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40

170 فصول

131. 같은 곳에 두지 않습니다

심가의 대문은 해가 기울 때 가장 조용했다. 부엌에서 쌀 씻는 소리가 낮게 이어지고, 마구간의 말들이 저녁 여물을 받는 시각이었다.그 저녁 한가운데, 붉은 것이 놓여 있었다.붉은 예함.사랑채 앞 돌계단 아래.함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붉은 비단 덮개 위에 금실 구름 문양이 놓였고, 사방 모서리는 검은 칠목으로 감쌌다. 함을 묶은 끈은 새것이라, 손끝이 닿으면 붉은 물이 묻어날 듯했다.정무는 그 앞에 서 있었다.칼을 뽑지는 않았다. 다만 왼손을 칼집 끝에 얹고, 오른발을 돌계단 한가운데에 두었다. 그 발 하나로 사랑채로 오르는 길이 막혔다.정무의 뒤로 심가의 호위 둘이 섰다. 말도 없고 기색도 크지 않았지만, 위명서가 데려온 내관들은 그 세 걸음을 넘지 못했다."정 호위장."위명서는 웃고 있었다.궁의 붉은 기둥과 금빛 현판이 없는 자리에서, 그 웃음은 조금 옅어 보였다."나는 심 부인의 병문안을 청했을 뿐입니다."정무는 고개를 숙였다."대장군께서 부재중이십니다.""그래서 더더욱 문안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전장에 계시니, 집안을 걱정하는 마음도 예가 될 수 있지요."말끝마다 예가 붙어 있었다.문간 하인들은 그 예 앞에서 얼굴이 굳었다. 황자의 병문안을 문밖에서 돌려세우면 무례가 되고, 붉은 예함을 안채 가까이 들이면 소문이 된다. 그 사이에 심가의 문지방이 얇은 칼날처럼 놓여 있었다.대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멎은 것은 그때였다.한두 필이 아니었다. 고르게 멈추고, 명령 없이 자리를 잡는 말들의 소리였다.왕부의 말들.가마가 대문 안으로 들었다. 가마꾼들이 어깨를 낮추자, 청아가 먼저 내려 가마 문을 열었다. 얼굴에는 궁에서부터 참아 온 걱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손만 야무지게 움직였다.월령은 가마에서 내렸다.발끝이 심가의 흙에 닿았다. 부드럽고 조금 축축한 흙에서 마구간과 탕약과 저녁밥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 황제의 밀서가 제 이름을 물고 있었는데,
اقرأ المزيد

132. 장군가입니다

문간의 공기가 바뀌었다.정무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청아는 숨을 삼켰다가 제 입을 손등으로 눌렀다.위명서는 여전히 웃었다."그렇습니까.""예."월령의 목소리는 나긋했다."병문안 물품이면 약방과 안채 장부에 올리고, 혼례의 함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직접 보셔야 합니다. 지금 아버지는 부재중이시고 어머니는 병중이시니, 붉은 함을 그대로 안채에 들이는 것은 예가 흐려질까 염려됩니다.""심 아가씨는 오늘도 예를 깊이 살피시는군요.""집안일이라 그렇습니다."월령은 청아를 보았다."청아.""예, 아가씨.""안채 장부와 흰 보자기를 가져오너라. 약재는 약방으로, 비단은 안채 창고로 따로 적는다. 함의 붉은 덮개는 벗겨 두고, 물건마다 올린 이를 적어라."청아의 눈이 반짝였다. 겁먹은 얼굴로도 손이 먼저 빨랐다."예, 아가씨."몸을 돌리자 윤백이 어느새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이미 깨끗한 흰 보자기 두 장이 들려 있었다.청아가 멈칫했다."어디서…""가마 뒤에 실어 두었습니다."윤백은 매우 엄숙했다."혹시 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정말이십니까?""정확히는 기윤이 말했습니다.""그럼 윤백 나리는…""들고 있었습니다."그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청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보자기를 받아 들고도, 손놀림은 빠르고 야무졌다. 하인 둘을 불러 붉은 함 앞에 낮은 탁자를 놓게 하고, 그 위에 흰 보자기를 폈다.그 작은 소란 사이에도 위명서는 월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아가씨가 이렇게 받으시면, 내가 가져온 마음이 너무 차게 나뉘는 듯합니다."월령은 부드럽게 웃었다."마음이 담겼다면, 더더욱 잘못 적히지 않게 해야지요."위명서의 눈동자가 잠시 멈췄다.차게 나눈다는 말을, 잘못 적히지 않게 한다는 예로 돌려받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월령은 물건을 거절하지 않았다.위명서는 그 점을 싫어하는 얼굴이었다.싫어하는 얼굴을 아주 잘 숨기는 얼굴.그때 사랑채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월령아."월령은
اقرأ المزيد

133. 합한화

나무 경첩이 낮게 울었다.안에는 궁중 약재가 먼저 들어 있었다. 얇게 말린 귤껍질, 백삼 두 뿌리, 기침에 쓰는 패모, 꿀에 절인 생강 조각. 병문안 물품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었다.청아는 하나하나 받아 흰 보자기 위에 올렸다."백삼 두 뿌리."안채 서리가 적었다."패모 한 갑.""꿀생강 한 단지."윤백은 옆에서 단지 마개가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했다. 제사상이라도 살피는 얼굴이었다. 청아가 한 번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단지 입구는 왜 보십니까?""샐 수 있습니다.""안 샙니다.""확인했습니다.""또 손등으로 하셨습니까?"윤백은 대답하지 않았다.청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월령은 그 작은 말들이 집 안의 공기를 아주 조금 살리는 것을 느꼈다. 하루 내내 굳어 있던 하인들의 어깨가, 그 실랑이 앞에서 처음으로 조금 내려왔다.저녁 바람이 마당을 한 번 지났다.월령의 치맛단이 옅게 흔들리고, 귀밑머리 한 올이 뺨에 스쳤다. 그녀는 그것을 넘기지 않고 함만 보았다. 옥잠 끝에 저녁빛이 맺혔다가 흘렀다.위명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장부를 부르는 어린 여인의 옆얼굴은 단정했다. 정전에서 밀서가 펼쳐질 때에도, 지금 제 앞에서 함이 헐릴 때에도, 목소리 한 번 높아지지 않았다. 그 단정함이 그의 눈에 오래 남았다.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예를 갖춘 얼굴 뒤에서 소리 없이 자랐다.그다음 비단이 나왔다.연한 회색 두 필, 옅은 청색 한 필. 병든 사람에게 맞는 차분한 빛이었다.월령은 그대로 넘기려다가 손을 멈췄다.비단 사이에 작은 향낭이 하나 끼어 있었다.크기는 손바닥만 했다. 붉은 비단에 금실로 합환화가 놓여 있었다. 쌍으로 여미는 끈이 달렸고, 끈 끝에는 작은 옥구슬 두 알이 마주 보고 있었다.병문안 물품에 어울리지 않았다. 혼례의 물건이라 하기에는 작았다.보는 사람은 웃으며 지나칠 수 있고, 소문이 옮겨 다니기에는 충분한 크기.삼전하가 심가에 합환 향낭을 보냈다.그 한 문장만으로도 경안의 찻집은 사흘을 떠들
اقرأ المزيد

134. 소문이 되기 전에

그 말에 붉은 향낭을 들고 있던 청아의 손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윤백이 곧장 작은 목갑을 내밀었다."여기에 넣으십시오."청아가 그를 보았다."이번에는 왜 준비되어 있습니까.""기윤이 혹시 향낭도 나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윤백 나리는 대체 직접 생각하시는 게 무엇입니까?""뜨거운 차를 식히는 일은 제가 생각했습니다."청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이 와중에도 월령은 웃을 뻔했다. 그러나 웃지 않았다. 위명서가 보고 있었다. 위지헌도, 보지 않는 얼굴로 보고 있을 것이다.그 생각에 목덜미가 아주 작게 뜨거워졌다."심 아가씨."위명서가 말했다."향낭 하나까지 이토록 조심하니,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는군요.""전하께서 미안하실 일은 아닙니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제가 아직 어려 모르는 것이 많아, 글로 남겨 두는 것입니다.""어리다."위명서가 그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정전에서는 그리 보이지 않았습니다.""정전에서는 어리다고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월령은 부드럽게 말했다."집에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위명서의 눈동자가 조용히 가라앉았다.그는 그 말에서 거절을 들었을 것이다. 아직 어려 받지 않겠다. 모르는 것은 적어 두겠다. 집의 장부 안에 넣어 소문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겠다.어느 말도 무례하지 않았다. 위명서는 트집 잡을 자리를 찾지 못한 얼굴로 잠시 서 있었다."그럼 오늘은 내가 심가의 장부에 한 줄 남았군요.""전하의 문안은 감사히 남겠습니다.""문안만?"짧은 물음이었다.위명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아래로 욕심이 비쳤다.그 순간 위지헌이 아주 천천히 옥대의 매듭을 바로잡았다. 손끝의 움직임은 느긋했다. 그러나 기윤이 문밖에서 고개를 조금 숙였다.월령은 그 작은 신호를 보았다.위지헌이 불쾌할 때, 그의 사람들은 먼저 숨을 낮춘다.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오늘은 그렇습니다."월령은 위명서에게 말했다."전하께서도 병문안을 오래 머무르게 하지는 않으실 테니까요."위
اقرأ المزيد

135. 빨간 함에 당과 있어

"심 부인."위지헌이 문밖에서 예를 갖추었다."늦은 걸음이었소."유씨는 그 예를 받았다."왕야께서 문밖을 지켜 주셨습니다.""심가의 문은 심가가 지켰소."정확한 말이었다. 그리고 조금 다정했다.유씨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월령은 그렇게 느꼈다가,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월령아."유씨가 조용히 불렀다."예, 어머니.""오늘은 안채로 들어와 쉬거라. 장부는 내가 보겠다.""하지만…""너는 오늘 궁에서도, 집에서도 충분히 섰다."유씨의 말은 부드러웠다."얼굴이 하얗다. 밥부터 먹고, 오늘은 일찍 자거라."월령은 대답하지 못했다.유씨는 한없이 여리고 고운 딸이 안타까워 애가 탔다."예."월령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그 순간 작은 발소리가 안채 쪽에서 달려왔다."언니!"아란이었다.아직 머리에 비녀도 제대로 꽂지 못하는 아이. 하루 내내 어른들의 얼굴이 무서워 행랑 뒤에 숨어 있었는지 눈가가 붉었다.청아가 잡으려 했지만, 아란은 이미 월령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빨간 함에 당과 있어?"심가의 공기가 아주 잠깐 멈췄다.월령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아란의 얼굴은 진지했다. 궁에서 온 붉은 함에는 당과가 들었을 것이라고 정말로 믿는 얼굴이었다.월령은 웃음보다 먼저 눈물이 날 뻔했다."당과는 없었어.""왜?""병문안품이라서."아란은 실망했다."궁에서는 병문안할 때 당과도 안 줘?"청아가 급히 속삭였다."아란 아가씨, 전하께서 계셨으면 큰일 날 말씀입니다.""전하가 당과를 싫어해?"윤백이 아주 엄숙하게 답했다."싫어하실 수도 있습니다."청아가 그를 노려보았다."왜 그런 대답을 하십니까.""확실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아란은 더 심각해졌다."그럼 왕야는 당과 좋아해?"이번에는 모두가 조용해졌다.위지헌의 시선이 아주 천천히 윤백에게 갔다. 윤백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소인은 모릅니다."기윤이 문밖에서 낮게 말했다."단것은 잘 안 드십니다."위지헌이 기윤을 보았다. 기윤은 이번에도 보지 못한
اقرأ المزيد

136. 조금이라도 말해라

한 글자였다.월령은 저도 모르게 소매 안의 손을 더 감췄다.위지헌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보이지 않아도 안다."월령은 입술을 다물었다.유씨가 가만히 딸을 보았다. 청아도 보았다. 아란은 무슨 일인지 몰라 눈만 깜빡였다.월령은 결국 소매 안에서 손을 꺼냈다.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정전에서 남은 손톱 자국 위에, 붉은 향낭을 보았을 때 다시 파고든 자국이 겹쳐 있었다.위지헌은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다.대신 윤백에게 눈짓했다. 윤백은 곧바로 작은 약갑을 청아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뜨겁지 않은 물도 함께였다.청아가 약갑을 받아 월령 곁에 섰다."아가씨, 제가 발라 드릴게요."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청아의 손은 따뜻했다. 쓴 풀 냄새와 박하 냄새가 섞인 약을 손끝에 묻혀 자국 위를 조심스럽게 문지르자, 따끔한 기운이 올라왔다.월령은 숨을 참았다.위지헌이 그것을 보았다.말은 없었다.다만 시선이 그녀의 손끝에서 눈으로, 천천히 올라왔다.왜 참느냐고 묻는 눈이었다. 나무라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는데, 월령은 어쩐지 들킨 사람이 되었다."조금…"묻지도 않은 대답이 먼저 새어 나왔다.말끝은 끝내 여물지 못하고, 저녁 공기 속에 얇게 흩어졌다.고개가 저절로 조금 숙여졌다. 귀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이 옅은 빛을 받아 흔들렸고, 다문 입술 끝에는 아픈 것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자란 사람의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속눈썹이 떨렸다. 그 아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채,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있었다.폐위와 죽음을 건너온 손이었다. 그런데 그 손의 주인은, 조금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끝내 다 하지 못했다.위지헌의 손이 옥대 매듭 위에서 멈췄다.흘러내린 그 머리카락 한 올을 넘겨 주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충동이 손끝까지 내려와 있었다.사람들이 보는 마당이었다.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숨을 한 번, 아무도 모르게 길게 눌러 삼켰다."조금이라도 말해라."목소리는 평온했다.그 평
اقرأ المزيد

137. 내 손을 써라

기윤과 윤백과 몇 걸음 밖의 왕부 호위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저녁빛이 월령의 어깨에 내려앉았다.살구꽃이 없는 계절이었다. 그런데도 위지헌은 그녀에게서 희미한 꽃향을 느꼈다. 한 번 꺾인 뒤에도 다시 가지 끝에 올라오려는 향.그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위지헌은 입술을 다문 채 그것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목울대가 한 번 느리게 움직였다. 삼켜지는 것은 말인데, 더 깊은 곳이 함께 쓸려 내려갔다."오늘은 잘했다."꺼낸 것은 다른 말이었다.월령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아까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위지헌은 부정하지 않았다. 고쳐 말하지도 않았다.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한 번 뱉은 말을 다시 입에 올리는 일이 없는 사람.그런 사람이, 두 번이나 말해 줄 정도로.그 뒤를 월령은 잇지 못했다. 이으면 안 될 것 같았다."제가 아이 같습니까."말해 놓고, 저도 몰랐다.입술이 조금 나오고, 뺨이 얇게 부풀어 있는 것을. 폐위와 죽음을 건너온 책사가 아니라, 투정 섞인 열여섯의 얼굴이 잠깐 그 자리에 있었다.위지헌의 시선이 그 뺨 위에서 멈췄다.가슴 안쪽 어딘가가 바람 지난 물낯처럼 얕게 흔들렸다. 십만 대군 앞에서도 흔들린 적 없는 자리였다.위지헌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그런 얼굴 앞에서 함부로 웃지 않았다.웃으면, 이 아이가 다시는 이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을 것이다."어린 건 사실이라…"말끝이 드물게 흐려졌다.위지헌의 시선이 그 얼굴 위를 천천히 지났다. 아직 성년의 비녀를 꽂지 못한 머리. 여물지 않은 뺨의 선.그 어림이, 지금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세월의 길이였다.어리기에 그는 아직 아무것도 청할 수 없었다. 이름을 붙일 수도, 곁을 달라 할 수도 없는 시간.오래 기다려 온 사람인데, 남은 기다림이 오늘따라 멀었다.월령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끝을 흐린 말이, 어리다는 단정보다 깊이 박힌 모양이었다.위지헌은 그 굳음을 보았다.어리다는 말이 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그는 알고
اقرأ المزيد

138. 거친 글씨

붉은 향낭에서 나온 종이는 손바닥보다 작았다.그 작은 종이 한 장이 심가의 저녁을 다시 조용하게 만들었다. 월령이 그것을 펼친 뒤로, 부엌의 물 끓는 소리도 하인들의 말소리도 한 걸음씩 물러났다.'문선은 살아 있다.''붉은 함은 미끼다.'글자는 떨려 있었다.붓으로 쓴 글이 아니었다. 끝이 뭉툭한 나무 조각에 먹을 묻혀 급히 눌러 적은 듯했다. 획마다 먹물이 고르지 않았고, 종이 가장자리는 손톱으로 찢어낸 것처럼 거칠었다.월령은 그 글을 오래 보았다.거친 글일수록 쓴 사람의 숨이 남는다는 것을, 그녀는 필사방의 종이들을 넘기며 배웠다.누군가 서두르고 있었다. 두려워했고, 몸을 숨긴 채 작은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고, 들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말을 남겼다."문선이 직접 넣었을까요?"청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목소리는 작았지만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어느새 붉은 향낭을 흰 보자기 위에 올려 두고, 작은 목침을 가져와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눌렀다.겁을 먹어도 손이 먼저 제 할 일을 찾는 아이.월령은 그런 청아를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시큰했다."직접 넣었다면 심가 대문 안까지 들어온 셈이야."월령은 낮게 말했다."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문선의 말을 받아 향낭에 숨겼겠지.""그럼 그 누군가가 우리 편일까요?"월령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편.궁에서부터 그 말은 너무 많은 얼굴을 하고 따라왔다.숙비는 누구 곁에 설 것이냐 물었고, 위명서는 곁을 말했으며, 위지헌은 제 손을 쓰라 했다. 이제 붉은 향낭 속 종이마저 편을 묻는 것 같았다."아직은 모르겠어."월령의 말은 부드러웠다."다만 우리에게 보라고 숨겼다는 것은 알 수 있어."위지헌은 말없이 종이를 보았다.그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사랑채 앞에는 아직 하인들이 오가고 있었고, 유씨와 정무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위지헌은 늘 그렇듯 선을 지켰다. 한 발만 더 가까우면 향이 닿을 거리인데도, 그 한 발을 끝내 밟지 않았다.월령은 그 거리가 이상하
اقرأ المزيد

139. 다칠 일 없어

"왜요?"윤백이 대답했다."나중에 시비가 붙으면 은자를 보여 주며 제 물건이라 우길 수 있어서입니다."청아가 그를 보았다."윤백 나리는 정말 여러 가지를 아시네요.""쓸데없는 것을 많이 압니다."기윤이 낮게 말했다."맞다."윤백은 이번에는 반박하지 못했다.*같은 시각, 동시 끝자락의 만춘함방에는 늦은 등불이 하나 남아 있었다.늙은 주인은 장막 뒤에 세워 둔 붉은 함 하나의 먼지를 닦고 있었고, 장부를 쓰는 조카 사내는 낮에 받은 은자를 손가락으로 굴렸다. 가장자리에 작은 칼자국이 난 은자였다.함방 사람들은 누가 어느 집 문턱으로 함을 들였는지 오래 묻지 않았다. 웃음이 실리든 울음이 실리든, 함은 돌아오고 삯은 남는다는 것만 알면 되었다.다만 그 은자가 낯익어, 사내는 두 번 세었다.그리고 장부의 한 칸을 비워 두었다.문밖에서는 저녁 장이 파하며 물 묻은 발소리가 골목으로 스며들었다.*심가의 마당에서, 월령은 왕부 사람들의 짧은 말다툼 덕에 겨우 숨을 골랐다.칼끝 같은 하루였다. 그 하루 끝에서 왕부 사람들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긴장과 숨 쉴 틈을 함께 놓을 줄 알았다.위지헌은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미끼라면 잡아야겠지요.월령은 조금 전 제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 말이 지나치게 단단했음을 이제야 알았다.손을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음은 벌써 칼을 쥐려 하고 있었다."심월령."위지헌이 그녀를 불렀다."예.""네가 나설 일과 네가 보아야 할 일을 나누자."그는 어렵게 말하지 않았다."함방에는 내 사람이 간다. 향낭은 네 눈으로 살피면 된다."월령은 향낭을 보았다.붉은 비단.금실의 합환화.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소문이 될 수 있는 물건."바늘땀이겠군요."월령이 말했다.위지헌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그래.""궁 안에서 만든 것인지, 바깥에서 넣은 것인지.""그리고 누가 서둘렀는지."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청아.""예, 아가씨.""
اقرأ المزيد

140. 실이 말을 할 때

심가의 서고는 밤이 되면 종이 냄새가 짙어졌다.낮 동안 햇살을 머금었던 책장이 식으며 마른 나무 냄새를 냈고, 묵은 장부의 끈에서는 먼지와 풀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벽 쪽 등잔에는 맑은 기름이 담겨 있어 불꽃이 흔들리지 않았다.월령은 낮은 탁자 앞에 앉았다.청아가 등불을 가까이 두고, 흰 종이를 깔았다.유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란을 재우려 했지만, 아란은 눈을 감지 않았다."나도 볼래.""아란아, 이건 재미있는 게 아니야.""향낭이잖아.""향낭이 꼭 재미있는 건 아니야.""그럼 왜 다들 봐?"청아가 대답을 찾지 못하고 월령을 보았다.월령은 아주 작게 웃었다."실이 말을 할 때가 있거든."아란의 눈이 동그래졌다."실이?""응. 누가 급했는지, 누가 숨겼는지,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아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용히 들을게."그 말에 청아가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유씨가 아란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들으려면 언니 방해는 말고.""응."아란은 정말로 입을 다물었다. 다만 눈만은 등불보다 크게 뜨고 있었다.월령은 향낭의 겉감을 등불 아래 두었다.붉은 비단은 고왔다. 그러나 합환화의 금실이 놓인 가장자리, 꽃잎 안쪽의 작은 곡선 하나가 어긋나 있었다. 궁 안 침방의 솜씨라면 이런 어긋남을 남기지 않는다. 자녕궁 침방을 쥔 채운 상궁의 손은, 궁에서도 곱기로 이름난 손이었다."여기."월령이 비녀 끝으로 꽃잎 안쪽을 가리켰다."바늘땀이 두 번 겹쳤어."청아가 몸을 낮췄다."정말이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처음부터 놓은 수가 아니라 나중에 다시 덧댄 거야."월령은 향낭의 끈을 보았다.겉끈은 붉었지만 안쪽 매듭에 아주 가는 흰 실이 끼어 있었다. 억지로 잡아당기다 끊긴 흔적이었다."종이를 넣고 다시 묶었어.""그럼 이 종이를 숨긴 사람은 향낭을 완전히 만들 줄 몰랐던 거네요.""아니."월령은 잠시 생각했다."만들 줄 알지만, 시간이 없었던 사람."그 말에 위지헌의 눈빛이 낮아졌다.
اقرأ المزيد
السابق
1
...
121314151617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