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105 챕터

#21. 우글우글 짐승 소굴

어느덧 매서운 추위를 뚫고 토요일 아침의 시린 햇살이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부서지며 거리 위로 무겁게 쏟아졌다.지옥과도 같았던 일주일이 마침내 그 길고 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K-직장인들에게야 주말 아침이 달콤한 꿀맛 같겠지만, 24시간 대기조나 다름없는 대기업 대표의 비서인 나에겐 애초에 해당조차 되지 않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였다.그래도 다행인 건, 악마 같은 타이밍으로 연차를 써버렸던 비서 허기찬의 지옥 같던 휴가가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다가오는 다음 일주일은 혼자서 그 독박을 쓰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출근하게 되었다.사실 차준호는 원래 어제 날짜로 퇴원 이야기가 진지하게 오갔던 상황이었다. 그가 호소하는 그 지독한 두통의 원인이 혹시 상실된 3년 치의 기억이 수면 위로 돌아오려는 전조증상인 건 아닐까. 조용히 밀려드는 의구심에 잠시 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기억이 전부 돌아온다면, 차준호는 나와 함께 보냈던 그 달콤했던 순간들까지 선명하게 떠올려 주려나. 대신 거짓말 한 것은 금방 들통이 날 터. 실소가 새어 나왔다. 설령 기억이 돌아온다 한들, 그 오만한 남자와 내가 함께하는 미래 따윈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되새길 뿐이었다.‘어차피 그만둘 회사인데······.’일순 최기범 실장의 간곡한 만류와 걱정 어린 시선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기에 사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병원 앞 정류장에 발을 내딛자마자 입김이 하얗게 섞인 묵직한 한숨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지옥 같은 종합병원으로의 출근도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가라앉았던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 걸음을 재촉해 로비로 들어선 나는 지체 없이 1층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어젯밤 차준호의 전화를 차마 받지 않고 버텼더니, 새벽같이 아예 대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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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포식자의 영역에서

내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엘리베이터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인간들은 전부 주원형의 손발 노릇을 하는 JW 측 경호원과 관계자들이었다. 대한민국 연예계와 재계를 쥐고 흔드는 거물급 인사들이 이 좁은 격실에 모여 있었지만, 나는 척추를 곧게 세우고 반듯하게 무게중심을 잡았다.새해 첫날인 1월 1일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재앙의 연속이더니, 오늘도 운수 사나운 날의 스케줄이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중이었다.나는 이 우글거리는 짐승 소굴 같은 압박감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자 흐려지려는 눈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은밀하게 협의 좀 해야 할 것 같아.”차준호는 내게 먼저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하긴 공식적인 회동이라면 미리 회사에 연락이 왔을 터.홍보실이나 총무과 그 어디에서도 JW 수장과의 회동에 대해 연락해 온 바가 없었으니까.“네, 그럼 바로 병실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그때 강소희는 고개를 설핏 기울이더니 내가 들고 있는 바닐라 라테를 빤히 바라보았다.“토끼 비서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시고 싶은데 가능할까?”나는 강소희의 목소리도 듣기 싫어 절로 속이 끓었지만, 비서로서의 본분은 다해야 했기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하지만 차준호는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거기 뒤에 있는 너희 회사 사람한테 부탁해.”그 말과 동시에 차준호는 내 손에 들려 있는 바닐라 라테를 가지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먼저 내렸다. 난 강소희의 커피는 별로 사주기 싫었지만, 주원형은 달랐기에 바로 그에게 몸을 향했다.우리나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자 코스닥 시가 총액 20위 대기업인 JW엔터테인먼트의 수장에게 차를 대접하는 건 내 소관이었다.“주 대표님은 무엇으로 드릴까요.”그러자 그는 옆에 입을 삐죽이며 강소희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희랑 같은 것으로.”지독하게 진득한 시선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시선을 넘어서서 먹잇감을 보는 피라미드 정점에 이른 포식자의 굶주린 눈이라고나 할까.갑자기 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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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은밀하게 조여 오는

‘이 남자가, 진짜······!’내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차준호는 지금 이 굴지의 거물들 앞에서 나를 당황시켜 기어이 망신을 주려는 걸까, 아니면 나를 시험하려는 걸까.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쳐 귓가가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시선이 칼날처럼 박혀드는 와중에도, 나는 악착같이 프로 비서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쓰며 입술을 열었다.“대표님께서 결정하시는 방향대로 회사가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홍보실을 비롯한 각 부서에 즉각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당사의 중장기적 이미지에 미칠 파장과 주가 리스크를 고려하셔야 합니다.”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건너편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주원형이 나를 기민하게 응시했고, 강소희 역시 이 기묘한 상황이 꽤나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눈을 반짝였다.거물들의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히는 그 순간, 차준호가 낮게 침묵을 깨뜨렸다.“내 질문은 그게 아닐 텐데.”나는 이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답을 찾고자 머리를 굴리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현재 관련 부서의 공식 라인이 가동되지 않은 상태이니, 지금 즉시 법무 지원 실장님이나 리스크 관리 실장님께 연락을 취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 오겠습니다.”내 영리한 회피를 지켜보던 주원형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롭게 빛을 발했고, 강소희는 입꼬리를 묘하게 올렸다.그러자 차준호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천사처럼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잔인할 정도로 다정한 어조가 귓가를 긁었다.“나는 ‘신하늘’ 개인의 생각이 궁금한데.”이 인간은 신이 빚어낸 악마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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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새겨진 아픈 흔적

사실 ‘에스텔라’ 내에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건 비주얼 센터인 세나 한 명이었기에, 평소에도 하나와 두나가 은근히 질투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폭력까지 쓰며 크게 판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S대 얼짱 출신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신이 내린 비주얼, 거기에 보컬과 댄스 실력까지 완벽하다는 화제성을 독점하며 데뷔한 세나였다.반면 3인 체제로 가려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합류한 하나는 사사건건 세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꼬투리를 잡고 흔들기 일쑤였다. 이름조차 세나는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하나는 하영, 두나는 연두, 나나는 나연이기에 억지로 갖다 붙인 것부터가 그들에겐 자격지심의 씨앗이었다.그나저나 도국의 대기실에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분명 복도엔 아무도 없었는데 어쩌다 이 비밀이 새어 나간 걸까.“언니, 내 말이 맞다니까? 세나 얘 진짜 무서운 애야. 감히 DG 선배 인기에 숟가락 얹어서 이슈 몰이 하려고 하잖아?” “나도 도국 오빠 공식 팬클럽인 「댄져러스」 출신이라서 다 알거든? 예전에 세나 네가 팬클럽 게시판에 도국 선배님 덕에 자극받아서 좋은 대학 가고, 연예계 데뷔까지 결심했다고 장문의 글 올린 적 있잖아! 조금만 추측하면 너라는 거 바로 특정할 수 있는데, 좀 조심했어야지!”하나는 화를 펄펄 내며 옆에 있던 스물여섯 살 멤버 두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나 역시 눈에 불을 켜고 세나를 당장이라도 뜯어먹을 듯이 쏘아붙였다.“와, 듣고 보니 애가 아주 계획적이었네. 언니, 우리 이제 어떡해요? 스캔들 터지면 우리들은 여자 팬들한테 미운털 박혀서 완전히 끝장나잖아요. 겨우 1위 한 번 찍고 이제 탄탄대로다 싶었는데······.”지옥 같은 마녀사냥이 이어지던 바로 그때, 여태껏 구석에서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그룹의 막내 나나가 조용히 움직였다. 나나는 휴게실 냉장고에서 꽁꽁 얼어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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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망할, 사랑 고백이라니

차준호의 돌직구 같은 질문에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나는 차분하게 숨을 가라앉힌 뒤 애써 덤덤한 척 대답을 건넸다.“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그러자 그는 유려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에 걸린 내 펜던트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그냥. 날 보는 눈빛이 상사를 대하는 비서의 그것이 아니라, 오롯이 남자를 향해 있으니까 말이지.”심장이 바닥으로 덜컥 내려앉았다. 세차게 요동치는 마음을 감추려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 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갑자기 차준호가 펜던트를 툭 내려놓더니, 제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험악하게 구겼다.“아, 머리야······.”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그를 바라보니, 그는 관자놀이를 부서질 듯 꾹꾹 누르며 터져 나오는 고통을 간신히 참아내는 듯했다.“잠시만요, 대표님.”불안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의료진을 부르기 위해 너스콜 호출 벨로 손을 뻗으려 했다.바로 그때, 거친 숨을 내쉬던 그가 전광석화처럼 다가와 온기가 깃든 손으로 내 손목을 강하게 낚아챘다. 일순 찌릿한 전류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듯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대답해야지. 내 질문이 먼저야.”“······이런 사적인 대화는 사양하겠습니다.”그를 좋아하든 증오하든,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정답이었다. 어차피 그와 나 사이엔 더 이상 이어질 밀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난 갑자기 지독하게 궁금해졌는데.”속에서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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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가면을 벗고, 좀 쉬려고

‘하나가 되고 싶고, 곁에 두고 싶다니. 이런 망할.’그렇게 사랑 고백을 크리스마스에 차준호가 내게 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뜨겁게 사귀다가 오늘을 맞이했다면, 더 뒷목 잡고 쓰러졌겠지.어차피 과거의 차준호는 이런 의미 따윈 전혀 모른 채, 준 것이 분명할 터였다. 그러니 고백하는 내게 그토록 잔인한 상처를 남겼겠지. “대표님, 이러시는 거 정말 질색이네요. 이게 제 대답입니다. 됐나요? 약속하신 대로 다음 주 일주일 동안 휴가 가지겠습니다. 이번 주 내내 힘들었거든요.” 이 순간만큼은 가면에 가려진 거짓이 아닌, 뼈저린 진실을 그에게 내던졌다. 그러자 차준호 역시 내 가시 돋친 목소리에서 진심을 읽어냈는지,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또 그럼 넘어가 줘야겠지? 알았어. 쉬어.”  ***  일요일 밤이 깊었다.도국은 오늘 새로 들어온 영화 시나리오를 최종 검토하기 위해 소속사 대표실로 향했다. “형, 좀 더 쉬고 싶은데.” 옆에서 걷던 전담 매니저 이동근이 홍삼 음료의 파우치를 뜯어 건네며 도국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크랭크인이 최대한 늦은 작품으로 골라봐.” 아마 주원형 대표가 도국을 잘 설득해서 대작 영화든 드라마든 하나는 무조건 계약하게 하라고 압박을 넣었을 게 뻔했다. 더구나 전속 계약 기간이 고작 10개월 남짓 남은 시점이었기에 JW 측에서 어떻게든 마지막 고혈까지 짜내어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을 잘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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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덫, 굴레에 갇혀

한바탕 카타르시스가 휩쓸고 간 자리는 서늘했다. 강소희와 주원형은 흩어진 옷가지들을 챙겨 입으며 방 안의 열기를 가라앉혔다.“대표님. 잔소리는 좀 그만해요.”오늘 같이 주원형이 날이 선 날은 조심해야 했기에, 강소희는 짐짓 잔망을 떨며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나 몰래 차준호랑 어디까지 간 거야?”낮게 가라앉은 질문. 남녀 사이의 정념은 비즈니스와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소속사 대표 몰래 스캔들을 치고 다닌 것도 문제지만, 지금 주원형의 눈빛에는 사심이 지독하게 얽혀 있었다. “많이 뜨거워질 뻔했는데, 망했죠 뭐.”강소희는 느슨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차준호한테 그런 취급이나 받으면서. 이제 마음 좀 끝내.”“알았어요. 저러다 그 사람 기억 찾으면 또 날 찾을지도 모르는데.”강소희는 그를 올려다보며 슬쩍 패를 던졌다. 세 살짜리 아이도 안 믿을 거지 같은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남자는 달랐다. 주원형은 지금 치기에 휩싸여 차준호를 어지간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등감과 소유욕을 이용하는 건, 언제나 강소희 자신이었다.갖고 싶은 건 저 멀리 반짝이는 별처럼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차준호.그다음 안착하고 싶은 평온한 안식처는 친구 같은 최기범.하지만 정작 자신은 점점 진흙탕 밑으로 가라앉고만 있는데, 숨 막혀 죽지 않도록 바닥에서 받쳐주고 있는 건 결국 주원형, 이 남자였다. 엉망진창으로 자신을 거칠게 다루긴 해도, 이 남자가 아니었다면 흙수저인 자신은 여전히 세상의 먼지처럼 바닥을 굴러다녔을 터였다.“신 비서를 봐. 영리하게 못 굴어?”“으윽,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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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직진으로 한번 가 볼까?

세종동 내 집 거실이 오랜만에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로 채워졌다. 어느새 식사 준비가 끝나갈 무렵, 안방 쪽에서 부스스한 인기척이 들려왔다.“하늘아, 수건 더 없어? 아준이 좀 챙겨 주게.”샤워를 마친 도국이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 마셨다.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느슨하게 풀어진 쇄골을 타고 내려가자, 나는 절로 숨을 삼켰다.회색 트레이닝 바지에 흰색 박스티 한 장만 걸쳤을 뿐인데, 그는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연예인 그 자체였다.“빨래는 작은방에 널어놓았어.”“알았어.”도국이 나지막이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따라 나온 이아준이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도국이 건넨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대충 털어내며 이아준이 주방에 등장했다. 인플루언서들이 얼굴 하나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재벌남이라며 연일 포스팅을 해대는 그가 지금 내 주방에 있으니 이 역시도 눈이 호강 중이었다.“아! 내가 좋아하는 달걀말이다!”이아준은 제대로 말리지 않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한 채 베시시 웃으며 젓가락부터 집어 들었다. 도톰한 달걀말이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아이 같았다.“감기 걸리게.”도국이 혀를 차며 새 수건을 들고 다가와 다정한 손길로 이아준의 머리를 털어주기 시작했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두 남자의 수려한 이목구비가 겹쳐지는 풍경은 실로 대단했다.“아, 밥 안 먹어도 배부르네.”얼마나 보기 좋은지, 보기만 해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나는 하늘이가 해 준 달걀말이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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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터닝 포인트, 다른 곳을 좀 보려고

이아준은 끝내 매니저 김정규가 데리러 오는 바람에 아쉬운 듯 먼저 떠났고, 거실에는 나와 도국 둘만 남게 되었다.나는 상큼한 귤을 까먹으며 느긋하게 도국과 게임을 즐기기 위해 안방 PC 앞에 자리를 잡았다.지옥 같은 시간들을 버텨내서 그런가, 살다 살다 내 인생에 이런 달콤한 여유도 생기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남들 다 일할 때 쉬는 한시적 백수의 휴식은 꿀맛이라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배어 나왔다.“도국아, 너 괜히 나 때문에 바쁜데 억지로 있어 주는 거 아니야?”혼자 멍하니 있는 것보다 도국의 온기가 곁에 머물러 주는 게 훨씬 좋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연예인이 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통째로 비워둔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알잖아. 내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동근이 형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거.”나는 귤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키보드 옆에 바짝 붙여놓고는 마우스를 쥐었다.“하긴, JW엔터는 지독하게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하니까.”곧바로 게임에 접속하려던 참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포털 사이트 창을 먼저 열어버렸다.화면이 전환되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 한구석에 얹혀 있던 의문을 슬쩍 흘렸다.“도국아, 주원형 대표님이 요즘 나보고 엄청 유명해졌다고 하시던데 그게 무슨 뜻일까?”내 질문에 도국은 쥐고 있던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깊은 눈동자가 내 얼굴에 와닿았다.“최근에 네가 기자들을 상대했잖아.”고작 그런 사소한 일로 대중의 화제가 되나. 연예계는 참 알다가도 모를 곳이었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안 그래도 주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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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빛나는 무대 밑에 놓인 덫

평온한 수요일 오후. 지상파 음악 방송의 대기실 안.도국은 과거 같은 그룹의 멤버였으나 최근 홀로서기를 하며 솔로 앨범을 발매한 마현을 지원 사격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주원형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더 괴물처럼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하늘에게 대놓고 명함을 건네며 접근한 이유만큼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강소희에게 미친 듯이 집착하던 인간이, 대체 왜 신하늘에게?’벽면에 걸린 큐시트 모니터에서 '에스텔라'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도국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리허설 끝나면 대기실로 와.]대기실로 찾아올 세나에게 간결한 문자를 보낸 뒤, 그는 대기실 내 미니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 두 병을 꺼냈다.“도국아, 진짜 고맙다! 급하게 부탁한 피처링인데 아주 완벽하더라. 역시 넌 프로야.”화장실을 다녀왔는지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들어서던 마현이 도국을 발견하고는 안도하듯 반색했다.“그 곡 내가 썼잖아. 형, 일단 이거 마셔.”마현의 홀로서기가 보란 듯이 성공하길 누구보다 바랐기에, 도국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음료병을 건넸다.“노래에 연기에, 이제 작곡까지 못 하는 게 뭐냐? 군대까지 진작 해결한 게 제일 부럽다. 나도 이번에 피 터지게 활동하다가 겨울쯤엔 입대해야지.”“욕심 부리지 말고 건강부터 챙겨.”도국은 안타까움이 서린 눈빛으로 마현을 바라보며 음료병을 든 채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요즘 지옥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마현의 눈 밑에는 거뭇한 그늘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마현은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첫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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