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271 - Chapter 280

296 Chapters

제271화

여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손끝까지 차갑게 식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치미는 당혹감을 억눌렀다.진명화에게 빛나를 잘 봐 달라는 눈짓을 보낸 뒤 빠르게 복도 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시유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잔뜩 긴장돼 있었다.[나 방금 악몽 꿨어. 빛나가 열이 계속 안 내려서 온몸에 경련까지 하는 꿈이었어. 지금 빛나 상태가 어때? 당장 사실대로 말해!]여준의 미간이 순간 꿈틀했다.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아무 일 없어. 걱정하지 마. 잘 있어.”[못 믿겠어!]시유는 곧바로 받아쳤다.[나 지금 갈 거야. 빛나 나한테 넘겨. 난 그렇게 생생한 악몽을 꿔 본 적이 없어. 직접 내 눈으로 봐야 안심할 수 있어!]여준은 속에서 치미는 불안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높였다.“내가 친아빠야. 설마 내가 빛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빛나는 여기서 다들 예뻐해 주고 있어. 할머니도, 아버지도, 엄마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을 정도야.”“며칠 더 데리고 있고 싶어 하셔. 그러니까 올 필요 없어. 와도 빛나 못 만나게 할 거야.”여준은 시유가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전화기 너머에서 핸드폰을 쥔 시유의 손가락 마디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불길한 예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엄마와 딸은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빛나에게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그렇지 않고서야 마음이 이렇게까지 불안할 리 없었다.여준은 빛나가 부씨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했지만 시유는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진명화의 냉정하고 속물적인 성격.부인걸의 철저한 이익 계산.여준의 오만함까지.지금 시유의 눈에는 부씨 집안 사람 중 믿을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그들에게 빛나를 맡겨 두는 건 딸의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임애교 역시 지난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시유가 어두운 얼굴로 아래층에 내려오자 곧장 다가와 손을 꽉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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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그 짧은 한마디에 세 사람 모두 울컥했다.화면 너머의 남자는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지친 기색이 역력한 동생과 어머니를 한참 바라봤다.목소리는 낮고 깊었다.[너희랑 떨어진 뒤로 하루도 허투루 산 적 없어.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려고 계속 달렸어. 너랑 엄마를 든든하게 지켜 줄 사람이 되려고.][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 오빠가 있어. 누구든 너희한테 또 조금이라도 상처 주면 열 배, 백 배로 돌려줄 테니까.]시유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목소리에 짙은 콧소리가 섞였다.“응, 알아. 오빠도 거기서 몸 잘 챙겨. 우리 다시 다 같이 만날 날 기다리고 있을게.”임애교도 결국 울먹이며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들아, 몸 잘 챙겨. 엄마는 하루도 네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어.”[네, 알아요.]남자가 나지막하게 대답한 뒤 통화가 끝났다.시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임애교를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흔들리던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엄마, 나 지금 부씨 본가에 다시 갈 거야. 부여준이 빛나를 순순히 돌려주면 빛나를 생각해서라도 오빠한테 일단 멈추라고 할 수 있어.”“하지만 끝까지 빛나를 인질처럼 붙잡고 나를 협박하려 한다면... 나도 더는 봐주지 않을 거야.”시유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이번에는 자기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게 해 줄 거야.”시유는 아침을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그런데 문을 열자 익숙한 컬리넌이 집 앞에 세워져 있었다.차 앞에는 낯익은 사람들이 여럿 서 있었다.마리와 영우, 연호, 진구까지 모두 와 있었다.시유는 놀라 급히 다가갔다.“다들 어떻게...”마리가 빠르게 다가와 시유의 팔짱을 꼈다.눈빛은 단호했다.“내가 다 불렀어. 자기 혼자 부씨 집안 사람들 상대하게 둘 수 없잖아.”“우리 다 같이 가서 부여준을 압박할 거야. 오늘은 무조건 빛나 돌려받아야 해.”영우도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평소 온화하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목소리에도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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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시유는 영우를 바라봤다. 눈에 고마움이 스쳤다.“영우 씨, 고마워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영우 씨가 부씨 집안과 너무 크게 부딪히는 건 원하지 않아요.”“두 사람은 예전에...”“예전은 예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에요.”영우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저는 부여준과 이미 절교했어요. 시유 씨, 진심입니다. 필요하면 강씨 집안의 힘을 전부 동원할 수도 있어요. 어떤 방법을 써서든 아이를 돌려주게 만들 수 있습니다.”시유는 영우의 눈에 숨김없이 드러난 걱정과 초조함을 바라봤다.영우라면 말한 대로 정말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영우가 베푸는 호의는 너무 컸다.시유는 자신이 그 마음을 갚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오빠는 달랐다.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다.시유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입가에는 고마운 미소가 떠올랐다.“영우 씨 마음은 충분히 알아요. 도와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오빠가 이미 준비를 끝냈어요.”“오빠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시유가 고개를 들었다.맑고 검은 눈에는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제가 부여준한테 아무것도 못 한다고 누가 그래요?”“할 수 있어요. 다만 오빠에게 정말 그렇게까지 해 달라고 할지 말지를 고민했던 것뿐이에요.”“이번에는 확실히 알려 줄 거예요. 선을 넘으면 감당해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영우는 잠시 시유를 바라봤다.쉽게 꺾이지 않는 단단함에 어느새 날카로움까지 더해져 있었다.결국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오빠가 직접 나선다면 저도 마음 놓을게요.”“그래도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주세요. 멀리 있는 사람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더 빨리 도울 수 있는 일도 있으니까요.”시유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다시 일행 쪽으로 돌아왔다.시유는 모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다들 여기까지 와 줬으니까 같이 가요. 부여준이랑 마지막으로 직접 얘기해 볼 거예요.”“이번에는 빛나를 돌려달라고 빌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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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하지만 이번에 자신이 물러서서 빛나를 넘겨주면 앞으로 시유와 조건을 놓고 얘기하는 것도, 빛나를 만나는 것도 훨씬 어려워질 게 뻔했다.이번만큼은 절대로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시유가 끝까지 강하게 나오겠다면 자신도 끝까지 버틸 생각이었다.여준은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내려놓고 일어났다.“알겠어요. 나가 보죠.”대문까지 간 여준이 집사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문이 열리자 시유가 눈에 들어왔다.하룻밤 사이 몇 년은 늙어 보일 만큼 수척했다.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여준은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지만 애써 외면했다.그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사람들을 훑어봤다.“나랑 시유 개인적인 일에 세 분씩이나 직접 찾아오시고, 참 대단하시네요.”“다들 시유한테 정말 각별한가 봐.”마리가 바로 소리쳤다.“부여준, 그런 식으로 비꼬지 마. 당신이 너무 못된 짓을 하니까 다들 화가 난 거잖아. 그걸 몰라?”여준의 미간이 깊게 구겨졌다.“시유가 내 가족을 전부 경찰에 넘겨서 아직도 못 나오고 있는데 그건 지나친 일이 아닌가? 내 친딸을 내 집에 며칠 데려와 있겠다는 게 그렇게까지 잘못이야?”마리는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화가 나 주먹까지 불끈 쥐었다.“부여준, 말 좀 똑바로 해. 당신 누나들이랑 소새나는 법을 어겼어. 잡혀 간 건 당연한 거야. 그리고 이건 딸을 며칠 데려와 있는 게 아니잖아.”“시유 동의도 없이 멋대로 아이를 데려와 놓고 안 돌려주고 있잖아.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둘을 똑같은 일처럼 말하지 마.”시유는 여준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바라보다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알 수 있었다.여준은 빛나를 돌려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시유는 손을 천천히 꽉 쥐고 물었다.“부여준, 다른 말은 안 할게. 지금 빛나 데리고 나와서 나한테 넘겨.”“그러면 여기서 다 끝낼게.”여준의 얼굴도 차갑게 굳었다.“말했잖아. 며칠은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당신도 원하면 여기서 같이 지내도 돼.”“대체 내가 더 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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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두 사람이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자 연호가 급히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형, 지금 너무 예민해졌어. 전에는 나까지 의심하더니 이제 영우 형까지 의심하냐?”“우리는 그냥 시유를 친구로 생각해서 돕는 거야. 형이 생각하는 그런...”연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준이 차갑게 끊었다.낮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래. 이제 다들 시유는 친구고 나는 남이 됐는데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야겠어.”연호는 할 말을 잃었다.시유가 여준을 노려봤다.“부여준, 그만해! 이건 우리 둘 문제야.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필요 없어.”시유가 차갑게 물었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물을게. 빛나 돌려줄 거야, 말 거야?”“안 돌려주면 이제 나도 더는 봐주지 않아.”여준은 시유의 눈에 가득한 증오를 바라봤다.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시유는 분명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입술에도 핏기가 없었다.마음이 아팠다.당장이라도 물러나고 싶었다.하지만 이번에 또 마음이 약해지면...‘안 돼.’이번에도 물러나면 정말 시유와 완전히 끝날 것 같았다.강하게 나가기로 했다면 끝까지 버텨야 했다.여준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눌렀다.시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나도 말했어. 며칠만 내가 딸을 데리고 있고 싶다고. 이 정도 작은 부탁조차 꼭 거절해야 해?”“빛나는 당신 혼자 소유한 물건이 아니야. 우리 둘의 딸이고, 나한테도 돌볼 권리가 있어.”시유의 얼굴이 완전히 차갑게 굳었다. 분노와 답답함이 가슴을 꽉 채웠다.여준은 누구보다 시유가 빛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작 부씨 집안은 빛나가 태어난 순간부터 외면하고 무시했다.그런데 이제 결혼이 끝나 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다정한 아버지 행세를 하고 있었다.딸을 협박 수단으로 이용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아이를 아끼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역겨웠다.시유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부여준, 스스로한테 한번 물어봐. 당신이 정말 빛나를 사랑해서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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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여준은 다급히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진명화가 빛나를 세워 안고 아이의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한 채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왜 그렇게 세게 두드려요? 아직 아기라 아프잖아요!”여준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쓰였다.“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 열은 내렸는데 이번에는 기침을 하잖아. 등을 두드려 주면 가래가 나온대.”진명화는 벌써 지친 얼굴로 불평했다.“아기 돌보는 게 정말 힘드네. 너도 참, 애를 데려오려면 시터도 같이 데려오지 그랬어.”“집에 있는 사람들도 다 맡은 일이 있으니 애까지 보라고 하면 싫은 티를 내고. 그렇다고 나한테 계속 애를 보라고 할 수는 없잖아?”고작 하루 돌봤는데 벌써 불만이 터져 나왔다.여준은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중간중간 기침까지 하는 빛나를 바라봤다. 진명화의 불평까지 듣고 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때 말끔히 차려입은 부인걸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여준을 서재로 불렀다.문이 닫히자 부인걸이 책상을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시유 뒤에 대체 누가 있는 거야? 내가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해서 네 두 누나랑 새나를 빼내려고 했는데 어디에도 먹히질 않아.”여준의 표정이 굳었다.“아버지,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시유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영우 정도일 텐데요.”부인걸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저었다.그러고는 몸을 돌려 날카롭게 여준을 바라봤다.“알아봤어. 강씨 집안이 나선 게 아니야. 게다가 누가 뒤를 봐주는 건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더군.”“여준아, 잘 생각해 봐. 시유가 그동안 대체 누구를 알게 됐길래 이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거야?”여준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시유 뒤에 있는 사람이 영우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지난 몇 년 동안 시유는 부강그룹에서 성실하게 일했다. 사적인 만남도 거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쏟았다.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여준이 입을 열려던 순간 찬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목소리가 다급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여준의 관자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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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부인걸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낚아채 실시간 주가 화면을 열었다.모니터 속 부강그룹 차트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곤두박질치고 있었다.완만하던 그래프는 순식간에 수직으로 꺾였고, 쏟아지는 매도 물량이 매수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화면에는 ‘-9.8%’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여준아! 이리 와서 네 눈으로 봐!”부인걸이 홱 고개를 들었다.가슴은 크게 들썩였고 모니터를 가리키는 손가락까지 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봐! 은행, 협력사, 이사회까지 지금 전부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늘 모든 걸 손안에 쥐고 있다고 자신하더니 어떻게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부인걸의 목소리가 폭발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가를 다시 올려!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 안 그러면 내가 평생 키워 온 부강그룹이 너 때문에 끝장나게 생겼어!”말을 끝낸 부인걸은 힘이 빠진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갑자기 천식 발작까지 일어나 몸을 웅크렸다.얼굴이 검붉게 달아오르고 목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쌕쌕 새어 나왔다.여준은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아버지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황급히 서랍을 뒤져 흡입기를 꺼내 부인걸에게 건넸다.숨소리가 조금 가라앉자 부인걸은 여준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다.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였다.“빨리 가서 누가 한 짓인지 당장 알아내! 지금 당장!”여준은 몇 초 동안 침묵했다.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곧 몸을 돌려 무거운 걸음으로 서재를 나갔다.상황이 이 지경까지 벌어졌는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예전에는 자기 앞에서 늘 참고 따르기만 하던 시유가 이 모든 일을 벌일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다니.여준은 가장 먼저 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영우의 목소리는 낯설 만큼 차가웠다.인사조차 없었다.[말해.]여준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목소리가 날카롭게 가라앉았다.“부강그룹 주가 공매도당한 거, 네가 월가 쪽 사람들 움직인 거야? 강영우, 경고하는데 여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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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여준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한쪽 불을 겨우 끄면 다른 쪽에서 또 불길이 치솟았다.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불안과 분노에 시달렸다.결국 저녁이 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너무나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시유는 벌써 이틀째 빛나를 보지 못했다.이틀 내내 왼쪽 눈꺼풀이 계속 떨렸고 가슴에는 커다란 돌덩이라도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시유는 마음을 굳혔다.오늘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빛나를 봐야 했다.여준이 또 돌려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데리고 부씨 본가로 쳐들어갈 생각이었다.강제로라도 빛나를 데려올 것이다.핸드폰이 진동했다.화면에는 부여준의 이름이 떠 있었다.시유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생각 좀 바뀌었어?”여준은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다.[시유야, 부강그룹 주가가 무너진 거... 당신이 한 짓이야?]시유가 가볍게 웃었다.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당신 생각은 어떤데?”쾅!여준이 책상을 거세게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내가 알아봤어. 우리 주식을 공매도한 곳은 A국 1위 투자사인 블랙스톤캐피털이야. 실제로 자금을 움직인 사람도 웬만한 재벌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금융계 거물 빌이고.]여준의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모르는 척하지 마. 당신이 며칠 만에 빌 같은 사람과 연이 닿았을 리가 없어!][전부 우연이지? 해외 자본이 마침 부강그룹을 노리고 있었는데 당신이 그 상황을 이용한 것뿐이잖아. 그런 거지?]시유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여준의 오만함은 뼛속까지 배어 있었다.회사가 무너질 지경인데도 시유가 자신을 몰아붙일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렇다면 조금 더 그렇게 믿게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고집을 부리는 대가는 부강그룹 전체가 치르게 될 것이다.시유는 웃음을 억누르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그러게. 내가 뭐라고 세계적인 금융 거물 빌까지 움직이겠어.”“당신 말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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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시유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졌다.더는 망설이지 않았다.액셀을 끝까지 밟자 흰색 마세라티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 부씨 본가로 향했다.여준도 서둘러 차를 몰고 돌아왔다.오는 내내 머릿속은 엉망이었다.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만 계속 생각했다.아무리 따져 봐도 핵심은 결국 시유였다.여준은 주가를 되살리기 위해 국내 최고 수준의 투자팀까지 고용한 상태였다.이미 막대한 자금도 쏟아부었다.부강그룹은 앞으로 현금 흐름이 크게 빠듯해질 것이다.무슨 일이 있어도 최대한 빨리 상황을 안정시켜야 했다.시유가 현실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서 준다면 가장 이상적이었다.그렇다면 빛나의 백일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부강그룹이 여전히 건재하고 집안도 화목하다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 줄 수 있었다.주가를 안정시키고 집안의 명예도 되찾을 기회였다.그 모든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시유였다.시유만 잘 협조한다면 모든 일이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여준은 백일잔치를 계기로 시유가 부강그룹 사모님이라는 사실도 대대적으로 공개할 생각이었다.거기에 시유가 디자이너 ‘바람’이라는 점까지 활용하면 업계에서 부강그룹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반응이 좋다면 머지않아 시유와 성대한 결혼식도 열 생각이었다.이번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화려하게 다시 맞아들일 것이다.그러면 부강그룹도 빠르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고 시유의 마음도 다시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여준은 여전히 시유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가 부씨 집안이 자신과 빛나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제는 빛나의 백일잔치도 크게 열어 줄 생각이었고 시유와 결혼식도 할 의향이 있었다.그 밖에 원하는 조건이 있다면 뭐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단, 시유가 라움디자인 지분을 정리하고 회사를 그만둘 것.영우와 거리를 두고 다시 부강그룹으로 돌아올 것.예전처럼 순순히 자신의 말에 맞춰 주면서 세오름타워 프로젝트를 함께 성공시키고, 앞으로도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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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시유는 활짝 열린 부씨 본가 대문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손을 들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곧 여준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검은색 마이바흐 십여 대가 부씨 본가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차량들은 일사불란하게 본가 앞 공터에 줄지어 들어서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곧 모든 문이 동시에 열렸다.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키가 모두 180센티미터가 넘는 건장한 경호원 수십 명이 차에서 일제히 내렸다.선두에는 변항이 서 있었다.변항이 짧게 지시하자 모두 즉시 두 줄로 정렬해 그의 뒤에 섰다.순식간에 수십 명의 경호원이 시유의 뒤를 빼곡하게 채웠다.여준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시유를 바라봤다.“지금... 뭐 하는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가까지 데려와서 대체 뭘 하려고?”시유는 팔짱을 끼고 입꼬리를 올렸다.“보면 모르겠어? 뭘 굳이 물어봐.”시유가 변항에게 고개를 까딱했다.그 즉시 변항이 사람들을 이끌고 부씨 본가 안으로 들어갔다.집사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사람 불러요! 빨리 나와요! 사모님이 사람들을 데리고 쳐들어왔어요! 전부 내보내요!”소식을 들은 본가 보안 요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하지만 변항이 데려온 사람들은 실력부터 차원이 달랐다.달려든 본가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 빠진 사람도 있었고, 얻어맞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일방적인 승부였다.시유는 만족스럽게 변항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변항은 눈을 살짝 깜빡였다. 늘 얼음장 같던 얼굴에 보기 드물게 뿌듯한 기색이 잠깐 스쳤다.신분을 완전히 드러낸 뒤 변항이 이번에 데려온 사람들은 MR그룹에서도 손꼽히는 최정예 경호팀이었다.전원이 용병 출신으로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원래라면 국가 원수나 세계적인 거물급 인사의 경호가 아니면 쉽게 투입되지 않는 인력들이었다.하지만 시유를 곁에서 지켜본 동안 변항은 이 여자의 시원시원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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