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덕비는 영슬기를 친정 조카와 맺어준다는 사혼 교지를 내렸다. 혼례일은 내년 초봄으로 정해졌다.교지를 받은 영씨 가문은 속수무책이었다. 영슬기는 숨이 넘어갈 듯 오열했고, 두 눈은 붉게 부어올랐다."덕비 마마의 처사는 도를 넘었습니다. 그 유창이라는 자는 스물둘이나 먹도록 혼인을 못 했으니 분명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는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습니다."영슬기는 어머니 서소현의 품에 얼굴을 묻고 목놓아 울었다."어머니, 수왕 전하께서 분명 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 하셨습니다."서소현은 애지중지 키운 딸을 끌어안으며 애가 탔다."어머니, 제발 방도를 찾아주십시오."끊이지 않는 울음소리에 서소현은 미간을 구기며 깊은숨을 내쉬었다."내가 이따 서씨 가문에 다녀오마. 어쩌면 상황을 뒤집을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그 말에 영슬기는 뚝 울음을 그쳤다."맞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나서서 태후 마마께 부탁만 하시면 그저 말 한마디면 끝날 일입니다."딸은 그리 쉽게 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서소현은 잘 알고 있었다. 자녕궁의 서 태후는 그녀를 뼛속 깊이 증오하고 있었다. 순순히 도와줄 리 만무했다.그렇기에 영씨 가문이 도성에 당도했을 때, 서소현은 미리 사람을 풀어 배이수의 동선과 취향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영슬기에게 배이수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라 이르며 치밀하게 접근했던 것이다.언젠가 서 태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살길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보름 내내 마음을 졸이며 조심했건만,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서소현은 단장을 마친 뒤 마차를 타고 서씨 가문으로 향했다. 서씨 노부인을 마주하자마자 꾹 참고 있던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어머니, 제가 직접 입궁하여 막내에게 사죄하겠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애초에 저만 아니었다면 막내가 십오 년이나 앙심을 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영문을 모르는 서씨 노부인이 어리둥절해하자, 서소현의 곁에 있던 시녀가 나서서 덕비가 영슬기에게 사혼을 내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서씨 노부인은 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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