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Bab 371 - Bab 380

436 Bab

371. 대리

"…삼황자부."위지헌이 그 물표를 등불에 비췄다. 도장이 선명했다. 위조가 아니었다."이 사람, 두목이 아니다.""아니면요? 그럼 뭔데요.""두목 손도 아니고. 상단 사람이 삼황자부 물표를 소매에 넣고 다니겠느냐. 삼황자부에서 상단으로 가는 손이다. 거꾸로가 아니라."월령이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젖은 옷 그대로 앉아, 아무 데도 보지 않았다.*허도겸이 궤짝의 장부를 밤새 읽었다.새벽에 그가 붓을 놓고 말했다."…명부와 값이, 한 손에서 나옵니다.""어떻게 알아요? 글씨가 같아요?""글씨는 아니고요, 셈법입니다. 끝자리를 늘 올림으로 처리하거든요, 값 매길 때. 명부지기 자백 조서에 적힌 값들이… 같은 버릇입니다. 열에 아홉이요. 사람이 바뀌어도 셈법은 안 바뀝니다. 가르친 사람이 같으면.""…누가 가르쳤어요."허도겸이 독고진겸을 보았다. 독고진겸이 창가에서 낮게 말했다."나요. 나를 가르친 건, 누이고."방 안이 조용해졌다. 독고진겸이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누이는 열여섯에 셈을 다 뗐소. 상단 서녀가 셈방에 드는 법은 없는데, 밤에 들어와 장부를 읽더군. 나는 그때 스물이었고… 누이가 읽는 걸 보고서야 알았소. 내가 뭘 셈하고 있었는지.""…뭘 셈하셨는데요.""사람 값이오. 그땐 이름이 안 붙어 있었으니, 물건 값인 줄만 알았지, 뭐."설련이 문가에서 그 말을 들었다. 아비의 등을 보았다. 아비가 딸을 돌아보지 않아서, 딸이 아비의 등을 볼 수 있었다.*노경이 왕부에 온 것은 그날 낮이었다.가마도 없이, 종 하나만 데리고. 노가의 가주가 대문 앞에서 통기를 넣었다. 방어멈이 대문 안에서 그 얼굴을 보고 혀를 찼다."아이고, 저 어른이 제 발로 오는 날도 다 있네. 가마도 없이."월령이 마루로 나갔다. 노경은 늙어 있었다. 딸이 유배 간 뒤 더 늙었다."섭정왕비.""대감.""긴말은 않겠소. 청릉 장부에 내 집 물표가 있다지. 알고 왔소.""압니다.""…내가 판 게 아니오. 산 거요. 자녕궁이 파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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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보지 마라

삼황자부 문 앞에 서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위명서는 북영에서 돌아와 그 자리를 보았다. 열두 살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름을 물은 적이 없었다. 호위, 라고만 불렀다."…호위는.""이틀째 안 보입니다. 이틀째요."내관이 답했다."어디 갔느냐.""…모, 모릅니다. 삼전하께서 북영에 계신 동안 상단 사람이 몇 번 들었는데, 그 뒤로는 그만."위명서는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가, 이 집에서 처음으로 저를 보았다.*처소 창고 문 앞에서, 그는 멈췄다.어릴 적부터 열어 본 적 없는 문이었다. 어머니가 채워 둔 것이라고만 들었다. 삼전하가 손댈 것 없는 살림살이라고. 그는 그 말을 곧이들었다. 곧이듣는 것이 편했으니까.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놋쇠에 다섯 잎.매화. 제 문양이었다.위명서는 그 자물쇠를 만지지 않았다. 만지지 않고, 돌아섰다.돌아서다가, 다시 멈췄다. 창고 앞 흙에 발자국이 있었다. 제 것이 아니었다. 상단 사람의 신발 자국. 그리고 그 옆에, 가마꾼의 것. 북영에 있는 동안 이 문 앞에 가마가 섰다."내관.""예, 삼전하.""내가 없는 동안 가마가 왔느냐. 이 문 앞에.""…자녕궁에서, 예. 마마께서 삼전하 살림을 살피신다 하시고요.""병중이신 분이.""…예."내관이 답을 늦게 했다. 늦은 답을, 위명서는 처음으로 놓치지 않았다.*주란이 회랑에서 그를 보았다."삼전하. 창고 앞에 계셨지요?""지나는 길이다.""지나는 길에 서 계셨어요. 오래요."위명서는 답하지 않았다. 주란도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스치면서, 아주 낮게 말했다."…물어보세요. 누구한테든."*말은, 그 길로 왕부로 갔다.이번에는 대문을 두드렸다. 청아가 문틈으로 내다보다가, 그 얼굴을 보고 굳었다. 방어멈이 뒤에서 소리쳤다."밖에서 오는 사람은 마당에서 돌려보내라 했지! 누구야, 또.""어멈, 삼전하세요. 삼전하."방어멈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마당에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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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되치기

회춘당 앞에는 이날도 줄이 서 있었다.은매가 그 줄 끝에 섰다. 손에 약봉지를 들고. 앞에 선 아낙이 돌아보며 말했다."아가, 너도 애 있는 집이냐? 그 봉지.""소, 소인이 사는 집에요. 아기씨가 계셔서.""그럼 미리 지어 둬, 미리. 동쪽에 열병이 돈다잖니.""동쪽… 동쪽 어디요?"아낙이 잠깐 말을 못 했다."어디더라. 그게, 약방 주인이 그러던데, 어디라 했더라."은매는 그 대답을 가슴에 넣어 두었다. 그러고는 줄이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약방 주인 앞에 물표 석 장을 놓았다."소인이 이거… 이걸 주우러 왔는데요."*강무진이 약방 뒷문에서 나왔다.주인은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갈 데가 없다는 것을, 은매가 물표를 놓는 순간 알았다."열병이 어디서 돕니까. 어디서."강무진이 물었다."그, 동쪽에—""동쪽 어느 마을이요. 마을 이름을 대십시오. 제가 직접 가 봐야 하니까."주인이 답하지 못했다. 강무진은 답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렸다. 답이 없다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그도 이제는 알았다.은매가 그 곁에 서 있었다. 손에 약봉지를 그대로 들고. 강무진이 그 봉지를 보았다."…그건 또 뭐냐. 손에 든 거.""약이요. 소인이 진짜로 지은 거예요. 아기씨 감기약인데, 온 김에.""약방을 잡으러 와서, 약을 지었다고. 네가.""잡으러 왔다고 안 지으면요, 아기씨가… 아기씨 감기는 누가 봐요."강무진이 그 말을 곱씹었다. 곱씹다가, 아주 낮게 헛기침을 했다. 은매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목에 뭔가 걸린 채로.*왕부로 돌아오는 길에 은매가 물었다."나리. 저기, 소인이… 잘한 거예요? 오늘.""잘한 건 잘한 건데, 어느 정도로 잘했는지, 그건 마마님이 정하신다.""그럼 나리는요. 나리 생각은."강무진이 걸음을 늦췄다."나는… 약. 약 지은 게 좋았다."은매의 걸음이 잠깐 빨라졌다. 앞서 걷느라 얼굴을 안 보였다.*종친부 앞마당에, 그 약방 주인이 세워졌다.배중곤이 원로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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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끊긴 젖줄

청릉 창고 문에 봉인지가 붙었다.호부 관인이 찍힌 종이였다. 허도겸이 그것을 제 손으로 붙였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붙이고 나서 한 걸음 물러나 그 반듯함을 확인했다."낭중. 그거… 그거 붙이면요, 낭중이 붙였다는 것도 남는데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압니다. 압니다만.""지워 드린다고 했잖아요, 제가. 전에.""지우지 마십시오. 그건."허도겸이 관인을 소매에 넣었다."숫자로 안 떨어지는 일이… 하나쯤은요. 제 이름으로 남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쯤은."*고 내관이 어전의 뜻을 가져왔다.독고가 상단 청릉 본체 봉인. 물표 발행 정지. 상단 명의 재산 동결. 황제의 붓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칼이 다 벤 뒤에."그럼 숙비마마는요. 숙비마마 쪽은.""폐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니 하셨습니다. 한 마디도요."고 내관이 답했다."…아무 말씀도 아니 하신 것이, 소인 보기엔 그것이 말씀이옵니다."늙은 내관이 마루에서 내려서다가, 잠깐 멈췄다."저, 왕비마마.""예, 말씀하세요.""봉인 명을 내리실 적에요, 폐하께서 옥필을 안 굴리셨습니다. 소인이 모신 뒤로… 두 번째입니다, 그것이.""첫 번째는요? 언제였는데요.""…대황자마마 때였습니다. 그때도 안 굴리셨지요."고 내관이 물러갔다. 월령은 그 등을 오래 보았다.*왕부 별채에서 독고진겸이 그 소식을 들었다."허. 젖줄이 끊겼구먼, 끊겼어.""젖줄이요? 무슨.""명부라는 게 값으로 돌아가는 거요. 이름을 적어 놔도 값을 못 치르면 안 지워지지. 그러니 상단이 마르면… 명부도 마르는 게요."독고진겸이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처음으로, 딸을 똑바로 보았다."네 이름도. 이제 못 지운다, 아무도."설련이 그 눈을 받았다. 잠깐. 그러고는 문가에서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앉지는 않았다."제 이름이… 거기 있었어요? 그 명부에.""네가 자녕궁을 나온 날부터지. 그날부터.""값은요. 얼마였는데요.""…누이가 적으라 했고, 나는 적었다. 내 손으로. 값은 못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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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노가의 값

"어미가요? 삼전하가 아니라.""어미가. 아들은 그 창고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오. 살림살이다, 그리 들었을 테지. 뭐."노경이 일어섰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이제… 나는 남소? 이만하면.""대감은요. 대감은 남으세요."월령이 답했다."집은, 제가 모르겠어요."노경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무진이 오른손 하나로 빗장을 뽑아 문을 열어 주었다. 붕대 감은 왼팔은 등 뒤에 있었다. 노경은 혼자 그 문을 나갔다. 방어멈이 그 등을 보다가, 혀를 찼다. 이번에는 안 됐다는 쪽으로.*국청의 처결은 하루 만에 났다. 종친부는 그 뒤에 의(議)를 붙였다.노가 가주 노경, 자녕궁과 통모하여 산 사람의 이름을 값으로 사고판 죄. 관직 삭탈, 가산 절반 몰수, 도성 밖 거주. 목숨은 남겼다. 남긴 것이 월령의 말이었다.배중곤이 그 의를 읽어 내릴 때, 발이 반 발 더 옮겨 갔다. 이긴 쪽으로."노가는… 끝났군요. 이걸로."윤백이 낮게 말했다."끝난 게 아니라요. 값을 치른 거예요."월령이 답했다."이름 산 값이요."윤백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월령은 물었다."왜요. 왜 그런 얼굴이에요?""노가 유배지가… 그게, 제 고향 근처라서요.""그래서요?""그래서…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마님."윤백이 물러났다. 강무진이 그 등을 보다가, 따라 나갔다. 마당에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강무진이 헛기침을 두 번 했다.*밤에, 위지헌이 노경의 말을 다시 들었다."…삼황자부 창고라.""예.""못 뒤진다.""알아요. 황자 처소니까.""형님도 못 뒤셔. 뒤지면, 아들 처소 뒤진 황제가 되니까."위지헌이 손을 탁자 모서리에 얹었다. 그 손이 멎지 않았다. 손가락이 나무를 두드렸다가, 멎었다가, 또 두드렸다."…그 문은 그 아이가 열어야 해. 그 아이가.""열까요? 그 아이가.""모른다."위지헌이 솔직하게 답했다. 월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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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아들의 눈

창고 안은 향이 없었다.위명서는 그것부터 알았다. 어머니의 처소는 늘 무향이었다. 정갈하게, 아무 냄새도 없이. 이 창고가 그랬다. 제 살림살이를 둔 곳이라면 먼지 냄새라도 나야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등잔을 들어 올렸다.궤가 있었다. 셋. 살림살이 궤가 아니었다. 자물쇠가 달린 옻칠 궤. 그 자물쇠에도 매화가 찍혀 있었다.*첫 궤는 돌로 열었다.금이었다. 옥이었다. 값이 안 변하는 것들. 위명서는 그것을 만지지 않았다. 만질 까닭이 없었다.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지기 전에 알았다.둘째 궤에는 종이가 있었다.물표 묶음. 삼황자부 도장이 찍힌 것들. 제가 찍은 적 없는 제 도장. 그 도장을 누가 쥐고 있는지, 이제 물을 필요가 없었다.그 밑에, 명단이 하나 있었다.호위. 내관. 침소 나인. 삼황자부 사람 열둘의 이름. 이름 옆에 작은 표. 자녕궁에서 보낸 사람이라는 표. 열두 살 때부터 문 앞에 서 있던 그 얼굴이, 첫 줄에 있었다.주란의 이름은, 없었다.위명서는 그 명단을 두 번 읽었다. 있어야 할 이름이 없어서. 침소 나인은 셋이 올라 있었다. 주란만 없었다. 어머니가 심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심었으나 셈에서 뺐다는 뜻이거나.어느 쪽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창고에서 처음으로 그를 조금 살렸다.*셋째 궤는 작았다.위명서는 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열지 않으면, 아직 아무것도 안 본 사람으로 남았다. 어머니가 보지 말라 한 것을 안 본 아들로.돌을 들었다.놋쇠가 울렸다. 한 번. 두 번.*종이 한 장이었다.붉은 실로 묶은, 낡은 종이. 사본이었다. 원본은 다른 데 있고, 이건 어머니가 아들 처소에 감춰 둔 것. 사람 이름이 세로로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 값. 값 옆에 붉은 표.위명서는 그 이름들을 읽었다.모르는 이름이 많았다. 아는 이름이 몇 있었다. 향방 궁녀. 침방 것. 고향에서 편지가 안 온다던 이름들.그리고 아랫줄.섭정왕가의 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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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마른 명부

"제… 제 것을 봅니다, 어머니."위명서가 답했다. 돌아보지 않은 채."제 문양이 달렸으니 제 것이지요. 그리 말씀하신 것은, 어머니셨습니다."숙비가 창고 안으로 한 걸음 들었다. 느린 걸음이었다. 그 느림이, 오늘은 병 때문인지 셈 때문인지 위명서는 알 수 없었다."그 종이를 내려놓거라, 명서야.""내려놓으면… 안 본 것이 됩니까.""안 본 것이 된다. 이 어미가 그리 만들어 주마."위명서가 그제야 돌아섰다. 어머니를 보았다. 야윈 얼굴. 핏기 없는 입술. 그런데 눈이 야위지 않았다. 그 눈이 아들을 읽고 있었다. 물건을 읽는 눈으로."어머니는 저도 읽으시는군요. 물건처럼."*숙비가 손을 내밀었다.종이를 달라는 손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 손에 무엇이든 놓았다. 붓도, 매화 가지도, 처음 쓴 글씨도. 놓으면 어머니가 웃었다.위명서는 놓지 않았다.대신 셋째 궤를 닫았다. 첫 궤와 둘째 궤도. 그러고는 그 세 궤를 제 발치로 끌어당겼다."이것은 제 것이니, 제가 처분하겠습니다.""어디로 말이냐.""아바마마께 올립니다."숙비의 손이, 멎었다. 아주 잠깐. 그러고는 도로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네가 어미를 고하겠다는 말이냐. 이 어미를.""고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위명서가 낮게 말했다."제 창고에서 나온 제 것을 제가 아바마마께 올릴 뿐입니다.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하신 것입니다. 늘 그러셨듯이."*숙비는 오래 말이 없었다.그러다, 웃었다. 옅게. 오래 안 웃던 얼굴의 웃음이었다."너도 셈을 할 줄 아는구나, 명서야.""어머니께서 가르치셨습니다."숙비가 돌아섰다. 낮은 발소리가 창고를 나갔다. 회랑 끝까지. 그러고는 들리지 않았다.위명서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종이를 쥔 손이 아직 떨렸다. 떨리는 채로, 그는 그 종이를 접었다. 접어서 품에 넣었다. 궤와 함께 올릴 것이 아니었다. 이것만은.*편전에, 궤 셋이 놓였다.경화제는 옥필을 굴리지 않았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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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붉은 한 줄

"값이 없으면… 손으로 지우오. 손으로."독고진겸이 사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돈이 마르면 명부는 값싼 이름부터 잡는 게요. 지우는 데 돈 안 드는 이름. 상단 사람 안 붙이고, 호위도 안 붙이고, 그저 사람 하나 밤에 담 넘으면 되는, 그런 이름.""어떤 이름이요? 그게.""낮은 사람이지. 없어져도 아무도 안 찾는."월령이 사본을 다시 보았다. 붉은 표가 바랜 이름들 사이에, 아직 살아 있는 이름이 넷 있었다. 셋은 알았다. 은매. 서윤. 아란.넷째는, 오래 못 본 이름이었다.*"초비."월령이 그 이름을 소리 내 읽었다.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이 방에 셋이었다. 월령, 청아, 그리고 강무진."살릴 수 있을까요… 하고, 제가 물었던 아이예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재 묻은 얼굴로 담을 넘어왔고요. 손등에 물집이 있었고. 서원당 뒤 빈 방에 뒀는데, 그 뒤로는 제가… 못 봤어요."청아가 소반을 든 채 굳어 있었다. 강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청아.""예, 마마님.""너는 기억하니. 그 아이.""기억해요, 기억하죠. 제가 입을 틀어막았는걸요, 손으로. 담 넘어오는 거 보고 소리 지를까 봐."청아가 소반을 놓았다. 놓는 손이 조금 서툴렀다."근데 그 뒤로는 저도 못 봤어요. 서원당 뒤에 먹을 걸 두 번 갖다줬는데, 세 번째 가니까 방이 비어 있는 거예요. 마마님한테 여쭐까 하다가… 그때 마마님이 너무 바쁘셔서, 그만.""그랬구나.""죄송해요, 마마님.""네가 왜. 네가 뭘."월령이 말했다. 그러고는 사본 위의 그 이름을 손끝으로 짚었다. 짚은 채로, 오래 두었다.*설련이 문가에서 그 이름을 보았다."마마님. 그 아이… 자녕궁에서 온 아이예요?""아니. 묵아가 보냈어. 자녕궁이 태운 데서."설련이 잠깐 말이 없었다."그럼 저랑 같네요. 자녕궁이 지우려다가… 못 지운 거."설련은 그 말을 하고 물러났다. 청아가 그 등을 보다가, 설련이 문가에 벗어 둔 겉옷을 먼저 챙겨 들고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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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서원당 뒤 빈 방

"…살아 있습니다. 그 아이."강무진이 말했다."어디에요.""연조 곁에 있습니다."월령이 그 이름을 잠깐 더듬었다. 연조. 왕부의 여자 암위. 낡은 치마를 입고 심가 담장 밖으로 나갔던, 딱 한 번 본 얼굴."언제부터요? 연조 곁에는.""서원당 뒤 빈 방에서 나온 날부터입니다. 정무가 데려갔습니다. 그 방은 사흘 넘게는 못 쓴다고 해서… 그래서 연조한테로.""그걸 왜 저한테는. 왜."강무진이 답하지 못했다. 답하지 못하는 얼굴로, 위지헌을 보았다.*월령도 위지헌을 보았다."…부군.""내가 시켰다.""왜 말 안 하셨어요? 저한테.""…네가 안 물었잖으냐."월령은 그 말에 잠깐 숨을 멈췄다. 맞는 말이었다. 묻지 않았다.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묻고, 쉽지 않다는 답을 듣고, 그러고는 제 생 전부가 낭떠러지로 걸어가는 동안 그 이름을 놓았다.놓은 것은 저였다. 그런데 그 아이를 주운 것은 그였다. 말도 없이."문 열기 전에 말하마, 하셨잖아요.""그건 그 뒤 약조지. 이건 그 전 일이고.""그럼 그 전 일도요. 이제 말해 주세요, 하나씩."위지헌이 잠자코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까딱였다."…하나씩.""오늘은 초비요. 초비부터.""오늘은 초비다."강무진이 그 사이에서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아주 낮게 덧붙였다."제가 마마님께 안 아뢴 건, 왕야 명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아이가 아뢰지 말라 했습니다. 마마님이 저를 보시면 또 살릴 수 있을까, 그리 물으실 거라고. 그 물음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고. 그래서."월령의 손끝이 접혔다. 접힌 채로, 풀리지 않았다.*초비는 왕부 뒤채 담 너머에 있었다.담 하나 사이였다. 세 해 동안. 월령이 그 담 앞에 섰을 때, 연조가 먼저 나왔다. 낡은 치마가 아니라 검은 옷이었다."왕비마마.""연조.""초비는 안에 있습니다. 뵙기 전에 하나만."연조가 낮게 말했다."그 아이, 이제 겁이 없습니다. 없어서 무섭고요.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마십시오."*초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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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난향재의 두 그릇

난향재 아침은 빗질로 시작했다.송란영이 아란의 머리를 빗겼다. 참빗으로 한 번, 얼레빗으로 한 번. 그러고는 머리채를 세 갈래로 나눠 땋았다. 땋는 손이 끝에서 한 번 더 감겼다. 남들은 안 하는 매듭이었다. 죽은 사람이 하던 매듭."어머니, 오늘도 그거 해? 그거.""뭘.""그 매듭. 다른 애들은 안 하는데, 왜 나만 해?""…그러냐."송란영이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그 매듭을 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아침상은 세 그릇이었다.송란영이 밥을 펐다. 한 그릇, 두 그릇. 그러고는 세 번째 그릇에 밥을 담다가, 멈췄다. 담긴 밥을 도로 솥에 부었다. 빈 그릇을 엎어 두었다.아란이 그것을 보았다. 매일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묻지 않았다.유씨가 난향재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기척도 없이. 친정 언니처럼."또 세 그릇이냐.""두 그릇이에요, 형님.""엎어 둔 게 하나 있는데, 저기."송란영이 답하지 않았다. 유씨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엎어 둔 그릇을 제 손으로 바로 놓고, 거기에 제 밥을 덜었다."나도 여기서 먹으마. 안채는 대감 코 고는 소리에, 아주, 밥이 안 넘어가."아란이 큭 웃었다. 송란영도 입가가 조금 풀렸다. 유씨는 그 풀린 입가를 보고, 나물을 아란 쪽으로 밀었다."형님, 그 그릇은요.""그릇이 그릇이지, 뭐. 밥 담으면 밥그릇이고 엎어 두면 빈 그릇이고."유씨가 밥을 한 술 떴다."란영아. 죽은 사람 몫을 매일 엎어 두는 거, 그거 산 사람이 매일 한 번씩 죽는 거다. 나도 해 봤어. 해 봐서 알아."송란영이 수저를 들지 못했다. 유씨는 더 말하지 않았다. 아란이 제 밥을 한 술 떠서 어머니 그릇에 얹었다."어머니, 이거 먹어. 내 거."*우물가에서 은매가 물을 긷고 있었다.왕부에서 심가로 심부름을 온 참이었다. 방어멈이 혼자 약방은 안 보내도, 심가는 보냈다. 심가는 친정이었으니까.두레박을 올리다가, 은매의 손이 멎었다.물에서 냄새가 났다.옅었다. 아주 옅어서, 물 긷는 사람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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