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섭정왕이 야연에서 측실을 물린 뒤로, 노가는 물러서지 않았다.물러서기는커녕, 명분을 더 키웠다. 섭정왕의 후사가 없는 것이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나라의 근심이라는 말을, 배중곤을 통해 조정에까지 흘렸다.문벌의 오랜 법도를 앞세운 말이라,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웠다. 월령은 그 말이 조정에 퍼지는 것을 며칠 지켜보았다. 급히 막으면, 도리어 그 명분에 힘이 실렸다.*며칠 뒤, 월령은 그 명분의 뿌리를 다시 헤아렸다."부군. 저들이 후사를 명분으로 삼는 건, 후사가 없어서가 아니에요.""그럼.""후사가 없는 '지금'을 노리는 거예요. 만약 저와 부군 사이에 후사가 생기면, 측실을 들일 명분이 사라져요. 그러니 저들은, 후사가 없는 지금 서둘러 노가의 여인을 들이려는 거예요."위지헌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연'이 서두르는 까닭이, 거기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대가 이어지기 전에, 먼저 노가의 실을 끼워 넣으려는 것.*"그럼, 저들의 명분을 어떻게 무르지."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명분으로 명분을 무를 수는 없어요. 후사가 없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만…"그녀가 낮게 말했다."저들이 든 명분이, 저들에게 돌아가게 할 수는 있어요.""어떻게.""노가가 여식을 섭정왕의 후사를 위해 바친다 했잖아요. 그런데 노가의 여식은, 후사를 돕는 자리를 바라고 온 게 아니에요. 정비 자리를 바라고 왔어요. 그 둘은 달라요."*월령은 그 다름을 짚었다.문벌이 내세운 명분은 '후사를 돕는 측실'이었다. 그러나 노예원이 원하는 것은 '섭정왕비의 자리'였다. 측실로 만족할 여인이 아니었다.측실 명분으로 들어와, 정비 자리를 노리는 여인.그 야심이, 노가의 명분과 어긋나 있었다. 명분은 낮은 자리를 말하는데, 야심은 높은 자리를 노렸다. 그 어긋남을 드러내면, 노가의 명분이 스스로 무너졌다.*"저들이 '후사를 돕는 자리'라 말하게 두고요."월령이 낮게 말했다."노예원이 그 낮은 자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저들 스스로 드러
야연에서 돌아온 밤, 왕부의 안채에 두 사람만 남았다.월령은 겉옷을 벗고, 머리의 비녀를 뽑았다. 백옥과 살구나무. 검은 머리가 어깨 위로 풀려 내렸다.위지헌이 그 모습을 보다가, 낮게 물었다."이제, 질투를 하려느냐.""…네."월령이 낮게 답했다."집에 가서 한다고 했으니까요."*월령은 그의 앞에 앉았다."오늘, 그 노가의 여인이 부군께 잔을 올릴 때요.""들었다.""손끝이, 부군 앞에 오래 머물렀어요. 저는 그걸 봤어요."위지헌은 그녀를 보았다. 두 생을 건너온 책사가, 야연의 셈을 다 읽고 돌아와서는, 정작 집에서는 잔을 올리던 손끝 하나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그게, 질투냐.""…네. 아주 작은 질투요."월령의 귓불이, 옅게 붉어졌다.*위지헌은 그 붉은 귓불을 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여인이 잔을 올리는 동안, 나는 한 사람만 보았다.""…누구요.""네 옆자리를."위지헌이 낮게 말했다."그 여인의 손끝이 얼마나 오래 머물든, 내 눈은 네 옆자리로 갔다. 야연 내내, 나는 그 자리만 보았다."월령의 눈에, 물기가 옅게 고였다. 질투를 하러 앉았다가, 도리어 마음이 뜨거워졌다.위지헌은 그 고인 물기를 손끝으로 훔쳤다. 질투하러 앉은 사람의 눈물을 닦는 손이, 유난히 다정했다."울지 마라. 오늘은 네가, 질투하는 날인데.""…이게 다 부군 때문이잖아요."월령이 그렇게 말하고, 그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밀면서도, 그 어깨를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부군.""말해라.""오늘 여러 사람 앞에서, 빈자리가 없다고 하셨잖아요.""했다.""그 말이… 저는, 오늘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어요."월령이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전생에 저는, 곁에 아무도 없이 죽었어요. 그런데 이번 생에는, 부군이 여러 사람 앞에서 제 자리가 곁을 다 채웠다고 말해 줬어요. 그게… 자꾸 뜨거웠어요."위지헌은 그녀를 끌어안았다.*"령아."둘만 남은 밤의 이름이었다."그 여인이 노리는 것은, 내 곁이
노가가 어원에 든 까닭은, 야연이 끝나기 전에 드러났다.배중곤이, 술기운을 빌린 듯 슬며시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 말은, 오래 골라 둔 말이었다."섭정왕 저하께서 가례를 올리신 지도, 벌써 한 철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저하께는 아직, 후사가 없으시지요."자리의 소리가, 잠깐 낮아졌다.*후사라는 말은, 함부로 꺼낼 말이 아니었다.그러나 배중곤은 그것을, 나라의 일로 포장해 꺼냈다. 섭정왕은 나라의 기둥이니, 그 대를 이을 후사가 하루빨리 있어야 한다는 것. 정비 하나로 후사가 더디면, 측실을 들여 후사를 서두르는 것이 문벌의 오랜 법도라는 것.그 말끝에, 노경이 받았다."청하 노가에, 재덕을 갖춘 여식이 있습니다. 저하의 후사를 돕는 자리라면, 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노예원이,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숙였으나, 숙인 고개 아래로 눈빛은 또렷했다.*월령은 그 말을, 흔들리지 않고 들었다.측실. 후사. 문벌의 법도.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으나, 뜻은 하나였다. 섭정왕의 곁에, 노가의 여인 하나를 들이겠다는 것.정비 하나뿐인 섭정왕의 곁에 다른 여인이 들면, 그 단단하던 그림에 금이 갔다. 심가와 섭정왕의 결합 사이에, 노가의 실 하나가 끼어들었다.'연'이, 결합을 안에서 벌리려는 수였다.전생에는 폐위로 끊었고, 이번 생에는 끊지 못하자 벌리려는 것이었다. 후사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위지헌이, 그 자리에서 낮게 입을 열었다."후사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오."목소리가 낮았으나, 자리 끝까지 닿았다."그리고 본왕의 곁은, 이미 찼소. 빈자리가 없는 곳에, 사람을 들일 수는 없는 법이오."노경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배중곤이 얼른 말을 보탰다."저하, 후사는 나라의 일이옵니다. 사사로운 정으로만…""사사로운 정이 아니오."위지헌이 그 말을 잘랐다."본왕이 지킬 것을 하나로 두는 것은, 사사로움이 아니라 본왕의 법도요. 그 법도를, 문벌이 정해 줄 수는 없소."*자리가 조용해졌다.섭정왕이 문벌의 법
경화제가 북방 승전을 기려, 봄 야연을 열었다.어원에 등이 걸리고, 백관과 내명부가 함께 자리했다. 승전의 밤이라, 잔치의 흥이 높았다. 그러나 그 흥 아래로, 저마다의 셈이 조용히 오갔다.위지헌은 그 자리의 중심에 있었다. 북을 걷고 돌아온 섭정왕에게, 잔을 올리려는 손이 줄을 이었다.*월령은 그 곁에, 섭정왕비의 자리에 앉았다.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것을, 여러 눈이 보았다. 승전한 섭정왕과, 그 곁을 지킨 안주인. 그 그림이 단단해 보일수록, 그것을 못마땅해하는 눈도 늘었다.그 눈들 가운데 하나가, 오늘 처음으로 어원에 들었다.청하 노가였다.*노가의 가주 노경이, 배중곤을 앞세워 자리에 들었다.배중곤은 바람 따라 줄을 옮기는 원로였다. 노가가 그 원로를 앞세웠다는 것은, 오늘 노가가 무언가를 꺼낼 참이라는 뜻이었다.그 뒤로, 한 여인이 들었다.노경의 여식, 노예원이었다.재색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걸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고, 그 시선을 즐길 줄 아는 걸음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들자마자, 눈으로 한 사람을 찾았다.섭정왕이었다.*노예원이 위지헌 앞으로 나아가, 잔을 올렸다."섭정왕 저하의 승전을, 청하 노가가 감축드립니다."목소리에, 예 이상의 것이 실려 있었다. 잔을 올리는 손끝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그의 앞에 머물렀다.위지헌은 그 잔을 받았다. 예를 갖추어 받되, 그 이상은 없었다."수고했다."짧은 말이었다. 그가 황제 외에는 하대하는 사람이었고, 처음 보는 여인에게 내릴 말이 그것뿐이라는 듯한 짧음이었다.노예원의 눈이, 그 짧음 앞에서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곧, 다시 웃음을 지었다. 흔들림을 감출 줄 아는 웃음이었다.*월령은 그 모든 것을, 곁에서 보았다.잔을 올리는 손끝의 머무름도, 위지헌의 짧은 답도, 노예원의 흔들렸다 다시 세운 웃음도.질투가 먼저 일지는 않았다. 두 생을 건너온 사람에게, 처음 보는 여인의 눈길 하나는 아직 무게가 크지 않았다.다만, 월령은 다른 것을 보았다.노예원이 위지헌을
월령은 그 물음을 오래 품었다.'연'이 두 생에 걸쳐 가장 갖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가장 지우고 싶어 한 것. 붉은 꽃으로 겨눠 온 자리들을 다시 보면, 그 답이 보였다.전생에 '연'은 어머니를 지웠고, 그녀를 지웠고, 심가를 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심가와 섭정왕이 하나로 묶이는 것을, 지웠다.*경화 칠년의 밀서가 떠올랐다.그 밀서는, 진북대장군의 딸과 섭정왕을 하나로 묶는 혼약이었다. 심가의 북문군과, 위지헌의 북경군. 두 군이 한 집으로 묶이면, 그 힘은 누구도 흔들 수 없었다.전생에 '연'은, 그 묶임을 폐위로 끊었다. 그녀가 정비가 되기 전에, 형장으로 보냈다. 두 힘이 하나 되기 전에.이번 생에는, 그 묶임이 이미 이루어졌다. 가례가 올려졌고, 두 군은 한 집이 되었다.그래서 '연'은, 이번에는 다른 것을 겨누고 있었다.*"이미 묶인 것을 못 끊으면."월령이 낮게 말했다."'연'은, 그다음을 끊으려 할 거예요.""그다음이라니.""이 묶임이 이어지는 것. 저와 부군 사이에서, 두 군을 다 물려받을 사람이 나오는 것."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두 군을 한 몸에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나면, '연'이 대를 이어 쌓은 것은 영영 무너졌다. 그래서 '연'은 어머니를 겨누고, 그녀를 겨눴다. 뿌리를 자르고, 그 뿌리에서 날 것을 미리 자르려는 것이었다.*"…무섭구나."위지헌이 낮게 말했다. 그답지 않은 말이었다."무서운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월령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런데 부군. 이걸 뒤집어 보면요. '연'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까지 지우려 한다는 건,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저들에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뜻이에요. 저들이 두 생에 걸쳐 막은 그 일이, 저들을 끝낼 힘이라는 뜻이고요."위지헌은 그 말에, 그녀를 오래 보았다.두 사람의 묶임이, 겨눔의 이유이자 이길 힘이었다. 사랑이 곧,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였다.*그 무렵, 궁 안의 안쪽 처소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늙은 후궁의 처소에 얹
류담희가 가리킨 안쪽 처소는, 오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자리였다.궁의 깊은 곳, 늙은 후궁 하나가 조용히 지내는 처소였다. 총애를 잃은 지 오래라, 드나드는 발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처소는, 밤에 무엇이 드나들어도 아무도 세지 않았다.'연'은, 그런 자리를 골랐다.*강무진이 그 처소를 며칠 지켜본 뒤, 낮게 옮겨 왔다."밤에, 그 처소로 붉은 실로 묶은 명부를 지닌 자가 듭니다. 그리고 나올 때는, 향을 지니고 나옵니다.""향을.""남쪽 절터에서 나던 것과, 같은 향입니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성 밖 절터의 향이, 이제 궁 안의 처소에서 났다. 절터를 걷고 자취를 감춘 '연 어른'이, 궁의 깊은 처소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벽 뒤에 숨은 얼굴이,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그 늙은 후궁이, '연'입니까."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아닐 거예요. 그 후궁은, 처소를 빌려준 벽일 뿐이에요. 총애를 잃은 처소는 아무도 안 봐요. 그런 자리를 빌리면, '연'은 궁 안에 숨을 자리를 얻어요.""그럼, '연'은 그 처소에 얹힌 손이로군.""채운 상궁이 동쪽 처소에 얹혀 있던 것처럼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처소의 주인이 아니라, 처소에 든 손. 그 손을 찾아야 해요."동쪽 처소에서 안쪽 처소로. 성 밖 절터에서 궁 안 깊은 곳으로. '연'은 잡힐 듯하면 늘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갔다. 쫓을수록 깊어지는 자리였다.*그러나 그 손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늙은 후궁의 처소는 궁의 깊은 곳에 있었다. 순검의 손도, 왕부의 눈도 함부로 닿지 못하는 자리였다. 그곳에 든 '연'의 얼굴을 보려면, 궁 안의 사람이라야 했다.월령은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막혔다."부군의 순검도, 저 안까지는 닿지 못해요. 저 처소는, 내명부의 자리니까요.""황후께, 다시 청하랴.""…아직요."월령이 낮게 말했다."황후마마께 올린 그 명부로, 바깥 매듭은 이미 풀렸어요. 또 올리면, 이번에도 조용히 걷어 내
태후의 초대장은 향이 없었다.그 사실이 먼저 심가를 조용하게 만들었다.아침 부엌에서는 멥쌀 씻는 물소리가 나고, 무쇠솥 가장자리에는 지난밤 끓여 둔 닭죽의 기름이 얇게 굳어 있었다. 행랑 쪽에서는 하인들이 장작을 패며 낮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마구간에서는 젖은 짚을 갈아내는 냄새가 느리게 흘러왔다.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그런데 검은 칠을 한 죽간 하나가 대문을 넘자, 집 안의 모든 소리가 반 박자씩 늦어졌다.칼을 갈던 호위가 손을 멈췄고, 죽을 푸던 계집종은 국자의 끝을 솥 가장자리에 대고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살
아침빛은 얇았다.밤새 창을 열어 두었기 때문인지 방 안에는 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연꽃 향도, 난향도, 사람의 판단을 늦추던 희미한 쓴내도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다.대신 창가에는 말린 살구꽃 한 줌이 놓여 있었다.누가 두고 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청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과 울음을 참는 얼굴이 이상하게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월령은 그때 처음 알았다."왕부에서 보낸 거예요."청아는 아주 작게 말했다.왕부.그 두 글자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다시 낮아지는 듯했다. 월령은
심가의 아침은 낮은 소리들로 가득했다.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아직 누구의 입에서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물동이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회랑을 쓸던 하인의 빗자루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멈추고, 부엌의 계집종들이 죽 솥을 젓다 말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큰 집의 소문은 늘 사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쌀을 씻는 물소리,말에게 여물을 붓는 소리,행랑채 문고리가 바람도 없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그 작은 것들이 밤사이 심가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먼저 알렸다.안에서 잠긴 문.끊어지지 않은 밧줄.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