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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곧이어 방 문이 닫혔다.온세아가 그제야 이불 밖으로 슬며시 머리를 내밀었다. 베개에 머리를 뉘고 가만히 누워있던 그때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마침내 잠이 들었다....온세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잔 덕분인지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다.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뜻밖에도 권태혁이 집에 있었다.등을 돌린 채 누군가와 통화하는 중이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마침 온세아의 시선도 그에게 향해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 찌릿한 스파크가 일었다. 온세아가 고개를 돌린 동시에 권태혁도 전화를 끊었다.“일어났어? 아침 준비했어.”권태혁이 다정한 눈빛으로 온세아를 바라보며 주방으로 이끌었다.온세아가 식탁 앞에 앉았다. 식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본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오늘 출근 안 해요?”권태혁이 샌드위치를 건넸다.“일단 먹어. 다 먹고 할 얘기가 있어.”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무슨 얘기길래 이리 뜸을 들이는 거야?’늦게 일어난 바람에 배가 고팠던 온세아는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일단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 집중했다.식사를 마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인데요? 말해 봐요.”권태혁이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봤다.“채린 씨가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번번이 무산된 진짜 이유를 알아냈어.”온세아가 흠칫 놀랐다가 바로 캐물었다.“이유가 뭔데요?”안 그래도 절대 우연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알아보기 전에 권태혁이 먼저 진상을 알아냈다.권태혁이 온세아를 빤히 쳐다봤다.“온씨 가문의 짓이었어.”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요?”그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내 짐작이 맞다면 네 아버지의 짓이야.”온세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아버지가 채린이한테 손을 썼다고?’그 배후가 온철환이라면 목적은 단 하나였다. 권태혁의 작은아버지인 권상진을 도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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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온세아가 한달음에 온씨 가문 본가로 달려갔다.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심미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도우미 한 명이 무릎을 꿇은 채 심미란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고 있었다.온세아를 본 심미란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혐오하는 기색이 역력해도 온세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아빠 뵈러 왔어요.”이채린의 프로젝트들이 죄다 무산된 이유가 온씨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온철환에게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심미란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내가 기억하기론 넌 이미 이 집에서 쫓겨났는데.”심미란의 눈에 온세아는 그저 아무 가치도 없고 온씨 가문에 발을 들일 자격조차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온세아가 싸늘한 태도로 받아쳤다.“전 뭐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요?”심미란의 안색이 확 굳어지더니 이내 날카롭게 호통쳤다.“그럼 당장 꺼지지 않고 뭐 해?”“아빠만 뵙고 바로 갈 겁니다.”그러고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심미란이 그녀의 뒷모습을 무섭게 노려봤다.“저년이 정말...”‘버릇없는 년, 갈수록 날 무시하네? 이따가 나오면 절대 가만 안 둬.’...2층 다실.온철환이 금테 안경을 쓴 채 찻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온세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 그에게 다가갔다.“아빠...”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온철환이 소리를 내지 말라고 눈짓했다.널찍한 다실 안, 찻상 너머에서부터 묵직한 압박감이 서서히 번져 나갔다.온세아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어쩔 수 없이 다시 삼켰다. 앉으라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앉을 수도 없었기에 그저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온철환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물을 끓이고 찻잎을 씻었다.다실 안에 차를 내리는 물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온세아가 자리에 선 채 묵묵히 기다렸다.평소 차와 시를 좋아했던 온철환은 고결한 선비라도 되는 양 겸손한 척했다. 하지만 현실은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장사꾼이었다. 심지어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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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사실 온철환이 막내딸인 온세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비서 문병욱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온세아를 굴복시키라 일렀을 뿐이었다. 온세아가 권상진을 도와 권태혁을 감시하도록 만들어야 권씨 가문과의 사업적 협력을 차질 없이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설마 문 비서가 세아의 친구한테 손을 댄 거야?’하지만 무슨 수단을 쓰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결과였으니까.온세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아빠랑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똑똑히 확인하고 왔어요.”‘설마 발뺌하려고?’그녀를 훑어보던 온철환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온세아가 온철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채린이 건드리지 마세요. 원하는 게 있다면 저한테 직접 말씀하란 말입니다.”“좋다.”예상외로 온철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온세아는 되레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그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온철환의 분노가 더욱 들끓었다는 것이었다.“내가 바라는 게 뭔지 지난번에 똑똑히 말했을 텐데.”온철환이 느긋하게 말했다.온세아는 이번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려 했다.“싫어요. 전 절대...”그 순간 찻잔을 들던 그가 멈칫했다. 찻잔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핏줄이 다 튀어나왔다.“이 정도 벌로는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한 시간 더 서 있어.”그는 온세아를 길들이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온세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열 시간을 서 있으라고 해도 제 대답은 똑같아요.”그가 싸늘하게 웃었다.“그렇다면 네 친구가 무슨 일을 당하든 난 모른다.”온세아가 친구 때문에 찾아온 걸 보면 문병욱이 고른 타깃이 정확했다는 뜻이었다.이채린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온세아의 약점인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아빠, 채린이는 이 일이랑 아무 관련이 없어요.”금테 안경 너머로 드러난 온철환의 두 눈에 위험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그 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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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너랑 무슨 상관인데?”온세아가 가차 없이 쏘아붙이자 온아정이 가슴을 쭉 펴고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난 이 집안의 진짜 핏줄이고 넌 버려진 존재야. 과연 나랑 상관이 없을까?”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온씨 가문 사람이라는 게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는 꼴이 우스웠다.“이런 집안 따위 진작에 버렸어, 난.”그러고는 머리카락을 휙 쓸어 넘긴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그럼 구형민은?”뒤에서 온아정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온세아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그렇게 탐나면 가져가든가.”진작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진 남자였다.온아정의 얼굴에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동안 온아정이 구형민과 애매모호한 관계를 질질 끌어온 이유는 오직 온세아 때문이었다.구형민이 온세아의 주변 남자들 중 유일하게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였다.그런데 하필 그가 온세아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온아정에게는 온세아의 남편을 대놓고 빼앗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 기분이 어떤지 온세아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온아정은 그녀가 구형민과 붙어 있을 때마다 온세아가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짜릿함에 취해 어장 관리하듯 구형민을 계속 곁에 두었던 것이었다.그런데 지금의 온세아는 예전과 딴판이었다. 온아정이 구형민과 함께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았다.“진짜 아무렇지 않은 거야?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야?”온아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온세아를 훑어보자 온세아가 그녀를 흘겨봤다.“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언니 같은데?”온아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지금 뭐라고 했어?”온세아의 눈빛이 한층 서늘해졌다.“이혼당하자마자 자살 시도까지 했잖아.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신세가 아니고 위로해줄 남자가 필요한 것도 이해는 돼.”“너!”온아정의 안색이 급변했다. 온세아의 이 한마디가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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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그 미소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쌤통이야. 이제 좀 내가 무서운 줄 알겠어?’온세아의 미간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조금 전 민 사람이 온아정이라는 것을 온세아는 알고 있었다.이혼당하고 자살 시도까지 한 그녀가 어떤 면에서는 불쌍하지만 속내는 여전히 악독하기 그지없었다.특히 배다른 동생을 괴롭힐 때면 자비를 베푼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달려온 도우미들이 온세아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마음씨 좋은 도우미 한 명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온세아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구급차 좀 불러주세요.”누군가 황급히 119에 전화를 걸려던 그때 온아정이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며 호통쳤다.“구급차 부르지 마!”심미란의 딸로 알려진 온아정은 어릴 적부터 오냐오냐 자라 안하무인에 갑질이 일상이었다. 도우미들 중 그녀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겁에 질린 도우미들은 더 이상 온세아에게 다가가지 못했다.온세아는 남에게 기대느니 스스로 살길을 찾는 게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모두 온씨 가문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온아정이 이렇게 엄포를 놓은 이상 그녀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지금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정말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데 번호 버튼을 하나 누르자마자 온아정이 휴대폰을 걷어차 버렸다.“119를 부르려고? 그냥 여기서 피 흘리다가 죽어버려.”온아정의 눈동자에 잔인함이 스치더니 이내 매정하게 가버렸다. 가기 전 도우미들까지 전부 끌고 가버렸고 휴대폰마저 멀찍이 치워버렸다.그렇게 온세아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닥에 홀로 버려졌다.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져 내린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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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권태혁이 온세아의 침대 옆에 앉았다.“네가 의식을 잃었을 때 온석원 씨가 내 전화를 받았어.”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말에 온세아가 흠칫 놀랐다. “온석원이요?”‘그럼 정신을 잃기 직전에 울렸던 그 전화가 대표님의 전화였단 말이야?’그리고 온석원이 벨 소리를 우연히 듣고 왔다가 쓰러진 온세아를 발견하고 대신 전화를 받았다.권태혁이 짧게 대답했다.“응.”온세아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결국 이번에도 그녀를 살려준 건 권태혁이었다.그가 아니었다면 온석원이 본가에서 온세아를 구해줄 리 만무했다. 어릴 적부터 온석원은 툭하면 온아정과 함께 그녀를 괴롭혔었다.이번에 구해줬다고 해서 동생인 온세아를 걱정하는 마음에 구해줬다는 착각 따윈 하지 않았다.그나저나 또다시 권태혁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지금까지 충분히 신세를 많이 졌는데.게다가 지금 온철환이 이채린을 인질 삼아 권태혁을 배신하라고 몰아붙이고 있다.권태혁이 이렇게까지 잘해주는데 어떻게 배신한단 말인가?“아직도 아파?”권태혁의 시선이 그녀의 이마에 난 상처에 머물렀다.온세아는 그제야 이마를 다쳤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무의식적으로 상처 부위로 손을 가져다 댔는데 하얀 거즈가 만져졌다.“만지지 마.”그가 재빨리 말렸다. 표정이 다정하기 그지없었다.순간 밀려든 죄책감에 그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던 온세아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너무 피곤해요.”권태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좀 더 자.”“네.”말을 마치고는 눈을 꼭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병실 안에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배가 조금 고팠다.호출 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요깃거리라도 부탁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열었다.손에 보온 도시락통을 든 온석원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곧장 온세아의 침대 앞으로 다가와 들고 있던 도시락을 건넸다.“권 대표님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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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오직 육체적 욕구만을 채우는 관계, 남들 앞에선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낯부끄러운 사이 말이다.“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온세아가 온석원을 보며 묻자 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제안했다.“대표님이 아직 너한테 호감이 있을 때 확실하게 진도 빼보는 거 어때?”온석원의 의도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조금 전까지도 권태혁과의 관계를 부인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온석원의 성격도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꽂힌 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해야 직성이 풀렸다.여기서 또 아니라고 딱 잘랐다간 오히려 반항 심리만 자극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온씨 가문 사람들과 합세해 그녀를 더 벼랑 끝으로 몰아세울지도 모른다.그럴 바엔 차라리 먼저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그 제안 나쁘지 않네.”온세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온석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그 말은 내 말대로 하겠다는 뜻이야?”그녀가 온석원을 힐끗 쳐다봤다.“잠깐만.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안달이 난 온석원이 재촉했다.“뭔데? 빨리 말해 봐.”온세아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대표님이랑 더 가깝게 지내길 원한다면 내 부탁 하나쯤은 들어줘야지 않겠어?”온석원이 냉큼 물었다.“무슨 부탁?”그녀가 그의 귓가에 대고 은밀하게 몇 마디를 속삭였다. 순간 온석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 나더러...”온세아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앞으로 온씨 가문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보험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이번에 오빠도 봤잖아. 온씨 가문 사람들이 언제든지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거.”온석원이 잠시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최대한 노력해볼게.”...식사를 마친 뒤 온세아는 다시 눈을 감고 누웠다. 그런데 낮에 너무 많이 잔 탓인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온세아는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아챘다.아니나 다를까 권태혁이 그녀의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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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온세아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내 병실이라고 방금 주의를 줬는데 또 막무가내로 굴면 어떡해?’권태혁이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고 검은 눈동자로 온세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나 엄청 짧은 시간 안에 너한테 홀려버렸어. 솔직히 말해 봐. 무슨 수작 부렸어?”그 말에 온세아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내가 언제 홀렸는데?’온세아가 되물었다.“제가 무슨 수작을 부렸다는 건데요?”권태혁이 몸을 숙여 백조같이 가녀린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너만의 살 냄새 같은 게 나.”온세아와 잠자리할 때마다 이 달콤한 향기에 취하곤 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솟아 나왔다.“그런 거 없거든요?”온세아가 눈을 흘기며 부인했다.“있어.”권태혁의 눈빛이 짙어지더니 그녀의 침대 쪽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러고는 어느새 온세아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다.쑥스러움에 볼이 빨개진 온세아가 그의 손을 쳐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 와중에도 스킨십을 시도하다니.권태혁의 시선이 뜨겁게 타올랐다.“옷 좀 벗기고 싶어서.”온세아는 깜짝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말문이 막힐 뻔했다.“여기 병원이라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제발 그만 좀 해요.”“싫어.”권태혁이 순식간에 다시 그녀를 덮쳤다. 그의 손이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 들어간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속옷 안 입었어?”온세아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오를 듯했다.“다 만져놓고 뭘 물어요?”‘뻔히 알면서 왜 묻는 건지, 참.’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그럼 다른 놈들도 다 봤다는 소리잖아.”온세아가 멈칫했다가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이 환자복 안 비쳐요. 눕든 앉든 이불을 팔 밑까지 꼭 덮고 있었고요. 그리고 대표님 말고 누가 내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그래요?”잠시 생각하던 권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일리가 있네.”온세아의 예쁜 눈망울에 참는 기색이 스쳤다.“그럼 이제 손 좀 빼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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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신데렐라예요, 백설 공주예요? 아니면 엘사?”온세아가 권태혁의 말을 싹둑 잘랐다.“그럼 다른 거로.”권태혁이 꿋꿋하게 이어갔다.“한 악마가...”“천일야화?”온세아가 다시 정답을 맞히더니 한숨을 내쉬었다.“그만 좀 해요. 그런 건 이미 달달 외우고 있다고요.”“그럼 또 다른 거로.”결국 참다못한 온세아가 쏘아붙였다.“유치한 동화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돼요?”권태혁이 어깨를 늘어뜨렸다.“이 정도 수준이 돼야 네가 잘 알아들을 것 같아서 그랬지.”온세아는 어이가 없었다.‘그러니까 조금만 복잡해도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는 소리야? 사람 엿먹이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수준이 높은 거로 바꾸든가, 아니면 아예 하지를 말아요.”온세아가 입을 삐죽거리며 툴툴거렸다.권태혁이 깊은 두 눈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눈썹을 치켜세우고 재계의 권모술수와 피 튀기는 암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이 이야기엔 온세아도 관심을 보이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그 후 며칠 동안 권태혁은 매일 밤 그녀의 병실로 찾아와 비즈니스 세계의 숨겨진 비화들을 들려주었다.덕분에 온세아는 통증도, 이마가 깨졌다는 것도, 그녀가 환자라는 사실마저도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그녀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병원에서 내일 당장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그날 낮.온세아가 병실에서 쉬고 있는데 병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권태혁이 일찍 온 줄 알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구형민이었다.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구형민이 순수하게 병문안을 왔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친 지가 며칠인데 정말 그녀를 걱정했다면 진작에 달려왔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구형민이 침대 곁으로 다가와 던진 첫마디가 이것이었다.“어쩌다 꼴이 이 모양이 됐어?”온세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본론만 말해.”그녀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되었는지 구형민이 모를 리 없었다.오늘 온아정을 용서해달라고 사정하러 온 게 틀림없었다.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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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지금 두 사람은 이혼한 사이였다.명절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구형민은 뻔뻔하게도 함께 구씨 가문 본가로 가자고 요구하고 있었다.“가고 싶지 않아.”온세아가 단칼에 거절하자 구형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거절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예전에 온세아가 명절에 시댁에 데려가 달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혼외자라 얼굴에 먹칠한다며 질색하던 그였다.이제 마침내 그가 선심 쓰듯 기회를 주어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영광스러워하며 감격하기는커녕 오히려 싸늘하게 거절했다.이 상황은 구형민이 온세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오만한 인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우리 집 사람들 더는 너한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게.”구형민이 웬일로 약속까지 했다.예전의 그는 구씨 가문의 혼외자일 뿐이라 집안 내의 지위가 바닥이었다.그의 아내인 온세아 역시 함께 본가에 갈 때마다 구씨 가문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를 견뎌야 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큰형이 숨이 간당간당해서 구형민이 곧 구씨 가문의 명실상부한 후계자가 될 것이다.온세아가 구형민의 아내 자격으로 함께 돌아간다면 예전처럼 냉대를 견뎌야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게다가 구형민이 지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대체 여기서 뭘 더 바란단 말인가?온세아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설마 내가 눈물이라도 흘리며 감격하길 바라는 거야?”구형민의 얼굴에 ‘당연히 그래야지’라는 속내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그녀가 싸늘하게 쐐기를 박았다.“미안한데 방금 말했듯이 난 눈곱만치도 가고 싶지 않아. 정 가고 싶으면 딴 사람이나 알아봐.”구형민의 잘생긴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참지 못하고 일깨워주었다.“비밀 유지 계약서에 사인한 거 잊지 마. 와이프 자격으로 본가에 가는 거 협조하기로 했잖아.”온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덧붙였다.“그걸로 압박하겠다면 따르는 수밖에.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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