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에서 손꼽히는 대작을 출시한 IT회사인 CH-컴퍼니에 합격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비서실에 발령이 나고 엔터 회사로 확장하면서 일에 파묻혀 살다 대표와 비밀 연애에···,좋아했던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고가 나 기억상실이라는 황당한 사건을 겪으니 지금은 숨통을 죄어오는 악몽이 되어 버렸다.그동안 번 돈의 일부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빚을 갚는 데 써버렸고, [하늘 재단]에 기부하여 세종동 어르신들을 위해 지출한 바람에 재정 상태는 당연히 좋지 못했다.이게 현실인가 싶어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정류장의 고요를 깨트렸다. 액정 위로 뜬 이름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이어폰 너머로 친구 이아준의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하늘아, 지금 집이면 잠실로 넘어올래? 도국이도 불렀는데.“아준아···. 미안, 나 아직 병원 앞 정류장이야.”-뭐?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이아준의 타박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들이었지만, 차준호와의 은밀하고 파괴적인 연애사만큼은 차마 녀석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 결국 속내를 조금 흘리고 말았다.“사실··· 안 그래도 퇴사를 고민 중이야. 이직을 하든 그만두든 해야 할 것 같아서.”어차피 기억상실이라는 황당한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내 첫 경험이자 첫 연애였지만, 남겨진 상흔은 너무나 처참하고 지독해 어서 이 지옥에 벗어나고 싶었다.-오호, 그래? 안 그래도 너 우리 개발실로 데려오고 싶었는데 잘됐네. 이직하고 싶으면 언제든 우리 회사로 와. 네 전공 살려서 컴퓨터 실컷 만지게 해줄 테니까.눈물이 핑 돌 만큼 고마운 소리였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진짜 고마워, 하지만 내 계약서 조항이 되게 복잡하게 꼬여 있어. 3년 동안 동종 업계 이직도 안 되고, 일방적으로 나가면 위약금이 너무 많아서 꼼짝도 못 해.”내 하소연에 수화기 너머로 이아준의 낮은 웃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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