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러 찾아왔다니.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그와 사적으로 얽힐 이유도, 할 말도 없었다.갑자기 온몸에 차가운 방어 기제가 작동하며 딱딱한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던 찰나, 백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둔 그의 명품 목도리가 퍼뜩 떠올랐다. 나는 차오르는 긴장감을 누르며 급히 몸을 돌렸다.“최 실장님, 잠깐만요.”황급히 가방을 열어 단정하게 개켜둔 목도리를 미리 준비해 두었던 쇼핑백에 담아 최기범에게 내밀었다.“그날 빌려주신 거, 잘 썼습니다.” “아······ 그거 그냥 가져도 되는데.”최기범은 제 손에 쥐어진 쇼핑백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이내 입가에 묘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거나는 그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이런 과분한 호의는 제게 어울리지 않네요.”최기범은 민망한 듯 덥수룩한 머리를 부스스 흐트러뜨리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언제든지 나를 이용하십시오. 하늘 씨와 나는 분명 목적지가 같을 거라는 확신이 들거든요.”그 말을 하려고 굳이 여기까지 온 건가.바로 그 순간, 벌컥 -!단 한 번의 노크 소리도 없이, 날카롭고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비서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그곳에 서 있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차준호였다.흐트러짐 없는 은빛 슈트에 자로 잰 듯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한 그는, 특유의 오만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실내를 서늘하게 훑었다. “신 비서, 오늘도 옷차림이 영 별로네. 일부러 내 취향을 비껴나가고 싶었던 거라면…… 축하해, 성공했으니까.”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돌려버렸다. 내 침묵에 오히려 차준호의 서늘했던 표정이 기묘하게 풀어졌다.“그래도 오늘 아침엔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출근했네?”역시 그는 내가 지난 주말의 충격으로 도망치듯 그만둘 거라 확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맡은 업무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려고요.”제멋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말하는 차준호를 똑바로 응시하며, 나는 가방 속 사직서의 존재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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