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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작가: 레몬과 향수
정군왕은 끝까지 배준형이 자신의 친아들이라고 단언했다.

“정군왕께서는 설마 제 아들을 억지로 빼앗으시려는 겁니까?”

유정남이 눈시울을 붉히며 묻자, 정군왕이 당장이라도 발끈하려 했다. 그러나 배준형이 먼저 앞으로 나서 그를 가로막았다.

배준형은 유정남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유국공께서는 육씨 어멈의 자백서 외에 다른 증거도 가지고 계십니까? 전각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은 폐하를 기만하는 일입니다. 이는 참수형으로도 다스릴 수 있는 중죄입니다.”

유정남은 코웃음을 치며 품에서 서신 한 통을 꺼냈다.

“당시 아이를 받은 산파와 시중들던 이들을 모두 찾아냈다. 내 부인이 분명 세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지.”

그는 건양제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당시 제 어머니께서는 남의 이간질에 넘어가, 제 부인이 회임 여덟 달 만에 아이를 낳은 것을 보고 부정을 저질렀다고 오해하셨습니다. 헌데 실상은 이방에서 큰방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꾸민 계략이었습니다. 모든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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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404화

    배준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는 어릴 적 실제로 풍진을 앓았고, 그때 허리에는 작은 흉터까지 남았다. 예전 유지영이 그 흉터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해 준 적이 있었다.그 일이 설마 자신의 신분을 뒤흔드는 증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군왕의 얼굴에도 의심의 기색이 스쳤다.배준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꼭 빼닮았습니다. 눈매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반면 유국공의 세 아들은 서로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괜한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그 말을 들은 정군왕의 망설임은 금세 사라졌다.그는 배준형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너는 내 아들이다. 그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양측 모두 저마다의 논리와 증거를 내세웠다.팽팽히 맞선 채 누구도 한 발 물러서지 않았다.건양제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때 유정남이 앞으로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폐하, 신은 관성이 무사히 자라 준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신 또한 자식을 잃는 고통을 겪어 본 사람입니다. 이제 관성과 관랑, 두 아이를 모두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억지로 무엇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그 말에 건양제는 정군왕을 바라봤다.“돌아가 각자 증거를 더 찾아보도록 하거라. 끝내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면, 이 일은 영영 시비를 가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대에게도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닐 테지.”유정남은 끝내 적혈인친을 요구하지 않았다.이미 의심의 씨앗은 충분히 뿌려졌다.이제 배준형의 혈통에 의문이 생긴 이상 손해를 보는 쪽은 결국 그뿐이었다.“헌데……”정군왕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배준형이 조용히 그의 소매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정군왕은 결국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건양제는 다시 유정남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너무 갑작스럽소. 정군왕부에도 시간을 주어야 하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시오.”모두 예를 올린 뒤 대전을 나섰다.밖으로 나가기 직전, 유정

  • 피안을 거슬러   제403화

    정군왕은 끝까지 배준형이 자신의 친아들이라고 단언했다.“정군왕께서는 설마 제 아들을 억지로 빼앗으시려는 겁니까?”유정남이 눈시울을 붉히며 묻자, 정군왕이 당장이라도 발끈하려 했다. 그러나 배준형이 먼저 앞으로 나서 그를 가로막았다.배준형은 유정남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유국공께서는 육씨 어멈의 자백서 외에 다른 증거도 가지고 계십니까? 전각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은 폐하를 기만하는 일입니다. 이는 참수형으로도 다스릴 수 있는 중죄입니다.”유정남은 코웃음을 치며 품에서 서신 한 통을 꺼냈다.“당시 아이를 받은 산파와 시중들던 이들을 모두 찾아냈다. 내 부인이 분명 세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지.”그는 건양제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당시 제 어머니께서는 남의 이간질에 넘어가, 제 부인이 회임 여덟 달 만에 아이를 낳은 것을 보고 부정을 저질렀다고 오해하셨습니다. 헌데 실상은 이방에서 큰방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꾸민 계략이었습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 어머니께서는 깊이 뉘우치며 직접 죄를 인정하셨습니다. 신은 그 말씀을 단서 삼아 끝까지 추적한 끝에 육씨 어멈에게 이르렀고, 육씨 어멈 역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백서를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자백서에는 아이의 태기가 있는 세 곳이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신은 그 내용을 확인한 뒤 정군왕부를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군왕 세자가 네 살 되던 해 큰 병을 앓아 정군왕비께서 아이를 데리고 절에 다녀왔으며, 돌아온 뒤 병이 씻은 듯 나았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습니다.”유정남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부디 폐하께서 이 일을 명백히 밝혀 주십시오.”건양제가 물었다.“정군왕비는 어디에 있느냐?”배준형은 미간을 좁혔다.공교롭게도 어머니는 외가를 찾아 먼 지방으로 떠난 터라 아직 경성에 없었다.그는 사실대로 아뢰었다.건양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정군왕을 바라봤다.“정군왕은 배준형이 친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있느냐?”정군왕은 순간 말문이

  • 피안을 거슬러   제402화

    정군왕은 지금껏 유정남을 강직하고 청렴한 무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모에게 지나칠 만큼 효성스러운 사람일 뿐, 남의 속을 뒤집어 놓는 계략이나 교묘한 술수를 부릴 인물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그는 유정남이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지 똑똑히 깨달았다.“유국공! 내 아들이 그대가 잃어버린 아들일 리는 절대 없네. 사람을 잘못 찾아왔으니 더는 억지를 부리지 마시게!”정군왕이 이를 악문 채 호통치자, 유정남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전하께서 관성을 친아들처럼 아끼며 길러 오셨으니, 이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하를 탓하지 않겠습니다.”“유정남!”정군왕은 이를 악문 채 으드득 소리가 날 만큼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그때 뒤쪽에서 숙태비의 목소리가 울렸다.“정아.”지팡이를 짚은 숙태비는 음침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유정남을 노려보았다.“국공께서 일을 이 지경까지 키워 놓았으니, 오늘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정군왕부의 혈통이 의심받게 될 것이다.”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준형아!”잠시 뒤 배준형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유정남을 바라봤다. 자신과 유정남이 부자 사이라니,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관성아...”유정남이 나직이 부르자 배준형은 미간을 찌푸렸다.“유국공, 제 이름은 배준형입니다. 저는 배씨 가문의 적통이지, 유국공께서 말씀하시는 유관성이 아닙니다.”유정남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안다. 헌데 네 몸에 있는 태기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 않느냐?”태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배준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유정남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분명 유지영에게 들었기 때문이라 짐작했다.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태기 몇 군데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제 곁에서 시중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 피안을 거슬러   제401화

    그 말이 떨어지자 당학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다급히 시종의 손목을 붙잡았다.“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느냐?”“큰공자께 아룁니다. 육씨 어멈이 남긴 서신을 송씨 가문에서 찾아냈다고 합니다. 지금 송씨 집안에서는 육씨 어멈이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한사코 주장하고 있습니다.”정군왕부.“터무니없는 소리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준형이는 내가 열 달 동안 배 속에 품었다가 낳은 아이인데, 어떻게 유관성이란 말이냐?”정군왕비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돌아온 배준형의 얼굴 역시 먹구름이 내려앉은 듯 어두웠다.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유정남이 직접 정군왕부를 찾아와 해명을 요구했다. 소식을 들은 배준형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정군왕비는 당당히 말했다.“들어오라 하거라. 나는 한 점 거리낄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내 아들은 단 한 순간도 내 눈앞을 떠난 적이 없는데, 어찌 가짜일 수 있겠느냐?”결국 이 일은 숙태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숙태비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급히 달려왔다. 싸늘하게 굳은 얼굴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앞마당으로 가 보자꾸나!”정군왕부 대문 앞에는 이미 수많은 백성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중 몇몇은 저마다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유정남은 말 위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정군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유국공, 분명 무언가 오해가 있네. 준형이가 어찌 유국공의 아들이란 말인가?”그러나 유정남은 정군왕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제 아들 관성의 왼쪽 무릎에는 초승달 모양의 태기가 있고, 허리 뒤쪽에는 매화꽃을 닮은 붉은 자국이 있습니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는 저녁놀처럼 번진 흉터도 있지요. 태어날 때 실수로 붉은 초에 데어 남은 자국입니다.”그가 정확히 세 군데를 짚어 말하자 정군왕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그러나 이내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유국공, 준형이는 유관성보다 한 살이나 많네. 나이부터 다

  • 피안을 거슬러   제400화

    육씨 어멈의 죽음은 당씨 집안의 첩실 류씨 귀에까지 들어갔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죽은 것이냐?”시녀가 고개를 저었다.“나이가 많아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두 사람은 친척 사이였지만, 첩실 류씨는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육씨 어멈은 어디까지나 하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시녀를 시켜 은자 천 냥만 보내게 한 뒤 더는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물었다.“큰공자는?”“마님, 큰공자께서 경왕부 유리 아가씨를 교외로 꽃구경하자며 불러내셨습니다.”‘꽃구경’이라는 말에 류씨의 미간이 다시 깊게 구겨졌다.“이런 때에 꽃구경이나 다닐 여유가 있다니. 그 경왕부의 아가씨도 행실이 단정한 아이는 아니구나.”배유리가 서녀가 된 뒤부터 그녀는 이 혼사가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시녀는 함부로 맞장구칠 수 없어 고개만 숙인 채 발끝만 내려다보았다.잠시 뒤 첩실 류씨가 입을 열었다.“장공주부에 다녀온 지도 꽤 되었구나. 오늘은 마침 한가하니 한번 들러 보자.”그녀는 예물을 준비하게 한 뒤 곧장 장공주부로 향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문 앞에서 발길이 막혔다.“이게 무슨 무례란 말이냐?”첩실 류씨가 눈을 치켜뜨며 화를 내던 순간, 마침 유영현주가 그곳을 지나가다 그녀를 발견했다.유영현주는 담담한 눈길로 그녀를 한 번 훑어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아버님께서는 임강으로 떠나셨고, 어머님께서는 몸이 편찮으셔서 한동안 손님을 받지 않으십니다. 마님께서는 돌아가시지요.”첩실 류씨는 얼른 웃음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유영현주는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아 세웠다.“앞으로는 장공주부에 자주 드나들지 마십시오. 분수도 좀 지키시고요.”그 말을 남긴 채 안으로 들어간 유영현주는 사람들에게 대문을 닫으라고 명했다.쿵.굳게 닫힌 대

  • 피안을 거슬러   제399화

    셋째네 집을 나온 유지영은 경왕부로 돌아가지 않았다.그녀가 향한 곳은 유국공부였다.짙은 밤이 내려앉은 가운데, 온몸에서 서늘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송죽원에 들어선 그녀는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은 방을 바라보았다. 인사를 올리려던 시녀는 운청이 먼저 손짓으로 제지했다.고요가 깔린 뜰을 가로질러 회랑에 다다르자, 방 안에서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씨 어멈, 송씨 그 계집이 나를 속였구나. 관성은 정말… 정말 큰댁의 핏줄이었다.”오늘 연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유씨 노부인은 좀처럼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밤새도록 송씨를 욕하며 가슴을 움켜쥔 채 거듭 후회만 하고 있었다.그때 이씨 어멈은 창가 너머로 드리운 그림자와 희미하게 흔들리는 비녀를 발견했다.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척 급히 입을 열었다.“노, 노부인. 헌데 어째서 예전에 세자비 마마와 국공 어르신의 피는 섞이지 않았던 겁니까?”문을 등지고 앉아 있던 유씨 노부인은 이를 악물었다.“십중팔구는 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분명 송씨가 손을 쓴 게 틀림없다.”쌍둥이 아버지가 다를 리는 없지 않은가.“송씨 그 계집이야말로 바람을 피운 게지! 그 일 때문에 내가 평생 둘째네만 감싸다가 정작 친손주들을 해치고 말았구나.”유씨 노부인은 끝내 눈물을 쏟아 내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이씨 어멈은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노부인, 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 큰공자는 분명 숨이 끊어졌는데, 어째서 다시 방씨 부부에게 발견된 것입니까? 그날 있었던 일에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한창 흥분해 있던 유씨 노부인은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내가 분명 관성을 숨도 못 쉬게 꽉 눌러 죽였다.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었지. 그 뒤에는 육씨 어멈에게 시켜 난장터에 내다 버리게 했고.”‘숨도 못 쉬게 꽉 눌러 죽였다.’그 한마디에 유지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럼...... 육씨 어멈은요?”“진작 죽었다.”이씨

  • 피안을 거슬러   제3화

    옥신각신하는 사이, 유씨 노부인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전으로 달려왔다. 송씨는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지영이는 다 좋은데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에요. 분명 마음속에 세자를 품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세자에게 심통을 부리고 있지 뭐예요. 내일 혼사가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 유씨 집안은 온 인주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말이에요.”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유씨 노부인은 불쾌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영아, 세자께 사죄드리거라.”양모가 돌아가신 뒤, 유씨 노부인은 유지영을 슬하에 두고 보살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 피안을 거슬러   제1화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털썩!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읍….”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

  • 피안을 거슬러   제10화

    동금은 원래 표사의 딸이었으나 부모를 잃은 뒤 전당포에 팔려간 데다가, 전생에서는 실족사로 죽기까지 했다.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생에 유지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매일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송씨에게서 문서를 기어코 받아낸 것을 보면 눈치도 빠르고 수완도 있는 듯했다.나머지는 아직 관찰 대상이었다.“오늘부터 종령각을 배신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유지영은 근엄한 표정으로 엄명을 내렸다.나머지 사람들은 주향 일당이 내쳐지는 것을 보았기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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