를 흩트렸다.“어디 붙일 데가 없어서 그런 사람을 도언이한테…….”“이재 누나가 어때서?”벌컥 짜증 섞인 말투로 돌아보는 도경을 식탁 밑으로 쥐어박으며 안서희가 그만 말하라고 눈치를 보냈다.“이재 누나가 훨씬 아깝지.”중얼거리는 소리였지만 도언이 못 들을 리 없었다.그러나 더 대꾸하지 않았다.“아버지 곧 퇴원하시는데 여행이라도 다녀오시죠.”“여행?”안서희가 도언을 반짝 올려다보았다가 표정을 감추었다.“여행은 무슨. 회장님 오래 쉬셔서 회사 일로 바쁘실 텐데.”“회사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안서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도언이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느긋하게 올렸다.“두 분이 오랜만에 좋은 시간 보내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도경이 시험도 얼마 안 남았잖아.”안서희가 애써 거절하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아니야, 엄마. 나는 이재 누나 있잖아.”“그래도 그건 아니지.”“이재 누나가 봐주는데 뭐가 걱정이야. 안 그래 형?”도경이 도언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웃음기는 사라진 얼굴이었다.“그래.”도언이 도경의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재는 습관처럼 수신 확인 버튼을 눌렀다.「읽지 않음」며칠째 도언에게 보낸 보고서는 읽지 않은 상태로 쌓여 있었다.“뭐야…….”허탈함이 지나쳐 조금 조바심이 났다.며칠 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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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토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이었다.도경의 수업이 토요일에만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처음 쉬는 날 없이 시간표를 짰을 때 도경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떼를 부렸다.그 바람에 토요일 하루를 비웠다.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했지만 덕분에 이재도 하루를 쉴 수 있게 되었다.저녁에 동기 모임에 나가는 것 빼고는 일정이 없었다.모임에 가기 전에 일찍 나가서 미용실에라도 가볼까, 아니면 옷이라도 사볼까 생각했다.오랜만에 나가는 모임이었으므로 아무렇게나 하고 나가고 싶지 않았다.징-.짧게 울리는 진동음은 문자 알림이었다.[한 선생, 사모님 호출.]조 여사의 문자였다.이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이재는 답을 보내고 안채로 건너갈 준비를 했다.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 *“한 선생. 아니 이제 한 대리라고 해야 하나?”안채로 들어가자 안서희가 눙치듯이 말을 하며 소리높여 웃었다.“편하게 불러 주시면 됩니다.”“도언이가 하도 뭐라고 해서.”도언의 이름이 나오자 이재는 저도 모르게 안서희를 보았다가 이내 눈을 내렸다.그녀의 눈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을 훑어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쉬는데 불러서 미안해요.”“아닙니다.”이재는 잠자코 안서희의 말을 기다렸다.평소보다 기분이 좋은지 안서희의 얼굴이 밝은 게 어쩐지 더 불안했다.그녀가 변덕을 부리는 날이 결코 좋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오늘 저녁에 시간 좀 어때요?”방금 고용인이 두고 간 찻잔을 들어 향을 맡듯이 코를 대고 안서희가 무심하게 물었다.시간이 있냐고 묻고 있었지만 이재의 스케줄 따위는 상관없다는 걸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말투였다.오늘 저녁엔 약속이 있었다.하지만 이재는 이미 안서희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리라 짐작했다.그러니 약속이 있다는 얘기는 할 필요도 없었다.“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시키다니 무슨 그런 말을. 부탁.”안서희가 생긋 웃어 보였다.이재는 그녀와 마주친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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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이재는 안서희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차를 대고 기다렸다.호명 가의 주택 단지와는 다른 고급 빌라 단지 앞이었다.도언과 선을 볼 여자는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 대표의 딸이라고 했다.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을 전공하다가 미술로 전공을 바꿨다고 했던가.능력과 재능을 겸비한 아가씨라고 안서희가 말했다.“능력과 재능…….”이재는 안서희가 했던 그 말을 씁쓸하게 되뇌었다.그 말은 왠지 부와 배경이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자신과는 전혀 맞닿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말이었다.시간을 계산해 봤다.7시까지 약속 장소에 여자를 데려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그러면 동기 모임에 조금 늦더라도 참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동호에게 조금 늦을 거라고 미리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빌라 입구 쪽을 바라보는 이재의 눈에 한 여자가 걸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긴 머리에 투피스를 입은 가느다란 몸매의 여자가 바로 픽업할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이재는 차에서 내렸다.두리번거리며 내려오던 여자가 차에서 내리는 이재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왔다.“혹시…….”“호명에서 나왔습니다.”이재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여자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의 여자는 이재를 만난 게 반갑기라도 한 듯 그렇게 웃었다.“안녕하세요? 윤유하라고 해요.”“아……. 한이재입니다.”이재는 통성명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조금 머뭇댔다.그녀가 내민 작은 손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고는 자동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타세요.”“감사합니다.”유하가 차에 타고 문을 닫아준 이재는 운전석에 올랐다.약속 장소까지는 30분이면 도착할 테니 여유가 있었다.천천히 차를 몰아 큰길로 나갔다.“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괜히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드네요.”유하의 말에 이재는 룸미러로 그녀를 보았다.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엔 천진난만함이 그대로 묻어났다.고민 같은 건 없는 건 전혀 없어 보이는 말간 얼굴은 인형같이 예뻤다.“이모가 좀…… 극성인 데가 있어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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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이재는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제가 모시고 왔거든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선보는데 늦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하.”도언이 풀썩 웃음을 내뱉으며 이마를 문질렀다.“누가 한이재 씨한테 이런 걸 시켰지? 안서희 여산가?”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는 몰랐다.그게 누구이든 자신은 호명 가의 사람이 시키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는 걸 왜 모를까.심지어 자신을 가장 농락한 호명 사람이면서.“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기다려요.”이재를 막기라도 하듯 도언이 말끝을 잡아챘다.“금방 끝나니까 기다리라고.”이쯤 되니 이재는 조금 웃음이 났다.이런 명령을 당연하게 하는 그에게 진절머리가 났다.“아뇨. 전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어서요.”“친구들……?”그런 단어는 처음 듣는 것처럼 도언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짙어졌다.“어딘데요. 그 친구들 만나는 곳이.”“왜요?”“궁금해서.”“알려주면, 찾아오기라도 하시게요?”도언이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살짝 끄덕였다.“원한다면.”이재는 웃음을 터트렸다.어이없는 웃음이었다.그러다 오기가 생겼다.“그래 보시던가요.”턱을 들어 바짝 올려다보는 이재를 내려다보던 도언이 입술을 천천히 올려 웃음을 머금었다.그 웃음에 더럭 겁이 난 이재가 한걸음 물러섰다.그사이 도언의 뒤로 김 비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김 비서님, 한이재 씨 데려다주고 오세요.”“아뇨, 전 그냥…….”이재의 말을 듣지도 않고 도언은 김 비서에게 차 키를 건네받았다.“먼저 갑니다. 내가 좀 늦어서 말이죠.”돌아서는 도언의 뒷모습을 보며 이재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재수 없어.”김 비서에게 타고 왔던 차 키를 건네며 이재는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김 비서가 멈칫했다.이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윤유하가 앉았던 자리에 이번엔 이재가 앉았다.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애물단지 차를 처리한 셈 치기로 했다.* * *“도언 오빠!”룸 안으로 들어가자 윤유하가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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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디저트로 나온 말캉한 멜론을 포크로 콕 눌러 찍으며 유하가 생긋 웃었다.“솔직한 게 좋죠.”“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죠.”차도언의 신부가 될 거라고 확인이라도 받은 것처럼 제법 수줍은 웃음이었다.“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요.”유하의 눈이 커지며 반달로 접혔다.어떤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어린 눈이었다.“나는 결혼하려고 여기 나온 거 아닙니다.”“……네?”예쁘게 접혔던 유하의 눈이 올라오며 의문으로 반짝였다.도언이 등을 뒤로 밀어 의자에 기댔다.멀어진 만큼 유하의 몸은 앞으로 기울었다.“어머니께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윤유하 씨와 결혼 안 해요.”“오빠…….”“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말 하는 거 미안해요. 하지만 솔직한 게 좋지 않겠어요?”순간 유하의 눈이 그렁해졌다.여자를 울릴 생각까지는 없었다.다만 뻔하게 굴 뿐이었다.“엄마가, 아니 이모가 다 정해졌다고…… 만나기만 하면 된다고…….”“윤유하 씨, 아무리 이쪽 결혼이 그런 식이라고는 해도 참 순진하네요.”“그게 무슨 말이세요, 오빠?”“윤유하 씨하고 난, 아닙니다.”지잉-.도언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주자창에서 대기 중입니다.]김 비서의 메시지였다.“이만 일어나죠. 제 비서가 댁까지 모셔다드릴 겁니다.”일어서는 도언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하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도언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룸을 나갔다.***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동호가 손을 번쩍 들어 이재를 반겼다.“이게 누구야, 한이재!”동호는 혼자 테이블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왜 혼자야? 애들은?”“다 갔어.”“벌써?”앉지도 않고 선 이재를 바라보는 동호는 조금 취한 것 같았다.제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고 권했다.이재는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민수 자식은 여친 전화 받고 도망가버리고. 그 새끼 여전히 그러더라.”“유명했지. 애인 생기면 잠수 타는 거.”“지연이는 청첩장만 주고 신혼집에 뭐 세탁기가 들어온다나 그러면서 갔어.”“지연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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