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241 - Chapter 250

358 Chapters

241. 왕부의 첫 아침

왕부의 아침은, 심가의 아침보다 문이 많았다.월령이 안채를 나서자, 회랑 끝에서 마 어멈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부의 행랑을 총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들이고 내보내는 문마다, 그 손을 한 번씩 거쳤다."마마님, 문안 여쭙습니다."마 어멈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숙이는 각도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만 고개를 드는 것이, 반 박자 늦었다."오래 이 집을 지켰다고 들었어.""열아홉 해입니다.""그럼 나보다 이 집을 잘 알겠구나."월령이 웃었다. 마 어멈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청아가 안채 세간을 옮기며 자꾸 두리번거렸다."아가씨, 여기는 문이 왜 이렇게 많아요. 심가에서는 한 바퀴 돌면 다 봤는데.""익숙해지면 적어 보여.""저는 어제도 부엌을 못 찾아서 세 번이나 물었어요."청아가 입을 삐죽였다. 월령은 그 투정이 반가웠다. 낯선 집에서,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부엌을 못 찾는 것마저.*왕부의 안채에는, 감송향이 옅게 배어 있었다.위지헌의 옷에서 나던 냄새였다. 그 냄새가 방 하나가 아니라 집 전체에 낮게 깔려 있었다. 월령은 그 사실이 낯설고, 또 낯익었다.지난겨울, 그 냄새는 늘 한 뼘 밖에 있었다. 문밖에서, 반걸음 앞에서. 오늘 아침에는, 그녀가 눈을 뜬 자리에 그 냄새가 함께 있었다.심가의 냄새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이 집의 냄새가 그녀의 아침이 되어 갈 것이었다.*낮에, 월령은 왕부의 살림 장부를 폈다.안주인이 살림을 살피는 치부책이었다. 곳간에 드는 쌀과 숯, 나가는 삯과 물건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글씨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반듯한 서리의 글씨, 하나는 눌러 쓴 굵은 글씨.굵은 글씨가 마 어멈의 것이었다.월령은 그것을 처음부터 천천히 넘겼다. 숫자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었다. 열아홉 해 이 집을 지킨 손이 어디에서 힘이 들어가고 어디에서 풀리는지를, 눈으로 짚어 보았다.대부분은 고르게 눌린 글씨였다.다만 달포에 한 번, 행랑 사람들의 삯을 적은 줄에서, 붓이 한 번씩 머뭇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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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비워 둔 칸

가례 사흘 뒤, 위지헌이 조정에 들었다.넉 달을 비운 자리였다. 삭원의 겨울을 하루에 끝내고 돌아온 섭정왕에게, 대신들의 예가 한 뼘씩 깊어졌다.경화제가 순검패를 돌려주었다.한 달 전 거둔 도성 순검권이었다. 황제는 그것을 친정 승전의 상으로 삼지 않았다. 다만 정무를 논하는 자리에서, 지나가듯 예부에 명했다."섭정왕의 순검을 전과 같이 둔다."돌려주는 말치고는, 무게가 실리지 않은 말이었다.위지헌은 그 가벼움을 읽었다. 가볍게 돌려준 것은, 가볍게 다시 거둘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내관이 그 명을 받아 적었다. 붓이 종이를 지나는 소리가, 넓은 정전에서 유난히 작게 들렸다.삼황자 위명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지난겨울 자녕궁과 반걸음 어긋난 뒤로, 위명서는 어전에서 말수가 줄었다. 순검패가 섭정왕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예전처럼 눈에 힘을 주지 않았다. 다만 비워 둔 결재 칸을, 한 번 오래 보았다.그 빈 칸을 읽는 눈이, 위지헌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정무가 끝난 뒤, 허도겸이 절목 하나를 받쳐 올렸다.북변의 군량 절목이었다. 삭원 결전으로 축난 군량을 다시 채우는 셈이 적혀 있었다. 숫자는 맞았다.다만 절목의 끝, 폐하의 친람을 받고 결재가 내리는 칸이 비어 있었다."폐하께서 보셨습니까."위지헌이 물었다."친람은 어제 마치셨다 합니다."허도겸이 낮게 답했다."결재는, 아직 내리지 않으셨습니다."보고도 비워 둔 칸이었다.*그날 밤, 위지헌은 안채에서 그 이야기를 월령에게 옮겼다.숨기는 성미가 아니었다. 어렵게 두지 않고, 먼저 풀어 말했다."폐하께서 순검을 돌려주시고, 군량 결재는 비워 두셨다.""돌려주신 것과 비워 두신 것이, 같은 날의 일이군요.""그렇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한 손으로는 자리를 돌려주시고, 다른 손으로는 그 자리의 값을 아직 안 치르셨다는 걸 보이신 거예요. 왕야가 그 자리를 어떻게 쓰시는지, 봄 한 철 더 보시겠다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너는 폐하를 뵌 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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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행랑의 셈

달이 바뀌고, 월령은 왕부의 살림 장부를 다시 폈다.지난달 표해 두지 않은 자리. 행랑 사람들의 삯을 적은 줄이었다.마 어멈의 굵은 글씨가, 그 줄에서 또 한 번 흐려져 있었다.월령은 그 줄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대신, 그 줄에 적힌 이름들을 보았다. 행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 그 가운데 하나에, 삯이 다른 손을 거쳐 나간 흔적이 있었다.칠복이라는 이름이었다.곳간에서 나온 돈이 삯이 되어 사람에게 닿기까지, 그 사이에 눈에 띄지 않는 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길이, 두 달에 한 번씩 굵은 글씨를 흐리게 만들었다.월령은 그 자국을 오래 보지 않았다. 보는 것을 들키면, 감추는 손이 더 깊이 숨었다.*마 어멈의 서방이라 했다.월령은 청아를 통해 그 이야기를 주웠다. 캐물은 것은 아니었다. 부엌에서 청아가 나물을 다듬다 옮겨 온 말이었다."마마님, 그 마 어멈 서방이 노름을 심하게 한대요."청아가 목소리를 낮췄다."삯을 받는 족족 어디로 새 나간다고, 부엌 사람들이 그러던데요.""그 말을 함부로 옮기지 마라.""…예."청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곧, 왕부 부엌은 솥이 심가보다 둘이나 많더라며 딴 이야기로 재잘거렸다. 월령은 그 재잘거림을 막지 않았다. 낯선 집의 낮은, 그런 소리 하나로 조금 덜 낯설어졌다.월령은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흐려진 획이 노름빚 하나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만, 마음 한쪽에 걸어 두었다.*낮에, 월령은 행랑 마당을 지나며 마 어멈을 보았다.마 어멈은 왕부의 문을 여닫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건을 지고 드나드는 장사치의 짐을 하나하나 살폈다. 손이 야무졌다. 열아홉 해 문을 지킨 사람다운 눈썰미였다.다만, 한 장사치의 짐 앞에서 그 손이 한 번 멎었다.기름을 지고 온 장사치였다. 마 어멈은 그 기름통을 유난히 오래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들였다.다른 짐은 손짓 한 번으로 들여보내던 사람이었다. 그 기름통 앞에서만, 마 어멈의 눈이 한 박자 더 머물렀다. 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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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칠복

기름은 엿새마다 왕부에 들었다.월령은 그날, 행랑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회랑에 잠깐 섰다. 안주인이 집을 둘러보는 것은 흉이 아니었다.기름 장사치가 통을 부렸다. 마 어멈이 그 통을 받았다. 그리고 빈 통 하나를, 장사치에게 돌려주었다.들어온 통은 넷, 나간 빈 통은 하나.월령은 그 셈을 눈으로만 셌다. 여느 집에서도 빈 그릇은 돌려보냈다. 이상할 것이 없는 셈이었다.다만, 마 어멈이 그 빈 통을 돌려줄 때, 통 안에 접힌 무언가를 함께 넣는 것을, 월령은 회랑 위에서 보았다.손이 빨랐다. 아침 햇살 아래에서, 그 동작은 통을 터는 몸짓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열아홉 해 문을 지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눈에 걸리지 않는 움직임이었다.월령은 그 움직임을 눈으로만 담아 두고, 회랑을 내려왔다. 그 자리에서 마 어멈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통은 오늘 하루로 끝나고 그 뒤의 자취는 영영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그날 저녁, 월령은 왕부 셈방의 오래된 장부를 청했다.안주인이 살림의 내력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서리는 군말 없이 장부를 들였다.월령은 마 어멈이 왕부에 든 해부터 짚었다. 열아홉 해. 그 가운데 삯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근래 두 해였다.두 해 전, 마 어멈의 서방 칠복이 진 빚이 있었다.셈방 장부의 한 귀퉁이에, 그 빚을 받아 준 상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노름빚을 대신 갚아 주고, 칠복의 목숨줄을 쥔 상단.독고가 상단이었다.*월령은 장부를 덮었다.덮은 장부 위로, 익숙한 이름 하나가 얹혔다. 자녕궁의 그늘이 기대어 선 상단. 도성 밖으로 물러났다던 손이, 왕부의 기름통 안으로 다시 들어와 있었다.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앞문으로 나간 그림자가, 뒷문으로 다시 든 것뿐이었다. 가례를 흠집 내려던 자리에서 판을 잃자, 흠집을 내는 대신 안을 들여다보는 눈으로 바꾼 것이었다.혼례 이튿날 아침, 위지헌은 그 이름이 도성 밖으로 움직였다고 했다. 쫓지 말라 했다. 그 이름이 왜 쫓기지 않고도 왕부의 안채까지 닿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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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담 밖으로 가는 것

엿새가 다시 돌아왔다.이번에는, 월령이 먼저 행랑 마당으로 내려갔다.안주인이 아침에 집을 도는 것은 흔한 일이라, 마 어멈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월령이 기름 드는 문 곁에 선 것을 보고, 그 야무진 손이 한 박자 굳었다.행랑 마당에는 아침 냄새가 가득했다. 물 뿌린 흙과 갓 지핀 아궁이 연기, 지고 온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은 냄새였다.다만 오늘은, 그 냄새 속에 안주인이 서 있었다.기름 장사치가 통을 부렸다.넷이 들어왔다.마 어멈이 빈 통 하나를 집었다. 늘 하던 대로, 그 안에 접은 종이를 넣으려 손이 움직였다."마 어멈."월령이 불렀다.마 어멈의 손이 통 위에서 멎었다."그 통, 내가 보아도 되겠니."*마 어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손에 든 빈 통을 내려놓지도, 건네지도 못한 채 마 어멈이 그 자리에 굳었다. 기름 장사치가 눈치를 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행랑 사람 몇이 마당 가장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주인이 문지기를 세워 통을 청하는 아침은, 열아홉 해에 없던 아침이었다.마 어멈의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 무슨 말을 고르려다, 그 말을 삼켰다. 삼킨 자리에서, 목울대가 한 번 힘겹게 움직였다."마마님, 이것은…""내려놓아라."월령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행랑 마당의 아침 소리가 그 한마디에 잠깐 멎었다.높이지 않아도, 안주인의 한마디는 마당을 멎게 했다. 마 어멈은 그 조용한 무게 앞에서 더 버티지 못했다.마 어멈이 빈 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열아홉 해, 이 집의 문을 여닫던 사람이었다. 제가 넣은 것을 도로 꺼내지도 못한 채, 통만 내려놓았다.월령은 그 통 안으로 손을 넣었다. 기름내가 밴 통 바닥에,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여러 번 접어 손톱만 하게 만든 종이였다.월령은 그 종이를 폈다.*종이에는, 먹으로 쓴 글자가 없었다.다만, 바늘로 눌러 만든 자국이 몇 개 찍혀 있었다. 빛에 비추어야만 보이는 자국이었다.글자를 쓰지 않은 것은, 글을 읽을 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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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덫에 걸린 사람

"서방의 빚이, 독고가 상단에 잡혔구나."월령이 낮게 말했다.마 어멈의 눈이 커졌다. 제 입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안주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그 빚을 못 갚으면 서방의 목숨이 위태롭고, 그래서 이 집의 밤을 그려 저 통에 넣어 보냈고.""…죽을죄를 지었습니다."마 어멈이 무릎을 꺾었다. 열아홉 해 이 집의 문을 지킨 손이, 마당 흙 위에 짚였다.마 어멈의 등이 떨렸다. 벌을 기다리는 떨림이었다. 왕부의 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열아홉 해 이 집의 문을 지킨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월령은 그 떨리는 등을 잠깐 보았다. 벌을 주려고 그 통을 연 것은 아니었다.월령은 그 어깨를 내려다보았다.벌하기는 쉬웠다. 이 종이 한 장이면, 마 어멈은 왕부의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죄인 하나를 내치는 것으로는, 그 종이를 사 간 손까지 닿지 못했다.*월령은 마 어멈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을 물었다."통을 돌려받는 사람은, 늘 같은 장사치니.""…아닙니다. 기름 장사치는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통은 저잣거리 어느 셈방으로 들어간다고만 들었습니다.""그 셈방이, 독고가의 것이고."마 어멈이 고개를 숙였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빚에 잡힌 사람을 벌하면, 빚을 놓은 손은 다음 사람을 잡을 뿐이었다. 이미 이 집에 든 눈 하나를 뽑아 내는 것으로는, 저들이 새 눈을 심는 것을 막지 못했다.*그날 밤, 월령은 위지헌에게 마 어멈의 이름을 말했다.이번에는, 다 풀어 말했다. 빚과, 통과, 바늘로 눌러 그린 밤까지.위지헌의 눈이 한 번 서늘해졌다. 제 집의 밤이 담 밖으로 팔려 나갔다는 것에, 그의 턱이 잠깐 굳었다.그러나 그 서늘함은, 마 어멈에게로 가지 않았다. 가난한 자의 빚을 사서, 그 빚으로 사람의 눈과 손을 사는 자에게로 갔다. 위지헌은 그 자를 아직 보지 못했으나, 그 수법은 알았다."그 사람을 내치겠느냐.""아니요."월령이 말했다."내치면, 저들은 왕부 안에 새 사람을 심으면 그만이에요. 이미 든 눈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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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연이라는 이름

칠복의 빚은, 하루 만에 왕부의 손으로 옮겨졌다.허도겸이 짠 셈은 깔끔했다. 독고가 셈방은 빚 하나가 남에게 넘어간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노름꾼의 빚 한 줄이었다. 그것이 왕부의 것이 되었다는 것까지는, 저들도 아직 몰랐다.마 어멈은 이제, 월령이 고른 밤을 통에 넣어 보냈다.가짜 밤이었다. 불이 꺼지는 자리도, 섭정왕이 드나드는 문도, 왕부가 보이고 싶은 대로 그려졌다.밤마다, 왕부는 저들에게 보여 줄 그림을 지었다. 실제로 불이 꺼지는 자리와, 종이에 점으로 찍히는 자리가 달랐다. 저들이 사 가는 것은, 이제 왕부가 파는 가짜 밤이었다.마 어멈은 그 종이를 넣을 때마다 손이 떨렸으나, 월령은 재촉하지 않았다. 늘 떨며 넣던 사람이 갑자기 떨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티가 났다.*그 가짜 밤을 사 가는 자를 따라, 강무진이 그림자로 붙었다.며칠 뒤, 강무진이 낮게 보고했다."통은 저잣거리 셈방을 지나, 도성 밖으로 나갑니다. 성 밖 옛 역참 자리에서, 한 사람이 그것을 거둡니다.""이름은."위지헌이 물었다.강무진이 잠깐 말을 골랐다."거두는 자들이, 그 사람을 '연 어른'이라 부릅니다."연.형부의 장부에 이름 없이 남았던 글자였다. 가례를 흠집 내려다 물러난 손. 도성 밖으로 나갔던 그 이름이, 왕부의 가짜 밤을 거두고 있었다.물러난 척, 눈 하나를 심어 두고 간 것이었다. 도성 밖에서 그 눈이 보내오는 밤을 받아 읽으며 다음 수를 고르는 손. 쫓기지 않으려고 성을 나갔으되, 성 안을 계속 들여다보는 자리였다."쫓을까요."강무진이 물었다."쫓지 마라."위지헌이 말했다."쫓으면, 저쪽이 눈을 하나 잃은 것을 안다. 우리가 그린 밤을, 계속 사 가게 두어라."*그날 밤, 월령은 그 이름을 위지헌에게서 들었다.연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녀의 손끝이 잠깐 식었다."아는 이름이냐."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전생에,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폐위된 뒤였다. 냉궁의 문밖에서, 누군가 낮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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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제발로

봄이 얕게 오는 동안, 자녕궁의 그늘도 조금씩 옮겨 갔다.숙비는 지난겨울 순검권이 섭정왕에게 돌아간 뒤로, 예전처럼 판을 크게 벌리지 못했다. 내명부의 문 하나는 아직 그 손안에 있었으나, 그 문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향을 사르지 않는 정갈함으로 내명부를 오래 쥐었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문 하나와 줄어든 발길뿐이었다. 숙비는 그것을 소리 내어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만, 옥반지를 다시 끼지 않은 손을 소매 안에 자주 넣었다.설련은 그 조용해진 자녕궁을 떠나 있었다.지난겨울, 숙비의 손을 놓겠다 한 뒤였다. 숙비는 붙잡지도, 내치지도 않았다. 넘어지거든 다시 오라고만 했다.설련은 아직, 넘어지지 않았다.*자녕궁을 나온 뒤, 설련이 제 발로 한 일은 죽은 군졸의 마지막 명패를 그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었다.지난겨울부터 미뤄 온 일이었다. 자녕궁의 향안 위에 오래 놓여 있던 패. 작은 새가 새겨진 패였다.설련은 그 패를 들고, 임가의 낡은 집을 찾아갔다.죽은 군졸의 누이가 문을 열었다. 설련은 그 앞에서 잠깐 말을 잃었다.고모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누군가의 문 앞에 서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지난겨울 한 번, 죽은 군졸의 집에 새 명패를 전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집 아이가 '누나는 안 무서워요' 했다. 오늘은, 그 걸음의 두 번째였다.무서웠다. 그러나 두 번째 걸음은, 첫 걸음보다 반 뼘 덜 무서웠다."…이 패를, 돌려드리러 왔습니다."설련이 낮게 말했다.누이는 그 패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 울지 않고, 설련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설련은 그 숙임 앞에서, 제가 한 일의 무게를 처음으로 온전히 느꼈다.*같은 봄, 삼황자부에서는 위명서가 늦도록 등잔을 켰다.책상 위에는, 월령의 이름이 적힌 봉서 사본이 더는 놓여 있지 않았다. 지난겨울, 주란이 그 종이를 대신 태운 뒤였다.위명서는 이제, 그 이름을 밤마다 보지 않았다.다만 그 자리에, 빈 데가 남았다. 그 빈 데를 무엇으로 채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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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북에서 온 파발

봄이 반쯤 깊었을 때, 북에서 두 번째 파발이 들었다.첫 파발은 첩보였다. 두 번째는,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흑령이 삭원 너머 골짜기 둘을 넘었다. 겨울에 잃은 자리를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국경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심도윤의 북문군이 얇게 막고 있었으나, 오래 버틸 셈은 아니었다.지난겨울 흑령을 하루로 끝낸 것은, 눈이 저들의 방패가 되어 준 살구골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봄에는, 그 방패가 저들에게 없었다. 그러나 국경 안쪽은 지형이 달랐다. 저들이 안으로 들수록, 이번에는 지형이 저들의 편이 되었다.첫 파발과 두 번째 파발 사이가, 짧았다. 저들의 발이 빠르다는 뜻이었다.*위지헌은 그 파발을 어전으로 가지고 들었다.경화제 앞에, 북변의 군량 절목이 다시 올랐다. 지난달 비워 둔 결재 칸이, 아직 그대로 비어 있었다."폐하."위지헌이 말했다."흑령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군량 결재를 내려 주십시오."경화제는 그 절목을 오래 보았다.돌려준 순검패와, 비워 둔 결재 칸이, 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황제는 섭정왕에게 자리를 돌려주었으나, 그 자리의 군량은 아직 제 손에 쥐고 있었다."북에 다시 나가려느냐."경화제가 물었다."제가 아니면, 흑령을 아는 장수가 없습니다.""가례를 올린 지, 한 달이다."황제의 목소리에, 국사 아닌 것이 잠깐 스쳤다.경화제는 정치에서는 절제된 성군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만은, 형의 목소리가 잠깐 앞섰다. 늦둥이 아우가 오래 혼자였던 것을 아는 형이었다. 이제 겨우 곁에 사람을 둔 아우를, 한 달 만에 다시 북으로 보내는 자리였다.위지헌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제가 아니면'이라는 말을, 그 자신도 무겁게 알았다. 흑령을 아는 장수가 그뿐이라는 것은, 이 집을 또 비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날 밤, 위지헌은 안채로 늦게 들었다.월령은 그가 무슨 말을 가지고 왔는지, 얼굴을 보고 먼저 알았다."북에, 다시 가시는군요.""…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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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다 세지 못한 봄

출정은, 닷새 뒤로 정해졌다.경화제는 끝내 군량 결재를 내렸다. 다만, 절목의 끝에 한 줄을 덧붙였다. 북변의 군권은 섭정왕에게 주되, 도성 순검은 그가 없는 동안 다시 예부와 나누어 둔다는 줄이었다.한 손으로 군량을 내리고, 다른 손으로 순검을 반쯤 거둔 셈이었다.위지헌은 그 줄을 읽고, 더 청하지 않았다. 황제가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는지, 그는 오래 아는 형의 속을 읽었다.*떠나기 전날, 두 사람은 왕부의 살구나무 아래에 섰다.꽃이 진 자리에, 이제 푸른 열매가 맺혀 있었다. 지난봄에 핀 꽃이, 여름을 향해 익어 가고 있었다.지난겨울, 이 나무는 헐벗은 가지였다. 봄에 꽃을 피웠고, 그 꽃이 지고 이제 열매를 맺었다. 한 나무가 한 해에 세 얼굴을 지나는 동안, 두 사람도 이별과 재회와 혼례를 지났다."지난겨울에는, 제가 봄을 셌어요."월령이 말했다."이번에는요?""이번에는, 봄을 세는 대신 다른 걸 해요."월령이 소매 안에서 검은 바둑돌 하나를 꺼냈다. 지난겨울, 그가 흰 돌을 가져가고 그녀에게 남긴 돌이었다."이 돌을, 이번에는 제가 쥐고 있을게요. 문밖에서 기다리는 대신, 문 안에서 셈을 할게요. 연이라는 이름이 누구인지, 왕야가 북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 손으로 알아낼게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혼자 세우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지난겨울에 이미 보았다."위험한 셈이다.""알아요."월령이 낮게 웃었다."그래서 왕야가 돌아올 자리를, 제가 지켜 둘게요."*닷새 뒤, 북문에 다시 북경군이 도열했다.지난겨울과 같은 아침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월령이 심가의 딸이 아니라 왕부의 안주인으로 그 자리에 섰다.위지헌이 말에 올랐다. 그의 품속에는, 지난겨울과 같은 흰 바둑돌이 들어 있었다.다만 이번의 두 돌은, 지난겨울과 짝이 달랐다. 지난겨울 검은 돌은 심가의 딸이 소매에 넣었고, 이번 검은 돌은 왕부의 안주인이 방첩 장부 곁에 놓았다. 같은 두 돌이,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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