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291 - Chapter 300

358 Chapters

291. 봄 야연

경화제가 북방 승전을 기려, 봄 야연을 열었다.어원에 등이 걸리고, 백관과 내명부가 함께 자리했다. 승전의 밤이라, 잔치의 흥이 높았다. 그러나 그 흥 아래로, 저마다의 셈이 조용히 오갔다.위지헌은 그 자리의 중심에 있었다. 북을 걷고 돌아온 섭정왕에게, 잔을 올리려는 손이 줄을 이었다.*월령은 그 곁에, 섭정왕비의 자리에 앉았다.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것을, 여러 눈이 보았다. 승전한 섭정왕과, 그 곁을 지킨 안주인. 그 그림이 단단해 보일수록, 그것을 못마땅해하는 눈도 늘었다.그 눈들 가운데 하나가, 오늘 처음으로 어원에 들었다.청하 노가였다.*노가의 가주 노경이, 배중곤을 앞세워 자리에 들었다.배중곤은 바람 따라 줄을 옮기는 원로였다. 노가가 그 원로를 앞세웠다는 것은, 오늘 노가가 무언가를 꺼낼 참이라는 뜻이었다.그 뒤로, 한 여인이 들었다.노경의 여식, 노예원이었다.재색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걸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고, 그 시선을 즐길 줄 아는 걸음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들자마자, 눈으로 한 사람을 찾았다.섭정왕이었다.*노예원이 위지헌 앞으로 나아가, 잔을 올렸다."섭정왕 저하의 승전을, 청하 노가가 감축드립니다."목소리에, 예 이상의 것이 실려 있었다. 잔을 올리는 손끝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그의 앞에 머물렀다.위지헌은 그 잔을 받았다. 예를 갖추어 받되, 그 이상은 없었다."수고했다."짧은 말이었다. 그가 황제 외에는 하대하는 사람이었고, 처음 보는 여인에게 내릴 말이 그것뿐이라는 듯한 짧음이었다.노예원의 눈이, 그 짧음 앞에서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곧, 다시 웃음을 지었다. 흔들림을 감출 줄 아는 웃음이었다.*월령은 그 모든 것을, 곁에서 보았다.잔을 올리는 손끝의 머무름도, 위지헌의 짧은 답도, 노예원의 흔들렸다 다시 세운 웃음도.질투가 먼저 일지는 않았다. 두 생을 건너온 사람에게, 처음 보는 여인의 눈길 하나는 아직 무게가 크지 않았다.다만, 월령은 다른 것을 보았다.노예원이 위지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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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후사라는 말

노가가 어원에 든 까닭은, 야연이 끝나기 전에 드러났다.배중곤이, 술기운을 빌린 듯 슬며시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 말은, 오래 골라 둔 말이었다."섭정왕 저하께서 가례를 올리신 지도, 벌써 한 철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저하께는 아직, 후사가 없으시지요."자리의 소리가, 잠깐 낮아졌다.*후사라는 말은, 함부로 꺼낼 말이 아니었다.그러나 배중곤은 그것을, 나라의 일로 포장해 꺼냈다. 섭정왕은 나라의 기둥이니, 그 대를 이을 후사가 하루빨리 있어야 한다는 것. 정비 하나로 후사가 더디면, 측실을 들여 후사를 서두르는 것이 문벌의 오랜 법도라는 것.그 말끝에, 노경이 받았다."청하 노가에, 재덕을 갖춘 여식이 있습니다. 저하의 후사를 돕는 자리라면, 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노예원이,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숙였으나, 숙인 고개 아래로 눈빛은 또렷했다.*월령은 그 말을, 흔들리지 않고 들었다.측실. 후사. 문벌의 법도.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으나, 뜻은 하나였다. 섭정왕의 곁에, 노가의 여인 하나를 들이겠다는 것.정비 하나뿐인 섭정왕의 곁에 다른 여인이 들면, 그 단단하던 그림에 금이 갔다. 심가와 섭정왕의 결합 사이에, 노가의 실 하나가 끼어들었다.'연'이, 결합을 안에서 벌리려는 수였다.전생에는 폐위로 끊었고, 이번 생에는 끊지 못하자 벌리려는 것이었다. 후사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위지헌이, 그 자리에서 낮게 입을 열었다."후사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오."목소리가 낮았으나, 자리 끝까지 닿았다."그리고 본왕의 곁은, 이미 찼소. 빈자리가 없는 곳에, 사람을 들일 수는 없는 법이오."노경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배중곤이 얼른 말을 보탰다."저하, 후사는 나라의 일이옵니다. 사사로운 정으로만…""사사로운 정이 아니오."위지헌이 그 말을 잘랐다."본왕이 지킬 것을 하나로 두는 것은, 사사로움이 아니라 본왕의 법도요. 그 법도를, 문벌이 정해 줄 수는 없소."*자리가 조용해졌다.섭정왕이 문벌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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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집에서 하는 질투

야연에서 돌아온 밤, 왕부의 안채에 두 사람만 남았다.월령은 겉옷을 벗고, 머리의 비녀를 뽑았다. 백옥과 살구나무. 검은 머리가 어깨 위로 풀려 내렸다.위지헌이 그 모습을 보다가, 낮게 물었다."이제, 질투를 하려느냐.""…네."월령이 낮게 답했다."집에 가서 한다고 했으니까요."*월령은 그의 앞에 앉았다."오늘, 그 노가의 여인이 부군께 잔을 올릴 때요.""들었다.""손끝이, 부군 앞에 오래 머물렀어요. 저는 그걸 봤어요."위지헌은 그녀를 보았다. 두 생을 건너온 책사가, 야연의 셈을 다 읽고 돌아와서는, 정작 집에서는 잔을 올리던 손끝 하나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그게, 질투냐.""…네. 아주 작은 질투요."월령의 귓불이, 옅게 붉어졌다.*위지헌은 그 붉은 귓불을 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여인이 잔을 올리는 동안, 나는 한 사람만 보았다.""…누구요.""네 옆자리를."위지헌이 낮게 말했다."그 여인의 손끝이 얼마나 오래 머물든, 내 눈은 네 옆자리로 갔다. 야연 내내, 나는 그 자리만 보았다."월령의 눈에, 물기가 옅게 고였다. 질투를 하러 앉았다가, 도리어 마음이 뜨거워졌다.위지헌은 그 고인 물기를 손끝으로 훔쳤다. 질투하러 앉은 사람의 눈물을 닦는 손이, 유난히 다정했다."울지 마라. 오늘은 네가, 질투하는 날인데.""…이게 다 부군 때문이잖아요."월령이 그렇게 말하고, 그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밀면서도, 그 어깨를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부군.""말해라.""오늘 여러 사람 앞에서, 빈자리가 없다고 하셨잖아요.""했다.""그 말이… 저는, 오늘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어요."월령이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전생에 저는, 곁에 아무도 없이 죽었어요. 그런데 이번 생에는, 부군이 여러 사람 앞에서 제 자리가 곁을 다 채웠다고 말해 줬어요. 그게… 자꾸 뜨거웠어요."위지헌은 그녀를 끌어안았다.*"령아."둘만 남은 밤의 이름이었다."그 여인이 노리는 것은, 내 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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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빈 자리가 없는 곳

섭정왕이 야연에서 측실을 물린 뒤로, 노가는 물러서지 않았다.물러서기는커녕, 명분을 더 키웠다. 섭정왕의 후사가 없는 것이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나라의 근심이라는 말을, 배중곤을 통해 조정에까지 흘렸다.문벌의 오랜 법도를 앞세운 말이라,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웠다. 월령은 그 말이 조정에 퍼지는 것을 며칠 지켜보았다. 급히 막으면, 도리어 그 명분에 힘이 실렸다.*며칠 뒤, 월령은 그 명분의 뿌리를 다시 헤아렸다."부군. 저들이 후사를 명분으로 삼는 건, 후사가 없어서가 아니에요.""그럼.""후사가 없는 '지금'을 노리는 거예요. 만약 저와 부군 사이에 후사가 생기면, 측실을 들일 명분이 사라져요. 그러니 저들은, 후사가 없는 지금 서둘러 노가의 여인을 들이려는 거예요."위지헌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연'이 서두르는 까닭이, 거기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대가 이어지기 전에, 먼저 노가의 실을 끼워 넣으려는 것.*"그럼, 저들의 명분을 어떻게 무르지."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명분으로 명분을 무를 수는 없어요. 후사가 없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만…"그녀가 낮게 말했다."저들이 든 명분이, 저들에게 돌아가게 할 수는 있어요.""어떻게.""노가가 여식을 섭정왕의 후사를 위해 바친다 했잖아요. 그런데 노가의 여식은, 후사를 돕는 자리를 바라고 온 게 아니에요. 정비 자리를 바라고 왔어요. 그 둘은 달라요."*월령은 그 다름을 짚었다.문벌이 내세운 명분은 '후사를 돕는 측실'이었다. 그러나 노예원이 원하는 것은 '섭정왕비의 자리'였다. 측실로 만족할 여인이 아니었다.측실 명분으로 들어와, 정비 자리를 노리는 여인.그 야심이, 노가의 명분과 어긋나 있었다. 명분은 낮은 자리를 말하는데, 야심은 높은 자리를 노렸다. 그 어긋남을 드러내면, 노가의 명분이 스스로 무너졌다.*"저들이 '후사를 돕는 자리'라 말하게 두고요."월령이 낮게 말했다."노예원이 그 낮은 자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저들 스스로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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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노예원의 자리

월령은 노예원이 스스로 드러날 자리를, 황후의 봄 다회에 마련했다.내명부의 여인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노가가 여식을 섭정왕의 후사를 돕는 자리에 바치겠다 한 뒤였으니, 노예원도 그 다회에 들 자격이 생겼다.월령은 그 자리에서, 노예원에게 낮은 자리를 권했다.*"노 소저는, 섭정왕의 후사를 돕는 자리를 청하셨다지요."월령이 나긋하게 말했다."후사를 돕는 자리는, 정비 아래에서 정비를 받드는 자리입니다. 소저께서 그 자리를 원하신다니, 오늘은 제 곁에서 내명부의 법도를 익히시면 좋겠습니다."정비를 받드는 자리. 월령은 그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분명히 했다.노예원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노예원은 정비를 받드는 자리를 익히러 온 것이 아니었다.그 자리를 빼앗으러 온 여인이었다. 그런데 월령이 여러 사람 앞에서, '내 곁에서 나를 받드는 법을 익히라'고 한 것이었다.받들겠다 답하면, 정비 아래의 자리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었다. 받들 수 없다 하면, 후사를 돕는 자리를 청한 노가의 명분이 거짓이 되는 셈이었다.어느 쪽을 답해도, 노예원은 걸렸다.*노예원은 오래 답하지 못했다.곱게 웃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걷혔다. 그 여인은 재색과 야심을 갖추었으나, 여러 사람 앞에서 자리의 높낮이를 정해 오는 말에는 익숙하지 않았다."…소녀는."노예원이 겨우 입을 열었다."소녀는, 저하의 후사를 돕고자 왔을 뿐입니다.""그럼, 제 곁에서 익히시지요."월령이 옅게 웃었다."받드는 법부터."*다회가 끝난 뒤, 노예원이 물러나며 처음으로 월령에게 말을 걸었다.곱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섭정왕비마마. 오늘의 자리는, 마마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자리는… 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지요.""압니다."월령이 나긋하게 답했다."자리는 바뀌지요. 다만, 자리를 바꾸는 건 그 자리를 탐내는 마음이 아니라, 그 자리를 감당하는 사람이에요. 소저께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까지인지는, 소저 자신이 가장 잘 아시겠지요."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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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노예원의 무리수

받드는 자리에 오래 머물 여인이 아니었다.다회가 있고 며칠 뒤, 노예원이 움직였다.궁 안의 한 처소가, 섭정왕비를 청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총애를 잃은 늙은 후궁의 처소였다. 봄이 가기 전, 오랜만에 여는 작은 다회라 했다.월령은 그 청을 받고, 잠깐 멎었다.그 처소는, '연'의 실이 옮겨 간 안쪽 처소였다.*월령은 그 청을 물리지 않았다.'연'의 실이 옮겨 간 자리를, 제 눈으로 볼 기회였다. 다만 혼자 들지 않았다. 강무진이 왕부 사람 몇을 그 처소 근처에 두었다.늙은 후궁의 처소에 드니, 뜻밖에 노예원이 먼저 와 있었다."섭정왕비마마. 오셨습니까."노예원이 곱게 맞았다. 받드는 자리를 익히겠다던 여인이, 오늘은 손님을 맞는 안주인처럼 굴었다.월령은 그 어긋남을 눈에 담았다.*다회가 무르익을 무렵, 노예원이 낮게 말을 건넸다."마마. 섭정왕 저하께서, 요즘 정무로 바쁘시다지요. 후사를 돕는 자리가 있다면, 저하의 짐을 조금 덜어 드릴 수 있을 텐데요."여전히 측실 자리를 미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말을 '연'의 처소에서 하고 있었다.월령은 처소를 둘러보았다.늙은 후궁은 자리에 없었다. 처소를 빌려준 벽만 있고, 주인은 없는 자리였다. 그 빈자리에서, 노예원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노가가 이 처소를 제 자리처럼 쓴다는 뜻이었다.'연'의 안쪽 처소와, 노가가 이어져 있었다.*월령은 그 다회에서, 말을 아꼈다.다만, 처소의 향을 기억해 두었다. 남쪽 절터에서 나던 향과, 같은 향이 이 처소에도 옅게 배어 있었다.노가의 여인이 손님을 맞는 처소에, '연'의 향이 배어 있었다. 노가와 '연'이, 이 처소에서 한자리에 있었다.월령은 그 향을 코끝에 담고, 처소를 나섰다.노예원은 측실 자리를 미는 미끼였고, 그 미끼를 이 처소로 부른 것은 '연'이었다. 미끼와 부리는 자가, 이 처소에서 겹쳐 있었다.*그 밤, 강무진이 낮게 옮겨 왔다."그 처소에 드나드는 상궁 하나가 있습니다. 낮에는 늙은 후궁을 모시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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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비 오는 얼굴

'연'의 향을 다시 맡은 밤부터, 위지헌의 기억이 조금씩 또렷해졌다.향은, 잠긴 기억을 여는 열쇠 같았다. 남쪽 절터의 향, 안쪽 처소의 향. 같은 향을 이번 생에 다시 맡자, 지난 생 형장의 비 오는 얼굴이 조금씩 살아났다. 잊어서 흐려진 얼굴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서 묻어 둔 얼굴이었다. 향 하나가, 그 묻어 둔 자리를 건드렸다."…떠올랐다."어느 밤, 위지헌이 낮게 말했다.*"그 사람은, 여인이었다."월령이 고개를 들었다."비를 맞으며 형장을 지켜보던 그 사람. 남정네가 아니었다. 궁의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상궁도, 후궁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옷이었다."월령의 손끝이 식었다.궁의 옷을 입은 여인이, 붉은 꽃을 들고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 여인이, 지난 생의 '연'이었다.'연'은, 궁 안에서 왔다.궁 안의 여인이라면, 순검이 닿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위지헌의 칼도, 왕부의 눈도 함부로 들지 못하는 내명부. '연'이 두 생에 걸쳐 얼굴을 감출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 있었다. 그 자리는, 사내들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그 여인이, 어떤 얼굴이었어요."월령이 낮게 물었다.위지헌은 오래, 그날을 떠올렸다."울지 않았다. 미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해 온 일을 마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붉은 꽃을 코에 대고, 조용히 한 가지 일을 끝낸 사람처럼."월령은 그 말을, 오래 마음에 새겼다.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었다. 오래 이어 온 일을 마치듯 죽인 것이었다. 대를 이어 온 자리가, 그 여인의 손에서 한 매듭을 지은 것이었다.*그 말을 하는 위지헌의 얼굴에, 오래된 것이 스쳤다."내가, 그 얼굴을 조금만 더 일찍 떠올렸다면.""부군.""지난 생에 그 여인을 먼저 보았다면. 너를… 늦지 않게 데리러 갔을지도 모른다."월령은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부군은 늦지 않았어요.""늦었다. 형장에 닿았을 때…""이번 생에는, 늦지 않았어요."월령이 그의 말을 잘랐다."지난 생의 늦음을,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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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바람개비

노예원은, 받드는 자리를 오래 견디지 못했다.봄이 다 가기 전, 그 여인이 무리수를 두었다.궁 안에 소문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섭정왕비가 가례를 올린 지 한 철이 넘도록 후사가 없으니, 몸에 흠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었다.그 소문의 자취를 따라가자, 안쪽 처소의 상궁이 나왔다. 노예원이 그 상궁을 통해, 소문을 흘린 것이었다.*소문은, 노예원의 조바심에서 나왔다.측실 자리로는 그 여인의 야심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정비의 자리를 흔들려 했다. 정비에게 흠이 있으면, 그 자리가 비고, 그 빈자리를 제가 노릴 수 있으니까.그러나 그 소문이, 도리어 노가의 명분을 깼다.노가는 여식을 '후사를 돕는 측실'로 바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여식이 정비의 자리를 흔드는 소문을 냈다면, 노가의 뜻은 돕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었다.명분과 야심의 어긋남이, 소문 하나로 드러났다.소문 하나가, 노가의 명분을 스스로 겨눴다. 노예원이 정비 자리를 흔든 순간, 노가가 내세운 '돕는 자리'라는 말이 거짓이 되었다. 겨눈 자의 수가, 겨눈 자를 향해 돌아간 셈이었다.*월령은 그 소문을, 흔들리지 않고 받았다.황후의 다회에서, 월령은 나긋하게 말했다."요즘 궁에, 제 몸을 두고 소문이 돈다지요. 소문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저보다 마마들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그 말에, 여러 눈이 노예원에게로 갔다."후사를 돕겠다는 자리에서 나온 소문이라면, 그 자리는 돕는 자리가 아니라 흔드는 자리겠지요. 저는 다만,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노예원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노가의 명분이 흔들리자, 가장 먼저 발을 뺀 것은 배중곤이었다.바람 따라 줄을 옮기는 원로였다. 노가의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날 낌새가 보이자, 그는 슬그머니 노가에게서 발을 뺐다."후사는… 서두를 일이 아니지요. 섭정왕 저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며칠 전까지 후사를 나라의 근심이라 하던 입이, 이제 서두를 일이 아니라 했다.노경의 얼굴이, 그 바람개비 앞에서 굳었다.*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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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나른한 봄

노가의 명분이 깨진 뒤로, 왕부에 잠깐 봄다운 봄이 들었다.살구 열매가 제법 굵어졌고, 마당에 볕이 길게 들었다. 겨눔과 셈으로 채워지던 날들 사이에, 오랜만에 숨을 트는 낮이 왔다. 마당에는 벌이 다시 날기 시작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드는 계절이었다.그런데 그 봄에, 월령의 몸이 조금 이상했다.*아침이면, 자꾸 나른했다.늘 일찍 눈을 뜨던 사람이, 요즘은 해가 든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좋아하던 죽도 몇 술 뜨다 물렸고, 옅은 냄새에도 속이 울렁였다."어디, 편찮으세요?"청아가 걱정스레 물었다."…아니. 봄을 타나 봐."월령은 그렇게 넘겼다. 두 생을 건너온 몸이, 봄마다 한 번씩 나른한 것이려니 했다.*위지헌은, 그 나른함을 곁에서 보았다.그는 월령보다 먼저, 그 나른함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만,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오늘은, 무리하지 마라.""…괜찮아요.""괜찮아 보이지 않는다."위지헌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열은 없었다. 다만, 얼굴빛이 며칠 새 옅어져 있었다."의원을 부르랴.""봄을 타는 것뿐인데, 의원까지요."월령이 옅게 웃었다. 위지헌은 그 웃음을 보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두 생을 건너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두 생 어디에도, 이런 나른함은 없었다. 위지헌은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면서도, 제 입으로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며칠 뒤, 유씨가 왕부에 다녀갔다.딸의 얼굴을 오래 보던 유씨가, 문득 낮게 물었다."…월령아. 요즘, 달거리는 하였느냐."월령의 손이, 잠깐 멎었다.생각해 보니, 지난달의 것이 없었다. 겨눔과 셈에 마음을 쓰느라, 제 몸의 달을 세는 것을 잊고 있었다."…어머니.""짚이는 것이 있느냐."유씨의 눈에, 오래 감춰 온 기쁨 같은 것이 옅게 비쳤다.*월령은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두 생을 살며, 이런 것은 한 번도 겪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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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세지 못한 봄이 온다

이튿날, 의원이 왕부에 들었다.월령의 맥을 짚던 의원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기쁨이 번졌다."경하드리옵니다, 마마."의원이 낮게 아뢰었다."회임이시옵니다. 두 달 남짓 되신 듯하옵니다."방 안이, 잠깐 고요해졌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두 생을 살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전생에는 정비가 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가 되는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생에, 그 봄이 왔다.몸 안에서, 두 사람의 대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위지헌은 그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전장에서 수천의 군을 호령하던 사람이, 그 한마디 앞에서 말을 잃었다. 다만, 월령의 손을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의원이 물러간 뒤, 두 사람만 남았다."…부군.""…그래.""저희, 아이가 생겼대요."월령의 눈에서, 물기가 흘렀다. 이번에는 무서움도, 슬픔도 아닌 물기였다.위지헌이 그녀를 안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두 생을 건너온 사람을 안던 팔이, 이제 그 안의 작은 것까지 함께 안듯이."령아."그가 낮게 불렀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고맙다."*두 사람은 오래, 그렇게 있었다.두 군을 물려받을 아이였다. 심가의 북문군과, 섭정왕의 북경군. 두 힘이 한 몸으로 이어지는 대.그것이, '연'이 두 생에 걸쳐 지우려 한 바로 그것이었다.전생에 '연'은, 그 대가 잇기 전에 그녀를 형장으로 보냈다. 어머니를 죽이고, 그녀를 죽여, 뿌리를 잘랐다. 그런데 이번 생에, 그 뿌리에서 마침내 싹이 텄다.*"부군."월령이 낮게 말했다."이제, 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제 안에 있어요."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연'이 두 생에 걸쳐 지우려 한 것이, 이제 이 세상에 오려 하고 있었다. 그 소식이 벽 뒤의 얼굴에 닿는 날, '연'은 두 생에 걸친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아이를 겨눌 것이었다.지켜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그 하나는, 두 사람이 두 생을 걸고 지켜 온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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