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281 - Chapter 290

358 Chapters

281. 나도 두 번 산다

'연'이 대를 잇는 자리라는 것을 안 뒤로, 월령은 며칠 밤을 뒤척였다.한 얼굴을 잡으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얼굴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두 생에 걸쳐 끊이지 않은 자리. 그 뿌리가 어디까지 닿는지, 그녀는 아직 다 보지 못했다.위지헌은 그 뒤척임을 곁에서 오래 보았다.*그 밤, 위지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령아."낮에는 부르지 않는 이름이었다. 둘만 남은 밤에만, 그가 낮게 부르는 이름."…네, 부군.""지난번, 네가 두 생을 살았다 했을 때. 내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월령이 고개를 들었다. 그날 밤, 그가 삼킨 말이 있었다. 눈 안쪽에서 스치기만 하고, 끝내 나오지 않은 말."그 이야기를, 오늘 하려 한다."위지헌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낮았다. 촛불이 그 목소리 위에서 잠깐 흔들렸다.*"나도, 이 봄을 두 번 산다."월령의 숨이 멎었다.방 안의 촛불이, 그 한마디 위에서 다시 흔들렸다. 월령은 제가 잘못 들었나 했다. 그러나 위지헌의 눈은, 농이 아니었다."…왕야도, 회귀를.""그래."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나도 한 번 산 봄을, 다시 살고 있다. 너처럼."월령의 눈에서,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흘렀다. 두 생을 홀로 삼킨 비밀이었다. 세상에 저 하나뿐인 줄 알았던 짐이었다. 그런데 그 짐을, 곁의 사람이 똑같이 지고 있었다.혼자가 아니었다. 두 생을 건너온 자리에, 혼자 선 것이 아니었다.오래 혼자 지던 무게가, 그 한마디에 반으로 줄었다. 아니, 반보다 더 줄었다. 같은 무게를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짐은 절반보다 더 가벼워졌다.월령은 오래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어서 울었다. 위지헌은 그 울음을 재촉하지 않고 다 받았다. 두 생을 홀로 삼킨 사람의 울음이 어떤 것인지, 그도 알았으니까.*"…언제부터 아셨어요."월령이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처음부터."위지헌이 말했다."네가 심가의 대문을 처음 나설 때부터, 나는 알았다. 이 봄이 두 번째라는 것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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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어긋난 봄

이튿날 밤, 위지헌은 그 남은 하나를 마저 꺼냈다.두 사람이 다 아는 비밀 위에, 어긋난 조각 하나가 놓였다.*"네가 산 지난 생과, 내가 산 지난 생이… 똑같지 않다."위지헌이 낮게 말했다.월령은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두 생이, 다르다는 말씀이세요?""큰 줄기는 같다. 너는 열여덟에 폐위되었고, 어머니를 잃었고, 형장으로 갔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같다."위지헌의 목소리가, 거기서 조금 낮아졌다."다만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네가 아는 그날과 다르다."*"그날, 나는 너를 데리러 갔다."월령의 숨이 멎었다."지난 생에, 나는 북에 있었다. 네가 형장으로 간다는 소식을 늦게 들었다. 나는 말을 몰아 도성으로 달렸다. 봄이 오기 전에, 너에게 닿으려 했다.""…그런데요.""늦었다."위지헌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내가 형장에 닿았을 때, 이미 끝나 있었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붉은 옷이… 빗물에 젖어 있었다."월령은 그 말 앞에서, 오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두 생을 통틀어, 가장 무서웠던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혼자라는 것이었다. 폐위되던 날도, 어머니를 잃던 날도, 형장으로 끌려가던 날도,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죽음보다 무서웠다.그 무서움의 한복판으로,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두 번째 생에 와서야 알았다.*지난 생에, 그녀는 아무도 저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여겼다.폐위되고, 어머니를 잃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동안 곁에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저 혼자 버려졌다고, 그렇게 눈을 감았다.그런데 그 봄, 한 사람이 북에서 말을 몰아 그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모른 채, 눈을 감는 동안."…저는, 그걸 몰랐어요."월령의 목소리가 떨렸다."아무도 안 온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무서웠어요. 마지막까지, 혼자인 줄 알았어요.""안다."위지헌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친 왼팔이 아니라, 두 팔로."그래서 이번에는, 늦지 않았다. 봄이 오기 전에 네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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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비 갠 뒤

그날 형장에서 본 얼굴을, 위지헌은 다 기억하지 못했다."비가 굵었다. 얼굴들이 다 젖어 뭉개져 있었다. 다만…"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한 사람이, 울지도 피하지도 않고 서 있었다. 다들 비를 피해 고개를 숙였는데, 그 하나만 고개를 들고 형장을 보고 있었다.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월령은 그 말을 마음에 눌러 두었다.우는 척도, 피하는 척도 하지 않고 형장을 지켜보던 하나. 그 얼굴이 누구인지, 위지헌도 아직 온전히 떠올리지 못했다. 두 생을 건너온 기억은, 굵은 비 속에서 자꾸 흐려졌다."천천히 떠올려 보세요."월령이 말했다."급할 것 없어요. 이번에는, 시간이 많으니까요."*비밀을 다 꺼내 놓은 뒤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월령은 더 이상, 무서운 밤에 혼자 숨을 삼키지 않았다. 위지헌은 더 이상, 아는 것을 모르는 척 물어 주지 않아도 되었다.낮에, 월령이 왕부 마당의 살구나무 아래에 섰다. 꽃이 진 자리에, 푸른 열매가 제법 굵어져 있었다."부군.""말해라.""전생에, 이 왕부에는 안 살아 보셨죠?""…없다.""그럼 이 집에서 봄을 세는 건, 부군도 저도 처음이네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 두 생을 산 두 사람에게, 처음인 봄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상하게, 그의 가슴을 데웠다.*청아가 그 곁에서 살구를 올려다보며 재잘거렸다."아가씨, 이 살구 익으면 정과 만들어요. 왕야도 단 거 좋아하세요?""…글쎄. 부군, 단 거 좋아하세요?"위지헌은 잠깐 말을 골랐다."…모른다.""어머, 두 생을 사셨는데 단 걸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세요?"청아가 그렇게 말하고,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월령이 웃음을 터뜨렸다. 위지헌의 입가도, 오래 움직였다.두 번 산 봄에도 알지 못한 것이, 아직 많았다. 단 것을 좋아하는지 같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이번 봄에는 그런 것부터, 하나씩 알아 갈 참이었다.위지헌은 그 사소함이 좋았다. 두 생을 건너온 무거운 것들 사이로, 단 것을 좋아하는지 같은 가벼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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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숨기지 않은 밤

마지막 등불 하나가, 이제는 익숙해진 안채를 낮게 밝히고 있었다.가례의 첫 밤과는, 다른 밤이었다. 그때는 서로가 낯설었다.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열어야 할지 몰라, 손끝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오늘 밤은, 두 사람 사이에 숨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두 생의 비밀까지, 다 꺼내 놓은 뒤였다.숨길 것이 없는 밤은, 더 뜨거웠다.*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맥이 뛰는 자리였다. 그 맥이 빨랐다. 그를 향해 뛰고 있었다. 위지헌은 그 뛰는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손끝으로, 그 박동을 하나씩 세듯이."…부군."월령이 낮게 불렀다. 그 두 글자가, 그의 안에서 오래 눌러 둔 무언가를 무너뜨렸다.그가 고개를 숙여, 그 맥이 뛰는 자리에 입술을 대었다. 월령의 어깨가 떨렸다. 무서움이 아닌 것에 떠는 떨림이었다. 그 떨림을, 위지헌은 입술로 고스란히 받았다.*입맞춤은, 처음에는 봄볕처럼 옅었다.그러나 옅은 것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기울일 때마다, 입맞춤이 조금씩 깊어졌다. 옅던 것이 짙어지고, 짧던 것이 길어졌다. 월령은 숨을 어디서 쉬어야 할지 몰라, 그의 옷깃을 쥔 손에만 힘을 주었다.옷고름이 풀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비단이 낮게 숨을 내쉬는 것 같은 소리였다.월령은 저도 모르게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등불이, 붉게 물든 귓불을 비췄다. 열어도 된다고 스스로 말해 놓고도, 몸은 아직 오래된 수줍음을 다 벗지 못했다.위지헌은 그 붉은 귓불에 입술을 대었다."부끄러우냐.""…네.""부끄러워도 된다."그가 낮게 말했다."오늘은, 부끄러운 것까지 다 나에게 보여도 된다."*그의 손이, 풀린 옷고름을 따라 그녀의 어깨를 지났다.전장에서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겨울에 덴 화상 자국 위로, 새 흉이 얹힌 손. 그 거친 손이, 그녀의 살결 위에서는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오늘은 거두지 않았다.늘 한 뼘을 남기던 사람이었다. 문밖에 서고, 손을 뻗기 전에 멎고, 닿기 전의 거리를 지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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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비를 맞던 사람

이튿날 아침, 왕부의 안채에는 늦도록 볕이 들었다.월령은 낯선 나른함에 눈을 떴다. 곁의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다. 위지헌이, 그녀가 깰 때까지 곁에 있었다."…일찍 안 일어나셨네요.""오늘은, 그 버릇을 쉬었다."지난 봄, 그녀가 그에게 하던 말을 그가 돌려주고 있었다. 월령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웃는 얼굴 위로, 아침빛이 앉았다.위지헌은 그 웃는 얼굴을 오래 보았다. 아침빛에 잠긴 그 얼굴을, 지난 생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죽어 가는 얼굴은 보았어도, 아침에 웃는 얼굴은 이번 생이 처음이었다.*낮에, 위지헌이 문득 낮게 말했다."떠올랐다.""…무엇이요.""형장에서, 비를 맞고 서 있던 그 사람."월령의 손이 멎었다."온전히 떠오른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가, 밤사이 되살아났다. 그 사람은 비를 맞으면서도, 손에 든 것을 코에 대고 있었다. 냄새를 맡는 사람처럼.""…손에 든 게, 무엇이었어요.""붉은 꽃이었다."*월령의 숨이, 한 박자 멎었다.붉은 꽃. 비를 맞으면서도 그 냄새를 맡던 사람. 형장을 울지도 피하지도 않고 지켜보던 사람이, 손에 붉은 꽃을 들고 있었다.적련초였다.어머니를 죽인 꽃. 이번 생에, 마른 채로 그녀에게 온 꽃. 그리고 지난 생의 형장에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자가 손에 쥐고 있던 꽃.같은 붉은 꽃이, 두 생의 가장 아픈 자리마다 놓여 있었다.*"…그 꽃이, 그자의 표였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연'은 명부로 이어진다고 했잖아요. 명부는 저희끼리 감추는 거예요. 아무도 모르게, 저희 사람 이름만 적어 두는. 그런데 이 붉은 꽃은, 감추는 게 아니에요.""드러내는 표로군."위지헌이 말했다."저희끼리 이어 적는 명부와 달리, 이 꽃은 겨눈 자에게 보라고 내미는 표예요. 어머니의 약사발에, 제 형장에, 그리고 이번 생의 제게. 붉은 꽃이 놓인 자리는, 전부 '연'이 겨눈 자리였어요."*월령은 방첩 장부를 폈다.'연' 아래 여러 줄 곁에, 새 한 줄을 적었다.'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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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두 기억이 만나는 자리

붉은 꽃이 '연'의 표라는 것을 안 뒤로, 두 사람은 밤마다 기억을 맞춰 보았다.월령이 아는 것과, 위지헌이 아는 것은 달랐다. 월령은 겨눔을 당한 자의 자리에서 보았고, 위지헌은 늦게 닿은 자의 자리에서 보았다. 한 사람은 안에서, 한 사람은 밖에서.두 자리의 기억을 겹치자, 혼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났다.*"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기억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약사발 곁에, 마른 잎 몇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꽃인지 몰랐어요. 지금 보면, 적련초였고요.""그 약을, 누가 달였느냐.""심가의 오래된 찬모였어요. 저는 그 사람을 의심한 적이 없었어요. 이십 년을 심가에서 산 사람이었으니까요."위지헌은 잠깐 생각했다."이십 년을 산 사람이, 왜 갑자기.""…빚이었을 거예요."월령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석중도, 마 어멈도, 밭의 약재상도. '연'은 늘 목이 매인 사람을 골라 썼어요. 이십 년을 산 찬모의 목에도, 어느 날 빚 하나가 걸렸겠죠."*두 사람은, 그 찬모의 이름을 장부에 적었다.전생의 일이었다. 이번 생에 그 찬모는, 아직 심가에서 조용히 밥을 짓고 있었다. 아직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채로."이번 생에는, 그 사람이 어머니를 겨눌 일이 없게 해야 해요."월령이 말했다."그 사람을 내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목에 빚이 걸리지 않게. 걸렸다면, 제가 먼저 풀어서."위지헌은 그녀를 보았다.전생의 가해자를 미리 찾아내, 벌하는 대신 그 목을 푸는 사람이었다. 미움으로 갚는 대신, 미움이 자랄 자리를 미리 없애는 사람.*"…령아."위지헌이 낮게 불렀다."너는, 두 생을 살고도 사람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구나.""미워하는 법은 배웠어요."월령이 낮게 답했다."다만, 미워하는 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전생에 저는 아무도 미워하지 못한 채 죽었고, 미워할 힘도 없이 어머니를 잃었어요. 이번 생에는, 미워하는 대신 바꾸고 싶어요."위지헌은 그 말에, 그녀의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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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친모의 목

월령은 심가의 오래된 찬모부터 살폈다.전생에 어머니의 약을 달인 손이었다. 이번 생에는 아직,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손. 그 손에 빚이 걸리기 전에, 먼저 그 형편을 알아야 했다.강무진이 며칠, 그 찬모의 살림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며칠 뒤, 강무진이 낮게 옮겨 왔다."찬모에게는, 앓는 노모가 있습니다. 약값이 많이 듭니다. 아직 빚을 진 것은 아니나, 곧 질 형편입니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곧 질 빚. '연'은 그런 빚을 기다렸다. 빚이 지는 순간, 그 목에 손을 걸었다. 전생에도, 아마 그렇게 그 찬모의 목이 걸렸을 것이었다."그 약값을, 왕부가 대요."월령이 말했다."드러나게 대면 안 돼요. 그러면 찬모가 왕부에 목이 매여요. 그냥, 그 노모의 약값이 어느 날부터 싸지도록. 약재상 한 사람만 알게."드러나지 않게 돕는 것이, 드러나게 돕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월령은 그 어려운 쪽을 골랐다. 도움을 받은 줄도 모르게 도와야, 그 사람이 왕부에도 '연'에게도 목이 매이지 않았다.*위지헌은 그 방식을 오래 보았다.빚을 미리 막는 것이었다. 목이 매일 자리를, 매이기 전에 풀어 두는 것. 겨눈 자가 걸 곳을 미리 없애는 것."밭을 덮치는 것보다, 이게 더 어렵겠구나."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밭은 한 번 베면 끝이에요. 그런데 사람의 목은, 하나를 풀어도 또 하나가 걸려요. '연'은 늘 새 목을 찾으니까요.""그럼, 끝이 없지 않으냐.""끝은 있어요."월령이 말했다."목을 하나씩 푸는 것으로는 끝이 안 나요. 그러나 목을 거는 그 손, '연'을 찾으면 끝나요. 목을 푸는 건, 그 손을 찾을 때까지 사람을 지키는 일이에요."*그 무렵, 심가에는 봄볕이 가득했다.유씨는 딸이 붙여 둔 사람들 틈에서, 이제 편안히 지냈다. 무언가로부터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캐묻지 않았다.월령이 친정에 들른 날, 유씨가 딸의 손을 잡았다."요즘은, 밤에 잘 자느냐.""…네.""전에는, 네 눈 밑에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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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봄밤의 가마

붉은 꽃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뜻밖에도 궁 안으로 다시 이어졌다.동쪽 처소의 밤 가마가 멎은 뒤로, '연'의 손은 성 밖으로 물러난 듯 보였다. 그러나 강무진이 붉은 꽃의 자취를 따라가자, 그 길이 다시 궁성 쪽으로 휘고 있었다.바깥 매듭이 풀렸다고 여긴 자리에서, 새 실 하나가 조용히 다시 자라고 있었다.*월령은 그 무렵, 황후의 봄 다회에 다시 들었다.류담희가 여전히 청화각 뜰에서 유자를 까고 있었다. 봉숭아 물이 옅어진 손톱으로."왕비마마."류담희가 반갑게 다가왔다."요즘, 그 밤 가마가 다시 나가요."월령의 걸음이 잠깐 멎었다."…다시?""네. 한동안 안 나가더니, 요 며칠 또 나가요. 이번에는 동쪽 처소가 아니라, 다른 문에서요."류담희는 그것을 아무 셈 없이 말했다. 신기한 것을 신기하다 말하는 얼굴로.*월령은 그 말을 무겁게 받았다.동쪽 처소가 닫히자, '연'은 다른 문을 찾았다. 벽을 하나 치우면 다음 벽으로 옮겨 가는, 그 자리의 방식대로.류담희의 밝은 눈이, 이번에도 그 옮겨 간 자리를 무심코 비추고 있었다."류 귀인."월령이 낮게 물었다."그 다른 문이, 어느 처소인지 아세요?"류담희는 잠깐 생각하다, 손가락으로 담 너머를 가리켰다.이번에는, 동쪽 끝이 아니었다. 더 안쪽, 궁의 깊은 곳에 있는 처소였다.*월령의 손끝이, 잠깐 식었다.류담희가 가리킨 처소는, 자녕궁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자녕궁도 아니었다. 자녕궁의 그늘이 얇아지자, '연'의 실이 자녕궁 곁의 다른 처소로 옮겨 간 것이었다.벽을 옮긴 것이었다.숙비가 얇아지는 동안, '연'은 이미 다음 벽을 골라 두었다. 숙비를 쳐 봐야, 그 실은 벌써 다른 벽에 기대어 있었다.*돌아오는 길, 월령은 그 처소의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류담희의 밝은 눈은, 오늘도 아무 셈 없이 진실 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궁 안에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궁 안의 가장 은밀한 걸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있었다.월령은 그 밝은 얼굴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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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안쪽의 처소

류담희가 가리킨 안쪽 처소는, 오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자리였다.궁의 깊은 곳, 늙은 후궁 하나가 조용히 지내는 처소였다. 총애를 잃은 지 오래라, 드나드는 발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처소는, 밤에 무엇이 드나들어도 아무도 세지 않았다.'연'은, 그런 자리를 골랐다.*강무진이 그 처소를 며칠 지켜본 뒤, 낮게 옮겨 왔다."밤에, 그 처소로 붉은 실로 묶은 명부를 지닌 자가 듭니다. 그리고 나올 때는, 향을 지니고 나옵니다.""향을.""남쪽 절터에서 나던 것과, 같은 향입니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성 밖 절터의 향이, 이제 궁 안의 처소에서 났다. 절터를 걷고 자취를 감춘 '연 어른'이, 궁의 깊은 처소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벽 뒤에 숨은 얼굴이,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그 늙은 후궁이, '연'입니까."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아닐 거예요. 그 후궁은, 처소를 빌려준 벽일 뿐이에요. 총애를 잃은 처소는 아무도 안 봐요. 그런 자리를 빌리면, '연'은 궁 안에 숨을 자리를 얻어요.""그럼, '연'은 그 처소에 얹힌 손이로군.""채운 상궁이 동쪽 처소에 얹혀 있던 것처럼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처소의 주인이 아니라, 처소에 든 손. 그 손을 찾아야 해요."동쪽 처소에서 안쪽 처소로. 성 밖 절터에서 궁 안 깊은 곳으로. '연'은 잡힐 듯하면 늘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갔다. 쫓을수록 깊어지는 자리였다.*그러나 그 손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늙은 후궁의 처소는 궁의 깊은 곳에 있었다. 순검의 손도, 왕부의 눈도 함부로 닿지 못하는 자리였다. 그곳에 든 '연'의 얼굴을 보려면, 궁 안의 사람이라야 했다.월령은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막혔다."부군의 순검도, 저 안까지는 닿지 못해요. 저 처소는, 내명부의 자리니까요.""황후께, 다시 청하랴.""…아직요."월령이 낮게 말했다."황후마마께 올린 그 명부로, 바깥 매듭은 이미 풀렸어요. 또 올리면, 이번에도 조용히 걷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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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지우려 한 것

월령은 그 물음을 오래 품었다.'연'이 두 생에 걸쳐 가장 갖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가장 지우고 싶어 한 것. 붉은 꽃으로 겨눠 온 자리들을 다시 보면, 그 답이 보였다.전생에 '연'은 어머니를 지웠고, 그녀를 지웠고, 심가를 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심가와 섭정왕이 하나로 묶이는 것을, 지웠다.*경화 칠년의 밀서가 떠올랐다.그 밀서는, 진북대장군의 딸과 섭정왕을 하나로 묶는 혼약이었다. 심가의 북문군과, 위지헌의 북경군. 두 군이 한 집으로 묶이면, 그 힘은 누구도 흔들 수 없었다.전생에 '연'은, 그 묶임을 폐위로 끊었다. 그녀가 정비가 되기 전에, 형장으로 보냈다. 두 힘이 하나 되기 전에.이번 생에는, 그 묶임이 이미 이루어졌다. 가례가 올려졌고, 두 군은 한 집이 되었다.그래서 '연'은, 이번에는 다른 것을 겨누고 있었다.*"이미 묶인 것을 못 끊으면."월령이 낮게 말했다."'연'은, 그다음을 끊으려 할 거예요.""그다음이라니.""이 묶임이 이어지는 것. 저와 부군 사이에서, 두 군을 다 물려받을 사람이 나오는 것."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두 군을 한 몸에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나면, '연'이 대를 이어 쌓은 것은 영영 무너졌다. 그래서 '연'은 어머니를 겨누고, 그녀를 겨눴다. 뿌리를 자르고, 그 뿌리에서 날 것을 미리 자르려는 것이었다.*"…무섭구나."위지헌이 낮게 말했다. 그답지 않은 말이었다."무서운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월령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런데 부군. 이걸 뒤집어 보면요. '연'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까지 지우려 한다는 건,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저들에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뜻이에요. 저들이 두 생에 걸쳐 막은 그 일이, 저들을 끝낼 힘이라는 뜻이고요."위지헌은 그 말에, 그녀를 오래 보았다.두 사람의 묶임이, 겨눔의 이유이자 이길 힘이었다. 사랑이 곧,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였다.*그 무렵, 궁 안의 안쪽 처소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늙은 후궁의 처소에 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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